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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네타냐후 때보다 더 예측불허에 빠진 이스라엘 (오은경 교수 칼럼)
eurasiaturk 조회수:923
2021-06-25 15:52:51

‘극우’ 베네트 총리가 이끄는 ‘아슬아슬한’ 무지개 연정
새로운 시대의 개막인가, 혼란의 서막인가

 

12년 장기집권 했던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가 전격 실권하면서 중동에 어떤 변화가 불어닥칠지 세계의 이목이 예루살렘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 6월2일, ‘반(反)네타냐후’를 표방한 8개 야권 정당이 연정 구성을 전격적으로 합의하면서 불씨를 지핀 정권교체는 결국 6월13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연립정부 구성 신임투표가 통과되며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됐다. 그간 이스라엘 보수진영에서 그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네타냐후 총리지만, 이번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 인간적인 매력과 실력으로 이스라엘 보수진영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네타냐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6월6일 당시 이스라엘 총리베냐민 네타냐후가 코로나19 의료진을기리기 위한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EPA 연합
 

네타냐후 장기집권에 따른 국민 피로감 커져

실력과 역량, 정치적 신념, 여기에 개인적 ‘스토리’까지 입혀져 보수 대표주자로 장기집권이라는 수혜를 누려왔던 그다. 무엇보다 그는 명문가 출신으로 미국 MIT를 졸업한 수재다. 수준 높은 영어 실력과 국제적 리더십, 그리고 미국 내 주요 인사들과 구축한 네트워크도 막강했다. 여기에 4차 중동전쟁 때 장교로 복무하면서 얻은 최정예 대테러 특수부대 ‘사례예트 마트칼’ 체험과 엔테베 작전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친형과 같은 가족사가 더해졌다. 그의 이런 스토리는 확고한 정치적 신념과 열정이라는 꽃을 피웠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 노선으로 이어졌다.

실제적으로 국제사회가 지지했던 ‘오슬로 협정’(199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자 간 최초의 평화협정)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네타냐후는 시종일관 강경한 입장으로 대응했고, 이는 이후 줄곧 팔레스타인과의 최종 지위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지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서안지구 정착촌 철수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에 맞서며 거부하기도 했다. 심지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제한적으로 자치권을 행사하는 요르단강 서안지역을 합병하겠다고 발표해 아랍권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극심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런 강경 행보로 그는 이스라엘 보수진영의 대표적 인물로 자리매김했고, 이스라엘 국내 정치가 보수화되는 분위기에 편승해 급부상했다.



이스라엘인들이 보수화되었던 것은 네타냐후의 집권 후 국제정치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변화되었던 데에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이집트·시리아·예멘·리비아 등 아랍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이 잇달아 불안정한 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이스라엘인들은 위기의식과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안보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었다. 이렇듯 중동의 지역적 안보 위기는 장기간 지속되었고, 네타냐후에게는 보수화로 다져지는 토양 속에 장기집권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막강한 권력과 지지 기반을 획득하며 장기집권을 구축했던 네타냐후가 허망하게 실권으로 내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결정적인 원인은 네타냐후가 장기집권을 하면서 젖어들었던 도덕적 해이와 안일함에서 초래된 부정부패였다. 그는 뇌물수수·배임·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지난해 5월 예루살렘 법정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으로 형사재판을 받는 현직 총리가 됐다. 면책특권을 요구하며 시간을 벌면서 이스라엘 보수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긴급한 코로나19 백신 확보로 민심을 수습했고, 지난 5월 발생했던 팔레스타인과의 교전에서는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며 ‘전쟁범죄’로 몰릴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최첨단 무기 ‘아이언돔’으로 무차별 공격했다.



이렇게 무리수를 써가며 강경대응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보수 세력을 결집하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네타냐후 장기집권으로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보수진영은 균열했고, 반(反)네타냐후 세력이 형성됐다. ‘좌파-우파’ 혹은 ‘보수-진보’의 이분법적 구도가 아닌 ‘네타냐후-반네타냐후’ 구도로 재편성됐던 것이다. 극우 세력부터 아랍·이슬람계 정당까지 포괄하는 현 연립정부는 정치이념이나 색깔을 총망라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연합 구성이다.


‘야미나’의 당수인 나프탈리 베네트가6월6일 네타냐후에게 정권 포기를압박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EPA 연합
 

극과 극 성향의 연정, 조기에 붕괴될 수도 

다양한 색깔의 이른바 ‘무지개’ 연정이다 보니 반네타냐후 연립정부 출범의 주역인 신임 총리 나프탈리 베네트가 이끄는 새 내각에 대한 전망도 상당히 불투명하다. 베네트 총리는 정부 구성 때 초기 2년간 자신이 총리직을 맡고 중도파 인사인 라피드는 외무장관을 맡다가, 이후 2년은 라피드에게 총리직을 넘기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베네트는 화려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성공한 극우 정치가다. 유대교 성직자 집안으로 이스라엘 태생이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미국 맨해튼으로 이주해 사기 방지 IT기업을 설립했다. 젊은 기업가로 성공해 백만장자 대열에 오르자 이스라엘로 돌아와 정계에 입문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수석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정치 감각을 익혔다. 2019년 극우 정당 ‘야미나’를 창당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극도의 극우주의자다.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도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극명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주변국의 우려는 베네트 총리가 네타냐후보다 오히려 더 보수적이며 극우 성향 정치인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이번 연정을 위해 그가 좌파와 아랍계 정당의 손까지 잡았다는 것 때문에 보수 세력의 반발도 적지 않다. 등을 돌리는 사람들도 속출하고 있다. 좌파와 아랍계 정당도 연립정부 구성에는 동의했지만, 의견이 불일치할 경우 강경한 극우 지도자인 베네트와 조화를 이루어낼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베네트가 총리직을 맡은 초기 2년간 그가 강경한 정치적 신념을 관철시킬 수 있을지 여부보다는 연립정부의 분열에 더욱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게 됐다. 어쩌면 중도보수나 좌파 및 아랍계 정당과의 거듭되는 마찰과 충돌로 인해, 베네트 쪽에서 오히려 돌발적으로 연정을 이탈하거나 해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땅한 중도파 정치인을 찾기 어려운 이스라엘 정치권에서 라피드가 2년 동안 외무장관을 수행하며 중도파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는 있을 듯 보이지만, 그렇다고 라피드가 총리직을 순조롭게 물려받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향후 2년 이스라엘 정국의 향방은 그 누구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권한 네타냐후의 영향력도 여전히 이스라엘 내부 정치의 변수다. 장기집권으로 다져진 그의 정치 기반이 쉽게 허물어질 것인지는 더 지켜보아야 한다. 야권의 거물로 그는 연정의 붕괴를 노리며 조직을 분열시킬 묘안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네타냐후를 지지하는 25%의 보수층도 그의 뒤를 이을 만한 막강한 후계자가 눈에 띄지 않을 경우, 결국 네타냐후의 재기를 지지하려 들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성공한 이스라엘이지만, 그 시대가 혼란의 늪일지, 평화 국면을 마련할 새 시대의 창조일지, 국제사회의 관심이 이스라엘 신정부의 행보에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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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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