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터키의 유럽연합가입에 대하여 연합 측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선결요건 중 하나로 지정했으나 학살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언론인이 피살되는 등 난항이 거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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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7월 5일 국민투표에 의하여 채택되고 2005년 수정된 헌법에 따르면 아르메니아의 정치체제는 대통령제 공화국이다. 대통령은 국민투표에 의하여 선출되며 임기는 5년(연임 가능)이다. 2003년 3월 국민의 직선에 의하여 로베르트 코차리안이 재선에 성공하였다. 대통령은 다수당 출신 중에서 총리를 임명한다. 최고 행정기관은 각료회의이며, 총리·부총리를 포함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는 27명의 각료로 구성된다. 최고 입법기구는 임기 5년의 의원131명으로 구성되는 최고회의(Azgayin Zhoghov)이다. 의원 정수 중에서 90명은 정당 리스트에 의하여, 41명은 직접 선출된다. 2007년 5월 12일 총선에서 정당 별 의석 분포를 보면 아르메니아공화당(HHK) 69석, 번영아르메니아 24석, 아르메니아혁명연합(ARF,Dashnak) 16석, 법의 통치당 9석, 유산당(Heritage Party) 7석, Dashink 1석, 독립당 5석 등이다. 아르메니아공화당의 코차리안 대통령의 총선 승리로 국정 운영 기반이 강화되었다. 2008년 2월19일 실시된 대선에서 로버트 코차리안 대통령의 후계자로 나선 세르즈 사르키샨 총리가 52%를 득표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야권 후보로 나서 21%의 지지를 얻은 레본 테르-페트로샨 전 대통령은 매표와 이중투표 등의 선거 부정으로 패배했다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돼 3월1일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또 이날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8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했다. 3월 20일 비상사태는 해제되었지만 야권에선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혀 아직 정국이 불안정한 상태이다.
아르메니아 2008대선 득표율
| Candidates by alphabetical order |
Votes | % |
|---|---|---|
| Artur Baghdasarian | 272,427 | 17.7% |
| Artashes Geghamian | 7,524 | 0.46% |
| Tigran Karapetian | 9,792 | 0.6% |
| Aram Harutiunian | 2,892 | 0.17% |
| Vahan Hovhannisian | 100,966 | 6.2% |
| Vazgen Manukian | 21,075 | 1.3% |
| Arman Melikian | 4,399 | 0.27% |
| Serzh Sarkisian | 862,369 | CEC: 52.8% |
| Levon Ter-Petrosian | 351,222 |
21.5% |
아르메니아 민족은 301년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고, 주위의 국가들이 모두 이슬람으로 개종할 때도 개종을 거부해 근방에는 아르메니아 민족만이 기독교 민족으로 남았다. 이 때문에 기회만 생기면 아르메니아를 이슬람 국가로 개종하기 위한 이슬람 제국들의 침략이 이어졌다. 15세기부터 오토만 제국이 중동과 발칸 전 지역을 정복하면서 아르메니아도 오토만 제국의 통치를 받기 시작했다.
1차 대전이 벌어지기 전 오토만 제국에는 약 3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살고 있었다. 1914년 1차 대전이 발발한 틈을 타 아르메니아 인들은 오토만 터키 통치자들의 압제에 반발, 봉기했으며, 러시아가 터키를 침공하자 러시아군 편에 서게 된다.
이는 곧 엄청난 비극을 불렀다. 격분한 오토만 제국은 1915년 4월부터 자국 내의 아르메니아 인들을 조직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당시 터키 정부는 아르메니아 남자들을 학살하기 위해 18세 이상 50세 이하의 아르메니아 남자들을 모두 군대로 소집했다. 강제 징집된 아르메니아 남자들은 터키군에서 얼마간 훈련을 받다 나중에는 모두 무장해제된 뒤 50명에서 100명 단위의 그룹으로 나뉘어 다리 건설과 도로공사 현장에 동원됐다. 얼마 뒤 이들은 모두 집단적으로 공사장에서 터키군에게 학살됐거나, 굶주림과 극심한 노동으로 죽어갔다. 이런 식으로 수십만 명의 아르메니아 남자들이 터키군에게 끌려가서 죽임을 당했다.
남아 있던 어린이들과 부녀자들, 노인들은 모두 사막으로 강제 추방돼 처참하게 굶어 죽어갔다. 한 예로 35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을 시리아의 사막으로 추방했는데 시리아에 도착했을 때는 단지 35명만이 살아남았다. 이때의 대학살로 150만~2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했다. 3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 중 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인구가 이런 식으로 죽임을 당했다. 이때의 대학살로 인해 아르메니아 민족들은 고대 시대부터 살아온 땅과 가족과 재산을 잃고 전세계로 흩어지게 됐다. 현재 러시아에 200만 명, 미국에 100만 명을 비롯해 107개국에 모두 9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터키의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독일의 나치가 2차 대전 중 치밀한 계획하에 유대민족 말살을 시도했을 때,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인 <나의 투쟁>에서 “지금 누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기억하는가?”라는 주장을 펴면서 유대인 학살을 적극 옹호 했다.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아르메니아는 터키의 압제에서 벗어나 독립국을 건설하게 되지만 터키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이나 사과를 단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 지금까지 터키 정부는 단 한번도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도리어 대 학살 건을 제기하는 아르메니아에 대해 국교 단절과 국경 봉쇄, 금수 조치를 통해 심각한 경제적 압박을 가했다. 또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외교적 보복을 일삼았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아르메니아는 이웃 국가들로부터 고립되면서 경제적으로 엄청난 곤란을 당하고 있다.
그 동안 터키 정부는 3천만 달러 이상의 예산을 지출하면서 주로 미국 대학의 역사학자들을 매수해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에 혼신을 기울여왔다. 터키 정부는 일관되게 오토만 제국의 붕괴를 가져온 내전으로 30만 명의 아르메니아 인들과 수 천명의 터키 인들이 죽었다고 오랫동안 주장하고 있다.
[학살 현장 사진]
최근 터키의 유럽연합가입에 대하여 연합 측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선결요건 중 하나로 지정했으나 학살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언론인이 피살되는 등 난항이 거듭되고 있다.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 소카프카즈 산맥에 위치한 급경사의 계곡, 숲, 농장과 목초지가 많은 지역으로 아르메니아 계 주민이 다수이다.
1920년 카프카즈 지역이 소련에 복속된 직후 아르메니아 공화국 영토로 귀속될 예정이었으나 「스탈린」에 의해 1923년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확정되면서 주민 대다수가 아르메니아 계임을 감안, 자치공화국 지위를 부여 받았다.
- 1988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의회가 아르메니아 귀속을 요구하자 소련정부는 직접 통치를 결정하고 5,000명의 군대를 파견
- 1989년 나고르노-카라바흐가 독립을 선언하자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와의 교역을 중단하고 동 지역을 봉쇄하였고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합병 선언으로 대응한 후 무력 추돌을 지속하다가 1991년 소련군의 철수 직후 양국간 전면전으로 비화되었다.
- 1991년 나고르노-카라바흐 독자적 독립 선언 후, 1994년 러시아의 중재로 휴전한 이후 간헐적 충돌이 계속되는 가운데 OSCE 민스크 그룹(미ㆍ러ㆍ불)의 중재로 협상이 진행되었다.
3만 명의 일반인이 사망하였고, 난민이 된 50만 명의 아제르바이잔 계 주민들이 아직도 귀환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쟁으로 인한 폐허뿐 아니라 지뢰 문제도 심각하다. 당사국들의 강경한 입장과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러시아의 소극적인 태도로 교착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2007년 7월 대선에서 85%를 얻은 카라바흐 공화국 전(前) 보안 책임자인 바코 사키안(47)은 지난 7일 공화국 수도 스테파나케르트에서 로버트 코차리안 대통령 등 아르메니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을 거행했다.
최근 양국 정부군간의 교전 발생으로 3명이 사망하는 등 긴장감 다시 고조되고 있다.
독립 이후 처음에는 자본주의화에 필요한 정부지침의 부재, 자산평가 방법의 미비, 민영화 진행에 대한 관심 분산, 관련 정부기관 내 전문인력의 부족 등으로 민영화 추진이 지연되었다. 특히 1988년 12월 7일 발생한 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고, 구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싸고 1988년부터 수년 간 아제르바이잔과 벌인 전쟁으로 1991∼1994년의 경제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부의 계속된 민영화 추진과 개혁, 그리고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합의 후 정황이 안정되면서 1994년 이후 2000년까지 연평균 5% 이상의 고도성장을 달성하였고, 2006년에는 경제성장률이 13.4%에 이르렀다.
2006년에는 연간 인플레이션이 2.9% 로 낮아졌다. 실업률 7.4%, 절대빈곤층 34.6% 등이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이다. 구 소련연방에 속한 국가들 중에서 민영화가 가장 잘 진행된 국가로 평가된다. 아제르바이잔과의 갈등 해소가 지속적인 경제 발전의 관건이다.
[아르메니아 인플레이션 추이]
| 연도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
| 인플레이션% | 7.0 | 0.6 | 2.9 | 4.3 | 6.3 |
06년 말 기준 총 외채는 약 14억 4,800만 달러이며 총 외채/GDP 비율은 23%, 이 중 공공부채가 83.2%, 민간외채가 16.7%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공부채는 다자간기구 채무로서 기관별 채무 액 비율은 IDA 58.2%, IMF 11.4%, IFAD, EBRD, IBRD 7.9% 등이며 민간외채의 대부분은 중장기성 외채이다. 외환보유고는 FDI유입 및 해외송금 증가에 따라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외채 및 외환 보유고 현황]
| 구분 | 2005 | 2006 | 2007 | 2008 |
|---|---|---|---|---|
| 총 외채 | 1.861 | 1.970 | 2.098 | 2.244 |
| 총 외채/GDP | 33.47 | 30.9 | 25.5 | 24.6 |
| D.S.R | 7.9 | 6.2 | 4.7 | 4.0 |
| 외환보유고 | 669 | 1.072 | 1.330 | 1.610 |
| 수입 개월 수 | 3.3 | 4.1 | 4.5 | 4.6 |
산업별 구성 비율은 농업 18.2%, 광공업 38.6%, 서비스업 43.2%(2006년 추산) 이다. 전통적인 농업국가로 국내총생산에서 농업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광·공업 부문이 국가경제를 주도한다. 과거의 산업구조는 1차 산업과 경공업 위주였으나, 2006년 화학, 비철금속, 기계장비류, 정밀기계, 섬유, 의류, 양조, 통조림 제조 등에 주력하여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독립 후에는 국가경제개발정책의 일환으로 1991년 전체 농토의 80%에 대하여 농가당 0.5㏊를 배분하는 농지개혁법, 기업활동법, 법인세법 및 국영기업 사유화법 등 각종 법률을 제정하였다.
[부문별 성장]
| 농업 | 8%성장 알코올음료, 제과, 통조림, 부문 | |
|---|---|---|
| 야금업 | 알루미늄, 페로몰리브덴 성장 구리 축소 | |
| 건설업: | 19.2%성장 지속적 성장 | 건축자재 생산증가에 기인함 |
| 에너지 | 천연가스 공급 지속적 증가 | 가스 인프라의 확장에 기인 |
| 서비스 | 13%성장 |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기인 |
대외무역을 보면 수출 10.2 억 달러, 수입 19.2 억 달러(2006년)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다이아몬드, 광물, 식료품, 에너지 등이며, 수출대상국은 독일 17.4%, 네덜란드 12.9%, 벨기에 12.8%, 러시아 12.6%, 이스라엘6.8%, 미국 5.8%, 스위스 5.3%, 그루지야 4.9%, 이란 4.7% 등이다. 수입대상국은 러시아 20.1%, 우크라이나 7.2%, 벨기에 7%, 투르크메니스탄, 이탈리아 5.6%, 독일 5.3%, 이란 5.2%, 이스라엘l지우기 4.4%, 루마니아 4.3%, 미국 4.1% (200? 년) 등이다.
아르메니아의 GDP 구성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8.2%이지만 전체 노동력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은 45%이다. 이는 지형과 기후상의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이후 지속적인 농지개발과 관개사업으로 농업이 진흥되었기 때문이다. 경작지는 국토의 17%, 목장·목초지 및 건초지가 39%를 차지한다. 산악지역의 농지는 옥수수 밭·과수원·포도밭·목초지 등이 혼재되어 있다. 사유 경작지는 1991년에 전체 경작지의 1/3에 불과하였으나 1992년에는 90%로 증가하여 자본주의의 토대가 이루어졌다.
최대경작지는 아라라트 평원, 시라크 고원, 세반분지 등이며, 저수지·양수·관개용수로의 설치로 경작지의 절반 이상이 관개된다. 아라크스강 유역의 관개지에서 밀, 보리, 올리브, 무화과, 석류, 목화, 포도 등이 재배되며, 예레반 주변 지역에서 집약적인 원예농업과 양잠이 성하다. 해발고도 1,000m 이상의 지역에서는 곡물, 사탕무, 감자 등의 재배가 양 사육과 결합되어 행하여지며, 산록에서는 밀, 보리, 옥수수, 라이보리(호밀) 등의 곡류, 산악지대의 남사면 저지에서 잎담배와 감자가 재배된다. 아라라트 평원에서는 과거에 주로 목화와 사탕무가 재배되었으나 최근에는 포도와 같은 환금용 작물을 재배한다. 로리, 시라크 고원, 세반분지 등에서는 대규모 목축이 성하고, 서남부의 산간지방에서는 동계방목을 행하며, 광대한 고산목초지에서는 소·양·염소 등이 사육되고, 세반호에서는 송어 어업이 행해진다.
[종류별 농업 생산량]
(1000ha)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
| Grains | 191.9 | 200.8 | 206.8 | 209.6 | 182.4 |
| Potatoes | 30.5 | 32.3 | 35.7 | 34.4 | 33.0 |
| Vegetables | 20.1 | 23.2 | 22.2 | 22.5 | 24.4 |
| Water-melons | 3.9 | 4.1 | 4.0 | 3.9 | 4.0 |
| Forage crops | 57.8 | 53.0 | 55.3 | 60.9 | 65.6 |
| Industrial crops | 1.4 | 1.3 | 1.2 | 0.5 | 0.8 |
| Total | 305.7 | 314.6 | 325.2 | 331.8 | 310.2 |
아르메니아는 구리, 몰리브덴, 납, 아연, 철광석, 망간, 금, 크롬, 수은광 등 광물 자원이 풍부하지만 1991년 구 소련의 붕괴로 연계가 단절되어 산업화되지 못한 채 많은 광산이 폐쇄되었다. 건축재로 사용되는 응회석, 경석, 현무암, 대리석등이 아직도 많이 채굴된다. 라즈단강·소라켄강·테메트강에 대규모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어 있다. 국내의 비철금속자원과 수력 발전에 의해 생산된 전기는 파이프라인으로 수송되는 석유 및 천연가스와 더불어 기계, 화학, 야금, 섬유, 양조, 피혁공업 등을 발달시켰다.
최근에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동·아연광 등의 제련, 시멘트 산업이 발달하였다. 에너지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의 영향으로 인하여 석유·가스가 부족해지자 1995년 6월에 안전성 문제로 정지하였던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재개하였다. 수도 예레반은 최대 공업도시로 전국 공업생산의 3/5을 차지하며, 전기기계·금속·인조섬유·식품·비료·양조·화학·양모공업 등이 발달해 있다. 에치미아진에 기계 및 식품공업, 아보비안에 기계공업, 라즈단·오크템베랸 및 케네케르에 알루미늄공업, 알라베르디에 화학공업, 구가르크·잔게주 및 카판 등지에 구리 및 몰리브덴 정련업이 발달하였다. 북동부의 프리제베드 지방에는 화학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인조 보석 및 기계공업이 발달한 키로바칸 공업지대, 식품 및 전기기계공업이 발달한 스테파나 반공업지대 등이 있다. 북서부의 시라크스크 지방에는 기계공업 중심의 중공업이 발달한 귐리 공업지대가 있으나 1988년 12월 발생한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 및 터키와의 정치적 안정 관계가 지속된다면 그 동안의 경험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발전이 기대된다.
아르메니아는 카스피해와 흑해를 동서로 잇는 일종의 랜드 브릿지(land bridge) 역할을 해주는 카프카스 지역에 위치해 있으면서, 아제르바이잔과 달리 석유와 천연가스의 생산은 물론 부존 자원조차 없는 자원빈국이다. 또한 석유자원의 통과 루트에서도 그루지야와 달리 벗어나 있어, 이를 통한 경제적 이득도 기대할 수 없는 입장이다. 특히 아제르바이잔과의 분쟁 이후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방면의 국경이 봉쇄된 관계로 에너지 도입선을 남부의 이란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해, 이란과의 연계 망 구축 노력을 할 정도로 내륙국으로서의 애로를 겪고 있다.
확인된 매장량이 없고 정유시설도 없어 석유정제 제품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인접국 그루지야와 달리 카스피해산 석유의 대 유럽 수출용 파이프라인도 통과하고 있지 않아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체 수요 석유관련 제품도 철도나 트럭 수송망을 이용해 수입하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석유 공급이 끊기자 아르메니아의 석유 소비는 1992년의 1일 48,400배럴 수준에서, 2000년에는 1일 5,000배럴 수준으로 급감 되었으며 대부분이 조지아의 바투미에서 들여오고 있다.
카스피해산 석유의 주요 수송로가 될 'MEP(Main Export Pipeline)'건설 프로젝트도 아르메니아를 경유하지 않고 있는데, 아르메니아는 이 파이프라인이 북부아르메니아를 경유할 경우 수송거리 단축으로 비용 면에서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마저도 아제르바이잔과의 나고르노-카라바흐지역 분쟁이 미해결된 상황에서 볼 때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아제르바이잔은 기존의 조지아 루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일축하고 있다.
확인된 가스 매장량이 없는 상태에서 자체 소비 가스를 전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99년 기준 456억 입방피트의 가스를 소비하고 있다. 지역분쟁 발발 이후 아제르바이잔은 소련시절에 구축된 가스 수송망을 봉쇄했으며, 이로써 모든 가스 수입을 조지아를 경유하는 러시아산으로 대체했다. 민간 가스업체인 이테라(Itera)사가 '96년이래 주 공급업체로 부상했다. 이란-아르메니아간의 파이프라인이 구축되어 도입선의 다변화가 가능해졌다. 천연가스 배급은 Armosgazprom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아르메니아 정부 45%, 러시아의 가즈프롬 45%, 민간기업 Itera 10% 지분 보유). 2001년에 설비 개선에 600만 달러를 투자했다. 2001년 2월 아르메니아와 러시아는 '99년에 체불된 700만 달러의 채무 액 처리에 합의했다.
한국 석유수출공사 2007.03
이란과 아르메니아가 3.19일 160㎞ 길이의 가스 파이프라인을 공식 개통했다. 이에 따라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최초의 대체공급원을 가지게 되었다. 파이프라인 개통식에는 양국의 대통령이 참석했다.
이란은 가동 초기에는 연간 4억 입방, 미터(141억 입방피트), 2008년까지는 연간 25억 입방, 미터(882억 입방피트)의 가스를 아르메니아에 공급할 예정이다. 향후 20년간 총 공급규모는 360억 입방 미터(1.3조 입방피트)이다.
파이프라인은 이란 Tabriz에서 시작하여 아르메니아 Kadzharan까지 이어지며 약 3년의 공사기간과 2억불의 투자비가 소요되었다. 파이프라인에는 이란 남부의 Assalouyeh, Bid Boland, Kangan 가스전에서 생산된 가스가 공급된다.
생산도 없고 확인된 매장량도 없음. 가정 연료로 사용되는 석탄은 공급부족 상태이다.

[아르메니아 위치도]
아르메니아는 북위 40도 동경 45도에 위치하며, 동쪽에 아제르바이잔, 남쪽에 이란, 서쪽에 터키, 그리고 북쪽으로 그루지야와 국경을 면하고 둘러싸여 있다. 국경선은 아제르바이잔 566 km, 아제르바이잔-나히체반 221 km, 그루지야 164 km, 이란 35 km, 터키 268 km이다.
| 국 호 | 아르메니아 공화국 (Republic of Armenia) |
|---|---|
| 독립일 | 1991년 9월 23일 |
| 수 도 | 예레반 (인구:1,107,800 면적:227 km²) |
| 영토면적 | 29,800㎢ ※ 세계 141위 |
| 인 구 | 3,229,900 (2007) ※ 세계 135위 |
| 민족구성 | 아르메니아인(97.9%), 쿠르드족(1.3%), 러시아인(0.5%), 기타(0.3%) |
| 종 교 | 아르메니아정교(기독교계), |
| 언 어 | 아르메니아어, 러시아어 공용어 |
| 평균수명 | 71.55년 |
| 문맹률 | 0% |
| 대통령 및 임기 | 세르즈 사르키샨 (Serze Sargsian)/임기 5년 ※2008년 3월 선출 |
| 의 회 | 단원제 ※최고회의(Azgayin Zhoghov) |
| 정부형태 | 대통령 중심제 |
| 주요정당 | 공화당, 정의블럭, 법치당 |
| 화폐단위 | 드람 (dram)※ 1$ ≒ 585 dram (2007) |
| 국내총생산(GDP) | 35억4.600만 (2007) |
| 1인당 GDP | 1.100$ (2007) |
| 수출입 | 수출액 : 5억 8천만 $ (2007) ※ 수출품목 : 다이아몬드,강물,식료품 수입액 : 13억 1.600만 $ (2007) ※ 수입품목 :천연가스, 석유, 식료품 등 |
| 주요산업 | 다이아몬드가공업, 식품가공 |
| 주요자원 | 구리, 아연, 몰리브덴 등 희귀금속 |
| 행정구성 | 11개주 |
| 주요도시 | 예레반, 바나조르, 기윰리 |
| 주요경축일 | 1.1 새해, 1.6 아르메니아 정교회 성탄, 4.24 학살추모일, 5.9 전승기념일 7.5 제헌절, 9.21 독립기념일 |

가로 세로 2:1의 비율의 직사각형 모양의 아르메니아 국기는 빨강 파랑 주황의 삼색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빨간색은 아르메니아 고지와 독립을 뜻하며, 파란색은 아르메니아의 미래와 하늘, 주황색은 아르메니아인들의 창조적 재능을 의미한다

1992년 4월 19일에 채택 된 아르메니아의 국가 문장은 아르메니아 예술학회의 회원인 건축가 알렉산더 타마니안과, 화가 하콥 코조얀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중앙에는 4개의 왕가문장과 노아의 방주가 내려앉은 아라라트산이 도안된 방패가 자리하며, 이 방패를 사자와 독수리가 들고 있는 형태를 띄고 있다. 도안 내부의 색상은 국기의 색상이 의미하는 바와 일치한다.
"Mer Hayrenik"/"Our Fatherland" /”우리의 조국”의 명칭을 가진 아르메니아 국가는 1991년 7월 1일에 제정되었다. 현재의 국가는 최초의 국가를 기초로 개사한 것으로 가사는 시인 미카엘 날반디안의 시이다.
- CIA 홈페이지 www.cia.gov/cia/publications/factbook
- 아르메니아 정부 홈페이지 www.gov.am
- 아르메니아 통계청 www.armstat.am
- 한국 수출보험공사 www.keic.or.kr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http://www.kotra.or.kr
- 유라시아 넷 www.eurasianet.org/armenia08
- 검색포털 구글 www.google.com
- 위키피디아 www.wikipedia.org

아르메니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지협에 위치해 남서쪽에 이란과 터키, 북쪽에 그루지야, 동쪽에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지형은 북부는 카프카스 산악지대로 높아지고, 불모의 평지는 남쪽으로 뻗어 이란과 터키로 이어진다. 해발 1000m이하는 국토 전체의 10%이하이며, 가장 높은 곳은 아라라트산으로 해발 4090m에 달한다. 아락강은 터키국경의 일부와 이란국경의 대부분을 따라 흐른다. 사막 비슷한 언덕과 알파인 지형이 불과 몇 킬로 사이에 있으며, 비옥한 아라랏밸리 지역에서 대부분의 농작물이 재배된다. 국토의 삼림지역은 불과 10%이내이며, 18%는 불모지, 30%이상이 목초지이다.
[아르메니아 행정구역]
아르메니아의 행정 구역은 아르메니아어로 마르제르또는 줄여서 마르즈라고 부르며, 10개의 주와 1개의 특별시(수도)를 가지고 있다. 주요도시로는 수도인 예례반과 기윰리, 바나조르가 있다.
[아르메니아 행정구역]
| 번호 | 주 이름 | 주 도 |
|---|---|---|
| 1 | 아라가초튼 | 아슈타라크 |
| 2 | 아라라트 | 아르타샤트 |
| 3 | 아르마비르 | 아르마비르 |
| 4 | 게가르쿠니크 | 가바르 |
| 5 | 코타이크 | 흐라즈단 |
| 6 | 로리 | 바나조르 |
| 7 | 시라크 | 기윰리 |
| 8 | 슈니크 | 카판 |
| 9 | 타부시 | 리예반 |
| 10 | 바요츠조르 | 예게근다조르 |
| 11 | 예레반 | 특별시 |
[아르메니아 주요도시]
| 순위 | 주 이름 | 인구 | % | 밀도 |
|---|---|---|---|---|
| 1 | 예레반 | 1,091,235 | 36.3% | 5,196.4 |
| 2 | 시라크 | 257,242 | 8.6% | 96.0 |
| 3 | 아르마비르 | 255,861 | 8.5% | 206.2 |
| 4 | 로리 | 253,351 | 8.4% | 66.8 |
| 5 | 아라라트 | 252,665 | 8.4% | 126.1 |
| 6 | 코타이크 | 241,337 | 8.0% | 114.9 |
| 7 | 게가르쿠니크 주 | 215,371 | 7.2% | 58.9 |
| 8 | 슈니크 | 134,061 | 4.5% | 29.8 |
| 9 | 아라가초튼 | 126,278 | 4.2% | 45.8 |
| 10 | 타부시 | 121,963 | 4.1% | 39.1 |
| 11 | 바요츠조르 | 53,230 | 1.8% | 22.1 |

아르메니아는 한때 로마 제국에 대항할 정도로 강성했으나 이후의 역사는 많은 외국세력의 지배와 이에 대항한 독립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아르메니아 문화의 기초는 우라르투가 멸망한 BC 6세기에 성립되기 시작했다. 우라르투는 강력한 동맹국이던 아시리아가 바빌로니아와 메디아에 정복되자 그 여파로 스키타이인과 킴메리인에게 정복되었던 고대왕국이다. 스스로를 하이크인이라 부르던 아르메니아인들이 이주해왔을 때 우라르투의 발달된 농업기술은 아르메니아인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 이주해온 아르메니아인들은 곧 메디아 제국에 흡수되었고 메디아가 BC 550년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이 지역의 통치는 페르시아 왕에게 공물을 바치는 각 마을 관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BC 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르메니아를 정복한 후 BC 301년 셀레우코스 제국에 편입되었다.
로마가 BC 190∼189년 셀레우코스 왕조를 정복한 후에는 대(大)아르메니아와 소페네 두 지역으로 분할되었다가 아르메니아의 대왕 티그라네스 2세(BC 95∼55 재위)에 의해 통일되었다. 아르메니아는 그가 다스리는 동안 최고로 번성하여 인접 지역인 이베리아, 알바니아, 아트로파테네, 시리아, 파르티아의 일부 지역까지 세력을 뻗쳤다. 로마 제국 동쪽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급속히 부상했으나 BC 66년 강제로 영토를 할양하고 로마와 동맹을 맺은 후로는 AD 3세기까지 로마와 페르시아 파르티아 왕조의 각축 지역이 되었다.
성 그레고리우스가 아르사크 왕조의 티리다테스 3세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킴에 따라 페르시아 및 동양 세계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었으며, 300년에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390년 비잔틴 아르메니아와 페르시아 아르메니아로 분할되어 전자는 곧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후자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페르시아의 세력이 쇠퇴하자 비잔틴 세력권으로 들어갔다. 653년 아랍의 지배 아래 들어갔으나 실질적으로는 자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11세기 잠시 부흥했던 비잔틴 제국에 병합되었지만 곧 셀주크인들의 침략을 받아 11세기말에 이르러서는 나라의 대부분이 셀주크 투르크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영토의 대부분이 그루지야에 편입되어 있었던 13세기에는 몽골의 침략을 받기도 했다. 셀주크에 점령된 후 실리시아 지방으로 이주한 아르메니아인들은 소(小)아르메니아를 세워 십자군 전쟁기에 유럽과 굳게 동맹을 맺고 유럽 문화를 많이 수용했다. 13세기 시리아를 통한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몽골 군대를 고용하기도 했으나 1375년 수도가 함락되면서 독립을 상실했다. 16세기 초반 다시 적대관계에 있던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사이의 각축장이 되어 짧은 독립기간(1722∼30)을 제외하고는 18세기까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아르메니아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교역로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말기 (1915년 - 1923년)에 오스만 제국령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이 살해되었다(터키에서는 아르메니아 사람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소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라면서 아예 사건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1916년 러시아에 정복당한 후에는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자카프카지예 동맹을 형성했으나 몇 달 지나지 않아 해체되었다. 1920년 아르메니아 공화국으로 잠시 독립했던 것을 비롯한 여러 차례의 정치적 격동 끝에 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자카프카지예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으로 재통합되었으며, 1922년 소련에 흡수되었다. 1936년 새로 개정된 소련 헌법에 따라 독자적인 소비에트 공화국이 되었다. 1980년대 말 주민 대부분이 아르메니아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제르바이잔의 관할권에 속해 있던 이웃 산악지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정치적 지위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1988년부터 수년간 아제르바이잔과 벌인 분쟁으로 수많은 아르메니아인이 사망했다. 1988년 12월 7일에는 큰 지진이 일어나 레니나칸과 스피타크 시가 파괴되고 2만 5,000여 명이 죽었다. 1989년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공급되던 전력이 끊겨 대부분의 산업시설이 가동을 못하는 등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경제가 매우 어려워졌고 주변국들과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아르메니아는 그 후 1990년 8월 23일 주권을 선언하고 1991년 12월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했다. 1992년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자치를 주장하며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승인을 아르메니아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외교관계 수립 : 92.2.21
주요인사 교류
- 94.8 Chitechian 부총리, 만국우편연합(UPU) 총회 참석차 방한
- 95.9 유엔총회 공로명 외무장관 주최 만찬 계기로 한.아르메니아 외무장관회담
- 97.6 Poghpatyan 아르메니아 체신부 장관 방한
88년 아르메니아 지진 피해 발생 당시 우리나라가 90만 불 상당의 구호품 지원
- 아르메니아 정부, 98.3.25자 코차리안 대통령 명의 김대중 대통령 앞 친서를 통해 지진 피해 복구 사업 재 지원 요청. 우리측, 재 지원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무상협력 사업을 통해 양 국간 협력을 지속 시행하겠다는 요지의 5.1자 우리측 서한 발송 KOICA를 통해 연수생 초청 97년 한국정부에 EDCF 신청 97년 KOICA 기자재 공여 사업을 통해 컴퓨터, 칼라 TV등 5만불 상당의 기자재 제공
- 상기 지원은 아르메니아 측이 UNDP 주관 하에 추진중인 “외무부 업무능력 강화사업” 에 우리측참여 요청결과 이루어진 것.
아르메니아 측이 이중과세방지협정, 투자보장협정 및 경제협력협정 초안을 96.7 우리측에 제시 97.4 아르메니아 측, 과학기술협력협정 체결 제의
- 관련 부처와 아르메니아 측 초안 검토 중
[아르메니아 대한관계]
| 외교관계수립 | 1992.2.21 수교(북한과는 1992.2.13) | |||
|---|---|---|---|---|
| 주요협정체결 | 없음 | |||
| 무역현황 수출(천 달러) /수입(천 달러) |
2004 | 2005 | 2006 | 주요품목 |
| 2,172 / 80 | 3,150 / 93 | 6,939 / 4,062 | 직물, 섬유제품, 의료용품, 알루미늄 | |
| 투자실적 | (2006년 말 현재, 총두자기준) : 없음 | |||
e-daily 2007 03 02
조달청은 이달 4일부터 15일까지 12일간 전자조달 시스템 도입을 준비 중인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3개국을 대상으로 전자조달사업의 타당성 조사를 위한 민관 합동 조사단을 파견한다고 1일 밝혔다.
이번 조사단 파견은 김용민 조달청장이 1월25일부터 지난달 3일까지 이들 국가를 방문해 합의했던 상호 협력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이뤄진다.
조사단은 5일 아르메니아, 8일 그루지야, 12일 아제르바이잔을 차례로 방문, 해당국의 조달관련 정부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조달제도, 법령 관련 자료수집, 정보화 인프라 현황 등을 파악•분석할 계획이다.
조달청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등 관련 민관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단이 해당국의 IT인프라, 공인인증기반 등을 사전에 파악함으로써 향후 이들 국가의 전자조달사업 추진 시 우리 IT기업의 사업 참여에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 형종 조달청 전자조달본부장은 "이번 아르메니아 등 3개 국가의 전자조달사업 타당성 조사지원을 계기로 나라장터의 정책수출과 이들 국가와의 협력사업이 보다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내일신문 2007-10-16
GS건설은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인 아르메니아에서 2억1800 달러 규모의 복합화력발전 공사를 수주했다고 16일 밝혔다.
이 공사는 아르메니아 수도인 예레반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지역에 전력 용량 205 MW급의 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공사다. GS건설은 28개월간 발전소 설계부터 기자재 조달, 토목, 설치까지 일괄 수행하게 된다.
복합화력은 LNG, 천연가스 또는 경유 등의 연료를 사용, 1차로 가스터빈을 돌려 발전하고 가스터빈에서 나오는 배기가스 열을 다시 보일러에 통과시켜 증기를 생산해 2차로 증기터빈을 돌려 발전하는 것이다.
한편 GS건설은 국내 발전사업에서 쌓은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 발전플랜트 시장에 적극 진출할 예정이다. 또 공업용수에서 물의 재활용까지 수처리 수직계열화를 추진해 발전과 담수 분야를 세계적인 회사와 겨룰 수 있는 핵심분야로 육성할 계획이다.
디지탈타임즈 2004
롯데기공(대표 유정상)은 동유럽의 CIS국가인 아르메니아에 롯데가스보일러 합작사 설립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유로텀(EUROTERM, 대표 에드워드 카자리안)사와 SKD(세미녹다운) 방식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17일 밝혔다.
롯데기공은 이번 계약으로 SKD 생산을 위한 설비를 유로텀사에 공급하고, 이를 통해 경험이 축적되면 향후 합작투자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투자 규모는 설비와 부대시설을 합해 50만 달러이고, 유로텀사는 공장과 창고를 투자한다. 계약 기간은 3년이고, 최소 3만 여대 규모를 공급할 것으로 기대된다.
회사측은 "아르메니아 현지 투자 계약은 롯데기공의 해외시장 개척 의지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향후 CIS 국가의 시장개척에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기공은 1985년 가스보일러 생산 이후 우루과이ㆍ칠레ㆍ브라질ㆍ뉴질랜드ㆍ러시아ㆍ중국 등지에 수출하고 있다.
SKD방식이란 부품을 수출해 현지에서 조립ㆍ판매하는 것으로, 완성품 수출보다 관세가 싸고 현지의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아르메니아의 교회]
예레반을 둘러보면 서남아시아의 문화가 어떤지 쉽게 알 수 있는데 중동과 비슷하지만 이슬람과 이슬람 사원이 없는 중동의 문화다. 교회 건축은 복잡한 석조 조각으로 꾸며져 있으며 7세기에 종교적 건축이 활발했는데 아르메니아의 교회는 러시아의 교회보다 단순하다.
이집트 태생으로 아르메니아에 1962년에 정착한 하콥 하콥얀(Hakob Hakobyan)은 중요한 현대화가이며, 작곡가 아람 카차투리안(Aram Khachaturian)과 조각가 코렘 데 하루티안(Korem Der Harootian)은 국내외적으로 유명하다.
전통음악은 중동의 박자기호에 따른 중동의 사운드이며, 아름다운 민속음악은 생활의 일부로 연주된다.
아르메니아 문학은 속담, 우화, 민속설화가 발달했고 소설가와 시인들은 20세기 문학의 발전에 공헌을 했는데 카차토우 아포비안(Khachatour Apovian)은 현대 아르메니아 문학의 창시자로 평가 받고 있다.
양고기를 주로 먹으며 삶은 양고기인 카쉬아마(kashiama)가 특별요리이다. 세반 호수(Lake Sevan)에서 잡은 숭어 또한 훌륭하다. 과일과 채소는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콩, 이집트 콩, 가지, 요구르트, 타보울레(tabouleh)와 중동음식이 다양하고 코냑은 최고 수준이다.
대부분의 마을은 봄의 시작과 같이해 문화와 음악 축제를 하며, 모든 지방은 여름 동안 전통축제와 현대적인 축제를 개최한다.
7월에 열리는 물의 날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물을 서로 끼얹는다. 세반 호수는 주말 행사와 여름 동안 콘서트가 열리며 야외공연장은 수공예품과 음식을 준비해 전통 춤과 음악 공연이 열린다. 흐라즈단(Hrazdan)에서 열리는 가을 축제인 보스키 아슌(Voski Ashun)은 10월에 열린다.
수확이 끝나고 겨울로 접어들면서 예레반에서 문화 시즌이 시작된다. 예례반의 버니사게 문화 공원(Vernisage Art Park)에서는 자발적인 콘서트와 즉흥적인 춤 공연이 일년 내내 주말에 수시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