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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 벨트 국가 알아보기

  • Kazakhstan 

     

     

    역사

     

     

     

    1. 고 대

    카자흐스탄 내에서 발굴되는 유물들로 미루어 BC 1,500-1,000년경 현재의 카자흐스탄에 청동기 초기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BC 500년경에는 현재의 남부 카자흐스탄에 사카(Saka)부족이 알타이산과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방대한 스텝지역에 거주하여 스키타이 문화의 일부를 이루었다. 사카부족은 카자흐스탄 최고의 고고학적 발굴로 일컬어지고 있는 "The Golden Man"(금 갑옷을 입은 전사 모형․알마티 인근에서 발굴)을 남긴 부족으로서 Golden Man은 현재 카자흐스탄의 국가 상징한다. BC 200년경에는 중국 북부로부터 훈족(Huns)이 현재의 동부 카자흐스탄을 장악한 바 있었으나 훈족이 서유럽으로의 진출을 서두르면서 서기 550-750년에 걸쳐 몽고와 중국 북부로부터 투르크(Turkic)족이 현재의 카자흐스탄 남부로 이주하였다. 투르크족은 만주로부터 카자흐스탄 남부에 이르는 Kok Turk 제국을 구성하였다.

     

    2. 카자흐 민족국가 형성(13세기-18세기)

    몽골 제국 지도

    [몽골 제국 지도]

    1218-1221년경 몽고의 징기스칸이 카자흐스탄 동남부를 시작으로 현재의 카자흐스탄 전역을 석권하였다. 카자흐 영토는 Golden Horde, White Horde 및 Mogulistan으로 분리 통치되었으며 카자흐 카나테(Kazakh Khanate)가 15세기 초 White Horde에서 분리되면서 카자흐 민족국가 형성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후 카자흐 카나테는 대오르다(Great Horde : 발하쉬 호수 남부지역), 중오르다(Middle Horde : 카자흐 중부), 소오르다(Little Horde : 카자흐 서부)로 분열되어 호족들이 통치하였으며 3개 오르다는 현재 카자흐스탄 호족출신 배경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지방 호족들은 그 후 300여 년에 걸쳐 3개 오르다에 병합되었으며 카자흐는 봉건영주와 농노로 구성된 봉건국가로 18세기까지 존속하였다.

     

    3. 러시아로의 합병(18세기-19세기)

    봉건제후들 간의 전쟁으로 세력이 크게 약화된 3개 오르다는 18세기 중엽 준가르 (Dzungarian)의 침공으로 소위 “대 재난의 시대”를 맞게 되었으며 1731년 러시아 제국에 보호를 요청하면서 러시아로의 합병과정 시작되었다. 그 후 러시아는 국경지역에 요새와 오렌부르크 등 소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카자흐스탄 남부로 영향력을 확대, 19세기 초에는 카자흐스탄 북부와 중부에 러시아식 8개 행정구역이 출현하는 등 러시아의 식민화 정책이 본격화되었다. 일부 반 러시아 폭동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식민화 정책은 지속되었으며 19세기 초 중․소오르다에 대한 직할통치를 시작으로 1860년대에 대오르다가 러시아에 편입되어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전역을 합병하였다.

     

    4. 소비에트 정권 수립과 사회주의 건설(1917-1990)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및 내전 과정 동안 카자흐스탄 내 소비에트 정권이 신속하게 수립되었으며 1920년 카자흐스탄은 키르기즈 자치공화국의 일부로 편입, 소비에트 정권 수립이 마무리된다. 소련 공산당은 1924-1925년간 중앙아 공화국에 민족구성을 기반으로 새롭게 구성된 공화국 구성 개혁안을 추진한 결과, 1925.4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탄생되었다. 계획경제체제하에서 광물산업을 중심으로 한 카자흐스탄 산업화 및 강압적인 농업 집단화 과정을 본격 추진(1940년대 초까지 전농장의 97%가 집단농장화)하기도 하였다. 1936.12 카자흐스탄은 소련 구성 공화국의 하나로 승격되었고, 1950년대 말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 시에 추진된 Virgin Land(처녀지 개간) 정책으로 카자흐스탄 북부에 약80만에 이르는 러시아인들의 이주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식민화가 시작되어 1960년 초에는 전체 930만 카자흐스탄 인구 중 러시아인이 43%, 카작인이 29%라는 기형적인 민족구성을 초래하기에 이른다. 소련 공산당은 샤야흐메토프(Zhumabay Shayakhmetov) 및 쿠나예프(Dinmukhamed Konayev) 등 카작인을 카자흐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임명하는 등 카작 민족에 대한 일부 배려가 있었으나 실권은 모스크바에서 행사하였다. 1986년 쿠나예프가 러시아인인 콜빈(Gennady Kolbin)으로 교체되자 대규모 폭동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소련은 카자흐스탄 세미팔라친스크(Semipalatinsk)를 핵 실험장으로 이용하거나 바이코누르(Baykonur)에 우주선 발사 기지를 건설함으로써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하였다. 1989년에는 소련 최초의 대규모 시민운동인 Semipalatinsk Movement가 결성되었으며 동 운동의 결과로 소련은 1989년부터 세미팔라친스크에서 핵실험을 중지하기에 이른다.

     

    5.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부상과 카자흐스탄 독립

    1989년 카자흐스탄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된 나자르바예프는 1990.4 카자흐스탄 최고인민회의에서 카자흐스탄 공화국 대통령에 피선된다. 1990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소련 붕괴 과정에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등과 함께 소련 체제를 유지하려 노력하였고, 결국 카자흐스탄은 1991.12 소련 체제의 와해가 기정사실화 된 직후 동년 12.16 소련 구성공화국 중 가장 늦게 독립을 선언하고 동년 12.21에는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한다.

     

     

     

     

    한국과의 관계

     

     

    1. 개 관

    한-카자흐스탄 관계는 1992.1.28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꾸준히 실질협력관계를 발전시켜오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우리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이 자국의 경제개발에 유용할 수 있다는 점과 우리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동 경험 전수 및 카자흐스탄 경제전반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인식하에 우리와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다. 특히, 카자흐스탄 독립직후 카자흐스탄의 경제적 어려움과 서방기업들의 무관심이 지속되던 시기에 우리 기업이 카자흐스탄에 적극 진출 하여 성공적인 투자사례를 이룸으로써 결국 서방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의 외환위기 이후 우리기업들의 투자가 급감하였으나 2002년도 카자흐 외무장관 방한 및 산자부 장관의 상호방문을 계기로 활력을 되찾기 시작한 양국관계는 2003.11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방한으로 카스피해 원유 및 광물자원 공동개발 등 실질 협력관계 확대를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였다. 2003년 11월 한-카자흐스탄 정상회담 및 2006년 9월 한명숙 총리 공식 방문 등을 통해 양국 정상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해 인식을 같이하고, UN 등 국제무대에서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하는 등 정치, 외교적 측면에서도 양국간 협력관계는 더욱 확대되는 추세이다.

    또한, 최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가한 우미르작 슈케예프 카자흐스탄 부총리는 대통령 접견자리에서 카자흐스탄 국민복지화를 강조한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최근 연두교서 내용을 강조하며 향후 에너지 및 건축 관련 양자협정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길 희망했다. 접견 후, 우미르작 슈케예프 카자흐스탄 부총리는 에너지 및 건축 관련 한국대표기업들과의 투자협상면담에 참석하면서, 이번 카자흐스탄 부총리 방한이 향후 대 카자흐스탄 한국기업투자진출에 중요한 영향을 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 주요 인사교류

    슈케예프 부총리와 이명박 대통령 한명숙과 아흐메토프 총리
    [슈케예프 부총리와 이명박 대통령]    [한명숙과 아흐메토프 총리]
    • 1990.11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소 연방 공화국 대통령 방한
    • 1992.07 이상옥 외무장관 카자흐스탄 방문
    • 1995.05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국빈방한
    • 1997.10 예시모프 제1부총리 방한
    • 2002.10 토카예프 국무장관 겸 외무부 장관 방한
    • 2002.11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 카자흐스탄 방문
    • 2003.11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공식방한
    • 2004.03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 카자흐스탄 방문
    • 2004.07 아비카예프 상원의장 비공식 방한
    • 2004.09 노무현 대통령 카자흐스탄 국빈방문
    • 2004.11 이명박 서울시장 카자흐스탄 방문
    • 2005.04 마르첸코 전경제부총리(현 할릭은행 총재) 방한
    • 2005.04 슈콜릭 에너지․광물자원부 장관 방한
    • 2006.01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 카자흐스탄 방문(대통령취임식 참석)
    • 2006.06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CICA 정상회의 참석)
    • 2006.09 한명숙 총리 공식방문(추규호 건교부장관 수행)
    • 2008.02.26 이명박 대통령 카자흐스탄 우미르작 슈케예프 부총리 접견(대통령취임식)

      -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국민복지의 성장은 국가정책의 중요 한 목표’라는 주제를 담은 연두교서 전달

      - 한-카 협력관계 동향과 전망 관련 문제 논의

    • - 한국 건축회사, 에너지 회사, 재정기관 대표들과 면담

     

     

    3. 한·카자흐스탄 에너지·자원 협력

    카자흐스탄 잠빌 유전 위치도

    [카자흐스탄 잠빌 유전 위치도]

    석유공사, 삼성, LG, SK, 대성 등 7개사는 2002.3 원유개발 컨소시엄을 구성, 카스피해 유전개발 참여를 적극 추진 중이다. 한국 원유컨소시엄은 카자흐 석유가스공사측과 카스유 망광구인 잠빌 광구에 대한 공동개발 양해각서를 2004.3월 체결하였으며, 2006.9월 지분 양, 수도를 포함한 실무협상을 마무리 지어 2006.11월까지 본 계약을 체결하고, 2008년 현재 카작국영석유회사(KMG)와 탐사계약 체결 중이다.
    카자흐스탄과 한국측의 참여지분은 아래와 같으며 2008년 5월 중순 한승수 국무총리의 중앙아시아 순방 시 잠빌 광구의 지분 27%를 획득하는 지분양수도 본 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다. 또 탐사에 성공할 경우 23%의 지분을 우선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선매권 행사도 가능해져 한국컨소시엄은 최고 50%의 지분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 양자간 잠빌광구 참여지분 : 카자흐스탄(73%), 한국 (27%)

    - 한국 컨소시엄 회사 : 석유공사 9.45%, SK 6.75%, LG상사 2.7%, 삼성물산 2.7%, 현대하이스코 2.7%, 대성산업 1.35%, 대우조선해양 1.35%

     

    대한광업진흥공사는 카자흐스탄 지질위원회측과 카자흐 스탄 동남부(15만㎢) 주요 광물부존 구역에 대한 공동탐사를 2004-2007년간 실시 중이며, 금․동․연․아연 등 유망광물 발굴 시 아국기업의 후속개발진출 연계를 추진 중이다.

    또한, 대한 광업진흥공사는 한국 수력원자력과 함께 카자흐스탄 Kazatomprom 측과 공동으로 우라늄 광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며, 현재 한국수력원자력은 Kazatomprom 측과 우라늄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 우리 우라늄 수요의 약 1/4을 카자흐스탄이 공급 중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우라늄 수요 총 3,600톤 중 960톤)

     

    4. 교역현황

    양국 경제·통상협력은 양국 경제의 상호보완성에 기초하여 2000년 이후 대폭 활성화되고 있으며, 2003년에 87.2% 증가한 데 이어 2004년 39.9% 증가하는 등 급속한 성장세를 보인 바 있으며, 2005년에는 한․카자흐스탄간 교역량 확대에 따른 수출입 구조 조정 및 러시아 및 중국을 통한 교역량 증가에 따라 다소 전체 교역량이 보합세를 유지하였으나, 건축자재 및 자동차 분야 등의 약진에 따라 2006년 교역량은 균형적으로 확대되어 양국 교역 액은 6억 달러를 기록했고, 2007년에는 8억 달러를 넘어섰다. 카자흐스탄의 WTO 가입추진에 따른 경제 자유화 및 국제유가 상승, 카자흐스탄의 건설수요 증가 등으로 양국간 교역량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5년 이전 우리의 대카자흐스탄 수출은 휴대폰 등 전자제품이 주도하였으나, 2006년 휴대폰 등 전자제품의 수출량이 감소한 반면, 건축자재 및 자동차 분야 수출량은 전년동기 대비, 열 교환기 9.6%, 엘리베이터 162.9%, 화물자동차 109.3%, 승용차 72.2% 등 큰 폭으로 증가하여 휴대전화를 제외한 수출 품목 상위 7개 제품의 수출이 대폭 신장되고 있어 가전제품에 편중되던 우리 수출품목의 다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바, 향후 카자흐스탄 건설경기 활성화 및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건설자재 및 자동차 분문의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도별 양국간 교역 현황]

    (단위: 천달러, %)

    연도별 양국간 교역 현황
    구분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교역량 197,780 370,269 517,979 514,163 599,697 802,745
    (20.5) (87.2) (39.9) (-0.74) (16.6) (33.8)
    수출 126,110 217,174 313,950 272,558 323,815 545,978
    (16.8) (72.2) (44.6) (-13.2) (18.8) (68.6)
    수입 71,670 153,095 204,029 241,605 275,882 256,767
    (27.7) (113.6) (33.3) (18.4) (14.2) (-6.9)

    출처 : 한국관세청 ( )은 전년 동기 대비 증감률

     

    5. 고려인 현황

    고려 극장 내부의 모습 고려극장에서 공연중인 부채춤
    [고려 극장 내부의 모습]               [고려극장에서 공연중인 부채춤]
     
     
     

    사회문화

     

     

    1. 언 어

    국어는 카작어(64.6%)이고, 러시아어(95%)도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독일어, 우즈벡어, 키르기스어, 페르시아어, 영어, 기타 등도 쓰인다.

    카작어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넓게 분포함에도 내부적으로 방언적 차이가 적어 서로 대화가 자유롭게 통한다. 투르크어 중에서는 북서 중앙 그룹 또는 킵차크 어군이라고 부르는 그룹에 속하며, 특히 카라칼팍어·노가이어·키르기스어 등과 가까운 관계에 있다.

    카작어는 우즈벡어나 신위구르어 등 중앙아시아에 분포하는 다른 투르크어와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에 걸쳐 차가타이어를 문어(文語)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 페르시아 식 아라비아 문자를 쓰는 공통 문어가 카자흐어 사용자들 사이에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구어화(口語化)되어 카자흐 문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후 1917년과 1924년의 정서법 개정을 거쳐, 소련에서는 1929년에 라틴 문자화되고, 1940년에는 키릴 문자로 대체되었다. 문법구조는 다른 투르크어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주어-목적어-동사의 어순이며 접미사나 후치사 등에 따라 문법 범주가 표현된다. 카작어는 역사적으로 몽골어와 아랍어, 이란어에서 차용된 말이 많다. 몽골어와 카작어는 12∼13세기경부터 접촉하였고, 아랍어는 이슬람 문화를 통해 투르크어로 도입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이란어를 매개로 한다. 근년에는 러시아어와 중국어, 특히 러시아어로부터의 문화 관련 어휘의 차용이 두드러진다.

     

    2. 민 족

    민족 구성은 카작인 53.4%, 러시아인 30%, 우크라이나인 3.7%, 우즈벡인 2.5%, 독일인 2.4%, 타타르인 1.7%, 위구르인 1.4%, 그 외 4.9% 로 이루어져있다.

    19세기 말부터 정책적 지원에 의한 농업 이민으로 러시아인의 이입이 증가한 후 20세기에는 중앙아시아 근대화 작업에 따라 러시아인의 이주가 급증하였다. 따라서 1980년대까지 러시아인의 인구 비율이 카자흐인 및 원주민보다 높은 기형적인 형태를 보이기도 했었다. 러시아이주민들은 대부분 알마티를 비롯한 5대 도시에 거주하며 제조업 기술자, 관리인, 기타 전문직 등의 도시적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소련 체제와 관련한 러시아인의 계획으로 인해 러시아인의 비율이 30%를 육박하고 있다.

    1937년에는 연해주 지방에 거주하던 한인들도 이곳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다. 제 2차 세계 대전 초에는 볼가 강 연안의 독일인 자치주에서 많은 독일인을 알마티 주변으로 강제이주 시켰으며, 1942년에는 바크 유전지대를 차지하기 위해 독일군이 크림반도 및 북카프카스 지방을 점령하자 소련군이 이를 퇴각시켰다. 스탈린은 이와 동시에 독일군에 협력했는지 여부에 따라 이 지역의 크림 타타르인과 체첸인들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 시켰다. 따라서 스탈린 사망 이후 현재 까지도 한국인, 타타르인, 체첸인 등은 고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유럽계 백인들이 이주함에 따라 카자흐인의 비율이 높아졌다.

     

    3. 종 교

    현재 각 민족들의 종교를 모두 허용하고 있으나, 국민의 47%는 이슬람교를 믿고 있고, 44%는 러시아정교, 2%는 개신교, 기타 7% 순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이슬람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상 밝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개신교 선교사들에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는 비자를 내주고 있으며 교회 등록도 허락해주고 있다. 현재 선교 활동에 어려움이 있는 인근 키르기즈스탄, 우즈베키스탄과 비교해 볼 때 카자흐스탄의 문은 상대적으로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

     

    4. 교 육

    아바이 국립대학교 카자흐스탄 민족 농업대학교
    [아바이 국립대학교]                    [카자흐스탄 민족 농업대학교]

    유치원 교육은 현재 약 60% 정도의 아동들이 교육을 받고 있어 취학률이 높지 않은 편이나, 정부는 유아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최근 몇 년 동안 취학 전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앞으로 취학률을 90% 이상 끌어올리기 위해 보다 많은 재정 지원을 할 예정이다.

    초, 중등 교육은 공립학교인 쉬콜라의 경우 1~11학년까지 교육과정에 따라 초등학교 과정(4년), 중학교 과정(5년), 고등학교 과정(2년)으로 나뉘어 이루어지고 있으나 2008년부터는 우리와 같은 표준의 12~14년제를 도입할 예정으로 현재 일부 학교에서 시범 전환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9학년(중학년)을 마치면 직업기술학교에 갈 것인지 정규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중학 과정을 마친 학생들 중에서 약 30%는 전문직업기술학교에 진학 하고 나머지 70%정도는 상급학년으로 진학하고 있다.

    대학 교육은 교육의 다른 어느 분야보다 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많은 활발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카자흐스탄에는 현재 33개의 국립대와 126개의 사립대학교가 있으며, 각 대학교마다 학교 발전과 우수학생 유치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대학 진학률은 약 62%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정부도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하여 ‘볼라샥(미래)’ 이라는 정부 장학 제도를 마련하여 연간 3,000명의 학생을 해외에 내보내고 있다.

     

    5. 손님접대(konak kutu)와 음식문화

    전통 음식 베스바르막 카자흐스탄 전통 음료 크므즈
    [전통 음식 베스바르막]                [카자흐스탄 전통 음료 크므즈]
    손님 접대 – 상좌 카즈

    [손님 접대 – 상좌]                   [카즈]

    카작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손님접대이다. ‘손님이 오면 복이 온다’라는 격언대로 카작인은 손님으로 가길 좋아하고, 집에 손님이 오는 것을 즐거워하며 복된 일이라고 여긴다. 손님이 집에 왔을 때,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은 먼저 들어오는 손님을 향해 인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주인은 가장 먼저 손님에게 ‘퇴르게 오트릉으즈 (Torge oturunguz)’, ‘죠가르 싀긍으즈 (Jogaru shugunguz)’라는 말로 상좌에 앉도록 권한다. 그 다음에는 손님을 위해 정성스레 식탁을 차린다. 카작 민족에게 식탁 (Dastarhan)은 아주 중요한 단어로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다. ‘식탁’이라는 뜻과 함께 ‘식탁보’를 말할 때도 ‘다스타르한’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이것은 풍요와 만족을 의미한다. 손님을 맞이할 때, ‘상차림, Dastarhan Jasau’에 앞서 해야 할 것은 ‘식탁 보를 까는 것, Dastarhan Jayu’ 이다. 식탁이 탁자 위에 차려지든, 바닥에 차려지든 상관없이 식탁보는 식탁과 관련하여 카작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물품이다. 그리고 바닥에 식탁이 차려지는 경우, 바닥에 깔린 식탁보를 밟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식탁보를 밟는 것은 식탁 위를 밟고 서는 것과 같은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름밥(Palau), 만띄(Mantji), 베스바르막 (Besbarmak), 라그만(Lagman), 샤슬륵(Shashluk) 등이 공통으로 나오는 음식이라 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족들 사이에 서로 음식의 유사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식사 대접 방식은 각 민족만의 독자성이 있다. 카작인들은 손님이 왔을 때, 고기를 대접하는 것을 최고의 접대로 여겨 베스바르막과 카즈(Kaz)를 준비한다.

    카작인들에게 손님들을 어떤 고기의 어떤 부위로 대접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기접시 꾸미기(Tabak Jasau)’ 라는 말은 고기를 내는 접시를 어떤 부위의 고기로 꾸미느냐 하는 것으로 우리 식의 상차림과 맞먹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타박이라는 단어는 보통 고기 요리를 담는 그릇으로 접시보다 좀 커서, 식탁 가운데에 놓고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누어 먹는 쟁반 같은 것을 말한다. 고기에 따라 카작인들이 어떤 부위를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살펴보면, 양은 머리, 넓적다리, 무릎 뼈 등을 가장 중요한 부위로 간주한다. 말은 목과 목덜미 부위, 카즈(Kaz), 카르타(Karta, 내장종류)를 가장 귀한 부위로 여긴다.

    손님이 많은 경우,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자리와 관련하여, 상석 타박(Bas Tabak), 중간 타박(Orta Tabak), 말석 타박(Ayak Tabak)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 타박이 제공된다. 식탁의 상석에는 손님 중에서 주빈이자, 웃어른들이 앉게 되며, 중간 자리에는 상석에 앉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손님들이 앉으며, 말석에는 손님 접대를 도우러 온 이웃이나 친척 여인들이 앉는다. 바스 타박에는 주로 양머리, 넓적다리, 골반, 복사뼈, 갈비, 기름진 꼬리 부위 등이 담기며, 오르타 타박에는 골반 뼈, 무릎 뼈, 넓적다리 부위가 올라오며 말석에는 남은 여러 가지 다른 부위의 고기들이 오르게 된다.

     

    6. 전통놀이

    1) 처녀 따라잡기(Kuz Kuu)
    처녀 따라잡기(Kuz Kuu)

    [처녀 따라잡기(Kuz Kuu)]

    경기를 위해 처녀와 총각들이 선정되어 잘 달리는 말에 올라탄다. 심판관의 신호에 따라 처녀는 남자들보다 10m 정도 앞에서 출발을 준비한다. 다음의 신호에 따라 남자와 여자는 각각 자기 말을 달리게 한다. 청년이 도는 지점까지 처녀를 쫓아가 잡으면, 처녀의 뺨에 입맞춤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그 후 청년이 처녀를 종착 지점까지 이르도록 허용하지 않으면 승리하게 된다. 반대로 처녀가 쫓아가서 청년의 말을 채찍으로 때리면, 그때에는 처녀를 승리자로 간주한다.

    2) 말 경주(Beige)
    말 경주(Beige)

    [말 경주(Beige)]

    말 경주는 카작 민족의 오래된 전통 중 하나이다. 주로 카작인들은 큰 잔치와 축제, 국경일에 말 경주를 열곤 했다. 경주에는 수백 마리의 말이 참여한다. 카작 역사에서는 유명한 위인들이 죽으면, 그 다음해에 추모제가 열리는데, 거대한 말 경주가 함께 열렸다. 카작 민족은 유쾌한 이벤트를 항상 즐겨왔기에 자주 말 경주 대회를 개최했다. 말 경주는 주로 잔치나 축제 때 벌어지기 때문에, 관련 행사의 규모, 말 소유자들의 경제적 상태, 그리고 말 경주에 참여하는 말의 숫자에 따라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경주가 결정 된다. 카작인들의 경마술은 단순히 육체적인 것만이 아닌, 담력과 기술 그리고 스테미너를 겨루는 것이다. 이러한 경기 중 백미는 알라만 베이게인데, 이것은 장장 80km에 이르는 장거리 말 경주를 말한다.

    3) 쿠므스 알루/텡게 알루(Tenge alu)

    이 경기는 땅에 놓여 있는 은화나 동전 같은 작은 물건을 말 위에서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안장에서 몸을 떼지 않고 잡아채는 놀이이다. 이 경기는 2,300년 전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가 남부 스텝 지역을 휩쓸고 지나갈 때, 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경기로도 알려져 있다.

    4) 전통축제 - 나우르즈(Nauriz)
    나우르즈 축제 모습 돔브라를 들고 있는 소녀
    [나우르즈 축제 모습]                   [돔브라를 들고 있는 소녀]

    ‘나우르즈’ 라는 말은 페르시아어에서 온 말로 ‘새로운 날’이라는 뜻이다. 3월은 겨우 내 잠자던 자연이 깨어나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시기로 3월 22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이다. 따뜻한 봄 햇살과 함께 찾아와서 동방 민족들이 함께 즐기는 새해의 축제, 나우르즈는 카작 민족에게 가장 커다란 축제이다.

    3월22일을 앞둔 며칠간 빗자루와 쓰레받기 등 청소 도구를 들고 시내 곳곳을 청소 하고, 청소가 끝나면 대규모 축제가 전국 마을과 도시 곳곳에서 시작된다. 모두 화려한 전통의상으로 갈아입고 학교 운동장과 마을 공터와 공설 운동장 등에 유르타가 세워지고 준비한 음식이 식탁을 채우면 축제 분위기는 한창 무르익는다. 전 날 발표 된 대통령의 나우르즈 축사가 소개되고 대학 총장, 교장 선생님 그리고 행사에 참석한 귀빈들의 길고 긴 축사가 이어진다.

    카작인들은 나우르즈의 식탁이 풍요로워야 한 해의 번영과 가족의 번창이 약속된다고 생각한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나우르즈 코줴라는 걸쭉한 죽같이 생긴 음식이다. 이 죽은 각각의 의미를 갖는 7개의 재료로 만들어지는데 의미는 대략 이렇다. 물-행복, 육류-행운, 소금-지혜, 버터-건강, 밀가루-부, 쌀 또는 옥수수-자식의 번창과 하늘의 가호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악 몰 볼슨!(Ak mol bolsn!)’, ‘나우르즈를 축하합니다!(Nauriz kutti bolsn!)’, ‘평화가 임하길!(Beibitshilik orunalsn!)’ 하는 기원을 주고받는다. 이 날은 가깝게 지내다가 사소한 다툼으로 관계가 틀어진 사람들이 서로 화합을 이루는 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축제를 함께 즐기기 위해 언덕에 오르기도 하고 말 경주, 씨름, 크즈 쿠우 그리고 다른 민속놀이들을 한다.

     

    7. 인 물

    아바이 이브라힘 쿠난바예프 구권 지폐에 새겨진 알파라비
    [아바이 이브라힘 쿠난바예프]       [구권 지폐에 새겨진 알파라비]
     
     
     
     
  • eurasiaturk 2016-07-03 조회수:904

    Kazakhstan

     

     

    정치/경제

     

     

    정 치

     

    1. 정치 제도

    1) 대통령 중심제 : 대통령은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

    - 현 대통령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ev)

    - 헌법개정 전 : 대통령 임기 7년, 2기까지 연임가능

    - 헌법개정 후 (2007) : 대통령 임기 5년, 초대 대통령에 한해 연임 제한 규정 철폐

     
    2) 의회 : 상하원 양원제

    - 상원(Senate) : 카자흐스탄 14개 주와 2개 특별시(아스타나, 알마티) 등 16개 지역 구에서 각 2명씩 직접 선거로 선출되고, 대통령이 7명을 임명하도록 하여 총 39명이었으나, 2007 개정헌법으로 대통령의 임명 지분이 민족회의 대표를 포함한 15명으로 확대되어 상원의원 총원은 47명이 됨.

    - 하원(Majlis) : 지역구에서 67명, 비례 대표제로 10명이 선출되어서 모두 77명이었으나, 2007년 개헌으로 98명을 전원 정당 명부에 의한 비례 대표제로 선출하게 됐고 여기에 민족회의 대표 9명이 추가되어 하원의 전체 규모는 107명이 됨.

     

    2. 개 요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나자르바예프

    [나자르바예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1991년 12 월 16일 구 소련 붕괴과정에서 카자흐스탄의 독립을 주도하여 같은 해 12월 21일 알마티에서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구 소 연방 소속 12개 국가가 참여한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 구 소련을 대신할 독립국가연합(CIS) 창설을 주도했다.

    1998년 10월, 대통령 임기 연장 및 대통령 피선연령 제한 규정 폐지 등 대통령의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한 신 헌법이 채택된 이후 1999년 1월에 실시된 조기 대선에서 나자르바예프는 79%의 지지로 재선에 성공하였고, 1999년 9월 총선에서도 승리함으로써 정국 주도권을 확고히 장악했으며, 2005년 12월에는 3선에 성공했다. 2007년 5월 개정된 헌법에는 초대 대통령에 대한 연임 제한 규정을 폐지함으로써 종신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2007년 5월 개헌을 시도하면서 대통령의 중임 제한 조항을 폐지함으로, 자신의 영구 집권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전형적인 개발독재형 리더십을 보이고 있으나 국민에게는 계몽 군주로 평가 받고 있어 중앙아시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서방으로부터 민주화 압력을 받고 있는 상태이나 내부적으로 마땅한 후계구도는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고 장기적으로는 정치적인 불안요소가 발생할 가능성도 상존한 상태이다.

    나자르바예프는 집권당인 누르-오탄당을 중심으로 다른 정당과의 통합으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현재 누르-오탄당의 당원수가 1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어 정치적인 기반이 얼마나 확고한지 알 수 있다.

    카자흐스탄 정치사회동향을 종합하면,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경제부처 중심의 정부조직을 기반으로 경제개발 우선 전략형 성장정책을 전개함으로써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장기집권을 정당화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에너지자원 수출에 기반한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으로,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 동 향 - 정국 구도

    2004년 9월 및 2005년 8월 실시된 상,하원 선거를 통해 의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주요 요직에 측근 인사를 기용함으로써 친정체제를 강화해 온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정국주도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07년 개정된 헌법조항에 따라 2007년 8월에 하원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하원의원 선거 결과는 오탄당이 총 유효투표수 5,942,265표의 88.41%인 5,247,720표를 획득해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상,하원 선거 시 의회 진출에 실패(상,하원 의석 中 1석 확보)함으로써 정국운영 및 주요 정책 결정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 야권의 위상은 앞으로도 당분간 회복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1) 정당별 의석배분
    데이터 테이블
    상 원 하 원
    구 분 의석(39석) 구 분 의석(77석)
    오탄당 27 오탄당 45
    농민사회민주당 1 Aist 선거블록 11
    농업당 2 민주선택당 1
    무소속 7 무소속 19
    39 77

    ※ 2004.9 하원선거 및 2005.8 상원선거를 통해 오탄당을 중심으로 한 친여세력이 상․하원 다수를 점유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모든 제정치 세력의 참여가 보장된 “정치개혁 국가위원회”를 설립 하여 야권의 정국운영 참여를 보장하였으나, 야권은 동 위원회 참여를 거부, 향후 추진될 정치개혁 참여도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최근 친여 성향의 야당이 집권당 인 오탄당에 합병이 확대되면서, 야당의 정치 참여는 보다 약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4. 동 향 - 개 각

    아비카예프 상원의장

    [아비카예프 상원의장]

    2007년 1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역사상 최장수 총리였던 아흐메토프 총리를 이례적으로 국방장관에 기용하고, 마시모프 부총리를 총리로 임명하는 한편, 권력 승계 서열 2위였던 아비카예프 상원의장을 주 러시아 대사로 임 명하고, 토카예프 외무장관을 상원의장에 임명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개각을 단행하였다.

    신임 마시모프 총리는 41세이며 주재국 3대 은행 중 하나인 Halyk 은행장을 거쳐 대통령 보좌관, 교통통신부 장관, 경제 기획예산부 장관, 부총리 등을 역임한 경제 전문가로 알려지고 있다.

    2007년 1월 개각 관련 카자흐스탄 전문가들은 카자흐스탄 정 부가 그간 원유 수입으로 확보된 기금(외환 보유고 190억 불 및 석유 안정 국가 기금 140억 불 등 총 330억불)을 산업다변화에 효율적으로 투자하는 한편, 자본 시장 육성을 통해 카자흐스탄 기업의 외형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 받고 있다.

    또한, 금번 개각이 정부의 인재를 순환 기용하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내각 구성 성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카자흐스탄 정부가 행정력 강화 단계를 넘어서 국가 기금의 효율적 배분을 통한 산업 다변화로 세계 50대 경쟁국으로 진입한다는 목표를 달성 하는 단계로 본격 진입하려는 의도가 이번 총리 경질의 기본 배경으로 분석된다.

    한편, 아흐메토프 전 총리의 국방장관 기용은 민간인 출신으로는 최초의 사례로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국방부 수장 문민화에 대한 평소의 신념을 실천에 옮긴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아비카예프 현 상원의장의 경질성은 2006년 2월 주재국 야당 인사인 사르센바예프 암살 사건 연루 설 등 이후 계속 제기되어 왔으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1년의 유예를 둔 후 아비카예프 현 상원의장을 경질함으로써 동 사건과 아비카예프 현 상원의장간의 연루 설에는 동조하지 않는 입장을 보이는 한편, 동 사건으로 인해 야기된 아비카예프 현 상원의장의 정치적 입지 약화를 고려하여 금번 경질을 단행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외 교

     

    1. 주변국과의 균형외교추진

    카자흐스탄의 외교 정책은 중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부상하는 것과 국가경제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러시아, 중국 및 투르크 국가들로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 이 국가들을 연결시켜주는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과의 관계발전을 통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확대와 자국산 원유, 천연가스 및 광물 자원의 안정적 수출 시장 확보를 통해 국가 경제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독립 이후 ‘유라시아 경제공동체’, ‘CIS 집단안보조약’ 등 구 소련 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각종 협력기구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미국, 중국 및 서방국과의 협력증진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 (CICA)를 주관하는 등 역내 안보협력 주도에도 적극적이다. 터키, 파키스탄, 이란 등 이슬람 권 국가들과는 이슬람 권 ‘경제협력기구’(ECO)를 통해 상호 경협 및 아프간 전후 체제 정착 등에 협조하고 있다.

     

    2. 다자지역협력 참여기구 현황

    2006년 제2차 CICA 푸틴과 나자르바예프
    [2006년 제2차 CICA]                  [푸틴과 나자르바예프]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중앙아시아 협력 기구’(CACO), '유라시아 경제공동체‘(EURASEC), ‘경제협력기구’(ECO), ‘상하이 협력기구’(SCO), ‘집단안보 조약기구’(SCTO), ‘Turk cooperation’, ‘Caspian cooperation’, ‘PFP/EAPC’, ‘EU 와 동반자․협력협정’,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단일 경제공간’(SES) 등

     

    3. 주요국들과의 외교관계

    비쉬켁에서 개최된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회의(2007) 나자르바예프와 부시
    [비쉬켁에서 개최된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회의(2007)]   [나자르바예프와 부시]
    1) 러시아

    카자흐스탄은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는 CIS 집단안보조약기구의 회원국으로서 러시아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구 소련 체제와 같은 러시아 주도 하의 종속관계에서 탈피, 중앙아시아 지역 중심국가로서 균형 있는 외교 노선을 견지해 나가면서 상호보완적인 경제협력에 주안을 두고 실질협력 관계를 모색하고 필요에 따라 군사, 안보협력을 유지해 나가는 실리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2) 중 국

    중국과는 SCO(상하이협력기구)를 토대로 정치, 경제 분야는 물론 안보 면에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2003년 6월 중국 후진타오 중국주석과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양국 간 선린우호협력조약 비준서를 교환하고 2003~2008년간 협력 프로그램에 서명하여 양국 간 전략적 협력체제 발전을 위한 기반을 강화한 바 있다.

    3) 미 국

    미국과는 2003년 9월 군사협력 5개년 계획에 합의하였다. 이 합의서에는 양국 국방부간 상호 장기적이고 안정된 관계를 구축하고 카자흐스탄 군의 장비 현대 화, 카스피해 유력의 군사 인프라 및 항만 인프라 설치지원, 카자흐스탄 직원 군인 양성 및 해군교육기관 설립 지원 문제는 물론, 테러 집단퇴치를 위한 협력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4) 그 외

    미국 포함 영국, 독일, 이태리, 일본 등 선진 시장 경제국과는 양자간 협력관계 강화를 통해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하는 한편, 이들 국가의 투자유치 및 카자흐스탄 원유, 가스, 비철금속 등 자원의 안정적인 수출시장 확보를 통한 국가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경 제

     

    1. 주요 경제정책

    카자흐스탄 정부는 “2015 혁신적 산업 발전 전략”을 수립하여 석유화학, 건축자재, 식품가공, 물류, 제련, 섬유, 관광 등 분야를 2015년까지 집중 육성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한편, 철도, 전력, 통신 등 기간사업의 민영화 계획도 수립, 산업다변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지역 균등 발전을 위해 중앙과 지방간의 권한과 책임을 체계적으로 재조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바, 2005년 예산체계를 대폭으로 변경시켜 지방에 대한 중앙 정부의 지원을 확대하는 등의 조치를 시행하였다. 또한, 카자흐스탄 정부는 2015년 까지 카자흐스탄을 세계 50대 경쟁력 있는 국가로 진입시킨 다는 것을 국가목표로 선정, 산업다변화 및 교육, 훈련 강화를 통한 사회, 경제 각 부문의 경쟁력 증대를 추진하고 있다.

     

    2. 최근 경제동향

    카자흐스탄은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한 개방적인 시장경제 정책의 지속 추진과 카스피 해 원유개발 등 원유, 가스 산업의 발전을 바탕으로 2000년 이후 10% 수준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빠른 경제성장은 원유 등 풍부한 지하자원 및 카스피 해 원유개발 등을 목적으로 한 외국자본의 투자 증가에 기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원유자원 매장량을 세계 7위 수준으로 산정하고 있다. 우라늄, 금, 은, 구리, 아연, 망간 등도 세계 10위 내 매장량을 가지고 있으며, 알루미늄, 티타늄, 크롬, 니켈 등도 국제 경쟁력을 갖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경제는 2006년도에 10.6%의 실질성장을 보였으며, 2007년도 하반기 글로벌 자금경색에도 불구하고 2007년 성장률은 8.5%를 이루었다. 국제적 국가 연구기관 (EIU, Global Insight)들은 원유 가스 산업의 호조를 바탕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지속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1) 연도별 카자흐스탄 주요 경제지표 (2002~2007)
    연도별 카자흐스탄 주요 경제지표
    연도구분(단위)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인구(만 명) 1,486.6 1,495.1 1,511.0 1,521.7 1,538.0 1,556.5
    GDP 총액(억 텡게) 37,762 44,497 55,425 75,910 102,140 127,260
    (억 달러) (245) (249) (410.5) (632.5) (851.0) (1,060.5)
    실질성장률(%) 9.5% 9.3% 9.4% 9.4% 10.6% 8.9%
    1인당 GDP $1,631 $2,064 $2,700 $4,156 $5,100 $6,800
    월평균임금 (USD) 135.4 157.1 207.9 374.6 446 557.9
    평균환율 153.4 151.0 135.9 132.8 127.33 122.66
    무역(억불) 교역량 161.9 189.9 328.7 452.0 619.2 795.7
    수출 97.0 115.9 200.9 278.4 382.5 469.7
    수입 64.9 74.0 127.8 173.5 236.7 326.0
    무역수지 32.1 41.9 73.1 104.9 145.8 135.4
    외국인직접투자 (백만 달러) 4,106.4 4,624.5 8,317.3 6,616.5 10,437.1 10,669.1
    외환보유고 (억 달러) 35.7 49.6 92.7 70.69 203.7 385.3

    출처 : 카자흐스탄 중앙은행 및 통계청, WTA, Global Insight
    * 2007.9 기준

     

    3. 산업개황과 주요산업

    카자흐스탄 정부는 에너지 섹터의 의존에서 벗어나 비자원분야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차원의 노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카자흐스탄 산업구조는 석유ㆍ가스 관련 산업이 총 산업 생산의 53%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금융, 운송, 건설 등도 간접적으로 자원분야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자원분야 투자에 대한 정부금융 지원 및 세제 혜택을 강화하고, ‘Cluster Approach’ 방식을 채택하여 금속가공, 원유ㆍ천연가스 생산설비, 건설장비, 운송장비, 농업 및 섬유산업 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첨단 과학기술산업 및 농업육성, 사회기반시설 확충 등 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2030년까지의 장기종합개발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1) 석유ㆍ가스산업

    카자흐스탄의 BP가 확인한 석유 매장량은 2006년 현재 398억 배럴이며, 가스 매장량은 105.9조 입방피트로 집계된다. 다른 연구기관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의 잔존 가채 매장량 은 285억 배럴이며 예상 매장량은 920억 배럴로 추정된다. 한편, 미국 에너지 정보청은 카자흐스탄의 가채 가스매장량을 65~100 Tcf 로 추정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석유자 원의 30-40%가 해양지역에 위치하며 전체 상업적 매장량 중 약 2/3는 석유 및 컨덴세이트(초경질유)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매장량 중 대부분은 Tengiz, Karachaganak, Kashagan, Uzen 유전 등이 차지하고 있다.
    천연가스의 경우 수송망의 부족과 낮은 가스가격으로 생산한 가스는 수출하고 국내소비를 위한 가스는 주변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카자흐스탄 천연가스 국내 소비의 40%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석유ㆍ가스 수급 현황]

    카자흐스탄 석유ㆍ가스 수급 현황
    구 분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석유 매장량
    (10억 배럴)
    39.6 39.6 39.6 39.6 39.8 39.8
    생산량
    (1일, 천b/d)
    836 1,018 1,111 1,297 1,364 1,426
    소비량
    (1일, 천b/d)
    186 193 183 188 208 221
    가스 매장량(Tcm) 70.6 105.9 105.9 105.9 105.9 105.9
    생산량(Bcf/d) 1.0 1.0 1.3 2.0 2.3 2.4
    소비량(Bcf/d) 1.0 1.1 1.3 1.5 1.7 2.0

    출처 :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June 2007

     
    2) 광 업

    카자흐스탄 전체 수출소득의 30%, GDP의 27%, 총 고용의 19%를 차지하는 카자흐스탄 제2의 산업이다. 광업은 2004년에 12.8%의 높은 산업생산증가율을 보였으나 인프라 부족으로 2005년에는 3.4%의 증가에 그쳤다. 주요 생산품목으로는 철, 구리, 아연, 알루미늄 등이 있다. 철은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금속으로, 2005년 약 450 만 톤의 선철과, 320만 톤의 강판이 생산되었다. 카자흐스탄의 보유 광물은 우라늄, 크롬, 동, 아연, 망간 등 세계 10위 내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고, 알루미늄, 티타늄, 몰리브덴, 니켈 등 기타광물도 풍부한 편이다.

     
    3) 건설산업

    원유ㆍ가스 및 광물 자원의 국제 가격의 급속한 상승에 힘입어 카자흐스탄의 경제도 2000년 이후 연 10% 대의 고속 성장을 시현하였다. 이에 따라 아스타나 신도시 개발과 함께 알마티, 악타우, 아티라우 등을 중심으로 부동산 붐이 조성되면서 카자흐스탄의 부동산 가격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2007년에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알마티 우림 '애플타운' 조감도 입주를 시작한 '하이빌 아스타나'(2007)
    [알마티 우림 '애플타운' 조감도 협력기구 정상회의(2007)]     [입주를 시작한 '하이빌 아스타나'(2007)]

    ※ 참 고 - 부동산 시장에 대한 우려와 전망

    물론 부동산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하면서 상당 부분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카자흐스탄 역시 성장 과정에서 급증하는 대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해외 차입에 의존했는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등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경색되면서 이 같은 차입금이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이 경색되니 당연히 부동산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기존 아파트 거래가 막히고, 신규 분양도 힘들어지면서 자금력이 달리는 현지 건설 업체 일부가 공사를 중단하거나 시공을 늦추기도 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붕괴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현지 부동산 전문가들은 그 근거로 다음의 몇 가지를 꼽는다. 먼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부가 부동산 가격 급락을 좌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수 국민들이 모기지론을 통해 부동산을 구입해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하락은 신용 불량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 안정 차원에서 부동산 가격을 지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국제 유가 및 광물자원 가격 상승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부동산 가격을 뒷받침할 경제의 성장 동력이 가동되고 있다는 얘기다. 현지에 진출한 한 국내 건설사 관계자는 “아직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고 본다” 며 “고급 아파트들도 가격이 하락세가 아니며 안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안정 적인 모기지 시스템과 주택 및 부동산 보유 제한이 없는 점도 카자흐스탄 부동산 시장의 전망을 밝게 만드는 요소다.

     
    4) 농 업

    카자흐스탄은 세계 10대 곡물 생산 국가이자, CIS 국가 중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뒤를 이어 제 3위의 곡물 생산국가로서 전체 GDP 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8.5% 수준이다. 전체 농지 규모는 2005년 기준 14,842,000 ha 이며, 주요 농업 지대는 코스타나이주(14.2%), 알마티주(13.6%), 남카자흐스탄주(12.3%), 북카자흐스탄주(12.1%), 아크몰라주(11.7%), 동카자흐스탄주(9.9%) 등이다. 전반적으로 카자흐스탄의 농업분야는 높은 물류비용과 낙후된 생산설비로 인해 생산성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2004-2010년 농업발전계획을 발표하고 농업분야 육성을 추진하고 있어 농업생산성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곡물 이외에 카자흐스탄은 세계 4위의 면화생산국으로서 세계 생산량의 0.5%인 40만 톤의 면화를 매년 생산하고 있어 면화를 이용한 섬유산업 발전 추진 잠재력이 높은 상황이다. 면화재배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은 남카자흐스탄 주이다.

     
    5) 금융산업

    2001년부터 카자흐스탄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금융분야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GDP 대비 금융분야 자산규모는 이미 폴란드와 헝가리에 필적하는 수준이고 지금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금융분야는 2001년 이후 연평균 59% 성장하였으며, 2003년 이후부터는 73%라는 경이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금융 분야 성장 현황]

    금융 분야 성장 현황
    구분 연도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자산 (단위: 십억$) 39.6 39.6 39.6 39.6 39.8 39.8
    GDP 대비
    금융자산 비율
    186 193 183 188 208 221

    출처 : 카자흐스탄 중앙은행

    특히 지난 5년간 카자흐스탄 은행은 평균 2배 이상의 자산규모 신장과 함께 순이익도 평균2배 이상 확대된 상황이며 카자흐스탄 정부의 금융 분야 발전 추진에 힘입어 금융분야의 신장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알마티를 중앙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육성한다는 목표 하에 2008년 완공을 목표로 알마티에 “알마티 금융센터(Regional Financial Center of Almaty City: RFCA)” 건설 중이다.

     

    4. 교역 현황

    카자흐스탄 대외교역량이 2003년부터 최근 4년 동안 매년 100억 달러 이상씩 증가하는 급속한 증가를 유지한 결과 2007년 말 795억 달러를 돌파하였다. 이는 전년보다 거의 41.8% 늘어난 것으로서 2003년에 비하면 4년 사이에 무려 3.5배나 늘어난 규모이다. 교역수지는 2006년에 비해 2.1억 달러 증가해 거의 146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경제 전문가들은 "이는 카자흐스탄의 전체 수출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유와 지하광물 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수출금액이 많이 상승한 덕분"이라고 평가한다.

    1) 2003~2007연도별 카자흐스탄 교역 현황 (억 달러)
    2003~2007연도별 카자흐스탄 교역 현황
    구분 2003 2004 2005 2006 2007
    교역량 212.2 328.7
    (54.9%)
    452.0
    (37.5%)
    619.2
    (36.9%)
    795.7
    (41.8%)
    수출 129.0 200.9
    (55.7%)
    278.4
    (38.5%)
    382.5
    (37.3%)
    469.7
    (22.7%)
    수입 83.2 127.8
    (53.6%)
    173.5
    (35.7%)
    236.7
    (36.4%)
    326.0
    (37.7%)

    * ( ) 안은 전년대비 증가율 / 출처 : 카자흐스탄 통계청, WTA


     

  • eurasiaturk 2016-07-03 조회수:3181

    Kazakhstan

     

    종합개관

     

    1. 위치

    카자흐스탄의 위치도

    [카자흐스탄의 위치도]

    북위 48도, 동경 68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중앙아시아에 속한다. 북쪽으로 러시아연방, 동쪽으로 중국, 몽골, 남쪽으로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접경, 서쪽으로는 카스피해(海)에 면하고 있다. 총 국경선 길이는12,012 km (러시아 : 6,846km, 중국 : 1,533km, 우즈베키스탄 2,203km, 키르기스스탄 1,051km, 투르크메니스탄 379km) 이다.

     

    2. 일반개황

    데이터 테이블
    국 호 카자흐스탄 공화국 (Republic of Kazakhstan)
    ※ 카작어표기:Қазақстан, 러시아어표기:Казахстан
    독립일 1991년 12월 16일 (from Soviet Union)
    수 도 아스타나 (Astana:인구 61만 명)
    97.12 이전 수도 : 알마티 (Almaty : 인구 164만 명)
    영토면적 2,717,300㎢
    ※ 세계 9위, 남한의 약 27배, 한반도의 12배
    인 구 1,556.5만 명 (2007.12)
    ※ 남한 인구수의 약 1/3
    민족구성 카작인(57.6%, 872만), 러시아인(27.2%, 407만), 우크라이나인(3.1%, 47만), 우즈벡인(2.7%, 40만), 독일인(1.6%, 24만), 위구르인(1.5%, 22만), 따따르인(1.6%, 23만) 등 다민족국가.
    ※ 한민족(고려인)은 약 10만 명으로 0.7%(8번째)
    종 교 이슬람교 47%(대다수 수니파), 러시아정교 44%, 개신교 2%, 기타 7%
    언 어 카작어, 러시아어 공용어
    평균수명 67.55세 (남성 : 62.24세, 여성 : 73.16세)
    문맹률 0.5%
    대통령 및 임기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Nursultan Nazarbayev) / 임기 5년
    ※ 91.12 취임, 1999.2 -재선, 2005.12 -3선
    의 회 양원제 / 상원(Senate): 47명 하원(Majlis): 107명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제
    주요정당 누르오탄당, 루하니야트당, 아크졸당, 전국민사회민주당 등
    화폐단위 텡게 (Tenge) ※ 1$ ≒ 122.55 tenge (2007)
    국내총생산(GDP) 1025억$ (2007) ※ ppp기준 : 1615억$ (2007)
    1인당 GDP 6800$ (2007)
    수출입 수출액 : 448억 8천만 $ (2007)
    ※ 수출품목 : 석유와 석유제품, 철금속, 화학제품, 곡물 등
    수입액 : 299억 1천만 $ (2007)
    ※ 수입품목 : 기계, 장비, 금속제품, 식료품 등
    주요산업 석유, 가스 등 에너지산업, 철, 비철금속 등 채굴 및 가공업
    주요자원 원유(세계 7위, 가채 매장량 : 322억배럴, 추정매장량 : 966억 배럴), 천연가스, 아연, 텅스텐(매장량 세계 1위), 우라늄, 은, 연, 크롬(세계 2위), 구리, 망간(세계 3위) 등 다수 광물자원 보유
    행정구성 14개 주, 2개 특별시 (아스타나, 알마티)
    주요도시 심켄트(164만명), 카라간다(128만명), 코스타나이(97만), 타라즈(96만), 파블로다르(85만), 콕쉐타우(83만)
    주요경축일 1.1 새해, 3.8 여성의 날, 3.22 나우르즈, 5.1 카자흐스탄 국민화합의 날, 5.9 승전기념일, 8.30 제헌절, 10.25 공화국의 날, 12.16 독립기념일

     

    3. 국기

    국기

    파란 하늘과 미래의 희망을 상징하는 하늘색 바탕에, 깃대 쪽에는 ‘국가 장식(national ornamentation)’ 이라고 부르는 민족 전통의 무늬가 수직으로 있고, 중앙에는 32개의 햇살을 가진 금색 태양과 스텝 지역에 사는 독수리가 나는 모양의 금색 그림을 넣었다. 가로세로 비율은 2:1이다. 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후 1992년 6월 4일 제정하였다.

     

    4. 국가문장

    국가문장

    구소련 해체 후 독립하게 되면서 국가문장을 제정하였다. 하늘색은 하늘을, 노란색은 농업을 상징하는데, 유목 민족인 카작인들이 농업을 상징하는 노란색을 사용한 것은 소비에트 시절 카자흐스탄이 농업 중심지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또한 유니콘은 카자흐스탄의 독립을 상징한다. 중앙에 위치한 바퀴 모양의 문양은 유목 민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이는 사실 바퀴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카작인들이 전통 가옥인 ‘키으즈 위’를 위에서 보았을 때, 중앙에 위치한 ‘샹으락(돔 모양의 연기가 나는 부분)’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카자흐스탄 국가 통합의 상징이자 카작 민족의 유목민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5. 국가

    이미지

    Shamshi Kaldayakov (카작어: Шәмші Қалдаяқов)는 카작인 작 곡가이다. 그는 1930년 8월 15일에 태어났고, 1992년 2월 29일 알마티에서 사망했다. 1956년에 그는 예전부터 카자흐스탄 국민들 사이에 애국의 노래로 널리 불리던 ‘나의 카자흐스탄’ (카작어: Менің Қазақстаным)을 작곡했으나, 지금의 국가는 2006년에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변경한 것이다. 1992년부터 2006년 1월 6일까지는 과거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Kazakh SSR) 국가>의 가락에 새로운 가사를 붙인 노래를 공식국가로 불렀다.

    [Shamshi Kaldayakov]

    국가

    [카자흐스탄 국가 악보]

    데이터 테이블
    Kazakh(가사) English(가사)
    Алтын күн аспаны,
    Алтын дән даласы,
    Ерліктің дастаны -
    Еліме қарашы!

    Ежелден ер деген,
    Даңқымыз шықты ғой,
    Намысын бермеген,
    Қазағым мықты ғой!
    Қайырмасы:
    Менің елім, менің елім,
    Гүлің болып егілемін,
    Жырың болып төгілемін, елім!
    Туған жерім менің — Қазақстаным!

    Ұрпаққа жол ашқан,
    Кең байтақ жерім бар.
    Бірлігі жарасқан,
    Тәуелсіз елім бар.

    Қарсы алған уақытты,
    Мәңгілік досындай.
    Біздің ел бақытты,
    Біздің ел осындай!
    Қайырмасы:
    Sky of golden sun,
    Steppe of golden seed, [3]
    Legend of courage -
    Take a look at my country.

    From the antiquity
    Our heroic glory emerged,
    They did not give up their pride
    My Kazakh people are strong!

    Chorus:
    My country, my country,
    As your flower I will be planted,
    As your song I will stream, my country!
    My native land — My Kazakhstan!

    The way was opened to the posterity
    I have a vast land.
    Its unity is proper,
    I have an independent country.

    It welcomed the time
    Like an eternal friend,
    Our country is happy,
    Such is our country!
    Chorus:

     

    6. 참고문헌

    - 김일수 외, "중앙아시아의 거인 카자흐스탄", 궁리, 2008

    - CIA - The World Factbook 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

    - 위키피디아 www.wikipedia.org

    - 엔싸이버 두산백과 www.encyber.com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www.globalwindow.org

    - 국가정보원 www.nis.go.kr

    - 카자흐스탄 한인회 www.kazkorean.com

    - 월드맵파인더 www.worldmapfinder.com

    - 카자흐스탄 통계청 www.stat.kz

    - 카자흐스탄 중앙은행 www.nationalbank.kz

    - BP www.bp.com

    - 주 카자흐스탄 대사관 kaz.mofat.go.kr

    - 외교통상부 국가별정보DB countryinfo.mofat.go.kr

    - 한국관세청 customs.go.kr

    - 네이버뉴스 news.naver.com

    - 문화일보 기획 시리즈 "기후변화 최전선을 가다" www.munhwa.com/news/series.html?secode=1487

     

     

    자연환경

     

    1. 지형

    카자흐스탄의 지형도

    [카자흐스탄의 지형도]

    아티라우의 중심을 흐르는 우랄강 챠른 협곡아랄해의 위성사진 (1985)
    [아티라우의 중심을 흐르는 우랄강]   [챠른 협곡]                          [아랄해의 위성사진 (1985)]
    발하쉬호의 위성사진 아랄해의 위성사진 (2008)

    [발하쉬호의 위성사진]                [아랄해의 위성사진 (2008)]

     

    대부분이 산악지대인 동·남부와 동북부지역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토는 스텝지역 으로 평지이다. 천산산맥의 북단이 위치해 있는 동·남부지역은 7,010m의 한 텡그리 (Khan Tengri)산을 최고봉으로 해발 4,500m이상의 산들이 위치한 산악지대이다.

    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카자흐스탄 동부지역은 알타이 산맥 남단에 위치하고 있어 해발 2,000-3,000m에 이르는 산악지대와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강과 호수로는 아랄해, 시르다리야, 일리강, 이르티쉬강, 이심강, 우랄강과 챠른 협곡, 발카쉬호, 자이산호가 있다.

    북부지역은 대부분 스텝지역으로서 수목이 자라지 못하는 곳이나 일부 농업이 가능한 지역을 중심으로 1950년대 말부터 추진된 소련의 처녀지 개간정책으로 현재는 밀 등 곡물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북부지역 이남부터 남부에 이르는 영토는 사막 또는 흙사막 지역으로서 경작이 불가능하다. 아랄해 서쪽으로부터 카스피해에 이르기까지 우스티우르트(Ustyurt) 고원사막이 펼쳐져 있으며 아랄해 동․남쪽에 위치한 키질쿰(Kyzylkum) 사막은 우즈베키스탄과 공유하고 있다. 아랄해와 발하쉬(Balkash)호수 사이에는 베탁크달라(Bethakdala) 흙사막이 위치하고 있으며, 일리(Ili)강이 흘러 들어가는 발하쉬 호수는 아시아에서 4번째로 큰 호수로서 호수 동쪽 부분은 염수이고 서쪽부분은 담수이다.

    ※ 아랄해의 환경문제- (원인과 현황)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염호(鹽湖)인 중앙아시아의 아랄해가 급속한 수량감소와 오염에 신음하고 있다. ‘바다’란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거대한 호수였던 아랄해가 바닥을 보이게 된 가장 큰 원인은 60년대부터 구소련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했던 관개공사이다.

    소련은 주요 수원인 시르다리야강과 아무다리야강의 물길을 돌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에 목화밭 등 광대한 경작지를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로인해 아랄해의 수량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또 잉어, 철갑상어 등이 멸종해 연안어업이 폐업상태에 이르렀으며, 염분과 광물질 함유량의 증가와 강물을 타고 흘러 드는 살충제 및 화학비료 때문에 생태계에는 엄청난 피해가 초래됐다. 2개로 갈라진 아랄해의 북쪽 호수는 카자흐스탄에, 남쪽은 우즈베키스탄에 속하게 되었는데, 우즈벡 쪽 남아랄해는 2003년 다시 수면이 낮아져 동서로 나뉘었다. 3개가 된 호수의 총 면적은 1만7160㎢로 40년 전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복구 대책) 카자흐 정부는 2005년 다이크코카랄이라는 대규모 댐을 지어 북쪽에서 아랄해로 흘러오는 또 다른 강 시르다리야의 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카자흐 정부의 노력으로 북아랄해쪽은 최근 수면이 올라가 수상생물이 늘고 있다. 카자흐의 항구도시 아랄스크에 접했던 호안선은 100㎞나 후퇴했다가 지금은 25㎞ 지점까지 되돌아왔다. 문제는 남아랄해인데, 여전히 면화에 외화 수입을 의존하고 있는 우즈벡 정부는 사실상 아랄해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다리야는 계속 관개수로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아랄해는 해안선이 수백㎞씩 아래로 내려갔다. 1994년 1월 카자흐, 우즈베크,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아랄해 주변 5개국은 연간 예산의 1%씩을 갹출해 아랄해 복구를 위한 기금, 일명 ‘아랄 펀드(Aral Fund)’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즈벡 정부는 말라가는 아랄해를 그대로 두고 유전, 가스전 개발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6년 8월 우즈벡 정부는 국영 에너지회사 우즈벡네프테가즈, 러시아 루크오일, 한국 석유공사,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로 구성된 컨소시엄과 협정을 체결해 아랄해 에너지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남아랄해는 과거의 어촌도시들에서 호안선이 북쪽으로 200㎞ 이상 후퇴한 데다, 그나마 우즈벡 정부가 얼마 안 남은 호수 주변지역의 출입까지 통제하고 있어 ‘숨겨진 호수’가 돼버렸다. 2006년 세계은행이 아랄해 보전 계획에 본격적으로 착수했지만 대부분의 지원은 카자흐가 적극 추진하는 북아랄해 복원에 치중해 있다.

     

    2. 기후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영토가 방대할 뿐 아니라 구릉지가 많아 뚜렷한 대륙성 기후를 보이고 있다.
    - 겨울은 북부에서는 길고 추우며(1월 평균기온 -18°) 중부에서는 추운 편이나 남부에서는 온난한 편(1월 평균기온 -3°)
    - 여름은 보통 길고 건조한데 북부에서는 따뜻하고(7월 평균기온 19°) 중부는 더우며 남부는 무더운 날씨(7월 평균기온 28°-30°)

    카자흐스탄은 전반적으로 강우량이 적으며 카자흐스탄 전 지역에서 발생하는 강풍이 특징으로서 겨울에는 남서풍이 북부지역 을, 북동풍이 남부지역에 강하며 여름에는 북풍이 카자흐스탄 전 지역을 영향권으로 강하다.

     

    3. 토양 및 식생

    카자흐스탄의 행정구역

    [카자흐스탄의 행정구역]

    시베리아로 연속되는 북부는 토양이 밤색토양과 갈색토양으로 부식되었으나, 다른 대부분의 평야는 부식이 적은 회색토로서 알칼리성 토양이다. 이에 따라 식물도 반사막이나 사막성의 저목류이고, 동물은 야생토끼, 마르모트 등의 설치류와 여우, 늑대, 야생당나귀, 영양 등이 서식한다.

     

    4. 행정구역

    데이터 테이블
    주/특별시 수 도 면 적(km²) 인구수
    카라간디주 카라간디 428,000 128만 7천명
    악토베주 악토베 300,600 66만 천명
    동카자흐스탄주 오스케멘 283,300 89만 7천명
    크즐오르다주 크즐오르다 226,000 59만 명
    알마티주 탈디코르간 224,000 86만 명
    코스타나이주 코스타나이 196,000 97만 5천명
    망기스타우주 악타우 165,600 31만 6847명
    서카자흐스탄주 오랄 151,300 59만 9천명
    잠빌주 타라즈 144,000 96만 2천명
    파블로다르주 파블로다르 124,800 85만 천명
    북카자흐스탄주 페트로파블 123,200 58만 6천명
    아크몰라주 콕셰타우 121,400 82만 9천명
    남카자흐스탄주 쉼켄트 118,600 164만 4천명
    아티라우주 아티라우 118,600 38만 명
    ① 아스타나시 000,710.2 60만 2백 명
    ② 알마티시 000,324.8 122만 6천3백 명
    ※ 바이코누르시 000,057 7만 명

    1) 아스타나 (Astana)
    아스타나 도심지 아스타나 대통령궁
    [아스타나 도심지]                       [아스타나 대통령궁]
     

    옛 이름은 첼리노그라드(Tselinograd)이다. 이심강(江) 상류 연안에 있으며, 카자흐스탄 횡단철도와 남시베리아철도가 지나는 분기점이다. 원래 이름은 아크몰린스크(Akmolinsk)로, 1824년 요새로 만들어졌다. 19세기 중엽부터 도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뒤, 1868년 이후 러시아 지배 아래서 옛 카자흐스탄 지역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 뒤 1950년대 흐루쇼프(Nikita Sergeevich Khrushchyov)가 카자흐스탄 대초원을 밀밭으로 개간하면서 첼리노그라드(Tselinograd)로 이름이 바뀌었다. 첼리노그라드는 '처녀지(妻女地)의 도시'라는 뜻이다. 1991년 12월 카자흐스탄이 독립하면서 이듬해 다시 아크몰라(Akmola)로 고친 뒤, 1997년부터 수도가 되었다. 아스타나는 알마티에서 아크몰라로 수도를 옮긴 이듬해 새롭게 바뀐 명칭이다.

    아크몰린스크 시기부터 교역과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고, 1950년대 이후에는 북(北) 카자흐스탄 농업 개척의 중심도시로 발전하였다. 제육·제분·유지제조·맥주양조 등 농축산물 가공업과 농기계 및 수송용 기계, 건설자재 산업 등이 활발하다. 특히 수도(1997년 알마티에서 이전)가 된 이후 건설업이 빠르게 발전해, 1999년 31만 3000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2005년에는 5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2개의 철도가 지나는 교통 중심지이며, 농업대학·의과대학·교육대학·공과대학 등 교육기관을 비롯해 각종 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2004년 11월 서울특별시와 자매결연하였고, 한국의 건설업체도 여럿 진출해 있다.

    2) 알마티(Almaty)
    알마티 도심지 알마티 거리
    [알마티 도심지]                          [알마티 거리]  
    사유즈호우주선 발사 장면
    [사유즈호]                           [우주선 발사 장면]
     

    남동부의 자일리스키·알라타우산맥 산록의 해발고도 600~900m에 위치하며, 주위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기와 대기가 청정하다. 옛 이름 알마아타는 ‘사과의 아버지’라는 의미로, 19세기 러시아의 요새로 출발하여 베르니라고 불렀다. 1917년에는 인구 3만 4000명의 소도시였으나, 30년 투르크시프 철도(투르케스탄 시베리아 철도)의 개통으로 발전하였다. 민족 구성은 러시아인·카자흐인·우크라이나인·위구르인·타타르인·한국인 등이며 유럽풍의 도시이다.

    주요산업은 공업이며, 광산 야금용의 발전 장비, 농업용 기계공업, 포도통조림 등의 식품공업, 면공업이 발달하였다. 학술 문화의 중심지로서 카자흐종합대학이 있고, 교외의 스케이트링크인 메데우는 국제적으로도 유명하다. 인구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도시계획에 의해 공원이 정비되었고, 도로는 넓고 가로수가 무성하다.

    ※ 바이코누르 우주기지(Baikonur Cosmodrome)
    카자흐스탄 서남부 중심 도시인 크즐오르다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160km를 가면 시르다리야 강변에 자리 잡은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를 만날 수 있다. 1961년 4월 12일 아침 세계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지구 궤도로 비행할 때 탔던 우주선 보스톡(Vostok)이 발사된 곳이 바로 이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이다. 그 후 세계 최초의 여자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슈코바를 비롯하여 150여 명의 우주인들이 이곳에서 우주로 비행했고 우리 귀에 익은 우주 정거장 미르(mir), 사유즈(Soyuz), 프로그레스(Progres) 등이 이곳에서 발사되기도 했다. 현재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국기가 나란히 게양되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이 이 우주기지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소련이 와해된 이후 양국은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의 소유권 운영권 문제를 둘러싸고 지루한 협상을 벌인 끝에 2004년 1월 양국은 러시아가 2050년까지 이 우주기지를 사용하고 카자흐스탄은 연간 1억 5,000만 달러의 임대료를 러시아로부터 받는 데 합의한 바 있다. 러시아가 대부분의 군사용 로켓 발사를 러시아 북서쪽에 위치한 플레세츠크(Plessetsk)로 이전하여 지금은 통신 위성 발사 등 평화적인 목적의 로켓 발사기지로 이용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탑승한 우주선 발사도 이 바이코누르 기지에서 이루어졌다.

    3) 민족화합을 위한 행정구역 재편
    카자흐스탄의 14개 주와 주도

    [카자흐스탄의 14개 주와 주도]

    카자흐스탄은 1996년 행정구역 개편을 대대적으로 단행하였다. 이전까지는 주별로 특정 민족이 거주하는 비율이 높았었다. 따라서 카자흐스탄 정부는 국가 융합차원에서 특히 북부의 러시아인 중심주와 중부지역의 카자흐인 중심주를 하나의 주로 통합하는 방식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러시아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러시아 국경 쪽 주와 바로 아래의 카자흐인 중심주가 하나로 통합된다는 원칙에 따라 러시아인 중심의 코스타나이주와 카자흐인 중심의 투르가이주가 코스타나이주로 통합되었고, 파블로다르주와 북카자흐스탄주는 북카자흐스탄주로, 러시아인 중심의 동카자흐스탄주와 카자흐인 중심의 세미팔라친스크주가 동카자흐스탄주로 통합되었다. 또한 남수도 알마티에 인접한 탈디코르간주는 알마티주로 통합되었다. 이와 같은 인위적인 행정구역 합병은 지역단위 민족특성이 더욱 심화되는 것을 인위적으로 방지하려는 카자흐스탄 정부의 결정이기도 했으며, 다민족사회에서 개별 민족 집단의 특성이 두드러짐으로 인해 사회적인 혼란을 초래하기보다는 인위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서로 융화할 수 있도록 하는 카자흐스탄 정부의 노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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