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크메니스탄의 국기는 5:3비율의 직사각형이며 이슬람을 상징하는 녹색과 달, 다섯 개의 주를 상징하는 다섯 개의 별, 왼쪽으로 토산품인 카페트가 도안되어있다. 2001년 1월 24일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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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 위치도]
투르크메니스탄은 북위 37도 동경 58도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남쪽으로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서쪽으로 카스피해를 면하고 있다. 위치적으로 중앙아시아에 속한다.
[투르크메니스탄 일반개황]
| 국 호 | 투르크메니스탄 공화국 |
|---|---|
| 면 적 | 488.000km ※ 한반도의 2.4배 |
| 수 도 | 아쉬하바드 |
| 인 구 | 5100.000명 |
| 종족구성 | 투르크멘人 (85%), 우즈벡人 (5%), 러시아人 (4%), 기타 (6%) |
| 언 어 | 투르크메니스탄어, 러시아어 |
| 문맹률 | 이슬람교 89%, 동방정교 9%, 기타 2% |
| 독립일 | 1991년 10월 27일 |
| 정부형태 | 대통령 중심제 |
| 의회형태 | 단원제(50명 임기5년) |
| 대통령 | 구르반굴리 베르디 무하메도프 |
| 주요정당 | 민주당 |
| 기 후 | 아열대성 사막기후 |
| 종 교 | 이슬람, 동방정교 |
| GDP | 92억 달러 |
| 실업률 | 21.6% |
| 통화단위 | 마나트 |
| 환 율 | 6.250TMN (고정환율) |
| 부존자원 | 석유, 천연가스, 유황 |
| 주요경축일 | 1.1 신년, 1.12 기념의 날, 1.30 라마단, 2.19 국기 기념일, 3.8 국제 여성의 날, 3.20-22 나브루즈, 5.8 참전 기념일, 5.9 승전 기념일, 5.18 통일과 부흥의 날, 10.6 추선의 날, 10.27-28 독립 기념일, 12.12 중립의 날 |
[투르크메니스탄 국기]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기는 5:3비율의 직사각형이며 이슬람을 상징하는 녹색과 달, 다섯 개의 주를 상징하는 다섯 개의 별, 왼쪽으로 토산품인 카페트가 도안되어있다. 2001년 1월 24일 제정되었다.

- 검색 포털
- 위키피디아 www.wikipedia.com
- 수출입 은행 www.koreaexim.go.kr
- KOTRA www.kotra.or.kr
- 수출보험공사 www.keic.or.kr
- 투르크메니스탄 정부 공식 사이트 www.turkmenistan.gov.tm
- 엔싸이버 두산백과 www.encyber.com
- 국가정보원 www.nis.go.kr
- CIA - The World Factbook 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

국토의 대부분이 낮은 평야로 되어 있으며 중앙아시아 국가 중 평야의 비율이 가장 높다. 지형은 넓은 투란저지와 고원으로 구분된다. 투란저지는 대부분이 카라쿰 사막지대이며 강한 풍식을 받아 사구가 발달되어 있다. 그 서북부에는 투르크맨바쉬 대지와 우스튜르트 고원이 있으며, 습곡을 받은 케스타지형도 나타난다. 카스피해에 면한 서 북단은 해면 이하의 와지(窪地)이다. 카스피해 연안의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모래 해안선 중에서 남부는 단조로우나 북부는 복잡하여 반도와 만이 발달하고 투르크맨바쉬 사취를 비롯한 많은 사주·사취가 발달되어 있다.
동부고원은 코페트다크산맥이 동서로 횡단한다. 이 산맥은 불안정한 단층산맥으로 서부에서 말리발칸산맥과 볼쇼이발칸산맥으로 나누어진다. 이들 산맥에 의하여 이루어진 이른바 쿠기탕타우 산지(해발고도 3,139m)는 고산지역이다. 지질적으로 지중해지향사에 해당되는 원 고생대 투란 지대와 히말라야·알프스 습곡산계 사이에 놓여 있어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하여 황, 암염, 수은, 석고, 구리, 아연 등의 광물자원이 다량 매장되어 있다. 지리적 특성에 따라 지하자원이 풍부한 동부지방, 코페트다크 산록지대, 남부 오아시스 지대, 아무다리야강 유역, 및 카라쿰 사막 등 5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동부산지는 세계의 지붕 히말리아로부터 흘러나온 아무다리야강이 우즈베키스탄과의 국경선을 이루며 봄과 여름에 수량이 풍부하여 유수는 오아시스의 관개용수로 이용된다. 남부에는 무르가프, 테젠 및 아트레크강이 흐르는데 과거 봄철에만 유량이 많았으나 오늘날은 카라쿰 운하와 저수지 건설에 힘입어 일정한 유량이 유지된다. 세 하천 중에서 아트레크강은 카스피해로 유입되지만 무르가프와 테젠강은 카라쿰 사막에서 소멸되는 무미천(無尾川)이다. 코페트다크 산맥 북 사면으로 흐르는 짧은 하천의 유수는 목축에 이용된다. 서부와 내륙의 자연호수는 대부분 염호(鹽湖)이나, 이아스한호는 담수호로 네비트다크와 토피아탄 등지에 용수를 공급한다.
카라쿰 사막지대는 대부분 사막 토이며 우스티우르트 및 투르크맨바쉬 대지는 부식 질이 1%도 안 되는 회갈색 토이다. 연회색 토는 중간평야 지에 분포하며, 회색토는 낮은 산지, 갈색산지 토는 코페트다크산맥에 분포한다. 회색삼림 토와 충적삼림 토는 하천 연안에 분포하며 전국의 2% 정도가 관개에 의하여 이루어진 토양이다. 전체 국토 면적 488,100㎢ 중에서 경작가능지 4.51%, 농경지 0.14%, 사막 및 기타 95.35% (2005년)이다. 아무다리아강의 과도한 이용과 살충제의 남용으로 토양과 하천 오염이 심하며 카스피해 오염의 원인이 된다.
투르크메니스탄은 대륙성 건조기후가 뚜렷하며 기온의 연교차·일교차가 크다. 습도가 낮고 증발이 높으며 강수량이 적다. 여름은 건조하며, 겨울은 대체적으로 온화하고 때때로 약간의 눈이 내린다. 짧은 봄은 습윤하며 가을은 건조하다. 1월 평균기온은 북동부에서 -5℃, 남부에서 4℃ 정도이며, 최저기온은 북동부에서 -32℃, 남부에서 코페트다크산맥이 -29℃, 카스피해 남부 연안에서 -10.3℃이다. 7월 평균기온은 북동부 28℃, 남부 32℃이다. 여름에 카라쿰사막의 최고기온은 50℃까지 상승한다. 강수량은 주로 봄과 겨울철에 많으며, 아무다리야강 연안이 80mm, 카라쿰사막이 150mm 정도이며, 낮은 구릉지에서 200∼300mm, 산지에서 400mm 이상이다. 바람은 북동풍, 북풍, 북서풍이 탁월하다. 감실(gamsil)이라 불리는 건조한 열풍이 여름철 코페트다크산맥에서 불며, 환절기에 먼지폭풍이 자주 발생한다. 식물생육일수는 200∼270일 정도이다.

∙ 인류 최초의 농경유적 가운데 하나인 아나우 유적(아쉬하바드 교외).
∙ 기원전 2세기무렵의 파르티아왕국(중국명 안식국)의 발상지 니사 유적. 현재의 아슈가바드가 위치한 곳에 작은 취락이 있었다.
∙ 사산 제국.
∙ 6세기, 투르크계 유목민.
∙ 7세기~ 우마이야 왕조·압바스 왕조
∙ 9세기 사만 왕조.
∙ 셀주크 왕조, 가즈니 왕조,호라즘 왕국.
∙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공. 일 한국. 티무르 왕조
∙ 16세기~ 히바 한국, 부하라 한국, 사파비 왕조 등이 침략한다.
∙ 1869년 러시아군, 카스피 해 동해안에 상륙.
∙ 1881년 제정 러시아군이 아슈가바트를 점령한다.(니콜라이 1세)
∙ 1882년 제정 러시아에 의해 카프카스 총독 관할구역내의 자카스피 주로 옮겨진다.
∙ 1880년~ 자카스피 철도 개통. 러시아를 위한 면화 재배의 확대.
∙ 1910년경~ 러시아 수공업의 역할지가 된다.(지금도 섬유 공업이나 면화 재배는 주요한 산업이 되고 있다)
∙ 1916년~ 1918년 반 러시아 대 폭동
∙ 1924년 투르크멘 SSR로 소비에트 연방 구성국의 하나가 된다. 농업 집단화에 반발한 유목민의 저항이 36년까지 계속 되었다.
∙ 1990년 8월 22일에 주권 선언을 하면서, 10월 27일에는 직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으로 단독 후보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가 98.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 1991년 10월 26일의 국민투표로 소련으로의 독립에서 94.1%가 찬성했고 다음해인 10월 27일 에 독립했다.
∙ 1992년 5월 18일 최고 회의가 대통령 권한을 강화한 신헌법을 채택.
∙ 1992년 5월 러시아, CIS제국과의 집단안전보장조약서명을 거부.
∙ 1992년 6월 대통령 선거에서 니야조프 대통령이 99.5%의 지지로 재선.
∙ 1995년 12월 국제연합총회에 대해 영세중립국으로 승인된다(러시아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목적이라고 여겨진다). 니야조프 대통령은 개인숭배에 의한 독재체제로, 2002년 8월에는 종신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국내에서 니야조프 대통령은 투르크멘바시(투르크멘인의 우두머리)를 성으로 하고 있다.
∙ 2002년 11월 25일 아슈하바트에서 대통령 행렬이 총격을 받았다. 경호원 1명이 중상.
∙ 2006년 12월 21일 니야조프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 2007년 2월 14일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가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투르크맨바쉬 인근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될 정도로 거주 역사가 길며 신석기 시대에 해당되는 8,000년 전에는 농경의 흔적이 코페트다크산맥 부근에서 발굴되었다. 코페트다크 북부와 테젠강 하류의 아나우(Anau) 청동기층에서 농경과 가축사육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5,000년 전에 관개수로 건설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4,000년 전에는 도기와 금속세공이 행하여져 다량의 유물이 전해진다. BC 6세기까지 카스피해 연안과 북부의 초원지대에 여러 부족이 거주하였지만 BC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당하고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5세기 이후 투르크족이 중앙아시아의 서부로 이주하면서 이 지역이 서서히 페르시아인의 거주지에서 투르크계 부족의 거주지로 변모하였다. 9세기 말 이후 투르크계의 한 부족 집단인 오우즈족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이슬람교를 수용하게 되었고, 이 때부터 투르크멘이라는 명칭이 나타나게 되었다.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까지 화라즘왕(Khwarazm-Shahs)의 통치를 받았고, 1219∼1221년 몽골의 칭기즈칸에 의해 정복당하였다.
15∼17세기에 투르크멘족은 다시 종족별·영역별로 분열되어 남부 부족은 페르시아의 지배 하에, 북부지역은 히바와 부하라한국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18세기 초에 페르시아는 히바와 부하라 영토를 병합하였으나, 부하라는 투르크멘족의 강한 저항으로 18세기 후반에 탈환, 재건되고 이어 마리 지역도 편입시켰다. 1860년 제정 러시아군이 카스피해로부터 침입하여 러시아 진출의 거점으로 크라스노봇스크시를 건설하자 투르크메니스탄인은 1869∼1880년 간 러시아에 대항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1884년 러시아에 굴복하였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이 지역에 세력을 뻗쳤으나, 주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자카스피 반 볼셰비키 지역정부가 형성되어 투르크멘 의회가 수립되었다
1918년 4월 러시아 붉은 군대의 침공에 의해 투르크멘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되었으나, 7월 영국군의 지지를 받고 있던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볼셰비키 정부가 전복되고, 독립정부가 아스하바트에 영국군의 보호 하에 수립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영국군이 철수하자 1920년 붉은 군대에 의해 다시 전복되고, 1924년 10월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28년 반종교운동이 시작되었으며, 1930년대 초에는 정치적 자치운동이 지식층에서 일어났지만 구 소련에 의하여 많은 지식인이 투옥되거나 처형당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와 경제, 환경 및 문화문제가 당면한 해결 과제로 부상하였다. 1990년 8월 주권을 선언하고 1991년 10월 독립을 선언하였다. 독립 이후 의회나 정부도 여전히 공산 세력을 차지하는 등 보수적인 체제가 뿌리깊게 남아 있다.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Saparmurat Niyazov)가 구소 연방 붕괴 전인 1990년 10월에 98.8%의 득표율로 대통령에게 선출된 이후 종신 대통령이 되었지만 2006년 그의 사후 구르방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Gurbanguly Berdimuhamedov)가 대통령으로 선거에서 승리하여 선출되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한국과 1992년 2월 대사 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주 러시아 대사가 직을 겸임하고 있다. 2007년 6월 8일 주 투르크메니스탄 상주대사관 (대사대리 상주)이 개설되고 1993년 이후 경제협력 등 양국간 협력이 증진되고 있다. 2006년 10월 한-중앙아 문화교류협회 공연단이 독립 15주년 행사에 참가하여 민간 교류가 활성화되었으며 2007년 문화, 경제사절단이 상호 방문하였다. 2006년 대한 수출은 179만 달러, 대한 수입은 597만 달러이다. 수출품은 시멘트·자동차·합성 섬유사가 주종을 이룬다. 1995년~1997년간 7만 달러 정도의 우리나라의 물자지원, 1997년~2006년간 총14명의 연수생 초청이 이루어졌다. 재(在)투르크메니스탄 거주 고려인이 약 1,000명으로 추산되고 있어 중앙아시아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고려인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2006년 기준 투르크메니스탄의 학교 교육은 80% 이상이 투르크멘어로 이루어지고 있고, 나머지 16%는 러시아어, 기타 4%는 우즈벡어, 카자흐어로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은 무상이며, 교육체계는 구 소련의 체계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학교는 자질 있는 교사의 부족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교사들은 과중한 업무와 근무시간, 교재의 부족, 저임금, 급여 미지급 등으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해 있다. 전체 학교의 13% 정도가 구조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제는 초등교육 4년, 중등교육 7년이며 초등학교는 7세에 입학한다. 15세 이상 인구의 문맹률은 1.2% (1999년 추산)이다.
투르크멘어를 주 언어로, 영어를 제2의 언어로 선정한 이후 학생들은 두 언어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며, 대부분의 성인들은 이 두 언어 사용 권장으로 인하여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91년 4월 실업보상제도를 도입하고 고용기금을 조성하였으며, 1993년 1월부터 전 주민에 무료로 가스·전기·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인터넷 호스트 수는 97개 (2007년), 사용자수는 64,800명(2006년)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문학적 전통은 자랑할만하다. 문학의 아버지는 시인이자 철학가인 프래기 막툼쿨리(1770~1840)이며 그의 언행은 코란보다 더 존경을 받았다. 막툼쿨리는 작품에서 언어의 단순함을 강조하고 세련되지 않은 지혜의 고전적 양식을 일축하여 투르크메니스탄 문학이 단순한 모방자들의 개론이 된 것에 영향을 미쳤다. 막툼쿨리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한 사람 중에서 19세기 작가인 헤미네와 인기 있는 서정시인인 몰라페네스가 있다.
유목민인 투르크인의 직물 기술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특히 바닥깔개뿐만 아니라 단열효과와 함께 장식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융단은 붉은색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