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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 벨트 국가 알아보기

  • eurasiaturk 2016-07-09 조회수:1560

    Uzbekistan 

     

     

    사회문화

     

    1. 인 구

    -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현재 2,778만 명으로 100여 개 이상의 다민족으로 구성

    - 러시아인은 주로 타슈켄트 외곽 및 공업 중심지에 거주, 타직인은 부하라와 사마르칸드에 밀집, 카라칼팍인(50만 명)은 자치공화국을 이루어 거주

    - 우즈벡인은 대부분 농촌에 거주하고 도시 거주 우즈벡인은 40%를 약간 상회하며, 인구 성장률을 연 3.5%로 높은 편. 고려인은 약 16만 명으로 타슈켄트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국에 걸쳐 넓게 분포

     

    ※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

    고려인 이주 경로

    [고려인 이주 경로]

     

    •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 우즈베키스탄은 유목지대로 농업이 불가능하다고 인식되던 곳이었으나, 고려인들이 강제이주 시 가져온 볍씨 등 농작물 씨앗으로 수자원을 이용한 벼농사 등을 성공시키고 대규모 목화밭을 일굼

    • 콜호즈(집단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김병화 콜호즈’와 ‘뽈리따젤 콜호즈’ 등을 건설, 노동영웅들을 배출

    •고려인의 높은 교육열로 많은 고려인 2,3세들이 의사, 기술자, 교수, 연구원, 변호사, 당 간부 등 러시아 사회의 중심으로 진출
    (*고려인 동포 주요인사로는 박 베라(상원의원), 신 블라디미르(고려문화협회 회장) 등 민주평화통일 해외자문위원 16명이 있음)

    • 1991년 소련 붕괴 후 강대국 소련의 붕괴와 새로운 독립국가연합의 출현은 이미 형성돼있던 고려인 민족공동체의 핵분열 초래

    •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90년대 중반 이후 대부분의 농업기반을 우즈벡 민족에게 넘겨준 많은 고려인들이 새로운 농업 환경,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지금도 그 행렬은 계속되고 있음

    • 최근 우즈벡 정부 조사에 따르면 고려인은 모두 15만 5900명(전체인구의 0.6%)으로 80년대 23만 명에 비해 크게 감소

    • 주 우즈벡 대사는 고령 고려인들을 위한 양로원 건설, 젊은 세대를 위한 직업기술훈련센터 건립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

     

    ※ 고려인 집단 농장 (콜호즈)

    1. 김병화 콜호즈 (1925 창설, 1974년 김병화 농장으로 개칭)

    -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당시 최초 정착하였던 지역의 하나로 당시에는 갈대밭이었으며, 김병화가 1940-74년간 농장 대표자를 역임하면서, 주재국 고려인 중 유일하게 2차례나 노동영웅훈장을 수훈

    - 대표적인 고려인 집단농장이었으나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농장이 해체되어 개인 영농화하는 과정에 있으며, 다수의 고려인이 떠나 현재는 약 1,000여명의 고려인만 거주

     

    2. 뽈리따젤 콜호즈(1924 창설, 농장 장은 카자흐인)

    - 김병화 콜호즈와 비견되는 대표적인 고려인 집단 농장

    - 1953년 황만금이 농장의 대표로 취임하여 전 소련 지역에서 가장 높은 생산량을 기록, 노동영웅훈장을 수훈

    - 한때 최고 11,000여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5-6천명 정도로 추정

     

    2. 언 어

    - 구 소련 시절 러시아어와 우즈벡어가 공용어였으므로, 인구의 82%가 우즈벡어를 사용하고 인텔리 계층을 중심으로 인구의 50%이상이 러시아어를 구사

    - 1991년 독립 이후 우즈벡어만을 공용어로 인정

    - 우즈벡어는 차카타이어로부터 파생된 언어이며, 우즈벡어 명사의 70%는 아랍어 또는 페르시아어에서 차용되었고, 19세기 말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러시아어 외래어가 대폭 증가

    * 구 소련 시절 아라비아 식 알파벳을 철폐하고 1935년부터 키릴문자를 사용하다 독립 후 99년부터 라틴 식 알파벳으로 표기

     

    3. 종 교

    - 공식 국교는 없으나, 국민의 약 88%가 이슬람 교도이며 이중 수니파가 대부분 (약 70%)

    - 온건한 수니파가 다수를 점하고 있어 터키 계의 세속적 신앙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는 가운에 우즈벡 정부는 과격한 시아파 원리주의의 확산 차단을 위해 노력

     

    4. 주요음식

    팔로브(Palov)

    [팔로브(Palov)]

    1) 팔로브 (Palov)
    Palov는 손님들이 오거나 잔치, 생일 등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만드는 우즈벡의 전통음식으로, 우즈벡인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민족이 즐겨먹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의 볶음밥과 비슷하지만 기름을 많이 사용하여 요리한다. Palov는 지역에 따라 재료와 만드는 방법에 차이가 있으며, 그 이름도 100여 가지나 된다.
    Palov에 들어가는 고기 중 제일 좋은 비계부분은 가장 맛있는 부분으로 존경 받는 사람에게 준다. 보통 음식은 여성들이 준비하지만, Palov만은 대부분 남성들이 요리한다.
    논(Non)

    [논(Non)]

    2) 논(Non)
    우즈벡 식탁에 빠지지 않는 주식으로, ‘탄드르’라는 벌집 모양의 큰 진흙가마에서 굽는 빵이다. 보통 원형모양으로 둘레가 두껍고 가운데는 얇고 편평하며, 표면에는 깨나 향신료를 뿌린다. 이 빵은 약간 질기고 쫄깃쫄깃한 것이 특징이다. 도시에는 동네마다 빵을 구워 파는 곳이 있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빵을 사서 먹기도 하지만, 농촌이나 도시의 단독주택에는 집안에 탄드르가 있어서 가정주부들이 거의 매일 빵을 굽는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빵을 지칭하는 단어도 86가지나 되며, 빵을 매우 신성한 것으로 취급하여 빵을 만들 때에도, 보관할 때에도 정성을 다한다. 따라서 빵을 버린다던가 새들의 먹이로 주는 것과 같은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손님으로 초대받았을 때에는 주인이 빵을 찢어서(빵이 질기고 쫄깃쫄깃해서 찢는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나누어줄 때까지 기다리거나, 혹은 빵을 찢는 것에 대해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카봅(Kabob)

    [카봅(Kabob)]

    3) 카봅(Kabob)
    샤슬릭이라고도 불리는 이 음식은 원래 카프카스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꼬치에 양•소•닭고기•채소 등을 끼워 숯불에 구워먹는 음식으로 보통 양파와 함께 취식한다. 작은 고기 덩어리, 갈은 고기, 간, 감자 등 다양한 재료의 kabob이 있다.
    솜사(Somsa)

    [솜사(Somsa)]

    4) 솜사 (Somsa)
    밀가루 반죽을 만두피 빚는 것처럼 얇게 민 후 녹인 버터를 골고루 묻혀 달걀 말이 하듯 돌돌 말아 세모 또는 둥근 모양으로 만든다. 속에는 양파와 고기 다져 넣고, 오븐이나 가마에 구워낸다.
    수말락(Sumalak)

    [수말락(Sumalak)]

    5) 수말락 (Sumalak)
    Sumalak은 주로 나브루즈(Navro’z)기간에 만들어 빵과 함께 먹는다. 3일 동안 밀을 뜨거운 방에서 매일 물을 주며 발아시킨다. 이때 여자들은 매일 몸을 정결히 하고 코란을 읽고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이 타서 맛있는 수말락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3일 뒤 이것을 갈아서 밀가루랑 섞어 기름을 조금 두른 후 냄비(보통 큰 가마솥)에 조금씩 물을 부어가며 약 하루를 계속 눋지 않게 젓는다. 원래 수말락이라는 뜻이 ‘7명의 천사’를 의미한다. 그래서 요리할 때 7개의 작은 돌이나 호두를 넣고, 먹을 때 이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행운을 얻는다고 한다.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달기 때문에 우즈벡 사람들은 밤에 천사가 몰래 와서 설탕을 넣고 갔다고 믿는다.
    초이(Choy)

    [초이(Choy)]

    6) 초이 (Choy)
    목이 마를 때에도, 손님이 와도,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에도, 한여름에도 뜨거운 초이를 마신다.. 초이를 대접할 때에는 차주전자에 찻잎과 물을 따라 우려낸 후, 찻잔에 물을 따르고 다시 차주전자로 옮기는 행위를 세 번 반복한 후 마신다. 또한 찻잔에 초이를 따를 때에는 찻잔의 2/3 정도 따르는데, 이것은 차를 마시는 손님이 더 머무를 것을 청하는 환대의 표시이다. 찻잔에 초이를 가득 채우면 손님이 별로 반갑지 않으니 빨리 마시고 가라는 것을 의미한다.

     

    5. 국경일

    라마단 등 이슬람교 관련 경축일과 함께 여성의 날, 전승기념일 등 러시아CIS권과 유사한 국경일을 기념한다.

    [주요경축일]

    데이터 테이블
    일자 국경일명
    1월 1일 신 년
    3월 8일 여성의 날
    3월 21일 나브루즈 (새해,새봄맞이 축제)
    5월 9일 승전기념일 (2차 대전 대독 승리기념)
    9월 1일 독립기념일 (구 소련 분리 독립)
    10월 1일 스승의 날
    12월 8일 제헌절

     

    - 여성의 날(3.8): 1927년 3월 8일 우즈벡 지역에서 이슬람 여성들이 최초로 히잡벗기 운동을 시작하여 수만 명이 동참했고, 이후 이슬람 여성의 권익 향상의 시발점으로 작용하였다. 우즈베키스탄의 여성의 날은 남성들은 부인•여자친구를 위해 꽃 화장품 향수 등 선물을 준비하며, 여성들에게는 생일 다음으로 중요한 기념일로 여겨진다.

    - 나브루즈 (3월 21일): 이슬람 국가에서는 새해맞이 축제로 기념되고 있지만 조로아스터교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며, 봄의 소생을 알리는 행사이다. 나브루즈 한달 전부터 거리에 축하 플래카드가 걸리고 공휴일은 하루지만 축제는 1주간 계속된다.

    - 승전기념일 (5월9일): 대조국전쟁이라고 불리는 2차 대전 대독전 승리를 기념하는 날로, 전몰자들을 추모하고 참전용사를 위로하는 다양한 행사 개최한다.

    - 독립기념일 (9월1일): 구 소련에서 분리 독립해 우즈벡 공화국이 탄생한 날로, 무스타클릭 광장(Musraqilik Maydoni)에서 대형 축하콘서트 등 성대한 기념식을 개최한다.

    - ‘라마단 아이트’와 ‘쿠르반 아이트’: 이슬람교의 종교관련 경축일로, 한달 간의 라마단 금식일 종료 후 음식을 먹는 첫날이 ‘라마단 아이트’이며 70일 후가 ‘쿠르반 아이트’이다.

     

    6. 주요도시

    1) 타슈켄트 (Toshkent)
    타슈켄트의 모습 타슈켄트의 모습

    [타슈켄트의 모습]

    투르크어로 ‘돌(타슈)의 도시(켄트)’란 뜻의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의 공식수도다. 타슈켄트는‘중앙아시아의 수도’라고 일컬어질 만큼 중앙아시아에서 인구(215만)가 가장 많고 지정학적으로도 중심에 있으며,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지하철이 있는 현대도시다. 타슈켄트의 이런 번영은 중세 이후‘이슬람의 성도’였다는 각별한 지위가 작용했다. 지금 중앙아시아 5개국은 90년대 초 옛 소련에서 독립해 저마다 이슬람 정체성을 되찾는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애초부터 국기에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을 그려 넣은 나라는 우즈베키스탄뿐이다. 그만큼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에 깊이 훈육된 나라이며, 그 중심에 시종 타슈켄트가 있었다.
    타슈켄트는 기원전부터‘차치’란 이름으로 알려진 오아시스 도시다. 자연환경이 유리한데다 교통요지여서 농경, 교역이 발달했다. 일찍부터 여러 종교가 공존했으며, 궁궐과 사원, 요새와 주택이 즐비했다. 이슬람 영향권에 들어간 것은 7세기 초부터다. 705년 중앙아시아의 서쪽 메르브에 입성한 이슬람 정복군은 10년도 채 안 되어 파죽지세로 시르다리야와 아무다리야 사이의 트란스옥시아나 전역을 점령하고 타슈켄트로 진격했다. 그러나 이 지역이 당시 당나라 판도 안에 들어가 있어 더 이상 동진은 못하고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렸다. 이 때 고선지가 이끄는 당 군이 쳐들어오자, 석국(타슈켄트)과 결맹해 당 군을 물리친다. 이것이 유명한 탈라스 전쟁(751년)이다. 석국-이슬람 연합군이 승리하자, 이슬람 문화는 타슈켄트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 11세기 카라한조 시대에 본격적으로 개화한다. 그러다 13세기 몽골 군의 침입으로 된서리를 맞고 도시는 여지없이 파괴된다. 다행히 15세기 티무르 제국 출현을 계기로 ‘이슬람 르네상스’를 맞으면서, 타슈켄트는 성도로 떠오른다. 지금 남은 유적유물 대부분은 티무르시대(1405~1500)와 뒤이은 샤이바니 조 시대(1505~98)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타슈켄트는 상반된 이미지를 지닌 고도다. 8세기 이슬람의 동전 이후 지금껏 종교적 성도로 구실했지만 기원전부터 대상무역과 금은 세공으로 번영해 온 상도이기도 하다. 실크로드 오아시스 사이의 대상무역을 이었던 도시국가로서 타슈켄트의 영화는 쿠처에 버금갔다. 중국에서 타슈켄트의 옛 이름은 ‘석국(石國)’으로 불렸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이슬람 정벌 이전까지 ‘슬슬’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던 에메랄드 등 금속 보석 공예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푸른빛을 내는 에메랄드(벽석)의 유명한 산지도 바로 부근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타슈켄트의 상인들은 몽골과 신장 지역 등에서 산출된 금 등의 귀금속, 보석 등도 앞선 기술로 세공해서 교역을 주도했다. 자연스럽게 중개 도시로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중국 문헌에 나오는 ‘자설국(者舌國)’, ‘자시’란 이름은 돌을 뜻하는 이란어 ‘차치’에서 연원 한 것으로 모두 보석, 금은 세공과 관련이 있다. 이런 이유로 타슈켄트는 중국, 투르크, 위구르, 타직, 소그드, 아랍인들 사이에 끝없는 영토싸움의 무대였다. 석국인들에게는 아랍권과 중국 왕조 사이의 교묘한 등거리 외교가 필수였다. 8세기 저 유명한 탈라스 전쟁의 도화선도 고선지가 이 지역을 침공한 데서 비롯되었다. 석국을 중심으로 한 소그디아나 일대의 소국들이 이슬람 권에 기울어져 당에 복종하지 않은 것이 고선지의 군사행동을 낳은 것이다.
    2) 사마르칸드 (Samarqand)
    사마르칸드의 모습 사마르칸드의 모습

    [사마르칸드의 모습]

    사마르칸드는 실크로드의 중심으로서 고대 호레즘시대부터 마라칸다로 알려졌고, 중국에서는 강국(康國)이라고 불렀다. 기원전 5세기경 자라프샨강 유역에 살던 소그드인들은 오아시스가 있는 아프라시압 언덕에서 도시를 건설했다. 그 후 사마르칸드는 수많은 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기원전 4세기), 아랍인의 침략에 의해 세워진 사라센제국(8세기), 칭기즈칸의 침략(13세기) 등으로 이 도시의 주인공은 바뀌었다.
    14세기에는 티무르 왕조가 몽골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사마르칸드를 다시 부활시켰다. 티무르는 이 도시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원정을 떠나면 닥치는 대로 그 지역의 유명한 예술가와 건축가들을 끌고 와 아름다운 도시로 꾸미도록 지시했다. 특히 그는 푸른색을 좋아해 사마르칸드를 푸른 도시로 만들었다. 이런 이유로 사마르칸드를 '푸른 도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도시 곳곳에 산재한 중세 모스크와 왕족들의 묘들이 저마다 푸른색 돔을 머리에 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푸른색은 청록 빛깔의 터키석 장식이 연출해 내는 신비감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슬람 학자들은 사마르칸드를 '동방세계 이슬람의 진주'로 불렀다.
    사마르칸드에서 가장 유명한 대부분의 유적들은 14, 15세기에 사마르칸드를 중앙아시아의 경제, 문화, 학문의 중심지로 만든 티무르와 그의 손자 울루그벡, 우즈벡 샤이바니드인의 작품이다. 거의 모든 명소가 그 구조가 옛날과 다르게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구시가에 위치하고 있다. 사마르칸드의 자랑거리이자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경외심을 일으키는 것은 수 많은 마졸리카 도자기, 담청색 모자이크, 거대하고 아름답게 분할된 공간을 제공하는 메드레사를 가리는 웅장한 종합작품인 레기스탄(Registan)이다. 옆에 있는 대규모 집회를 할 수 있는 비비하늠 모스크사원(Bibi-Khanym Mosque)은 티무르 제국의 보석 같은 곳이었으며 황폐하더라도 힘이 넘치고 빈틈이 없다. 이 사원은 이슬람계에서 가장 큰 사원의 하나였으며 한계상황까지 건설기술을 추진했기 때문에 그 자체의 웅장함에 희생되어 수세기 동안 서서히 기울어져 1897년 지진으로 마침내 붕괴되고 만다.
    사마르칸드는 현재 사마르칸드 주의 주도(州都)로서 인구 약 40만 명으로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이다. 공업 및 문화의 중심지로서 사마르칸드는 자랴프샨 강의 계곡과 구릉에 걸쳐 위치하며, 타슈켄트에서 자동차로 3시간 가량 걸린다. 우즈벡 과학원 고고학 연구소, 사마르칸드 대학, 기생충 학 연구소, 사마르칸드 시립박물관, 우즈벡 문화•예술사 박물관 등이 있고 교육, 문화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사마르칸드 시내에는 많은 사적이 있으며 최근 칭기즈칸의 군대에 의해 폐허가 된 구시가의 발굴이 이루어져, 아랍 침공(8세기) 이전의 궁전 터와 화려한 벽화 등이 출토되었다.

    ※ “아프라시압 벽화”

    벽화

    [벽화]

    중앙아시아와 한민족의 역사적 교류의 증거물로서 아프라시압 벽화를 손꼽을 수 있다. 1975년에 알리바움은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과학원에서 발굴 보고서 '아프라시압 벽화'을 발표하여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는 아프라시압 벽화를 고증하는 가운데 한민족의 의상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였다.
    "두 사람은 앞에 있는 사신들과 머리장식에서 구별된다. 첫 번째 사람은 머리에 차양이 없는 모자를 쓰고 있다. 또한 진주로 장식된 리번이 머리 둘레를 조이고 있고, 머리 꼭대기에는 두 개의 깃털이 꽂혀있다. 그의 머리는 짧고 검은색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얼굴은 밝은 색을 띠고 있다. 세부적으로 그림을 연구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레몬 색의 옷자락이 긴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그 옷은 허리에 넓고 검은 띠로 주름이 잡혀있다. 밑으로 내려가서, 넓적다리에는 옷이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몸을 감싸면서 좁혀져 있다. 가벼운 비단으로 만들어진 넓은 바지는 부드러운 주름을 타며 복사뼈까지 내려져 있고 끝에는 줄로 묶어져 있다. 단화는 부드럽고 앞 끝이 댕겨져 올라가 있다. 손은 넓은 소매에 감추어져 있으며, 선물은 보이지 않는다. 넓적다리 부분에는 왼쪽 방향으로 곧바로 꽂힌 칼이 있다. 칼집 위로는 하트모양을 가진 두 개의 고리가 있는데, 이는 칼을 고정시키기 위해 허리에 있는 검은 띠와 두 줄로 연결되어 있다. 두 번째 사신도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그의 옆 얼굴은 밝은 갈색을 띠고 있으며, 코는 약간 낮다."
    알리바움은 이 사신들의 새 깃털이 꽂힌 머리 장식을 보고 이들의 국적을 고구려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 당시 한민족이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왕래를 했다는 것은 매우 감격적인 사건이다. 이 당시에 중앙아시아의 소그드인 또한 당과 실크로드를 통한 많은 교류를 하고 있었다. 한국의 고려시대는 국제무역이 매우 발달하여 멀리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를 방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3) 부하라 (Buhoro)
    부하라의 모습 부하라의 모습

    [부하라의 모습]

    부하라는 서역으로 가는 좁은 ‘목구멍’이었던 둔황과 지정학적으로 비슷하다. 아랄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중앙아시아의 정수리’ 호라산 지역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 일찍부터 실크로드 간선인 초 원로와 오아시스 육로의 교차점이 됐다. 동쪽의 중국과 서쪽의 페르시아•유럽 쪽 문물들이 부하라에서 한데 모였다가 각지로 전파된 까닭에 숱한 지역 왕조들의 도읍이 되었으며, 이민족 상인들 사이에는 경제적 패권의 각축장이 되었다. 특히 부하라는 동유럽•중동에서 중국으로 갈 경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에 있어 실크로드가 쇠퇴하는 17세기 이후에도 중계 교역으로 쉼 없이 번영을 누렸다. 오늘날 부하라가 동서 교류의 우량 박물관이 된 것은 20세기 초까지 2000년 이상 유지된 교역 망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5세기까지 부하라는 인도의 불교유적이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유적을 찾았던 순례자들의 중간 기착지였다. 중국사서인 <수서>서역전에는 7세기 초 수나라가 서역에 파견한 사신 위절의 기행기 <서번기>의 내용 일부가 나오는데, 안국으로 불렸던 부하라는 다섯 빛깔 소금인 오색 염이 중요 교역 품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본격적인 교역거점이 된 것은 6세기 투르크족이 진출해 부하라 성과 궁전, 창고, 시장 등을 지은 데서 비롯됐다. 8세기 초 아랍 이슬람 군대가 호라산을 점령한 이래 지배세력은 200~300년 단위로 바뀐다. 거란인들이 주축인 카라키타이(12세기 초), 몽골인들의 차가타이한국(13~14세기), 티무르 제국(14~15세기),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의 뿌리인 우즈벡인의 샤이바니왕조와 부하라 한국시대(16~19세기)까지 교역은 끊이지 않았다. 대항해 시대인 16~17세기에는 유럽인들도 중국 진출을 위한 동방 거점으로 부하라를 점 찍고 무역사절을 보낸다. 제정러시아의 거상 스트로가노프가의 에르마크나 영국 런던의 무역상 젠킨슨이 바로 그런 이들이다. 젠킨슨의 경우 1558년 12월 부하라에 도착해 현지 교역시장을 견문한 기행기를 남겼다. 당시 부하라 시장에서는 인도 벵골의 마포와 모직물, 러시아산 가죽, 페르시아 직물, 중국 비단, 견직물 등이 거래됐고, 페르시아인, 러시아인, 타타르인들을 사고파는 노예시장도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4) 히바 (Xiva)
    히바 (Xiva) 히바 (Xiva)

    [히바 (Xiva)]

    히바는 우즈베키스탄 서 남부에 위치한 투르크메니스탄 국경 도시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카라쿰과 우즈베키스탄의 키질쿰 중간에 위치하여 옛날 실크로드의 중요한 오아시스 역할을 했으나 사나운 도적떼가 수시로 출몰하여 위험한 지역이기도 했다. 16세기부터 17세기 초까지 히바 칸국의 수도역할도 했으나 아스타라칸 속국으로 있다가 1873년 러시아군의 침입으로 완전히 주권을 잃은 후, 1924년 소연방 우즈벡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히바의 유적은 히바성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고 히바성은 동서남북 문을 포함 11개의 출입구를 갖고 있다. 히바성 안에는 50여 개의 유적과 250여 호의 고가(古家)가 있어 성내는 모두가 문화유적이다.

     

     

     

  • eurasiaturk 2016-07-09 조회수:1350

    Uzbekistan 

     

     

    역사

     

    1. 역사적 인물들

    1) 아미르 티무르 (Amir Temur, 1336-1405)
    티무르

    [티무르]

    - 칭기즈칸의 유업을 이어받아 유라시아에 걸쳐 티무르 제국(1369- 1508)을 건설

    - 티무르는 군사적 정복뿐만 아니라 문화창달에도 기여

    - 티무르는 푸른색을 좋아하여 사마르칸드를 푸른색의 도시로 건설

    2) 울루그벡 (Ulugh Beg, 1394-1449)
    울루그벡

    [울루그벡]

    - 티무르의 손자로 40년간 통치한 군주이자 유명한 천문학자

    - 십진법, 기하학, 삼각법이 도입되는 등 과학발달로 사마르칸드는 고도의 학문과 문화 발전

    - 시•역사•신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사마르칸드에 저명한 천문학자들을 모아 천문대를 세우고 천측 표를 개발

    - 그러나 과학발전에 반발하여 종교를 우선시하는 회교승려의 사주로 아들이 보낸 자객에 의해 피살

    3) 알리셰르 나보이 (Alisher Navoiy, 1441-1501)
    알리셰르

    [알리셰르]

    - 우즈벡 문학의 창시자이자 정치가

    - 1472년 호라산 왕국의 장관으로 학교•병원 등을 지어 서민들을 도와주었으며, 문학가•예술인 등을 지원하여 문화창달에 기여

    - 다섯 개의 시편(kamsa)이 최대 걸작

    - 우즈벡 국민들은 알리셰르 나보이를 우즈벡 문화창달은 물론 민족 정체성을 고양한 위대한 인물로 존경하고 있으며 거리•학교•도서관 등 많은 시설물이 ‘알리셰르 나보이’라는 이름을 보유

     

    ※ 티무르제국의 ‘아미르 티무르(Amir Temur)’ (1336-1405)

    티무르 동상 최 전성기의 티무르 제국
    [티무르 동상]                              [최 전성기의 티무르 제국]
    수도 타슈켄트의 신 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한 티무르 광장 한복판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상징처럼 말을 타고 질주하는 티무르 동상이 서있다. 구 소련 당시 이 곳에는 티무르가 아닌 마르크스 동상이 서 있었던 자리였다. 독립 후 카리모프가 우즈베키스탄의 옛 티무르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어, 티무르가 국부 대접을 받고 있다.

    1336년에 출생한 티무르는 1369년 중앙아시아의 유목부족들을 통합하는 데 성공한 뒤, 1405년에 중국을 치러 가다가 사망할 때까지 거의 40년을 유라시아 사방 각지를 원정하고 정복하는 데 몰두했다.

    티무르는 사마르칸드 남쪽으로 80km쯤 떨어진 케쉬(현 샤흐리사브즈) 부근 호쟈이루그 마을의 한 몽골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후일 제국을 세운 뒤 이곳에 궁전을 지었는데, 궁전 기둥에“누가 내 힘을 의심하면 내가 지은 이 궁전을 보여드리라”는 티무르의 호기 어린 한 마디가 아랍어로 새겨져 있다. 그만큼 화려함에는 자신만만했다. 변신과 임기응변의 능수인 티무르는 청장년 시절 여러 세력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기반을 다져갔다. 상전에 대한 모반을 다반사로 하고, 결맹한 의형제를 모살하면서까지 제국의 대권을 거머쥐었다. 왕위에 등극(1369년)했지만, 칭기즈칸의 직계자손은 아니어서 감히‘칸’으로 일컫지는 못했다. 대신 칭기즈칸 후예의 딸을 취했다는 이유로 ‘구르간(사위)의 아미르(지배자)’라고 자칭했다.

    티무르는 자신의 출신 부족들로 강력한 친위대를 꾸려 대외정복에 나섰다. 약 30년간의 정복전쟁 결과 서쪽으로 소아시아와 지중해 동안의 시리아, 동쪽과 남쪽으로는 차카타이 칸국과 북인도, 북쪽으로는 카프카즈와 킵차크 칸국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는 최후 일전인 오스만 투르크와의 앙카라 전투(1402년)에서 대승을 거두고 수도 사마르칸드에 개선하였다. 전의에 불탄 노장은 70세 노구를 이끌고 다시 동쪽의 명나라 원정을 시작했으나, 시르다리야 강가에 위치한 오트라르(Otyrar)에서 급사하게 되었다.

    그의 기나긴 원정과정은 살육과 파괴로 얼룩졌다. 페르시아의 타크리트 성채를 공격할 때는 적병을 모조리 살상한 뒤 자른 머리로 피라미드를 쌓았다. 호라산을 점령하고는 연와와 석회 속에 사람을 생매장해 성벽을 쌓기도 하였다. 다마스쿠스와 바그다드 등 그가 공략한 도시는 가차없이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러시아를 지배하던 몽골 계 킵착 칸국의 군주 톡타므슈(Toqtamish)는 원래 티무르의 지원으로 권좌에 올랐지만 칸이 된 뒤에 티무르와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그러자 티무르는 1391년 볼가 강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그를 격파하고 킵착 칸국의 수도였던 사라이(Saray)를 폐허로 만들었다. 러시아의 많은 역사학자들은 러시아가 ‘타타르의 멍에’를 벗어 던진 것이 러시아인들의 애국적 투쟁, 즉 ‘키에프인들의 피’ 때문이었다고 해석하지만, 사실은 티무르의 원정으로 인해 킵착 칸국이 결정적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티무르는 젊었을 때 한쪽 다리에 화살을 맞아 근육이 수축되어 다리를 절었다. 구르 아미르 왕조(아미르의 묘)에 있던 티무르의 검은 돌로 된 티무르의 관 속에는 [내가 이 무덤에서 나올 때, 가장 커다란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한 문장이 새겨져 있어 아무도 관을 열지 않았는데, 1941년 6월 9일 구 소련 학자들이 사마르칸드에 있는 티무르의 무덤 구르 아미르를 열어서 그의 시신을 조사했고, 특히 게라시모프(M. M. Gerasimov) 라는 소련 학자는 티무르의 해골을 근거로 그의 얼굴을 복원했으며 생전에 절름발이였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그러나 그의 무덤이 개봉된 사흘 뒤 바르바로사 작전(독일에 의한 소련 침공)이 실행되었고, 이것이 바로 소련에서 본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단이었다. 후에 이에 두려움을 느낀 소련에 의해 뚜껑이 납으로 용접되어, 이후 두 번 다시 열리지 않고 있다.

    티무르의 풍운은 살육과 파괴, 기행만이 전부는 아니다. 역사 앞에 남긴 긍정적 일면도 묵과할 수는 없다. 특히 실크로드 요로에서 문명교류에 기여한 면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는 제국 건설 과정에서 이질적 문명의 수용에 인색하지 않았다. 정복지의 우수한 건축사나 기술자들을 사마르칸드에 불러들였다. 영내 각지에서 건축자재를 반입해 사마르칸드를 중세 세계의 가장 화려한 도시로 건설했다. 시리아 등지에서 돔(원형지붕) 건축양식을 도입하고, 자신이 즐기는 청색이 주조를 이루도록 도시를 미화했다. 그리하여 사마르칸드는 ‘푸른 도시’, ‘이슬람 세계의 보석’, ‘동방의 진주’란 찬사를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대상로를 정비하고 대상의 숙박소, 보호소를 도처에 설치했으며, 교역도 적극 장려했다. 멀리 지중해 동안에서 이란을 거쳐 사마르칸드와 타슈켄트, 탈라스를 지나 몽골에 이르는 동서 대상로가 원활히 소통되었다. 몽골제국 멸망에 따라 잠깐 중단되었던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육로는 그 기능을 회복하게 된다.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티무르 제국시대 동서 문명간 ‘활자의 길’이 트이면서 우리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활자 제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개연성까지도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과의 관계

     

    1. 한•우즈베키스탄 외교 관계

    카리모프와 노무현 전대통령

    [카리모프와 노무현 전대통령]

     

    □ 외교관계 수립: 1992. 1. 29

         • 주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개설: 1993. 12월

         • 주 한국 대사관 개설: 1997. 1월

         * 겸임공관: 타지키스탄

    □ 수교(92.1) 이후 정상방문(우리 측 2회, 우즈벡 측 5회) 및 정부간 협력채널 활성화 등을 통해 분야 협력관계를 발전

     

    [정상 방문 시 주요 합의사항]

    데이터 테이블
    盧대통령 방문(05.5) 카리모프 대통령 방한(06.3)
    실질협력 증진 전략적 동반자관계 공동선언
    근로자 사회보장 협정 등 체결 유전 가스전 공동탐사, 개발
    아랄해 유전•광물자원 개발 교육 정보화에 3,000만불 지원

     

    2. 한•우즈베키스탄 경제 관계

    1) 교역 동향

    [우리의 對 우즈베키스탄 교역 액]

    (단위: 백만 불)

    데이터 테이블
    연 도 2002 2003 2004 2005 2006
    285 326 436 522 689
    수 출 188 247 359 493 649
    수 입 97 79 77 29 40

    출처 : 한국무역협회 KOTIS

    •  양국간 교역은 1992년 수교 이후 꾸준히 증가해 오다가 98년 외환위기를 맞게 되면서 감소세에 있다가 다시 02년부터 활성화되어 최근 그 폭이 더 커지고 있는 추세
    •  교역량은 증가 추세이기는 하나 해마다 그 변동폭이 크고 교역량의 대부분은 수출이 차지하고 있음.

    [수출입현황(2006)]

    (단위: 백만 불, %)

    데이터 테이블
    순 위 ‘06년 對우즈벡 수출 ‘06년 對우즈벡 수입
    품목명 금액 증가율 품목명 금액 증가율
      합계 649 31.7 합계 40 39.1
    1 자동차부품 406 42.1 우라늄 17 -
    2 원동기 및 펌프 89 18.4 기타농산물 12 △ 29.0
    3 자동차 32 16.8 천연섬유사 8 6.0
    4 합성수지 20 9.7 기호식품 1 21.7
    5 편직물 15 79.4 면직물 1 △ 52.7

    출처 : 무역협회 KOTIS(MTI 3단위)

    •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원동기 및 펌프 등 기계류이고, 주요 수입품은 우라늄, 기타농산물 등으로 산업간 교역이 주를 이룸
    2) 투자현황
    •  우리나라는 우즈대우자동차 지분 매각 및 갑을방적 청산 등 불리한 여건하에서도 투자 상위 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음.

    [투자현황]

    (단위: 건, 백만 불)

    데이터 테이블
    연도 01년 02년 03년 04년 05년 06년 누계
    한국→
    우즈벡
    3 5 6 3 11 16 93
    74.9 0.8 5.7 0.9 7.4 39.1 645
    우즈벡→
    한국
    2 2 7 22 39 39 112
    0.08 0.08 0.3 1.2 2.1 2.2 6.01

    출처: 수출입은행, 산업자원부

    •  현재 우즈벡에 진출한 기업은 대우, 동서기연, 세명금속공업 등 약 40여 개 이고, 주된 투자부문은 제조업임.
    •  우즈벡의 주요 대한 투자기업은 알리셰르나보이코리아마케팅, 우즈벡차이하나 등이 있고 주로 유통부문에 진출해 있음.

     

    3. 동포현황

    •  고려인: 약 20만 명 (CIS내 최다)
    •  재외국민: 1천명 (대부분 소규모 자영업자나 선교사)

    ※ 우즈베키스탄의 한류 열풍

    • 우리 드라마 • 음악 등이 인기를 끌면서 한류열풍 확산
      •  드라마「겨울연가」가 시청률 60%를 기록하면서 최고 기록을 경신한 바 있고, 「별은 내 가슴에」,「이브의 모든 것」도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비디오로도 대여 중
      •  삼성, LG 등이 홍보전략의 하나로 방송국 광고비 대신 드라마 방영권을 우즈베키스탄에 제공, 한류 열풍 확산에 일조
      •  김덕수 사물놀이 등이 공연, 격찬을 받은 바 있고 우즈벡 국영 TV는 한국의 발전상 및 문화관광지 등에 대해 수 차례 방영, 높은 시청률을 기록
    • 자동차 • 가전제품 등 우리 상품에 대한 인지도 급상승
      •  한국제품의 우즈벡 가전 시장 점유율이 80%를 상회하고, 대우차는 국민차로 인식되고 있으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대우차를 타고 삼성 • LG의 가전제품을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평가
    • 청소년층의 ‘코리언 드림’ 열기 지속
      •  많은 우즈벡 청년들이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오는 것을 기대, 2004년도 경쟁률이 100대 1을 상회
      •  우즈베키스탄 내 타슈켄트 대학 등 주요 대학들이 한국어 학과를 개설, 높은 경쟁률을 유지

     

    4. 최근 동향 및 관련 신문기사

    한-중앙아 협력 포럼 참석자

    [한-중앙아 협력 포럼 참석자]

    ▷ 2007.11.15 서울 한남동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에서 ‘한• 중앙아 협력 포럼’이 개최됨
    한-중앙아 협력 포럼 참석자를 위한 만찬에서 송민순(가운데) 외교통상부장관이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한국, 중앙亞 에서 ‘에너지 블루오션’ 찾아라 (매일경제 칼럼, 07.11.19)

    ◆한ㆍ중앙아시아 협력포럼 출범/매일경제 초청 6개국 외교차관 좌담회◆

    최근 세계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은 풍부한 석유 가스 등의 천연자원 때문에 새롭게 조망을 받고 있다. 선진국들의 러브콜도 쇄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4일부터 열린 한ㆍ중앙아시아 협력포럼은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앙아시아란 새로운 블루오션 시장에 한국이 여느 국가보다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 열린 이 포럼은 한ㆍ중앙아시아 간의 새로운 미래 비전을 그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에 매일경제는 지난 16일 롯데호텔에서 조중표 외교부 1차관 등 포럼 참가자들을 초청해 이번 포럼의 의미와 성과를 진단하고 한ㆍ중앙아시아 간의 협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남은 숙제를 짚어봤다.

    • 이번 첫 포럼에서 양측은 어떤 분야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나.
      • 조중표 차관=양측이 교류 협력 확대를 통해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최근 경제 개발을 국정의 우선순위로 삼아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데 한국의 개발 경험을 필요로 하고 있고 이 부분을 앞으로 다양한 경로로 중앙아시아 지역에 전수해줄 생각이다.
      • 예르멕바예프 카자흐스탄 차관=물론 경제협력 방안이 주를 이뤘다. 카자흐스탄은 한국이 전 세계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IT BT NT 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살리바예프 우즈베키스탄 차관=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동차와 에너지 개발 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원하고 있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잘 발달된 섬유 분야에서 양국이 서로 합작회사를 세울 수도 있다. 현재 한국 기업과 4개의 석유가스전 개발 계약 체결을 추진 중이다.
      • 이브라이모프 키르기스스탄 차관=키르기스스탄 정부는 1998년 독립국가연합(CIS) 국가 중 최초로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등 적극적인 시장경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적극적인 외자유치 정책을 펴고 있다. 도로 건설 등 인프라스트럭처 구축과 송ㆍ배전 시스템 개량 사업에 한국 기업의 진출이 가능할 것 같다.
      • 하지예프 투르크메니스탄 차관=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석유가스 분야 발전 개념-2030`이란 정책을 추진 중인데 이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석유ㆍ가스 생산 분야에 대한 외국의 투자와 신기술이 필요하다. 이 점을 포럼에서 강조했다.
    • 왜 하필 이 시점에서 한국과 중앙아시아가 협력 폭을 넓히려 하나.
      • 조 차관=포화 상태에 이른 다른 지역들보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많이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최근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 성장을 국정의 우선순위로 삼아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데 한국의 개발 경험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번 포럼에서도 이 부분이 집중 논의됐다. 한국의 뛰어난 IT 사업과 중앙아시아의 풍부한 자원의 교환 가치는 매우 매력적이다.
      • 살리바예프 차관=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다. 한국 기업의 대우즈베키스탄 직접투자액도 약 10억 달러에 이른다. 또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많은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이런 점 등만 고려하더라도 양측이 새로운 협력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되지 않겠나.
    • 최근 중앙아시아 지역이 새로운 신흥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풍부한 자원이 한몫하고 있는 것 같다. 구체적인 현황을 이야기해 달라.
      • 살리바예프 차관=우즈베키스탄은 원유만 해도 확인 매장량이 약 6억 배럴에 달하며, 금은 추정 매장량만 5000t(세계 5위 수준)이다.
      • 예르멕바예프 차관=카자흐스탄은 원유 확인 매장량만 390억 배럴에 달하고, 천연가스는 3조㎥다. 우라늄과 크롬의 보유량은 세계 2위다.
      • 율다세프 타지키스탄 차관=타지키스탄에는 알루미늄이 아주 풍부하다. 연간 13만t의 알루미늄을 생산해 한국 등에 2억 달러 정도를 수출한다. 세계 8위의 수자원 보유국이다. 금 은 석탄 등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광산만 400여 개다.
    • 자원만을 놓고 본다면 굳이 양측이 서로를 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세계에 다른 자원 부국도 많다.
      • 조 차관=중앙아시아 지역은 매년 7%의 경제 성장, 오일달러 유입과 높은 인구 증가율 등을 바탕으로 세계의 새로운 신흥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또 우리와 상호보완적 경제구조를 갖고 있어 협력 분야가 다양하다. 그리고 아직 선진국들의 진출도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 하지예프 차관=세계 각 기업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는 다른 자원 부국과 달리 투르크메니스탄은 카스피해 자원 부국 중 유일하게 세계 유수 기업의 진출이 없다. 그만큼 한국 기업들이 활동할 공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 중앙아시아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이 경제협력의 발목을 잡을 염려는 없나.
      • 조 차관=중앙아시아 지도자들은 비교적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난 8월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서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4개국은 테러 등에 대한 예방조치를 강화하기로 하는 등 정치 안정화에 주력하고 있다.
      • 예르멕바예프 차관=안정 속에 점진적 민주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과 실질적인 경제협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적 불안정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 문제를 물어 보지 않을 수 없다.
      • 조 차관=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동포들은 1937년 옛 소련 당국에 의해 강제 이주한 한인들이다. 현재 정부는 이들과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동포들의 해당국 내에서 정치ㆍ사회적 권익 증진과 지역 내 협력기반을 마련하는 데 애쓰고 있다.
      • 예르멕바예프 차관=카자흐스탄은 다민족 국가로서 고려인은 우리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원이다. 카자흐스탄은 고려인에게 자신의 문화와 고유어, 민족전통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고려인은 카자흐스탄 정부와 의회, 그리고 법원 등에 진출하는 등 각계에서 중요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중앙아시아에서 보는 한국 이미지는 어떠한가.
      • 살리바예프 차관=신뢰할 수 있는 정치ㆍ경제적 파트너라고 본다. 특히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의 독립을 최초로 인정한 국가 중 하나로 우즈베키스탄 국민에게 아주 깊이 각인돼 있다.
      • 예르멕바예프 차관=매우 긍정적이다. 카자흐스탄에서도 한국 상품에 대한 인기는 높다. 최근 한국 건설 사가 지은 아파트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도 인기를 끌고 있다.
    • 중앙아시아 국가 간 결속력과 협력 상태는 어떠한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는 같이 움직일 필요성도 점점 커지는 것 같다.
      • 살리바예프 차관=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해 지역경제 통합에 힘쓰고 있다. 이 기구를 통해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새로운 물류노선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 예르멕바예프 차관=각국 간 양자 관계를 비롯해 EURASEC, CIS 등 다자협력 등에서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eurasiaturk 2016-07-09 조회수:868
    Uzbekistan 

     

     

    정치/경제

     

     
    정치

     

    1. 정치약사

    [우즈베키스탄 정치약사]

    데이터 테이블
    1924 우즈벡 사회주의 공화국 성립
    1929 타직 자치공화국 분리
    1936 카라칼팍 자치공화국 통합
    1990. 3. 24 대통령제 도입 및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선출
    1990. 6 주권 선포
    1991. 8. 31 구 소연방으로부터 독립 선언 (독립 기념일 9.1)
    1991.12.29 최초의 선거를 통해 ‘카리모프’ 대통령 재선
    1992. 3. 2 UN 가입
    1992.12.8 최고회의, 민주공화국 헌법 채택
    1994.12.24 인민 민주당이 총선에서 207석(82.8%) 확보
    1995. 3. 26 국민투표 99.6% 찬성으로 대통령 임기를 2000년까지 연장
    1999.12.5 총선 실시
    2000. 1. 9 ‘카리모프’대통령이 91.9%의 압도적 지지로 재집권
    2000. 2.12 ‘술타노프’ 총리 하의 신 내각 구성
    2002. 1.27 대통령 임기 연장(5->7년) 및 국회 양원제 도입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 (90%이상 지지)
    2004.12 총선 실시
    2005. 1 상·하원 구성 (상원100석, 하원120석)
    2007.12 ‘카리모프’ 대통령 3선

     

    2. 구조: 대통령 중심의 권력독점구조

    • 카리모프 대통령, 구 소련 붕괴 후 86% 득표율로 1991년 12월 대통령 당선 (5년 임기)

    • 1992년 12월 8일, 헌법 제정

    • 1995년 국민투표에 의해 2000년까지 임기 연장, 2000년 1월 재선

    • 2002년 국민투표에 의해 5년 임기를 7년으로 연장

    • 2007년 12월 삼선에 성공

     
    1) 행정부

    - 총리(현 미르지야예프), 부총리 10명 (제1부총리 포함), 26개 부처장관, 24개 국가위원 의장, 8개 기타 국가기관 대표, 카라칼팍 자치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으로 구성

    - 대통령의 지명과 의회의 승인을 거침

    - 총리와 내각은 대통령 보조, 중요한 결정은 대통령 실에서 이루어짐

     
    2) 의회 : 올리 마즐리스 (Oliy Majlis)

    - 국가의 최고의사결정기구, 친 정부성향의 의원으로 구성

    - 5년 마다 선거 실시

    •  2004년 12월에 실시된 의원선거에서 의회는 단원제에서 양원제로 분리,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120명의 하원과 100명의 상원으로 구성
    •  상원은 12개 지역구, 카라칼팍 자치공화국, 타슈켄트 시에서 84명 선출하고 카리모프 대통령이 나머지 16명을 임명
    •  2004년 하원선거에서 친 정부 성향의 자유민주당이 34%의 득표율을 차지하여 다수의 의석을 차지
     
    3) 사법부

    - 헌법재판소,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으로 구성

    - 헌법재판소, 대법원 및 고등법원의 판사들은 대통령 추천 후 의회에서 임명되나 지방법원 판사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

     
    4) 검찰

    - 독립적인 조직, 법 집행의 감독에 주력

    - 검찰청장은 대통령이 지명, 의회의 비준을 받으며 기타 지방법원 검사는 검찰이 임명

    - 임기는 5년, 정당 및 정치단체에 가입할 수 없음

     
    5) 국가안보국 (SNB)

    - 정부조직 중 가장 막강한 권력을 지니며, KGB를 승계한 국가안보기관으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되어있음

    - 현재는 이슬람지도자들의 세력 확장을 막고 외교관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음

     

    ※ 우즈베키스탄의 국가원수 - 이슬람 압두가니예비치 카리모프 (Islam Abduganievich Karimov)

    • 1938년 사마르칸드 시에서 출생

    • 중앙아시아 공과대학에서 기술공학 전공, 타슈켄트 국민 경제 대학에서 경제학 전공, 경제학 석사학위 취득

    • 1960년에 '타쉬셀 마슈' 공장에서 기술자로, 1961-66년에 '타슈켄트 비행기 조립공단'에서 주임 설계 기술자로 근무, 1966-83년 사이에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국가계획위원회 과학기술도입 부장으로부터 제1부위원장까지 승진, 우즈베키스탄 재무부장관(1983-86년), 부총리(1986년) 및 국가계획위원회 의장(1986년) 등에 재임

    • 1986년 12월부터 1989년 6월까지 카쉬카다르야주 제1서기장을 역임하였으며, 1986년 6월 우즈벡 공산당 제1서기장을 역임, 독립 이후 현재까지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 중

     

    1. 카리모프 독제체제 유지

     

    - 구 소련 붕괴 이전 권력을 장악한 카리모프(I. Karimov)는 정치 및 경제자유화를 강력히 거부하며, 야당 등 반대파 존립근거 박탈, 언론, 방송 장악, 외국 NGO단체의 추방 등을 통해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독재체제를 구축함

    - 특히 1995년 대통령 선거를 취소한 국민투표, 2000년 대선, 2002년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는 국민투표, 2004년 12월 양원제를 도입하는 국민투표 등을 비롯하여 1994년, 1999년, 2004년 총선 등 각종 선거는 국제사회로부터 심각한 부정선거라는 비난에 직면해 왔음.

    - 2005년 5월에 동부지역의 안디잔에서 지역유지에 대한 체포로 촉발된 평화적 시위가 교도소 점거 및 반정부 인사 석방 등 반정부시위로 확대되자, 2003년부터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에서 연이어 발생한 시민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된 데 긴장하고 있던 카리모프 대통령이 직접 보안 군을 지휘하며 강경 무력 진압에 나서 유혈사태로 확대 됨

    - 유혈사태는 정부의 강경 무력진압 및 철저한 언론통제로 전국적인 시위로 확대 되지는 못했으며, 카리모프 정권의 강력한 통제와 결집력을 갖춘 야당의 부재로 시민혁명 발생 가능성은 낮은 상태이나 EU 등 서방측과는 인권문제로 인한 갈등의 골이 깊어짐

     

    2. 카리모프 체제의 취약성 상존

     

    - 카리모프 정권의 장기집권으로 인한 실정 및 경제침체로 인한 생활고가 안디잔 사태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비록 카리모프 정권의 강력한 언론통제와 반정부 세력의 결집력 부족으로 전국적인 소요 가능성이 높지 않으나, 이슬람 과격세력이 일반국민들로부터 지지기반을 넓혀갈 경우에는 사회불안이 가중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음

    - 현재 카리모프가 모든 권한을 강력하게 장악하고 있으나, 집권세력 내부에는 사마르칸드 파와 타슈켄트 파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세력다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되는 등 카리모프 체제는 안팎으로 취약성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임

    - 서방과는 달리 카리모프 체제의 인권상황을 문제 삼지 않고 있는 러시아, 중국도 극단적인 상황에서 카리모프 정권의 보호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음

     

    ※ 안디잔 사태

    안디잔 사태 모습 안디잔 사태 모습

    안디잔 사태 모습

    2005년 5월 12일부터 우즈베키스탄 안디잔과 카라수 지역에서 대중 시위가 발생했다. 직접적 계기는 이렇다. 안디잔에서 영농교육을 실시하고 소규모 작업장을 건설해 자립기반을 만들어주는 등 빈민구제활동을 벌이던 이슬람 기업가 23명이 당국에 체포됐다. 혐의는 ‘아크라미아’란 이슬람 급진단체를 조직해 헌법을 파괴하려 했다는 명목이었다. 그러자, 지역 주민들 수천 명이 법원 앞에서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평화시위를 벌인 후, 이틀 뒤인 12일 밤, 시위대들 중 무장한 일부가 교도소를 급습해 23명을 포함한 수감된 죄수 2천 여명을 모두 풀어주었다. 그러자 그 다음 날인 13일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카리모프는 병사들에게 부상자까지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려, 평화적인 거리시위에 참여한 평범한 시민들을 향해 군인들이 무차별 발포를 하였다. 이 사건으로 약 1천 명의 주민들과 비무장 시위대가 학살 되었고, 다음날 대중 투쟁은 이웃한 페르가나 계곡의 카라수로 확대되었다.

     

    ※ 안디잔 유혈사태, 그 이후

    이 사건이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 이전까지의 우즈베키스탄은 ‘반 러•친미정책’을 고수하며 친 서방 노선을 견지해오고 있었지만 (예로 미국에게 공군기지 제공과 미군의 주둔) 유혈사태 발생 후, 특히 대규모 인명이 살해되자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우즈베키스탄 내 인권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됨에 따라 우즈벡 정부는 국제 사회 내에서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 때 우즈베키스탄을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고 역경을 헤쳐나갈 길을 열어 준 나라가 바로 중국이었다. 물론 중국에게는 에너지 자원과, 중앙아시아에서 세력 확대라는 이중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었다. 그 다음,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카리모프의 유혈 사태 진압을 두고 이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세력에 대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면서, 우즈베키스탄이 그 이전과는 달리 반 러에서 친 러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에서의 반 러 세력 연합인 GUUAM에서도 탈퇴하고, 러시아나 중국 주도의 국제 기구 즉, 상하이 협력기구, 유라시아 경제공동체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자국에서 미군의 철수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결국 미군은 우즈베키스탄을 떠나게 되었고, 러시아는 경제 개혁 전문가 100여명을 우즈베키스탄에 파견, 우즈베키스탄의 개방•개혁 정책을 측면에서 지원하게 되었으며, 중국도 우즈베키스탄의 에너지 자원 개발 영역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외 교

     

    1. 대외정책 기조

    - 구 소연방 분리 독립 후 러시아•CIS국가들과 경제분야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외교, 군사부문에서는 독자노선을 견지

    - 독립 초기에는 친 서방, 탈 러 정책 기-에 러•미•중 등 3국과는 국익에 따라 선별적 협력 등 실리외교 추구

    - 그러나 안디잔 사태(05.5) 이후 카리모프 정권에 대한 미서방권의 압력이 지속 가중되면서 최근 반미•서방 노선으로 급선회하고 친 러 노선을 가속화

    : 05.11월 우즈벡 주둔 미군기지 철수 및 러-‘우’간 군사동맹조약 체결

     

    2. 지역별 외교정책

     
    1) 러시아와의 관계

    - 러•우즈벡 양국은 91년 분리 독립 후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러시아와 우즈벡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려는 카리모프 정권의 대립으로 인해 90년대에 소원한 관계 지속
    *99년 ‘탈 러, 친 서방’ 정책을 지향하는 GUUAM 그룹 가입

    - 99.2 CIS 집단안보조약 탈퇴, 99.4 러시아군의 타직 주둔 등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영향력 확대 비판

    - 양국관계는 푸틴 대통령이 00.5 첫 해외 방문국가로 우즈벡을 선택하는 등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임으로써 점진적으로 개선

    - 03.11 그루지야 혁명 이후 점차 가까워지면서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04.5) 및 안디잔 사태(05.5)를 계기로 양국관계가 더욱 긴밀
    *러시아는 안디잔 사태 이후 우즈벡 정부의 대응조치를 일관되게 지지하고 EU의 對우즈벡 제재 조치를 강력히 비난

    - 05.9 양국 역사상 최초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05.11 러시아군의 우즈벡 주둔 권한을 부여하는 상호동맹조약 체결
    *06.1 우즈벡은 친 러 성향의 EurAsEC(유라시아경제공동체) 6번째 회원국으로 가입 및 06년 반 러 성향의 GUUAM 그룹 탈퇴 (99년 가
    입)

     
    2) 미국과의 관계

    - 제 1차 미•우즈벡 공동 위를 통해(98.2) 경제협력 확대 기틀을 마련했으며, 9.11사태를 계기로 하나바드 공항을 對테러 연합군에 임대

    - 02.3 카리모프 대통령은 자국의 對테러전 지원성과를 토대로 미국을 방문, 미국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

    - 02.12 러시아군의 키르기스 주둔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 등 반 러 입장을 견지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긴밀화 모색

    - 미국의 對이라크 무력 제재에 대한 지지 표명(03.3) 등 미국의 대외정책에 적극 협력

    - 한편, 우즈벡 정부는 미국의 경제원조 감소 등에 불만을 표출하고 미국은 민주화와 경제개혁을 요구하면서, 양국관계가 점차 악화

    - 특히 미국은 안디잔 사태 시 우즈벡 정부의 조치를 강력 비난하면서 우즈벡 지도자들의 미국 내 자산 동결 및 미국 입국사증 발급금지, 對우즈벡 무기수출 금지 등 법안을 제정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악화, 05.11월 미군을 철수시킴

     
    3) 중국과의 관계

    - 중•우즈벡 양국은 상하이 협력기구(SCO)를 통해 지속적인 협력 관계유지

    - 04.6 후진타오 총리는 SCO 회원국과의 협력관계 증진을 위해 투자하는 10억불 중 상당액을 우즈벡에 할당할 계획임을 밝히는 등 경제 에너지 협력 중심의 양국간 관계 강화 추진

    - 한편, 우즈벡 정부는 외형적으로 정치•군사•경제적 측면에서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가면서 내부적으로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경제대국 중국과의 급속한 경협 강화로 경제 예속화 가능성을 우려하여 한•러•일 CIS국가와의 경협을 적극 모색하는 등 對중국 견제입장 견지

     
    4)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 인접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는 정치•경제적 자립기반 강화 및 이슬람 극단주의 확산•마약밀매 방지 등을 위해 상호긴밀 협조

    - 독립 직 후 탈 러 외교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최근 민주화와 인권문제를 둘러싼 서방과의 갈등으로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과 함께 친 러 성향의 외교노선 추구

    - 주변국과의 국경•민족 갈등문제 해결에 의한 정세안정 도모

         ∙키르기스스탄(00년)•카자흐스탄(02년)과 국경병력 감축에 합의하는 등 역내 긴장완화 노력 지속

         ∙카자흐스탄과는 카리모프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방문(01.11) 및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방문(06.3)을 계기로 양국간 장기과제였던 국경선 확정 문제를 대부분 해결

    - 반면,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 주도권 경쟁, 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과 민족 갈등 문제가 내재해 있고, 특히 투르크메니스탄과는 가스전 매장지역 국경선 문제, 아무다리야 수자원 이용 및 국경밀수 문제 등으로 갈등요인 잠재

     

     
    경 제

    -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구 소련 붕괴 이후 독립한 인구 2,700만 명의 중앙아시아 최대 인구 보유국으로 면화를 비롯하여 금, 아연, 우라늄 등 각종 부존자원이 풍부하고 에너지를 자급자족하고 있음. 좀더 적극적인 경제의 대외개방 및 개혁에 나설 경우 성장 잠재력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되는 국가임.

    - 그러나 경제부문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개혁의지 부족 등으로 인해 성장 잠재력을 살리지 못하고 있으며, 장기적인 경제침체와 독재체제 유지로 열악한 국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지 못하면서 반정부세력 확산 등 사회적 불안요인이 상존하고 있음.

    - 구 소연방 독립 이후, 우즈벡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추구해 왔으며, 러시아의 영향력 축소를 위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및 대 테러전쟁 수행을 지원하는 등 친 서방정책으로 선회하기도 하였음.

    - 그러나 현 정권의 인권탄압 등 비민주적 통치행위에 대해 미국 등 서방측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러시아 및 중국과 정치, 경제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음.

     

    1. 경제구조

    1) 1차 산업 의존적인 취약한 산업구조 유지
    우즈베키스탄 GDP구조

    [우즈베키스탄 GDP구조]
    출처 : 한국수출입은행

     

    - 2005년 기준으로 1차 산업이 GDP와 고용의 약 1/3을 차지한 것으로 추계될 만큼 1차 산업에 의존적. 또한, 1차 산업은 정부의 각종 지원에 의존하여 효율성과 경쟁력이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음.

    - 특히 1차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면화산업은 최대 수출 산업으로 국제면화 시세 변동에 따른 경제의 부침이 심한 취약성을 안고 있음. * 면화의 수출비중(2003): 19.8%

    - 2차 산업은 GDP의 20~25%, 고용의 13%(2003, 세계은행)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나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개혁성과가 거의 없어 계획경제 방식의 생산체제 답습과 수입대체산업화(ISI: 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정책의 보호를 받으면서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함.
    * 2차 산업의 분야별 비중(2004): 에너지 24%, 면화가공 및 섬유 19%, 금속 15%

     
    2) 천연자원 개발 잠재력 양호

    - 에너지 자원(특히 천연가스)은 자급자족하며 일부는 인근 CIS 지역으로 수출하고 있음.

    - 금은 매장량 세계 6위, 생산량 세계 10위권이며 수출액의 약 10∼20%를 차지하여 면화에 이은 2번째 주요 수출품임. 그밖에 우라늄, 아연 등도 풍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

    - 특히 국토의 상당부분이 미 탐사지역으로 남아있어 천연자원 개발 여지가 상당한 것으로 평가됨

     

    2. 경제정책

    1) 개혁거부, 수입대체산업화 고수

    - 우즈베키스탄은 경제자유화보다는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정책을 고수하면서, 경제개혁 성과가 극히 부진하였음. 특히 경제정책의 핵심인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은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크게 저하시키는 요인이 됨

    - 2003년 10월까지 복수환율제를 유지하면서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수입으로 수입 대체산업에 대한 외채 및 자본재 지원이 이루어졌으며, 각종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통해 수입을 억제하고 있음.

    - 그러나 ISI정책의 결과는 정부의 경제에 대한 과도한 개입, 부진한 개혁성과, 열악한 투자환경으로 인한 외국인투자 부진 등의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경제효율성을 저해하고, 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 한편, 국민 다수를 빈곤상태에 빠뜨렸음.

     
    2) 외국인투자환경 열악

    - 후진적인 금융시스템, 낙후된 제조업, 관료주의 팽배, 잦은 정책 및 제도 변경에 따라 사업환경 및 투자환경이 열악해지고 이는 외국자본의 유입 부진으로 이어져 경제발전도 정체되고 있음.

     

    3. 국내경제 동향

    주요 국내경제지표

    [주요 국내경제지표]
    출처 : EIU, Country Report, 각호

    1) 국제 자원시세 호조에 힘입어 높은 성장세 실현

    - 2대 수출품목인 금과 면화의 국제시세 호조에 힘입어 2004∼05년에는 7%대의 성장률을 기록

    - IMF 등 국제금융기관은 우즈베키스탄의 공식적인 경제성장 통계가 집계방법상의 하자로 (b지우기) 상당히 과대 계상된 것으로 지적해 왔으나, 최근에는 경제가 호조를 보이면서 성장통계가 실제상황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됨.

    - 3.2 최근 물가불안 다시 확대

    •  2005년 이후 해외유동성 증가에 따른 통화량 증가, 공공요금 및 공공부문 임금인상 등의 요인이 맞물려 물가상승률이 점점 높아지면서 2006년에는 7%를 넘어섬.

     

    4. 대외거래 동향

    (단위:백만 달러,%)

    데이터 테이블
    구분 2002 2003 2004 2005 2006
    경상수지 97 863 1,212 1,448 1,905
    경상수지/GDP 1.0 8.5 10.1 11.6 14.5
    상품수지 324 835 1,080 1,100 1,890
    수출 2,510 3,240 4,290 4,740 5,660
    수입 2,186 2,405 3,210 3,640 3,770
    외환보유액 850 1,162 1,546 2,300 2,900
    총 외채잔액 4,776 5,012 5,007 4,635 4,622
    총 외채잔액/GDP 49.4 49.5 41.9 37.1 35.2
    DSR 25.2 21.3 17.4 18.1 16.1

    출처 : EIU, Country Report, 각호

     

    - 상품수지 및 경상수지는 면화와 금의 국제시세에 크게 좌우되고 있으나, 1998년 이후 상품수지는 흑자를 유지하고 있음. 또한, 내륙국이란 지리적 입지로 인해 물품수송비, 에너지개발 용역 비 등 서비스지급액이 막대하나,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관 통과료 수입의 상쇄효과 등으로 경상수지는 대체로 상품수지에 연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

    - 최대 수출품목인 면사는 작황부진, 국제시세 하락, 국내 면직물 가공능력 확대 등으로 수출비중이 1990년대의 40%에서 2005년에는 20% 정도로 낮아진 것으로 추정됨. 또한, 금 수출액은 공표되고 있지 않으나 수출비중이 1998년 10%서 2002∼05년 중에는 약 13% 정도로 높아진 것으로 추정됨.

    - 또한, 강력한 수입통제로 석유․가스분야 개발과 수입대체산업을 위한 기계 및 장비 등 자본재 수입이 전체수입의 45% 정도를 차지하고 있음.

    - 최대 교역대상국은 러시아(2005년 교역 액의 20% 차지)로 주로 자동차, 천연가스를 수출하고 기계․장비를 수입하고 있으며, 중국도 점차 중요한 수출대상국으로 부상하고 있음.

    - 관세당국이 발표하는 교역통계에는 수입억제정책으로 유발된 상당한 규모의 국경 밀거래가 제외되어 있어, 교역통계 역시 신뢰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됨.

     

    ☞ 러시아는 석유, 가스, 통신분야로 15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중국도 에너지분야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음. 그밖에 일본과 한국도 에너지를 중심으로 투자에 적극적임. 카자흐스탄은 중국의 싹쓸이 식의 에너지확보를 위한 자국진출에 제동을 걸고 있으나, 외자가 절실한 동국은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

    ☞ 한편, 서방과의 불편한 관계를 반영하여 미, 영의 금광투자기업에 부여하였던 면세혜택을 취소시키고, 면세 액의 소급회수 조치를 취하면서 두 기업이 파산하는 사태가 발생함. 이로 인해 서방의 투자는 더욱 위축되고 있음.


     


     

  • eurasiaturk 2016-07-09 조회수:2803
    Uzbekistan

     

     

    종합개관

     

     

     

    1. 위치

    우즈베키스탄 위치도

    [우즈베키스탄 위치도]

    북쪽의 카자흐스탄, 남쪽의 투르크메니스탄 사이의 중앙아시아에 위치(북위 41도, 동경 64도)하고 있다. 면적은 44만 7400㎢ (한반도 면적의 약 2배)이다.

     

    2. 일반개황

    [우즈베키스탄 일반개황]

    데이터 테이블
    국 호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Republic of Uzbekistan)
    ※ 우즈벡어 표기: O’zbekiston Respublikasi
    독립일 1991. 12. 18 (독립선포일 1991. 9. 1)
    수 도 타슈켄트 (Toshkent, 213만명)
    영토면적 44만 7,400㎢ (한반도의 약2배)
    인 구 27,780,059명 (2007.7)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을 상회)
    민족구성 우즈벡인80%, 러시아인5.5%, 타직인5%, 카자흐인3%, 카라칼팍인2.5%
    타타르인1.5% 등 100여 개의 다민족
    *고려인 0.6% (16만 명, 7위 차지)
    종 교 이슬람교(수니파) 88%, 동방정교 9%, 기타3%
    언 어 우즈벡어
    평균수명 64.58세 (2006)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제
    대통령 및 임기 이슬람 압두가니예비치 카리모프 (Islam Abduganiyevich Karimov)/ 7년
    의 회 양원제 (5년, 상원100석•하원120석)
    주요정당 자유민주당, 인민민주당, 국가헌신민주당 등
    화폐단위 및 환율 숨 (Sum)
    * 1$ = 1,290 Sum (2007.11)
    문맹률 0.3% (2005)
    국내총생산(GDP) 131억$ (2006)
    1인당 GDP 492$ (2006)
    수출입 수출액: 49억 3천만$ (2005)
    ※ 주요 수출품: 원면, 금, 에너지
    수입액: 34억 6천만$ (2005)
    ※ 주요 수입품: 기계설비 류, 식료품, 화학제품
    주요산업 농업, 광업, 화학산업, 에너지산업
    주요자원 천연가스(세계10위), 금(세계7위), 우라늄(세계4위), 석유, 석탄, 은, 구리, 납, 아연, 텅스텐, 몰리브덴
    행정구성 1개 자치공화국 (카라칼팍 공화국), 12개 주, 1개 특별시
    주요도시 사마르칸드, 나망간, 안디잔, 부하라, 페르가나
    주요경축일 1.1 신년, 3.8 여성의 날, 3.21 나브루즈 (새해, 새봄맞이 축제), 5.9 승전기념일 (2차 대전 대독 승리기념), 9.1 독립기념일, 10.1 스승의 날, 12.8 제헌절
    ※ 종교관련 경축일 : 라마단 아이트, 쿠르반 아이트

     

    3. 국기

    국기

    소련의 붕괴에 따라 CIS의 한 국가로 독립할 때인 1991년 11월 18일 채택되었다. 파란색은 영원무궁한 하늘과 생명의 원천인 물을 상징하며 티무르제국 전통 계승의지를 표현하며, 흰색은 평화와 동경의 상징으로 도덕적 순수함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녹색은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붉은 선은 붉은 피로 상징되며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국가의 영원함에 대한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초승달은 우즈벡이 이슬람 국임과 구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음을 상징하고, 12개의 별은 우즈벡의 12개의 주를 나타내면서 조화와 행복을 추구해 온 우즈벡 민족의 문화를 표상한다.

     

    4. 국가문장

    국가문장

    태양이 솟아오르는 풍요로운 계곡을 배경으로 우즈벡인들의 주식인 밀과 주요자원인 면화로 만들어진 화환이 주변부를 구성한다. 상부의 8각형 별은 우즈벡의 단결과 화합을 의미하며, 9각형 내부의 초승달과 별은 종교적으로 이슬람 국가임을 상징하고 있다. 중앙에 위치한 새는 조로아스터교의 신화에 등장하는‘Humo Bird’로서, 고귀•관대•헌신을 상징하며 국가의 재탄생을 표상하며,‘우즈베키스탄’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하단의 삼색 리본은 우즈벡 국기를 의미하고, 전체적으로는 평화 안정 행복 번영을 염원하는 우즈벡인의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5. 국가

    데이터 테이블
    Serquyosh, hur o'lkam, elga baxt, najot
    Sen o'zing do'stlarga yo'ldosh, mehribon!
    Yashnagay to abad ilmu fan, ijod,
    Shuhrating porlasin toki bor jahon!
    Oltin bu vodiylar - jon O'zbekiston,

    Ajdodlar mardona ruhi senga yor!
    Ulug' xalq qudrati jo'sh urgan zamon,
    Olamni mahliyo aylagan diyor!

    Bag'ri keng o'zbekning o'chmas iymoni,
    Erkin, yosh avlodlar senga zo'r qanot!
    Istiqlol mash'ali, tinchlik posboni,
    Haqsevar, ona yurt, mangu bo'l obod!
    Oltin bu vodiylar - jon O'zbekiston,
    나의 빛나는 자유로운 땅, 행복과 구제를 사람들에게
    당신은 당신의 동료와 사랑하는 동행자이다!
    배움과 독창성으로 영원히 번영하라,
    세계가 존재하는 한 당신의 명예는 빛날 것이다!

    *합창
    이 황금 골짜기 -- 귀중한 우즈베키스탄,
    조상의 용감한 정신은 당신과 함께한다!
    사람들의 거대한 힘이 격노할 때,
    세계를 매혹한 국가!

    너그러운 우즈벡의 믿음은 죽지 않는다,
    젊고 자유로운 발생은 당신을 위한 강한 날개이다!
    독립의 지침, 평화의 후견인,
    진실의 연인, 모국은, 영원히 번영한다!
    * 합창 반복

     

    6. 참고문헌

    - 우즈베키스탄 투자 가이드 북 (국가정보원, 2006)

    - 우즈베키스탄의 정치 경제 현황과 경제협력 방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5)

    - 우리 기업들의 중앙아 5개국 진출 안내 (외교통상부, 2007)

    - 우즈베키스탄 개황 (외교통상부, 2007)

    - 우즈베키스탄(KOTRA 국가정보) (KOTRA편집부, 2005)

    - 제1차 한•중앙아 협력 세미나 (외교통상부, 2007)

    - 제1차 한•중앙아 협력 포럼 (외교통상부, 2007)

    - 옛날의 실크로드, 오늘의 우즈베키스탄 (박삼옥, 서울대학교출판부,2007)

    - 한국수출입은행 www.koreaexim.go.kr

    - 한국 무역 협회 www.kita.net

    - KOTRA www.kotra.or.kr

    - 위키피디아 www.wikipedia.org

    - 지식까지 검색하는 NAVER www.naver.com

    - 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print/uz.html

    - http://www.orexca.com/navruz.shtml

    - http://www.youtube.com/watch?v=469hh3Fxd9M 

     

     

     

    자연환경

     

     

     

    우즈베키스탄 지형도

    [우즈베키스탄 지형도]

     

    1. 지 형

    우즈베키스탄 전체영토의 70%가 황무지 및 산지이며, 중앙부는 키질 쿰(사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서부, 중앙부는 사막 초원지대이고, 남동부는 산지 및 분지이다. 구 소련 전체면적의 1%에 해당된 동부지역 페르가나 분지는 구 소련 면화 총 생산량의 1/3, 비단의 35%를 생산하여 ‘장미의 골짜기’, ‘흙 속의 진주’로 명명된다.

     

    2. 기 후

    타슈켄트 시 월평균 기온과 강수량

    [타슈켄트 시 월평균 기온과 강수량]

    대륙성 사막 기후대로 고온 건조한 날씨가 장기간 지속되며, 여름은 열대공기의 영향으로 매우 덥고 건조하여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반면 겨울은 여름에 비해 습도가 높고 강설량이 많은 편이다. 강수량은 봄 30~50mm, 여름 1~6mm, 가을 4~44mm, 겨울 25~40mm에 이른다.

    • 여름 최고기온: 42℃ (평균기온 25~30℃)
    • 겨울 최저기온: -10℃ (평균기온: 2~8℃)

     

    3. 자연환경

    우즈베키스탄은 위도상 북위 40도선에 위치하며, 동서간 1.425km, 남북간 925km로 중앙아시아의 중심부인 투란 분지를 차지하고 있다. 국토의 4/5가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강우량 부족으로 평원의 중북부는 구 소련 내 두 번째 큰 키질쿰 사막을 형성하고 있다. 동쪽국경의 1/5은 산악지방으로, 동북부 방면은 천산산맥 일부와 서남부 방면은 파미르 고원에 부분적으로 걸쳐 교차하고 있다. 산악고지대는 해발 4,000m가 넘으며, 산악의 눈 녹은 물과 지하수가 남북 국경을 따라 강수량이 부족한 평원을 지나 아무다리야와 시르다리야를 이뤄 아랄해로 유입된다. 약 50만 헥타르의 잘 보존된 숲과 국립 공원지대가 있으며 40만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아랄해의 변화 모습

    [아랄해의 변화 모습]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에 걸쳐 있는 큰 염호 아랄해는 카스피해 동쪽으로 기후가 삭막한 중앙 아시아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이전에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내해였으나, 20세기 후반 면적과 수량이 두드러지게 줄어들고 수심이 얕아지면서 과학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원인은 구 소련이 관개를 위해 아랄 해의 주된 수원인 시르다리야 강과 아무다리야 강의 물길을 강제로 돌려버렸기 때문이다. 이 두 개의 강줄기를 돌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커다란 목화밭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점점 아랄 해로 흘러 드는 물의 양이 감소하고 염분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많은 어류가 멸종하게 되었고, 결국 과거 아랄 해였던 곳이 지금은 사막처럼 변해버렸다.

    지금의 추세라면 2020년경에는 아랄 해가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아랄 해의 감소로 인해 많은 어촌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고, 수십 년간 농약과 비료의 사용으로 오염되어버린 아랄 해가 증발하면서 남은 소금과 오염물질은 이제 주민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와 여성들에게선 결핵과 빈혈, 각종 암 발생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 등이 1997년 ‘아랄해 살리기 국제기금(IFSAS)’을 만들고 보전에 착수했지만 큰 진전은 보지 못하고 있고, 카자흐스탄은 최근 고 유가에 힘입어 벌어들인 막대한 재정을 아랄해 복원에 투자하고 있으나, 우즈베키스탄은 재정이 여의치 않아 사라져가는 아랄해 복원 문제에 관해 속수무책인 실정이다.

     

    4. 행정구역

    우즈베키스탄 행정구역

    [우즈베키스탄 행정구역]

    우즈베키스탄은 1개의 특별시와 12개의 주(viloyat), 1개의 자치공화국(avtonom)으로 구성되어 있다.

    데이터 테이블
    구분 행정구역 중심지 면적(㎢) 인구(만 명) 인구밀도(명/㎢)
    1 타슈켄트 시 213
    2 안디잔 주 안디잔 4,240 218 452
    3 부하라 주 부하라 40,320 141 35
    4 페르가나 주 페르가나 6,760 266 392
    5 지작 주 지작 20,490 97 44
    6 나망간 주 나망간 7,440 192 236
    7 나보이 주 나보이 110,990 78 7
    8 카쉬카다르야 주 카르쉬 28,570 216 71
    9 사마르칸드 주 사마르칸드 16,770 267 142
    10 시르다리야 주 굴리스탄 4,990 64 127
    11 수르한다리야 주 테르메즈 20,100 173 81
    12 타슈켄트 주 타슈켄트 15,590 235 291
    13 호레즘 주 우르겐치 6,050 132 190
    14 카라칼팍스탄 자치공화국 누쿠스 166,590 150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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