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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 벨트 국가 알아보기

  • GEORGIA

    종합개관

     

    1. 위치

    그루지야 위치도

    [그루지야 위치도]

    그루지야는 북쪽에 카프카즈 산맥을 등지고 러시아와 723Km의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러시아와의 국경지방에는 크라스노다르 지방, 카라차에보-체르케시아, 카바르디노-발카리아, 북오세티아, 잉구쉐찌아, 체첸, 다게스탄이 있다. 남동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과 322Km 국경을, 남쪽에는 아르메니아와 164Km의 국경을, 남서쪽에는 터키와 252Km의 국경을 접하고 있다.

     

    2. 일반개황

    그루지야 일반개황
    국 호 그루지야 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Грузия)
    또는 사카르트벨로(Sakartvelo)
    독립일 1991년 4월 9일 (from Soviet Union)
    수 도 트빌리쉬 (Tbilisi:인구 172만 명)
    영토면적 69,700㎢
    인 구 4,646 천명 (2007.07)
    민족구성 그루지야인(83.8%), 아제리인(6.54%), 아르메니아인(5.7%), 러시아인(1.5%)
    종 교 정교 84%, 이슬람 10% 기타 (로마카톨릭, 개신교, 유태교) 6%
    언 어 그루지야어(공식어) 71%, 러시아어 9%, 아르메니아어 7%, 아제리어 6%
    평균수명 76.3세 (남성 : 73세 여성 : 80세)
    대통령 및 임기 미하일 사카쉬빌리(Mikheil Saakashvili) / 임기 5년
    ※ '04. 01 취임, '08. 01 재선
    의 회 단원제 /235석 (임기4년)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제
    주요정당 국민운동민주전선당(67.6%), 우익반대당(7.6%), 공화당, 노동당 등
    화폐단위 Lari (GEL) / ※ 1$ = 1.7 라리(GEL) (2007)
    국내총생산(GDP) 19.65억$ (2007)
    1인당 GDP 4,200$ (2007)
    수출입 수출액 : 12억 4천만$
    ※ 수출품목 : 광물, 와인, 광천수, 과일
    수입액 : 52억 $
    ※ 수입품목 : 연료, 자동차, 기계
    주요산업 철강, 항공기, 기계, 전자제품, 광물채굴, 화학, 목재 등
    주요자원 목재, 수력발전, 망간, 철, 구리, 석탄, 석유, 과수용 해양성 토지 등
    행정구성 9개 주, 1개 시 (트빌리시)
    주요도시 트빌리시, 바투미, 소후미
    주요경축일 1.1 새해, 3.8 여성의 날, 4.6 독립기념일, 5.9 승전기념일, 8.280 성모승천일, 11.22 성 그레고리의 날

     

    3. 국기

    국기

    그루지야 공화국의 국기는 흰 바탕 가운데 큰 십자가와 4개의 작은 십자가로 구성되어있다. 2004년 1월 28일에 채택되었으며, 2003년 장미혁명 당시 국민운동-민주전선당의 당 깃발이었으며, 혁명 이후 국기로 채택되었다. 흰 바탕은 순결, 지혜를 의미하고 붉은 십자가는 용기, 정의, 사랑을 의미한다.

     

    4. 국가문장

    국가문장

    그루지야 국가 문장은 왕관아래 게오르기상을 보조하는 두 사자의 모양으로 2004년 10월 1일 채택되었다. 문장의 의미는 화합의 힘이다.

     

    5. 참고문헌

    - 그루지야 대통령 사이트 www.president.gov.ge

    - 그루지야 의회 사이트 http://www.parliament.ge

    - 그루지야 외무부 http://www.mfa.gov.ge/

    - 그루지야 정보 사이트 http://www.georgiawelcomesusa.com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Georgia_(country)

    - CIA 국가정보 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gg.html

    - 한국 수출입은행 http://www.koreaexim.go.kr

    - 한국 관세청 www.customs.go.kr

    - 국기관련 http://flagspot.net/flags/ge.html#his

    - 역사관련 http://100.naver.com/100.nhn?docid=714320

    - 경제관련 http://www.cisstat.com

    - “카스피 화약고 그루지야를 가다” 세계일보 2007.03.13
    http://topics.nytimes.com/top/news/international/countriesandterritories/georgia/index.html?8qa&scp=1-spot&sq=georgia&st=ny

    - 뉴욕타임즈
    http://topics.nytimes.com/top/news/international/countriesandterritories/georgia/index.html?8qa&scp=1-spot&sq=georgia&st=nyt

     

     

     

    자연환경

     

    1. 지 형

    그루지야 북서부 Svaneti 지역 풍경

    [그루지야 북서부 Svaneti
    지역 풍경]

    그루지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카프카스산맥은 그 봉우리들이 평균 높이가 5,000m 이상에 이르며, 산맥 남쪽 산록은 아르메니아고원으로 이어진다. 카프카스산맥과 아르메니아고원의 사이에 놓인 그루지야의 수라미 산맥은 그루지야를 서부 지역과 동부 지역으로 갈라 놓는다. 수람산맥의 서사면에서 발원하는 리오니강(江)은 서쪽으로 흘러서 흑해로 들어가고, 동사면에서 발원하는 쿠라강은 동쪽으로 흘러서 아제르바이잔을 지나 카스피해로 흘러 들어간다. 이들 강은 농업에 유리한 다수의 유역을 이룬다. 그루지야 서부는 저지대 늪, 온대성 숲부터 만년설까지 다양한 자연환경을 보이고 있고, 동부는 중앙아시아와 같은 반 불모지 평원을 가지고 있다. 숲은 토지전체의 40%를 차지하며 고산지대는 전체의 10%를 차지한다. 서부 저지대의 자연서식지는 농업의 발전과 도시화로 인해 대부분 사라졌으며, 콜키스 평원을 덮고 있는 숲의 대부분은 국립공원 지역을 제외하고 사라졌다.

     

    2. 기 후

    그루지야의 기후는 작은 영토에 비해 매우 다양하다. 북쪽의 카프카즈 산맥은 북쪽에서 오는 한공기를 막아주고 기타 작은 산맥들이 남쪽에서 오는 덥고 건조한 공기를 막고 있다. 리오니강 유역과 흑해와 인접한 저지대는 온난 습윤한 아열대기후가 나타나는데, 연평균 강수량이 2,000mm가 넘고, 1월 평균기온이 6℃, 7월 평균기온이 23℃이다. 동부 지역은 서부 지역에 비하여 겨울이 춥고 여름이 고온 건조하다. 흑해를 낀 해안에는 좋은 항구가 발달하여 관광과 교역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 준다.

     

    3. 행정구역

    그루지야 행정구역 지도

    [그루지야 행정구역 지도]

    그루지야는 9개 주, 1개 시, 2개 자치공화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지역의 자연지리 조건을 이용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다.

     

    [그루지야 행정구역]

    데이터 테이블
    No 지 역 면적 인구 (07년) 행정중심지
    Abkhazia(자치공화국) 8,640 km² 525,061 Sokhumi
    Ajara(자치공화국) 2,900 km² 370,030 Batumi
    Guria(지역) 2,003 km² 141,827 Ozurgeti
    Imereti(지역) 6,552 km² 703,485 Kutaisi
    Kakheti(지역) 11,310 km² 395,456 Telavi
    Kvemo Kartli(지역) 6,528 km² 518,120 Rustavi
    Mtskheta-Mtianeti(지역) 6,785 km² 122,576 Mtskheta
    Racha-Lechkhumi and Kvemo Svaneti(지역) 4,954 km² 48,571 Ambrolauri
    Samegrelo and Zemo Svaneti(지역) 7,441 km² 382,033 Zugdidi
    Samtskhe-Javakheti(지역) 6,414 km² 207,443 Akhaltsikhe
    Shida Kartli(지역) 6,200 km² 320,657 Gori
    Tbilisi(시) 140 km² 1,106,539 Tbilisi

    1) Abkhazia (자치공화국)

    북쪽으로 러시아 국경을 접하고 서쪽으로 흑해가 있으며 수도는 Sokhumi이다. 주로 목재와 석탄을 러시아와 터키로 수출하고 있으며, 흑해 연안에 위치하기 때문에 관광산업이 매우 발달하였다.

    2) Ajara (자치공화국)

    남쪽으로 터키 국경을 접하고 서쪽으로 흑해가 있으며 수도는 Batumi이다. 해안가에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으며 관광산업이 발달해 있다. 감귤류 등의 아열대성 식물과 담뱃잎이 자라며, 공화국의 동부산악지대에는 감자가 자란다.

    3) Guria (지역)

    서쪽으로 흑해, 남쪽으로 Ajara공화국과 접하고 있으며 행정중심지는 Ozurgeti이다. 주로 옥수수, 감귤류, 헤즐넛 등의 아열대성 작물을 재배하며, 흑해 연안에 Baku-Supsa 석유 파이프라인의 최종 터미널이 있다.

    4) Imereti (지역)

    그루지야 중서부 내륙에 위치하며 행정중심지는 Kutaisi이다. 망간채굴과 철 합금 등의 산업이 발달하였으며, 그루지야 전체 산업생산량의 7%를 차지한다. 농업지역에는 목축업과 포도재배 및 차를 재배한다.

    5) Kakheti (지역)
    Tamada 와인

    [Tamada 와인]

    남동쪽에 아제르바이잔과 북동쪽에 러시아 체첸지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행정중심지는 Telavi이다. 지역 전체적으로는 대륙성 기후이나 아열대성기후와 한대기후도 나타난다. 동 지역에는 포도재배로 인한 와인 산업이 발달해 있으며, 와인제조 공장으로 가장 유명한 Tsinandali 공장이 위치해있다. 유명한 와인으로는 Tsinandali, Dzveli Tbilisi, Mukuzani, Tamada, Rkatsiteli, Alaznis Veli, Napareuli, Manavi, Saperavi, Vazisubani 등이 있으며, 미국과 프랑스에서 동 지역 와인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또한 석회암, 대리석 등의 광물자원이 풍부하며, 석유와 가스도 매장되어있다. 지역 전체의 30%가 숲으로 구성되어있고 UNESCO가 지정한 국립공원인 Lagodekhi가 있다.

    6) Kvemo-Kartli (지역)

    남쪽으로 아르메니아와 남동쪽으로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행정중심지는 Rustavi이다. 그루지야 전체 산업생산의 21%를 차지하고 있으며, 화학 공장 및 야금 공장이 발달해 있다. 주요 광물자원으로는 구리와 금이 있으며, 농업부문에서는 채소와 과일, 감자를 재배하고 목축업도 발달해 있다.

    7) Mtskheta-Mtianeti (지역)

    북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행정중심지는 Mtskheta이다. 동 지역은 주로 과일채소 농업이 발달해 있으며 산악지역에서는 목축업이 발달해 있다. 또한 산악지역 일부에 스키 리조트가 있어 관광산업도 활성화 되어있다.

    8) Racha-Lechkhumi and Kvemo Svaneti (지역)

    북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행정중심지는 Ambrolauri이다. 동 지역은 주로 산악지대로 구성되어 있어 산업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다. 농업 의존도가 가장 크며, 감자재배와 목축업이 발달해 있고, 약간의 지역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9) Samegrelo and Zemo Svaneti (지역)

    북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남서쪽으로 흑해를 접하고 있으며 행정중심지는 Zugdidi이다. 항구인 Poti를 중심으로 발달해 있으며, 그루지야에서 가장 큰 수력발전소가 위치해 있다.

    10) Samtskhe-Javakheti (지역)
    Borjomi

    [Borjomi]

    남서쪽으로 터키와 국경을, 남동쪽으로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행정중심지는 Akhaltsikhe이다. Borjomi 수원지이며, 깨끗한 환경으로 건강 리조트 등의 관광산업에 많은 투자가 진행 중이다.

    11) Shida Kartli (지역)

    북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행정중심지는 Gori이다. 북부 산악지역 중심으로 산업이 발달해 있으며, 그루지야 전체 산업생산의 8%를 차지한다. 북부에는 목축업, 남부에는 밀, 과일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12) Tbilisi (시)

    그루지야 내륙 남동쪽에 위치하며 수도로서 행정과 무역의 중심지이다. 그루지야 전체 산업생산의 40%를 생산하고 있으며, 전체 기업의 50% 이상이 위치해 있다.

     

     

     

    역사

     

    1. 고대 ~ 중세

    이미지

    그루지야는 일찍이 고대사에 이름이 등장하였으나, 역사의 초기부터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분립하였고, 분립된 국가들조차 독립을 잃고 여러 주변 세력의 지배를 받아왔다. 이는 그루지야가 동서 및 남북의 교통·무역상 요충지에 위치하면서 주변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거나, 산악지대에 입지하여 서로 교류가 원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흑해 연안에 들어섰던 콜히다(Kolkhida)는 콜키스(Colchis)라는 이름으로 일찍이 그리스인에게 알려져서, BC 6세기에 그리스 식민지가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 BC 4세기에 최초의 그루지야국이 형성되었으나, BC 1세기에 다시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AD 330년경에 그리스도교가 들어와 정신적 구심점이 마련되었다.

    이후 그루지야는 6세기경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동부의 르베리아는 7세기 중반 아랍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 페르시아가 점령하고 있었다. 기독교의 비잔틴과 이슬람교의 아랍 간의 다툼은 1060년 아르메니아를 점령한 셀주크투르크에 의해 끝나게 되었고 그루지야라는 이름이 아닌 르베리아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었다.

    그 당시 그루지야 기독교인들이 피난을 가게 되었다. 1008년 통일왕국(Kingdom of Georgia)를 세운 그루지야는 11세기 말 다비드 2세 때 셀주크투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력히 저항하였고, 1122년 수도 트빌리시를 회복하였다. 이때부터 그루지야의 황금시기가 열려 현재의 아제르바이잔의 서부와 터키의 동부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그러나 1220년 몽골의 침입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여, 15세기 초 티무르의 침입을 받자 국토는 여러 봉건제후들에 의해 분열되었다. 다수의 국으로 분열된 그루지야는 오스만투르크와 페르시아 사파비드의 지배를 받았다.

     

    2. 근 대 (~1995)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던 카르틀리아(Kartlia) 공국과 카케티아(Kakhetia) 공국은 1801년 러시아 제국으로 병합되었고, 투르크의 지배를 받던 다른 공국들도 19세기에 들어와 제정 러시아 제국으로 병합되었다.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고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후 그루지야 공화국은 멘셰비키당에 의하여 통치되다가 1918년 5월 26일 독립을 이루어 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Georgia)을 세웠다. 이날은 독립기념일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부는 1920년 5월 그루지야 공화국과 모스크바 조약을 맺어 그루지야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볼셰비키 붉은 군대는 1921년 그루지야를 침공하여 같은 해 2월 25일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SSR)을 선언하였다. 1922년 12월 그루지야는 트랜스카프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Transcaucasian Soviet Federative Socialist Republic:TSFSR)에 흡수되었고, TSFSR는 같은 해 12월 22일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USSR)이 창설되면서 그 구성원이 되었다.

    1990년 2월에는 공산당의 권력 독점을 규정하는 헌법 조항이 폐지되었고, 같은 해 8월에 다당제를 허용하는 법률이 채택되었다. 야당 세력은 그루지야 공산당에 대항하여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후 소수 정당들이 난립함으로써 야당이 정권을 장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1990년 다수의 야당들이 라운드 테이블-자유 그루지야(the Round Table-Free Georgia:RTFG) 연합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민주화를 요구하는 보다 급진적인 정당들은 소비에트 기구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비에트 선거도 용인하지 않았다. 이러한 급진 정당들은 G.찬투리아를 수반으로 하는 국민 포럼을 결성하여 최고 소비에트 선거를 반대하고, 그 대신 새로운 국회를 건립하려 하였다. 국민 포럼은 10월 28일 예정된 소비에트 선거에 앞서서, 새로운 국회를 건립하기 위한 선거를 1990년 9월 30일 치르기로 발표하였다. 국회 선거가 9월 30일 실시되었는데, 유권자의 51%만이 선거에 참석하였다. 10월 28일과 11월 11일에 치른 최고 소비에트 선거에서는 라운드 테이블-자유 그루지야(RTFG)연합이 총 의석 250석 중에서 155석을 확보함으로써 승리하였다. 그루지아공산당(CPG)은 64석만을 확보하였다. 1991년 4월 9일 소련의 해체와 함께 독립을 얻은 그루지야는 1995년 8월 24일 새로운 민주헌법을 채택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1. 개 관

    그루지야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듬해인 1992년 12월 14일 한국과 수교조약을 맺었다. 주 우크라이나 대사관(공관장-허승철 대사)에서 그루지야 영사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한국은 특히 1994년 10월 대위·소령 급 장교 5명을 UN 평화유지활동(PKO)의 일환으로 그루지야에 파견했으며, 1999년부터 현재까지 군 옵서버가 활동하고 있다. 현재 그루지야에 체류하고 있는 한국인 수는 20여명이다.

     

    2. 주요 인사교류

    1) 주요인사 그루지야 방문

    - 97.10.27~11.1 CIS 국가무역투자 사절단 방문
    사절단 구성 : 8개 업체(현대, 선경, 쌍용, 코오롱, 금호타이어, CAS, 톱러시아), 수출입은행, KOTRA(총 12명)

    - 최호중 전 외무장관(00.10)

    - 이종남 감사원장 방문 및 수교10주년 계기 금호 4중 주단 트빌리시 공연(02.5)

     
    2) 주요인사 방한

    - Fridon Injia 그루지야 체신부 장관 방한(92.12)

    - Manana 세바르드나제 그루지야 대통령 영애 방한(95.7)

    - Shota Dogonadze 그루지야 외무차관 방한
    (제14차 세계관광기구 총회 참석 계기, 01.9)

    - D. Amaglobeli 재무부차관, T.Kovziridze 경제발전부 차관 등 5명
    (제1회 한·남카프카즈 3국 경제세미나 대표단 방한, 05.2)

    - 2007.9 N. Burjanadze 국회의장 방한
    (제1회 세계여성포럼 참석 계기, 07.9)

     

    3. 교역현황

    [對그루지야 수출입 통계(2003~2007)]

    그루지야 수출입 통계
    기간 총 규모(천불) 수출 (천불) 수입 (천불)
    2003 15,193 11,410 3,783
    2004 10,017 4,472 5,545
    2005 19,832 10,948 8,884
    2006 22,258 16,460 5,798
    2007 41,505 38,000 3,505

    출처 : 대한민국 통계청

     

     

    지난 5년간 양국 간 교역규모는 증가 추세이다. 주요 교역품목(대 그루지야) 중 수출품목은 합성수지, 고무, 종이, 플라스틱 제품 등 이며, 수입품목은 알루미늄, 동제품 등 이다.

    최근에는 경제 협력에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으며 트빌리시 시내에 삼성과 LG 간판이 양국 간 경제 협력을 보여주고 있다. 2007년부터 한국의 중견 건설업체인 (주)창조E&C 등과 1조원 규모의 트빌리시 도시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또한 2006년 (주)알티비코리아는 그루지야 총리실의 초청으로 그루지야에 방문하여 정부관계자(총리, 에너지 장관, 경제개발부 장관 등)와 인프라 개발에 대해 논의하였고, 특히 에너지 분야의 수력발전소 개발에 대해 요청을 받아 수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위해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본 타당성 조사는 그루지야 서쪽 Rioni 강에 총 450MW 용량의 3개 수력발전소 중 제 1단계인 Tvishi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한 것으로, (주)알티비코리아와 (주)한국종합기술이 진행하고 있다.

     

     

     

    사회문화

     

    1. 사회일반

    그루지야의 민족은 그루지야인 83.8%, 아제리인 6.54%, 아르메니아인 5.7%, 러시아인 1.5%과 기타 아브하지아인, 오세티아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외에 소수 민족그룹으로 아시리아인, 체첸인, 중국인, 유태인, 그리스인 등이 있고 그루지야의 유태인 사회는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태인 사회 중 하나이다. 최근 터키와 중국으로부터 이민자가 증가하여 터키인과 중국인의 인구도 늘고 있다.

    그루지야 공식어는 그루지야어로 Kartuli어라고 불리며, 같은 언어계통인 Laz어, Mingrelian어, Svan어가 전체의 71%가 사용한다. 그 밖에 러시아어 9%, 아르메니아어 7%, 아제리어 6%가 사용된다.

    현재 그루지야는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으나 전체의 84%의 인구가 그루지야 정교를 믿는다. 이 외 소수 종교로는 이슬람 10%, 아르메니아 교회 4%, 러시아 정교 2%, 로마 카톨릭 0.8%가 있다. 이슬람교는 주로 남서부 지역의 아자라(Adjara)에, 로마 카톨릭은 남부지역에 퍼져있다.

    그루지야는 역사적으로 타민족과의 충돌이 많았기 때문에 그루지야 내 소수민족과 종교들의 역사 역시 수천 년의 역사를 지녀 민족 분쟁과 종교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구 소련의 일원이었던 시대에 러시아로의 동화정책이 추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루지야인들은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였다. 현재 그루지야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그루지야 내부의 민족분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루지야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독립을 주장하였지만 그루지야 내부에 존재하는 다른 민족의 분리 독립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남오세티아와 아브하즈에서 1989년 이후부터 분리주의가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남오세티아 자치지역의 오세티아인들은 러시아 자치공화국 북(北)오세티아와 통일을 시켜줄 것을 그루지야인에게 요구하면서 반정부 내란을 일으켰다. 또한 아브하지아 자치공화국 주민의 18%를 구성하는 아브하즈인들도 독립을 요구하면서 그루지야 정부에 대항하였다. 아브하즈나 남오세티아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아자리아 자치공화국도 민족분규가 있다. 아자르인들은 원래 그루지야 계통의 사람들이나 이슬람교를 신봉하는데, 이슬람교도인 아자르인과 그리스도교도인 그루지야인 간에 갈등관계가 표출되고 있다.

     

    2. 문 화

    그루지야 중세문화 : 10세기 Ananuri 교회 이콘화그루지야 전통 춤
    [그루지야 중세문화 : 10세기 Ananuri 교회]                    [이콘화]                 [그루지야 전통 춤]

     

    몽골의 침입을 받기 전 그루지야 왕국의 황금시대인 12세기 초까지는 다양한 형태의 기독교 예술이 크게 발전하였지만, 그 후 몇 세기 동안은 계속 퇴보하였다. 그러나 민속음악과 민속무용은 그루지야 문화의 명맥을 이어왔다.

    건축물은 16세기의 종교적 구조물이 발전한 것이다. 교회의 둥근 지붕구조는 BC 3세기경에 존재했던 원형거주지에서 유래하였다. 19세기의 러시아 지배기에 혼성 건축물이 탄생하였고, 20세기 중반에는 소위 스탈린식(式) 건축물들이 도시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문학에서는 쇼타 루스타벨리의 장편시 《표범가죽 안의 기사》가 국민서사시로 불린다. 세 영웅 기사의 모험을 묘사한 이 시는 풍부한 철학적 명상을 나타내고 있다. 공산주의 치하에서도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의 대로는 시인의 이름을 따서 루스타벨리라 불렸다.

    그루지야 전통음악 차크룰로(Chakrulo)는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 중 하나이며 그루지야인들의 정신과 영혼을 보여준다. 이미 BC 6세기에 독특한 전쟁노래가 존재하였으며 현재까지 전사들이 겨루는 모습의 전통 춤과 함께 이어졌다. 4세기경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기독교음악 역시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3. 음 식

    포도수확 축제- 트빌리소바 전통음식-므츠발디
    [포도수확 축제- 트빌리소바]       [전통음식-므츠발디]
     
    독특한 기온과 토양으로 인해 수천 년 동안 와인의 주요 생산지 역할을 하였고 그로 인해 그루지야의 와인은 세계적인 품질을 자랑한다. 또한 그루지야의 각 지역은 독특한 음식으로 이름이 나 있고, 다양한 지리적인 조건으로 인한 많은 식 재료를 그대로 이용한 음식부터 매운 향료로 맛을 내거나 허브와 마늘을 많이 쓰는 음식까지 다양하다. 이로 인해 그루지야의 음식을 맛보기 위한 미식가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매년 10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열리는 트빌리시의 축제인 트빌리소바(Tbilisoba)는 포도수확과 관련한 유명한 축제이다.
     
     
     
     
  • KYRGYZSTAN

     

     

    종합개관

     

    1. 위치

    키르기스스탄 위치도

    [키르기스스탄 위치도]

    중앙아시아 대륙의 중앙부, 북위39°-43°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북은 카자흐스탄, 서는 우즈베키스탄, 남서는 타지키스탄, 동은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접경하고 있다.

     

    2. 일반개황

    키르기스스탄 일반개황
    국 호 키르기스 공화국 (Kyrgyz Republic)
    ※ 키르기스어 표기: Кыргыз Республикасы
    독립일 1991. 8. 31
    수 도 비슈케크 (Bishkek, 약 80만 명)
    영토면적 19만 8,500㎢ (한반도의 0.95배)
    인 구 5,284,129 (2007.7)
    민족구성 키르기스인 66%, 우즈벡인14%, 러시아인 11%와 독일, 카자흐, 타타르, 위구르,
    터키 민족 등 80여개 민족으로 구성
    ※ 고려인 0.4% (2만 여명)
    종 교 이슬람교(수니파) 75%, 러시아정교 20%, 기타 5%
    언 어 키르기스어, 러시아어
    평균수명 69.12세
    ※ 남성 : 65.12세, 여성 : 73.33세 (2008)
    문맹률 1.3% (1999)
    대통령 및 임기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Kurmanbek Bakiyev, 2005년 7월 취임) / 5년
    의 회 단원제 (75석, 임기5년)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제
    주요정당 악졸당, 사회민주당, 아타메켄당, 공산당, 투란당, 알 나미스당
    화폐단위 솜 (Som) ※ 1$ = 41 Som (2006.6)
    국내 총생산 28억$ (2006)
    1인당 GDP 549$ (2006)
    수출입 수출 – 7억$ (광물자원, 면화, 울, 전력)
    수입 – 12.6억$ (석유, 가스, 기계류, 화학제품)
    주요산업 농업, 농가공업, 광산업, 전력생산업
    주요자원 금, 석탄, 석유, 안티몬, 수은, 수력자원
    행정구성 7개 주, 1개 특별시
    주요도시 비슈케크, 오슈, 나른, 카라콜,
    주요경축일 1.1 새해 (Жаңы жыл), 1.7 러시아 정교회 크리스마스 (Ыса пайгамбардын туулган күнү),
    3.8 여성의 날 (Аялдардын эл аралык күнү), тилектештигини эл аралык күнү),
    5.5 헌법 제정일 (Кыргыз Республикасынын Конституциясынын күнү),
    5.9 승리의 날 (제 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 Жеңиш күнү), 8.31 독립 기념일
    (Кыргыз Республикасынын мамлекеттик көз карандысыздыгынын күнү)
    ※ 이슬람 종교 경축일: Орозо айт/ Курман айт

     

    3. 국기

    국기

    빨간색 바탕은 용기를 상징하며, 황금빛 태양은 평온과 부, 세계의 평화를 상징한다. 40개의 빛과 유르트의 천장 모양은 40개의 부족이 모여 이루어진 키르기스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4. 국가문장

    국가문장

    파란색 바탕은 아름다운 자연과 이씩쿨(Issyk-kul)을, 7개의 봉우리는 7개 지역을 상징하며, 떠오르는 태양과 백색 독수리는 키르기스인의 자유와 경계, 사고의 깊이를 형상화한다. 테두리의 밀 이삭은 성실과 평화를 상징한다.

     

    5. 국가

    키르기스스탄 국가
    작사: Ж. Садыков, Ш. Кулуев.
    작곡: Н. Давлесов, К. Молдобасанов

    1) Ак мөңгүлүү аска, зоолор, талаалар
    Элибиздин жаны менен барабар.
    Сансыз кылым Алатоосун мекендеп,
    Сактап келди биздин ата-бабалар.

    *후렴
    Алгалай бер кыргыз эл,
    Азаттыктын жолунда.
    Өркүндөй бер, өсө бер,
    Өз тагдырың колунда.
    2) Байыртадан бүткөн мүнөз элиме,
    Досторуна даяр дилин берүүгө.
    Бул ынтымак эл бирдигин ширетип,
    Бейкуттукту берет кыргыз жерине.
    *후렴

    3) Аткарылып элдин үмүт тилеги,
    Желбиреди эркиндиктин желеги.
    Бизге жеткен ата салтын, мурасын,
    Ыйык сактап, урпактарга берели.
    *후렴

     

    6. 참고문헌

    - 우리 기업들의 중앙아 5개국 진출 안내 (외교통상부, 2007)

    - 제1차 한·중앙아 협력 세미나 (외교통상부, 2007)

    - 제1차 한·중앙아 협력 포럼 (외교통상부, 2007)

    - 주한 키르기스 공화국 명예총영사관 홈페이지 www.ikyrgyz.com

    - 국정원 정보포털사이트 www.nis.go.kr

    - 한국수출입은행 www.koreaexim.go.kr

    - 한국 무역 협회 www.kita.net

    - KOTRA www.kotra.or.kr

    - 위키피디아 www.wikipedia.org

    - 지식까지 검색하는 NAVER www.naver.com

    - 키르기즈스탄 | 김호준 충남대 초빙교수(전 서울신문 논설주간) [스포츠서울]

    - http://blog.naver.com/ojjesus?Redirect=Log&logNo=40026984544

     

     

     

    자연환경

     

     

    1. 국 토

    1) 키르기스스탄은 산악지역으로 국토의 90%이상이 산으로 이루어져 있음

    - 국토 대부분이 3000m 이상의 고산지역이며, 가장 높은 지역은 7400m까지 이름(수도 비슈케크도 해발고도 774m의 고지에 위치)

    - 키르기스스탄은 2개의 고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많은 산들이 울창한 숲으로 싸여있음

         · 천산의 남쪽자락: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경계

         · 파미르 고원의 북쪽자락: 세계의 지붕

    2) 산과 더불어 3000여 개의 빙하호를 가지고 있는 수자원 부국

    - 가장 큰 호수는 이씩 콜(Issyk kul)로 해발 1570m에 위치하며 그 크기는 5,776㎢

    이씩 콜(Issyk kul) 이씩 콜(Issyk kul)

    [이씩 콜(Issyk kul)]

    ※ 산속에 떠있는 바다 ‘이씩 콜 (Issyk kul)

    이씩 콜(Issyk kol)은 퀸케이 알라타우와 테르스케이 알라타우 지역의 4000m의 봉우리 사이에 위치한 호수이다. 길이 185km, 너비 79km의 제주도를 3개 반정도 넣을 수 있는 크기로 남미의 티티카카 호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며, 이 거대한 호수에는 80개의 강이 모여든다. 또한 이씩 콜의 가장 깊은 곳이 668m로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깊은 호수이다.

    투르크어로 ‘뜨거운 호수’라는 뜻을 가진 이씩 콜은 강물이 빠지는 데 없이 증발만 해서 염분이 많아진 데다가, 고산 호수임에도 화산작용으로 인하여 1년 내내 얼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빙하의 청정수와 미네랄 온천수가 뒤섞인 이 호수의 맑은 물은 건강에 좋은 약수로 유명하다.

    이씩 콜은 송어, 백표범, 야생염소, 야생멧돼지, 곰 등이 서식하고 있어 사냥과 낚시장소로 인기가 많으며, 주변에는 다양한 관광시설이 마련되어있어 이 곳에서 온천과 초원, 계곡, 절벽, 하이킹 트레일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다.

     

    2. 기 후

    - 건조한 초원지대로서 4계절이 모두 있고 겨울은 춥고 황양하고 여름은 덥고 건조

         · 여름 평균 기온: 영상 34도 (가장 더운 때는 7-8월초 40도가 넘음)

         · 겨울 평균 기온: 영하 22도

     

    3. 행정구역

    키르기스스탄 행정구역

    [키르기스스탄 행정구역]

    키르기스스탄은 현재 7개의 주와, 1개의 특별시로 구성되어 있음.

    [키르기스스탄 행정구역]

    데이터 테이블
    번호 주 (область) 중심 도시 (Шаар)
    1 비슈케크 (특별시)
    2 바트켄 바트켄
    3 추이 추이
    4 이씩쿨 카라쿨
    5 잘랄아바트 잘랄아바트
    6 나른 나른
    7 오슈 오슈
    8 탈라스 탈라스

     

     

     

     

    역사

     

     

    1. 약 사

    [키르기스스탄 약사]

    키르기스스탄 약사
    약 사
    키르기스의 어원은 “40의 민족” 또는 “40인의 딸”이라는 의미로, 기록상으로는 기원전 2000년 중국 연대기에 키르기스 민족이 최초로 등장하고 있으며 당시에는 에니세이강(Enesai)과 바이칼(Baikol) 지역에 거주하였음.
    기록에 남겨진 최초의 키르기스 민족은 이란 계의 사카인으로 중국·페르시아와 활발한 교역을 해왔으며, 그 후 페르시아 제국에 병합되어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원정에도 참가하였음.
    키르기스는 중세시기에 실크로드의 천산북로가 열리면서 동서교역 요충지 역할을 수행하게 되고, 이씩콜은 실크로드의 중요한 오아시스가 됨.
    6세기 중반에는 돌궐(투르크)에 병합되었으나, 8세기에는 돌궐을 물리친 유목국가 위구르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감.
    9 세기부터 위구르족을 몰아내면서 알타이산맥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으며, 10세기 중반에는 서 시베리아, 몽골, 바이칼과 현재 키르기스 지역 대부분이 그 세력권에 들어오게 됨.
    13세기 후반 몽고의 지배하에서도 키르기스인은 이동을 계속하여 현재의 키르기스공화국이 있는 지역에 집단거주를 시작하였으며, 16세기에 들어 키르기스 민족문화가 형성되었음.
    18세기에는 중국의 청조, 19세기에는 우즈벡족의 코칸드(Khan)의 지배를 받았으며, 19세기 후반부터 러시아제국의 지배에 들어가 러시아인의 유입이 시작됨.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인 1918년 5월 소비에트정권의 지배에 들어가 러시아공화국내의 “투르케스탄(Turkestan)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에 편입됨.
    1924년에는 러시아공화국의 일부인 “Kara-Kyrgyz”, 1925.5 이후는 “Kyrgyz” 자치주가 되었으며, 1926년에는 “키르기스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으로 격상됨.
    1936년 러시아공화국으로부터 분리되어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으로서 소 연방을 구성하는 독립된 공화국의 하나로 승격됨.
    1990년 12.5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최고회의는 주권선언을 채택하고 91.8.31 독립을 선언함.
    1991년 1월 국명을 키르기스스탄공화국, 수도 명을 비슈케크로 하였음.
    1993년 5월 국명을 현재의 키르기스공화국(Kyrgyz Republic)으로 변경 하였음.

     

     

     

     

    한국과의 관계

     

    1. 외교관계

    1991. 12. 30 키르기스 국가 승인

    1992. 1. 31 외교관계 수립 (북한과는 1992. 1. 21)

    1993. 11 초대 김창근 대사 신임장 제정

    1996. 10 제2대 이영민 대사 신임장 제정

    1999. 11 제3대 최승호 대사 신임장 제정

    2002. 10 제4대 태석원 대사 신임장 제정

    2006. 1 제5대 김일수 대사 신임장 제정

    2007. 9 1인 공관 개설 (이경렬 대리대사 부임)
    * 비슈케크 한국교육원: 2001. 5. 28 개원

     

    2. 협정체결 현황

     한•키르기스 문화협정(97.6)

     한•키르기스 투자보장협정(97.6 가서명)

     한•키르기스 EDCF 차관 공여협정(97.6)

     한•키르기스 SOFA 협정(2002.4.30 발효)

    (* 2002.2.27-2004.3 반 테러 다국적군 일원으로 우리 국군 동의부대 주둔)

     한•키르기스 항공협정(2007.6 발효)

     한•키르기스 관광협정 (2006.7 서명)

     

    3. 경제협력

    키르기스스탄 측은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이 자국에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우리와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협력증진을 희망하고 있음
    그러나, 키르기스스탄의 정세불안 및 경제난 지속 등으로 이 지역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전반적으로 저조한 실정임

    1) 상품 교역

    - 1992년 1월 수교 이후 한•키르기스스탄 간 경제교류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으며, 양국의 교역 액은 1억불에 미달하나, 증가세를 보이고 있음

    - 수출: 2000년 이후 편직물, 연초류, 합성수지, 승용차 등 우리 수출물량의 대폭증가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컴퓨터, 자동차부품, 화물자동차 등 수출품목이 다변화하고 있음

    - 수입: 금, 곡류, 펄프, 비금속광물 등 원자재가 주종을 이루고 있음.

     

    [한•키르기스스탄 교역 추이]

    (단위: 천불, %)

    한국과 키르기스스탄 교역 추이
    구분 96 97 98 99 00 01 02 03 04 05 06
    교역규모
    (증가율)
    6072
    (94.6)
    8,086
    (33.2)
    29,128
    (260.2)
    23,947
    (-17.8)
    17,304
    (-27.7)
    20,626
    (19.2)
    28,041
    (35.9)
    32,591
    (16.2)
    53,185
    (63.2)
    68,107
    (28.0)
    83,265
    (22.3)
    수출
    (증가율)
    3542
    (63.8)
    7,917
    (123.5)
    29,034
    (266.7)
    23,893
    (-17.7)
    17,057
    (-28.6)
    20,010
    (17.3)
    27,625
    (38.1)
    32,239
    (16.7)
    50,174
    (55.6)
    66,517
    (32.6)
    81,947
    (23.3)
    수입
    (증가율)
    2,530
    (164.0)
    169
    (-93.3)
    94
    (-44.4)
    54
    (-42.1)
    247
    (355.3)
    616
    (148.9)
    416
    (-32.4)
    352
    (-15.3)
    3,011
    (754.6)
    1,590
    (-42.7)
    1,318
    (-17.1)
    무역수지 1,012 7,748 28,940 23,839 16,810 19,394 27,209 31,887 47,163 64,927 80,629

    출처 : 한국 관세청

     
    2) 투자진출

    우리기업 진출 현황
    구분 기업명 분야 투자액 비고
    1 C&C Plaza 여권제작 350만 미불 C&C Plaza와 조폐공사가 공동사업을 추진하였으나, 현재 동 사업은 중단된 상황
    2 Omnisystem 전기검침기 생산 1,300만 미불 경제특구 내 위치
    3 아티스글로벌건설 아파트 개발 6백만 미불 비슈케크에 1천 세대 규모 개발 사업 착공(’06.9)

     

    (1) 우리의 對키르기스 누계 투자금액은 약 35백만 불, 1998년 한국 Central Asia Group(무역, 놀이시설)의 진출 이후 외환위기로 투자가 감소하였으나, 2001년 이후 증가하여 최근 점차 증가추세.

    (2) 한-키르기스 실질협력 사업

      - 삼성건설이 2002년 2월 비슈케크-오슈 고속도로 건설사업의 일환으로 카라발타-비슈케크 간 80Km 도로확장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며, 1998년 한국 Central Asia Group(무역, 놀이시설)이 비슈케크 시내에 대규모 놀이공원을 조성한 바 있음.

      - 최근에는 우리 IT기업의 진출이 확대되는 추세이며 기타 항공운송, 식당, 의류공장, 농장 등 자영업소 10여 개가 진출

    (3) 우리정부는 1999년 EDCF 차관 12백만 불을 지원, 키르기스 수도권 추이 주 25개 지역에 45,237 회선의 TDX-10 교환기를 공급•설치하여 해당지역 전화적체현상 해소 및 통신서비스를 향상시킨 바 있음. (동 EDCF 차관은 금리 연 2.0%, 상황기간 30년 조건부)

     

    4. 재외동포

    1) 고려인: 약 2만 명
    국방부차관 유가이 보리스 국회의원 신로만검찰청 총괄국장 허가이 알렉산드르
    [국방부차관 유가이 보리스]         [국회의원 신로만]                  [검찰청 총괄국장 허가이 알렉산드르]

    (1) 1937년 강제 이주된 한인들의 후손 2-4세대 고려인들이 동포사회의 주류를 형성

      - 현재 고려인들은 정•관계 고위직, 기업계, 학계, 문화, 언론계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
    (※ 국방부 차관인 유가이 알렉산드라, 법무부장관 김 넬랴, 법무부 검찰국 총괄국장 허가이 알렉산드르 등)

    (2) 시장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기업 활동에 두각

      - 중앙아시아 최대 낙농제품 생산회사인 “신라인”의 신 게오르기 회장을 필두로 상 보리스가 호텔 업 등에서 두각

    (3) 고유의 문화 유지 및 계승

      - 고려인들은 오랜 기간 모국과의 격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말과 문화를 지켜오며 한국어 라디오 방송, 신문, 전통무용단을 운영 중.

      - 수교 이후 우리 정부로부터의 꾸준한 지원 등에 힘입어 젊은 층의 우리말 구사 능력이 꾸준히 향상 되고 있으며 북한 성향을 보이던 공연 예술 분야도 점차 한국화 되어 가는 추세

    2) 재외국민: 약 600여명이 거주 (2006)

    - 주로 무역업, 유학, 선교 등의 목적으로 입국한 장기 체류자와 그 가족들이 주류를 형성

    - 재외국민 단체로는 한인회와 선교사 협의회 및 유학생회, 지상사협의회 등이 있음

     

     

     

     

    사회문화

     

     

    1. 마나스 서사시

    마나스  마나스 동상
    [마나스]                                       [마나스 동상]

    - 세계 최대의 서사시로 서양 최대의 서사시인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합친 것보다 40배 김

    - 키르기스 생활에 관한 백과사전식 지식의 보고로, 고대 투르크인들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생활양식을 알게 해줌

    - 마나스치(Manaschi)라는 구전 자에 의해 1000년 이상 구전되어 내려. 오다, 19세기 후반 러시아가 지배기간에 러시아 학자에 의해 문자화 함.

    - 소비에트 공산주의 시기에는 민족주의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금지됨

    - UN은 1995년을 ‘국제 마나스의 해’로 정하기도 하였고, 이 해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마나스서사시 10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개최됨.

    -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에 등록.

    - 현재에도 초등학교에서는 반드시 마나스서사시가 교과재로 취급되고 있음.

     

    ※‘마나스(Manas)’는 누구인가?

    마나스는 고대 예니세이 강 부근에 흩어져있던 키르기스인들을 규합, 위구르인과 싸우면서 현재의 땅에 이주할 때까지 강력한 키르기스 부족을 이끈 지도자로서, 전설상의 인물이지만 현재까지도 키르기스 전 국민이 칭송하는 존재이다.

    마나스는 실존 인물이 아님에도 키르기스스탄 탈라스 지역에는 그의 무덤이 있고 그의 기념관이 성역화 되어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마나스'라는 이름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국제공항의 이름이 마나스이고, 마나스 대로를 달리다 보면 국립극장인 필하모니 앞에 서있는 거대한 마나스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마나스 서사시’의 내용은?

    마나스'는 초원을 누빈 영웅들의 운명적인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주제이다. 마나스 서사시는 그 속에 격정적인 사랑과 화려한 연회, 영웅들의 경마와 장렬한 1대 1의 승부 장면 등을 노래하고 있다. 큰 줄거리는 사리노가이족의 왕자 ‘마나스’의 탄생, 그의 소년•청년시절과 결혼, 칼미크인에 의한 암살, 그가 죽은 해에 태어난 그의 아들 ‘세메티’, 칼미크인의 ‘세메티’ 암살, ‘세메티’의 유복자 ‘세이테크’의 칼미크인에 대한 복수 등이다.

     

    2. 전통 기마놀이 “콕보루”

    콕보루 콕보루  
    콕보루 콕보루

    [콕보루]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기마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매년 기마 경기대회를 개최 한다. 이는 전통 기마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정당한 내셔널리즘으로, 독립 후의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지방 예선을 거쳐 전국 대회에서 챔피언을 결정해 기마민족의 문화를 계승해 가는 기마 행사의 의미를 갖는다.

    키르기스스탄은 원래 북방 유라시아에서 무수한 기마민족과 교전을 반복하면서 천산산맥 쪽으로 옮겨 그 명맥을 유지하여 왔으며 전통 기마문화를 소중히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까지 전승 보존할 수 있었다.

    현재 키르기스스탄의 많은 기마 경기 중 가장 인기 있는 경기는 '콕보루'이다. '콕보루' 경기는 '코크팔, 쿠크팔' 등으로 불려 지기도 하는데 '염소를 사냥한다'라는 뜻으로, 초원에서 이리를 기마 경기하듯 사냥하며 놀았던 것이 그 유래로 알려져 있다.

    '콕보루'의 경기내용은 양편이 서로 말을 달리며 염소의 목과 발목을 잘라버린 '우라크'를 볼로 생각하고 서로 빼앗아, 자신의 골 ‘타이카잔’에 넣으면 점수가 올라가는, 말하자면 '기마전 럭비'와 같은 경기형태이다. 4대 4로 경기를 하는데 교대 멤버는 4필의 말을 더 넣어 8기로 1 팀이다. 20∼30㎏나 되는 '우라크'를 자유자재로 다루려면 상당한 완력과 승마의 기량이 요구된다.

    이외에도 ‘달리는 말 위에서 서로 바꾸어 타기’, ‘말 위에서 씨름하기’, ‘지면에 떨어진 리본을 달리면서 줍기’, ‘남자가 여자를 따라 말을 타고 달려가서 껴안고 키스하기’ 등등 많은 형태의 기마경기가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인 소설 <쟈밀라>도 말 경기에 승리한 남자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억지 결혼을 당한 후의 비애를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3. 음식문화

    말 젖 짜는 모습 크므즈
    [말 젖 짜는 모습]                        [크므즈]

    키르기스 인들은 유목민족으로 카자흐인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풍습이 있다. 키르기스 인들에게 손님접대를 소홀히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전혀 기대하지 않던 손님이 찾아오더라도 음식을 차려 내오거나 최소한 차를 내놓는다. 그러나 만일 손님이 시간이 없을 경우에는 이를 사양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손님에게 빵을 가져오는데, 손님은 그가 우정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로 주인이 가져온 빵을 조금 떼어 먹는다. 귀한 손님이 오면 키르기스 인들은 양을 통째로 잡아서 대접한다. 가장 존경하는 손님에게는 양의 머리부분을 대접한다.

    가장 귀한 손님은 문에서부터 가장 안쪽에 앉고, 손님은 양 머리를 여러 부분으로 잘라서 식탁에 앉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다. (예를 들면 귀 부분은 가장 어린 아이들에게, 눈은 집주인과 함께 나눈다 - 그런데 이것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음식은 여러 번 순서를 따라 제공되며, 마지막에는 차나 ‘크므즈’(말 젖을 발효유)를 내어 온다. 주인집에서 가장 나이 어린 여자가 음식과 차를 내오는 식탁 시중을 든다.

     

    4. 키르기스인들의 결혼 풍습 : ‘알라카츄(ala kacuu)’

    역사적으로 중매에 대한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키르기스의 많은 젊은이들 (주로 20대 초반)의 결혼은 ‘알라카츄’를 통해 시작된다. 즉, 신랑이 종종 친구들과 함께 자기가 결혼하기로 선택한 처녀를 납치하는 것이다. 물론,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경우에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이 ‘알라카츄’는 12세기 유목시절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신부가 납치가 되면 신랑 쪽 가족들이 신부의 몸값(칼림)을 정하기 위해 신부 쪽 가족을 찾아가게 된다. 이 때 보통 선물, 돈, 술, 혹은 가축 등을 함께 가져간다. 신랑의 가족들과 여러 주를 지낸 다음 결혼식을 올리고 그 지방 이슬람 지도자인 몰도를 초청해서 종교적인 의식을 올린다. 키르기스 정부는 1994년 ‘알라카츄’를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5. 독수리 사냥꾼 ‘베르쿠치’

    독수리와 베르쿠치 독수리와 베르쿠치 독수리와 베르쿠치 독수리와 베르쿠치 독수리와 베르쿠치 독수리와 베르쿠치 독수리와 베르쿠치 독수리와 베르쿠치

    [독수리와 베르쿠치]

    베르쿠치는 옛날부터 유목민 사회에서 존경 받아왔다. 기근으로 굶주릴 때 베르쿠치가 사냥해서 온 마을을 먹여 살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앙아시아에서 독수리 사냥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베르쿠치는 얼마 되지 않는다.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1990년대에 30~40명이던 것이 지금은 10여명으로 줄어 들었다.

    독수리는 사냥감을 발견하면 급상승했다가 날개를 접고 급강하한다. 이때의 낙하속도는 시속 70~80㎞. 거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리곤 마지막 순간에 발톱을 활짝 펴서 먹이를 움켜쥐고 단숨에 절명시킨다. 독수리는 일단 잡은 동물은 뼈가 으스러지도록 바위에 내던지고 2차 공격에 들어가기도 한다.

    독수리는 동물에 따라 공격방법을 달리한다. 여우를 잡을 때는 한쪽 발톱으로 주둥이를 틀어막아 숨을 못 쉬게 하고 다른 발톱으로는 목을 짓눌러 죽인다. 늑대를 공격할 때는 늑대가 물지 못하도록 날카로운 발톱으로 목덜미를 잡은 뒤 부리로 눈이나 귀를 찍는다. 그 일격이 치명타가 돼 늑대는 도망칠 곳을 찾지 못해 버둥거리다 쓰러진다. 독수리는 여우나 늑대와 싸우다 상처를 입어도 절대로 사냥감을 놓치는 법이 없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상대의 살 속을 파고들어 움켜잡기 때문이다.

    독수리 사냥 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독수리를 하늘로 날려서 독수리 스스로 사냥감을 찾게 하는 것. ‘초원의 나라’ 카자흐스탄의 전통적인 사냥 법이다. 또 하나는 베르쿠치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보다가 사냥감이 지나가면 독수리를 풀어서 잡게 하는 것. ‘산악국’ 키르기스스탄의 개량 사냥 법이다.

    사냥에 나서는 독수리는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며칠 전부터 먹이를 주지 않아 배를 곯린다. 또 집을 나설 때 눈가리개를 씌었다가 사냥터에 도착하면 벗겨준다. 멀리 있는 사냥감은 베르쿠치보다 독수리가 훨씬 더 잘 발견한다.

    독수리가 사냥감을 먼저 보면 날개와 꼬리를 푸득거려 주인에게 알린다. 독수리는 시력이 아주 뛰어다. 30m 상공에서 볍씨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독수리가 먹이를 찾아내는 비결은 바로 눈의 줌 기능에 있다. 망원경 같은 눈으로 먼 곳의 먹이를 확인하고 줌으로 당겨 실체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다. 독수리의 사냥 성공률은 거의 90%에 달한다. 사냥에는 암 독수리만 사용한다. 암컷이 수컷보다 크고 힘이 센 데다 훈련에 빨리 적응하기 때문이다. 사냥 독수리는 아직 날지 못하는 어린 야생 검독수리를 길들여 만든다.

    독수리 길들이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인간과 독수리의 모자 관계 형성하기’라고 한다. 그런 유대가 없으면 사냥 중 독수리가 자유를 찾아 날아가 버리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6. ‘중앙아시아의 스위스’ 키르기스스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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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경제

     

     

    1. 정치약사

    [키르기스스탄 정치약사]

    키르기스스탄 정치약사
    1991.8.31 독립선언
    1993.5 신 헌법 채택, 국명을 “키르기스공화국”으로 개명
    1994.1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직접신임투표 실시(96.2% 지지획득)
    1994.10 헌법개정 국민투표. 2원제의회 성립
    1995.2 의회선거(의원의 87%가 키르기스인으로 대체)
    1995.5 쥬마그로프 내각 발족
    1995.12 대통령선거 실시(아카예프 대통령 재선)
    1996.2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총리지명권 및 예산집행권을 대통령에게 집중)
    1998.3 쥬마리예프 내각 발족
    1998.10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토지사유화, 의회정원 증감 결정)
    1998.12 이브라이모프(Ibraimov) 내각 성립
    1999.4 무랄리예브(Amageldy Muraliyev) 총리 임명(이브라이모프 총리 사망)
    1999.8 남서부지역에서 회교 무장군들에 의한 일본인 지질학자 4명 인질사태 발생
    2000.2.20 국회의원선거(입법회의 60명, 인민대표자회의 45명)
    2000.5.25 러시아어 공용화법 채택
    2000.10.29 대통령 선거 실시
    2001.1 Kurmabek BAKIEV 총리 및 내각출범
    2001.8 CIS 안보조약기구 신속 배치군 사령부 비슈케크 설치
    2001.12 미국주도 다국적군(376 항공원정단) 비슈케크 Manas 공항(Ganci 기지) 주둔 개시
    ※ 우리나라 포함 미국, 프랑스, 캐나다, 이태리, 스페인, 네덜란드, 터키, 폴란드 등 12개 다국적군으로 2002년 중 4,000~6,000명 병력 구성
    2002.6 Nikolay Tanayev 내각 출범

     

     

     

  • eurasiaturk 2016-07-09 조회수:835

    tadjikistan 

     

     

     

    정치/경제

     

     

     

    정치

     

    1. 정치 체제

    라흐몬 대통령

    [라흐몬 대통령]

    - 정 체 : 대통령 중심제

    - 정부 주요인사

    - 대통령 : 라흐몬 (Emomali Rahmon)

    - 총 리 : 아킬로프 (Akil Akilov)

    - 외교장관 : 자리피 (Hamrokhon Zarifi)

    - 의 회 : 양원제 의회

    - 의 석 : 상원 34석, 하원 63석(지역구 41석, 비례대표 22석)

    - 여 당 : 국민민주당 (People’s Democratic Party

    - 야 당 : 이슬람부흥당 (Islamic Renaissance Party), 민주당 (Democratic Party), 공산당 (Communist Party), 사회당 (Socialist Party), 사회민주당 (Social Democratic Party), 농민당, 경제개혁당 (Agrarian Party, Party of Economic Reforms)

     

    ※ 타직 정부는 2007년 초부터 러시아식 이름을 타직식 이름으로 변경하는 조치를 취함. 이에 따라 대통령 이름은 기존 라흐모노프 (Rahmonov)에서 라흐몬(Rahmon)으로, 외교장관 이름은 자리포프(Zaripov) 에서 자리피(Zarifi)로 변경

     

    2. 정치 약사

     

    1990.8 주권선언과 동시에 의회는 연말에 카하르 마하모프 (Kakhar Makhkamov)를 타지키스탄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

    1991.8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쿠데타와 관련하여 마하모프 대통령 사임

    1991.8.31 국명을 “타지키스탄 공화국”으로 개명

    1991.9 독립선언

        ※ 국가원수 대행 및 의회 의장직을 맡고 있었던 카드레닌 아슬로노프(Kadrennin Aslonov)가 공산당의 활동을 금지하였으나 최고회의는 이를 무효화하고 아슬로노프를 라키몬 나비예프(Rakimon Nabiyev)로 교체

    1991.11.24 부정선거의 의혹이 있었지만 나비예프가 58%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

    1991.12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로 CIS에 가입

    1992.2 대통령 지지파(집권 구 공산세력)와 반대파(이슬람, 민족주의, 민주주의 세력)간 투쟁 시작

        ※ 수도에서 수천 명이 모여 시위를 하였는데 이것이 정부와의 무력충돌로 발전

    1992.5 내란 시작

    1992.9 나비예프 대통령, 강제 사임

               이스칸다로프(Iskandarov)를 수반으로 하는 친 이슬람 연립 내각 구성

    1992.10 러시아군 진주, 친 공산 쿠데타를 기도하였으나 실패

    1992.11 이스칸다로프(Iskadarov) 내각 사임

                 친 공산계열의 라흐몬(Rahmon)을 국가원수인 최고회의 의장으로 옹립

    1992.12 러시아의 군사적 지원을 받은 구 공산계 정부군이 반정부세력을 아프가니스탄으로 패퇴시켰으나, 반정부세력은 아프가니스탄에 거점을 두고 기습공격에 의한 산발적인 전투를 계속함

    1994.9 UN, 러시아, 이란 등의 중재로 정부와 반정부 세력간 정전 협정 체결

    1994.11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신 헌법 채택

                 라흐몬이 53.8%의 지지율로 최초 직선대통령에 당선

    1994.12 UN, 타지키스탄 내전 감시 목적으로 유엔평화유지활동군 (UNMOT, 9개국 36명) 파견

    1995.2.26 의회선거를 통해 지역 편중적 지도층 구성

    1995.6 UN 총회, ’지우기94 휴전협정이 준수된다는 조건 하에 UNMOT의 임무 기간을 ’지우기95.12.15까지 연장토록 한 안보리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

    1997.6 UN과 러시아의 적극 개입으로 모스크바에서 타직 정부와 개혁연합세력 (The United Tajik Opposition : UTO)간 평화협정체결

        ※ 동 합의는 1) 반대세력 정당의 합법화, 2) 민족화합회(National Reconciliation Council : NRC)의 창설, 3) 반군세력에게 정부 요직의 30% 할애, 4) 1998년 말 이전의 의회선거 실시, 5) 포로 교환, 6) 반군 세력을 정규군으로 통합하는 내용 등을 담음

    1998.11 평화협정에 불만을 품은 마흐무드 후도베르디예프 (Makhmoud Khudoberdiyev)가 우즈벡 민족의 대부분이 거주하는 북부 도시 후잔드를 거점으로 반란을 주도하였으나, 라흐몬 대통령은 반군측의 요구를 거부

    1999.9.26 헌법 개정과 관련하여 국민투표 실시

     1) 대통령 임기 연장 (5년→7년)

     2) 양원제 도입

     3) 종교에 기초한 정당을 형성할 권리 등을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안 승인

    1999.11 언론조작, 정적 제거 등의 방법으로 라흐몬이 97%의 득표율로 재선

    2000.2 의회선거를 통해 국민민주당(People’s Democratic Party : PDP)이 다수당이 됨

    2001.11 아프가니스탄에서 진행되고 있던 미군 주도의 군사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미군과 프랑스 군대의 한시적인 주둔 허용

    2003.6 헌법 개정과 관련하여 국민투표 실시

     1) 헌법에서 종교정당에 대한 언급을 삭제

     2) 대통령 임기 제한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에 의해 승인

    2006.11 라흐몬 대통령 76.4%의 지지율로 7년 임기 대통령 3선에 성공

     

     

     

    ※ 타지키스탄 내전의 과정

    1991년 9월 독립을 맞은 후 9개월 만에 발생한 타지키스탄 내전은 96년의 휴전 협정과 97년의 평화조약 체결에 이르기까지 약 5만의 사상자와 100만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킨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내전의 두 당사자는 타지키스탄 북부 후잔드와 남부 쿨랍지역을 근거로 하는 친 공산 보수세력과, 이에 반대하는 개혁연합세력(The United Tajik Opposition - UTO)이다. UTO세력을 주도한 것은 ‘이슬람 부흥당’이며 작가나 지식인 중심의 ‘라스토헤즈 민중전선’과 같은 민족주의 계열, ‘민주당’과 같은 민주주의 그룹, 사업가와 상인들로 이루어진 ‘민중연합전선’, 특정지역의 발전과 분리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자치주의자 그룹까지 매우 다양한 정치적 이념과 입장을 지닌 집단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광범위한 연합은 개혁의 필연성에 대한 대중적 공감을 입증하는 것이며, 이들은 공산집권 세력이 상징하는 구시대적 유물을 청산하고, 독립 후 새로이 출발하는 조국 타지키스탄에 진정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였다.

     
     
     
    타지키스탄 내전 당시 모습

    [타지키스탄 내전 당시 모습]

    1991년 11월 치러진 선거에서 ‘타지키스탄 공산당’의 제1서기장이었던 R.나비예프 (Nabiyev)가 58%의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반대세력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재선거를 요구하였지만 나비예프가 이를 거절하고 반대세력 중 몇 명을 부패혐의로 체포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타지키스탄 전국은 대규모 항의시위에 휩싸이고, 이 과정에서 5월6일 처음으로 폭력사태가 발생하여 3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을 입게 되며, 그 다음날 나비예프의 친위대라고 볼 수 있는 국가 수비대와 무장한 반군세력간의 무력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무력충돌은 중앙아시아 이웃 나라와 러시아의 우려를 낳아 CIS 평화유지군 러시아 사령관으로 타지키스탄에 머물던 V.자볼로트느이 (Zabolotnyi)의 중재로 나비예프와 UTO는 ‘국가 화해를 위한 연립정부’(Coalition Government of National Reconciliation - GNR) 구성에 합의한다. 이 합의에 의해 이슬람 부흥당 부의장인 D.우스만(Usman)이 부수상에 임명되고 내각 각료 구성의 1/3 UTO쪽에 할당된다. 그러나 이러한 협상 결과에도 불구하고 나비예프의 완전사임을 요구하는 반대세력과, 분리 독립을 불사하겠다는 후잔드-쿨랍 나비예프 지지자들간의 폭력은 계속되었다. 그 결과 6월에는 무장한 쿨랍 공산주의자들이 개혁세력을 지지하는 쿠르간-튜베(코르간테파)를 공격해서 적어도 100명이 사망하고 수천의 튜베인이 난민화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 무장 세력에 의해 결국 9월 나비예프가 사임하게 된다. 곧 이어 개혁파 A. 이스칸다로프가 이끄는 임시정부가 구성되지만, 92년 10월 쿨랍의 무장세력에 의한 쿠데타로 이스칸다로프 내각이 사임하고, 친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하는 후잔드 의회에서 일방적으로 쿨랍 출신의 공산주의자인 I.라흐모노프(라흐몬)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한편, 수도에서는 반군세력이 보수세력에 맞서 저항하지만 라흐모노프 세력에게 함락되며, 이 과정에서 각 세력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수십만의 평범한 타지키스탄 시민들조차 아프가니스탄으로 탈출하게 되고 많은 타직인들이 희생되었다. 라흐모노프와 친 공산세력의 승리로 내전 상황은 일시적인 소강 상태를 보이는 듯 하였지만, 라흐모노프 정권은 화해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에 은신한 반군세력들은 한편으로는 아랍과 파키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으로부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집단으로부터 물질적, 군사적 원조를 얻게 되고 이에 힘입어 93년 봄부터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타지키스탄 공격을 감행한다. 특히 원조는 자신들과 원리주의 이론을 공유하는 이슬람 부흥당 지지자들 쪽에 주로 집중되었다. 그 군사적 공격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93년 6월 쿨랍 지역에 대한 보복공격으로 그 결과 200여 명의 쿨랍 주민이 살해되었다. 이들의 군사행동의 타깃은 내전에서 기존의 집권세력을 도왔던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주도의 CIS군을 포함하여, 93년 5월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지키스탄으로 이동하던 수호이-24 제트 전투병을 공격하기도 하고, 앞서 언급한 6월의 쿨랍 공격에서는 25명의 러시아인 아프가니스탄-타지키스탄 국경수비대원이 사살되기도 하였다. 이에 러시아는 타지키스탄 주둔 평화유지군과 국경수비대를 강화하고, 93년 8월 중앙아시아 국가 원수들과 정상회담에서 타지키스탄 문제에 대한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공동책임을 강조하였으며, UN에 타지키스탄 내전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중재를 요청한다. 94년 UN은 UNMOT(UN Mission of Observers in Tajikistan) 본부를 두샨베에 설립하며, UN과 러시아 등의 외교적 압력으로 결국 95년 8월 라흐모노프 대통령과 UTO 의장인 S. A. 누리(Nuri) 사이에 국가 화해를 위한 의정서가 채택되고, 96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의 참석 하에, UTO 대표를 의장으로 하는 국가화해 위원회(Commision on National Reconciliation – CNR) 설립, 평화협상 중 완전 휴전, 조속한 시일 내 자유로운 국회의원 선거 실시, 난민 보호와 복귀 노력을 주 내용으로 하는 휴전협정이 이루어지고, 다음해 6월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내전은 사실상 종결된다.

     

    3. 향후 전망

    - 2006년 11월에 실시된 선거에서 80%에 가까운 압도적인 지지율로 라흐몬 대통령이 재선됨에 따라, 향후 타직 정세는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이며, 대외관계에서도 당분간 현 정책기조가 이어져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 민주주의 정치체제 발전 전망과 관련하여 대다수의 타직 국민들은 오랜 내전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과 어려운 경제 여건으로 인해 더 이상의 혼란은 원하지 않고 있으며, 06년 대선 결과가 보여주듯 강한 지도자를 통한 국가 안정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며, 서방 국가들이 요구하는 민주주의 요건을 갖추기는 앞으로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

     

    1. 대외정책 기조

    주변국들의 압력을 견제하고 자주성 확보를 위해 주변 강국과의 우호관계 강화

    - 단기적으로는 접경국 우즈벡으로부터의 지속적인 압력과 중장기적으로는 동쪽의 대국인 중국의 압력 가능성에 대비, 미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

     

    2. 주요국과의 관계

    1) 대 러시아 관계

    - 러시아는 타지키스탄의 전통적인 우방국이자 최대 지원국

    - 04.6 타지키스탄과 러시아는 러시아의 투자를 보장하고 타지키스탄에 영구적인 러시아군 기지를 건설하는 내용의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타지키스탄은 많은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것으로 보이나 러시아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효과도 가져올 것으로 봄

    2) 대 미국 관계

    - 타지키스탄과 미국은 관계 강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

    - 2003년도 미국의 대타직 지원금은 4,900만 달러로 추정되며, 그 중 2,200만 달러가 인도적 지원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임

    - 미국은 타지키스탄의 국경수비대원을 훈련시키는 일에도 100만 달러를 지원하였으며, 여타 군사적 지원제공도 하고 있음

    - 미국은 2004년 타지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5개국과 무역 및 투자협정(TIFA)을 맺었으며, 그 결과 타지키스탄의 무역과 해외직접투자 유입이 증대

    3) 대 아시아 관계

    - 외교의 다변화와 대외관계의 확대를 추구하면서 아시아와의 경제, 무역 관계에 중점을 두면서 전반적인 관계 증진에 노력

    - 특히, 타지키스탄은 파키스탄과의 관계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양국은 04.5 라흐몬 대통령의 파키스탄 방문을 계기로 정치, 경제협력을 증진하는 협정에 서명

    - 타직-중국 신장지방간 직통도로 개통(04), 중국의 타직에 대한 경제, 사회적 영향력이 증대되고 중국의 경제 진출도 활발해짐

    4) 대 우즈베키스탄 관계

    - 인접국 우즈벡과는 사마르칸드 문명의 역사적 소유권 문제, 자국 민족 문제와 수자원 이용 문제 등으로 갈등 지속

    • 타직 국민들의 약 20%가 우즈벡인이라는 점, 오쉬(Osh) 지방과 페르가나(Fergana) 계곡을 둘러싼 영토 문제, 우즈벡인들은 타직을 구 소련 당국이 우즈벡에서 억지로 떼어내 인공적으로 창설한 국가로 보는 시각

    - 특히, 최근 타직 정부는 외국투자를 받아 전력생산을 위한 신규 댐 건설을 추진 중인바, 수자원 이용과 관련하여 우즈벡측과 마찰 지속

     

    3. 주요 협력기구 참여 현황과 최근 동향

    · 상하이 협력기구(SCO), 중앙아 협력기구(CACO), 유라시아 경제공동체(EURASEC),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2007년 비쉬켁에서 개최된 SCO 정상회의

    [2007년 비쉬켁에서 개최된 SCO 정상회의]

    · 2007.10키르기스 수도 비쉬켁에서 개최된 SCO 정상회의에서 ‘비쉬켁 선언’, ‘선린우호협력조약’, ‘공동성명’ 등에 서명하고 지역안보 및 대 테러협력, 아프간과 관련된 마약 및 돈세탁 문제 대응, 에너지 분야 협력 강화, 경제·문화·교육·보건분야 협력, 옵저버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 방안 등 논의

    - 특히 ‘비쉬켁 선언’을 통하여 중앙아 지역의 안정과 안보는 역내 국가들의 협력을 통해 확보해 나갈 것임을 명백히 함

    2007.10 두샨베에서 개최된 EURASEC 정상회의 2007.10 두샨베에서 개최된 EURASEC 정상회의

    [2007.10 두샨베에서 개최된 EURASEC 정상회의]

    · 2007.10 EurAsEC 정상회의에서 1) 러시아, 벨라루시, 카자흐스탄간 관세동맹 형성 합의, 관세동맹위원회 설치, 관세동맹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협정 채택 2) 제62차 유엔총회에 상정되었던 “유엔과 EurAsEC간 협력”에 관한 유엔총회 결정에 따라 향후 EurAsEC 활동에 대한 주기적 유엔 보고, 3) 중앙아 지역 수자원 및 에너지자원의 효율적 이용방안 작성 지속 등에 대해 합의

    2007.1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푸틴의 타지키스탄 방문

    [2007.1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푸틴의 타지키스탄 방문]

    · 2007.10 집단안보조약기구 회원국 정상회의에서 1) CSTO 평화유지군 활동을 위한 각종 법적, 제도적 기반 문서에 서명, 2) 군사 및 첩보활동을 위한 CSTO 회원국의 러시아제 무기 국내가격 구매에 합의 3) CSTO-SCO간 협력의 법적 기반 마련을 위한 MOU에 서명

     

    경제

     

    1. 주요 경제지표

    [2002-2006연도별 주요 경제지표]

    데이터 테이블
    구분 2002 2003 2004 2005 2006
    GDP(억$) 12 16 21 23 28
    1인당GDP($) 191 252 327 353 430
    GDP성장률 9.1 10.2 10.6 6.7 7.0
    경상수지(백만$) -17 -5 -57 -19 29
    상품수지(백만$) -124 -120 -135 -323 -351
    수출(백만$) 699 906 1,097 1,108 1,315
    수입(백만$) 823 1,026 1,232 1,431 1,666
    서비스수지(백만$) -36 -33 -90 -105 -260
    외환보유액(백만$) 90 112 158 168 175
    타지키스탄의 주요 수입국

    [타지키스탄의 주요 수입국]

    타지키스탄의 주요 수출국

    [타지키스탄의 주요 수출국]

     

    2. 주요산업

    1) 광업 분야 – 알루미늄

    구 소련 시절 타직은 알루미늄 공급 기지로서 현재 타직에서 가장 큰 기업인 TadAZ라는 알루미늄 공장이 운영 중이다. 연간 52만 톤의 알루미늄을 생산할 수 있는 동 공장은 최근 연 13만 톤의 알루미늄을 생산하여 핀란드, 영국, 헝가리, 한국 등으로 약 2억불의 수출을 기록하고 있다. 동 알루미늄 공장은 우즈벡 전력 생산량의 40%를 소비하고 있으며 공장 고용원만 12,000명에 이르고 관련 공장 인원을 총 합하면 10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공장이다. 한편, 타직 정부는 동 공장의 경쟁력 강화 및 장비 현대화를 위해 민영화를 추진 중이나 1억 2천만 달러의 외채가 있어 해외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2) 전력 분야

    주로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타지키스탄은 키르기즈스탄과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의 젖줄인 아무다리야와 시르다리야강의 상류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수력발전에 유리하다. 전력은 7개 수력발전소에서 연간 4.4GW 전력을 생산, 이중 ‘누렉(Nurek)’ 발전소가 70%를 차지하고 350MW급 화력발전소에서 142억 kWh를 생산하고 있다. 전력망은 남부지역과 시르다리야강 수원을 이용한 ‘콰이로쿰(Qayroqqum)’ 수력발전소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지역으로 나누어 있으나 ‘콰이로쿰(Qayroqqum)’ 발전량이 수요량의 30%에 불과하여 북부지역은 우즈벡에서 전력을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전력생산 설비가 노후 된데다가 관리도 부실하여 타직 정부는 전력 생산, 송전을 전담하고 있는 국영 ‘바르키토직(Barqi-Tojik)’사를 중심으로 송전망을 개 보수하면서 외자도입을 통해 내전으로 중단된 중,대형 수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재개하고 새로운 발전소 건설을 추진 중이다.

    ※ 인터넷 기사 <타지크 전력난 심각 국민은 춥고 괴로워>

    기사입력 2008-01-08 22:08

    (알마티=연합뉴스) 유창엽 특파원 =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 국민의 대다수가 혹한 속에서 하루 3~4시간만 전력을 공급받고 있다.
    수도 두샨베를 비롯해 대부분의 지역 주민들은 최근 영하 10~20도의 날씨가 지속되는 가운데 하루에 3~4시간만 전력을 공급받고 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8일 전했다.
    타지크는 10년 전부터 전력 수출국인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이 전력 공급량을 대폭 줄이는 바람에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다.
    올 겨울 들어 대부분의 지역은 전력을 정상적으로 공급받아오다 이처럼 전력난이 악화한 것.
    북극 풍으로 인한 혹한은 이달 중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여 주민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은 특히 난방이 전혀 안 되는 집에서 가스마저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타지크 당국은 670㎿의 발전용량으로 설계된 첫 번째 '상투딘' 수력발전소가 오는 18일 가동에 들어가기를 고대하고 있다.
    발전소 건설을 맡은 러시아 국영전력회사인 '통합전력시스템'(UES)은 당초 오는 3월 가동을 개시할 예정이었으나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크 대통령이 겨울철 전력난 악화를 우려해 가동을 최대한 앞당겨 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가동시기를 앞당겼다.

    3) 농업분야

    타직 고용인구의 절반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GDP 생산의 17%를 점유하고 있고, 면화가 농업생산의 2/3를 차지하며 이외에 다양한 과일 및 야채를 생산하며 아몬드, 건포도 등은 소량을 수출하고 있다. 면화는 카트론 및 북부 소그드주, 곡물은 관개시설이 구비된 서남부 지역에서 주로 생산된다.

     

    3. 경제 동향과 향후 전망

    - 타지키스탄 경제는 1997년 내전 종식 이후 해외로부터의 원조와 주로 러시아에 거주하는 타직 교민들이 송금하는 연 6억 달러 정도의 송금 및 경제 규제완화와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최근 5년간 연평균 8.7%의 경제성장을 시현

    - 타직은 면화(연 20만 톤)와 알루미늄(연 30-40만 톤) 외에는 별다른 외화 가득원이 없으며, 인접국 우즈벡이 육상 교통로는 물론, 항공 교통까지 제한하고 있어, 무역 증진에 애로를 겪고 있는 상황

        ※ 또 다른 문제점은 석탄 14억 톤, 금 500톤, 은 10만 톤, 아연 4-5백만 톤과 일정량의 석유 및 천연가스 등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송에 불리한 내륙에 위치하여 금과 은 등 귀금속을 제외하고는 거의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임

    - 타직 국민들의 50-60%는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음, 북부 후잔드 지역과 수도 두샨베 지역의 경제상황은 비교적 양호하나 중국과의 국경에 위치한 바다흐샨 고원이나 라쉬트 계곡의 경제상황은 매우 열악

    -  그러나, 수력발전소 건설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어 타직이 가진 유일하게 풍부한 자원인 수력자원이 제대로 활용되고, 정치적 안정이 유지되며, 러시아 등 해외거주 국민들로부터의 송금과 해외원조가 계획대로 유입된다면, 향후 5-6년간 타직은 연 7-8%의 경제성장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

     

     

     


  • tadjikistan

     

     

    종합개관

     

     

    1. 위치

    카자흐스탄의 위치도

    [타지키스탄 위치도]

    북위 39도, 동경 71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중앙아시아에 속한다. 북쪽으로는 키르기즈스탄, 동쪽으로는 중국,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서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과 접경하고 있다. 총 국경선 길이는 3,651km (아프가니스탄 1,206 km, 우즈베키스탄 1,161 km, 키르기스스탄 870km, 중국 414km)이다.

     

    2. 일반개황

    데이터 테이블
    국 호 타지키스탄 공화국(Republic of Tajikistan)
    ※ 타직어표기 : Ҷумҳурии Тоҷикистон / جمهوری تاجیکستان
    독립일 1991년 9월 9일
    수 도 두샨베 (Dushanbe, 인구 약 67만 명)
    영토면적 14만 3,100㎢ (한반도의 2/3 크기)
    인 구 7,211,884명
    인 종 타직인 79.9%, 우즈벡인 15.3%, 러시아인 1.1%, 키르기즈인 1.1%, 그 외 2.6%
    종 교 이슬람교 90% (수니파 85%, 시아파 5%), 기타 10%
    언 어 타직어, 러시아어
    평균수명 64.97세 (남성 : 61.95세, 여성 : 68.15세)
    문맹률 0.5%
    대통령 및 임기 에모말리 라흐몬 (Emomali Rahmon) / 임기 : 7년
    의 회 양원제 / 상원: 34명 하원: 63명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제
    주요정당 국민민주당, 이슬람부흥당, 민주당, 공산당, 사회당, 사회민주당, 농민당, 경제개당
    화폐단위 소모니(Somoni) ※ 1$ ≒ 3.44 somoni (2007.10)
    국내총생산(GDP) 37억$ (2007)
    1인당 GDP 430$ (2006)
    수출입 수출액 : 14억 6천8백$ (2007)
    ※ 주요수출품 : 알루미늄, 전력, 원면 등
    수입액 : 24억 5천5백$ (2007)
    ※ 주요수입품 : 석유제품, 산화알루미늄, 기계·장비, 식료품 등
    주요산업 광업(알루미늄), 농업(면화)
    주요자원 알루미늄, 금, 은, 대리석, 우라늄, 갈탄
    행정구성 2개 주, 1개 자치주, 1개 특별시
    주요도시 두샨베, 가름, 호루크, 후잔드, 쿨럅 등
    주요경축일 1.1 신년, 3.8 국제여성의 날, 3.21 나브루즈, 5.1 국제노동의 날, 5.9 전승기념일, 6.27 국민통합의 날, 9.9 독립기념일, 11.6 제헌절

     

    3. 국기

    국기

    1:2 비율의 직사각형으로 3색 가로줄, 금색 왕관과 그 주위를 둘러싼 7개의 별로 구성되어 있다. 초록색은 전 국토의 7%에 불과한 분지를, 흰색은 국가의 주요작물인 면화, 혹은 국토의 93%를 차지하는 산의 정상에 쌓인 눈과 얼음을, 붉은색은 공화국의 단결과 다른 나라들과의 우애를, 왕관은 타직 민족을, 7개의 별은 완전성과 행복, 선(善)을 상징한다.

     

    4. 국가문장

    국가문장

    중앙의 왕관과 그 주위를 둘러싼 7개의 별, 눈 덮인 산에서 떠오르는 태양, 오른쪽으로는 밀 이삭, 왼쪽으로는 활짝 핀 목화로 구성되어 있다. 왕관은 국가의 통합과 번영을 상징하고, 7개의 별은 행복과 조화, 산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삶의 시작, 밀 이삭은 국가의 풍요를 각각 상징한다.

     

    5. 국가

    “수루디 밀리” (타직어 : Суруди миллӣ / سرودملی تاجیکستان) 라고 하는 타지키스탄의 국가는 공식적으로 1991년 채택되었다. 타직 시인인 굴나자르 켈디(Gulnazar Keldi)가 작사하였고, 술레이만 유다코프(Suleiman Yudakov)가 작곡하였으며, 현재의 국가는 타직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가와 같은 멜로디이다. 이는 술레이만 유다코프(Suleiman Yudakov)가 1944년 작곡한 것이다.

    [타지키스탄 국가 악보]

    데이터 테이블
    키릴문자 한국어 번역
    1
    Диёри арҷманди мо - !
    Ба бахти мо сари азизи ту баланд бод - !
    Саодати ту, давлати ту бегазанд бод - !
    Зи дурии замонахо расидаем - ,
    Ба зери парчами ту саф кашидаем, кашидаем - !
    Зинда бош, эй Ватан, Тоҷикистони озоди ман - !

    2
    Барои нангу номи мо - !
    Ту аз умеди рафтагони мо нишонаӣ - !
    Ту баҳри ворисон ҷахони ҷовидонаӣ - !
    Хазон намерасад ба навбаҳори ту - ,
    Ки мазраи вафо бувад канори ту, канори ту - !
    Зинда бош, эй Ватан, Тоҷикистони озоди ман - !

    3
    Ту модаре ягонаӣ - !
    Бақои ту бувад бақои хонадони мо - !
    Мароми ту бувад мароми ҷисму ҷони мо - !
    Зи ту саодати абад насиби мост - ,
    Ту ҳастиву ҳама ҷаҳон ҳабиби мост, ҳабиби мост - !
    Зинда бош, эй Ватан, Тоҷикистони озоди ман - !
    1절
    사랑하는 우리 조국!
    조국의 긍지란 가장 자랑스런 명예!
    조국의 행복과 발전이 영원하기를!
    소원은 예로부터 독립이었네,
    조국의 깃발을 날리고 휘날려라!
    (후렴) 영원하고 자유로운 우리 조국, 타지키스탄!

    2절
    우리 조국, 우리 희망!
    우리의 명예와 존엄성은 영원하리!
    우리는 조국 안에 있는 국민이라!
    희망은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
    우리는 조국을 위하여 충성하리라!
    (후렴) 영원하고 자유로운 우리 조국, 타지키스탄!

    3절
    조국은 우리 스승일세!
    조국의 미래가 곧 우리 미래이리라!
    조국의 의미란 곧 우리 의미이리라!
    조국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
    우리는 조국을 존경하리라!
    (후렴) 영원하고 자유로운 우리 조국, 타지키스탄!

     

    6. 참고문헌

    - 이재영·신현준 편저. 2007. 『한국의 주요국별·지역별 통상전략: 중앙아시아』. 서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이재영·박상남 편저. 2007. 『중앙아시아의 부상과 한국의 대응전략』. 서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이문영. 2004. 『현대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정치세력화: 타지키스탄 내전과 러시아-우즈베키스탄 관계』. 서울: 서울대학교 러시아연구소.

    - 외교통상부. 2007. 『타지키스탄 개황』. 서울: 외교통상부

    - CIA-The World Factbook http://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

    - 위키피디아 http://www.wikipedia.org

    - 엔싸이버 두산백과 http://www.encyber.com

    - 월드맵파인더 http://www.worldmapfinder.com

    - 외교통상부 http:///www.mofat.go.kr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http://www.kiep.go.kr

    - 세계인터넷선교학회 http://mission.swim.org/tajikistan

    - 네이버뉴스 news.naver.com

     

     

    자연환경

     

     

    1. 지형

    타지키스탄의 지형도

    [타지키스탄의 지형도]

    코뮤니즘봉 파미르고원
    [코뮤니즘봉]                               [파미르고원]

    타지키스탄은 해발고도 5,000m 이상의 파미르고원에 걸쳐 있어 국토의 93%가 산지이다. 동반부가 파미르고원으로 코뮤니즘봉[1]삭제하기(7,495m)· 레닌산(7,134)m 등의 고산지가 전개된다. 파미르고원은 한랭한 반 사막이며, 고원의 서쪽은 유년기의 깊은 침식곡이 형성되어 있다. 파미르고원의 산계는 습곡산맥을 형성한다. 파미르고원에서 서쪽으로는 알라이스키 ·제라프샨· 투르키스탄·기잘 등 해발고도 3,000~4,000m에 이르는 산맥이 평행하게 뻗어 있지만 서반부는 남북으로 양분된다. 남부는 아무다리야강(江) 유역의 기잘분지 등이 펼쳐지고, 북부는 시르다리야강 유역의 페르가나분지가 나타난다.

     

    2. 기후

    기후는 전반적으로 건조한 대륙성 기후로, 1월 평균기온은 0℃ 전후, 7월 평균기온은 27~30℃로 따뜻하지만 산악국이므로 지형에 따라 차이가 많다. 기온은 일교차, 연교차가 크다. 저지(低地)는 연강수량 350~450mm이고, 200일 이상 계속되는 여름에는 건조하고 해발고도 1,000~2,000m 의 산중턱에는 습윤한 편서풍이 불어온다. 북부의 페르가나분지는 1월 평균기온이 -3~-1℃나 된다. 파미르고원은 겨울이 300일 이상이며, 1월 평균기온 -19.7℃이고, 7월 평균기온 13℃로써 황량한 산악스텝이다. 하천은 모두 4~5월, 7~8월 연 2회의 고수기를 나타내며 목화 재배지의 관개용수로 이용된다. 전체 국토면적 중에 경작 가능지 6.52%, 농경지 0.89%, 황무지 기타 92.59%이다.

     

    3. 행정구역

    타지키스탄의 행정구역 지도

    타지키스탄의 행정구역 지도

    타지키스탄의 수도는 두샨베이다. 지방은 남부의 하토론주(주도는 쿠르곤테파), 북부는 페르가나 분지 방면의 소그드주(주도는 후잔드)의 2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고, 동부 파미르고원의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주도는 호루크)로 나뉜다.

    [타지키스탄 행정구역]

    데이터 테이블
    번호 구역 주도/수도 면적(㎢) 인구
    1 Sughd(소그드주) Khujand 25,400 210만
    2 Region of Republican Subordination Dushanbe 28,600 153만
    3 Khatlon(하토론주) Qurghonteppa 24,800 150만
    4 Gorno-Badakhshan(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 Khorugh 64,200 22만

    1) 두샨베 (Dushanbe)
    두샨베 국립 박물관 두샨베의 정부청사건물

    [두샨베 국립 박물관]               [두샨베의 정부청사건물]

     

     

     

     

     

    역사

     

     

    1. 민족 형성 시기

    · 타직인의 조상은 고대 동부 이란족을 구성하는 박트리아인과 소그드인으로서, 2,500년 전 중앙아시아에 거주하기 시작, BC 6세기까지 원시 공동체의 사회였으나, 점차 노예제 사회로 전환

         - 이후 투르크족과 몽골족이 중앙아시아에 진입하여 동부 이란족과 동화되었으나 주로 동부 이란족이 타직인의 조상을 구성

    · BC 6세기에 페르시아 제국에 병합되었고, BC 4세기에 페르시아 제국이 알렉산더 대왕에 정복되면서 대부분의 타직인이 마케도니아 왕국의 지배를 받음

         - 일부 타직족은 북부의 오아시스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그드국을 구성하여 중국과 서유럽간의 실크로드 무역의 기점으로 존재하였으며, 소그드국은 불교, 네스토리안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등의 종교와 알파벳 등의 문화를 무역로를 따라 전파

    · BC 4세기부터 BC 1세기 동안 타직 지역은 인도의 쿠샨왕조의 일부분으로 편입

    · AD 1세기 이후 중국의 한(漢) 왕조와 교역관계가 발전하면서 중국과의 군사적 분쟁이 빈발하였으나, 중국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그 자리를 이슬람세력이 차지

         - 중국은 서역원정의 역사에 기반하여 19세기 후반까지 파미르고원(오늘날 동남부 타지키스탄)에 대한 권리를 지속적으로 주장하였으며, 구 소련 해체 후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재주장하는 경향

     

    2. 이슬람 정복 및 사마니드 왕조

    · 타지키스탄 지역은 7세기에는 투르크, 8세기에는 아랍인에 의해 정복되었으며, 그 후 봉건적 체제가 확립되면서 타직이라는 명칭이 처음 역사기록에 등장

    · 8세기 초 아랍인 정복 이후 이슬람 개종이 시작되었으며,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개종 시 세금 혜택, 타직인의 점진적 수용, 강제력 사용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

    · 이슬람 정복 이전에 이미 융성했던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은 이슬람 정복 이후에도 더욱 활성화 됨

          - 이슬람 정복 이전에 이란 계 왕조인 사샨 왕조의 지배하에 있을 때 이미 페르시아 문자와 문화, 그리고 조로아스터교가 오늘날 타직인들의 조상들에게 퍼짐

    · 이슬람 정복 이후 타직인들의 정체성 확립에 있어 사마니드 왕조(AD 900-999)가 가장 큰 역할을 함

          - 사마니드 왕조는 페르시아어 사용을 장려하였고, 동 왕조 초기에 부하라는 페르시아어 사용권 국가 중 문화 및 교육의 중심지로 자리 잡음.

          - 사마니드 왕조의 짧은 지배 기간 동안 타직의 예술과 과학이 융성하고 이 시대의 학자들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오늘날 타직의 정체성이 사마니드 왕조에서부터 기원한다고 생각

     

     

    타지키스탄의 위치도

    [사마니드 왕조 (AD 900)]

    이스마일 사마니 동상

    이스마일 사마니 동상

    · 9세기 초부터 투르크의 페르시아 문화권 침입이 시작되어 10세기 후반 사마니드 왕조는 루르크의 지배하에 점차 편입

         - 투르크인들의 진입은 11세기 초부터 본격화되어 오늘의 타지키스탄인 남부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진출하였으며 오랜 기간의 투르크 지배는 이전의 목축 중심의 유목생활을 농경정착문화로 전환시킴

         - 사마니드 왕조 이후 투르크의 진입은 페르시아와 투르크의 융합이라는 중앙아시아의 특성을 낳았으며, 중앙아시아는 여러 아시아 국가의 전장(戰場)이 됨

     

    3. 몽골 정복 및 티무르 제국

    · 13세기에는 다른 중앙아시아와 같이 몽골의 칭기스칸에 점령되었고, 14세기에는 티무르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이 시기에 성립된 우즈벡 칸에게 19세기 후반까지 지배당함

     

    · 티무르 제국(1305-1506)을 세운 티무르는 칭기스칸의 아들인 차가타이 칸의 원정에 참여하여 세력을 키워 왕조를 창건

          - 1506년 티무르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바디 아즈 자만이 우즈벡의 칸 무하마드 샤이바니의 군사에 항복을 하고, 일부 세력은 인도로 건너가 1506년에 무굴 제국이 되는 티무르 제국을 재건

     

    4. 제정러시아와 구 소련 시대

    · 19세기 후반 제정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진출 정책이 시작되어, 먼저 부하라칸국이 멸망(1866)한 후 타직으로의 침입이 시작되었는데, 격심한 저항 후에 1895년 러시아의 식민 지배하에 들어감

    · 1916년 중앙아시아 반란 때 이에 가담하였으나, 17년 소비에트 정권이 성립될 때 투르키스탄 공화국의 일부가 되어 러시아 공화국에 들어감

    · 러시아 공화국에 들어간 직후 자립한 부하라 칸 아래서 반혁명의 거점이 되었으나, 1920년 대중들이 적군에 가담하고, 적군이 부하라 칸을 추적하여 각 도시를 점령, 반혁명분자를 일소

    · 1924년 부하라 소비에트 인민공화국을 부하라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재편성하여 소 연방에 가입하였고, 그 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내 타직 자치공화국이 성립됨

    · 1929년 단독으로 소 연방 구성공화국이 되었으나, 1991년 9월에 독립을 선언하고 같은 해 12월에 소 연방의 해체와 함께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

     

     

     

    한국과의 관계

     

    1. 양국 관계 현황

    제6차 정부혁신세계포럼 노무현 대통령과 라흐몬 대통령
    [제6차 정부혁신세계포럼]            [노무현 대통령과 라흐몬 대통령]

     

    · 수교 : 1992. 4. 27

    · 수출액 : 1,449만$ (수출품목 : 자동차, 기계류, 섬유, 전자, 화학제품 등)

    · 수입액 : 793만$ (수입품목 : 면화, 알루미늄 등)

    · 타직 주요 자원 : 알루미늄, 면화, 금, 은 등

    · 주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우리측), 주 중국 대사관(타직 측)이 각각 겸임

    · 양국 고위급 인사교류 현황

         - 2005.5.24-27간 제6차 정부혁신세계포럼 참가자 라흐몬 대통령 방한

         - 2007.11.15 외교부 주최로 열린 제1차 한.중앙아 협력포럼에 타지키스탄 고위급 대표단 참석

    · 주요 협정 체결 현황

         - 체결 협정 : 투자보호협정(95.7 서명, 95.8 발효)

    · 고려인 동포 및 교민 현황 
         - 타직 거주 고려인은 약 1,700여명(92.5 타직 내전 발발 및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해 13,000여명의 고려인 중 상당수가 인근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으로 이주)

         - 타직 체류 우리 국민은 약 100여명(선교사, 상사원, 유학생 등 자원봉사단 20여명, 보육원, 고아원 운영 등 NGO 활동 중

     

         ※ 북한-타지키스탄 관계

            - 92.2 외교관계 수립

            - 95.9 이인규 외교부 부부장 방문

     

    2. 경제, 통상협력 관계

     

    타직 진출 주요 우리 기업

        

         - “갑을-타직”(면사, 면직물; 2,900만$; 95년 설립; 16,000명 고용창출)

         - 건설업체인 “JEI-H General(대표:이혁재)”은 타직 정부가 ADB Loan을 받아 추진하고 있는 농업재건 프로젝트인 호자바키르간주의 관개수로 공사(약 600만$규모)를 수주, 현재 시공 중

     

    [한-타지키스탄 교역 액추이]

    (단위 : 천 $)

    데이터 테이블
    연도 2002 2003 2004 2005 2006
    수 출 5,424 4,299 4,947 12,740 14,492
    수 입 5,974 5,434 4,744 2,226 7,934
    11,398 9,733 9,691 14,966 22,426

    출처 : 무역협회 KOTIS

     

    [주요 품목별 교역 동향]

    데이터 테이블
    순위 06년 대 타직 수출 06년 대 타직 수입
    품목명 금액(천$) 비중(%) 품목명 금액(천$) 비중(%)
    합 계 14,492 7,934
    1 자동차 8,587 59.3 알루미늄 6,440 81.2
    2 기계류 2,648 18.3 1,122 14.1
    3 전기전자 950 6.6 333 4.2
    4 플라스틱 879 6.1 전기전자 20 0.3
    5 인조장섬유 613 4.2 인쇄물 11 0.1

    출처 : 무역협회 KOTIS

     

    · 향후 양국간 획기적인 협력증대 가능성은 별무함. 현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전망

          - 알루미늄, 면화 등 자원과 수력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기업 별무 (물류분야에서의 애로점이 큰 난관으로 작용)

          - 타직은 중앙아시아의 내륙국으로 국토의 90% 이상이 산악지대여서 이로 인한 운송 및 물류인프라 구축이 시급(수출 시 우즈벡 또는 카작 경유 필요)

     

    3. 무상원조 지원

    [1993~2006년 지원 실적 (사업별)]

    데이터 테이블
    구분 물자지원 국내연수초청 긴급지원 NGO지원
    지원규모(천$) 563.50 339.88 507.40 19.10 1,429.88

     

     

    · 지원 내용

     

         - 물자지원 : 소나타 등 차량 및 컴퓨터 등 사무용 기기(1993~2005)

         - 국내연수 초청 : 73명(1996~2005)

         - 긴급지원 : 앰뷸런스 등 차량 (2001)

         - NGO지원 : 국제기아대책기구 교육기자재 지원사업(2002)

     

     

    사회문화

     

     

    1. 주 민

    타직인들의 모습

    [타직인들의 모습]

    타지키스탄은 중소 도시의 비율이 높고, 건조지역이므로 오아시스나 관개시설이 있는 아무다리야강 유역과 페르가나분지 지역의 인구밀도가 150명/㎢이지만 동부의 산악지역은 1~3명에 불과하다. 민족 별 분포는 타직인 79.9%, 우즈벡인 15.3%, 러시아인 1.1%, 키르기즈인 1.1%, 그 외(타타르인, 고려인) 2.6%이다. 타직인은 중앙아시아의 이란 계 민족으로, ‘타직’이란 본래 아랍의 일부 부족을 가리키는 중세 페르시아어(語)이다.
    7~8세기경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인이 그들을 타직이라 불렀고, 그들도 자신들을 타직이라 불렀다. 고려인은 러시아 연해주 지방에서 강제 이주된 사람들로 주로 벼농사에 종사하였다.
    약 1만 3천여 명이 거주하였으나, 독립 후의 내전으로 그 절반인 6~7천여 명이 인근 우즈벡, 타지키스탄 등으로 전란을 피하여 이주하였다.

     
    타지키스탄 민족 분포도

    [타지키스탄 민족 분포도]

     

    2. 언어

    인종적, 종교적 차이 보다는 언어의 차이에 따라 구 소련이 국경을 마음대로 구획한 결과 언어분포와 민족분포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아 2개 이상의 다 언어(多言語)국가가 되었다. 독립 후 민족어인 타직어(語)를 국어로 정하였으나 민족 간에는 러시아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타직어는 페르시아어 등과 함께 이란어 파(派)의 서방 방언이다. 타직어는 보통 북서와 남서의 2대 방언 군으로 분류되는데, 북서는 러시아연방 내에, 남서는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에 분포한다. 원래 아라비아 문자로 표기했으나, 1930년부터는 라틴문자를, 40년부터는 러시아문자를 사용하게 되었다. 타직어는 투르크어, 아라비아어, 러시아어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서부 방언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등의 투르크계어와의 접촉으로 본래의 구조가 크게 변화하였다.

     

    3. 종교

    종교는 이슬람교의 수니파(波)가 대다수이나 시아파(派) 신자도 있다. 수니 무슬림 85%, 시아 무슬림 5%, 기타 10%이다. 구 소련시대에 행해진 세속화, 무신론 위주의 강제정책으로 인해 종교적 성향이 약해졌으나 독립 후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두드러지게 종교부흥이 이루어지고 있다.

     

    4. 그 외 사회적 특징

    타지키스탄은 일반적으로 마약 통과국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제조된 마약이 북쪽 러시아로 수송하는데 타지키스탄이 중요한 통과 기지로 이용되고 있다. 타지키스탄이 마약 수송국으로서 이용되고 있는 까닭은 어려운 경제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마약 수송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타직인들에게 거금의 마약 수송 대가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기 때문이다. 마약이 타직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매우 크다. 마약 산업은 음성적인 자본을 키우고 이는 결국 사회와 정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타직 정부는 마약 사범을 찾아내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으나 쉽지 않은 형편이다.

     

    5. 문화적 특성

    루다키 시인 동상 키프로젬 시장
    [루다키 시인 동상]                     [키프로젬 시장]
     
     
     
  • eurasiaturk 2016-07-09 조회수:1035
    turkmenistan 

     

     

    정치/경제

     

     

     
    정 치

    1. 개관

    투르크메니스탄 국회의사당 아쉬하바드의 대통령 궁
    [투르크메니스탄 국회의사당]        [아쉬하바드의 대통령 궁]

    1992년 5월 제정된 신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중심제 권위주의 공화국이다. 직접선거에 의하여 5년 임기의 대통령을 선출하고 행정부에는 21개 부처와 13개 국가위원회가 있다. 인민위원회(Khalk Maslakhaty)는 최고 대표기관으로 입법·행정기능은 없으나 국정에 대한 논의와 감독역할을 하며, 헌법개정과 대통령을 불신임투표에 회부할 수 있다. 인민위원회는 50명의 최고의회 의원, 60명의 지역구 선출위원, 행정부각료, 최고재판소와 최고경제재판소장, 지방위원회 의장 등 2507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대통령이 위원장이다. 니야조프(Saparmurat NIYAZOV)는 1992, 1994년의 재 선출에 이어 1999년 12월에는 헌법을 개정하여 종신 대통령이 되었다. 2006년 12월 그의 사후 구르방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Gurbanguly Berdimuhamedov)가 다수의 입후보 중에서 선출되어 오늘에 이른다. 입법부는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임기 5년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최고의회(Majlis)이다. 헌법 상에는 65석이지만 50석만 채워져 있고 2008년 12월에 다시 선출될 예정이다. 정당은 과거의 공산당인 투르크멘민주당(DPT), 국민전선(Aszybirlik), 이슬람부흥당(PIR) 등이 있지만 사실상 민주당 이외의 당은 불법으로 간주, 1당 독재체제이다.

     

    2. 니아조프 대통령

    니아조프 대통령

    [니아조프 대통령]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투르크멘어: Saparmyrat Nyýazow, 러시아어: Сапармурат Атаевич Ниязов, 1940년 2월 19일~2006년 12월 21일 UTC+05)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대통령이다. 1940년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하바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 부모를 모두 여의고 고아 생활을 하였다. 이후 대학 생활을 마친 뒤 1970년 공산당에 가입하여 1985년부터 1990년까지 투르크멘 소비에트공화국의 당 서기장을 지낸 바 있다.
    1990년 투르크멘 의회의 결의안으로 그는 단독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 당선된다. 1991년 투르크메니스탄 공화국의 독립이 있은 뒤, 1992년 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다시 출마 당선된다. 그 뒤 1999년 종신 대통령으로 다시 당선되었다.
    그는 자신을 신격화하여 국민들이 숭배하도록 유도 했었는데, 그는 자신이 투르크멘바시(투르크멘의 아버지)임을 자칭했다. 또, ‘루흐나마’(영의 책)라는 경전을 발간한 뒤 학교 교육과정에 넣어 의무적으로 배우게 하였다. 현지시각 2006년 12월 21일 새벽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1) 니아조프의 만행
    니아조프 대통령의 황금동상

    [니아조프 대통령의 황금동상]

    개인숭배의 전형(典型)으로 일컬어지는 북한의 김일성 전(前)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들과 비교해 전혀 손색없는 인물이 중앙아시아에도 한 명 있었다. 지난 2006년 12월, 심장마비로 사망했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Niyazov) 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이다. 1990년부터 16년간이나 투르크메니스탄을 통치해왔던 니야조프의 행태를 보면 김일성 부자(父子)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자신을 투르크메니스탄의 ‘아버지’ 또는 ‘지도자’ 의미인 ‘투르크멘바시(Turkmenbashi)’라고 부를 것을 강요했다. 거리 곳곳에 자신의 황금 동상과 대형 사진을 내걸게 하고, TV는 하루 종일 자신을 찬양하는 프로그램으로 채우게 했다.
    모든 학생은 이슬람 경전 코란에 니야조프의 시를 섞어 편집한 교시록 ‘루흐나마(Ruhmana)’ 를 무조건 암송해야 한다. 심지어 운전면허 필기시험도 문제의 90% 이상이 루흐나마에서 출제됐다. 니야조프는 “루흐나마를 읽으면 천국에 간다”고 주장했다.
    그는 황당한 명령을 자주 내려 서방에선 ‘엽기적 독재자’로 불렸다. 1997년 자신이 심장수술을 받아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자 전국민에게 금연령을 내렸다. 2001년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발레·오페라 공연을 금지했다. 2002년에는 “외국학위 소지자들과 국가는 병립(竝立)할 수 없다”며 유학파 인사들을 해외로 추방했다. 또 지방 주민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다며 지방 도서관을 모두 폐쇄하라고 명령했다. 남자들은 턱수염이나 장발을 할 수 없었고 금으로 된 치아 보철도 불허했다. 여성 뉴스앵커는 화장을 할 수 없었다. 2005년 8월에는 가수들의 ‘립싱크’가 “음악적 재능을 죽이는 일”이라며 전면 금지했다.
    그런 니야조프의 개인숭배가 절정에 달했을 때 내린 조치가 2002년 8월의 달력 개편이었다. 1월의 이름을 자신의 존칭인 ‘투르크멘바시’로 바꾸고, 4월은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따 ‘구르반술탄’으로 고쳤다. 요일의 명칭도 월요일, 화요일 대신 각각 니야조프 자신이 생각한 ‘바스군(Bashgun·중요한 날)’ ‘야스군(Yashgun·젊은 날)’로 바꿨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니야조프 달력’이었다.
    하지만 이런 니야조프의 개인숭배에 따른 명칭 변경도 니야조프 사망 후 1년 반 만에 원상회복되게 됐다.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에 따르면, 니야조프 자신이 후계자로 염두에 뒀던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Berdimuhammedov) 현 대통령이 지난 25일 대통령령(令)을 통해 “과거 장기독재의 유산(遺産)을 씻기 위해 니야조프 달력의 이름 대신, 2002년까지 사용했던 옛 이름을 복원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은 니야조프가 개명을 추진하기 전까지는 러시아어와 비슷한 월 명, 요일 명을 사용해왔다.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월과 4월은 투르크멘바시와 구르반술탄에서 앞으로는 각각 얀바르(Yanwar), 아프리엘(Aprel)로 바뀌고, 월요일·화요일은 두셴베(Dusenbe)·시셴베(Sisenbe)로 바뀐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이른바 니야조프가 개편했던 달력 명칭의 원상회복은 장기독재의 어두운 그림자를 제거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며 “향후 더 많은 개편작업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조선일보 2008년 4월 29일 권경복 특파원

     

    3. 구르반굴리 베르디 무하메도프 신임 대통령

    구르반굴리 베르디 무하메도프 대통령

    [구르반굴리 베르디 무하메도프 대통령]

    2007년 2월 14일 투르크메니스탄의 새 대통령 구르방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가 당선되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그는 개혁과 개방을 언급했으나,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해외 취재진의 입국을 막는 등 아직은 개혁 실천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한 니야조프 대통령 아래서 요직을 맡았던 태생적 한계와 더불어 전임 대통령의 노선을 고수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는 만큼 그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신임 대통령은 여당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만큼 1인 독재에 대한 전망은 밝지 않으며 최근 경제 및 에너지 수출분야에서 보여준 그의 개방 노선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외교

    투르크메니스탄의 대외관계는 자원에 크게 의존한다. 최근 EU와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서는 러시아의 중앙 아시아 지역에 대한 자원통제력 약화 방안의 일련으로 투르크메니스탄과의 파이프 라인 배치를 놓고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더욱이 니아조프의 사망 후 폐쇄적인 전 정부와 달리 개방적인 행보를 보이는 현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이른바 자원 세일즈에 나서는 등 러시아로부터의 자원독립을 시도하고 있다.

     

    1. EU와의 관계

    EU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정식협정을 체결할 것을 제안할 예정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이란, 아프가니스탄과 카스피해에 접경해 있는 구 소련연방이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지금까지 EU가 구 소련 연방들과 구축한 교역체제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EU는 1992년 이후에 모든 구 소련연방국들과의 공식협정을 맺기로 결정했다. 지난 5월에 아쉬하바드에서 대화의 물꼬를 튼 후에 EU위원회는 투르크메니스탄과의 조심스런 관계개선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위원회는 투르크메니스탄이 문호를 개방하여 정상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형성으로 EU는 몇 가지 유리한 점을 가지게 된다.
    첫째, 투르크메니스탄은 구 소련과 이슬람 세계의 선구자적인 국가로서 전략적인 중요성을 보유하고 있다. 둘째, 에너지 생산국으로서의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즉 투르크메니스탄은 엄청난 천연가스를 매장하고 있는 에너지 생산국으로서 외화수입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세계 가스 생산국 중 3, 4위권에 속해있다. 그러나 최근까지 투르크메니스탄은 유럽연합에 큰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고작 작년에서야 투르크메니스탄은 경제, 정치적 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개혁추진에는 자국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급한 대응책 마련이 계기가 되었다. 즉, 서방국의 지원을 기대하는 의도가 저변에 깔려있었다고 분석된다. 니아조프 트루크멤바쉬 대통령은 지난 여름 유럽연합 대표와 비공식회담을 가졌다. 유럽연합이 지금까지 투르크메니스탄에 지원한 것은 기술원조와 인도적 차원의 식량원조였다. 유럽연합은 이를 통하여 유럽과 투르크메니스탄은 이미 가교를 형성한 것이며, 이제 더 큰 개혁을 위한 시간이 도래하였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투르크메니스탄과 정식협정을 하려는 주요 목적은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전 발굴과 에너지 수출을 위해 서방시장에 접근하는 것을 도와주는 데 있다.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은 수입을 할 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급속히 진전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심도 있는 개혁을 통하여 자국의 제휴협정에 대한 의지를 과시하려고 한다. 그리고 유럽연합으로부터 지원받은 3천만Ecu(유럽통화단위)의 일부를 상환함으로써 신뢰감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출처] EU - 투르크메니스탄과 관계개선 |작성자 스티치

     

    2. 러시아와의 관계

    과거 카스피해 내륙에 건설된 파이프라인은 모두 러시아를 경유하도록 건설되어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지배력은 지배적이었다. 러시아는 자국의 가스는 주로 내수용으로 사용하고 중앙아시아의 가스를 수입해 유럽으로 비싸게 되파는 전략을 취해 왔다
    2007년 5월, 러시아는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과 함께 카스피해 연안을 따라 새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 ~ 투르크메니스탄 ~ 카자흐스탄 3국을 연결하여 총 2000km의 수송거리, 100억㎥의 수송능력을 가진 가스파이프라인으로 2012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새 파이프라인이 완공될 경우 러시아로 공급되는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는 현재의 배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합의로 러시아는 천연가스 확보 경쟁을 벌여 온 미국과 EU에 ‘외교적 패배’를 안기고 중앙아시아에서 에너지 통제권을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3. 중국과의 관계

    중국은 2005년 12월 카자흐스탄 중부에서 중국을 잇는 송유관을 완공함으로써 중앙아시아에 대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투르크메니스탄과도 협력관계를 구축하며 중국에 가스관을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두 나라는 투르크메니스탄 Armu Dariya River에서의 가스개발을 원칙으로 PSA로 공동개발에 합의하였고, 또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생산되는 가스를 중국까지 수송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 건설에 합의하였다. 이 파이프라인은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을 거치게 된다.

     

     
    경 제

     

    1. 개 황

    GDP의 50%이상, 수출의 약 80% 이상을 석유, 가스에 의존하는 석유 가스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가스수출 감소 등으로 생산이 급감하면서 경제 불안이 심화되었으나 1998년 이래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여 2000년 이후 생산성 증대 주력 및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과 외국인 투자 확대 등으로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에너지 정책은 2010년과 2020년을 목표로 하는 석유 및 가스 생산 및 수출계획에 따라 2005~2020년 동안 630억 달러를 석유 및 가스 산업 개발에 투자할 계획을 수립했다. 카스피해 해상 광구를 개발, 석유, 가스의 생산, 수출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국가 건전 재정을 도모 정유산업 현대화 등 석유화학 산업 발전, 석유, 가스 자원을 매개로 제조 ․ 건설 등 비 에너지 분야 발전 추진, 현대적인 생산체제를 구비, 상품 수출을 확대하려고 노력 중이다.

     

    2. 투르크메니스탄의 자원 실태

    투르크메니스탄은 육상, 해상 등 전국토의 80%에 걸쳐 석유, 가스 자원이 부존 되어있다. 부존 규모와 관련해서는 국가, 기관별로 상이한 평가를 내리고 있으나 BP의 통계에 따르면 확인된 천연가스 매장량은 2.9tcm, 석유 매장량은 5억 배럴로 각각 세계 매장량의 1.6%, 0.1%를 차지하고 있어 천연가스는 CIS 국가들 중 러시아 다음으로 많은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1) 투르크메니스탄의 파이프라인 시스템

    기존 파이프라인

    중앙아시아지역 파이프라인

    [중앙아시아지역 파이프라인]

     

    - 투르크메니스탄(굼다그)~이란(코드쿠이)간 가스 파이프라인

    •  수송거리 200km로 이란 북부지역과 연결. 코르페제 가스전에서 연결되며 이란 측이 총 공사비 1억9,000만불 중 80%를 부담하고 직접 건설하여 1997년 12월 완공

    - 투르크메니스탄 ~ 우즈베키스탄 ~ 카자흐스탄 ~ 러시아간 가스 파이프라인

    - 투르크메니스탄 ~ 우즈베키스탄 ~ 타지키스탄간 가스 파이프라인

    - 투르크메니스탄 ~ 카자흐스탄간 가스 파이프라인

    - 투르크메니스탄 ~ 카스피해 ~ 아제르바이잔 ~ 그루지야 ~ 터키 연결 가스 파이프라인

    •  러시아를 배제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여 터키를 지나 유럽까지 연결, 총 692km. 2006년 5월 완공

    계획 파이프라인

    카스피해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아제르바이잔 등 5개국에 둘러싸여 있는 닫힌 바다이다. 이 때문에 카스피해의 석유와 가스를 외부로 반출하려면 송유관 확보가 필수다. 이 송유관이 어디를 통과해 어디로 가는지도 주변국의 이해관계를 좌우한다. 특히 현재 사용 중인 파이프라인만으로는 생산능력 증대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새 파이프라인 건설을 둘러싼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TAP Pipeline

    [TAP Pipeline]

    □ TAP 파이프라인

    • Turkmenistan ~ Afghanistan ~ Pakistan 연결 가스 파이프라인
    • 과거에 건설된 파이프라인이 모두 러시아를 경유하도록 건설되어 러시아는 국제정치에서 파이프라인에 대한 권력을 바탕으로 횡포를 일삼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러시아의 입김 약화를 위해 러시아를 경유하지 않는 새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 위해 TAP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매장량 세계 5위의 다울레타바드-돈메즈 가스전(2조 8,500억m3)에서 파키스탄으로의 가스 수출을 위한 파이프라인 계획
      수송거리 1,650㎞, 수송능력 300억㎥로 투자비는 32억 달러가 예상된다.
      건설 ․ 운영을 위한 국제 컨소시엄 구성을 추진 중이지만 아프가니스탄 치안 불안, 파키스탄의 수요 불확실, 자금 조달 문제로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투르크메니스탄 ~ 우즈베키스탄 ~ 카자흐스탄 ~ 중국 연결 가스 파이프라인

    다울레타바드 가스전에서 중국 상해까지 총 수송거리는 7,000km(투르크메니스탄 구간 : 520km, 우즈베키스탄 구간 : 430km, 카자흐스탄 구간 : 1,400km, 중국 구간 : 4,650km)
    2009년부터 중국에 30년 이상 300억㎥의 천연가스 공급예정

    □ 투르크메니스탄 ~ 카자흐스탄 ~ 유럽 연결 파이프라인

     

    3. 광공업

    GDP 중 광공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39.2%이지만 노동력 구성 비율은 13.8%에 불과하다. 이는 천연가스와 석유 생산에 의존하여 광공업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천연가스의 추정 매장량은 1조 9,280억으로 세계 제 15위이다. 천연가스는 국토의 대부분 지역에 매장되어 있으며, 서부 및 중부산 천연가스는 주로 국내에서 소비되나 동북부산 가스는 송유관을 통해 국외로 수출된다. 1999년 12월 러시아와 연간 200억㎥의 천연가스 수출계약을 체결하고 2000년 5월에는 수출량을 연간 500~600억㎥까지 증가하기로 협정함으로써 큰 폭의 수출 증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수송관 독점에 대항하여 새로운 파이프라인 건설을 모색 중이다.
    석유는 확인 매장량이 5억 4600만 배럴(세계44위)이다. 석유는 서부의 첼레켄 반도, 네비트다크·쿰다크·오카렘 등지와 동부의 레바프 지방에서 산출되며 투르크맨바쉬와 차르조우에서 정유 된다. 석유·황산나트륨·옥소·유황·납 등을 원료로 한 화학공업은 마리·차르조우에서 발달하였고 네비트다크·아슈하바트·투르크맨바쉬·마리 등에 화력발전소, 동남부 하천 연안에 다수의 수력발전소가 입지해 있다. 금속 기계공업은 아슈하바트·키질아르바트·투르크맨바쉬 등지에서, 식품 및 양조업은 마리·차르조우·케르키·아슈하바트·타샤우스·투르크맨바쉬 등지에서 발달하였으며, 전통적인 금속세공과 양탄자 제조는 코페트다크 지방에서 발달하였다.

     

    4. 농축산업

    투르크메니스탄의 GDP 구성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7.7%이지만 농업 노동력이 전체 노동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8.2%에 이른다. 1929년 이래 농업은 집단화와 정착화가 진행되었고, 관개용 카라쿰 수로를 비롯한 인공호 건설에 따라 1960년대 이후 농목축업은 급속히 발전하였다. 인접국 우즈베키스탄이나 타지키스탄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관개에 의하여 면화가 생산되고 있지만 최근 면화와 곡물의 과도한 집약적 경작으로 생태계 파괴가 심하다. 주요 작물은 목화, 보리, 밀, 옥수수, 채소, 포도, 멜론을 포함한 과일 등이다.
    경작지의 40% 이상이 목화경작지이다. 조면기준으로 연간 40만t 이상의 고품질 목화를 산출하는 세계 10대 목화 산출국으로서, 목화주산지는 코페트다크산맥, 아무다리야강, 테젠강 중·하류 지방의 오아시스 주변의 관개지이다. 특히 아무다리야강 하류에서 전국의 1/3 이상을 산출한다. 목축은 중동부에서 성하고, 최대 사육가축은 양과 염소로 약 500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으며 주종은 양질의 털이 생산되는 카라쿨(Karakul)양이다. 산간지방과 일부 관개지에서는 양잠이 성하다. 식량의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독립 후 상품작물의 재배 확대로 수확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5. 무 역

    투르크메니스탄의 주요 수출품은 석유 및 천연가스·석유화학제품·원면·의류 등이며, 수입품은 기계장비류·경공업제품·식품·화학제품 등이다. 2006년 추산 수출액은 58억1,800만 달러, 수입은 40억 5,7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상대국은 우크라이나 47.7%, 이란 16.4%, 아제르바이잔 5.3% 등이며, 수입상대국은 아랍에미레이트 15.5%, 터키 11.1%, 우크라이나 9.1%, 러시아연방 9%, 독일 7.8%, 이란 7.6%, 중국 6.4%, 미국 4.5% 등 (2006년)이다. 1998~2005년 간 투르크메니스탄은 단기 대외채무와 천연가스 수송로의 결여로 애로를 경험하였지만 국제 천연가스 및 원유 가격의 상승으로 총 수출액은 2003년부터 2006년 간 매년 15%씩 성장하였다. 물론 러시아로의 수출가격 상승이 주 요인이었다. 신임대통령 구르반굴리 베르디 무하메도프는 중국과 새로운 천연가스관 건설, 아무다리아 철도 교량 보완 및 발칸 제국과의 폭 넓은 무역 등을 모색하고 있다.

     

     

     

     


  • turkmenistan

     

     

    종합개관

     

     

    1. 위치

    투르크메니스탄의 위치도

    [투르크메니스탄 위치도]

    투르크메니스탄은 북위 37도 동경 58도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남쪽으로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서쪽으로 카스피해를 면하고 있다. 위치적으로 중앙아시아에 속한다.

     

    2. 일반개황

    [투르크메니스탄 일반개황]

    국 호 투르크메니스탄 공화국
    데이터 테이블
    면 적 488.000km ※ 한반도의 2.4배
    수 도 아쉬하바드
    인 구 5100.000명
    종족구성 투르크멘人 (85%), 우즈벡人 (5%), 러시아人 (4%), 기타 (6%)
    언 어 투르크메니스탄어, 러시아어
    문맹률 이슬람교 89%, 동방정교 9%, 기타 2%
    독립일 1991년 10월 27일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제
    의회형태 단원제(50명 임기5년)
    대통령 구르반굴리 베르디 무하메도프
    주요정당 민주당
    기 후 아열대성 사막기후
    종 교 이슬람, 동방정교
    GDP 92억 달러
    실업률 21.6%
    통화단위 마나트
    환 율 6.250TMN (고정환율)
    부존자원 석유, 천연가스, 유황
    주요경축일 1.1 신년, 1.12 기념의 날, 1.30 라마단, 2.19 국기 기념일, 3.8 국제 여성의 날, 3.20-22 나브루즈, 5.8 참전 기념일, 5.9 승전 기념일, 5.18 통일과 부흥의 날, 10.6 추선의 날, 10.27-28 독립 기념일, 12.12 중립의 날

     

    3. 국기

    국기

    [투르크메니스탄 국기]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기는 5:3비율의 직사각형이며 이슬람을 상징하는 녹색과 달, 다섯 개의 주를 상징하는 다섯 개의 별, 왼쪽으로 토산품인 카페트가 도안되어있다. 2001년 1월 24일 제정되었다.

     

    4. 국장

    국장

     

     

    5. 참고문헌

    - 검색 포털

    - 위키피디아 www.wikipedia.com

    - 수출입 은행 www.koreaexim.go.kr

    - KOTRA www.kotra.or.kr

    - 수출보험공사 www.keic.or.kr

    - 투르크메니스탄 정부 공식 사이트 www.turkmenistan.gov.tm

    - 엔싸이버 두산백과 www.encyber.com

    - 국가정보원 www.nis.go.kr

    - CIA - The World Factbook 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

     

     

     

    자연환경

     

     

    1. 지형

    국토의 대부분이 낮은 평야로 되어 있으며 중앙아시아 국가 중 평야의 비율이 가장 높다. 지형은 넓은 투란저지와 고원으로 구분된다. 투란저지는 대부분이 카라쿰 사막지대이며 강한 풍식을 받아 사구가 발달되어 있다. 그 서북부에는 투르크맨바쉬 대지와 우스튜르트 고원이 있으며, 습곡을 받은 케스타지형도 나타난다. 카스피해에 면한 서 북단은 해면 이하의 와지(窪地)이다. 카스피해 연안의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모래 해안선 중에서 남부는 단조로우나 북부는 복잡하여 반도와 만이 발달하고 투르크맨바쉬 사취를 비롯한 많은 사주·사취가 발달되어 있다.
    동부고원은 코페트다크산맥이 동서로 횡단한다. 이 산맥은 불안정한 단층산맥으로 서부에서 말리발칸산맥과 볼쇼이발칸산맥으로 나누어진다. 이들 산맥에 의하여 이루어진 이른바 쿠기탕타우 산지(해발고도 3,139m)는 고산지역이다. 지질적으로 지중해지향사에 해당되는 원 고생대 투란 지대와 히말라야·알프스 습곡산계 사이에 놓여 있어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하여 황, 암염, 수은, 석고, 구리, 아연 등의 광물자원이 다량 매장되어 있다. 지리적 특성에 따라 지하자원이 풍부한 동부지방, 코페트다크 산록지대, 남부 오아시스 지대, 아무다리야강 유역, 및 카라쿰 사막 등 5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동부산지는 세계의 지붕 히말리아로부터 흘러나온 아무다리야강이 우즈베키스탄과의 국경선을 이루며 봄과 여름에 수량이 풍부하여 유수는 오아시스의 관개용수로 이용된다. 남부에는 무르가프, 테젠 및 아트레크강이 흐르는데 과거 봄철에만 유량이 많았으나 오늘날은 카라쿰 운하와 저수지 건설에 힘입어 일정한 유량이 유지된다. 세 하천 중에서 아트레크강은 카스피해로 유입되지만 무르가프와 테젠강은 카라쿰 사막에서 소멸되는 무미천(無尾川)이다. 코페트다크 산맥 북 사면으로 흐르는 짧은 하천의 유수는 목축에 이용된다. 서부와 내륙의 자연호수는 대부분 염호(鹽湖)이나, 이아스한호는 담수호로 네비트다크와 토피아탄 등지에 용수를 공급한다.
    카라쿰 사막지대는 대부분 사막 토이며 우스티우르트 및 투르크맨바쉬 대지는 부식 질이 1%도 안 되는 회갈색 토이다. 연회색 토는 중간평야 지에 분포하며, 회색토는 낮은 산지, 갈색산지 토는 코페트다크산맥에 분포한다. 회색삼림 토와 충적삼림 토는 하천 연안에 분포하며 전국의 2% 정도가 관개에 의하여 이루어진 토양이다. 전체 국토 면적 488,100㎢ 중에서 경작가능지 4.51%, 농경지 0.14%, 사막 및 기타 95.35% (2005년)이다. 아무다리아강의 과도한 이용과 살충제의 남용으로 토양과 하천 오염이 심하며 카스피해 오염의 원인이 된다.

     

    2. 기후

    투르크메니스탄은 대륙성 건조기후가 뚜렷하며 기온의 연교차·일교차가 크다. 습도가 낮고 증발이 높으며 강수량이 적다. 여름은 건조하며, 겨울은 대체적으로 온화하고 때때로 약간의 눈이 내린다. 짧은 봄은 습윤하며 가을은 건조하다. 1월 평균기온은 북동부에서 -5℃, 남부에서 4℃ 정도이며, 최저기온은 북동부에서 -32℃, 남부에서 코페트다크산맥이 -29℃, 카스피해 남부 연안에서 -10.3℃이다. 7월 평균기온은 북동부 28℃, 남부 32℃이다. 여름에 카라쿰사막의 최고기온은 50℃까지 상승한다. 강수량은 주로 봄과 겨울철에 많으며, 아무다리야강 연안이 80mm, 카라쿰사막이 150mm 정도이며, 낮은 구릉지에서 200∼300mm, 산지에서 400mm 이상이다. 바람은 북동풍, 북풍, 북서풍이 탁월하다. 감실(gamsil)이라 불리는 건조한 열풍이 여름철 코페트다크산맥에서 불며, 환절기에 먼지폭풍이 자주 발생한다. 식물생육일수는 200∼270일 정도이다.

     

     

     

     

    역사

     

    1. 약사

    ∙ 인류 최초의 농경유적 가운데 하나인 아나우 유적(아쉬하바드 교외).

    ∙ 기원전 2세기무렵의 파르티아왕국(중국명 안식국)의 발상지 니사 유적. 현재의 아슈가바드가 위치한 곳에 작은 취락이 있었다.

    ∙ 사산 제국.

    ∙ 6세기, 투르크계 유목민.

    ∙ 7세기~ 우마이야 왕조·압바스 왕조

    ∙ 9세기 사만 왕조.

    ∙ 셀주크 왕조, 가즈니 왕조,호라즘 왕국.

    ∙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공. 일 한국. 티무르 왕조

    ∙ 16세기~ 히바 한국, 부하라 한국, 사파비 왕조 등이 침략한다.

    ∙ 1869년 러시아군, 카스피 해 동해안에 상륙.

    ∙ 1881년 제정 러시아군이 아슈가바트를 점령한다.(니콜라이 1세)

    ∙ 1882년 제정 러시아에 의해 카프카스 총독 관할구역내의 자카스피 주로 옮겨진다.

    ∙ 1880년~ 자카스피 철도 개통. 러시아를 위한 면화 재배의 확대.

    ∙ 1910년경~ 러시아 수공업의 역할지가 된다.(지금도 섬유 공업이나 면화 재배는 주요한 산업이 되고 있다)

    ∙ 1916년~ 1918년 반 러시아 대 폭동

    ∙ 1924년 투르크멘 SSR로 소비에트 연방 구성국의 하나가 된다. 농업 집단화에 반발한 유목민의 저항이 36년까지 계속 되었다.

    ∙ 1990년 8월 22일에 주권 선언을 하면서, 10월 27일에는 직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으로 단독 후보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가 98.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 1991년 10월 26일의 국민투표로 소련으로의 독립에서 94.1%가 찬성했고 다음해인 10월 27일 에 독립했다.

    ∙ 1992년 5월 18일 최고 회의가 대통령 권한을 강화한 신헌법을 채택.

    ∙ 1992년 5월 러시아, CIS제국과의 집단안전보장조약서명을 거부.

    ∙ 1992년 6월 대통령 선거에서 니야조프 대통령이 99.5%의 지지로 재선.

    ∙ 1995년 12월 국제연합총회에 대해 영세중립국으로 승인된다(러시아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목적이라고 여겨진다). 니야조프 대통령은 개인숭배에 의한 독재체제로, 2002년 8월에는 종신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국내에서 니야조프 대통령은 투르크멘바시(투르크멘인의 우두머리)를 성으로 하고 있다.

    ∙ 2002년 11월 25일 아슈하바트에서 대통령 행렬이 총격을 받았다. 경호원 1명이 중상.

    ∙ 2006년 12월 21일 니야조프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 2007년 2월 14일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가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2. 총사

    투르크맨바쉬 인근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될 정도로 거주 역사가 길며 신석기 시대에 해당되는 8,000년 전에는 농경의 흔적이 코페트다크산맥 부근에서 발굴되었다. 코페트다크 북부와 테젠강 하류의 아나우(Anau) 청동기층에서 농경과 가축사육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5,000년 전에 관개수로 건설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4,000년 전에는 도기와 금속세공이 행하여져 다량의 유물이 전해진다. BC 6세기까지 카스피해 연안과 북부의 초원지대에 여러 부족이 거주하였지만 BC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당하고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5세기 이후 투르크족이 중앙아시아의 서부로 이주하면서 이 지역이 서서히 페르시아인의 거주지에서 투르크계 부족의 거주지로 변모하였다. 9세기 말 이후 투르크계의 한 부족 집단인 오우즈족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이슬람교를 수용하게 되었고, 이 때부터 투르크멘이라는 명칭이 나타나게 되었다.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까지 화라즘왕(Khwarazm-Shahs)의 통치를 받았고, 1219∼1221년 몽골의 칭기즈칸에 의해 정복당하였다.

    15∼17세기에 투르크멘족은 다시 종족별·영역별로 분열되어 남부 부족은 페르시아의 지배 하에, 북부지역은 히바와 부하라한국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18세기 초에 페르시아는 히바와 부하라 영토를 병합하였으나, 부하라는 투르크멘족의 강한 저항으로 18세기 후반에 탈환, 재건되고 이어 마리 지역도 편입시켰다. 1860년 제정 러시아군이 카스피해로부터 침입하여 러시아 진출의 거점으로 크라스노봇스크시를 건설하자 투르크메니스탄인은 1869∼1880년 간 러시아에 대항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1884년 러시아에 굴복하였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이 지역에 세력을 뻗쳤으나, 주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자카스피 반 볼셰비키 지역정부가 형성되어 투르크멘 의회가 수립되었다

    1918년 4월 러시아 붉은 군대의 침공에 의해 투르크멘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되었으나, 7월 영국군의 지지를 받고 있던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볼셰비키 정부가 전복되고, 독립정부가 아스하바트에 영국군의 보호 하에 수립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영국군이 철수하자 1920년 붉은 군대에 의해 다시 전복되고, 1924년 10월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28년 반종교운동이 시작되었으며, 1930년대 초에는 정치적 자치운동이 지식층에서 일어났지만 구 소련에 의하여 많은 지식인이 투옥되거나 처형당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와 경제, 환경 및 문화문제가 당면한 해결 과제로 부상하였다. 1990년 8월 주권을 선언하고 1991년 10월 독립을 선언하였다. 독립 이후 의회나 정부도 여전히 공산 세력을 차지하는 등 보수적인 체제가 뿌리깊게 남아 있다.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Saparmurat Niyazov)가 구소 연방 붕괴 전인 1990년 10월에 98.8%의 득표율로 대통령에게 선출된 이후 종신 대통령이 되었지만 2006년 그의 사후 구르방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Gurbanguly Berdimuhamedov)가 대통령으로 선거에서 승리하여 선출되었다.

     

     

     

    한국과의 관계

     

    투르크메니스탄은 한국과 1992년 2월 대사 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주 러시아 대사가 직을 겸임하고 있다. 2007년 6월 8일 주 투르크메니스탄 상주대사관 (대사대리 상주)이 개설되고 1993년 이후 경제협력 등 양국간 협력이 증진되고 있다. 2006년 10월 한-중앙아 문화교류협회 공연단이 독립 15주년 행사에 참가하여 민간 교류가 활성화되었으며 2007년 문화, 경제사절단이 상호 방문하였다. 2006년 대한 수출은 179만 달러, 대한 수입은 597만 달러이다. 수출품은 시멘트·자동차·합성 섬유사가 주종을 이룬다. 1995년~1997년간 7만 달러 정도의 우리나라의 물자지원, 1997년~2006년간 총14명의 연수생 초청이 이루어졌다. 재(在)투르크메니스탄 거주 고려인이 약 1,000명으로 추산되고 있어 중앙아시아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고려인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사회문화

     

     

    프래기 막툼쿨리 투르크메니스탄의 카펫 “요무트”
    [프래기 막툼쿨리]                       [투르크메니스탄의 카펫 “요무트”]

    2006년 기준 투르크메니스탄의 학교 교육은 80% 이상이 투르크멘어로 이루어지고 있고, 나머지 16%는 러시아어, 기타 4%는 우즈벡어, 카자흐어로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은 무상이며, 교육체계는 구 소련의 체계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학교는 자질 있는 교사의 부족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교사들은 과중한 업무와 근무시간, 교재의 부족, 저임금, 급여 미지급 등으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해 있다. 전체 학교의 13% 정도가 구조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제는 초등교육 4년, 중등교육 7년이며 초등학교는 7세에 입학한다. 15세 이상 인구의 문맹률은 1.2% (1999년 추산)이다.
    투르크멘어를 주 언어로, 영어를 제2의 언어로 선정한 이후 학생들은 두 언어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며, 대부분의 성인들은 이 두 언어 사용 권장으로 인하여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91년 4월 실업보상제도를 도입하고 고용기금을 조성하였으며, 1993년 1월부터 전 주민에 무료로 가스·전기·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인터넷 호스트 수는 97개 (2007년), 사용자수는 64,800명(2006년)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문학적 전통은 자랑할만하다. 문학의 아버지는 시인이자 철학가인 프래기 막툼쿨리(1770~1840)이며 그의 언행은 코란보다 더 존경을 받았다. 막툼쿨리는 작품에서 언어의 단순함을 강조하고 세련되지 않은 지혜의 고전적 양식을 일축하여 투르크메니스탄 문학이 단순한 모방자들의 개론이 된 것에 영향을 미쳤다. 막툼쿨리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한 사람 중에서 19세기 작가인 헤미네와 인기 있는 서정시인인 몰라페네스가 있다.
    유목민인 투르크인의 직물 기술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특히 바닥깔개뿐만 아니라 단열효과와 함께 장식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융단은 붉은색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아름답다.

     

     

     

  • eurasiaturk 2016-07-09 조회수:1560

    Uzbekistan 

     

     

    사회문화

     

    1. 인 구

    -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현재 2,778만 명으로 100여 개 이상의 다민족으로 구성

    - 러시아인은 주로 타슈켄트 외곽 및 공업 중심지에 거주, 타직인은 부하라와 사마르칸드에 밀집, 카라칼팍인(50만 명)은 자치공화국을 이루어 거주

    - 우즈벡인은 대부분 농촌에 거주하고 도시 거주 우즈벡인은 40%를 약간 상회하며, 인구 성장률을 연 3.5%로 높은 편. 고려인은 약 16만 명으로 타슈켄트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국에 걸쳐 넓게 분포

     

    ※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

    고려인 이주 경로

    [고려인 이주 경로]

     

    •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 우즈베키스탄은 유목지대로 농업이 불가능하다고 인식되던 곳이었으나, 고려인들이 강제이주 시 가져온 볍씨 등 농작물 씨앗으로 수자원을 이용한 벼농사 등을 성공시키고 대규모 목화밭을 일굼

    • 콜호즈(집단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김병화 콜호즈’와 ‘뽈리따젤 콜호즈’ 등을 건설, 노동영웅들을 배출

    •고려인의 높은 교육열로 많은 고려인 2,3세들이 의사, 기술자, 교수, 연구원, 변호사, 당 간부 등 러시아 사회의 중심으로 진출
    (*고려인 동포 주요인사로는 박 베라(상원의원), 신 블라디미르(고려문화협회 회장) 등 민주평화통일 해외자문위원 16명이 있음)

    • 1991년 소련 붕괴 후 강대국 소련의 붕괴와 새로운 독립국가연합의 출현은 이미 형성돼있던 고려인 민족공동체의 핵분열 초래

    •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90년대 중반 이후 대부분의 농업기반을 우즈벡 민족에게 넘겨준 많은 고려인들이 새로운 농업 환경,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지금도 그 행렬은 계속되고 있음

    • 최근 우즈벡 정부 조사에 따르면 고려인은 모두 15만 5900명(전체인구의 0.6%)으로 80년대 23만 명에 비해 크게 감소

    • 주 우즈벡 대사는 고령 고려인들을 위한 양로원 건설, 젊은 세대를 위한 직업기술훈련센터 건립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

     

    ※ 고려인 집단 농장 (콜호즈)

    1. 김병화 콜호즈 (1925 창설, 1974년 김병화 농장으로 개칭)

    -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당시 최초 정착하였던 지역의 하나로 당시에는 갈대밭이었으며, 김병화가 1940-74년간 농장 대표자를 역임하면서, 주재국 고려인 중 유일하게 2차례나 노동영웅훈장을 수훈

    - 대표적인 고려인 집단농장이었으나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농장이 해체되어 개인 영농화하는 과정에 있으며, 다수의 고려인이 떠나 현재는 약 1,000여명의 고려인만 거주

     

    2. 뽈리따젤 콜호즈(1924 창설, 농장 장은 카자흐인)

    - 김병화 콜호즈와 비견되는 대표적인 고려인 집단 농장

    - 1953년 황만금이 농장의 대표로 취임하여 전 소련 지역에서 가장 높은 생산량을 기록, 노동영웅훈장을 수훈

    - 한때 최고 11,000여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5-6천명 정도로 추정

     

    2. 언 어

    - 구 소련 시절 러시아어와 우즈벡어가 공용어였으므로, 인구의 82%가 우즈벡어를 사용하고 인텔리 계층을 중심으로 인구의 50%이상이 러시아어를 구사

    - 1991년 독립 이후 우즈벡어만을 공용어로 인정

    - 우즈벡어는 차카타이어로부터 파생된 언어이며, 우즈벡어 명사의 70%는 아랍어 또는 페르시아어에서 차용되었고, 19세기 말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러시아어 외래어가 대폭 증가

    * 구 소련 시절 아라비아 식 알파벳을 철폐하고 1935년부터 키릴문자를 사용하다 독립 후 99년부터 라틴 식 알파벳으로 표기

     

    3. 종 교

    - 공식 국교는 없으나, 국민의 약 88%가 이슬람 교도이며 이중 수니파가 대부분 (약 70%)

    - 온건한 수니파가 다수를 점하고 있어 터키 계의 세속적 신앙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는 가운에 우즈벡 정부는 과격한 시아파 원리주의의 확산 차단을 위해 노력

     

    4. 주요음식

    팔로브(Palov)

    [팔로브(Palov)]

    1) 팔로브 (Palov)
    Palov는 손님들이 오거나 잔치, 생일 등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만드는 우즈벡의 전통음식으로, 우즈벡인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민족이 즐겨먹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의 볶음밥과 비슷하지만 기름을 많이 사용하여 요리한다. Palov는 지역에 따라 재료와 만드는 방법에 차이가 있으며, 그 이름도 100여 가지나 된다.
    Palov에 들어가는 고기 중 제일 좋은 비계부분은 가장 맛있는 부분으로 존경 받는 사람에게 준다. 보통 음식은 여성들이 준비하지만, Palov만은 대부분 남성들이 요리한다.
    논(Non)

    [논(Non)]

    2) 논(Non)
    우즈벡 식탁에 빠지지 않는 주식으로, ‘탄드르’라는 벌집 모양의 큰 진흙가마에서 굽는 빵이다. 보통 원형모양으로 둘레가 두껍고 가운데는 얇고 편평하며, 표면에는 깨나 향신료를 뿌린다. 이 빵은 약간 질기고 쫄깃쫄깃한 것이 특징이다. 도시에는 동네마다 빵을 구워 파는 곳이 있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빵을 사서 먹기도 하지만, 농촌이나 도시의 단독주택에는 집안에 탄드르가 있어서 가정주부들이 거의 매일 빵을 굽는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빵을 지칭하는 단어도 86가지나 되며, 빵을 매우 신성한 것으로 취급하여 빵을 만들 때에도, 보관할 때에도 정성을 다한다. 따라서 빵을 버린다던가 새들의 먹이로 주는 것과 같은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손님으로 초대받았을 때에는 주인이 빵을 찢어서(빵이 질기고 쫄깃쫄깃해서 찢는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나누어줄 때까지 기다리거나, 혹은 빵을 찢는 것에 대해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카봅(Kabob)

    [카봅(Kabob)]

    3) 카봅(Kabob)
    샤슬릭이라고도 불리는 이 음식은 원래 카프카스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꼬치에 양•소•닭고기•채소 등을 끼워 숯불에 구워먹는 음식으로 보통 양파와 함께 취식한다. 작은 고기 덩어리, 갈은 고기, 간, 감자 등 다양한 재료의 kabob이 있다.
    솜사(Somsa)

    [솜사(Somsa)]

    4) 솜사 (Somsa)
    밀가루 반죽을 만두피 빚는 것처럼 얇게 민 후 녹인 버터를 골고루 묻혀 달걀 말이 하듯 돌돌 말아 세모 또는 둥근 모양으로 만든다. 속에는 양파와 고기 다져 넣고, 오븐이나 가마에 구워낸다.
    수말락(Sumalak)

    [수말락(Sumalak)]

    5) 수말락 (Sumalak)
    Sumalak은 주로 나브루즈(Navro’z)기간에 만들어 빵과 함께 먹는다. 3일 동안 밀을 뜨거운 방에서 매일 물을 주며 발아시킨다. 이때 여자들은 매일 몸을 정결히 하고 코란을 읽고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이 타서 맛있는 수말락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3일 뒤 이것을 갈아서 밀가루랑 섞어 기름을 조금 두른 후 냄비(보통 큰 가마솥)에 조금씩 물을 부어가며 약 하루를 계속 눋지 않게 젓는다. 원래 수말락이라는 뜻이 ‘7명의 천사’를 의미한다. 그래서 요리할 때 7개의 작은 돌이나 호두를 넣고, 먹을 때 이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행운을 얻는다고 한다.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달기 때문에 우즈벡 사람들은 밤에 천사가 몰래 와서 설탕을 넣고 갔다고 믿는다.
    초이(Choy)

    [초이(Choy)]

    6) 초이 (Choy)
    목이 마를 때에도, 손님이 와도,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에도, 한여름에도 뜨거운 초이를 마신다.. 초이를 대접할 때에는 차주전자에 찻잎과 물을 따라 우려낸 후, 찻잔에 물을 따르고 다시 차주전자로 옮기는 행위를 세 번 반복한 후 마신다. 또한 찻잔에 초이를 따를 때에는 찻잔의 2/3 정도 따르는데, 이것은 차를 마시는 손님이 더 머무를 것을 청하는 환대의 표시이다. 찻잔에 초이를 가득 채우면 손님이 별로 반갑지 않으니 빨리 마시고 가라는 것을 의미한다.

     

    5. 국경일

    라마단 등 이슬람교 관련 경축일과 함께 여성의 날, 전승기념일 등 러시아CIS권과 유사한 국경일을 기념한다.

    [주요경축일]

    데이터 테이블
    일자 국경일명
    1월 1일 신 년
    3월 8일 여성의 날
    3월 21일 나브루즈 (새해,새봄맞이 축제)
    5월 9일 승전기념일 (2차 대전 대독 승리기념)
    9월 1일 독립기념일 (구 소련 분리 독립)
    10월 1일 스승의 날
    12월 8일 제헌절

     

    - 여성의 날(3.8): 1927년 3월 8일 우즈벡 지역에서 이슬람 여성들이 최초로 히잡벗기 운동을 시작하여 수만 명이 동참했고, 이후 이슬람 여성의 권익 향상의 시발점으로 작용하였다. 우즈베키스탄의 여성의 날은 남성들은 부인•여자친구를 위해 꽃 화장품 향수 등 선물을 준비하며, 여성들에게는 생일 다음으로 중요한 기념일로 여겨진다.

    - 나브루즈 (3월 21일): 이슬람 국가에서는 새해맞이 축제로 기념되고 있지만 조로아스터교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며, 봄의 소생을 알리는 행사이다. 나브루즈 한달 전부터 거리에 축하 플래카드가 걸리고 공휴일은 하루지만 축제는 1주간 계속된다.

    - 승전기념일 (5월9일): 대조국전쟁이라고 불리는 2차 대전 대독전 승리를 기념하는 날로, 전몰자들을 추모하고 참전용사를 위로하는 다양한 행사 개최한다.

    - 독립기념일 (9월1일): 구 소련에서 분리 독립해 우즈벡 공화국이 탄생한 날로, 무스타클릭 광장(Musraqilik Maydoni)에서 대형 축하콘서트 등 성대한 기념식을 개최한다.

    - ‘라마단 아이트’와 ‘쿠르반 아이트’: 이슬람교의 종교관련 경축일로, 한달 간의 라마단 금식일 종료 후 음식을 먹는 첫날이 ‘라마단 아이트’이며 70일 후가 ‘쿠르반 아이트’이다.

     

    6. 주요도시

    1) 타슈켄트 (Toshkent)
    타슈켄트의 모습 타슈켄트의 모습

    [타슈켄트의 모습]

    투르크어로 ‘돌(타슈)의 도시(켄트)’란 뜻의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의 공식수도다. 타슈켄트는‘중앙아시아의 수도’라고 일컬어질 만큼 중앙아시아에서 인구(215만)가 가장 많고 지정학적으로도 중심에 있으며,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지하철이 있는 현대도시다. 타슈켄트의 이런 번영은 중세 이후‘이슬람의 성도’였다는 각별한 지위가 작용했다. 지금 중앙아시아 5개국은 90년대 초 옛 소련에서 독립해 저마다 이슬람 정체성을 되찾는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애초부터 국기에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을 그려 넣은 나라는 우즈베키스탄뿐이다. 그만큼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에 깊이 훈육된 나라이며, 그 중심에 시종 타슈켄트가 있었다.
    타슈켄트는 기원전부터‘차치’란 이름으로 알려진 오아시스 도시다. 자연환경이 유리한데다 교통요지여서 농경, 교역이 발달했다. 일찍부터 여러 종교가 공존했으며, 궁궐과 사원, 요새와 주택이 즐비했다. 이슬람 영향권에 들어간 것은 7세기 초부터다. 705년 중앙아시아의 서쪽 메르브에 입성한 이슬람 정복군은 10년도 채 안 되어 파죽지세로 시르다리야와 아무다리야 사이의 트란스옥시아나 전역을 점령하고 타슈켄트로 진격했다. 그러나 이 지역이 당시 당나라 판도 안에 들어가 있어 더 이상 동진은 못하고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렸다. 이 때 고선지가 이끄는 당 군이 쳐들어오자, 석국(타슈켄트)과 결맹해 당 군을 물리친다. 이것이 유명한 탈라스 전쟁(751년)이다. 석국-이슬람 연합군이 승리하자, 이슬람 문화는 타슈켄트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 11세기 카라한조 시대에 본격적으로 개화한다. 그러다 13세기 몽골 군의 침입으로 된서리를 맞고 도시는 여지없이 파괴된다. 다행히 15세기 티무르 제국 출현을 계기로 ‘이슬람 르네상스’를 맞으면서, 타슈켄트는 성도로 떠오른다. 지금 남은 유적유물 대부분은 티무르시대(1405~1500)와 뒤이은 샤이바니 조 시대(1505~98)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타슈켄트는 상반된 이미지를 지닌 고도다. 8세기 이슬람의 동전 이후 지금껏 종교적 성도로 구실했지만 기원전부터 대상무역과 금은 세공으로 번영해 온 상도이기도 하다. 실크로드 오아시스 사이의 대상무역을 이었던 도시국가로서 타슈켄트의 영화는 쿠처에 버금갔다. 중국에서 타슈켄트의 옛 이름은 ‘석국(石國)’으로 불렸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이슬람 정벌 이전까지 ‘슬슬’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던 에메랄드 등 금속 보석 공예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푸른빛을 내는 에메랄드(벽석)의 유명한 산지도 바로 부근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타슈켄트의 상인들은 몽골과 신장 지역 등에서 산출된 금 등의 귀금속, 보석 등도 앞선 기술로 세공해서 교역을 주도했다. 자연스럽게 중개 도시로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중국 문헌에 나오는 ‘자설국(者舌國)’, ‘자시’란 이름은 돌을 뜻하는 이란어 ‘차치’에서 연원 한 것으로 모두 보석, 금은 세공과 관련이 있다. 이런 이유로 타슈켄트는 중국, 투르크, 위구르, 타직, 소그드, 아랍인들 사이에 끝없는 영토싸움의 무대였다. 석국인들에게는 아랍권과 중국 왕조 사이의 교묘한 등거리 외교가 필수였다. 8세기 저 유명한 탈라스 전쟁의 도화선도 고선지가 이 지역을 침공한 데서 비롯되었다. 석국을 중심으로 한 소그디아나 일대의 소국들이 이슬람 권에 기울어져 당에 복종하지 않은 것이 고선지의 군사행동을 낳은 것이다.
    2) 사마르칸드 (Samarqand)
    사마르칸드의 모습 사마르칸드의 모습

    [사마르칸드의 모습]

    사마르칸드는 실크로드의 중심으로서 고대 호레즘시대부터 마라칸다로 알려졌고, 중국에서는 강국(康國)이라고 불렀다. 기원전 5세기경 자라프샨강 유역에 살던 소그드인들은 오아시스가 있는 아프라시압 언덕에서 도시를 건설했다. 그 후 사마르칸드는 수많은 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기원전 4세기), 아랍인의 침략에 의해 세워진 사라센제국(8세기), 칭기즈칸의 침략(13세기) 등으로 이 도시의 주인공은 바뀌었다.
    14세기에는 티무르 왕조가 몽골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사마르칸드를 다시 부활시켰다. 티무르는 이 도시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원정을 떠나면 닥치는 대로 그 지역의 유명한 예술가와 건축가들을 끌고 와 아름다운 도시로 꾸미도록 지시했다. 특히 그는 푸른색을 좋아해 사마르칸드를 푸른 도시로 만들었다. 이런 이유로 사마르칸드를 '푸른 도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도시 곳곳에 산재한 중세 모스크와 왕족들의 묘들이 저마다 푸른색 돔을 머리에 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푸른색은 청록 빛깔의 터키석 장식이 연출해 내는 신비감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슬람 학자들은 사마르칸드를 '동방세계 이슬람의 진주'로 불렀다.
    사마르칸드에서 가장 유명한 대부분의 유적들은 14, 15세기에 사마르칸드를 중앙아시아의 경제, 문화, 학문의 중심지로 만든 티무르와 그의 손자 울루그벡, 우즈벡 샤이바니드인의 작품이다. 거의 모든 명소가 그 구조가 옛날과 다르게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구시가에 위치하고 있다. 사마르칸드의 자랑거리이자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경외심을 일으키는 것은 수 많은 마졸리카 도자기, 담청색 모자이크, 거대하고 아름답게 분할된 공간을 제공하는 메드레사를 가리는 웅장한 종합작품인 레기스탄(Registan)이다. 옆에 있는 대규모 집회를 할 수 있는 비비하늠 모스크사원(Bibi-Khanym Mosque)은 티무르 제국의 보석 같은 곳이었으며 황폐하더라도 힘이 넘치고 빈틈이 없다. 이 사원은 이슬람계에서 가장 큰 사원의 하나였으며 한계상황까지 건설기술을 추진했기 때문에 그 자체의 웅장함에 희생되어 수세기 동안 서서히 기울어져 1897년 지진으로 마침내 붕괴되고 만다.
    사마르칸드는 현재 사마르칸드 주의 주도(州都)로서 인구 약 40만 명으로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이다. 공업 및 문화의 중심지로서 사마르칸드는 자랴프샨 강의 계곡과 구릉에 걸쳐 위치하며, 타슈켄트에서 자동차로 3시간 가량 걸린다. 우즈벡 과학원 고고학 연구소, 사마르칸드 대학, 기생충 학 연구소, 사마르칸드 시립박물관, 우즈벡 문화•예술사 박물관 등이 있고 교육, 문화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사마르칸드 시내에는 많은 사적이 있으며 최근 칭기즈칸의 군대에 의해 폐허가 된 구시가의 발굴이 이루어져, 아랍 침공(8세기) 이전의 궁전 터와 화려한 벽화 등이 출토되었다.

    ※ “아프라시압 벽화”

    벽화

    [벽화]

    중앙아시아와 한민족의 역사적 교류의 증거물로서 아프라시압 벽화를 손꼽을 수 있다. 1975년에 알리바움은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과학원에서 발굴 보고서 '아프라시압 벽화'을 발표하여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는 아프라시압 벽화를 고증하는 가운데 한민족의 의상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였다.
    "두 사람은 앞에 있는 사신들과 머리장식에서 구별된다. 첫 번째 사람은 머리에 차양이 없는 모자를 쓰고 있다. 또한 진주로 장식된 리번이 머리 둘레를 조이고 있고, 머리 꼭대기에는 두 개의 깃털이 꽂혀있다. 그의 머리는 짧고 검은색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얼굴은 밝은 색을 띠고 있다. 세부적으로 그림을 연구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레몬 색의 옷자락이 긴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그 옷은 허리에 넓고 검은 띠로 주름이 잡혀있다. 밑으로 내려가서, 넓적다리에는 옷이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몸을 감싸면서 좁혀져 있다. 가벼운 비단으로 만들어진 넓은 바지는 부드러운 주름을 타며 복사뼈까지 내려져 있고 끝에는 줄로 묶어져 있다. 단화는 부드럽고 앞 끝이 댕겨져 올라가 있다. 손은 넓은 소매에 감추어져 있으며, 선물은 보이지 않는다. 넓적다리 부분에는 왼쪽 방향으로 곧바로 꽂힌 칼이 있다. 칼집 위로는 하트모양을 가진 두 개의 고리가 있는데, 이는 칼을 고정시키기 위해 허리에 있는 검은 띠와 두 줄로 연결되어 있다. 두 번째 사신도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그의 옆 얼굴은 밝은 갈색을 띠고 있으며, 코는 약간 낮다."
    알리바움은 이 사신들의 새 깃털이 꽂힌 머리 장식을 보고 이들의 국적을 고구려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 당시 한민족이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왕래를 했다는 것은 매우 감격적인 사건이다. 이 당시에 중앙아시아의 소그드인 또한 당과 실크로드를 통한 많은 교류를 하고 있었다. 한국의 고려시대는 국제무역이 매우 발달하여 멀리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를 방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3) 부하라 (Buhoro)
    부하라의 모습 부하라의 모습

    [부하라의 모습]

    부하라는 서역으로 가는 좁은 ‘목구멍’이었던 둔황과 지정학적으로 비슷하다. 아랄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중앙아시아의 정수리’ 호라산 지역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 일찍부터 실크로드 간선인 초 원로와 오아시스 육로의 교차점이 됐다. 동쪽의 중국과 서쪽의 페르시아•유럽 쪽 문물들이 부하라에서 한데 모였다가 각지로 전파된 까닭에 숱한 지역 왕조들의 도읍이 되었으며, 이민족 상인들 사이에는 경제적 패권의 각축장이 되었다. 특히 부하라는 동유럽•중동에서 중국으로 갈 경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에 있어 실크로드가 쇠퇴하는 17세기 이후에도 중계 교역으로 쉼 없이 번영을 누렸다. 오늘날 부하라가 동서 교류의 우량 박물관이 된 것은 20세기 초까지 2000년 이상 유지된 교역 망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5세기까지 부하라는 인도의 불교유적이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유적을 찾았던 순례자들의 중간 기착지였다. 중국사서인 <수서>서역전에는 7세기 초 수나라가 서역에 파견한 사신 위절의 기행기 <서번기>의 내용 일부가 나오는데, 안국으로 불렸던 부하라는 다섯 빛깔 소금인 오색 염이 중요 교역 품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본격적인 교역거점이 된 것은 6세기 투르크족이 진출해 부하라 성과 궁전, 창고, 시장 등을 지은 데서 비롯됐다. 8세기 초 아랍 이슬람 군대가 호라산을 점령한 이래 지배세력은 200~300년 단위로 바뀐다. 거란인들이 주축인 카라키타이(12세기 초), 몽골인들의 차가타이한국(13~14세기), 티무르 제국(14~15세기),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의 뿌리인 우즈벡인의 샤이바니왕조와 부하라 한국시대(16~19세기)까지 교역은 끊이지 않았다. 대항해 시대인 16~17세기에는 유럽인들도 중국 진출을 위한 동방 거점으로 부하라를 점 찍고 무역사절을 보낸다. 제정러시아의 거상 스트로가노프가의 에르마크나 영국 런던의 무역상 젠킨슨이 바로 그런 이들이다. 젠킨슨의 경우 1558년 12월 부하라에 도착해 현지 교역시장을 견문한 기행기를 남겼다. 당시 부하라 시장에서는 인도 벵골의 마포와 모직물, 러시아산 가죽, 페르시아 직물, 중국 비단, 견직물 등이 거래됐고, 페르시아인, 러시아인, 타타르인들을 사고파는 노예시장도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4) 히바 (Xiva)
    히바 (Xiva) 히바 (Xiva)

    [히바 (Xiva)]

    히바는 우즈베키스탄 서 남부에 위치한 투르크메니스탄 국경 도시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카라쿰과 우즈베키스탄의 키질쿰 중간에 위치하여 옛날 실크로드의 중요한 오아시스 역할을 했으나 사나운 도적떼가 수시로 출몰하여 위험한 지역이기도 했다. 16세기부터 17세기 초까지 히바 칸국의 수도역할도 했으나 아스타라칸 속국으로 있다가 1873년 러시아군의 침입으로 완전히 주권을 잃은 후, 1924년 소연방 우즈벡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히바의 유적은 히바성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고 히바성은 동서남북 문을 포함 11개의 출입구를 갖고 있다. 히바성 안에는 50여 개의 유적과 250여 호의 고가(古家)가 있어 성내는 모두가 문화유적이다.

     

     

     

  • eurasiaturk 2016-07-09 조회수:1350

    Uzbekistan 

     

     

    역사

     

    1. 역사적 인물들

    1) 아미르 티무르 (Amir Temur, 1336-1405)
    티무르

    [티무르]

    - 칭기즈칸의 유업을 이어받아 유라시아에 걸쳐 티무르 제국(1369- 1508)을 건설

    - 티무르는 군사적 정복뿐만 아니라 문화창달에도 기여

    - 티무르는 푸른색을 좋아하여 사마르칸드를 푸른색의 도시로 건설

    2) 울루그벡 (Ulugh Beg, 1394-1449)
    울루그벡

    [울루그벡]

    - 티무르의 손자로 40년간 통치한 군주이자 유명한 천문학자

    - 십진법, 기하학, 삼각법이 도입되는 등 과학발달로 사마르칸드는 고도의 학문과 문화 발전

    - 시•역사•신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사마르칸드에 저명한 천문학자들을 모아 천문대를 세우고 천측 표를 개발

    - 그러나 과학발전에 반발하여 종교를 우선시하는 회교승려의 사주로 아들이 보낸 자객에 의해 피살

    3) 알리셰르 나보이 (Alisher Navoiy, 1441-1501)
    알리셰르

    [알리셰르]

    - 우즈벡 문학의 창시자이자 정치가

    - 1472년 호라산 왕국의 장관으로 학교•병원 등을 지어 서민들을 도와주었으며, 문학가•예술인 등을 지원하여 문화창달에 기여

    - 다섯 개의 시편(kamsa)이 최대 걸작

    - 우즈벡 국민들은 알리셰르 나보이를 우즈벡 문화창달은 물론 민족 정체성을 고양한 위대한 인물로 존경하고 있으며 거리•학교•도서관 등 많은 시설물이 ‘알리셰르 나보이’라는 이름을 보유

     

    ※ 티무르제국의 ‘아미르 티무르(Amir Temur)’ (1336-1405)

    티무르 동상 최 전성기의 티무르 제국
    [티무르 동상]                              [최 전성기의 티무르 제국]
    수도 타슈켄트의 신 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한 티무르 광장 한복판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상징처럼 말을 타고 질주하는 티무르 동상이 서있다. 구 소련 당시 이 곳에는 티무르가 아닌 마르크스 동상이 서 있었던 자리였다. 독립 후 카리모프가 우즈베키스탄의 옛 티무르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어, 티무르가 국부 대접을 받고 있다.

    1336년에 출생한 티무르는 1369년 중앙아시아의 유목부족들을 통합하는 데 성공한 뒤, 1405년에 중국을 치러 가다가 사망할 때까지 거의 40년을 유라시아 사방 각지를 원정하고 정복하는 데 몰두했다.

    티무르는 사마르칸드 남쪽으로 80km쯤 떨어진 케쉬(현 샤흐리사브즈) 부근 호쟈이루그 마을의 한 몽골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후일 제국을 세운 뒤 이곳에 궁전을 지었는데, 궁전 기둥에“누가 내 힘을 의심하면 내가 지은 이 궁전을 보여드리라”는 티무르의 호기 어린 한 마디가 아랍어로 새겨져 있다. 그만큼 화려함에는 자신만만했다. 변신과 임기응변의 능수인 티무르는 청장년 시절 여러 세력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기반을 다져갔다. 상전에 대한 모반을 다반사로 하고, 결맹한 의형제를 모살하면서까지 제국의 대권을 거머쥐었다. 왕위에 등극(1369년)했지만, 칭기즈칸의 직계자손은 아니어서 감히‘칸’으로 일컫지는 못했다. 대신 칭기즈칸 후예의 딸을 취했다는 이유로 ‘구르간(사위)의 아미르(지배자)’라고 자칭했다.

    티무르는 자신의 출신 부족들로 강력한 친위대를 꾸려 대외정복에 나섰다. 약 30년간의 정복전쟁 결과 서쪽으로 소아시아와 지중해 동안의 시리아, 동쪽과 남쪽으로는 차카타이 칸국과 북인도, 북쪽으로는 카프카즈와 킵차크 칸국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는 최후 일전인 오스만 투르크와의 앙카라 전투(1402년)에서 대승을 거두고 수도 사마르칸드에 개선하였다. 전의에 불탄 노장은 70세 노구를 이끌고 다시 동쪽의 명나라 원정을 시작했으나, 시르다리야 강가에 위치한 오트라르(Otyrar)에서 급사하게 되었다.

    그의 기나긴 원정과정은 살육과 파괴로 얼룩졌다. 페르시아의 타크리트 성채를 공격할 때는 적병을 모조리 살상한 뒤 자른 머리로 피라미드를 쌓았다. 호라산을 점령하고는 연와와 석회 속에 사람을 생매장해 성벽을 쌓기도 하였다. 다마스쿠스와 바그다드 등 그가 공략한 도시는 가차없이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러시아를 지배하던 몽골 계 킵착 칸국의 군주 톡타므슈(Toqtamish)는 원래 티무르의 지원으로 권좌에 올랐지만 칸이 된 뒤에 티무르와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그러자 티무르는 1391년 볼가 강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그를 격파하고 킵착 칸국의 수도였던 사라이(Saray)를 폐허로 만들었다. 러시아의 많은 역사학자들은 러시아가 ‘타타르의 멍에’를 벗어 던진 것이 러시아인들의 애국적 투쟁, 즉 ‘키에프인들의 피’ 때문이었다고 해석하지만, 사실은 티무르의 원정으로 인해 킵착 칸국이 결정적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티무르는 젊었을 때 한쪽 다리에 화살을 맞아 근육이 수축되어 다리를 절었다. 구르 아미르 왕조(아미르의 묘)에 있던 티무르의 검은 돌로 된 티무르의 관 속에는 [내가 이 무덤에서 나올 때, 가장 커다란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한 문장이 새겨져 있어 아무도 관을 열지 않았는데, 1941년 6월 9일 구 소련 학자들이 사마르칸드에 있는 티무르의 무덤 구르 아미르를 열어서 그의 시신을 조사했고, 특히 게라시모프(M. M. Gerasimov) 라는 소련 학자는 티무르의 해골을 근거로 그의 얼굴을 복원했으며 생전에 절름발이였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그러나 그의 무덤이 개봉된 사흘 뒤 바르바로사 작전(독일에 의한 소련 침공)이 실행되었고, 이것이 바로 소련에서 본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단이었다. 후에 이에 두려움을 느낀 소련에 의해 뚜껑이 납으로 용접되어, 이후 두 번 다시 열리지 않고 있다.

    티무르의 풍운은 살육과 파괴, 기행만이 전부는 아니다. 역사 앞에 남긴 긍정적 일면도 묵과할 수는 없다. 특히 실크로드 요로에서 문명교류에 기여한 면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는 제국 건설 과정에서 이질적 문명의 수용에 인색하지 않았다. 정복지의 우수한 건축사나 기술자들을 사마르칸드에 불러들였다. 영내 각지에서 건축자재를 반입해 사마르칸드를 중세 세계의 가장 화려한 도시로 건설했다. 시리아 등지에서 돔(원형지붕) 건축양식을 도입하고, 자신이 즐기는 청색이 주조를 이루도록 도시를 미화했다. 그리하여 사마르칸드는 ‘푸른 도시’, ‘이슬람 세계의 보석’, ‘동방의 진주’란 찬사를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대상로를 정비하고 대상의 숙박소, 보호소를 도처에 설치했으며, 교역도 적극 장려했다. 멀리 지중해 동안에서 이란을 거쳐 사마르칸드와 타슈켄트, 탈라스를 지나 몽골에 이르는 동서 대상로가 원활히 소통되었다. 몽골제국 멸망에 따라 잠깐 중단되었던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육로는 그 기능을 회복하게 된다.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티무르 제국시대 동서 문명간 ‘활자의 길’이 트이면서 우리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활자 제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개연성까지도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과의 관계

     

    1. 한•우즈베키스탄 외교 관계

    카리모프와 노무현 전대통령

    [카리모프와 노무현 전대통령]

     

    □ 외교관계 수립: 1992. 1. 29

         • 주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개설: 1993. 12월

         • 주 한국 대사관 개설: 1997. 1월

         * 겸임공관: 타지키스탄

    □ 수교(92.1) 이후 정상방문(우리 측 2회, 우즈벡 측 5회) 및 정부간 협력채널 활성화 등을 통해 분야 협력관계를 발전

     

    [정상 방문 시 주요 합의사항]

    데이터 테이블
    盧대통령 방문(05.5) 카리모프 대통령 방한(06.3)
    실질협력 증진 전략적 동반자관계 공동선언
    근로자 사회보장 협정 등 체결 유전 가스전 공동탐사, 개발
    아랄해 유전•광물자원 개발 교육 정보화에 3,000만불 지원

     

    2. 한•우즈베키스탄 경제 관계

    1) 교역 동향

    [우리의 對 우즈베키스탄 교역 액]

    (단위: 백만 불)

    데이터 테이블
    연 도 2002 2003 2004 2005 2006
    285 326 436 522 689
    수 출 188 247 359 493 649
    수 입 97 79 77 29 40

    출처 : 한국무역협회 KOTIS

    •  양국간 교역은 1992년 수교 이후 꾸준히 증가해 오다가 98년 외환위기를 맞게 되면서 감소세에 있다가 다시 02년부터 활성화되어 최근 그 폭이 더 커지고 있는 추세
    •  교역량은 증가 추세이기는 하나 해마다 그 변동폭이 크고 교역량의 대부분은 수출이 차지하고 있음.

    [수출입현황(2006)]

    (단위: 백만 불, %)

    데이터 테이블
    순 위 ‘06년 對우즈벡 수출 ‘06년 對우즈벡 수입
    품목명 금액 증가율 품목명 금액 증가율
      합계 649 31.7 합계 40 39.1
    1 자동차부품 406 42.1 우라늄 17 -
    2 원동기 및 펌프 89 18.4 기타농산물 12 △ 29.0
    3 자동차 32 16.8 천연섬유사 8 6.0
    4 합성수지 20 9.7 기호식품 1 21.7
    5 편직물 15 79.4 면직물 1 △ 52.7

    출처 : 무역협회 KOTIS(MTI 3단위)

    •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원동기 및 펌프 등 기계류이고, 주요 수입품은 우라늄, 기타농산물 등으로 산업간 교역이 주를 이룸
    2) 투자현황
    •  우리나라는 우즈대우자동차 지분 매각 및 갑을방적 청산 등 불리한 여건하에서도 투자 상위 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음.

    [투자현황]

    (단위: 건, 백만 불)

    데이터 테이블
    연도 01년 02년 03년 04년 05년 06년 누계
    한국→
    우즈벡
    3 5 6 3 11 16 93
    74.9 0.8 5.7 0.9 7.4 39.1 645
    우즈벡→
    한국
    2 2 7 22 39 39 112
    0.08 0.08 0.3 1.2 2.1 2.2 6.01

    출처: 수출입은행, 산업자원부

    •  현재 우즈벡에 진출한 기업은 대우, 동서기연, 세명금속공업 등 약 40여 개 이고, 주된 투자부문은 제조업임.
    •  우즈벡의 주요 대한 투자기업은 알리셰르나보이코리아마케팅, 우즈벡차이하나 등이 있고 주로 유통부문에 진출해 있음.

     

    3. 동포현황

    •  고려인: 약 20만 명 (CIS내 최다)
    •  재외국민: 1천명 (대부분 소규모 자영업자나 선교사)

    ※ 우즈베키스탄의 한류 열풍

    • 우리 드라마 • 음악 등이 인기를 끌면서 한류열풍 확산
      •  드라마「겨울연가」가 시청률 60%를 기록하면서 최고 기록을 경신한 바 있고, 「별은 내 가슴에」,「이브의 모든 것」도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비디오로도 대여 중
      •  삼성, LG 등이 홍보전략의 하나로 방송국 광고비 대신 드라마 방영권을 우즈베키스탄에 제공, 한류 열풍 확산에 일조
      •  김덕수 사물놀이 등이 공연, 격찬을 받은 바 있고 우즈벡 국영 TV는 한국의 발전상 및 문화관광지 등에 대해 수 차례 방영, 높은 시청률을 기록
    • 자동차 • 가전제품 등 우리 상품에 대한 인지도 급상승
      •  한국제품의 우즈벡 가전 시장 점유율이 80%를 상회하고, 대우차는 국민차로 인식되고 있으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대우차를 타고 삼성 • LG의 가전제품을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평가
    • 청소년층의 ‘코리언 드림’ 열기 지속
      •  많은 우즈벡 청년들이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오는 것을 기대, 2004년도 경쟁률이 100대 1을 상회
      •  우즈베키스탄 내 타슈켄트 대학 등 주요 대학들이 한국어 학과를 개설, 높은 경쟁률을 유지

     

    4. 최근 동향 및 관련 신문기사

    한-중앙아 협력 포럼 참석자

    [한-중앙아 협력 포럼 참석자]

    ▷ 2007.11.15 서울 한남동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에서 ‘한• 중앙아 협력 포럼’이 개최됨
    한-중앙아 협력 포럼 참석자를 위한 만찬에서 송민순(가운데) 외교통상부장관이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한국, 중앙亞 에서 ‘에너지 블루오션’ 찾아라 (매일경제 칼럼, 07.11.19)

    ◆한ㆍ중앙아시아 협력포럼 출범/매일경제 초청 6개국 외교차관 좌담회◆

    최근 세계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은 풍부한 석유 가스 등의 천연자원 때문에 새롭게 조망을 받고 있다. 선진국들의 러브콜도 쇄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4일부터 열린 한ㆍ중앙아시아 협력포럼은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앙아시아란 새로운 블루오션 시장에 한국이 여느 국가보다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 열린 이 포럼은 한ㆍ중앙아시아 간의 새로운 미래 비전을 그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에 매일경제는 지난 16일 롯데호텔에서 조중표 외교부 1차관 등 포럼 참가자들을 초청해 이번 포럼의 의미와 성과를 진단하고 한ㆍ중앙아시아 간의 협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남은 숙제를 짚어봤다.

    • 이번 첫 포럼에서 양측은 어떤 분야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나.
      • 조중표 차관=양측이 교류 협력 확대를 통해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최근 경제 개발을 국정의 우선순위로 삼아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데 한국의 개발 경험을 필요로 하고 있고 이 부분을 앞으로 다양한 경로로 중앙아시아 지역에 전수해줄 생각이다.
      • 예르멕바예프 카자흐스탄 차관=물론 경제협력 방안이 주를 이뤘다. 카자흐스탄은 한국이 전 세계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IT BT NT 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살리바예프 우즈베키스탄 차관=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동차와 에너지 개발 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원하고 있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잘 발달된 섬유 분야에서 양국이 서로 합작회사를 세울 수도 있다. 현재 한국 기업과 4개의 석유가스전 개발 계약 체결을 추진 중이다.
      • 이브라이모프 키르기스스탄 차관=키르기스스탄 정부는 1998년 독립국가연합(CIS) 국가 중 최초로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등 적극적인 시장경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적극적인 외자유치 정책을 펴고 있다. 도로 건설 등 인프라스트럭처 구축과 송ㆍ배전 시스템 개량 사업에 한국 기업의 진출이 가능할 것 같다.
      • 하지예프 투르크메니스탄 차관=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석유가스 분야 발전 개념-2030`이란 정책을 추진 중인데 이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석유ㆍ가스 생산 분야에 대한 외국의 투자와 신기술이 필요하다. 이 점을 포럼에서 강조했다.
    • 왜 하필 이 시점에서 한국과 중앙아시아가 협력 폭을 넓히려 하나.
      • 조 차관=포화 상태에 이른 다른 지역들보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많이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최근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 성장을 국정의 우선순위로 삼아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데 한국의 개발 경험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번 포럼에서도 이 부분이 집중 논의됐다. 한국의 뛰어난 IT 사업과 중앙아시아의 풍부한 자원의 교환 가치는 매우 매력적이다.
      • 살리바예프 차관=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다. 한국 기업의 대우즈베키스탄 직접투자액도 약 10억 달러에 이른다. 또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많은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이런 점 등만 고려하더라도 양측이 새로운 협력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되지 않겠나.
    • 최근 중앙아시아 지역이 새로운 신흥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풍부한 자원이 한몫하고 있는 것 같다. 구체적인 현황을 이야기해 달라.
      • 살리바예프 차관=우즈베키스탄은 원유만 해도 확인 매장량이 약 6억 배럴에 달하며, 금은 추정 매장량만 5000t(세계 5위 수준)이다.
      • 예르멕바예프 차관=카자흐스탄은 원유 확인 매장량만 390억 배럴에 달하고, 천연가스는 3조㎥다. 우라늄과 크롬의 보유량은 세계 2위다.
      • 율다세프 타지키스탄 차관=타지키스탄에는 알루미늄이 아주 풍부하다. 연간 13만t의 알루미늄을 생산해 한국 등에 2억 달러 정도를 수출한다. 세계 8위의 수자원 보유국이다. 금 은 석탄 등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광산만 400여 개다.
    • 자원만을 놓고 본다면 굳이 양측이 서로를 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세계에 다른 자원 부국도 많다.
      • 조 차관=중앙아시아 지역은 매년 7%의 경제 성장, 오일달러 유입과 높은 인구 증가율 등을 바탕으로 세계의 새로운 신흥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또 우리와 상호보완적 경제구조를 갖고 있어 협력 분야가 다양하다. 그리고 아직 선진국들의 진출도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 하지예프 차관=세계 각 기업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는 다른 자원 부국과 달리 투르크메니스탄은 카스피해 자원 부국 중 유일하게 세계 유수 기업의 진출이 없다. 그만큼 한국 기업들이 활동할 공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 중앙아시아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이 경제협력의 발목을 잡을 염려는 없나.
      • 조 차관=중앙아시아 지도자들은 비교적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난 8월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서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4개국은 테러 등에 대한 예방조치를 강화하기로 하는 등 정치 안정화에 주력하고 있다.
      • 예르멕바예프 차관=안정 속에 점진적 민주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과 실질적인 경제협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적 불안정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 문제를 물어 보지 않을 수 없다.
      • 조 차관=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동포들은 1937년 옛 소련 당국에 의해 강제 이주한 한인들이다. 현재 정부는 이들과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동포들의 해당국 내에서 정치ㆍ사회적 권익 증진과 지역 내 협력기반을 마련하는 데 애쓰고 있다.
      • 예르멕바예프 차관=카자흐스탄은 다민족 국가로서 고려인은 우리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원이다. 카자흐스탄은 고려인에게 자신의 문화와 고유어, 민족전통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고려인은 카자흐스탄 정부와 의회, 그리고 법원 등에 진출하는 등 각계에서 중요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중앙아시아에서 보는 한국 이미지는 어떠한가.
      • 살리바예프 차관=신뢰할 수 있는 정치ㆍ경제적 파트너라고 본다. 특히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의 독립을 최초로 인정한 국가 중 하나로 우즈베키스탄 국민에게 아주 깊이 각인돼 있다.
      • 예르멕바예프 차관=매우 긍정적이다. 카자흐스탄에서도 한국 상품에 대한 인기는 높다. 최근 한국 건설 사가 지은 아파트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도 인기를 끌고 있다.
    • 중앙아시아 국가 간 결속력과 협력 상태는 어떠한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는 같이 움직일 필요성도 점점 커지는 것 같다.
      • 살리바예프 차관=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해 지역경제 통합에 힘쓰고 있다. 이 기구를 통해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새로운 물류노선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 예르멕바예프 차관=각국 간 양자 관계를 비롯해 EURASEC, CIS 등 다자협력 등에서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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