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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이란 혁명수비대의 절박함이 '인질극' 불렀다 (오은경 교수 칼럼)
eurasiaturk 조회수:875
2021-01-17 21:38:01

강경 일변도로 치닫는 이란의 사면초가 속사정…한국 선박 나포는 등 돌리는 민심 무마용?


이란 혁명수비대가 1월4일 UAE 동부 푸자이라항으로 항해하던 우리 선박을 나포했다. 석유화학제품 운반선이었는데, 해양을 오염시켰다는 것이 나포 이유였다. 한국은 협상단과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사태 해결을 위해 이란을 방문했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이 사안은 완전히 기술적인 것이므로 해당 선박은 해양 오염에 대해 조사를 받아야 하며, 법원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을 긋고 있다. 심지어 이란은 나포 당일부터 자신들이 한국 선박을 나포한 경위나 과정을 적극 ‘홍보’라도 하듯이 국제사회에 떠벌리면서 한국이 ‘망신’을 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에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시중은행에는 미국 제재로 이란산 원유 수출대금이 동결돼 있다. 이란의 불만은 여기에서 폭발했다. 이란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서라도 원유대금을 받아낼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압박하자, 양국은 간신히 동결 자금을 이란의 코로나19 백신 구매에 사용하는 방안으로 협의 방향을 틀었다. 한국 내 동결 자산을 백신 공동 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 ‘코백스 퍼실리티’ 참여 비용으로 쓰는 방안으로, 한국 측이 한국은행에 동결돼 있는 원유대금을 코백스 퍼실리티에 대신 입금하는 방식이다. 의약품 등 인도적 물품을 거래하는 경우 제재 예외가 허용될 수 있다는 조항에 힘입어 한국은 미국 재무부의 승인도 받아놓은 상태였다.


이란 혁명수비대 병사들의 열병식 행진 모습 ⓒEPA연합


동결 자금은 사실상 혁명수비대 자금


이렇게 해결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던 시점에 이란은 갑자기 협상을 걷어차 버렸다. 심지어 ‘선박 나포’라는 돌발적 행동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사고 있다. 이란이 이토록 무리한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이란의 내부 사정이 ‘사면초가’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돌아선 민심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란 정권의 절박함과 불안이 이번 사건에 숨어 있는 것이다.

막강한 신정 체제를 이루고 있는 이란에서 최고지도자는 종교와 정치를 아우르는 최고 권력자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수호하는 이란 권력의 핵심은 혁명수비대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통령보다 우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명수비대는 이란에서 대통령도 쩔쩔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기 때문이다. 1979년 이란 혁명을 계기로 창설돼 이슬람 신정 체제를 수호하는 정권 보위 친위대 역할을 맡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란 주요 산업의 상당 부분을 독점하고 있다. 건설·석유화학·가스 등 주요 산업에 깊숙이 관여해 부를 축적해 왔다. 미국의 제재 때문에 해외에 동결된 자금은 대부분 혁명수비대 자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한국케미호’를 나포한 주범이 이란 정규군이 아닌 혁명수비대라는 점이다. 한국에 동결된 자금을 확실히 받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절박했던 것은 혁명수비대다. 코로나19 확진자 사망률 세계 2위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이란에서 혁명수비대는 자금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했다. 한국 정부와 협의를 진행 중이기는 했지만, 이란 입장에서 이 과정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한국 원유대금을 원화에서 달러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다시 자금을 동결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을 사전에 확실히 방지할 수 있는 강력한 협상 카드가 필요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핵무기 재협상을 위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도 이란으로선 시급한 사안이었다. 이란은 한국케미호를 나포하는 시점에 맞추어 우라늄 농축을 20%로 올리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바이든을 압박했다.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와는 사뭇 다른 중동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기대는 하고 있지만, 국내외 정세가 이란에 호락호락하게 돌아가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와 같은 핵협상이 쉽게 재개될 수 있을지도 사실상 의문이다.

최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과학자 모센 파흐리자데를 원격 암살하면서 새로 들어설 바이든 정부에 부담을 주고 있다. 더불어 트럼프 정부가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나 UAE를 비롯한 이슬람 수니파 국가들과 그 어느 때보다도 돈독한 연대와 동맹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가 이를 뒤집고 수니파 국가들과 갈등 관계에 있는 이란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모든 상황이 이란에는 악재다. 이란 혁명수비대 입장에서는 지속되는 미국의 경제 제재를 풀지 못하면 경제난과 코로나19 여파로 돌아선 민심과 사회 불안을 더 이상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역부족인 상황이다.

특히 지난 1월3일은 미국의 공격으로 사망한 이란의 최고 군사령관 솔레이마니 사망 1주기였다. 솔레이마니 사망으로 리더십을 잃은 혁명수비대의 위상은 위축됐다. 설상가상으로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도 고령으로 후계자 논의가 거론되면서 혁명수비대는 내부적으로도 흔들리고 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왼쪽)이 1월1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EPA연합


이란 정부-최고지도자·혁명수비대 ‘갈등 관계’

이런 국내외 정세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혁명수비대에 올해 6월 대통령선거 또한 공포를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2017년 대선 압승으로 재선에 성공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는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중도 성향의 개혁파 로하니 대통령보다는 좀 더 보수적인 후보를 지원하던 하메네이와 혁명수비대에 로하니 대통령은 견제와 통제 대상이었다. 이란 민심은 경제 재건 실패와 미국 경제 제재에 직면한 로하니 대통령도 지지 대상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독재와 부패를 일삼으며 민생을 돌보지 않고 국외 시아파 세력 확장에만 관심이 많은 혁명수비대 권력은 더욱 달갑지 않다.

이렇듯 불안하고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존재 자체의 위기에 직면한 혁명수비대가 미국에 ‘보복 제스처’를 취하면서 자신들의 건재함을 보여야 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것은, 혁명수비대의 절박함에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인질극’의 표적이 하필 한국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란 측이 한국 정부에 대놓고 여러 번 경고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한국 정부는 이란 측 메시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미 나포 첩보를 입수한 바 있음에도 아무런 보안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더욱이 호르무즈해협 일대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파병된 청해부대는 첩보 이후에도 다국적 훈련계획에만 몰두하고 있었다고 한다.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힌 이란의 내부 정치에 대응할 한국의 협상 카드는 무엇일까. 과거 여러 차례 영국이나 인도 등 다른 나라 선박을 나포했던 이란의 전적을 살펴보면, 대체로 문제 해결까지 상당 기간이 소요됐다. ‘미국의 동맹국’ 한국이 아닌 한국과 이란의 독자적 관계에서의 협상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이 ‘인질’이 된 현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여전히 미국에 있는 것일까.   

#오은경#이란#혁명수비대#한국_선박_나포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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