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위치
[키르기스스탄 위치도]
중앙아시아 대륙의 중앙부, 북위39°-43°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북은 카자흐스탄, 서는 우즈베키스탄, 남서는 타지키스탄, 동은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접경하고 있다.
2. 일반개황
키르기스스탄 일반개황
| 국 호 |
키르기스 공화국 (Kyrgyz Republic) ※ 키르기스어 표기: Кыргыз Республикасы |
| 독립일 |
1991. 8. 31 |
| 수 도 |
비슈케크 (Bishkek, 약 80만 명) |
| 영토면적 |
19만 8,500㎢ (한반도의 0.95배) |
| 인 구 |
5,284,129 (2007.7) |
| 민족구성 |
키르기스인 66%, 우즈벡인14%, 러시아인 11%와 독일, 카자흐, 타타르, 위구르, 터키 민족 등 80여개 민족으로 구성 ※ 고려인 0.4% (2만 여명) |
| 종 교 |
이슬람교(수니파) 75%, 러시아정교 20%, 기타 5% |
| 언 어 |
키르기스어, 러시아어 |
| 평균수명 |
69.12세 ※ 남성 : 65.12세, 여성 : 73.33세 (2008) |
| 문맹률 |
1.3% (1999) |
| 대통령 및 임기 |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Kurmanbek Bakiyev, 2005년 7월 취임) / 5년 |
| 의 회 |
단원제 (75석, 임기5년) |
| 정부형태 |
대통령 중심제 |
| 주요정당 |
악졸당, 사회민주당, 아타메켄당, 공산당, 투란당, 알 나미스당 |
| 화폐단위 |
솜 (Som) ※ 1$ = 41 Som (2006.6) |
| 국내 총생산 |
28억$ (2006) |
| 1인당 GDP |
549$ (2006) |
| 수출입 |
수출 – 7억$ (광물자원, 면화, 울, 전력) 수입 – 12.6억$ (석유, 가스, 기계류, 화학제품) |
| 주요산업 |
농업, 농가공업, 광산업, 전력생산업 |
| 주요자원 |
금, 석탄, 석유, 안티몬, 수은, 수력자원 |
| 행정구성 |
7개 주, 1개 특별시 |
| 주요도시 |
비슈케크, 오슈, 나른, 카라콜, |
| 주요경축일 |
1.1 새해 (Жаңы жыл), 1.7 러시아 정교회 크리스마스 (Ыса пайгамбардын туулган күнү), 3.8 여성의 날 (Аялдардын эл аралык күнү), тилектештигини эл аралык күнү), 5.5 헌법 제정일 (Кыргыз Республикасынын Конституциясынын күнү), 5.9 승리의 날 (제 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 Жеңиш күнү), 8.31 독립 기념일 (Кыргыз Республикасынын мамлекеттик көз карандысыздыгынын күнү) ※ 이슬람 종교 경축일: Орозо айт/ Курман айт |
3. 국기

빨간색 바탕은 용기를 상징하며, 황금빛 태양은 평온과 부, 세계의 평화를 상징한다. 40개의 빛과 유르트의 천장 모양은 40개의 부족이 모여 이루어진 키르기스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4. 국가문장

파란색 바탕은 아름다운 자연과 이씩쿨(Issyk-kul)을, 7개의 봉우리는 7개 지역을 상징하며, 떠오르는 태양과 백색 독수리는 키르기스인의 자유와 경계, 사고의 깊이를 형상화한다. 테두리의 밀 이삭은 성실과 평화를 상징한다.
5. 국가
키르기스스탄 국가
작사: Ж. Садыков, Ш. Кулуев. 작곡: Н. Давлесов, К. Молдобасанов
1) Ак мөңгүлүү аска, зоолор, талаалар Элибиздин жаны менен барабар. Сансыз кылым Алатоосун мекендеп, Сактап келди биздин ата-бабалар.
*후렴 Алгалай бер кыргыз эл, Азаттыктын жолунда. Өркүндөй бер, өсө бер, Өз тагдырың колунда. |
2) Байыртадан бүткөн мүнөз элиме, Досторуна даяр дилин берүүгө. Бул ынтымак эл бирдигин ширетип, Бейкуттукту берет кыргыз жерине. *후렴
3) Аткарылып элдин үмүт тилеги, Желбиреди эркиндиктин желеги. Бизге жеткен ата салтын, мурасын, Ыйык сактап, урпактарга берели. *후렴 |
6. 참고문헌
- 우리 기업들의 중앙아 5개국 진출 안내 (외교통상부, 2007)
- 제1차 한·중앙아 협력 세미나 (외교통상부, 2007)
- 제1차 한·중앙아 협력 포럼 (외교통상부, 2007)
- 주한 키르기스 공화국 명예총영사관 홈페이지 www.ikyrgyz.com
- 국정원 정보포털사이트 www.nis.go.kr
- 한국수출입은행 www.koreaexim.go.kr
- 한국 무역 협회 www.kita.net
- KOTRA www.kotra.or.kr
- 위키피디아 www.wikipedia.org
- 지식까지 검색하는 NAVER www.naver.com
- 키르기즈스탄 | 김호준 충남대 초빙교수(전 서울신문 논설주간) [스포츠서울]
- http://blog.naver.com/ojjesus?Redirect=Log&logNo=40026984544

1. 국 토
1) 키르기스스탄은 산악지역으로 국토의 90%이상이 산으로 이루어져 있음
- 국토 대부분이 3000m 이상의 고산지역이며, 가장 높은 지역은 7400m까지 이름(수도 비슈케크도 해발고도 774m의 고지에 위치)
- 키르기스스탄은 2개의 고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많은 산들이 울창한 숲으로 싸여있음
· 천산의 남쪽자락: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경계
· 파미르 고원의 북쪽자락: 세계의 지붕
2) 산과 더불어 3000여 개의 빙하호를 가지고 있는 수자원 부국
- 가장 큰 호수는 이씩 콜(Issyk kul)로 해발 1570m에 위치하며 그 크기는 5,776㎢
[이씩 콜(Issyk kul)]
※ 산속에 떠있는 바다 ‘이씩 콜 (Issyk kul)
이씩 콜(Issyk kol)은 퀸케이 알라타우와 테르스케이 알라타우 지역의 4000m의 봉우리 사이에 위치한 호수이다. 길이 185km, 너비 79km의 제주도를 3개 반정도 넣을 수 있는 크기로 남미의 티티카카 호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며, 이 거대한 호수에는 80개의 강이 모여든다. 또한 이씩 콜의 가장 깊은 곳이 668m로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깊은 호수이다.
투르크어로 ‘뜨거운 호수’라는 뜻을 가진 이씩 콜은 강물이 빠지는 데 없이 증발만 해서 염분이 많아진 데다가, 고산 호수임에도 화산작용으로 인하여 1년 내내 얼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빙하의 청정수와 미네랄 온천수가 뒤섞인 이 호수의 맑은 물은 건강에 좋은 약수로 유명하다.
이씩 콜은 송어, 백표범, 야생염소, 야생멧돼지, 곰 등이 서식하고 있어 사냥과 낚시장소로 인기가 많으며, 주변에는 다양한 관광시설이 마련되어있어 이 곳에서 온천과 초원, 계곡, 절벽, 하이킹 트레일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다.
2. 기 후
- 건조한 초원지대로서 4계절이 모두 있고 겨울은 춥고 황양하고 여름은 덥고 건조
· 여름 평균 기온: 영상 34도 (가장 더운 때는 7-8월초 40도가 넘음)
· 겨울 평균 기온: 영하 22도
3. 행정구역
[키르기스스탄 행정구역]
키르기스스탄은 현재 7개의 주와, 1개의 특별시로 구성되어 있음.
[키르기스스탄 행정구역]
데이터 테이블
| 번호 |
주 (область) |
중심 도시 (Шаар) |
| 1 |
비슈케크 (특별시) |
| 2 |
바트켄 |
바트켄 |
| 3 |
추이 |
추이 |
| 4 |
이씩쿨 |
카라쿨 |
| 5 |
잘랄아바트 |
잘랄아바트 |
| 6 |
나른 |
나른 |
| 7 |
오슈 |
오슈 |
| 8 |
탈라스 |
탈라스 |

1. 약 사
[키르기스스탄 약사]
키르기스스탄 약사
| 약 사 |
| 키르기스의 어원은 “40의 민족” 또는 “40인의 딸”이라는 의미로, 기록상으로는 기원전 2000년 중국 연대기에 키르기스 민족이 최초로 등장하고 있으며 당시에는 에니세이강(Enesai)과 바이칼(Baikol) 지역에 거주하였음. |
| 기록에 남겨진 최초의 키르기스 민족은 이란 계의 사카인으로 중국·페르시아와 활발한 교역을 해왔으며, 그 후 페르시아 제국에 병합되어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원정에도 참가하였음. |
| 키르기스는 중세시기에 실크로드의 천산북로가 열리면서 동서교역 요충지 역할을 수행하게 되고, 이씩콜은 실크로드의 중요한 오아시스가 됨. |
| 6세기 중반에는 돌궐(투르크)에 병합되었으나, 8세기에는 돌궐을 물리친 유목국가 위구르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감. |
| 9 세기부터 위구르족을 몰아내면서 알타이산맥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으며, 10세기 중반에는 서 시베리아, 몽골, 바이칼과 현재 키르기스 지역 대부분이 그 세력권에 들어오게 됨. |
| 13세기 후반 몽고의 지배하에서도 키르기스인은 이동을 계속하여 현재의 키르기스공화국이 있는 지역에 집단거주를 시작하였으며, 16세기에 들어 키르기스 민족문화가 형성되었음. |
| 18세기에는 중국의 청조, 19세기에는 우즈벡족의 코칸드(Khan)의 지배를 받았으며, 19세기 후반부터 러시아제국의 지배에 들어가 러시아인의 유입이 시작됨. |
|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인 1918년 5월 소비에트정권의 지배에 들어가 러시아공화국내의 “투르케스탄(Turkestan)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에 편입됨. |
| 1924년에는 러시아공화국의 일부인 “Kara-Kyrgyz”, 1925.5 이후는 “Kyrgyz” 자치주가 되었으며, 1926년에는 “키르기스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으로 격상됨. |
| 1936년 러시아공화국으로부터 분리되어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으로서 소 연방을 구성하는 독립된 공화국의 하나로 승격됨. |
| 1990년 12.5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최고회의는 주권선언을 채택하고 91.8.31 독립을 선언함. |
| 1991년 1월 국명을 키르기스스탄공화국, 수도 명을 비슈케크로 하였음. |
| 1993년 5월 국명을 현재의 키르기스공화국(Kyrgyz Republic)으로 변경 하였음. |

1. 외교관계
1991. 12. 30 키르기스 국가 승인
1992. 1. 31 외교관계 수립 (북한과는 1992. 1. 21)
1993. 11 초대 김창근 대사 신임장 제정
1996. 10 제2대 이영민 대사 신임장 제정
1999. 11 제3대 최승호 대사 신임장 제정
2002. 10 제4대 태석원 대사 신임장 제정
2006. 1 제5대 김일수 대사 신임장 제정
2007. 9 1인 공관 개설 (이경렬 대리대사 부임)
* 비슈케크 한국교육원: 2001. 5. 28 개원
2. 협정체결 현황
한•키르기스 문화협정(97.6)
한•키르기스 투자보장협정(97.6 가서명)
한•키르기스 EDCF 차관 공여협정(97.6)
한•키르기스 SOFA 협정(2002.4.30 발효)
(* 2002.2.27-2004.3 반 테러 다국적군 일원으로 우리 국군 동의부대 주둔)
한•키르기스 항공협정(2007.6 발효)
한•키르기스 관광협정 (2006.7 서명)
3. 경제협력
키르기스스탄 측은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이 자국에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우리와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협력증진을 희망하고 있음
그러나, 키르기스스탄의 정세불안 및 경제난 지속 등으로 이 지역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전반적으로 저조한 실정임
1) 상품 교역
- 1992년 1월 수교 이후 한•키르기스스탄 간 경제교류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으며, 양국의 교역 액은 1억불에 미달하나, 증가세를 보이고 있음
- 수출: 2000년 이후 편직물, 연초류, 합성수지, 승용차 등 우리 수출물량의 대폭증가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컴퓨터, 자동차부품, 화물자동차 등 수출품목이 다변화하고 있음
- 수입: 금, 곡류, 펄프, 비금속광물 등 원자재가 주종을 이루고 있음.
[한•키르기스스탄 교역 추이]
(단위: 천불, %)
한국과 키르기스스탄 교역 추이
| 구분 |
96 |
97 |
98 |
99 |
00 |
01 |
02 |
03 |
04 |
05 |
06 |
교역규모 (증가율) |
6072 (94.6) |
8,086 (33.2) |
29,128 (260.2) |
23,947 (-17.8) |
17,304 (-27.7) |
20,626 (19.2) |
28,041 (35.9) |
32,591 (16.2) |
53,185 (63.2) |
68,107 (28.0) |
83,265 (22.3) |
수출 (증가율) |
3542 (63.8) |
7,917 (123.5) |
29,034 (266.7) |
23,893 (-17.7) |
17,057 (-28.6) |
20,010 (17.3) |
27,625 (38.1) |
32,239 (16.7) |
50,174 (55.6) |
66,517 (32.6) |
81,947 (23.3) |
수입 (증가율) |
2,530 (164.0) |
169 (-93.3) |
94 (-44.4) |
54 (-42.1) |
247 (355.3) |
616 (148.9) |
416 (-32.4) |
352 (-15.3) |
3,011 (754.6) |
1,590 (-42.7) |
1,318 (-17.1) |
| 무역수지 |
1,012 |
7,748 |
28,940 |
23,839 |
16,810 |
19,394 |
27,209 |
31,887 |
47,163 |
64,927 |
80,629 |
출처 : 한국 관세청
2) 투자진출
우리기업 진출 현황
| 구분 |
기업명 |
분야 |
투자액 |
비고 |
| 1 |
C&C Plaza |
여권제작 |
350만 미불 |
C&C Plaza와 조폐공사가 공동사업을 추진하였으나, 현재 동 사업은 중단된 상황 |
| 2 |
Omnisystem |
전기검침기 생산 |
1,300만 미불 |
경제특구 내 위치 |
| 3 |
아티스글로벌건설 |
아파트 개발 |
6백만 미불 |
비슈케크에 1천 세대 규모 개발 사업 착공(’06.9) |
(1) 우리의 對키르기스 누계 투자금액은 약 35백만 불, 1998년 한국 Central Asia Group(무역, 놀이시설)의 진출 이후 외환위기로 투자가 감소하였으나, 2001년 이후 증가하여 최근 점차 증가추세.
(2) 한-키르기스 실질협력 사업
- 삼성건설이 2002년 2월 비슈케크-오슈 고속도로 건설사업의 일환으로 카라발타-비슈케크 간 80Km 도로확장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며, 1998년 한국 Central Asia Group(무역, 놀이시설)이 비슈케크 시내에 대규모 놀이공원을 조성한 바 있음.
- 최근에는 우리 IT기업의 진출이 확대되는 추세이며 기타 항공운송, 식당, 의류공장, 농장 등 자영업소 10여 개가 진출
(3) 우리정부는 1999년 EDCF 차관 12백만 불을 지원, 키르기스 수도권 추이 주 25개 지역에 45,237 회선의 TDX-10 교환기를 공급•설치하여 해당지역 전화적체현상 해소 및 통신서비스를 향상시킨 바 있음. (동 EDCF 차관은 금리 연 2.0%, 상황기간 30년 조건부)
4. 재외동포
1) 고려인: 약 2만 명
[국방부차관 유가이 보리스] [국회의원 신로만] [검찰청 총괄국장 허가이 알렉산드르]
(1) 1937년 강제 이주된 한인들의 후손 2-4세대 고려인들이 동포사회의 주류를 형성
- 현재 고려인들은 정•관계 고위직, 기업계, 학계, 문화, 언론계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
(※ 국방부 차관인 유가이 알렉산드라, 법무부장관 김 넬랴, 법무부 검찰국 총괄국장 허가이 알렉산드르 등)
(2) 시장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기업 활동에 두각
- 중앙아시아 최대 낙농제품 생산회사인 “신라인”의 신 게오르기 회장을 필두로 상 보리스가 호텔 업 등에서 두각
(3) 고유의 문화 유지 및 계승
- 고려인들은 오랜 기간 모국과의 격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말과 문화를 지켜오며 한국어 라디오 방송, 신문, 전통무용단을 운영 중.
- 수교 이후 우리 정부로부터의 꾸준한 지원 등에 힘입어 젊은 층의 우리말 구사 능력이 꾸준히 향상 되고 있으며 북한 성향을 보이던 공연 예술 분야도 점차 한국화 되어 가는 추세
2) 재외국민: 약 600여명이 거주 (2006)
- 주로 무역업, 유학, 선교 등의 목적으로 입국한 장기 체류자와 그 가족들이 주류를 형성
- 재외국민 단체로는 한인회와 선교사 협의회 및 유학생회, 지상사협의회 등이 있음

1. 마나스 서사시
[마나스] [마나스 동상]
- 세계 최대의 서사시로 서양 최대의 서사시인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합친 것보다 40배 김
- 키르기스 생활에 관한 백과사전식 지식의 보고로, 고대 투르크인들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생활양식을 알게 해줌
- 마나스치(Manaschi)라는 구전 자에 의해 1000년 이상 구전되어 내려. 오다, 19세기 후반 러시아가 지배기간에 러시아 학자에 의해 문자화 함.
- 소비에트 공산주의 시기에는 민족주의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금지됨
- UN은 1995년을 ‘국제 마나스의 해’로 정하기도 하였고, 이 해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마나스서사시 10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개최됨.
-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에 등록.
- 현재에도 초등학교에서는 반드시 마나스서사시가 교과재로 취급되고 있음.
※‘마나스(Manas)’는 누구인가?
마나스는 고대 예니세이 강 부근에 흩어져있던 키르기스인들을 규합, 위구르인과 싸우면서 현재의 땅에 이주할 때까지 강력한 키르기스 부족을 이끈 지도자로서, 전설상의 인물이지만 현재까지도 키르기스 전 국민이 칭송하는 존재이다.
마나스는 실존 인물이 아님에도 키르기스스탄 탈라스 지역에는 그의 무덤이 있고 그의 기념관이 성역화 되어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마나스'라는 이름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국제공항의 이름이 마나스이고, 마나스 대로를 달리다 보면 국립극장인 필하모니 앞에 서있는 거대한 마나스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마나스 서사시’의 내용은?
마나스'는 초원을 누빈 영웅들의 운명적인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주제이다. 마나스 서사시는 그 속에 격정적인 사랑과 화려한 연회, 영웅들의 경마와 장렬한 1대 1의 승부 장면 등을 노래하고 있다. 큰 줄거리는 사리노가이족의 왕자 ‘마나스’의 탄생, 그의 소년•청년시절과 결혼, 칼미크인에 의한 암살, 그가 죽은 해에 태어난 그의 아들 ‘세메티’, 칼미크인의 ‘세메티’ 암살, ‘세메티’의 유복자 ‘세이테크’의 칼미크인에 대한 복수 등이다.
2. 전통 기마놀이 “콕보루”
[콕보루]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기마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매년 기마 경기대회를 개최 한다. 이는 전통 기마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정당한 내셔널리즘으로, 독립 후의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지방 예선을 거쳐 전국 대회에서 챔피언을 결정해 기마민족의 문화를 계승해 가는 기마 행사의 의미를 갖는다.
키르기스스탄은 원래 북방 유라시아에서 무수한 기마민족과 교전을 반복하면서 천산산맥 쪽으로 옮겨 그 명맥을 유지하여 왔으며 전통 기마문화를 소중히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까지 전승 보존할 수 있었다.
현재 키르기스스탄의 많은 기마 경기 중 가장 인기 있는 경기는 '콕보루'이다. '콕보루' 경기는 '코크팔, 쿠크팔' 등으로 불려 지기도 하는데 '염소를 사냥한다'라는 뜻으로, 초원에서 이리를 기마 경기하듯 사냥하며 놀았던 것이 그 유래로 알려져 있다.
'콕보루'의 경기내용은 양편이 서로 말을 달리며 염소의 목과 발목을 잘라버린 '우라크'를 볼로 생각하고 서로 빼앗아, 자신의 골 ‘타이카잔’에 넣으면 점수가 올라가는, 말하자면 '기마전 럭비'와 같은 경기형태이다. 4대 4로 경기를 하는데 교대 멤버는 4필의 말을 더 넣어 8기로 1 팀이다. 20∼30㎏나 되는 '우라크'를 자유자재로 다루려면 상당한 완력과 승마의 기량이 요구된다.
이외에도 ‘달리는 말 위에서 서로 바꾸어 타기’, ‘말 위에서 씨름하기’, ‘지면에 떨어진 리본을 달리면서 줍기’, ‘남자가 여자를 따라 말을 타고 달려가서 껴안고 키스하기’ 등등 많은 형태의 기마경기가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인 소설 <쟈밀라>도 말 경기에 승리한 남자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억지 결혼을 당한 후의 비애를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3. 음식문화
[말 젖 짜는 모습] [크므즈]
키르기스 인들은 유목민족으로 카자흐인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풍습이 있다. 키르기스 인들에게 손님접대를 소홀히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전혀 기대하지 않던 손님이 찾아오더라도 음식을 차려 내오거나 최소한 차를 내놓는다. 그러나 만일 손님이 시간이 없을 경우에는 이를 사양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손님에게 빵을 가져오는데, 손님은 그가 우정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로 주인이 가져온 빵을 조금 떼어 먹는다. 귀한 손님이 오면 키르기스 인들은 양을 통째로 잡아서 대접한다. 가장 존경하는 손님에게는 양의 머리부분을 대접한다.
가장 귀한 손님은 문에서부터 가장 안쪽에 앉고, 손님은 양 머리를 여러 부분으로 잘라서 식탁에 앉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다. (예를 들면 귀 부분은 가장 어린 아이들에게, 눈은 집주인과 함께 나눈다 - 그런데 이것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음식은 여러 번 순서를 따라 제공되며, 마지막에는 차나 ‘크므즈’(말 젖을 발효유)를 내어 온다. 주인집에서 가장 나이 어린 여자가 음식과 차를 내오는 식탁 시중을 든다.
4. 키르기스인들의 결혼 풍습 : ‘알라카츄(ala kacuu)’
역사적으로 중매에 대한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키르기스의 많은 젊은이들 (주로 20대 초반)의 결혼은 ‘알라카츄’를 통해 시작된다. 즉, 신랑이 종종 친구들과 함께 자기가 결혼하기로 선택한 처녀를 납치하는 것이다. 물론,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경우에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이 ‘알라카츄’는 12세기 유목시절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신부가 납치가 되면 신랑 쪽 가족들이 신부의 몸값(칼림)을 정하기 위해 신부 쪽 가족을 찾아가게 된다. 이 때 보통 선물, 돈, 술, 혹은 가축 등을 함께 가져간다. 신랑의 가족들과 여러 주를 지낸 다음 결혼식을 올리고 그 지방 이슬람 지도자인 몰도를 초청해서 종교적인 의식을 올린다. 키르기스 정부는 1994년 ‘알라카츄’를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5. 독수리 사냥꾼 ‘베르쿠치’
베르쿠치는 옛날부터 유목민 사회에서 존경 받아왔다. 기근으로 굶주릴 때 베르쿠치가 사냥해서 온 마을을 먹여 살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앙아시아에서 독수리 사냥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베르쿠치는 얼마 되지 않는다.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1990년대에 30~40명이던 것이 지금은 10여명으로 줄어 들었다.
독수리는 사냥감을 발견하면 급상승했다가 날개를 접고 급강하한다. 이때의 낙하속도는 시속 70~80㎞. 거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리곤 마지막 순간에 발톱을 활짝 펴서 먹이를 움켜쥐고 단숨에 절명시킨다. 독수리는 일단 잡은 동물은 뼈가 으스러지도록 바위에 내던지고 2차 공격에 들어가기도 한다.
독수리는 동물에 따라 공격방법을 달리한다. 여우를 잡을 때는 한쪽 발톱으로 주둥이를 틀어막아 숨을 못 쉬게 하고 다른 발톱으로는 목을 짓눌러 죽인다. 늑대를 공격할 때는 늑대가 물지 못하도록 날카로운 발톱으로 목덜미를 잡은 뒤 부리로 눈이나 귀를 찍는다. 그 일격이 치명타가 돼 늑대는 도망칠 곳을 찾지 못해 버둥거리다 쓰러진다. 독수리는 여우나 늑대와 싸우다 상처를 입어도 절대로 사냥감을 놓치는 법이 없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상대의 살 속을 파고들어 움켜잡기 때문이다.
독수리 사냥 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독수리를 하늘로 날려서 독수리 스스로 사냥감을 찾게 하는 것. ‘초원의 나라’ 카자흐스탄의 전통적인 사냥 법이다. 또 하나는 베르쿠치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보다가 사냥감이 지나가면 독수리를 풀어서 잡게 하는 것. ‘산악국’ 키르기스스탄의 개량 사냥 법이다.
사냥에 나서는 독수리는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며칠 전부터 먹이를 주지 않아 배를 곯린다. 또 집을 나설 때 눈가리개를 씌었다가 사냥터에 도착하면 벗겨준다. 멀리 있는 사냥감은 베르쿠치보다 독수리가 훨씬 더 잘 발견한다.
독수리가 사냥감을 먼저 보면 날개와 꼬리를 푸득거려 주인에게 알린다. 독수리는 시력이 아주 뛰어다. 30m 상공에서 볍씨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독수리가 먹이를 찾아내는 비결은 바로 눈의 줌 기능에 있다. 망원경 같은 눈으로 먼 곳의 먹이를 확인하고 줌으로 당겨 실체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다. 독수리의 사냥 성공률은 거의 90%에 달한다. 사냥에는 암 독수리만 사용한다. 암컷이 수컷보다 크고 힘이 센 데다 훈련에 빨리 적응하기 때문이다. 사냥 독수리는 아직 날지 못하는 어린 야생 검독수리를 길들여 만든다.
독수리 길들이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인간과 독수리의 모자 관계 형성하기’라고 한다. 그런 유대가 없으면 사냥 중 독수리가 자유를 찾아 날아가 버리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6. ‘중앙아시아의 스위스’ 키르기스스탄의 풍경

1. 정치약사
[키르기스스탄 정치약사]
키르기스스탄 정치약사
| 1991.8.31 |
독립선언 |
| 1993.5 |
신 헌법 채택, 국명을 “키르기스공화국”으로 개명 |
| 1994.1 |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직접신임투표 실시(96.2% 지지획득) |
| 1994.10 |
헌법개정 국민투표. 2원제의회 성립 |
| 1995.2 |
의회선거(의원의 87%가 키르기스인으로 대체) |
| 1995.5 |
쥬마그로프 내각 발족 |
| 1995.12 |
대통령선거 실시(아카예프 대통령 재선) |
| 1996.2 |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총리지명권 및 예산집행권을 대통령에게 집중) |
| 1998.3 |
쥬마리예프 내각 발족 |
| 1998.10 |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토지사유화, 의회정원 증감 결정) |
| 1998.12 |
이브라이모프(Ibraimov) 내각 성립 |
| 1999.4 |
무랄리예브(Amageldy Muraliyev) 총리 임명(이브라이모프 총리 사망) |
| 1999.8 |
남서부지역에서 회교 무장군들에 의한 일본인 지질학자 4명 인질사태 발생 |
| 2000.2.20 |
국회의원선거(입법회의 60명, 인민대표자회의 45명) |
| 2000.5.25 |
러시아어 공용화법 채택 |
| 2000.10.29 |
대통령 선거 실시 |
| 2001.1 |
Kurmabek BAKIEV 총리 및 내각출범 |
| 2001.8 |
CIS 안보조약기구 신속 배치군 사령부 비슈케크 설치 |
| 2001.12 |
미국주도 다국적군(376 항공원정단) 비슈케크 Manas 공항(Ganci 기지) 주둔 개시 ※ 우리나라 포함 미국, 프랑스, 캐나다, 이태리, 스페인, 네덜란드, 터키, 폴란드 등 12개 다국적군으로 2002년 중 4,000~6,000명 병력 구성 |
| 2002.6 |
Nikolay Tanayev 내각 출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