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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 벨트 국가 알아보기

  • eurasiaturk 2016-07-09 조회수:868
    Uzbekistan 

     

     

    정치/경제

     

     
    정치

     

    1. 정치약사

    [우즈베키스탄 정치약사]

    데이터 테이블
    1924 우즈벡 사회주의 공화국 성립
    1929 타직 자치공화국 분리
    1936 카라칼팍 자치공화국 통합
    1990. 3. 24 대통령제 도입 및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선출
    1990. 6 주권 선포
    1991. 8. 31 구 소연방으로부터 독립 선언 (독립 기념일 9.1)
    1991.12.29 최초의 선거를 통해 ‘카리모프’ 대통령 재선
    1992. 3. 2 UN 가입
    1992.12.8 최고회의, 민주공화국 헌법 채택
    1994.12.24 인민 민주당이 총선에서 207석(82.8%) 확보
    1995. 3. 26 국민투표 99.6% 찬성으로 대통령 임기를 2000년까지 연장
    1999.12.5 총선 실시
    2000. 1. 9 ‘카리모프’대통령이 91.9%의 압도적 지지로 재집권
    2000. 2.12 ‘술타노프’ 총리 하의 신 내각 구성
    2002. 1.27 대통령 임기 연장(5->7년) 및 국회 양원제 도입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 (90%이상 지지)
    2004.12 총선 실시
    2005. 1 상·하원 구성 (상원100석, 하원120석)
    2007.12 ‘카리모프’ 대통령 3선

     

    2. 구조: 대통령 중심의 권력독점구조

    • 카리모프 대통령, 구 소련 붕괴 후 86% 득표율로 1991년 12월 대통령 당선 (5년 임기)

    • 1992년 12월 8일, 헌법 제정

    • 1995년 국민투표에 의해 2000년까지 임기 연장, 2000년 1월 재선

    • 2002년 국민투표에 의해 5년 임기를 7년으로 연장

    • 2007년 12월 삼선에 성공

     
    1) 행정부

    - 총리(현 미르지야예프), 부총리 10명 (제1부총리 포함), 26개 부처장관, 24개 국가위원 의장, 8개 기타 국가기관 대표, 카라칼팍 자치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으로 구성

    - 대통령의 지명과 의회의 승인을 거침

    - 총리와 내각은 대통령 보조, 중요한 결정은 대통령 실에서 이루어짐

     
    2) 의회 : 올리 마즐리스 (Oliy Majlis)

    - 국가의 최고의사결정기구, 친 정부성향의 의원으로 구성

    - 5년 마다 선거 실시

    •  2004년 12월에 실시된 의원선거에서 의회는 단원제에서 양원제로 분리,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120명의 하원과 100명의 상원으로 구성
    •  상원은 12개 지역구, 카라칼팍 자치공화국, 타슈켄트 시에서 84명 선출하고 카리모프 대통령이 나머지 16명을 임명
    •  2004년 하원선거에서 친 정부 성향의 자유민주당이 34%의 득표율을 차지하여 다수의 의석을 차지
     
    3) 사법부

    - 헌법재판소,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으로 구성

    - 헌법재판소, 대법원 및 고등법원의 판사들은 대통령 추천 후 의회에서 임명되나 지방법원 판사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

     
    4) 검찰

    - 독립적인 조직, 법 집행의 감독에 주력

    - 검찰청장은 대통령이 지명, 의회의 비준을 받으며 기타 지방법원 검사는 검찰이 임명

    - 임기는 5년, 정당 및 정치단체에 가입할 수 없음

     
    5) 국가안보국 (SNB)

    - 정부조직 중 가장 막강한 권력을 지니며, KGB를 승계한 국가안보기관으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되어있음

    - 현재는 이슬람지도자들의 세력 확장을 막고 외교관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음

     

    ※ 우즈베키스탄의 국가원수 - 이슬람 압두가니예비치 카리모프 (Islam Abduganievich Karimov)

    • 1938년 사마르칸드 시에서 출생

    • 중앙아시아 공과대학에서 기술공학 전공, 타슈켄트 국민 경제 대학에서 경제학 전공, 경제학 석사학위 취득

    • 1960년에 '타쉬셀 마슈' 공장에서 기술자로, 1961-66년에 '타슈켄트 비행기 조립공단'에서 주임 설계 기술자로 근무, 1966-83년 사이에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국가계획위원회 과학기술도입 부장으로부터 제1부위원장까지 승진, 우즈베키스탄 재무부장관(1983-86년), 부총리(1986년) 및 국가계획위원회 의장(1986년) 등에 재임

    • 1986년 12월부터 1989년 6월까지 카쉬카다르야주 제1서기장을 역임하였으며, 1986년 6월 우즈벡 공산당 제1서기장을 역임, 독립 이후 현재까지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 중

     

    1. 카리모프 독제체제 유지

     

    - 구 소련 붕괴 이전 권력을 장악한 카리모프(I. Karimov)는 정치 및 경제자유화를 강력히 거부하며, 야당 등 반대파 존립근거 박탈, 언론, 방송 장악, 외국 NGO단체의 추방 등을 통해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독재체제를 구축함

    - 특히 1995년 대통령 선거를 취소한 국민투표, 2000년 대선, 2002년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는 국민투표, 2004년 12월 양원제를 도입하는 국민투표 등을 비롯하여 1994년, 1999년, 2004년 총선 등 각종 선거는 국제사회로부터 심각한 부정선거라는 비난에 직면해 왔음.

    - 2005년 5월에 동부지역의 안디잔에서 지역유지에 대한 체포로 촉발된 평화적 시위가 교도소 점거 및 반정부 인사 석방 등 반정부시위로 확대되자, 2003년부터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에서 연이어 발생한 시민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된 데 긴장하고 있던 카리모프 대통령이 직접 보안 군을 지휘하며 강경 무력 진압에 나서 유혈사태로 확대 됨

    - 유혈사태는 정부의 강경 무력진압 및 철저한 언론통제로 전국적인 시위로 확대 되지는 못했으며, 카리모프 정권의 강력한 통제와 결집력을 갖춘 야당의 부재로 시민혁명 발생 가능성은 낮은 상태이나 EU 등 서방측과는 인권문제로 인한 갈등의 골이 깊어짐

     

    2. 카리모프 체제의 취약성 상존

     

    - 카리모프 정권의 장기집권으로 인한 실정 및 경제침체로 인한 생활고가 안디잔 사태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비록 카리모프 정권의 강력한 언론통제와 반정부 세력의 결집력 부족으로 전국적인 소요 가능성이 높지 않으나, 이슬람 과격세력이 일반국민들로부터 지지기반을 넓혀갈 경우에는 사회불안이 가중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음

    - 현재 카리모프가 모든 권한을 강력하게 장악하고 있으나, 집권세력 내부에는 사마르칸드 파와 타슈켄트 파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세력다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되는 등 카리모프 체제는 안팎으로 취약성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임

    - 서방과는 달리 카리모프 체제의 인권상황을 문제 삼지 않고 있는 러시아, 중국도 극단적인 상황에서 카리모프 정권의 보호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음

     

    ※ 안디잔 사태

    안디잔 사태 모습 안디잔 사태 모습

    안디잔 사태 모습

    2005년 5월 12일부터 우즈베키스탄 안디잔과 카라수 지역에서 대중 시위가 발생했다. 직접적 계기는 이렇다. 안디잔에서 영농교육을 실시하고 소규모 작업장을 건설해 자립기반을 만들어주는 등 빈민구제활동을 벌이던 이슬람 기업가 23명이 당국에 체포됐다. 혐의는 ‘아크라미아’란 이슬람 급진단체를 조직해 헌법을 파괴하려 했다는 명목이었다. 그러자, 지역 주민들 수천 명이 법원 앞에서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평화시위를 벌인 후, 이틀 뒤인 12일 밤, 시위대들 중 무장한 일부가 교도소를 급습해 23명을 포함한 수감된 죄수 2천 여명을 모두 풀어주었다. 그러자 그 다음 날인 13일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카리모프는 병사들에게 부상자까지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려, 평화적인 거리시위에 참여한 평범한 시민들을 향해 군인들이 무차별 발포를 하였다. 이 사건으로 약 1천 명의 주민들과 비무장 시위대가 학살 되었고, 다음날 대중 투쟁은 이웃한 페르가나 계곡의 카라수로 확대되었다.

     

    ※ 안디잔 유혈사태, 그 이후

    이 사건이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 이전까지의 우즈베키스탄은 ‘반 러•친미정책’을 고수하며 친 서방 노선을 견지해오고 있었지만 (예로 미국에게 공군기지 제공과 미군의 주둔) 유혈사태 발생 후, 특히 대규모 인명이 살해되자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우즈베키스탄 내 인권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됨에 따라 우즈벡 정부는 국제 사회 내에서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 때 우즈베키스탄을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고 역경을 헤쳐나갈 길을 열어 준 나라가 바로 중국이었다. 물론 중국에게는 에너지 자원과, 중앙아시아에서 세력 확대라는 이중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었다. 그 다음,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카리모프의 유혈 사태 진압을 두고 이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세력에 대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면서, 우즈베키스탄이 그 이전과는 달리 반 러에서 친 러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에서의 반 러 세력 연합인 GUUAM에서도 탈퇴하고, 러시아나 중국 주도의 국제 기구 즉, 상하이 협력기구, 유라시아 경제공동체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자국에서 미군의 철수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결국 미군은 우즈베키스탄을 떠나게 되었고, 러시아는 경제 개혁 전문가 100여명을 우즈베키스탄에 파견, 우즈베키스탄의 개방•개혁 정책을 측면에서 지원하게 되었으며, 중국도 우즈베키스탄의 에너지 자원 개발 영역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외 교

     

    1. 대외정책 기조

    - 구 소연방 분리 독립 후 러시아•CIS국가들과 경제분야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외교, 군사부문에서는 독자노선을 견지

    - 독립 초기에는 친 서방, 탈 러 정책 기-에 러•미•중 등 3국과는 국익에 따라 선별적 협력 등 실리외교 추구

    - 그러나 안디잔 사태(05.5) 이후 카리모프 정권에 대한 미서방권의 압력이 지속 가중되면서 최근 반미•서방 노선으로 급선회하고 친 러 노선을 가속화

    : 05.11월 우즈벡 주둔 미군기지 철수 및 러-‘우’간 군사동맹조약 체결

     

    2. 지역별 외교정책

     
    1) 러시아와의 관계

    - 러•우즈벡 양국은 91년 분리 독립 후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러시아와 우즈벡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려는 카리모프 정권의 대립으로 인해 90년대에 소원한 관계 지속
    *99년 ‘탈 러, 친 서방’ 정책을 지향하는 GUUAM 그룹 가입

    - 99.2 CIS 집단안보조약 탈퇴, 99.4 러시아군의 타직 주둔 등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영향력 확대 비판

    - 양국관계는 푸틴 대통령이 00.5 첫 해외 방문국가로 우즈벡을 선택하는 등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임으로써 점진적으로 개선

    - 03.11 그루지야 혁명 이후 점차 가까워지면서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04.5) 및 안디잔 사태(05.5)를 계기로 양국관계가 더욱 긴밀
    *러시아는 안디잔 사태 이후 우즈벡 정부의 대응조치를 일관되게 지지하고 EU의 對우즈벡 제재 조치를 강력히 비난

    - 05.9 양국 역사상 최초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05.11 러시아군의 우즈벡 주둔 권한을 부여하는 상호동맹조약 체결
    *06.1 우즈벡은 친 러 성향의 EurAsEC(유라시아경제공동체) 6번째 회원국으로 가입 및 06년 반 러 성향의 GUUAM 그룹 탈퇴 (99년 가
    입)

     
    2) 미국과의 관계

    - 제 1차 미•우즈벡 공동 위를 통해(98.2) 경제협력 확대 기틀을 마련했으며, 9.11사태를 계기로 하나바드 공항을 對테러 연합군에 임대

    - 02.3 카리모프 대통령은 자국의 對테러전 지원성과를 토대로 미국을 방문, 미국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

    - 02.12 러시아군의 키르기스 주둔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 등 반 러 입장을 견지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긴밀화 모색

    - 미국의 對이라크 무력 제재에 대한 지지 표명(03.3) 등 미국의 대외정책에 적극 협력

    - 한편, 우즈벡 정부는 미국의 경제원조 감소 등에 불만을 표출하고 미국은 민주화와 경제개혁을 요구하면서, 양국관계가 점차 악화

    - 특히 미국은 안디잔 사태 시 우즈벡 정부의 조치를 강력 비난하면서 우즈벡 지도자들의 미국 내 자산 동결 및 미국 입국사증 발급금지, 對우즈벡 무기수출 금지 등 법안을 제정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악화, 05.11월 미군을 철수시킴

     
    3) 중국과의 관계

    - 중•우즈벡 양국은 상하이 협력기구(SCO)를 통해 지속적인 협력 관계유지

    - 04.6 후진타오 총리는 SCO 회원국과의 협력관계 증진을 위해 투자하는 10억불 중 상당액을 우즈벡에 할당할 계획임을 밝히는 등 경제 에너지 협력 중심의 양국간 관계 강화 추진

    - 한편, 우즈벡 정부는 외형적으로 정치•군사•경제적 측면에서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가면서 내부적으로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경제대국 중국과의 급속한 경협 강화로 경제 예속화 가능성을 우려하여 한•러•일 CIS국가와의 경협을 적극 모색하는 등 對중국 견제입장 견지

     
    4)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 인접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는 정치•경제적 자립기반 강화 및 이슬람 극단주의 확산•마약밀매 방지 등을 위해 상호긴밀 협조

    - 독립 직 후 탈 러 외교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최근 민주화와 인권문제를 둘러싼 서방과의 갈등으로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과 함께 친 러 성향의 외교노선 추구

    - 주변국과의 국경•민족 갈등문제 해결에 의한 정세안정 도모

         ∙키르기스스탄(00년)•카자흐스탄(02년)과 국경병력 감축에 합의하는 등 역내 긴장완화 노력 지속

         ∙카자흐스탄과는 카리모프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방문(01.11) 및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방문(06.3)을 계기로 양국간 장기과제였던 국경선 확정 문제를 대부분 해결

    - 반면,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 주도권 경쟁, 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과 민족 갈등 문제가 내재해 있고, 특히 투르크메니스탄과는 가스전 매장지역 국경선 문제, 아무다리야 수자원 이용 및 국경밀수 문제 등으로 갈등요인 잠재

     

     
    경 제

    -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구 소련 붕괴 이후 독립한 인구 2,700만 명의 중앙아시아 최대 인구 보유국으로 면화를 비롯하여 금, 아연, 우라늄 등 각종 부존자원이 풍부하고 에너지를 자급자족하고 있음. 좀더 적극적인 경제의 대외개방 및 개혁에 나설 경우 성장 잠재력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되는 국가임.

    - 그러나 경제부문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개혁의지 부족 등으로 인해 성장 잠재력을 살리지 못하고 있으며, 장기적인 경제침체와 독재체제 유지로 열악한 국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지 못하면서 반정부세력 확산 등 사회적 불안요인이 상존하고 있음.

    - 구 소연방 독립 이후, 우즈벡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추구해 왔으며, 러시아의 영향력 축소를 위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및 대 테러전쟁 수행을 지원하는 등 친 서방정책으로 선회하기도 하였음.

    - 그러나 현 정권의 인권탄압 등 비민주적 통치행위에 대해 미국 등 서방측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러시아 및 중국과 정치, 경제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음.

     

    1. 경제구조

    1) 1차 산업 의존적인 취약한 산업구조 유지
    우즈베키스탄 GDP구조

    [우즈베키스탄 GDP구조]
    출처 : 한국수출입은행

     

    - 2005년 기준으로 1차 산업이 GDP와 고용의 약 1/3을 차지한 것으로 추계될 만큼 1차 산업에 의존적. 또한, 1차 산업은 정부의 각종 지원에 의존하여 효율성과 경쟁력이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음.

    - 특히 1차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면화산업은 최대 수출 산업으로 국제면화 시세 변동에 따른 경제의 부침이 심한 취약성을 안고 있음. * 면화의 수출비중(2003): 19.8%

    - 2차 산업은 GDP의 20~25%, 고용의 13%(2003, 세계은행)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나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개혁성과가 거의 없어 계획경제 방식의 생산체제 답습과 수입대체산업화(ISI: 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정책의 보호를 받으면서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함.
    * 2차 산업의 분야별 비중(2004): 에너지 24%, 면화가공 및 섬유 19%, 금속 15%

     
    2) 천연자원 개발 잠재력 양호

    - 에너지 자원(특히 천연가스)은 자급자족하며 일부는 인근 CIS 지역으로 수출하고 있음.

    - 금은 매장량 세계 6위, 생산량 세계 10위권이며 수출액의 약 10∼20%를 차지하여 면화에 이은 2번째 주요 수출품임. 그밖에 우라늄, 아연 등도 풍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

    - 특히 국토의 상당부분이 미 탐사지역으로 남아있어 천연자원 개발 여지가 상당한 것으로 평가됨

     

    2. 경제정책

    1) 개혁거부, 수입대체산업화 고수

    - 우즈베키스탄은 경제자유화보다는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정책을 고수하면서, 경제개혁 성과가 극히 부진하였음. 특히 경제정책의 핵심인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은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크게 저하시키는 요인이 됨

    - 2003년 10월까지 복수환율제를 유지하면서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수입으로 수입 대체산업에 대한 외채 및 자본재 지원이 이루어졌으며, 각종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통해 수입을 억제하고 있음.

    - 그러나 ISI정책의 결과는 정부의 경제에 대한 과도한 개입, 부진한 개혁성과, 열악한 투자환경으로 인한 외국인투자 부진 등의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경제효율성을 저해하고, 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 한편, 국민 다수를 빈곤상태에 빠뜨렸음.

     
    2) 외국인투자환경 열악

    - 후진적인 금융시스템, 낙후된 제조업, 관료주의 팽배, 잦은 정책 및 제도 변경에 따라 사업환경 및 투자환경이 열악해지고 이는 외국자본의 유입 부진으로 이어져 경제발전도 정체되고 있음.

     

    3. 국내경제 동향

    주요 국내경제지표

    [주요 국내경제지표]
    출처 : EIU, Country Report, 각호

    1) 국제 자원시세 호조에 힘입어 높은 성장세 실현

    - 2대 수출품목인 금과 면화의 국제시세 호조에 힘입어 2004∼05년에는 7%대의 성장률을 기록

    - IMF 등 국제금융기관은 우즈베키스탄의 공식적인 경제성장 통계가 집계방법상의 하자로 (b지우기) 상당히 과대 계상된 것으로 지적해 왔으나, 최근에는 경제가 호조를 보이면서 성장통계가 실제상황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됨.

    - 3.2 최근 물가불안 다시 확대

    •  2005년 이후 해외유동성 증가에 따른 통화량 증가, 공공요금 및 공공부문 임금인상 등의 요인이 맞물려 물가상승률이 점점 높아지면서 2006년에는 7%를 넘어섬.

     

    4. 대외거래 동향

    (단위:백만 달러,%)

    데이터 테이블
    구분 2002 2003 2004 2005 2006
    경상수지 97 863 1,212 1,448 1,905
    경상수지/GDP 1.0 8.5 10.1 11.6 14.5
    상품수지 324 835 1,080 1,100 1,890
    수출 2,510 3,240 4,290 4,740 5,660
    수입 2,186 2,405 3,210 3,640 3,770
    외환보유액 850 1,162 1,546 2,300 2,900
    총 외채잔액 4,776 5,012 5,007 4,635 4,622
    총 외채잔액/GDP 49.4 49.5 41.9 37.1 35.2
    DSR 25.2 21.3 17.4 18.1 16.1

    출처 : EIU, Country Report, 각호

     

    - 상품수지 및 경상수지는 면화와 금의 국제시세에 크게 좌우되고 있으나, 1998년 이후 상품수지는 흑자를 유지하고 있음. 또한, 내륙국이란 지리적 입지로 인해 물품수송비, 에너지개발 용역 비 등 서비스지급액이 막대하나,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관 통과료 수입의 상쇄효과 등으로 경상수지는 대체로 상품수지에 연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

    - 최대 수출품목인 면사는 작황부진, 국제시세 하락, 국내 면직물 가공능력 확대 등으로 수출비중이 1990년대의 40%에서 2005년에는 20% 정도로 낮아진 것으로 추정됨. 또한, 금 수출액은 공표되고 있지 않으나 수출비중이 1998년 10%서 2002∼05년 중에는 약 13% 정도로 높아진 것으로 추정됨.

    - 또한, 강력한 수입통제로 석유․가스분야 개발과 수입대체산업을 위한 기계 및 장비 등 자본재 수입이 전체수입의 45% 정도를 차지하고 있음.

    - 최대 교역대상국은 러시아(2005년 교역 액의 20% 차지)로 주로 자동차, 천연가스를 수출하고 기계․장비를 수입하고 있으며, 중국도 점차 중요한 수출대상국으로 부상하고 있음.

    - 관세당국이 발표하는 교역통계에는 수입억제정책으로 유발된 상당한 규모의 국경 밀거래가 제외되어 있어, 교역통계 역시 신뢰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됨.

     

    ☞ 러시아는 석유, 가스, 통신분야로 15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중국도 에너지분야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음. 그밖에 일본과 한국도 에너지를 중심으로 투자에 적극적임. 카자흐스탄은 중국의 싹쓸이 식의 에너지확보를 위한 자국진출에 제동을 걸고 있으나, 외자가 절실한 동국은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

    ☞ 한편, 서방과의 불편한 관계를 반영하여 미, 영의 금광투자기업에 부여하였던 면세혜택을 취소시키고, 면세 액의 소급회수 조치를 취하면서 두 기업이 파산하는 사태가 발생함. 이로 인해 서방의 투자는 더욱 위축되고 있음.


     


     

  • eurasiaturk 2016-07-09 조회수:2803
    Uzbekistan

     

     

    종합개관

     

     

     

    1. 위치

    우즈베키스탄 위치도

    [우즈베키스탄 위치도]

    북쪽의 카자흐스탄, 남쪽의 투르크메니스탄 사이의 중앙아시아에 위치(북위 41도, 동경 64도)하고 있다. 면적은 44만 7400㎢ (한반도 면적의 약 2배)이다.

     

    2. 일반개황

    [우즈베키스탄 일반개황]

    데이터 테이블
    국 호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Republic of Uzbekistan)
    ※ 우즈벡어 표기: O’zbekiston Respublikasi
    독립일 1991. 12. 18 (독립선포일 1991. 9. 1)
    수 도 타슈켄트 (Toshkent, 213만명)
    영토면적 44만 7,400㎢ (한반도의 약2배)
    인 구 27,780,059명 (2007.7)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을 상회)
    민족구성 우즈벡인80%, 러시아인5.5%, 타직인5%, 카자흐인3%, 카라칼팍인2.5%
    타타르인1.5% 등 100여 개의 다민족
    *고려인 0.6% (16만 명, 7위 차지)
    종 교 이슬람교(수니파) 88%, 동방정교 9%, 기타3%
    언 어 우즈벡어
    평균수명 64.58세 (2006)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제
    대통령 및 임기 이슬람 압두가니예비치 카리모프 (Islam Abduganiyevich Karimov)/ 7년
    의 회 양원제 (5년, 상원100석•하원120석)
    주요정당 자유민주당, 인민민주당, 국가헌신민주당 등
    화폐단위 및 환율 숨 (Sum)
    * 1$ = 1,290 Sum (2007.11)
    문맹률 0.3% (2005)
    국내총생산(GDP) 131억$ (2006)
    1인당 GDP 492$ (2006)
    수출입 수출액: 49억 3천만$ (2005)
    ※ 주요 수출품: 원면, 금, 에너지
    수입액: 34억 6천만$ (2005)
    ※ 주요 수입품: 기계설비 류, 식료품, 화학제품
    주요산업 농업, 광업, 화학산업, 에너지산업
    주요자원 천연가스(세계10위), 금(세계7위), 우라늄(세계4위), 석유, 석탄, 은, 구리, 납, 아연, 텅스텐, 몰리브덴
    행정구성 1개 자치공화국 (카라칼팍 공화국), 12개 주, 1개 특별시
    주요도시 사마르칸드, 나망간, 안디잔, 부하라, 페르가나
    주요경축일 1.1 신년, 3.8 여성의 날, 3.21 나브루즈 (새해, 새봄맞이 축제), 5.9 승전기념일 (2차 대전 대독 승리기념), 9.1 독립기념일, 10.1 스승의 날, 12.8 제헌절
    ※ 종교관련 경축일 : 라마단 아이트, 쿠르반 아이트

     

    3. 국기

    국기

    소련의 붕괴에 따라 CIS의 한 국가로 독립할 때인 1991년 11월 18일 채택되었다. 파란색은 영원무궁한 하늘과 생명의 원천인 물을 상징하며 티무르제국 전통 계승의지를 표현하며, 흰색은 평화와 동경의 상징으로 도덕적 순수함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녹색은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붉은 선은 붉은 피로 상징되며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국가의 영원함에 대한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초승달은 우즈벡이 이슬람 국임과 구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음을 상징하고, 12개의 별은 우즈벡의 12개의 주를 나타내면서 조화와 행복을 추구해 온 우즈벡 민족의 문화를 표상한다.

     

    4. 국가문장

    국가문장

    태양이 솟아오르는 풍요로운 계곡을 배경으로 우즈벡인들의 주식인 밀과 주요자원인 면화로 만들어진 화환이 주변부를 구성한다. 상부의 8각형 별은 우즈벡의 단결과 화합을 의미하며, 9각형 내부의 초승달과 별은 종교적으로 이슬람 국가임을 상징하고 있다. 중앙에 위치한 새는 조로아스터교의 신화에 등장하는‘Humo Bird’로서, 고귀•관대•헌신을 상징하며 국가의 재탄생을 표상하며,‘우즈베키스탄’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하단의 삼색 리본은 우즈벡 국기를 의미하고, 전체적으로는 평화 안정 행복 번영을 염원하는 우즈벡인의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5. 국가

    데이터 테이블
    Serquyosh, hur o'lkam, elga baxt, najot
    Sen o'zing do'stlarga yo'ldosh, mehribon!
    Yashnagay to abad ilmu fan, ijod,
    Shuhrating porlasin toki bor jahon!
    Oltin bu vodiylar - jon O'zbekiston,

    Ajdodlar mardona ruhi senga yor!
    Ulug' xalq qudrati jo'sh urgan zamon,
    Olamni mahliyo aylagan diyor!

    Bag'ri keng o'zbekning o'chmas iymoni,
    Erkin, yosh avlodlar senga zo'r qanot!
    Istiqlol mash'ali, tinchlik posboni,
    Haqsevar, ona yurt, mangu bo'l obod!
    Oltin bu vodiylar - jon O'zbekiston,
    나의 빛나는 자유로운 땅, 행복과 구제를 사람들에게
    당신은 당신의 동료와 사랑하는 동행자이다!
    배움과 독창성으로 영원히 번영하라,
    세계가 존재하는 한 당신의 명예는 빛날 것이다!

    *합창
    이 황금 골짜기 -- 귀중한 우즈베키스탄,
    조상의 용감한 정신은 당신과 함께한다!
    사람들의 거대한 힘이 격노할 때,
    세계를 매혹한 국가!

    너그러운 우즈벡의 믿음은 죽지 않는다,
    젊고 자유로운 발생은 당신을 위한 강한 날개이다!
    독립의 지침, 평화의 후견인,
    진실의 연인, 모국은, 영원히 번영한다!
    * 합창 반복

     

    6. 참고문헌

    - 우즈베키스탄 투자 가이드 북 (국가정보원, 2006)

    - 우즈베키스탄의 정치 경제 현황과 경제협력 방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5)

    - 우리 기업들의 중앙아 5개국 진출 안내 (외교통상부, 2007)

    - 우즈베키스탄 개황 (외교통상부, 2007)

    - 우즈베키스탄(KOTRA 국가정보) (KOTRA편집부, 2005)

    - 제1차 한•중앙아 협력 세미나 (외교통상부, 2007)

    - 제1차 한•중앙아 협력 포럼 (외교통상부, 2007)

    - 옛날의 실크로드, 오늘의 우즈베키스탄 (박삼옥, 서울대학교출판부,2007)

    - 한국수출입은행 www.koreaexim.go.kr

    - 한국 무역 협회 www.kita.net

    - KOTRA www.kotra.or.kr

    - 위키피디아 www.wikipedia.org

    - 지식까지 검색하는 NAVER www.naver.com

    - 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print/uz.html

    - http://www.orexca.com/navruz.shtml

    - http://www.youtube.com/watch?v=469hh3Fxd9M 

     

     

     

    자연환경

     

     

     

    우즈베키스탄 지형도

    [우즈베키스탄 지형도]

     

    1. 지 형

    우즈베키스탄 전체영토의 70%가 황무지 및 산지이며, 중앙부는 키질 쿰(사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서부, 중앙부는 사막 초원지대이고, 남동부는 산지 및 분지이다. 구 소련 전체면적의 1%에 해당된 동부지역 페르가나 분지는 구 소련 면화 총 생산량의 1/3, 비단의 35%를 생산하여 ‘장미의 골짜기’, ‘흙 속의 진주’로 명명된다.

     

    2. 기 후

    타슈켄트 시 월평균 기온과 강수량

    [타슈켄트 시 월평균 기온과 강수량]

    대륙성 사막 기후대로 고온 건조한 날씨가 장기간 지속되며, 여름은 열대공기의 영향으로 매우 덥고 건조하여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반면 겨울은 여름에 비해 습도가 높고 강설량이 많은 편이다. 강수량은 봄 30~50mm, 여름 1~6mm, 가을 4~44mm, 겨울 25~40mm에 이른다.

    • 여름 최고기온: 42℃ (평균기온 25~30℃)
    • 겨울 최저기온: -10℃ (평균기온: 2~8℃)

     

    3. 자연환경

    우즈베키스탄은 위도상 북위 40도선에 위치하며, 동서간 1.425km, 남북간 925km로 중앙아시아의 중심부인 투란 분지를 차지하고 있다. 국토의 4/5가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강우량 부족으로 평원의 중북부는 구 소련 내 두 번째 큰 키질쿰 사막을 형성하고 있다. 동쪽국경의 1/5은 산악지방으로, 동북부 방면은 천산산맥 일부와 서남부 방면은 파미르 고원에 부분적으로 걸쳐 교차하고 있다. 산악고지대는 해발 4,000m가 넘으며, 산악의 눈 녹은 물과 지하수가 남북 국경을 따라 강수량이 부족한 평원을 지나 아무다리야와 시르다리야를 이뤄 아랄해로 유입된다. 약 50만 헥타르의 잘 보존된 숲과 국립 공원지대가 있으며 40만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아랄해의 변화 모습

    [아랄해의 변화 모습]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에 걸쳐 있는 큰 염호 아랄해는 카스피해 동쪽으로 기후가 삭막한 중앙 아시아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이전에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내해였으나, 20세기 후반 면적과 수량이 두드러지게 줄어들고 수심이 얕아지면서 과학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원인은 구 소련이 관개를 위해 아랄 해의 주된 수원인 시르다리야 강과 아무다리야 강의 물길을 강제로 돌려버렸기 때문이다. 이 두 개의 강줄기를 돌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커다란 목화밭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점점 아랄 해로 흘러 드는 물의 양이 감소하고 염분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많은 어류가 멸종하게 되었고, 결국 과거 아랄 해였던 곳이 지금은 사막처럼 변해버렸다.

    지금의 추세라면 2020년경에는 아랄 해가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아랄 해의 감소로 인해 많은 어촌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고, 수십 년간 농약과 비료의 사용으로 오염되어버린 아랄 해가 증발하면서 남은 소금과 오염물질은 이제 주민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와 여성들에게선 결핵과 빈혈, 각종 암 발생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 등이 1997년 ‘아랄해 살리기 국제기금(IFSAS)’을 만들고 보전에 착수했지만 큰 진전은 보지 못하고 있고, 카자흐스탄은 최근 고 유가에 힘입어 벌어들인 막대한 재정을 아랄해 복원에 투자하고 있으나, 우즈베키스탄은 재정이 여의치 않아 사라져가는 아랄해 복원 문제에 관해 속수무책인 실정이다.

     

    4. 행정구역

    우즈베키스탄 행정구역

    [우즈베키스탄 행정구역]

    우즈베키스탄은 1개의 특별시와 12개의 주(viloyat), 1개의 자치공화국(avtonom)으로 구성되어 있다.

    데이터 테이블
    구분 행정구역 중심지 면적(㎢) 인구(만 명) 인구밀도(명/㎢)
    1 타슈켄트 시 213
    2 안디잔 주 안디잔 4,240 218 452
    3 부하라 주 부하라 40,320 141 35
    4 페르가나 주 페르가나 6,760 266 392
    5 지작 주 지작 20,490 97 44
    6 나망간 주 나망간 7,440 192 236
    7 나보이 주 나보이 110,990 78 7
    8 카쉬카다르야 주 카르쉬 28,570 216 71
    9 사마르칸드 주 사마르칸드 16,770 267 142
    10 시르다리야 주 굴리스탄 4,990 64 127
    11 수르한다리야 주 테르메즈 20,100 173 81
    12 타슈켄트 주 타슈켄트 15,590 235 291
    13 호레즘 주 우르겐치 6,050 132 190
    14 카라칼팍스탄 자치공화국 누쿠스 166,590 150 7.5

     

     

     

  • Kazakhstan 

     

     

    역사

     

     

     

    1. 고 대

    카자흐스탄 내에서 발굴되는 유물들로 미루어 BC 1,500-1,000년경 현재의 카자흐스탄에 청동기 초기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BC 500년경에는 현재의 남부 카자흐스탄에 사카(Saka)부족이 알타이산과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방대한 스텝지역에 거주하여 스키타이 문화의 일부를 이루었다. 사카부족은 카자흐스탄 최고의 고고학적 발굴로 일컬어지고 있는 "The Golden Man"(금 갑옷을 입은 전사 모형․알마티 인근에서 발굴)을 남긴 부족으로서 Golden Man은 현재 카자흐스탄의 국가 상징한다. BC 200년경에는 중국 북부로부터 훈족(Huns)이 현재의 동부 카자흐스탄을 장악한 바 있었으나 훈족이 서유럽으로의 진출을 서두르면서 서기 550-750년에 걸쳐 몽고와 중국 북부로부터 투르크(Turkic)족이 현재의 카자흐스탄 남부로 이주하였다. 투르크족은 만주로부터 카자흐스탄 남부에 이르는 Kok Turk 제국을 구성하였다.

     

    2. 카자흐 민족국가 형성(13세기-18세기)

    몽골 제국 지도

    [몽골 제국 지도]

    1218-1221년경 몽고의 징기스칸이 카자흐스탄 동남부를 시작으로 현재의 카자흐스탄 전역을 석권하였다. 카자흐 영토는 Golden Horde, White Horde 및 Mogulistan으로 분리 통치되었으며 카자흐 카나테(Kazakh Khanate)가 15세기 초 White Horde에서 분리되면서 카자흐 민족국가 형성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후 카자흐 카나테는 대오르다(Great Horde : 발하쉬 호수 남부지역), 중오르다(Middle Horde : 카자흐 중부), 소오르다(Little Horde : 카자흐 서부)로 분열되어 호족들이 통치하였으며 3개 오르다는 현재 카자흐스탄 호족출신 배경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지방 호족들은 그 후 300여 년에 걸쳐 3개 오르다에 병합되었으며 카자흐는 봉건영주와 농노로 구성된 봉건국가로 18세기까지 존속하였다.

     

    3. 러시아로의 합병(18세기-19세기)

    봉건제후들 간의 전쟁으로 세력이 크게 약화된 3개 오르다는 18세기 중엽 준가르 (Dzungarian)의 침공으로 소위 “대 재난의 시대”를 맞게 되었으며 1731년 러시아 제국에 보호를 요청하면서 러시아로의 합병과정 시작되었다. 그 후 러시아는 국경지역에 요새와 오렌부르크 등 소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카자흐스탄 남부로 영향력을 확대, 19세기 초에는 카자흐스탄 북부와 중부에 러시아식 8개 행정구역이 출현하는 등 러시아의 식민화 정책이 본격화되었다. 일부 반 러시아 폭동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식민화 정책은 지속되었으며 19세기 초 중․소오르다에 대한 직할통치를 시작으로 1860년대에 대오르다가 러시아에 편입되어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전역을 합병하였다.

     

    4. 소비에트 정권 수립과 사회주의 건설(1917-1990)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및 내전 과정 동안 카자흐스탄 내 소비에트 정권이 신속하게 수립되었으며 1920년 카자흐스탄은 키르기즈 자치공화국의 일부로 편입, 소비에트 정권 수립이 마무리된다. 소련 공산당은 1924-1925년간 중앙아 공화국에 민족구성을 기반으로 새롭게 구성된 공화국 구성 개혁안을 추진한 결과, 1925.4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탄생되었다. 계획경제체제하에서 광물산업을 중심으로 한 카자흐스탄 산업화 및 강압적인 농업 집단화 과정을 본격 추진(1940년대 초까지 전농장의 97%가 집단농장화)하기도 하였다. 1936.12 카자흐스탄은 소련 구성 공화국의 하나로 승격되었고, 1950년대 말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 시에 추진된 Virgin Land(처녀지 개간) 정책으로 카자흐스탄 북부에 약80만에 이르는 러시아인들의 이주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식민화가 시작되어 1960년 초에는 전체 930만 카자흐스탄 인구 중 러시아인이 43%, 카작인이 29%라는 기형적인 민족구성을 초래하기에 이른다. 소련 공산당은 샤야흐메토프(Zhumabay Shayakhmetov) 및 쿠나예프(Dinmukhamed Konayev) 등 카작인을 카자흐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임명하는 등 카작 민족에 대한 일부 배려가 있었으나 실권은 모스크바에서 행사하였다. 1986년 쿠나예프가 러시아인인 콜빈(Gennady Kolbin)으로 교체되자 대규모 폭동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소련은 카자흐스탄 세미팔라친스크(Semipalatinsk)를 핵 실험장으로 이용하거나 바이코누르(Baykonur)에 우주선 발사 기지를 건설함으로써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하였다. 1989년에는 소련 최초의 대규모 시민운동인 Semipalatinsk Movement가 결성되었으며 동 운동의 결과로 소련은 1989년부터 세미팔라친스크에서 핵실험을 중지하기에 이른다.

     

    5.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부상과 카자흐스탄 독립

    1989년 카자흐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된 나자르바예프는 1990.4 카자흐스탄 최고인민회의에서 카자흐스탄 공화국 대통령에 피선된다. 1990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소련 붕괴 과정에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등과 함께 소련 체제를 유지하려 노력하였고, 결국 카자흐스탄은 1991.12 소련 체제의 와해가 기정사실화 된 직후 동년 12.16 소련 구성공화국 중 가장 늦게 독립을 선언하고 동년 12.21에는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한다.

     

     

     

     

    한국과의 관계

     

     

    1. 개 관

    한-카자흐스탄 관계는 1992.1.28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꾸준히 실질협력관계를 발전시켜오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우리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이 자국의 경제개발에 유용할 수 있다는 점과 우리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동 경험 전수 및 카자흐스탄 경제전반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인식하에 우리와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다. 특히, 카자흐스탄 독립직후 카자흐스탄의 경제적 어려움과 서방기업들의 무관심이 지속되던 시기에 우리 기업이 카자흐스탄에 적극 진출 하여 성공적인 투자사례를 이룸으로써 결국 서방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의 외환위기 이후 우리기업들의 투자가 급감하였으나 2002년도 카자흐 외무장관 방한 및 산자부 장관의 상호방문을 계기로 활력을 되찾기 시작한 양국관계는 2003.11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방한으로 카스피해 원유 및 광물자원 공동개발 등 실질 협력관계 확대를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였다. 2003년 11월 한-카자흐스탄 정상회담 및 2006년 9월 한명숙 총리 공식 방문 등을 통해 양국 정상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해 인식을 같이하고, UN 등 국제무대에서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하는 등 정치, 외교적 측면에서도 양국간 협력관계는 더욱 확대되는 추세이다.

    또한, 최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가한 우미르작 슈케예프 카자흐스탄 부총리는 대통령 접견자리에서 카자흐스탄 국민복지화를 강조한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최근 연두교서 내용을 강조하며 향후 에너지 및 건축 관련 양자협정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길 희망했다. 접견 후, 우미르작 슈케예프 카자흐스탄 부총리는 에너지 및 건축 관련 한국대표기업들과의 투자협상면담에 참석하면서, 이번 카자흐스탄 부총리 방한이 향후 대 카자흐스탄 한국기업투자진출에 중요한 영향을 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 주요 인사교류

    슈케예프 부총리와 이명박 대통령 한명숙과 아흐메토프 총리
    [슈케예프 부총리와 이명박 대통령]    [한명숙과 아흐메토프 총리]
    • 1990.11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소 연방 공화국 대통령 방한
    • 1992.07 이상옥 외무장관 카자흐스탄 방문
    • 1995.05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국빈방한
    • 1997.10 예시모프 제1부총리 방한
    • 2002.10 토카예프 국무장관 겸 외무부 장관 방한
    • 2002.11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 카자흐스탄 방문
    • 2003.11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공식방한
    • 2004.03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 카자흐스탄 방문
    • 2004.07 아비카예프 상원의장 비공식 방한
    • 2004.09 노무현 대통령 카자흐스탄 국빈방문
    • 2004.11 이명박 서울시장 카자흐스탄 방문
    • 2005.04 마르첸코 전경제부총리(현 할릭은행 총재) 방한
    • 2005.04 슈콜릭 에너지․광물자원부 장관 방한
    • 2006.01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 카자흐스탄 방문(대통령취임식 참석)
    • 2006.06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CICA 정상회의 참석)
    • 2006.09 한명숙 총리 공식방문(추규호 건교부장관 수행)
    • 2008.02.26 이명박 대통령 카자흐스탄 우미르작 슈케예프 부총리 접견(대통령취임식)

      -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국민복지의 성장은 국가정책의 중요 한 목표’라는 주제를 담은 연두교서 전달

      - 한-카 협력관계 동향과 전망 관련 문제 논의

    • - 한국 건축회사, 에너지 회사, 재정기관 대표들과 면담

     

     

    3. 한·카자흐스탄 에너지·자원 협력

    카자흐스탄 잠빌 유전 위치도

    [카자흐스탄 잠빌 유전 위치도]

    석유공사, 삼성, LG, SK, 대성 등 7개사는 2002.3 원유개발 컨소시엄을 구성, 카스피해 유전개발 참여를 적극 추진 중이다. 한국 원유컨소시엄은 카자흐 석유가스공사측과 카스유 망광구인 잠빌 광구에 대한 공동개발 양해각서를 2004.3월 체결하였으며, 2006.9월 지분 양, 수도를 포함한 실무협상을 마무리 지어 2006.11월까지 본 계약을 체결하고, 2008년 현재 카작국영석유회사(KMG)와 탐사계약 체결 중이다.
    카자흐스탄과 한국측의 참여지분은 아래와 같으며 2008년 5월 중순 한승수 국무총리의 중앙아시아 순방 시 잠빌 광구의 지분 27%를 획득하는 지분양수도 본 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다. 또 탐사에 성공할 경우 23%의 지분을 우선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선매권 행사도 가능해져 한국컨소시엄은 최고 50%의 지분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 양자간 잠빌광구 참여지분 : 카자흐스탄(73%), 한국 (27%)

    - 한국 컨소시엄 회사 : 석유공사 9.45%, SK 6.75%, LG상사 2.7%, 삼성물산 2.7%, 현대하이스코 2.7%, 대성산업 1.35%, 대우조선해양 1.35%

     

    대한광업진흥공사는 카자흐스탄 지질위원회측과 카자흐 스탄 동남부(15만㎢) 주요 광물부존 구역에 대한 공동탐사를 2004-2007년간 실시 중이며, 금․동․연․아연 등 유망광물 발굴 시 아국기업의 후속개발진출 연계를 추진 중이다.

    또한, 대한 광업진흥공사는 한국 수력원자력과 함께 카자흐스탄 Kazatomprom 측과 공동으로 우라늄 광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며, 현재 한국수력원자력은 Kazatomprom 측과 우라늄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 우리 우라늄 수요의 약 1/4을 카자흐스탄이 공급 중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우라늄 수요 총 3,600톤 중 960톤)

     

    4. 교역현황

    양국 경제·통상협력은 양국 경제의 상호보완성에 기초하여 2000년 이후 대폭 활성화되고 있으며, 2003년에 87.2% 증가한 데 이어 2004년 39.9% 증가하는 등 급속한 성장세를 보인 바 있으며, 2005년에는 한․카자흐스탄간 교역량 확대에 따른 수출입 구조 조정 및 러시아 및 중국을 통한 교역량 증가에 따라 다소 전체 교역량이 보합세를 유지하였으나, 건축자재 및 자동차 분야 등의 약진에 따라 2006년 교역량은 균형적으로 확대되어 양국 교역 액은 6억 달러를 기록했고, 2007년에는 8억 달러를 넘어섰다. 카자흐스탄의 WTO 가입추진에 따른 경제 자유화 및 국제유가 상승, 카자흐스탄의 건설수요 증가 등으로 양국간 교역량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5년 이전 우리의 대카자흐스탄 수출은 휴대폰 등 전자제품이 주도하였으나, 2006년 휴대폰 등 전자제품의 수출량이 감소한 반면, 건축자재 및 자동차 분야 수출량은 전년동기 대비, 열 교환기 9.6%, 엘리베이터 162.9%, 화물자동차 109.3%, 승용차 72.2% 등 큰 폭으로 증가하여 휴대전화를 제외한 수출 품목 상위 7개 제품의 수출이 대폭 신장되고 있어 가전제품에 편중되던 우리 수출품목의 다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바, 향후 카자흐스탄 건설경기 활성화 및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건설자재 및 자동차 분문의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도별 양국간 교역 현황]

    (단위: 천달러, %)

    연도별 양국간 교역 현황
    구분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교역량 197,780 370,269 517,979 514,163 599,697 802,745
    (20.5) (87.2) (39.9) (-0.74) (16.6) (33.8)
    수출 126,110 217,174 313,950 272,558 323,815 545,978
    (16.8) (72.2) (44.6) (-13.2) (18.8) (68.6)
    수입 71,670 153,095 204,029 241,605 275,882 256,767
    (27.7) (113.6) (33.3) (18.4) (14.2) (-6.9)

    출처 : 한국관세청 ( )은 전년 동기 대비 증감률

     

    5. 고려인 현황

    고려 극장 내부의 모습 고려극장에서 공연중인 부채춤
    [고려 극장 내부의 모습]               [고려극장에서 공연중인 부채춤]
     
     
     

    사회문화

     

     

    1. 언 어

    국어는 카작어(64.6%)이고, 러시아어(95%)도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독일어, 우즈벡어, 키르기스어, 페르시아어, 영어, 기타 등도 쓰인다.

    카작어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넓게 분포함에도 내부적으로 방언적 차이가 적어 서로 대화가 자유롭게 통한다. 투르크어 중에서는 북서 중앙 그룹 또는 킵차크 어군이라고 부르는 그룹에 속하며, 특히 카라칼팍어·노가이어·키르기스어 등과 가까운 관계에 있다.

    카작어는 우즈벡어나 신위구르어 등 중앙아시아에 분포하는 다른 투르크어와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에 걸쳐 차가타이어를 문어(文語)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 페르시아 식 아라비아 문자를 쓰는 공통 문어가 카자흐어 사용자들 사이에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구어화(口語化)되어 카자흐 문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후 1917년과 1924년의 정서법 개정을 거쳐, 소련에서는 1929년에 라틴 문자화되고, 1940년에는 키릴 문자로 대체되었다. 문법구조는 다른 투르크어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주어-목적어-동사의 어순이며 접미사나 후치사 등에 따라 문법 범주가 표현된다. 카작어는 역사적으로 몽골어와 아랍어, 이란어에서 차용된 말이 많다. 몽골어와 카작어는 12∼13세기경부터 접촉하였고, 아랍어는 이슬람 문화를 통해 투르크어로 도입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이란어를 매개로 한다. 근년에는 러시아어와 중국어, 특히 러시아어로부터의 문화 관련 어휘의 차용이 두드러진다.

     

    2. 민 족

    민족 구성은 카작인 53.4%, 러시아인 30%, 우크라이나인 3.7%, 우즈벡인 2.5%, 독일인 2.4%, 타타르인 1.7%, 위구르인 1.4%, 그 외 4.9% 로 이루어져있다.

    19세기 말부터 정책적 지원에 의한 농업 이민으로 러시아인의 이입이 증가한 후 20세기에는 중앙아시아 근대화 작업에 따라 러시아인의 이주가 급증하였다. 따라서 1980년대까지 러시아인의 인구 비율이 카자흐인 및 원주민보다 높은 기형적인 형태를 보이기도 했었다. 러시아이주민들은 대부분 알마티를 비롯한 5대 도시에 거주하며 제조업 기술자, 관리인, 기타 전문직 등의 도시적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소련 체제와 관련한 러시아인의 계획으로 인해 러시아인의 비율이 30%를 육박하고 있다.

    1937년에는 연해주 지방에 거주하던 한인들도 이곳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다. 제 2차 세계 대전 초에는 볼가 강 연안의 독일인 자치주에서 많은 독일인을 알마티 주변으로 강제이주 시켰으며, 1942년에는 바크 유전지대를 차지하기 위해 독일군이 크림반도 및 북카프카스 지방을 점령하자 소련군이 이를 퇴각시켰다. 스탈린은 이와 동시에 독일군에 협력했는지 여부에 따라 이 지역의 크림 타타르인과 체첸인들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 시켰다. 따라서 스탈린 사망 이후 현재 까지도 한국인, 타타르인, 체첸인 등은 고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유럽계 백인들이 이주함에 따라 카자흐인의 비율이 높아졌다.

     

    3. 종 교

    현재 각 민족들의 종교를 모두 허용하고 있으나, 국민의 47%는 이슬람교를 믿고 있고, 44%는 러시아정교, 2%는 개신교, 기타 7% 순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이슬람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상 밝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개신교 선교사들에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는 비자를 내주고 있으며 교회 등록도 허락해주고 있다. 현재 선교 활동에 어려움이 있는 인근 키르기즈스탄, 우즈베키스탄과 비교해 볼 때 카자흐스탄의 문은 상대적으로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

     

    4. 교 육

    아바이 국립대학교 카자흐스탄 민족 농업대학교
    [아바이 국립대학교]                    [카자흐스탄 민족 농업대학교]

    유치원 교육은 현재 약 60% 정도의 아동들이 교육을 받고 있어 취학률이 높지 않은 편이나, 정부는 유아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최근 몇 년 동안 취학 전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앞으로 취학률을 90% 이상 끌어올리기 위해 보다 많은 재정 지원을 할 예정이다.

    초, 중등 교육은 공립학교인 쉬콜라의 경우 1~11학년까지 교육과정에 따라 초등학교 과정(4년), 중학교 과정(5년), 고등학교 과정(2년)으로 나뉘어 이루어지고 있으나 2008년부터는 우리와 같은 표준의 12~14년제를 도입할 예정으로 현재 일부 학교에서 시범 전환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9학년(중학년)을 마치면 직업기술학교에 갈 것인지 정규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중학 과정을 마친 학생들 중에서 약 30%는 전문직업기술학교에 진학 하고 나머지 70%정도는 상급학년으로 진학하고 있다.

    대학 교육은 교육의 다른 어느 분야보다 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많은 활발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카자흐스탄에는 현재 33개의 국립대와 126개의 사립대학교가 있으며, 각 대학교마다 학교 발전과 우수학생 유치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대학 진학률은 약 62%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정부도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하여 ‘볼라샥(미래)’ 이라는 정부 장학 제도를 마련하여 연간 3,000명의 학생을 해외에 내보내고 있다.

     

    5. 손님접대(konak kutu)와 음식문화

    전통 음식 베스바르막 카자흐스탄 전통 음료 크므즈
    [전통 음식 베스바르막]                [카자흐스탄 전통 음료 크므즈]
    손님 접대 – 상좌 카즈

    [손님 접대 – 상좌]                   [카즈]

    카작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손님접대이다. ‘손님이 오면 복이 온다’라는 격언대로 카작인은 손님으로 가길 좋아하고, 집에 손님이 오는 것을 즐거워하며 복된 일이라고 여긴다. 손님이 집에 왔을 때,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은 먼저 들어오는 손님을 향해 인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주인은 가장 먼저 손님에게 ‘퇴르게 오트릉으즈 (Torge oturunguz)’, ‘죠가르 싀긍으즈 (Jogaru shugunguz)’라는 말로 상좌에 앉도록 권한다. 그 다음에는 손님을 위해 정성스레 식탁을 차린다. 카작 민족에게 식탁 (Dastarhan)은 아주 중요한 단어로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다. ‘식탁’이라는 뜻과 함께 ‘식탁보’를 말할 때도 ‘다스타르한’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이것은 풍요와 만족을 의미한다. 손님을 맞이할 때, ‘상차림, Dastarhan Jasau’에 앞서 해야 할 것은 ‘식탁 보를 까는 것, Dastarhan Jayu’ 이다. 식탁이 탁자 위에 차려지든, 바닥에 차려지든 상관없이 식탁보는 식탁과 관련하여 카작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물품이다. 그리고 바닥에 식탁이 차려지는 경우, 바닥에 깔린 식탁보를 밟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식탁보를 밟는 것은 식탁 위를 밟고 서는 것과 같은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름밥(Palau), 만띄(Mantji), 베스바르막 (Besbarmak), 라그만(Lagman), 샤슬륵(Shashluk) 등이 공통으로 나오는 음식이라 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족들 사이에 서로 음식의 유사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식사 대접 방식은 각 민족만의 독자성이 있다. 카작인들은 손님이 왔을 때, 고기를 대접하는 것을 최고의 접대로 여겨 베스바르막과 카즈(Kaz)를 준비한다.

    카작인들에게 손님들을 어떤 고기의 어떤 부위로 대접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기접시 꾸미기(Tabak Jasau)’ 라는 말은 고기를 내는 접시를 어떤 부위의 고기로 꾸미느냐 하는 것으로 우리 식의 상차림과 맞먹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타박이라는 단어는 보통 고기 요리를 담는 그릇으로 접시보다 좀 커서, 식탁 가운데에 놓고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누어 먹는 쟁반 같은 것을 말한다. 고기에 따라 카작인들이 어떤 부위를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살펴보면, 양은 머리, 넓적다리, 무릎 뼈 등을 가장 중요한 부위로 간주한다. 말은 목과 목덜미 부위, 카즈(Kaz), 카르타(Karta, 내장종류)를 가장 귀한 부위로 여긴다.

    손님이 많은 경우,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자리와 관련하여, 상석 타박(Bas Tabak), 중간 타박(Orta Tabak), 말석 타박(Ayak Tabak)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 타박이 제공된다. 식탁의 상석에는 손님 중에서 주빈이자, 웃어른들이 앉게 되며, 중간 자리에는 상석에 앉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손님들이 앉으며, 말석에는 손님 접대를 도우러 온 이웃이나 친척 여인들이 앉는다. 바스 타박에는 주로 양머리, 넓적다리, 골반, 복사뼈, 갈비, 기름진 꼬리 부위 등이 담기며, 오르타 타박에는 골반 뼈, 무릎 뼈, 넓적다리 부위가 올라오며 말석에는 남은 여러 가지 다른 부위의 고기들이 오르게 된다.

     

    6. 전통놀이

    1) 처녀 따라잡기(Kuz Kuu)
    처녀 따라잡기(Kuz Kuu)

    [처녀 따라잡기(Kuz Kuu)]

    경기를 위해 처녀와 총각들이 선정되어 잘 달리는 말에 올라탄다. 심판관의 신호에 따라 처녀는 남자들보다 10m 정도 앞에서 출발을 준비한다. 다음의 신호에 따라 남자와 여자는 각각 자기 말을 달리게 한다. 청년이 도는 지점까지 처녀를 쫓아가 잡으면, 처녀의 뺨에 입맞춤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그 후 청년이 처녀를 종착 지점까지 이르도록 허용하지 않으면 승리하게 된다. 반대로 처녀가 쫓아가서 청년의 말을 채찍으로 때리면, 그때에는 처녀를 승리자로 간주한다.

    2) 말 경주(Beige)
    말 경주(Beige)

    [말 경주(Beige)]

    말 경주는 카작 민족의 오래된 전통 중 하나이다. 주로 카작인들은 큰 잔치와 축제, 국경일에 말 경주를 열곤 했다. 경주에는 수백 마리의 말이 참여한다. 카작 역사에서는 유명한 위인들이 죽으면, 그 다음해에 추모제가 열리는데, 거대한 말 경주가 함께 열렸다. 카작 민족은 유쾌한 이벤트를 항상 즐겨왔기에 자주 말 경주 대회를 개최했다. 말 경주는 주로 잔치나 축제 때 벌어지기 때문에, 관련 행사의 규모, 말 소유자들의 경제적 상태, 그리고 말 경주에 참여하는 말의 숫자에 따라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경주가 결정 된다. 카작인들의 경마술은 단순히 육체적인 것만이 아닌, 담력과 기술 그리고 스테미너를 겨루는 것이다. 이러한 경기 중 백미는 알라만 베이게인데, 이것은 장장 80km에 이르는 장거리 말 경주를 말한다.

    3) 쿠므스 알루/텡게 알루(Tenge alu)

    이 경기는 땅에 놓여 있는 은화나 동전 같은 작은 물건을 말 위에서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안장에서 몸을 떼지 않고 잡아채는 놀이이다. 이 경기는 2,300년 전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가 남부 스텝 지역을 휩쓸고 지나갈 때, 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경기로도 알려져 있다.

    4) 전통축제 - 나우르즈(Nauriz)
    나우르즈 축제 모습 돔브라를 들고 있는 소녀
    [나우르즈 축제 모습]                   [돔브라를 들고 있는 소녀]

    ‘나우르즈’ 라는 말은 페르시아어에서 온 말로 ‘새로운 날’이라는 뜻이다. 3월은 겨우 내 잠자던 자연이 깨어나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시기로 3월 22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이다. 따뜻한 봄 햇살과 함께 찾아와서 동방 민족들이 함께 즐기는 새해의 축제, 나우르즈는 카작 민족에게 가장 커다란 축제이다.

    3월22일을 앞둔 며칠간 빗자루와 쓰레받기 등 청소 도구를 들고 시내 곳곳을 청소 하고, 청소가 끝나면 대규모 축제가 전국 마을과 도시 곳곳에서 시작된다. 모두 화려한 전통의상으로 갈아입고 학교 운동장과 마을 공터와 공설 운동장 등에 유르타가 세워지고 준비한 음식이 식탁을 채우면 축제 분위기는 한창 무르익는다. 전 날 발표 된 대통령의 나우르즈 축사가 소개되고 대학 총장, 교장 선생님 그리고 행사에 참석한 귀빈들의 길고 긴 축사가 이어진다.

    카작인들은 나우르즈의 식탁이 풍요로워야 한 해의 번영과 가족의 번창이 약속된다고 생각한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나우르즈 코줴라는 걸쭉한 죽같이 생긴 음식이다. 이 죽은 각각의 의미를 갖는 7개의 재료로 만들어지는데 의미는 대략 이렇다. 물-행복, 육류-행운, 소금-지혜, 버터-건강, 밀가루-부, 쌀 또는 옥수수-자식의 번창과 하늘의 가호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악 몰 볼슨!(Ak mol bolsn!)’, ‘나우르즈를 축하합니다!(Nauriz kutti bolsn!)’, ‘평화가 임하길!(Beibitshilik orunalsn!)’ 하는 기원을 주고받는다. 이 날은 가깝게 지내다가 사소한 다툼으로 관계가 틀어진 사람들이 서로 화합을 이루는 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축제를 함께 즐기기 위해 언덕에 오르기도 하고 말 경주, 씨름, 크즈 쿠우 그리고 다른 민속놀이들을 한다.

     

    7. 인 물

    아바이 이브라힘 쿠난바예프 구권 지폐에 새겨진 알파라비
    [아바이 이브라힘 쿠난바예프]       [구권 지폐에 새겨진 알파라비]
     
     
     
     
  • eurasiaturk 2016-07-03 조회수:904

    Kazakhstan

     

     

    정치/경제

     

     

    정 치

     

    1. 정치 제도

    1) 대통령 중심제 : 대통령은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

    - 현 대통령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ev)

    - 헌법개정 전 : 대통령 임기 7년, 2기까지 연임가능

    - 헌법개정 후 (2007) : 대통령 임기 5년, 초대 대통령에 한해 연임 제한 규정 철폐

     
    2) 의회 : 상하원 양원제

    - 상원(Senate) : 카자흐스탄 14개 주와 2개 특별시(아스타나, 알마티) 등 16개 지역 구에서 각 2명씩 직접 선거로 선출되고, 대통령이 7명을 임명하도록 하여 총 39명이었으나, 2007 개정헌법으로 대통령의 임명 지분이 민족회의 대표를 포함한 15명으로 확대되어 상원의원 총원은 47명이 됨.

    - 하원(Majlis) : 지역구에서 67명, 비례 대표제로 10명이 선출되어서 모두 77명이었으나, 2007년 개헌으로 98명을 전원 정당 명부에 의한 비례 대표제로 선출하게 됐고 여기에 민족회의 대표 9명이 추가되어 하원의 전체 규모는 107명이 됨.

     

    2. 개 요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나자르바예프

    [나자르바예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1991년 12 월 16일 구 소련 붕괴과정에서 카자흐스탄의 독립을 주도하여 같은 해 12월 21일 알마티에서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구 소 연방 소속 12개 국가가 참여한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 구 소련을 대신할 독립국가연합(CIS) 창설을 주도했다.

    1998년 10월, 대통령 임기 연장 및 대통령 피선연령 제한 규정 폐지 등 대통령의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한 신 헌법이 채택된 이후 1999년 1월에 실시된 조기 대선에서 나자르바예프는 79%의 지지로 재선에 성공하였고, 1999년 9월 총선에서도 승리함으로써 정국 주도권을 확고히 장악했으며, 2005년 12월에는 3선에 성공했다. 2007년 5월 개정된 헌법에는 초대 대통령에 대한 연임 제한 규정을 폐지함으로써 종신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2007년 5월 개헌을 시도하면서 대통령의 중임 제한 조항을 폐지함으로, 자신의 영구 집권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전형적인 개발독재형 리더십을 보이고 있으나 국민에게는 계몽 군주로 평가 받고 있어 중앙아시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서방으로부터 민주화 압력을 받고 있는 상태이나 내부적으로 마땅한 후계구도는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고 장기적으로는 정치적인 불안요소가 발생할 가능성도 상존한 상태이다.

    나자르바예프는 집권당인 누르-오탄당을 중심으로 다른 정당과의 통합으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현재 누르-오탄당의 당원수가 1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어 정치적인 기반이 얼마나 확고한지 알 수 있다.

    카자흐스탄 정치사회동향을 종합하면,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경제부처 중심의 정부조직을 기반으로 경제개발 우선 전략형 성장정책을 전개함으로써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장기집권을 정당화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에너지자원 수출에 기반한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으로,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 동 향 - 정국 구도

    2004년 9월 및 2005년 8월 실시된 상,하원 선거를 통해 의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주요 요직에 측근 인사를 기용함으로써 친정체제를 강화해 온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정국주도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07년 개정된 헌법조항에 따라 2007년 8월에 하원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하원의원 선거 결과는 오탄당이 총 유효투표수 5,942,265표의 88.41%인 5,247,720표를 획득해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상,하원 선거 시 의회 진출에 실패(상,하원 의석 中 1석 확보)함으로써 정국운영 및 주요 정책 결정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 야권의 위상은 앞으로도 당분간 회복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1) 정당별 의석배분
    데이터 테이블
    상 원 하 원
    구 분 의석(39석) 구 분 의석(77석)
    오탄당 27 오탄당 45
    농민사회민주당 1 Aist 선거블록 11
    농업당 2 민주선택당 1
    무소속 7 무소속 19
    39 77

    ※ 2004.9 하원선거 및 2005.8 상원선거를 통해 오탄당을 중심으로 한 친여세력이 상․하원 다수를 점유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모든 제정치 세력의 참여가 보장된 “정치개혁 국가위원회”를 설립 하여 야권의 정국운영 참여를 보장하였으나, 야권은 동 위원회 참여를 거부, 향후 추진될 정치개혁 참여도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최근 친여 성향의 야당이 집권당 인 오탄당에 합병이 확대되면서, 야당의 정치 참여는 보다 약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4. 동 향 - 개 각

    아비카예프 상원의장

    [아비카예프 상원의장]

    2007년 1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역사상 최장수 총리였던 아흐메토프 총리를 이례적으로 국방장관에 기용하고, 마시모프 부총리를 총리로 임명하는 한편, 권력 승계 서열 2위였던 아비카예프 상원의장을 주 러시아 대사로 임 명하고, 토카예프 외무장관을 상원의장에 임명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개각을 단행하였다.

    신임 마시모프 총리는 41세이며 주재국 3대 은행 중 하나인 Halyk 은행장을 거쳐 대통령 보좌관, 교통통신부 장관, 경제 기획예산부 장관, 부총리 등을 역임한 경제 전문가로 알려지고 있다.

    2007년 1월 개각 관련 카자흐스탄 전문가들은 카자흐스탄 정 부가 그간 원유 수입으로 확보된 기금(외환 보유고 190억 불 및 석유 안정 국가 기금 140억 불 등 총 330억불)을 산업다변화에 효율적으로 투자하는 한편, 자본 시장 육성을 통해 카자흐스탄 기업의 외형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 받고 있다.

    또한, 금번 개각이 정부의 인재를 순환 기용하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내각 구성 성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카자흐스탄 정부가 행정력 강화 단계를 넘어서 국가 기금의 효율적 배분을 통한 산업 다변화로 세계 50대 경쟁국으로 진입한다는 목표를 달성 하는 단계로 본격 진입하려는 의도가 이번 총리 경질의 기본 배경으로 분석된다.

    한편, 아흐메토프 전 총리의 국방장관 기용은 민간인 출신으로는 최초의 사례로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국방부 수장 문민화에 대한 평소의 신념을 실천에 옮긴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아비카예프 현 상원의장의 경질성은 2006년 2월 주재국 야당 인사인 사르센바예프 암살 사건 연루 설 등 이후 계속 제기되어 왔으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1년의 유예를 둔 후 아비카예프 현 상원의장을 경질함으로써 동 사건과 아비카예프 현 상원의장간의 연루 설에는 동조하지 않는 입장을 보이는 한편, 동 사건으로 인해 야기된 아비카예프 현 상원의장의 정치적 입지 약화를 고려하여 금번 경질을 단행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외 교

     

    1. 주변국과의 균형외교추진

    카자흐스탄의 외교 정책은 중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부상하는 것과 국가경제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러시아, 중국 및 투르크 국가들로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 이 국가들을 연결시켜주는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과의 관계발전을 통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확대와 자국산 원유, 천연가스 및 광물 자원의 안정적 수출 시장 확보를 통해 국가 경제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독립 이후 ‘유라시아 경제공동체’, ‘CIS 집단안보조약’ 등 구 소련 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각종 협력기구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미국, 중국 및 서방국과의 협력증진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 (CICA)를 주관하는 등 역내 안보협력 주도에도 적극적이다. 터키, 파키스탄, 이란 등 이슬람 권 국가들과는 이슬람 권 ‘경제협력기구’(ECO)를 통해 상호 경협 및 아프간 전후 체제 정착 등에 협조하고 있다.

     

    2. 다자지역협력 참여기구 현황

    2006년 제2차 CICA 푸틴과 나자르바예프
    [2006년 제2차 CICA]                  [푸틴과 나자르바예프]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중앙아시아 협력 기구’(CACO), '유라시아 경제공동체‘(EURASEC), ‘경제협력기구’(ECO), ‘상하이 협력기구’(SCO), ‘집단안보 조약기구’(SCTO), ‘Turk cooperation’, ‘Caspian cooperation’, ‘PFP/EAPC’, ‘EU 와 동반자․협력협정’,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단일 경제공간’(SES) 등

     

    3. 주요국들과의 외교관계

    비쉬켁에서 개최된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회의(2007) 나자르바예프와 부시
    [비쉬켁에서 개최된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회의(2007)]   [나자르바예프와 부시]
    1) 러시아

    카자흐스탄은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는 CIS 집단안보조약기구의 회원국으로서 러시아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구 소련 체제와 같은 러시아 주도 하의 종속관계에서 탈피, 중앙아시아 지역 중심국가로서 균형 있는 외교 노선을 견지해 나가면서 상호보완적인 경제협력에 주안을 두고 실질협력 관계를 모색하고 필요에 따라 군사, 안보협력을 유지해 나가는 실리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2) 중 국

    중국과는 SCO(상하이협력기구)를 토대로 정치, 경제 분야는 물론 안보 면에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2003년 6월 중국 후진타오 중국주석과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양국 간 선린우호협력조약 비준서를 교환하고 2003~2008년간 협력 프로그램에 서명하여 양국 간 전략적 협력체제 발전을 위한 기반을 강화한 바 있다.

    3) 미 국

    미국과는 2003년 9월 군사협력 5개년 계획에 합의하였다. 이 합의서에는 양국 국방부간 상호 장기적이고 안정된 관계를 구축하고 카자흐스탄 군의 장비 현대 화, 카스피해 유력의 군사 인프라 및 항만 인프라 설치지원, 카자흐스탄 직원 군인 양성 및 해군교육기관 설립 지원 문제는 물론, 테러 집단퇴치를 위한 협력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4) 그 외

    미국 포함 영국, 독일, 이태리, 일본 등 선진 시장 경제국과는 양자간 협력관계 강화를 통해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하는 한편, 이들 국가의 투자유치 및 카자흐스탄 원유, 가스, 비철금속 등 자원의 안정적인 수출시장 확보를 통한 국가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경 제

     

    1. 주요 경제정책

    카자흐스탄 정부는 “2015 혁신적 산업 발전 전략”을 수립하여 석유화학, 건축자재, 식품가공, 물류, 제련, 섬유, 관광 등 분야를 2015년까지 집중 육성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한편, 철도, 전력, 통신 등 기간사업의 민영화 계획도 수립, 산업다변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지역 균등 발전을 위해 중앙과 지방간의 권한과 책임을 체계적으로 재조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바, 2005년 예산체계를 대폭으로 변경시켜 지방에 대한 중앙 정부의 지원을 확대하는 등의 조치를 시행하였다. 또한, 카자흐스탄 정부는 2015년 까지 카자흐스탄을 세계 50대 경쟁력 있는 국가로 진입시킨 다는 것을 국가목표로 선정, 산업다변화 및 교육, 훈련 강화를 통한 사회, 경제 각 부문의 경쟁력 증대를 추진하고 있다.

     

    2. 최근 경제동향

    카자흐스탄은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한 개방적인 시장경제 정책의 지속 추진과 카스피 해 원유개발 등 원유, 가스 산업의 발전을 바탕으로 2000년 이후 10% 수준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빠른 경제성장은 원유 등 풍부한 지하자원 및 카스피 해 원유개발 등을 목적으로 한 외국자본의 투자 증가에 기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원유자원 매장량을 세계 7위 수준으로 산정하고 있다. 우라늄, 금, 은, 구리, 아연, 망간 등도 세계 10위 내 매장량을 가지고 있으며, 알루미늄, 티타늄, 크롬, 니켈 등도 국제 경쟁력을 갖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경제는 2006년도에 10.6%의 실질성장을 보였으며, 2007년도 하반기 글로벌 자금경색에도 불구하고 2007년 성장률은 8.5%를 이루었다. 국제적 국가 연구기관 (EIU, Global Insight)들은 원유 가스 산업의 호조를 바탕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지속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1) 연도별 카자흐스탄 주요 경제지표 (2002~2007)
    연도별 카자흐스탄 주요 경제지표
    연도구분(단위)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인구(만 명) 1,486.6 1,495.1 1,511.0 1,521.7 1,538.0 1,556.5
    GDP 총액(억 텡게) 37,762 44,497 55,425 75,910 102,140 127,260
    (억 달러) (245) (249) (410.5) (632.5) (851.0) (1,060.5)
    실질성장률(%) 9.5% 9.3% 9.4% 9.4% 10.6% 8.9%
    1인당 GDP $1,631 $2,064 $2,700 $4,156 $5,100 $6,800
    월평균임금 (USD) 135.4 157.1 207.9 374.6 446 557.9
    평균환율 153.4 151.0 135.9 132.8 127.33 122.66
    무역(억불) 교역량 161.9 189.9 328.7 452.0 619.2 795.7
    수출 97.0 115.9 200.9 278.4 382.5 469.7
    수입 64.9 74.0 127.8 173.5 236.7 326.0
    무역수지 32.1 41.9 73.1 104.9 145.8 135.4
    외국인직접투자 (백만 달러) 4,106.4 4,624.5 8,317.3 6,616.5 10,437.1 10,669.1
    외환보유고 (억 달러) 35.7 49.6 92.7 70.69 203.7 385.3

    출처 : 카자흐스탄 중앙은행 및 통계청, WTA, Global Insight
    * 2007.9 기준

     

    3. 산업개황과 주요산업

    카자흐스탄 정부는 에너지 섹터의 의존에서 벗어나 비자원분야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차원의 노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카자흐스탄 산업구조는 석유ㆍ가스 관련 산업이 총 산업 생산의 53%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금융, 운송, 건설 등도 간접적으로 자원분야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자원분야 투자에 대한 정부금융 지원 및 세제 혜택을 강화하고, ‘Cluster Approach’ 방식을 채택하여 금속가공, 원유ㆍ천연가스 생산설비, 건설장비, 운송장비, 농업 및 섬유산업 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첨단 과학기술산업 및 농업육성, 사회기반시설 확충 등 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2030년까지의 장기종합개발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1) 석유ㆍ가스산업

    카자흐스탄의 BP가 확인한 석유 매장량은 2006년 현재 398억 배럴이며, 가스 매장량은 105.9조 입방피트로 집계된다. 다른 연구기관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의 잔존 가채 매장량 은 285억 배럴이며 예상 매장량은 920억 배럴로 추정된다. 한편, 미국 에너지 정보청은 카자흐스탄의 가채 가스매장량을 65~100 Tcf 로 추정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석유자 원의 30-40%가 해양지역에 위치하며 전체 상업적 매장량 중 약 2/3는 석유 및 컨덴세이트(초경질유)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매장량 중 대부분은 Tengiz, Karachaganak, Kashagan, Uzen 유전 등이 차지하고 있다.
    천연가스의 경우 수송망의 부족과 낮은 가스가격으로 생산한 가스는 수출하고 국내소비를 위한 가스는 주변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카자흐스탄 천연가스 국내 소비의 40%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석유ㆍ가스 수급 현황]

    카자흐스탄 석유ㆍ가스 수급 현황
    구 분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석유 매장량
    (10억 배럴)
    39.6 39.6 39.6 39.6 39.8 39.8
    생산량
    (1일, 천b/d)
    836 1,018 1,111 1,297 1,364 1,426
    소비량
    (1일, 천b/d)
    186 193 183 188 208 221
    가스 매장량(Tcm) 70.6 105.9 105.9 105.9 105.9 105.9
    생산량(Bcf/d) 1.0 1.0 1.3 2.0 2.3 2.4
    소비량(Bcf/d) 1.0 1.1 1.3 1.5 1.7 2.0

    출처 :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June 2007

     
    2) 광 업

    카자흐스탄 전체 수출소득의 30%, GDP의 27%, 총 고용의 19%를 차지하는 카자흐스탄 제2의 산업이다. 광업은 2004년에 12.8%의 높은 산업생산증가율을 보였으나 인프라 부족으로 2005년에는 3.4%의 증가에 그쳤다. 주요 생산품목으로는 철, 구리, 아연, 알루미늄 등이 있다. 철은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금속으로, 2005년 약 450 만 톤의 선철과, 320만 톤의 강판이 생산되었다. 카자흐스탄의 보유 광물은 우라늄, 크롬, 동, 아연, 망간 등 세계 10위 내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고, 알루미늄, 티타늄, 몰리브덴, 니켈 등 기타광물도 풍부한 편이다.

     
    3) 건설산업

    원유ㆍ가스 및 광물 자원의 국제 가격의 급속한 상승에 힘입어 카자흐스탄의 경제도 2000년 이후 연 10% 대의 고속 성장을 시현하였다. 이에 따라 아스타나 신도시 개발과 함께 알마티, 악타우, 아티라우 등을 중심으로 부동산 붐이 조성되면서 카자흐스탄의 부동산 가격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2007년에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알마티 우림 '애플타운' 조감도 입주를 시작한 '하이빌 아스타나'(2007)
    [알마티 우림 '애플타운' 조감도 협력기구 정상회의(2007)]     [입주를 시작한 '하이빌 아스타나'(2007)]

    ※ 참 고 - 부동산 시장에 대한 우려와 전망

    물론 부동산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하면서 상당 부분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카자흐스탄 역시 성장 과정에서 급증하는 대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해외 차입에 의존했는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등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경색되면서 이 같은 차입금이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이 경색되니 당연히 부동산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기존 아파트 거래가 막히고, 신규 분양도 힘들어지면서 자금력이 달리는 현지 건설 업체 일부가 공사를 중단하거나 시공을 늦추기도 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붕괴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현지 부동산 전문가들은 그 근거로 다음의 몇 가지를 꼽는다. 먼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부가 부동산 가격 급락을 좌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수 국민들이 모기지론을 통해 부동산을 구입해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하락은 신용 불량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 안정 차원에서 부동산 가격을 지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국제 유가 및 광물자원 가격 상승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부동산 가격을 뒷받침할 경제의 성장 동력이 가동되고 있다는 얘기다. 현지에 진출한 한 국내 건설사 관계자는 “아직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고 본다” 며 “고급 아파트들도 가격이 하락세가 아니며 안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안정 적인 모기지 시스템과 주택 및 부동산 보유 제한이 없는 점도 카자흐스탄 부동산 시장의 전망을 밝게 만드는 요소다.

     
    4) 농 업

    카자흐스탄은 세계 10대 곡물 생산 국가이자, CIS 국가 중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뒤를 이어 제 3위의 곡물 생산국가로서 전체 GDP 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8.5% 수준이다. 전체 농지 규모는 2005년 기준 14,842,000 ha 이며, 주요 농업 지대는 코스타나이주(14.2%), 알마티주(13.6%), 남카자흐스탄주(12.3%), 북카자흐스탄주(12.1%), 아크몰라주(11.7%), 동카자흐스탄주(9.9%) 등이다. 전반적으로 카자흐스탄의 농업분야는 높은 물류비용과 낙후된 생산설비로 인해 생산성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2004-2010년 농업발전계획을 발표하고 농업분야 육성을 추진하고 있어 농업생산성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곡물 이외에 카자흐스탄은 세계 4위의 면화생산국으로서 세계 생산량의 0.5%인 40만 톤의 면화를 매년 생산하고 있어 면화를 이용한 섬유산업 발전 추진 잠재력이 높은 상황이다. 면화재배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은 남카자흐스탄 주이다.

     
    5) 금융산업

    2001년부터 카자흐스탄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금융분야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GDP 대비 금융분야 자산규모는 이미 폴란드와 헝가리에 필적하는 수준이고 지금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금융분야는 2001년 이후 연평균 59% 성장하였으며, 2003년 이후부터는 73%라는 경이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금융 분야 성장 현황]

    금융 분야 성장 현황
    구분 연도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자산 (단위: 십억$) 39.6 39.6 39.6 39.6 39.8 39.8
    GDP 대비
    금융자산 비율
    186 193 183 188 208 221

    출처 : 카자흐스탄 중앙은행

    특히 지난 5년간 카자흐스탄 은행은 평균 2배 이상의 자산규모 신장과 함께 순이익도 평균2배 이상 확대된 상황이며 카자흐스탄 정부의 금융 분야 발전 추진에 힘입어 금융분야의 신장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알마티를 중앙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육성한다는 목표 하에 2008년 완공을 목표로 알마티에 “알마티 금융센터(Regional Financial Center of Almaty City: RFCA)” 건설 중이다.

     

    4. 교역 현황

    카자흐스탄 대외교역량이 2003년부터 최근 4년 동안 매년 100억 달러 이상씩 증가하는 급속한 증가를 유지한 결과 2007년 말 795억 달러를 돌파하였다. 이는 전년보다 거의 41.8% 늘어난 것으로서 2003년에 비하면 4년 사이에 무려 3.5배나 늘어난 규모이다. 교역수지는 2006년에 비해 2.1억 달러 증가해 거의 146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경제 전문가들은 "이는 카자흐스탄의 전체 수출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유와 지하광물 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수출금액이 많이 상승한 덕분"이라고 평가한다.

    1) 2003~2007연도별 카자흐스탄 교역 현황 (억 달러)
    2003~2007연도별 카자흐스탄 교역 현황
    구분 2003 2004 2005 2006 2007
    교역량 212.2 328.7
    (54.9%)
    452.0
    (37.5%)
    619.2
    (36.9%)
    795.7
    (41.8%)
    수출 129.0 200.9
    (55.7%)
    278.4
    (38.5%)
    382.5
    (37.3%)
    469.7
    (22.7%)
    수입 83.2 127.8
    (53.6%)
    173.5
    (35.7%)
    236.7
    (36.4%)
    326.0
    (37.7%)

    * ( ) 안은 전년대비 증가율 / 출처 : 카자흐스탄 통계청, WTA


     

  • eurasiaturk 2016-07-03 조회수:3181

    Kazakhstan

     

    종합개관

     

    1. 위치

    카자흐스탄의 위치도

    [카자흐스탄의 위치도]

    북위 48도, 동경 68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중앙아시아에 속한다. 북쪽으로 러시아연방, 동쪽으로 중국, 몽골, 남쪽으로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접경, 서쪽으로는 카스피해(海)에 면하고 있다. 총 국경선 길이는12,012 km (러시아 : 6,846km, 중국 : 1,533km, 우즈베키스탄 2,203km, 키르기스스탄 1,051km, 투르크메니스탄 379km) 이다.

     

    2. 일반개황

    데이터 테이블
    국 호 카자흐스탄 공화국 (Republic of Kazakhstan)
    ※ 카작어표기:Қазақстан, 러시아어표기:Казахстан
    독립일 1991년 12월 16일 (from Soviet Union)
    수 도 아스타나 (Astana:인구 61만 명)
    97.12 이전 수도 : 알마티 (Almaty : 인구 164만 명)
    영토면적 2,717,300㎢
    ※ 세계 9위, 남한의 약 27배, 한반도의 12배
    인 구 1,556.5만 명 (2007.12)
    ※ 남한 인구수의 약 1/3
    민족구성 카작인(57.6%, 872만), 러시아인(27.2%, 407만), 우크라이나인(3.1%, 47만), 우즈벡인(2.7%, 40만), 독일인(1.6%, 24만), 위구르인(1.5%, 22만), 따따르인(1.6%, 23만) 등 다민족국가.
    ※ 한민족(고려인)은 약 10만 명으로 0.7%(8번째)
    종 교 이슬람교 47%(대다수 수니파), 러시아정교 44%, 개신교 2%, 기타 7%
    언 어 카작어, 러시아어 공용어
    평균수명 67.55세 (남성 : 62.24세, 여성 : 73.16세)
    문맹률 0.5%
    대통령 및 임기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Nursultan Nazarbayev) / 임기 5년
    ※ 91.12 취임, 1999.2 -재선, 2005.12 -3선
    의 회 양원제 / 상원(Senate): 47명 하원(Majlis): 107명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제
    주요정당 누르오탄당, 루하니야트당, 아크졸당, 전국민사회민주당 등
    화폐단위 텡게 (Tenge) ※ 1$ ≒ 122.55 tenge (2007)
    국내총생산(GDP) 1025억$ (2007) ※ ppp기준 : 1615억$ (2007)
    1인당 GDP 6800$ (2007)
    수출입 수출액 : 448억 8천만 $ (2007)
    ※ 수출품목 : 석유와 석유제품, 철금속, 화학제품, 곡물 등
    수입액 : 299억 1천만 $ (2007)
    ※ 수입품목 : 기계, 장비, 금속제품, 식료품 등
    주요산업 석유, 가스 등 에너지산업, 철, 비철금속 등 채굴 및 가공업
    주요자원 원유(세계 7위, 가채 매장량 : 322억배럴, 추정매장량 : 966억 배럴), 천연가스, 아연, 텅스텐(매장량 세계 1위), 우라늄, 은, 연, 크롬(세계 2위), 구리, 망간(세계 3위) 등 다수 광물자원 보유
    행정구성 14개 주, 2개 특별시 (아스타나, 알마티)
    주요도시 심켄트(164만명), 카라간다(128만명), 코스타나이(97만), 타라즈(96만), 파블로다르(85만), 콕쉐타우(83만)
    주요경축일 1.1 새해, 3.8 여성의 날, 3.22 나우르즈, 5.1 카자흐스탄 국민화합의 날, 5.9 승전기념일, 8.30 제헌절, 10.25 공화국의 날, 12.16 독립기념일

     

    3. 국기

    국기

    파란 하늘과 미래의 희망을 상징하는 하늘색 바탕에, 깃대 쪽에는 ‘국가 장식(national ornamentation)’ 이라고 부르는 민족 전통의 무늬가 수직으로 있고, 중앙에는 32개의 햇살을 가진 금색 태양과 스텝 지역에 사는 독수리가 나는 모양의 금색 그림을 넣었다. 가로세로 비율은 2:1이다. 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후 1992년 6월 4일 제정하였다.

     

    4. 국가문장

    국가문장

    구소련 해체 후 독립하게 되면서 국가문장을 제정하였다. 하늘색은 하늘을, 노란색은 농업을 상징하는데, 유목 민족인 카작인들이 농업을 상징하는 노란색을 사용한 것은 소비에트 시절 카자흐스탄이 농업 중심지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또한 유니콘은 카자흐스탄의 독립을 상징한다. 중앙에 위치한 바퀴 모양의 문양은 유목 민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이는 사실 바퀴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카작인들이 전통 가옥인 ‘키으즈 위’를 위에서 보았을 때, 중앙에 위치한 ‘샹으락(돔 모양의 연기가 나는 부분)’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카자흐스탄 국가 통합의 상징이자 카작 민족의 유목민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5. 국가

    이미지

    Shamshi Kaldayakov (카작어: Шәмші Қалдаяқов)는 카작인 작 곡가이다. 그는 1930년 8월 15일에 태어났고, 1992년 2월 29일 알마티에서 사망했다. 1956년에 그는 예전부터 카자흐스탄 국민들 사이에 애국의 노래로 널리 불리던 ‘나의 카자흐스탄’ (카작어: Менің Қазақстаным)을 작곡했으나, 지금의 국가는 2006년에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변경한 것이다. 1992년부터 2006년 1월 6일까지는 과거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Kazakh SSR) 국가>의 가락에 새로운 가사를 붙인 노래를 공식국가로 불렀다.

    [Shamshi Kaldayakov]

    국가

    [카자흐스탄 국가 악보]

    데이터 테이블
    Kazakh(가사) English(가사)
    Алтын күн аспаны,
    Алтын дән даласы,
    Ерліктің дастаны -
    Еліме қарашы!

    Ежелден ер деген,
    Даңқымыз шықты ғой,
    Намысын бермеген,
    Қазағым мықты ғой!
    Қайырмасы:
    Менің елім, менің елім,
    Гүлің болып егілемін,
    Жырың болып төгілемін, елім!
    Туған жерім менің — Қазақстаным!

    Ұрпаққа жол ашқан,
    Кең байтақ жерім бар.
    Бірлігі жарасқан,
    Тәуелсіз елім бар.

    Қарсы алған уақытты,
    Мәңгілік досындай.
    Біздің ел бақытты,
    Біздің ел осындай!
    Қайырмасы:
    Sky of golden sun,
    Steppe of golden seed, [3]
    Legend of courage -
    Take a look at my country.

    From the antiquity
    Our heroic glory emerged,
    They did not give up their pride
    My Kazakh people are strong!

    Chorus:
    My country, my country,
    As your flower I will be planted,
    As your song I will stream, my country!
    My native land — My Kazakhstan!

    The way was opened to the posterity
    I have a vast land.
    Its unity is proper,
    I have an independent country.

    It welcomed the time
    Like an eternal friend,
    Our country is happy,
    Such is our country!
    Chorus:

     

    6. 참고문헌

    - 김일수 외, "중앙아시아의 거인 카자흐스탄", 궁리, 2008

    - CIA - The World Factbook 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

    - 위키피디아 www.wikipedia.org

    - 엔싸이버 두산백과 www.encyber.com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www.globalwindow.org

    - 국가정보원 www.nis.go.kr

    - 카자흐스탄 한인회 www.kazkorean.com

    - 월드맵파인더 www.worldmapfinder.com

    - 카자흐스탄 통계청 www.stat.kz

    - 카자흐스탄 중앙은행 www.nationalbank.kz

    - BP www.bp.com

    - 주 카자흐스탄 대사관 kaz.mofat.go.kr

    - 외교통상부 국가별정보DB countryinfo.mofat.go.kr

    - 한국관세청 customs.go.kr

    - 네이버뉴스 news.naver.com

    - 문화일보 기획 시리즈 "기후변화 최전선을 가다" www.munhwa.com/news/series.html?secode=1487

     

     

    자연환경

     

    1. 지형

    카자흐스탄의 지형도

    [카자흐스탄의 지형도]

    아티라우의 중심을 흐르는 우랄강 챠른 협곡아랄해의 위성사진 (1985)
    [아티라우의 중심을 흐르는 우랄강]   [챠른 협곡]                          [아랄해의 위성사진 (1985)]
    발하쉬호의 위성사진 아랄해의 위성사진 (2008)

    [발하쉬호의 위성사진]                [아랄해의 위성사진 (2008)]

     

    대부분이 산악지대인 동·남부와 동북부지역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토는 스텝지역 으로 평지이다. 천산산맥의 북단이 위치해 있는 동·남부지역은 7,010m의 한 텡그리 (Khan Tengri)산을 최고봉으로 해발 4,500m이상의 산들이 위치한 산악지대이다.

    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카자흐스탄 동부지역은 알타이 산맥 남단에 위치하고 있어 해발 2,000-3,000m에 이르는 산악지대와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강과 호수로는 아랄해, 시르다리야, 일리강, 이르티쉬강, 이심강, 우랄강과 챠른 협곡, 발카쉬호, 자이산호가 있다.

    북부지역은 대부분 스텝지역으로서 수목이 자라지 못하는 곳이나 일부 농업이 가능한 지역을 중심으로 1950년대 말부터 추진된 소련의 처녀지 개간정책으로 현재는 밀 등 곡물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북부지역 이남부터 남부에 이르는 영토는 사막 또는 흙사막 지역으로서 경작이 불가능하다. 아랄해 서쪽으로부터 카스피해에 이르기까지 우스티우르트(Ustyurt) 고원사막이 펼쳐져 있으며 아랄해 동․남쪽에 위치한 키질쿰(Kyzylkum) 사막은 우즈베키스탄과 공유하고 있다. 아랄해와 발하쉬(Balkash)호수 사이에는 베탁크달라(Bethakdala) 흙사막이 위치하고 있으며, 일리(Ili)강이 흘러 들어가는 발하쉬 호수는 아시아에서 4번째로 큰 호수로서 호수 동쪽 부분은 염수이고 서쪽부분은 담수이다.

    ※ 아랄해의 환경문제- (원인과 현황)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염호(鹽湖)인 중앙아시아의 아랄해가 급속한 수량감소와 오염에 신음하고 있다. ‘바다’란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거대한 호수였던 아랄해가 바닥을 보이게 된 가장 큰 원인은 60년대부터 구소련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했던 관개공사이다.

    소련은 주요 수원인 시르다리야강과 아무다리야강의 물길을 돌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에 목화밭 등 광대한 경작지를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로인해 아랄해의 수량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또 잉어, 철갑상어 등이 멸종해 연안어업이 폐업상태에 이르렀으며, 염분과 광물질 함유량의 증가와 강물을 타고 흘러 드는 살충제 및 화학비료 때문에 생태계에는 엄청난 피해가 초래됐다. 2개로 갈라진 아랄해의 북쪽 호수는 카자흐스탄에, 남쪽은 우즈베키스탄에 속하게 되었는데, 우즈벡 쪽 남아랄해는 2003년 다시 수면이 낮아져 동서로 나뉘었다. 3개가 된 호수의 총 면적은 1만7160㎢로 40년 전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복구 대책) 카자흐 정부는 2005년 다이크코카랄이라는 대규모 댐을 지어 북쪽에서 아랄해로 흘러오는 또 다른 강 시르다리야의 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카자흐 정부의 노력으로 북아랄해쪽은 최근 수면이 올라가 수상생물이 늘고 있다. 카자흐의 항구도시 아랄스크에 접했던 호안선은 100㎞나 후퇴했다가 지금은 25㎞ 지점까지 되돌아왔다. 문제는 남아랄해인데, 여전히 면화에 외화 수입을 의존하고 있는 우즈벡 정부는 사실상 아랄해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다리야는 계속 관개수로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아랄해는 해안선이 수백㎞씩 아래로 내려갔다. 1994년 1월 카자흐, 우즈베크,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아랄해 주변 5개국은 연간 예산의 1%씩을 갹출해 아랄해 복구를 위한 기금, 일명 ‘아랄 펀드(Aral Fund)’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즈벡 정부는 말라가는 아랄해를 그대로 두고 유전, 가스전 개발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6년 8월 우즈벡 정부는 국영 에너지회사 우즈벡네프테가즈, 러시아 루크오일, 한국 석유공사,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로 구성된 컨소시엄과 협정을 체결해 아랄해 에너지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남아랄해는 과거의 어촌도시들에서 호안선이 북쪽으로 200㎞ 이상 후퇴한 데다, 그나마 우즈벡 정부가 얼마 안 남은 호수 주변지역의 출입까지 통제하고 있어 ‘숨겨진 호수’가 돼버렸다. 2006년 세계은행이 아랄해 보전 계획에 본격적으로 착수했지만 대부분의 지원은 카자흐가 적극 추진하는 북아랄해 복원에 치중해 있다.

     

    2. 기후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영토가 방대할 뿐 아니라 구릉지가 많아 뚜렷한 대륙성 기후를 보이고 있다.
    - 겨울은 북부에서는 길고 추우며(1월 평균기온 -18°) 중부에서는 추운 편이나 남부에서는 온난한 편(1월 평균기온 -3°)
    - 여름은 보통 길고 건조한데 북부에서는 따뜻하고(7월 평균기온 19°) 중부는 더우며 남부는 무더운 날씨(7월 평균기온 28°-30°)

    카자흐스탄은 전반적으로 강우량이 적으며 카자흐스탄 전 지역에서 발생하는 강풍이 특징으로서 겨울에는 남서풍이 북부지역 을, 북동풍이 남부지역에 강하며 여름에는 북풍이 카자흐스탄 전 지역을 영향권으로 강하다.

     

    3. 토양 및 식생

    카자흐스탄의 행정구역

    [카자흐스탄의 행정구역]

    시베리아로 연속되는 북부는 토양이 밤색토양과 갈색토양으로 부식되었으나, 다른 대부분의 평야는 부식이 적은 회색토로서 알칼리성 토양이다. 이에 따라 식물도 반사막이나 사막성의 저목류이고, 동물은 야생토끼, 마르모트 등의 설치류와 여우, 늑대, 야생당나귀, 영양 등이 서식한다.

     

    4. 행정구역

    데이터 테이블
    주/특별시 수 도 면 적(km²) 인구수
    카라간디주 카라간디 428,000 128만 7천명
    악토베주 악토베 300,600 66만 천명
    동카자흐스탄주 오스케멘 283,300 89만 7천명
    크즐오르다주 크즐오르다 226,000 59만 명
    알마티주 탈디코르간 224,000 86만 명
    코스타나이주 코스타나이 196,000 97만 5천명
    망기스타우주 악타우 165,600 31만 6847명
    서카자흐스탄주 오랄 151,300 59만 9천명
    잠빌주 타라즈 144,000 96만 2천명
    파블로다르주 파블로다르 124,800 85만 천명
    북카자흐스탄주 페트로파블 123,200 58만 6천명
    아크몰라주 콕셰타우 121,400 82만 9천명
    남카자흐스탄주 쉼켄트 118,600 164만 4천명
    아티라우주 아티라우 118,600 38만 명
    ① 아스타나시 000,710.2 60만 2백 명
    ② 알마티시 000,324.8 122만 6천3백 명
    ※ 바이코누르시 000,057 7만 명

    1) 아스타나 (Astana)
    아스타나 도심지 아스타나 대통령궁
    [아스타나 도심지]                       [아스타나 대통령궁]
     

    옛 이름은 첼리노그라드(Tselinograd)이다. 이심강(江) 상류 연안에 있으며, 카자흐스탄 횡단철도와 남시베리아철도가 지나는 분기점이다. 원래 이름은 아크몰린스크(Akmolinsk)로, 1824년 요새로 만들어졌다. 19세기 중엽부터 도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뒤, 1868년 이후 러시아 지배 아래서 옛 카자흐스탄 지역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 뒤 1950년대 흐루쇼프(Nikita Sergeevich Khrushchyov)가 카자흐스탄 대초원을 밀밭으로 개간하면서 첼리노그라드(Tselinograd)로 이름이 바뀌었다. 첼리노그라드는 '처녀지(妻女地)의 도시'라는 뜻이다. 1991년 12월 카자흐스탄이 독립하면서 이듬해 다시 아크몰라(Akmola)로 고친 뒤, 1997년부터 수도가 되었다. 아스타나는 알마티에서 아크몰라로 수도를 옮긴 이듬해 새롭게 바뀐 명칭이다.

    아크몰린스크 시기부터 교역과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고, 1950년대 이후에는 북(北) 카자흐스탄 농업 개척의 중심도시로 발전하였다. 제육·제분·유지제조·맥주양조 등 농축산물 가공업과 농기계 및 수송용 기계, 건설자재 산업 등이 활발하다. 특히 수도(1997년 알마티에서 이전)가 된 이후 건설업이 빠르게 발전해, 1999년 31만 3000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2005년에는 5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2개의 철도가 지나는 교통 중심지이며, 농업대학·의과대학·교육대학·공과대학 등 교육기관을 비롯해 각종 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2004년 11월 서울특별시와 자매결연하였고, 한국의 건설업체도 여럿 진출해 있다.

    2) 알마티(Almaty)
    알마티 도심지 알마티 거리
    [알마티 도심지]                          [알마티 거리]  
    사유즈호우주선 발사 장면
    [사유즈호]                           [우주선 발사 장면]
     

    남동부의 자일리스키·알라타우산맥 산록의 해발고도 600~900m에 위치하며, 주위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기와 대기가 청정하다. 옛 이름 알마아타는 ‘사과의 아버지’라는 의미로, 19세기 러시아의 요새로 출발하여 베르니라고 불렀다. 1917년에는 인구 3만 4000명의 소도시였으나, 30년 투르크시프 철도(투르케스탄 시베리아 철도)의 개통으로 발전하였다. 민족 구성은 러시아인·카자흐인·우크라이나인·위구르인·타타르인·한국인 등이며 유럽풍의 도시이다.

    주요산업은 공업이며, 광산 야금용의 발전 장비, 농업용 기계공업, 포도통조림 등의 식품공업, 면공업이 발달하였다. 학술 문화의 중심지로서 카자흐종합대학이 있고, 교외의 스케이트링크인 메데우는 국제적으로도 유명하다. 인구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도시계획에 의해 공원이 정비되었고, 도로는 넓고 가로수가 무성하다.

    ※ 바이코누르 우주기지(Baikonur Cosmodrome)
    카자흐스탄 서남부 중심 도시인 크즐오르다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160km를 가면 시르다리야 강변에 자리 잡은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를 만날 수 있다. 1961년 4월 12일 아침 세계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지구 궤도로 비행할 때 탔던 우주선 보스톡(Vostok)이 발사된 곳이 바로 이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이다. 그 후 세계 최초의 여자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슈코바를 비롯하여 150여 명의 우주인들이 이곳에서 우주로 비행했고 우리 귀에 익은 우주 정거장 미르(mir), 사유즈(Soyuz), 프로그레스(Progres) 등이 이곳에서 발사되기도 했다. 현재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국기가 나란히 게양되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이 이 우주기지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소련이 와해된 이후 양국은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의 소유권 운영권 문제를 둘러싸고 지루한 협상을 벌인 끝에 2004년 1월 양국은 러시아가 2050년까지 이 우주기지를 사용하고 카자흐스탄은 연간 1억 5,000만 달러의 임대료를 러시아로부터 받는 데 합의한 바 있다. 러시아가 대부분의 군사용 로켓 발사를 러시아 북서쪽에 위치한 플레세츠크(Plessetsk)로 이전하여 지금은 통신 위성 발사 등 평화적인 목적의 로켓 발사기지로 이용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탑승한 우주선 발사도 이 바이코누르 기지에서 이루어졌다.

    3) 민족화합을 위한 행정구역 재편
    카자흐스탄의 14개 주와 주도

    [카자흐스탄의 14개 주와 주도]

    카자흐스탄은 1996년 행정구역 개편을 대대적으로 단행하였다. 이전까지는 주별로 특정 민족이 거주하는 비율이 높았었다. 따라서 카자흐스탄 정부는 국가 융합차원에서 특히 북부의 러시아인 중심주와 중부지역의 카자흐인 중심주를 하나의 주로 통합하는 방식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러시아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러시아 국경 쪽 주와 바로 아래의 카자흐인 중심주가 하나로 통합된다는 원칙에 따라 러시아인 중심의 코스타나이주와 카자흐인 중심의 투르가이주가 코스타나이주로 통합되었고, 파블로다르주와 북카자흐스탄주는 북카자흐스탄주로, 러시아인 중심의 동카자흐스탄주와 카자흐인 중심의 세미팔라친스크주가 동카자흐스탄주로 통합되었다. 또한 남수도 알마티에 인접한 탈디코르간주는 알마티주로 통합되었다. 이와 같은 인위적인 행정구역 합병은 지역단위 민족특성이 더욱 심화되는 것을 인위적으로 방지하려는 카자흐스탄 정부의 결정이기도 했으며, 다민족사회에서 개별 민족 집단의 특성이 두드러짐으로 인해 사회적인 혼란을 초래하기보다는 인위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서로 융화할 수 있도록 하는 카자흐스탄 정부의 노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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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화유산-미르성

    [세계문화유산-미르성]

    당시 벨로루시를 러시아의 일부로 만들려는 정책에 따라 벨로루시어로 책을 출판하는 것을 금했고 벨로루시에 러시아정교회가 세워졌다. 벨로루시의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1917년 2월 라다위원회를 결성하여 자주권을 얻으려고 하였으나, 11월 볼셰비키가 집권하자 민스크에 붉은 군대가 급파되었고 라다 위원회는 해체되었다. 1918년 3월에 독일과 러시아간 체결된 브레스트-리톱스크 조약으로 독일은 벨로루시의 대부분 지역을 점령하였다. 1939년 9월 벨로루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게 1921년 빼앗겼던 영토를 수복하였다. 1941~1944년에 독일의 점령으로 130만 명이 희생되고 모든 도시가 폐허가 되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벨로루시의 영토가 확약되었다. 1990년 6월 27일에는 BSSR은 국가 자치권을 선언하였고, 1991년 8월 25일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은 공식적으로 벨로루시 공화국(The Republic of Belarus)이 되었다. 1991년 12월 8일 브레스트 근방 벨라베크스카야 푸쉬차에서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과 우크라이나의 레오니드 크라브추크와 함께 공식적으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의 해체와 벨로루시의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선언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1992년 2월 10일 한국과 벨로루시 간의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북한과는 우리나라보다 일주일 앞선 1992년 2월 3일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1997년 4월에는 벨로루시 대통령인 루카셴코(A.G. Lukashenko) 대통령이 방한했다. 1997년에는 주한 벨로루시 대사관이 개설(2006년 1월: A.E. Guryanov 현임 대사 임명, 2006년 3월 24일: 신임장 수여)되었고, 2005년 김재섭 주 러시아 대사, 겸임대사로 임명(2005년 10월 27일: 신임장 수여)되었다. 2001년에는 벨로루시 외무부장관과 우리 외교통상부 장관 회담이 이루어졌고 2002년 6월 이종남 감사원장 대통령 특사로 벨로루시를 방문했다. 2003년 2월에는 제 13차 비동맹운동 회의(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에서 벨로루시 외교부 장관과 한국 외교통상부 차관 회담이 이루어졌다.

    2004년 4월에는 김종갑 산업자원부 차관보를 비롯한 한국산업기술협력단이 벨로루시를 방문하여 벨로루시 총리를 접견했다. 2004년 5월에는 V.P. Pugachev 벨로루시 외교부 차관이 방한하여 외교부 간 협의회에 참석하고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과 기타 정부 인사들과 접견을 가졌다.

    2005년에는 여느 해보다도 잦은 교류가 이루어졌다. 2005년에 양국 의원친선협회가 출범되었고, 2005년 7월 국회 한․벨로루시 의원친선협회(협회장: 오영식의원) 에서 벨로루시를 방문했다. 2005년 8월 25일에서 28일에는 국제사회봉사의원연맹 총회의 일환으로 G.V. Novitsky 의장을 비롯한 벨로루시 의회 상원 대표단 방한하여 김원기 국회의장과 접견했다. 2005년 7월 17일~20일에는 B.V. Batura 모길료프 주지사 대표단 지역정부 협력 활성화를 목적으로 방한을 가졌다. 2005년 5월, 11월에는 박윤국 포천시장 대표단이 벨로루시를 방문하고 벨로루시 모길료프 시와 포천시는 협력 협정을 서명했다. 2005년 11월 10~13일, L.A. Postoyalko 벨로루시 보건부 장관이 한국 실무방문을 가졌다. 2006년 5월에 문원경 소방방재청 청장이 벨로루시를 방문했다. 양국 간에는 각국 외무부 담당 차관보, 국장급 협의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으며 최근 회의는 2005년 8월 민스크에서 개최되었다.

    2006년 4월에는 명예영사를 임명(윤경덕«IK Semicon»사장, 수년 간 벨로루시 «Integral»사 반도체 수입)하고 2006년 11월 쉴로팍 벨.한 의원친선협회장 방문, 2007년 2월 가이쇼낙 외무부 아태담당 차관보 방한, 2007년 7월 홍기화 KOTRA 사장 벨로루시 방문, 2007년 9월 바리예프 벨로루시 비상사태부 장관이 방한하였다. 그리고 동년 11월 시도르스크 벨라루시 총리가 방한했다.

    2008년에는 7월에 파브로브 민스크 시장, 9월에는 에르마코바 상원의원, 11월에는 드미트리 주크 벨라루시 통신사장이, 12월에는 마츄쉬코프 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이 각각 한국을 방문했다. 동년에 한국에서는 안호영 외교부 통상교섭조정관이 10월에, 추규호 법무부 출입국 및 외국인 정책 본부장이 벨라루시를 방문했다.

    2009년에는 임재홍 외교부 기획조정실 실장이 1월에,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이 4월에, 이용준 외교차관보가 9월에 각각 벨라루시를 방문했고, 동년 7월에 베드리츠키 벨라루시 상원 사무총장이, 11월에 리바코프 대통령 외교보좌관이, 그리고 12월에 유스케비치 벨한의원친선협회장이 각각 한국을 방문했다.

    2010년에는 박시환 대법관, 박응격 행정연구원장이 3월과 4월에 벨라루시를 방문했고, 동년 10월에 라수타 비상사태부 차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1) 양국조약

    데이터 테이블
    양국조약 시기
    무역-경제 분야 협조 의정서 1995년 6월
    정부 간 투자보장협정 1997년 4월
    이중과세방지협정 2003년 6월
    정부간 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 2004년 10월
    정부간 무역협정 2004년 11월
    외교부협력약정 1997년 4월
    감사원 간 협력약정 2004년 10월
    소방재청 간 협력약정 2006년 7월
    상공회의소간 협력약정 2006년 9월

    현재, 양국 간 무역경제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벨로루시의 대 한국 주요 수출 상품은 집적회로, 칼륨비료, 화학섬유, 유리섬유, 탄소섬유, 반도체 기기와 광학기기, 레이저 장비, 금속, 베어링 등 총 30~35개 품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대 한국 수출업체는 Integral사, 모길료프와 스베틀로고로스크(Khimvilokno-화학섬유)사, 폴로츠크(Steklovolokno-유리섬유)사, 벨로루시칼륨(Belaruskalii)사 등이다. 벨로루시의 대 한국 수입은 전체 100여개 품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요 수입품은 화학섬유, 자동 정보처리기기, 벨로루시에 생산되지 않는 종류의 전자파, 방사능 및 의료 장비, 가전(주로 세탁기 등), 컴퓨터 부품, 의류, 승용차 등이 있다. 벨로루시는 선진 산업과 첨단 과학기술을 자랑하고 있고 유럽 지역에 관심을 갖는 한국 기업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벨로루시는 동유럽과 러시아, 아시아를 연결하는 도로와 철도, 가스∙송유관, 통신시스템이 교차하는 교통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투자자들의 CIS 시장에 진출에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2) 한국-벨로루시 수출입 현황

    (단위: 천불)

    데이터 테이블
    02년 03년 04년 05년 06년 07년 08년 09년 10년
    수 출 7,287 9,857 16,885 17,715 31,147 35,059 53,337 23,796 39,171
    수 입 16,918 9,994 3,623 4,037 6,588 13,158 16,361 8,374 30,093
    총교역량 24,205 19,851 20,508 21,752 37,735 48,217 69,698 32,170 69,264

     

    출처: 무역협회

     

     

     

    사회문화

     

    1. 행정구역

    벨로루시는 6개의 주(州)로 구성되어 있고 각 주는 6개의 도시 및 기타 지방단위로 이루어진 군으로 구성된다. 민스크주, 고멜주, 브레스트주, 그로드나주, 비쳅스크주, 마길료프주가 벨로루시의 주이고, 지방도시 또한 민스크, 고멜, 브레스트, 그로드나, 비쳅스크, 마길료프(시나 군)로 구성되어 있다. 행정구역과 행정중심지의 이름은 동일하다. 벨로루시에는 약 1,000여개의 도시가 있으며 그 중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는 12개이다. 수도 민스크의 인구는 172만 명이다.

     

    2. 수 도

    praspekt Skaryny

    [praspekt Skaryny]

    민스크는 벨로루시의 수도이고, 북위 53도 동경 27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민스크에는 약 172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벨로루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민스크는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한다. 즉 흑해와 발트해를 연결하는 모스크바- 브레스트 선과 키쉬뇨프-빌리뉴스 선의 교차지점에 위치해 있다. 지리적으로 동과 서, 남과 북이 오가는 교역의 십자로에 위치하고 있다.
    민스크는 공업도시로 기계 공업이 발달되어 있으며 과학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13개의 대학과 각종 연구소가 집중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민스크는 철저히 파괴되었지만 그 폐허를 딛고 재건하였다. 그래서 재건된 도시이기 때문에 유구한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지만 국제적인 분위기를 주는 민스크는 이전이 여느 다른 소련도시들보다도 깨끗하고 밝은 느낌을 준다. 프라스펙트 스카이니(praspekt Skaryny)는 민스크의 주요 거리이고 산책로이다.

     

    3. 언어 및 민족구성과 인구

    벨로루시 민족구성

    [벨로루시 민족구성]

    공식언어는 벨로루시어와 러시아어이며, 소련 시대에는 80%의 벨로루시 어린이들이 러시아어 교육을 받았고 모든 비즈니스와 정부업무의 공식어는 러시아어이었다. 그러나 1990년에 국가 공식 언어로 벨로루시어가 채택되어 현재, 거리의 이름들이 개명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1995년 러시아어가 국민투표에 의해 공용어로 채택됨에 따라 아직도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이다. 러시아어, 영어와 독일어가 비즈니스 회담에서 대표 언어로 쓰인다.
    민족은 벨로루시 인 81.2%, 러시아 11.2% 폴란드 3.9%, 우크라이나 2.4% 그리고 기타 1.1%로 이루어져 있다.
    2007년 현재 총인구는 969만 명으로 인구증가율은 -0.12%, 출산율은 약 0.95% (1,000명당 9.5명), 사망률은 약 1.4% (1,000명당 13.98명) , 영아 사망률은 약 0.64% (1,000명당 6.4명), 평균 기대수명은 69세 (남자 63.2세, 여자 75세), 인구 전체의 평균연령은 38.2세로, 남자는 35.1세, 여자는 41.1세이다.

    연령별 인구구성

    데이터 테이블
    구 성 2007년
    0-14세 비율 14.7%
    남자 733,010
    여자 691,734
    15-64세 비율 70.4%
    남자 3,327,119
    여자 3,520,690
    65세 이상 비율 14.9%
    남자 471,863
    여자 980,317

     

    4. 문 화

    야꿉 꼴라스 박물관 아카데미 극장
    [야꿉 꼴라스 박물관]                  [아카데미 극장]
     
    19세기 중엽부터 벨로루시의 문화는 괄목할 만한 성장 을 보여 왔다. 문학작품에 벨로루시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1890년대 초기 시인 양카 꾸팔라(Yanka Kupala) 야꿉 꼴라스(Yakub Kolas)에 의해 벨로루시어는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주요 작가로는 19세기 고전문학의 개척자로 야꿉 꼴라스와 20세기 문학의 작가는 나탈라 아르센네바(Natalla Arseneva)로 대표작은 ‘푸른 하늘 아래’(Beneath the Blue Sky)이다.

    벨로루시의 발레와 오페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1932년 민스크에 발레와 오페라를 위한 대극장이 설립되었고, 1970년 벨로루시 음악 아카데미에 기반을 둔 뮤지컬 코미디 극장이 설립되었다. 벨로루시 문화부의 후원 하에 벨로루시 국립 필하모니, 벨로루시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정기 공연을 갖고 있다. 1920년 설립된 양카 꾸팔라 벨로루시 국립 아카데미 극장(Yanka Kupala Belarusian State Academic Theater), 그리고 1932년 바브루이스크(Babruysk)에 설립된 고르끼 러시아 극장 (Gorky Russian Theater), 1925년 민스크에 설립된 야꿉 꼴라스 벨로루시 국립 아카데미 극장 (Yakub Kolas Belarusian State Academic Theater)이 벨로루시 극장의 대표이다.

     

    5. 종 교

    성 소피아 대성당

    [성 소피아 대성당]

     

     

     

  • eurasiaturk 2016-07-03 조회수:812

    Belarus

     

     

    정치/경제 

     

     

    정 치

     

    1. 대통령

    루카셴코 대통령

    [루카셴코 대통령]

    벨로루시의 정부형태는 대통령 중심의 공화제 형태이다.
    대통령은 벨로루시 공화국의 원수이며 임기가 5년이었으나, 1999년 개헌으로 5년에서 7년으로 임기가 연장이 되었다. 그러나 2004년 개헌으로 대통령의 임기가 다시 5년이 되었고 연임이 가능해졌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A. Lukashenko)이 1994년 7월 20일 최초의 대통령 직선제로 당선되었다. 루카셴코는 물가상승 억제, 민영화 금지, 부패근절, 조직범죄 타도를 강조하며 러시아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공약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압도적인 지지율로 2001년 9월(재선)과 2006년 3월19일(삼선)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만 18세 이상의 모든 국민은 투표권을 갖는다. 벨로루시의 총리는 2003년 12월 19일에 취임한 세르게이 시드로스키(Sergei Sidorsky)이다. 벨로루시 공화국의 주요 정당으로는 벨로루시 공산당, 농업당, 인민전선, 자유민주당 등이 있다.

     

    2. 입법기관

    의사당 내부

    [의사당 내부]

    1996년 개헌으로 벨로루시의 입법부는 단원제에서 양원제로 교체되었다. 양원제는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다. 상원은 64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4년, 지방의회 선출 56명과 대통령 임명 8명이다. 하원은 110명으로 구성되며 4년의 임기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12명 중 6명을 임명하며, 6명은 하원에서 임명한다. 헌법은 최초의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A. Lukashenko)가 당선되었던 1994년 3월 15일에 제정되었다.

     

    외 교

     

    1. 러시아•벨로루시 국가연합 추진

    러시아와 벨로루시는 1990년대 중반부터 국가연합(Union State) 창설문제를 협의하면서 양국간에 국가연합 설립과 관련한 여러 가지 협정을 체결하였다. 예로, 1997년 4월 러시아-벨로루시 연합조약(Treaty on the Union of Russia and Belarus)을 체결하여 주권과 독립을 보전하면서 경제 통합을 추진한다는 원칙에 합의하였고, 1999년 12월 러시아-벨로루시 통합조약(Treaty on the Creation of Union State) 체결을 통해 양국간 통합의지를 재확인 하였다. 최근에는 양국간 공동 국유재산 관리에 관한 협정, 양국 시민의 동등한 권리에 관한 협정, 개인소득세 단일화에 관한 협정 등에 대해 논의하였고, 양국간 통합위원회(공동의장: 양국 하원의장)에서 통합 헌법 및 관련 협정들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통합위원회 산하 분야별 소위원회에 양국 정부 관계자들 및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통합 방안을 구체적으로 협의하고 있으며, 국가연합최고회의(Supreme Council) 구성 방안 등 일부 이견이 있는 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내용이 합의되었다.

     

    2. 러시아•벨로루시 에너지 분쟁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집권 후 에너지 자원을 무기화하여 통제를 강화하고 강력한 러시아 재건을 추진하였다. 러시아는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구소련 해체 이후 CIS 결속력 약화 및 친서방 움직임에 대응하여 영향력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벨로루시 경제는 러시아산 원유를 비관세로 도입, 석유제품으로 가공해 수출하는 것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2006년 12월 31일 러시아는 벨로루시가 2007년도 가스공급계약을 체결하도록 하였는데, 계약의 주요 내용은 2007년도 가스공급가격을 1000㎥당 47달러에서 100달러로 인상하며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유럽 수준인 250달러까지 인상하고, 가즈프롬이 벨로루시 가스배관망 회사인 Beltransgas의 지분 50%를 인수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 후 러시아는 대 벨로루시 수출 원유에 1톤당 180달러 관세(기존 무관세)를 부과하였고, 이에 벨로루시는 2007년 1월 4일 벨로루시 자국 통과 러시아산 원유에 톤당 45달러 통과세를 부과시켰다. 그에 따라 러시아는 2007년 1월 8일 벨로루시 경유 폴란드, 독일,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에 대한 러시아산 석유 공급을 전면 중단했고, 2007년 1월 10일 루카셴코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간 전화협의 후 벨로루시 정부는 자국을 경유하는 러시아산 원유에 부과하는 통과세를 철회하기로 결정했고 러시아는 석유 공급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2007년 8월 1일 가즈프롬은 벨로루시의 가스대금 미지급을 이유로 8월 3일부터 벨로루시에 대한 가스공급을 45% 축소하겠다고 발표하였고, 벨로루시는 정부 외환보유고에서 인출하여 지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경 제

    2007년 벨로루시의 경제는 2006년과 비교하여 7.8% 감소되었다. 벨로루시는 1995년 이후 소규모 구조개혁을 단행하여 물가와 환율을 통제했고 국가권력으로 기업경영을 조정하였다. 이러한 정부주도 경제 정책으로 외국인 투자가 적은 편이지만 최근 시장경제로 전환되고 있는 추세이다. 벨로루시는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와 유가 할인을 크게 받고 있으며, 러시아 유가시장에 재수출하는 덕분에 많은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에너지 가격을 세계 시장가격에 근접시키고 있어 2007년 벨로루시의 성장이 위협받고 있다. 러시아는 2007년 한 해 동안, 벨로루시 가스 가격을 1000입방미터 당 47 달러에서 100 달러까지 인상했고, 2011년까지 세계시장가격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유럽수준 가격인 250 달러까지 인상할 계획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또한 벨로루시로 운송되는 석유 수출관세를 2009년을 거쳐 점차 증가시키고, 재수출되는 러시아 석유에 대한 관세를 러시아와 분담하기로 했다. 즉, 2007년에는 70%, 2008년에는 80%, 2009년에는 85%이다.

    1. GDP

    전반적으로 평가하면, 1999년 3.4%에 불과했던 GDP 성장률이 2000년대 들어 연평균 7.5%를 기록하며 꾸준한 상승세 추세를 보여왔으며 2004년에는 11.5%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2007년에는 연초 러시아의 가스 수입가격이 110% 인상됨에 따라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에너지산업이 타격을 받아 전년보다 낮은 7.8%를 기록하였고, 향후에도 성장세가 약간 둔화될 전망이다.

    1) 경제구조
    데이터 테이블
    GDP 산업별 비중(%) GDP 요소별 비중(%)
    농업 8.9 민간소비 65.8
    산업 26.8 공공소비 16.5
    건설 6.5 투자 28.6
    운송•통신 9.8 재고투자 1.5
    무역•음식료 9.8 해외소비 12.5

    출처: EIU

    2) 주요 경제지표
    데이터 테이블
      2006 2007 2008 2009 2010
    GDP(억불) 369 448 603 490 523
    1인당 GDP(불) 3,800 4,619 6,281 5,104 5,232
    경제성장률(%) 9.9 8.2 10.0 0.2 3.0
    재정수지/GDP(%) 1.4 -0.3 1.4 -0.7 -2.0
    소비자물가상승률(%) 7.0 8.4 14.8 12.9 7.0
    환율(달러당, 루블) 2,144.6 2,146.1 2,136.4 2,789.5 3,020.0
    경상수지(백만불) -1,512 -4,071 -5,262 -6,402 -3,959
    수출(백만불) 19,835 24,329 32,804 21,339 24,380
    수입(백만불) 22,104 28,400 39,042 28,310 29,126
    외환보유액(백만불) 1,069 3,952 2,687 4,831 -
    총외채/GDP(%) 16.6 27.2 25.2 44.4 51.7
    외채상환액/총수출(%) 3.3 4.3 5.8 8.8 8.4

    출처: 한국수출입은행&EIU

    3) 외국인 투자현황

    (단위: 백만달러)

    데이터 테이블
      총액 비율(%) 직접투자 기타
    합 계 4,036,1 100.0 748.6 3,284.2
    산 업 894.0 22.2 133.6 760.3
    농 업 11.5 0.04 1.3 10.2
    교 통 106.2 2.6 9.4 96.8
    통 신 234.6 5.8 0.4 234.2
    건 설 31.3 0.8 10.3 18.3
    식 품 435.5 10.8 67.1 367.9
    유 통 2,208.3 54.7 497.3 1711.0
    기 타 15.9 0.4 3.8 12.1

    출처: 벨로루시 외무부

     

    2. 경제협력

    1) 러시아와의 관계

    러시아, 벨로루시 양국은 90년대 중반부터 국가연합(Union State) 창설 문제를 협의해 왔으며, 1997.4월 러시아-벨로루시 연합 조약(Treaty on the Union of Belarus and Russia)을 체결, 주권과 독립을 보전하면서 경제 통합을 한다는 원칙에 합의한 바 있으며, 1999.12월에는 러시아-벨로루시 통합조약(Treaty on the Creation Union State)을 체결, 양국간 통합 의지를 재확인 하였다. 최근에는 양국간 공동 국유재산 관리에 관한 협정, 양국 시민의 동등한 권리에 관한 협정, 개인소득세 단일화에 관한 협정 등을 논의하였고 통합 헌법 및 관련 협정들은 양국간 통합위원회(공동의장: 양국 하원의장) 에서 논의되고 있으며, 양국 정부 관계자들 및 전문가들은 통합위원회 산하 분야별 소위원회에 참여하여 통합방안을 구체적으로 협의 중이며, 대부분 내용이 합의되었으나 국가연합최고회의(Supreme Council) 구성 방안 등 일부 이견이 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벨로루시 루카셴코 대통령은 2005년 12월 소치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하이테크 및 우주분야에서의 협력 방안과 러시아 에너지 자원의 벨로루시 공급 방안을 포함 양국간 경제통상협력 및 군사기술협력 증진 방안을 협의한 바 있다.

    2) 유럽연합(EU)와의 관계

    EU는 러시아에 이어 벨로루시의 제2의 무역 파트너로 2006년 양자간 무역규모가 1997년 대비 7배 증가하였다. 또한 EU는 벨로루시의 최대 수출 대상국으로 전체 수출량의 약 45%를 차지한다. EU는 또한 벨로루시의 최대 투자국이다

    3) 독립국가연합(CIS) 회원국들과의 관계

    유라시아 경제공동체(EurAsEC), 단일 경제권(CES) 등 역내 다자협력 기구를 통한 CIS 국가와의 경제, 사회, 안보분야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유라시아 경제공동체(EAEC : EurAsia Economic Community)
    연혁은 1996년 3월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로루시, 키르기스스탄 4개국간 관세동맹을 창설하고 2001년 5월 타지키스탄이 가입하여 5개국간 EAES로 출범하였다. 목적은 개혁, 공동의 이해관계를 증진하고 경제, 사회, 사법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고 단일경제권 창설과 세계경제로의 편입을 지향하며 연례 정상회의를 4월 또는 5월경 개최한다.

    단일경제권(CES : Common Econimic Space)
    연혁은 2003년 9월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4개국 정상 CIS 정상회의를 계기로 단일공동 경제권 창설을 서명하였고 2004년 5월 4개국 정상회의 시 비준서를 교환하였다. 목적은 자유무역지대 창설, 관세동맹 형성, 공동대외무역정책 실시, 초국가적 기구 설립 등 경제통합 조치이다.

     

    3. 대외무역

    최근, 벨로루시의 주요 수출국은 러시아 34.7%, 네덜란드 17.7%, 영국 7.5%, 우크라이나 6.3%(2006년)로 주요 수출품목은 기계 장비류, 광물제품, 화학제품, 금속, 섬유, 식품 등이고 주요 수입국은 러시아 58.8%, 독일 7.5%, 우크라이나 5.4%(2006년)로 주요 수입품은 광물제품, 기계, 장비류, 화학제품, 금속, 식품 등이다.

    1) 상품 수출
    데이터 테이블
      2000 2005 2008 2009 2010
    거래량 15 972.6 32 687.4 71 952.1 49 873.2 60 094.1
    수출 7 326.4 15 979.3 32 570.8 21 304.2 25 225.9
    수입 8 646.2 16 708.1 39 381.3 28 569.0 34 868.2
    수지 -1 319.8 -728.8 -6 810.5 -7 264.8 -9 642.3
    2) 서비스 수출
    데이터 테이블
      2000 2005 2008 2009 2010
    거래량 1 535.9 3 166.0 6 804.9 5 557.8 7 263.8
    수출 1 000.3 2 072.7 4 187.1 3 490.4 4 478.2
    수입 535.6 1 093.3 2 617.8 2 067.4 2 785.6
    수지 464.7 979.4 1 569.3 1 423.0 1 692.6
    3) 벨로루시-CIS 국가 간 대외무역
    데이터 테이블
      수출품 수입품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Total 4493,7 4384,4 5434,6 7317,8 7060,3 8614,8 11231,3 5796,8 6295,3 8048,8 11882,8 11142,5 14496,8 18997,5
    아제르바이잔 5,0 4,5 8,7 14,9 28,0 34,5 86,4 3,5 2,2 1,7 1,2 2,0 2,7 3,3
    아르메니아 1,2 2,9 7,3 8,8 12,9 19,5 20,3 1,7 2,1 2,3 2,1 2,1 4,1 3,5
    그루지아 2,2 0,7 0,9 2,6 6,7 18,1 29,3 2,2 3,0 3,7 3,6 2,5 3,4 4,6
    카자흐스탄 28,5 39,1 68,1 121,3 183,5 261,1 361,2 8,4 14,9 13,0 23,5 31,1 73,3 151,7
    키르기즈스탄 7,1 2,7 4,8 4,1 8,8 20,0 23,1 6,4 2,8 3,4 3,2 2,0 1,5 2,7
    몰도바 43,8 43,2 55,9 73,5 102,2 95,7 144,6 38,6 43,4 48,1 68,5 72,3 81,1 81,9
    러시아 3962 3977 4879 6485 5715 6849 8886 5437 5922 7601 11219 10118 13084 17186
    타지키스탄 2,6 3,0 4,1 11,8 8,6 13,6 27,7 1,7 1,5 1,9 4,8 3,4 4,5 6,3
    투르크메니스탄 2,2 20,6 39,7 16,9 43,9 14,5 86,9 1,4 0,4 0,04 0,4 1,1 1,0 0,9
    우즈베키스탄 16,6 19,0 21,7 39,1 42,1 54,2 93,1 17,6 12,0 10,7 11,3 13,9 16,2 21,6
    우크라이나 421,8 271,6 343,5 539,8 907,8 1234 1472 277,4 290,7 362,1 545,0 893,9 1224 1534

     

    출처: 벨로루시통계청(http://belstat.gov.by)

     

     

     


  • eurasiaturk 2016-07-03 조회수:823

    Belarus

     

     

     

    종합개관 

     

    1. 위치

    벨로루시 위치도의 위치도

    [벨로루시 위치도]

    북위 48도, 동경 68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중앙아시아에 속한다. 북쪽으로 러시아연방, 동쪽으로 중국, 몽골, 남쪽으로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접경, 서쪽으로는 카스피해(海)에 면하고 있다. 총 국경선 길이는12,012 km (러시아 : 6,846km, 중국 : 1,533km, 우즈베키스탄 2,203km, 키르기스스탄 1,051km, 투르크메니스탄 379km) 이다.

     

    2. 일반개황

    데이터 테이블
    국 호 벨로루시(Republic of Belarus)
    ※ Республика Беларусь/ Рэспублика Беларусь
    독립일 1991. 8.25
    수 도 민스크 (Minsk, 약 172만명)
    영토면적 207,600㎢
    인 구 9,690천명(2008)
    민족구성 벨로루시인 81.2%, 러시아인 11.4%, 폴란드인 3.9%,
    우크라이나인 2.4%, 기타 1.1% 등
    종 교 러시아정교 80%, 기타 20% (로마카톨릭, 개신교, 유태교, 이슬람)
    언 어 벨로루시어, 러시아어
    평균수명 69세
    (남성: 63.2세, 여성: 75세)
    문맹률 2.0%
    대통령 및 임기 알렉산드로 루카셴코 (Alyaksandr Lukashenko) / 임기 5년
    의 회 양원제 (상원 : 64석, 하원 : 110석)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제
    주요정당 공산당, 농업당, 애국당, 자유민주당, 인민전선, 시민당
    화폐단위 및 환율 벨로루시 루블 (Belarusian Ruble, BYR) ※ 1$ = 2,140BYR (2007)
    국내총생산(GDP) 405억불 (2007)
    1인당 GDP 4,180불
    수출입 수출액: 243.39억불 (2007)
    ※ 수출품목: 기계, 광물, 화학섬유, 금속 등
    수입액: 286.74억불 (2007)
    ※ 수입품목: 기계장비, 소비재, 식료품
    주요산업 자동차제조, 전기기계제작, 석유채굴 및 가공, 화학제품 등
    주요자원 이탄, 석회석, 칼륨소금 등
    행정구성 6개주
    주요도시 민스크, 브레스트, 고멜
    주요경축일 1.1 새해, 1.7 크리스마스(러시아 정교), 3.8 세계 여성의 날,3.15 제헌절, 5.9 전승기념일, 7.3 독립기념일, 11.7 10월혁명
    기념일, 12.25 크리스마스(카톨릭)

     

    3. 국기

    국기

    국기의 왼편 문양은 전통문양으로 (과거 독일군 기사와의 전쟁 중에 피가 묻은 흰붕대가 승리의 표상으로 사용된 것에서 유래) 풍부한 문화적 유산과 그것의 정신적인 계승, 국민의 단합을 나타내며, 빨강은 이 나라의 지나간 시대의 영광을, 초록은 미래․희망․ 봄․부흥․산림․들판을 상징한다.

     

    4. 국가문장

    국가문장

    녹색선으로 그려진 벨로루시 영토가 태양 빛을 배경으로 지구 위에 그려져 있다. 벨로루시 영토 위에 붉은 별이 떠있으며 좌측의 아마꽃, 우측의 토끼풀과 함께 황금 밀 이삭이 벨로루시 국기에 싸여서 벨로루시 영토를 둘러싸고 있다.

     

    5. 참고문헌

    -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공식홈페이지 http://www.mofat.go.kr

    -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홈페이지 http://www.nis.go.kr

    - 한국수출입은행 http://www.koreaexim.go.kr

    - 한국무역협회 http://www.kita.net

    - 벨로루시 정부 http://ncpi.gov.by

    - 벨로루시 통계청 http://belstat.gov.by

    - 벨로루시 외무부 http://mfa.gov.by

    - 주한 벨로루시 대사관 홈페이지 http://www.belarus.or.kr

     

     

     

    자연환경

     

    1. 지형

    구소련의 서부지역에 위치한 벨로루시는 동구유럽에 속한다. 리투아니아(Lithuania-501km)와 라트비아(Latvia-141km)와는 북서쪽에, 우크라이나(Ukraine-891km)와는 남서쪽에 접하고 있고 폴란드(Poland-407km)와는 서쪽, 러시아(Russia-959km)와는 북쪽과 동쪽에 둘러싸여 있다. 벨로루시 총 국경선의 길이는 2,900km이다. 벨로루시의 전체 면적은 20만 7,600㎢이고 이는 영국과 캔사스보다 약간 작은 크기이다. 해발 110~180m에서 200~300m 이고 있어 국토는 대체로 낮은 저지대 국가로 평탄하다. 북부는 빙하작용을 받아 호소(湖沼)와 퇴석이 많고 북서부 지역은 대부분 저지이다. 민스크는 파랑상(波浪狀)의 구릉지대이다. 가장 긴 강은 드네프르 강으로 약 700km에 달하며 약 4천 개의 호수가 있다. 또한, 주요 강으로서 드네프르 강이 있고 러시아의 스몰렌스크(Smolensk)에서 벨로루시 동부로 흐른다. 총면적의 13%가 저습한 소택지이거나 습원지대이다.

     

    2. 기 후

    벨로루시는 온대 대륙성 기후로 봄과 가을에는 습하고, 겨울에는 춥고 습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다습하다. 벨로루시는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가면서 더욱 혹독한 대륙성 기후를 보이고 있다. 연평균 기온은 5~8℃이며, 1월 평균기온은 -4.5~-8℃ 사이이다. 그리고 1년 중 7~8개월은 땅에 서리가 내린다. 7월은 가장 따뜻한 달로 기온이 보통 17℃~18.5℃로 그리 덥지 않은 기온이다. 6-8월에 가장 많은 비가 내려 연평균 강수량이 600~700㎜이다. 특히 여름과 가을에 70%이상의 비가 집중된다. 12월에서 4월까지 눈으로 뒤덮이게 된다. 벨로루시의 수도인 민스크의 1월 평균기온은 -5℃이고 7월 평균기온은 19℃이다. 또한, 1월 평균강수량은 560㎜, 7월에는 660㎜이다.

     

    3. 산림자원

    벨로루시는 과거, 숲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었다. 남부에는 광활한 벨로루시의 삼림지대가 610만ha에 달한다. 플레시에는 삼림이 전 면적의 40~50를 차지한다.

    캄아뉴키시(Kamjanjuky)에서 북쪽에는 벨라베즈스카야 푸쉬챠 자연보호지(Belavezhskaja Pushcha Nature Reserve)가 있다. 식물의 생육기간은 180~200일 정도이고 땅은 메말라 있어 관개를 필요로 한다. 벨로루시에는 20,000개 이상의 강과 천이 있고 길이는 91,000km에 이르며, 145개의 인공호수를 포함하여 11,000개의 호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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