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고 대
카자흐스탄 내에서 발굴되는 유물들로 미루어 BC 1,500-1,000년경 현재의 카자흐스탄에 청동기 초기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BC 500년경에는 현재의 남부 카자흐스탄에 사카(Saka)부족이 알타이산과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방대한 스텝지역에 거주하여 스키타이 문화의 일부를 이루었다. 사카부족은 카자흐스탄 최고의 고고학적 발굴로 일컬어지고 있는 "The Golden Man"(금 갑옷을 입은 전사 모형․알마티 인근에서 발굴)을 남긴 부족으로서 Golden Man은 현재 카자흐스탄의 국가 상징한다. BC 200년경에는 중국 북부로부터 훈족(Huns)이 현재의 동부 카자흐스탄을 장악한 바 있었으나 훈족이 서유럽으로의 진출을 서두르면서 서기 550-750년에 걸쳐 몽고와 중국 북부로부터 투르크(Turkic)족이 현재의 카자흐스탄 남부로 이주하였다. 투르크족은 만주로부터 카자흐스탄 남부에 이르는 Kok Turk 제국을 구성하였다.
2. 카자흐 민족국가 형성(13세기-18세기)
[몽골 제국 지도]
1218-1221년경 몽고의 징기스칸이 카자흐스탄 동남부를 시작으로 현재의 카자흐스탄 전역을 석권하였다. 카자흐 영토는 Golden Horde, White Horde 및 Mogulistan으로 분리 통치되었으며 카자흐 카나테(Kazakh Khanate)가 15세기 초 White Horde에서 분리되면서 카자흐 민족국가 형성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후 카자흐 카나테는 대오르다(Great Horde : 발하쉬 호수 남부지역), 중오르다(Middle Horde : 카자흐 중부), 소오르다(Little Horde : 카자흐 서부)로 분열되어 호족들이 통치하였으며 3개 오르다는 현재 카자흐스탄 호족출신 배경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지방 호족들은 그 후 300여 년에 걸쳐 3개 오르다에 병합되었으며 카자흐는 봉건영주와 농노로 구성된 봉건국가로 18세기까지 존속하였다.
3. 러시아로의 합병(18세기-19세기)
봉건제후들 간의 전쟁으로 세력이 크게 약화된 3개 오르다는 18세기 중엽 준가르 (Dzungarian)의 침공으로 소위 “대 재난의 시대”를 맞게 되었으며 1731년 러시아 제국에 보호를 요청하면서 러시아로의 합병과정 시작되었다. 그 후 러시아는 국경지역에 요새와 오렌부르크 등 소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카자흐스탄 남부로 영향력을 확대, 19세기 초에는 카자흐스탄 북부와 중부에 러시아식 8개 행정구역이 출현하는 등 러시아의 식민화 정책이 본격화되었다. 일부 반 러시아 폭동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식민화 정책은 지속되었으며 19세기 초 중․소오르다에 대한 직할통치를 시작으로 1860년대에 대오르다가 러시아에 편입되어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전역을 합병하였다.
4. 소비에트 정권 수립과 사회주의 건설(1917-1990)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및 내전 과정 동안 카자흐스탄 내 소비에트 정권이 신속하게 수립되었으며 1920년 카자흐스탄은 키르기즈 자치공화국의 일부로 편입, 소비에트 정권 수립이 마무리된다. 소련 공산당은 1924-1925년간 중앙아 공화국에 민족구성을 기반으로 새롭게 구성된 공화국 구성 개혁안을 추진한 결과, 1925.4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탄생되었다. 계획경제체제하에서 광물산업을 중심으로 한 카자흐스탄 산업화 및 강압적인 농업 집단화 과정을 본격 추진(1940년대 초까지 전농장의 97%가 집단농장화)하기도 하였다. 1936.12 카자흐스탄은 소련 구성 공화국의 하나로 승격되었고, 1950년대 말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 시에 추진된 Virgin Land(처녀지 개간) 정책으로 카자흐스탄 북부에 약80만에 이르는 러시아인들의 이주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식민화가 시작되어 1960년 초에는 전체 930만 카자흐스탄 인구 중 러시아인이 43%, 카작인이 29%라는 기형적인 민족구성을 초래하기에 이른다. 소련 공산당은 샤야흐메토프(Zhumabay Shayakhmetov) 및 쿠나예프(Dinmukhamed Konayev) 등 카작인을 카자흐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임명하는 등 카작 민족에 대한 일부 배려가 있었으나 실권은 모스크바에서 행사하였다. 1986년 쿠나예프가 러시아인인 콜빈(Gennady Kolbin)으로 교체되자 대규모 폭동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소련은 카자흐스탄 세미팔라친스크(Semipalatinsk)를 핵 실험장으로 이용하거나 바이코누르(Baykonur)에 우주선 발사 기지를 건설함으로써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하였다. 1989년에는 소련 최초의 대규모 시민운동인 Semipalatinsk Movement가 결성되었으며 동 운동의 결과로 소련은 1989년부터 세미팔라친스크에서 핵실험을 중지하기에 이른다.
5.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부상과 카자흐스탄 독립
1989년 카자흐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된 나자르바예프는 1990.4 카자흐스탄 최고인민회의에서 카자흐스탄 공화국 대통령에 피선된다. 1990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소련 붕괴 과정에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등과 함께 소련 체제를 유지하려 노력하였고, 결국 카자흐스탄은 1991.12 소련 체제의 와해가 기정사실화 된 직후 동년 12.16 소련 구성공화국 중 가장 늦게 독립을 선언하고 동년 12.21에는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한다.

1. 개 관
한-카자흐스탄 관계는 1992.1.28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꾸준히 실질협력관계를 발전시켜오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우리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이 자국의 경제개발에 유용할 수 있다는 점과 우리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동 경험 전수 및 카자흐스탄 경제전반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인식하에 우리와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다. 특히, 카자흐스탄 독립직후 카자흐스탄의 경제적 어려움과 서방기업들의 무관심이 지속되던 시기에 우리 기업이 카자흐스탄에 적극 진출 하여 성공적인 투자사례를 이룸으로써 결국 서방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의 외환위기 이후 우리기업들의 투자가 급감하였으나 2002년도 카자흐 외무장관 방한 및 산자부 장관의 상호방문을 계기로 활력을 되찾기 시작한 양국관계는 2003.11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방한으로 카스피해 원유 및 광물자원 공동개발 등 실질 협력관계 확대를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였다. 2003년 11월 한-카자흐스탄 정상회담 및 2006년 9월 한명숙 총리 공식 방문 등을 통해 양국 정상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해 인식을 같이하고, UN 등 국제무대에서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하는 등 정치, 외교적 측면에서도 양국간 협력관계는 더욱 확대되는 추세이다.
또한, 최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가한 우미르작 슈케예프 카자흐스탄 부총리는 대통령 접견자리에서 카자흐스탄 국민복지화를 강조한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최근 연두교서 내용을 강조하며 향후 에너지 및 건축 관련 양자협정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길 희망했다. 접견 후, 우미르작 슈케예프 카자흐스탄 부총리는 에너지 및 건축 관련 한국대표기업들과의 투자협상면담에 참석하면서, 이번 카자흐스탄 부총리 방한이 향후 대 카자흐스탄 한국기업투자진출에 중요한 영향을 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 주요 인사교류
[슈케예프 부총리와 이명박 대통령] [한명숙과 아흐메토프 총리]
- 1990.11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소 연방 공화국 대통령 방한
- 1992.07 이상옥 외무장관 카자흐스탄 방문
- 1995.05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국빈방한
- 1997.10 예시모프 제1부총리 방한
- 2002.10 토카예프 국무장관 겸 외무부 장관 방한
- 2002.11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 카자흐스탄 방문
- 2003.11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공식방한
- 2004.03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 카자흐스탄 방문
- 2004.07 아비카예프 상원의장 비공식 방한
- 2004.09 노무현 대통령 카자흐스탄 국빈방문
- 2004.11 이명박 서울시장 카자흐스탄 방문
- 2005.04 마르첸코 전경제부총리(현 할릭은행 총재) 방한
- 2005.04 슈콜릭 에너지․광물자원부 장관 방한
- 2006.01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 카자흐스탄 방문(대통령취임식 참석)
- 2006.06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CICA 정상회의 참석)
- 2006.09 한명숙 총리 공식방문(추규호 건교부장관 수행)
- 2008.02.26 이명박 대통령 카자흐스탄 우미르작 슈케예프 부총리 접견(대통령취임식)
-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국민복지의 성장은 국가정책의 중요 한 목표’라는 주제를 담은 연두교서 전달
- 한-카 협력관계 동향과 전망 관련 문제 논의
- 한국 건축회사, 에너지 회사, 재정기관 대표들과 면담
3. 한·카자흐스탄 에너지·자원 협력
[카자흐스탄 잠빌 유전 위치도]
석유공사, 삼성, LG, SK, 대성 등 7개사는 2002.3 원유개발 컨소시엄을 구성, 카스피해 유전개발 참여를 적극 추진 중이다. 한국 원유컨소시엄은 카자흐 석유가스공사측과 카스유 망광구인 잠빌 광구에 대한 공동개발 양해각서를 2004.3월 체결하였으며, 2006.9월 지분 양, 수도를 포함한 실무협상을 마무리 지어 2006.11월까지 본 계약을 체결하고, 2008년 현재 카작국영석유회사(KMG)와 탐사계약 체결 중이다.
카자흐스탄과 한국측의 참여지분은 아래와 같으며 2008년 5월 중순 한승수 국무총리의 중앙아시아 순방 시 잠빌 광구의 지분 27%를 획득하는 지분양수도 본 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다. 또 탐사에 성공할 경우 23%의 지분을 우선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선매권 행사도 가능해져 한국컨소시엄은 최고 50%의 지분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 양자간 잠빌광구 참여지분 : 카자흐스탄(73%), 한국 (27%)
- 한국 컨소시엄 회사 : 석유공사 9.45%, SK 6.75%, LG상사 2.7%, 삼성물산 2.7%, 현대하이스코 2.7%, 대성산업 1.35%, 대우조선해양 1.35%
대한광업진흥공사는 카자흐스탄 지질위원회측과 카자흐 스탄 동남부(15만㎢) 주요 광물부존 구역에 대한 공동탐사를 2004-2007년간 실시 중이며, 금․동․연․아연 등 유망광물 발굴 시 아국기업의 후속개발진출 연계를 추진 중이다.
또한, 대한 광업진흥공사는 한국 수력원자력과 함께 카자흐스탄 Kazatomprom 측과 공동으로 우라늄 광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며, 현재 한국수력원자력은 Kazatomprom 측과 우라늄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 우리 우라늄 수요의 약 1/4을 카자흐스탄이 공급 중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우라늄 수요 총 3,600톤 중 960톤)
4. 교역현황
양국 경제·통상협력은 양국 경제의 상호보완성에 기초하여 2000년 이후 대폭 활성화되고 있으며, 2003년에 87.2% 증가한 데 이어 2004년 39.9% 증가하는 등 급속한 성장세를 보인 바 있으며, 2005년에는 한․카자흐스탄간 교역량 확대에 따른 수출입 구조 조정 및 러시아 및 중국을 통한 교역량 증가에 따라 다소 전체 교역량이 보합세를 유지하였으나, 건축자재 및 자동차 분야 등의 약진에 따라 2006년 교역량은 균형적으로 확대되어 양국 교역 액은 6억 달러를 기록했고, 2007년에는 8억 달러를 넘어섰다. 카자흐스탄의 WTO 가입추진에 따른 경제 자유화 및 국제유가 상승, 카자흐스탄의 건설수요 증가 등으로 양국간 교역량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5년 이전 우리의 대카자흐스탄 수출은 휴대폰 등 전자제품이 주도하였으나, 2006년 휴대폰 등 전자제품의 수출량이 감소한 반면, 건축자재 및 자동차 분야 수출량은 전년동기 대비, 열 교환기 9.6%, 엘리베이터 162.9%, 화물자동차 109.3%, 승용차 72.2% 등 큰 폭으로 증가하여 휴대전화를 제외한 수출 품목 상위 7개 제품의 수출이 대폭 신장되고 있어 가전제품에 편중되던 우리 수출품목의 다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바, 향후 카자흐스탄 건설경기 활성화 및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건설자재 및 자동차 분문의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도별 양국간 교역 현황]
(단위: 천달러, %)
연도별 양국간 교역 현황
| 구분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 교역량 |
197,780 |
370,269 |
517,979 |
514,163 |
599,697 |
802,745 |
| (20.5) |
(87.2) |
(39.9) |
(-0.74) |
(16.6) |
(33.8) |
| 수출 |
126,110 |
217,174 |
313,950 |
272,558 |
323,815 |
545,978 |
| (16.8) |
(72.2) |
(44.6) |
(-13.2) |
(18.8) |
(68.6) |
| 수입 |
71,670 |
153,095 |
204,029 |
241,605 |
275,882 |
256,767 |
| (27.7) |
(113.6) |
(33.3) |
(18.4) |
(14.2) |
(-6.9) |
출처 : 한국관세청 ( )은 전년 동기 대비 증감률
5. 고려인 현황
[고려 극장 내부의 모습] [고려극장에서 공연중인 부채춤]

1. 언 어
국어는 카작어(64.6%)이고, 러시아어(95%)도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독일어, 우즈벡어, 키르기스어, 페르시아어, 영어, 기타 등도 쓰인다.
카작어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넓게 분포함에도 내부적으로 방언적 차이가 적어 서로 대화가 자유롭게 통한다. 투르크어 중에서는 북서 중앙 그룹 또는 킵차크 어군이라고 부르는 그룹에 속하며, 특히 카라칼팍어·노가이어·키르기스어 등과 가까운 관계에 있다.
카작어는 우즈벡어나 신위구르어 등 중앙아시아에 분포하는 다른 투르크어와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에 걸쳐 차가타이어를 문어(文語)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 페르시아 식 아라비아 문자를 쓰는 공통 문어가 카자흐어 사용자들 사이에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구어화(口語化)되어 카자흐 문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후 1917년과 1924년의 정서법 개정을 거쳐, 소련에서는 1929년에 라틴 문자화되고, 1940년에는 키릴 문자로 대체되었다. 문법구조는 다른 투르크어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주어-목적어-동사의 어순이며 접미사나 후치사 등에 따라 문법 범주가 표현된다. 카작어는 역사적으로 몽골어와 아랍어, 이란어에서 차용된 말이 많다. 몽골어와 카작어는 12∼13세기경부터 접촉하였고, 아랍어는 이슬람 문화를 통해 투르크어로 도입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이란어를 매개로 한다. 근년에는 러시아어와 중국어, 특히 러시아어로부터의 문화 관련 어휘의 차용이 두드러진다.
2. 민 족
민족 구성은 카작인 53.4%, 러시아인 30%, 우크라이나인 3.7%, 우즈벡인 2.5%, 독일인 2.4%, 타타르인 1.7%, 위구르인 1.4%, 그 외 4.9% 로 이루어져있다.
19세기 말부터 정책적 지원에 의한 농업 이민으로 러시아인의 이입이 증가한 후 20세기에는 중앙아시아 근대화 작업에 따라 러시아인의 이주가 급증하였다. 따라서 1980년대까지 러시아인의 인구 비율이 카자흐인 및 원주민보다 높은 기형적인 형태를 보이기도 했었다. 러시아이주민들은 대부분 알마티를 비롯한 5대 도시에 거주하며 제조업 기술자, 관리인, 기타 전문직 등의 도시적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소련 체제와 관련한 러시아인의 계획으로 인해 러시아인의 비율이 30%를 육박하고 있다.
1937년에는 연해주 지방에 거주하던 한인들도 이곳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다. 제 2차 세계 대전 초에는 볼가 강 연안의 독일인 자치주에서 많은 독일인을 알마티 주변으로 강제이주 시켰으며, 1942년에는 바크 유전지대를 차지하기 위해 독일군이 크림반도 및 북카프카스 지방을 점령하자 소련군이 이를 퇴각시켰다. 스탈린은 이와 동시에 독일군에 협력했는지 여부에 따라 이 지역의 크림 타타르인과 체첸인들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 시켰다. 따라서 스탈린 사망 이후 현재 까지도 한국인, 타타르인, 체첸인 등은 고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유럽계 백인들이 이주함에 따라 카자흐인의 비율이 높아졌다.
3. 종 교
현재 각 민족들의 종교를 모두 허용하고 있으나, 국민의 47%는 이슬람교를 믿고 있고, 44%는 러시아정교, 2%는 개신교, 기타 7% 순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이슬람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상 밝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개신교 선교사들에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는 비자를 내주고 있으며 교회 등록도 허락해주고 있다. 현재 선교 활동에 어려움이 있는 인근 키르기즈스탄, 우즈베키스탄과 비교해 볼 때 카자흐스탄의 문은 상대적으로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
4. 교 육
[아바이 국립대학교] [카자흐스탄 민족 농업대학교]
유치원 교육은 현재 약 60% 정도의 아동들이 교육을 받고 있어 취학률이 높지 않은 편이나, 정부는 유아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최근 몇 년 동안 취학 전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앞으로 취학률을 90% 이상 끌어올리기 위해 보다 많은 재정 지원을 할 예정이다.
초, 중등 교육은 공립학교인 쉬콜라의 경우 1~11학년까지 교육과정에 따라 초등학교 과정(4년), 중학교 과정(5년), 고등학교 과정(2년)으로 나뉘어 이루어지고 있으나 2008년부터는 우리와 같은 표준의 12~14년제를 도입할 예정으로 현재 일부 학교에서 시범 전환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9학년(중학년)을 마치면 직업기술학교에 갈 것인지 정규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중학 과정을 마친 학생들 중에서 약 30%는 전문직업기술학교에 진학 하고 나머지 70%정도는 상급학년으로 진학하고 있다.
대학 교육은 교육의 다른 어느 분야보다 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많은 활발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카자흐스탄에는 현재 33개의 국립대와 126개의 사립대학교가 있으며, 각 대학교마다 학교 발전과 우수학생 유치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대학 진학률은 약 62%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정부도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하여 ‘볼라샥(미래)’ 이라는 정부 장학 제도를 마련하여 연간 3,000명의 학생을 해외에 내보내고 있다.
5. 손님접대(konak kutu)와 음식문화
[전통 음식 베스바르막] [카자흐스탄 전통 음료 크므즈]
[손님 접대 – 상좌] [카즈]
카작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손님접대이다. ‘손님이 오면 복이 온다’라는 격언대로 카작인은 손님으로 가길 좋아하고, 집에 손님이 오는 것을 즐거워하며 복된 일이라고 여긴다. 손님이 집에 왔을 때,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은 먼저 들어오는 손님을 향해 인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주인은 가장 먼저 손님에게 ‘퇴르게 오트릉으즈 (Torge oturunguz)’, ‘죠가르 싀긍으즈 (Jogaru shugunguz)’라는 말로 상좌에 앉도록 권한다. 그 다음에는 손님을 위해 정성스레 식탁을 차린다. 카작 민족에게 식탁 (Dastarhan)은 아주 중요한 단어로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다. ‘식탁’이라는 뜻과 함께 ‘식탁보’를 말할 때도 ‘다스타르한’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이것은 풍요와 만족을 의미한다. 손님을 맞이할 때, ‘상차림, Dastarhan Jasau’에 앞서 해야 할 것은 ‘식탁 보를 까는 것, Dastarhan Jayu’ 이다. 식탁이 탁자 위에 차려지든, 바닥에 차려지든 상관없이 식탁보는 식탁과 관련하여 카작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물품이다. 그리고 바닥에 식탁이 차려지는 경우, 바닥에 깔린 식탁보를 밟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식탁보를 밟는 것은 식탁 위를 밟고 서는 것과 같은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름밥(Palau), 만띄(Mantji), 베스바르막 (Besbarmak), 라그만(Lagman), 샤슬륵(Shashluk) 등이 공통으로 나오는 음식이라 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족들 사이에 서로 음식의 유사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식사 대접 방식은 각 민족만의 독자성이 있다. 카작인들은 손님이 왔을 때, 고기를 대접하는 것을 최고의 접대로 여겨 베스바르막과 카즈(Kaz)를 준비한다.
카작인들에게 손님들을 어떤 고기의 어떤 부위로 대접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기접시 꾸미기(Tabak Jasau)’ 라는 말은 고기를 내는 접시를 어떤 부위의 고기로 꾸미느냐 하는 것으로 우리 식의 상차림과 맞먹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타박이라는 단어는 보통 고기 요리를 담는 그릇으로 접시보다 좀 커서, 식탁 가운데에 놓고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누어 먹는 쟁반 같은 것을 말한다. 고기에 따라 카작인들이 어떤 부위를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살펴보면, 양은 머리, 넓적다리, 무릎 뼈 등을 가장 중요한 부위로 간주한다. 말은 목과 목덜미 부위, 카즈(Kaz), 카르타(Karta, 내장종류)를 가장 귀한 부위로 여긴다.
손님이 많은 경우,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자리와 관련하여, 상석 타박(Bas Tabak), 중간 타박(Orta Tabak), 말석 타박(Ayak Tabak)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 타박이 제공된다. 식탁의 상석에는 손님 중에서 주빈이자, 웃어른들이 앉게 되며, 중간 자리에는 상석에 앉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손님들이 앉으며, 말석에는 손님 접대를 도우러 온 이웃이나 친척 여인들이 앉는다. 바스 타박에는 주로 양머리, 넓적다리, 골반, 복사뼈, 갈비, 기름진 꼬리 부위 등이 담기며, 오르타 타박에는 골반 뼈, 무릎 뼈, 넓적다리 부위가 올라오며 말석에는 남은 여러 가지 다른 부위의 고기들이 오르게 된다.
6. 전통놀이
1) 처녀 따라잡기(Kuz Kuu)
[처녀 따라잡기(Kuz Kuu)]
경기를 위해 처녀와 총각들이 선정되어 잘 달리는 말에 올라탄다. 심판관의 신호에 따라 처녀는 남자들보다 10m 정도 앞에서 출발을 준비한다. 다음의 신호에 따라 남자와 여자는 각각 자기 말을 달리게 한다. 청년이 도는 지점까지 처녀를 쫓아가 잡으면, 처녀의 뺨에 입맞춤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그 후 청년이 처녀를 종착 지점까지 이르도록 허용하지 않으면 승리하게 된다. 반대로 처녀가 쫓아가서 청년의 말을 채찍으로 때리면, 그때에는 처녀를 승리자로 간주한다.
2) 말 경주(Beige)
[말 경주(Beige)]
말 경주는 카작 민족의 오래된 전통 중 하나이다. 주로 카작인들은 큰 잔치와 축제, 국경일에 말 경주를 열곤 했다. 경주에는 수백 마리의 말이 참여한다. 카작 역사에서는 유명한 위인들이 죽으면, 그 다음해에 추모제가 열리는데, 거대한 말 경주가 함께 열렸다. 카작 민족은 유쾌한 이벤트를 항상 즐겨왔기에 자주 말 경주 대회를 개최했다. 말 경주는 주로 잔치나 축제 때 벌어지기 때문에, 관련 행사의 규모, 말 소유자들의 경제적 상태, 그리고 말 경주에 참여하는 말의 숫자에 따라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경주가 결정 된다. 카작인들의 경마술은 단순히 육체적인 것만이 아닌, 담력과 기술 그리고 스테미너를 겨루는 것이다. 이러한 경기 중 백미는 알라만 베이게인데, 이것은 장장 80km에 이르는 장거리 말 경주를 말한다.
3) 쿠므스 알루/텡게 알루(Tenge alu)
이 경기는 땅에 놓여 있는 은화나 동전 같은 작은 물건을 말 위에서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안장에서 몸을 떼지 않고 잡아채는 놀이이다. 이 경기는 2,300년 전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가 남부 스텝 지역을 휩쓸고 지나갈 때, 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경기로도 알려져 있다.
4) 전통축제 - 나우르즈(Nauriz)
[나우르즈 축제 모습] [돔브라를 들고 있는 소녀]
‘나우르즈’ 라는 말은 페르시아어에서 온 말로 ‘새로운 날’이라는 뜻이다. 3월은 겨우 내 잠자던 자연이 깨어나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시기로 3월 22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이다. 따뜻한 봄 햇살과 함께 찾아와서 동방 민족들이 함께 즐기는 새해의 축제, 나우르즈는 카작 민족에게 가장 커다란 축제이다.
3월22일을 앞둔 며칠간 빗자루와 쓰레받기 등 청소 도구를 들고 시내 곳곳을 청소 하고, 청소가 끝나면 대규모 축제가 전국 마을과 도시 곳곳에서 시작된다. 모두 화려한 전통의상으로 갈아입고 학교 운동장과 마을 공터와 공설 운동장 등에 유르타가 세워지고 준비한 음식이 식탁을 채우면 축제 분위기는 한창 무르익는다. 전 날 발표 된 대통령의 나우르즈 축사가 소개되고 대학 총장, 교장 선생님 그리고 행사에 참석한 귀빈들의 길고 긴 축사가 이어진다.
카작인들은 나우르즈의 식탁이 풍요로워야 한 해의 번영과 가족의 번창이 약속된다고 생각한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나우르즈 코줴라는 걸쭉한 죽같이 생긴 음식이다. 이 죽은 각각의 의미를 갖는 7개의 재료로 만들어지는데 의미는 대략 이렇다. 물-행복, 육류-행운, 소금-지혜, 버터-건강, 밀가루-부, 쌀 또는 옥수수-자식의 번창과 하늘의 가호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악 몰 볼슨!(Ak mol bolsn!)’, ‘나우르즈를 축하합니다!(Nauriz kutti bolsn!)’, ‘평화가 임하길!(Beibitshilik orunalsn!)’ 하는 기원을 주고받는다. 이 날은 가깝게 지내다가 사소한 다툼으로 관계가 틀어진 사람들이 서로 화합을 이루는 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축제를 함께 즐기기 위해 언덕에 오르기도 하고 말 경주, 씨름, 크즈 쿠우 그리고 다른 민속놀이들을 한다.
7. 인 물
[아바이 이브라힘 쿠난바예프] [구권 지폐에 새겨진 알파라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