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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 벨트 국가 알아보기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3 (역사, 한국과의 관계)
eurasiaturk 조회수:952
2016-07-03 05:41:01

ukraine

 

 

 역사

 

 

기원전 3,500년경부터 기원 전후에 이르는 기간 중 현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는 킴메리, 스키타이, 사르마티아인들이, 기원후 1,000년 동안에는 고트족, 훈족, 불가리아인, 아바르, 하바르, 마자르, 페체네그 민족 등이 출현, 명멸하기를 거듭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에는 기원전 수세기 동안 타우리,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기원후 중세까지 아르메니아, 슬로박, 제노아, 투르크, 타타르인들이 거주하였으며, 현재도 크림에는 이들의 후손과 문화가 남아 있다. 카르파티아(Carpathia) 산맥 북부지역이 본거지로 추정되는 슬라브 민족이 7세기 초 사방으로 분산, 이동하면서 드니프로(Dnipro)강 서안에 동슬라브 민족이 정착하였다.

 

1. 키예프공국

8~9세기 동슬라브민족 최초 봉건국가인 키예프 루시(Kyiv Rus)가 키예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북부 발틱해에서 남부 흑해까지, 동부 볼가(Volga) 강에서 서부 티사(Tisa)강에 이르는 지역을 영토로 삼았다. 키예프는 1500년 전 건설되었으며 10~12세기경 인구는 약 15만 명으로 추정된다.
9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초반까지 200여 년 간 키예프 루시는 봉건국가로서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특히 볼로디미르 대공(Volodymyr the Great)치세(980~1015)에는 기독교 수용(988년) 및 비잔틴 문화 도입 등 문화적으로도 크게 융성하였다.
1132년 므스티슬라프(Mstyslav)왕 사후, 왕자들간의 후계 다툼으로 키예프 루시는 여러 공국으로 분할되고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223년부터 3차례에 걸친 몽고족의 침입을 받고 1240년 키예프가 몽고족에 의해 폐허로 변하면서 키예프 루시는 멸망하기에 이른다.
키예프공국은 당시 유럽에서 강력한 국가였으며, 후일 우크라이나 국가 정체성 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2. 갈라치아, 볼하니아 공국

우크라이나 땅에는 키예프 공국의 뒤를 이어 갈리치아(Galicia, Halych)와 볼히니아(Volhynia, Volodymyr-Volynskii) 공국이 그 뒤를 이었다. 갈리치아와 볼히니아는 합병, 분열되다가 결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의해 정복되었다.

 

3. 코자크 헤티만국

17세기 중반에는 우크라이나 중부에 코자크 헤티만국(Cossack Hetmanate)이 세워져 백 년 이상 모스크바 공국(Muscovy)의 압력을 견뎌냈으나, 결국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러시아에 의해 분할되었다. 그 후 18세기 후반에 폴란드 분할을 통해 우크라이나 중부와 동부는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고 서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되었다.

 

4. 우크라이나의 분열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오스트리아 지배 하의 서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지배 하의 동부 우크라이나가 각각 독립을 선언, 1920년에는 동서 통일을 선언했으나 외부 군대의 침략으로 신생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오래 가지 못하였다. 결국 1922년에 서쪽은 폴란드, 동쪽은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가 되었다.

 

5. 소비에트 연방령 우크라이나

 

6. 제2차 세계대전-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편입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소비에트 연방은 폴란드를 침공, 우크라이나 서부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로 만들었다. 1941년에는 독일군과 추축군이 소비에트 연방의 적군을 쳐부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영웅 도시'라 칭한 키예프 전투에서는 66만 명이 넘는 소비에트 연방군이 포로로 잡혔다. 처음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곧 대량 학살을 시작하여 유대인들과 우크라이나인 민간인들을 죽이거나 강제 추방하였다. 마을 전체를 태워 없애기도 하였다. 결국 우크라이나인들은 독일의 지배가 소비에트 연방의 지배보다도 악랄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전쟁 중과 독일 치하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5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포함, 7백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갈리치아 지방에서는 폴란드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끼리 서로 집단 학살을 저지르기도 한 끔찍한 시기였다. 독일과의 전투로 소련군은 약 1천 1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는데 그 중 4분의 1(270만 명)이 우크라이나계였다. 우크라이나 민족은 추축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 첫 민족이 되었고(카르파티아-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엄청났다. 1945년에는 소련방내 러시아, 벨로루시와 함께 유엔 창설 회원국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소비에트 연방령 우크라이나는 서쪽으로 확장되어 우크라이나인들이 사는 땅을 거의 모두 포함하게 되었다. 1954년에는 우크라이나에 의해 러시아 본토와 단절되어 있던 크림 반도가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령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니키타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우애를 과시하기 위해 페레야슬라우 조약(코자크 헤티만국이 모스크바 짜르의 보호를 요청)의 300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에 크림 반도를 선물한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독립 후 양국 간의 분쟁 소지가 된다.

 

7. 독 립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이후 소련 중앙정부의 장악력이 약화됨에 따라 1991.8.24 우크라이나 최고회의는 독립선언법을 채택하여 독립을 선언하였고 1991.12.1 국민투표로 최종 확정하였다. 1991.12.5 레오니드 크라프축(Leonid Kravchuk)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1991.12.8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로루시 3개국 정상간에 소련방 탈퇴 문서에 정식 서명하였다

 

8. 독립 후

독립 후 94. 3월, 98. 3월, 2002. 3월, 2006.3월 각각 제 2, 3, 4, 5대 총선이 있었다. 1994. 5월, 제2대 대통령으로 레오니드 쿠츠마(Leonid Kuchma)가 당선, 1999. 10월 제3대 대통령으로 재선되었고, 2004. 11월 제4대 대통령 선거부정으로 오렌지 혁명 발발, 2005. 1월 빅토르 유쉔코(Viktor YUSHCHENKO) 야당후보가 제 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1. 양국 관계 개관

데이터 테이블
구분 한국
관계수립 수교일 :1992-02-10
공관계설 주 우크라이나 주 한
상주: 1992.12 상주: 1997.11
겸임국 그루지야, 몰도바  
주요 협정체결

- 과학기술협력협정(92.7)

- 우편 및 전기통신부문 협력협정(95.5)

- 무역협정(95.11)

- 투자보장협정, 항공협정(96.12)

- 이중과세방지협정(99.9)

- 원자력협력협정(2001.7)

- 관광협력협정, 복수사증교환각서(2001.10)

- 군사비밀보호협정(2003.4)

- 세관협정(2003.5)

- 무상원조·기술협력협정(2005.10)

- 기업인복수사증교환각서, 사증수수료면제 및 무사 증입국 교환각서, 외교관여권사증면제협정(2006.6)

- 원자력협정(2007.6)

- 우주협력협정(2007.8)

- 방산, 군수협정(2007.8)

- 관광협정(2009.7)

- 문화협정(2009.8)

- 해운협정(2009.8)

주요 진출 기업

-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 에코비스

- 대우통신(합작)

 

[한-우크라이나 교역통계]

데이터 테이블
년도 수출 수입 수지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금액
2001 173 19.6 195 -39.1 -21
2002 220 27.1 230 18.1 -10
2003 358 62.3 243 5.4 115
2004 493 37.9 584 140.5 -90
2005 687 39.2 280 -52 406
2006 884 28.8 218 -22.1 666
2007 1,546 74.8 295 34.9 1,252
2008 1,773 14.7 824 179.8 949
2009.1-9 306 -80.0 530 19.6 -224

정보원 : 한국 관세청

 

2. 정무관계

우크라이나는 92년 외교관계 수립 이후 광범위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왔다. 양국의 국제적 위상 및 잠재력에 비추어 인사교류 및 실질협력의 발전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양국은 경제. 통상협력을 강화해 왔으나, 양국의 경제력 및 잠재력에 상응하는 실질협력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 양국은 UN 등 각종 국제무대에서 상호협력해 왔다.

 

- 우크라이나는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 및 남북대화 노력 지지

- 우리는 2000~1년간 우크라이나의 안보리이사국 진출지지

 
1) 외교 일지
  • 91.12.30 한국, 우크라이나 국가 승인
  • 92.2.10 외교관계 수립
  • 92.12 주우크라이나 대사관 개설
2) 주요 인사교류

데이터 테이블
우리인사 방우 우크라이나인사 방한
  • 92.6 이상옥 외무부장관 공식 방문
  • 95.7 최종환 한·CIS 경제협회 회장 방문(경제사절단 인솔)
  • 95.8 한-우 의원친선협회 대표단 방문
  • 98.9 한-우 의원친선협회 대표단 방문
  • 98.9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 방문
  • (제1차 한·우크라이나 무역공동위개최)
  • 01.7 김영환 과기부 장관 방문
  • (제1차 과기공동위, 원자력 협정 서명)
  • 01.8 최성홍 외무차관 방문
  • 01.11한-우 의원친선협회 대표단 방문
  • 02.4 김종호 국회부의장 방문
  • 02.8 국회 산업자원 위원회 대표단 방문
  • 04.4 전윤철 감사원장 방문
  • 05.5 윤재식 대법관 방문
  • 05.10이해찬 국무총리 방문
  • 06.7 한.우친선협회 대표단 방문
  • 06.8 정상명 검찰총장 방문
  • 06.10임채정국회의장 방문
  • 07.6 이재훈 산자부 제2차관 방문
  • 08.5 EBRD 연차총회 대표단 방문(배국환 기획재정부 차관)
  • 08.7 지식공유사업 대표단 방문(KDI 최종찬 전장관)
  • 08.8 지식공유사업 대표단 방문(KDI 권오규 전총리)
  • 08.8 문희상 국회부의장 방문
  • 08.10 임채진 검찰 총장 방문
  • 08.10 통외통위원단 방문 (국정 감사단)
  • 09.4 박계동 국회사무총장 방문
  • 94.7 Prozhivalskiy 체신부장관 방한
  • (UPU 총회 참석)
  • 95.3 Moroz 최고회의 의장 공식 방한
  • 95.11Storizhko 과학기술장관 방한
  • 95.11Udovenko 외무장관 방한
  • 96.12Kuchma 대통령 방한
  • 00.5 Shatkovskyi 정무부차관 방한(군사비밀보호협정 협상)
  • 00.6 Kremen 교육과학부장관 방한
  • 00.11Flush 최고회의의장 방한
  • 01.3 Kuchma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 방한
  • 01.4 Kravchuk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 방한01.10Symonenko 감사원장 방한
  • 03.12Shnypko 내각부 차관,
  • Kuleba 외무부 아태차관보 등 방한(제2차 한-우 무역공동위 개최)
  • 04.6 Gryshchenko 외무장관 방한
  • 06.4 Medvedko 검찰총장 방한
  • 06.12Victor Yushchenko 대통령 방한
  • 08.6 막수타 경제차관 타바쉬니크 의원, 까라까이 의원 등 방한
  • 09.5 Lutsenko 내무장관 방한
  • 09.6 Tymoshenko 총리 방한

3) 양자간 협의체 운영 현황

데이터 테이블
  한.우 고위 정책 협의회 무역공동위 과학공동위
제1차 회의 96.09 키예프 98. 09, 키예프 01.07, 키예프
제2차 회의 02.11 서울 03.12, 서울 05.06, 서울
제3차 회의 04.12 키예프 06.12 서울 07.06, 키예프
제4차 회의 06.10 키예프 08.10 키예프
(무역경제공동위로 격상)
 
제5차 회의 09.02 서울    

 

3. 문화관계

2001년 이후 우리 예술단 주재국 공연 등 각종 문화행사 개최

 

ㅇ 2001.5 “정동극장” Kyiv Days 참가 (4회 공연)

ㅇ 2001.12 한.우 수교 10주년 학술회의(키예프 국립대)

ㅇ 2002.2.7 한.우 수교 10주년 경축 음악회

     - 전영혜 경희대 교수등이 우크라이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

ㅇ 2002.2.15 한국 영화제(한국영화 5편 상영)

ㅇ 2002.5.24 금호 4중주단 Kyiv Travnevy 축제 참여

ㅇ 2003.10 베세토 오페라단 ‘카르멘’ 키예프 및 오데사 공연

ㅇ 2004.5.29 국립국악원 전통무용단 (Kyiv Travnevy 축제 참여)

ㅇ 2004.6.28∼7.2 한국 영화제(한국영화 3편 상영)

ㅇ 2005.5.29 장사익 공연단 공연(Kyiv Travnevy 축제 참여)

ㅇ 2005.10.5~11.7 한국 영화제(우크라이나 주요 도시 순회 상영)

ㅇ 2005.10.6 손경순 예전무용단 (제10회 고려인 문화페스티발 참여)

ㅇ 2005.11 국립중앙박물관 재단소속 전통가무단

ㅇ 2006.5 두드락공연단(Kyiv Travnevy 축제참여)

ㅇ 2006.5.28 한국의 밤 행사 개최

o 2006.6.1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단 방문

o 2006.7.2 외교안보연구원 및 외교아카데미 협력 지원(조중표 원장 방문 7.2~4)

o 2006.10.5~8 한국 문화 주간 행사(‘몰개’ 공연, 고려인 교민 등700여명 참석)

o 2006.10.8 고려인 문화 축제 개최(심페로폴)

o 2007.3.10~11 동양어학교 한국어 경시대회 지원

o 2007.5.24~26 퓨전 국악단 “림” 키예프, 심페로폴 공연

o 2007.6.22~23 주 우크라이나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

o 2007.7.1~2 한•우 학술회의

o 2007.7.3 한국 문학의 밤 (시 낭송회)

o 2007.9.20~21 2008 고려인 문화 축제 체르놉찌

o 2007.10.11~21 우크라이나 한국영화제 개최, 청년 문화봉사단 “아우름” 사물놀이 공연

o 2007.11.27~30 국악 공연단 “아우름” 지방 순회공연

o 2008.4.3~5 제3회 주 우크라이나 한국 대사배 태권도 대회

o 2008.6.1 한국의 밤 행사 개최

o 2008.6.27~29 주 우크라이나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

o 2008.7.2 한•우크라이나 학술교류 대회

o 2008.10.6 아시아 영화제 개최 지원

o 2008.10.22~24 고려인 문화 축제 개최(니꼴라예프)

o 2009.3.26 KIEV TV 한국드라마 “대장금” 방영

o 2009.4.9~12 동양어학교 한국어 경시 대회 지원

o 2009.4.9~10 대학교 한국어 경시 대회 지원

o 2009.5.24 한국의 밤 행사 개최

o 2009.6.1~13 한국 전통 무용 강좌 개설 및 악기•소품 지원

o 2009.6.26~28 한·우크라이나 학술교류 대회

 

4. 한국어 교육과정 개설 현황

ㅇ 키예프 국립대학교 동양어대학

ㅇ 키예프 국립 외국어대학교

ㅇ 키예프 국제대학

ㅇ 클로브스키 외국어학교

ㅇ 동양어 특수학교

ㅇ 하리코프 181 정수리학교(한국어 의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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