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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 벨트 국가 알아보기

  • eurasiaturk 2016-07-03 조회수:837

    ukraine

     

     

     

    사회문화

     

    1. 교 육

    ㅇ 소비에트 체제의 평등이념에 따라 전반적 교육수준 매우 높은 편이나 독립이후 경제난에 따른 교육재정의 어려움으로 상당수 학교 폐교, 교사 직장이탈 현상이 늘어남.

    ㅇ 우크라이나는 현재 구소련식 교육 학제에서 미국식 학제로 교육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는 교육 개혁을 실시 중에 있으며, 일부 초.중.고와 대학에서는 이미 미국식 학제를 시행하고 있음.

     
    1) 교육 과정

    취학 전 교육(유치원)

     

    ㅇ 취학 전 교육기관으로 6~7세 아동을 대상으로 하며, 연령별로 구분 운영

    ㅇ 지역 내 해당 학군 유치원은 무료이나, 고액의 유료 사립 유치원도 운영되고 있음

    ㅇ 대부분 독립기관으로 운영되나, 초중등학교 병설 유치원도 있음

     

    일반 초.중.고등교육

     

    ㅇ 일반 초.중.고등학교는 2001년 이후 12학년제

          - 제1수준(4년) : 우리 초등학교 해당

          - 제2수준(5년) : 우리 중등학교 해당

          - 제3수준(3년) : 우리 고등학교 해당

    ㅇ 일반 초.중.고등교육 기관수 : 약 21,700개

    ㅇ 기타 예체능, 외국어 등 특수학교, 장애자학교, 기술학교 등도 운영되고 있음

    ㅇ 중등직업기술학교는 3-4년 과정의 농,공업 분야 기술 또는 전문기술을 교육하며, 일반학교 9학년 이수 후 진학함

     

    대학 교육

     

    ㅇ 제1수준: 기술학교

          - 4년제, 졸업 후 junior specialist 학위 취득

    ㅇ 제2수준: 전문대학

          - 4년제, 졸업 후 학사 학위 취득

    ㅇ 제3수준: 종합대학, 아카데미, 연구소

    ㅇ 2004년 현재 고등교육 기관은 총 966개 있으며, 그 중 제3수준 교육기관 (종합대학, 아카데미, 연구소 등)은 약 320개

     

    대학원 교육

     

    ㅇ 3-5년의 대학원 과정(아스피란투라)을 이수하고 논문이 통과되면 칸디다트(Ph.D.) 학위를 받는다.

    ㅇ 칸디다트 이후의 학위는 독토르 학위로 칸디다트 학위 취득 후 최소 5년이 경과되어야 한다.

     

    2. 여성 지위

    ㅇ 구소련 시절 여성의 완전고용 달성 목표에 따라 여성의 교육수준 및 사회활동 참여가 매우 활발한 상태

          - 여성의 학위 취득률이 72%로 남성보다 우위

          - 전체 취업 인구 중 여성 비율 52%

             여성 취업률 : 80%

          - 취업여성 중 43%가 고등교육 이수 (남성 34%)

          - 정년(55세) 이후에도 취업 경향

          - 중소기업의 30%를 여성이 운영

    ㅇ 다만, 여성의 고위직 진출에는 한계가 있으며 일반 직종의 보수수준 남성의 80% 정도

    ㅇ 독립 후 40만 여성이 구직을 위해 해외 이전(10만여 여성이 윤락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

     

    3. 의료

    ㅇ 구소련 시 높은 수준의 전국적 의료시설 및 의료진 보유

          - 병원 3,000여 개, 의사 22만 3천명, 의료종사자: 52만3천명

          - 인구 1만 명당 의사 47명 및 의료 종사요원 110명

    ㅇ 독립 이후 경제난으로 의료기기 및 의약품 부족 극심한 상황

          - 이에 따라 디프테리아, 콜레라, 결핵, 백일해 등 질병 및 사망률이 다소 높은 편임

          - 오데사 등 각지에서 AIDS 환자 급증

     

    4.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1986.4월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막대한 인적, 물적, 환경적 피해 유발 및 후유증이 아직도 막대하다 체르노빌 원전 내 4개 원자로 중 4호기에서 사고 발생하였다. 총 피해액은 미화1천3백억 불 이상으로 추산되며, 우크라이나 정부는 매년 정부예산을 체르노빌 피해 복구에 투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2003.4월 공개한 전 KGB 비밀문건 중에는 1986년 사고 이전부터 원자로 결함이 드러났었으며, 1982년에도 사고가 발생해 주재국과 벨로루시에 방사능이 방출된 바 있었음을 밝히는 문건 등이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일었다. 특히 유고슬라비아에서 제작된 체르노빌 발전소 원자로 물품에 결함이 있었으며, 1982년 방사능 누출 사고 후 전문가들은 사고가 재발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1) 피해 내역

    - 원전 주변 100개 마을 폐허화 (거주 불능) 및 원근 12개 주 2,000개 마을 방사능 피해

    - 원전을 중심으로 반경 30㎞이내 지역은 거주 및 사용 불능 지역화

    - 직.간접 우크라이나인 피해자수는 총 3백만 명 이상인 것으로 집계

    - 체르노빌 사고 관련 각종 정부 보상수혜자 150만 명(어린이 66만 명)

     
    2) 국민보건상 후유증(사고 발생 직후 수년간)
    체르노빌 원전사고체르노빌 원전사고체르노빌 원전사고

    [체르노빌 원전사고]

     

    - 88년 출산율이 86년 대비 30% 감소 (기형아 출산 불안에 따른 인공 유산 급증도 원인)

    - 기형아 출산, 출생 전 사망 배증

    - 유아 사망률 1.5~2.5배 증가 및 암 발생 급증 (특히 어린이 암환자 6.5~10배 증가)

    - 피해 지역 주민 60%가 갑상선계 질병 경험

     
    3) 사고 발생 후 갑상선계 질병 통계

    우크라이나

    - 사고 당시 18세 이하인 사람 중 1986-2001간 갑상선암 수술자: 2,071

    - 갑상선 계열 질병자 수 3.3백만 추정

     

    벨로루시

    - 2002년 현재 갑상선 암 환자: 8,602*어린이: 617 *어른 : 7,544

    - 사고발생 이후 어린이 갑상선 암 발생: 33.6배, 성인 : 2.5-7배

    - 사고 당시 18세 이하자 중 갑상선암 발생 가능자 수: 12,500여명

     
    4) 사후 대책

    G-7과 EU는 95년 MOU 발표를 통해 체르노빌 원전 폐쇄를 위한 대체 원전 건설비용, 체르노빌 사고기 안전시설 공사비 등의 지원을 약속한 바 있으나, 실제 자금 지원은 지연 상태이다.

     

    - 우크라이나는 2000.12월 체르노빌 원전 완전 폐쇄

    • 2007년 현재 제4호기를 덮고 있는 석관은 16년이 지났으며, 수용연수가 30년임을 고려하여 2008~9년 중 철관건설 계획을 갖고 현재까지 28개국으로부터 지원을 약속 받았음.

    - 제2차 석관 건설 소요액(추정) : 약 20억불

    - 28개국 지원 약속 액: 7.5억불

     

    5. 문 학

    중세의 우크라이나 문학작품은 12세기의 이고리 원정기 같은 중세 슬라브의 연대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독자적인 문학은 우크라이나의 소크라테스로 불리우는 18세기의 흐리홀리 스코보로다(Hrihorli Skovoroda)가 쓴 시와 철학에서부터 출발한다. 19세기 작가로 국민적 영응으로 추앙받는 농노 출신의 쉐브첸코(Taras Shevchenko)는 우크라이나어로 된 문학 작품을 쓴 최초의 대중적 작가이다. 20세기 초 프랑코(Ivan Franco)는 소설, 시, 드라마, 철학과 동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집필하였다. 구소련 통치 당시 많은 작가들이 소련의 억압과 지배에 대한 고통을 다룬 내용을 주제로 시를 썼으며 그중 대표적인 작가가 바실 스투스 (Vasyl Stus)이다. (소련의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사망).

     

    6. 음 악

    우크라이나 민족음악은 16∼17세기 음유시인인 코브자르(Kobzar)의 기타와 비슷한 악기인 코즈바(Kozba)로 연주한 코작 영웅의 노래가 기원이다. 음악의 내용은 백년 이상된 서사시와 코작인의 업적을 찬미하는 발라드 서정시인 두마스(Dumas)에 뿌리를 두고 있다. 18세기에 들어서는 45개 현으로 된 반두라(Bandura)라는 악기가 코즈바를 대체하게 되며, 반두라 성가대가 유행함에 따라 결국 반두라는 우크라이나의 상징적인 악기가 되었다. 17∼18세기는 ‘코작 바로크’라고 불리우는 우크라이나의 문화 전성기에 보르트냔스키(Bortnyansky), 베레조프스키(M. Berezovsky), 베델(A. Vedel) 등의 우크라이나 클래식 음악가들이 활동하였다. 1867년에 초연을 한 네오 르네상스 풍의 중후한 국립 오페라 하우스(National Taras Shevchenko Opera House of Ukraine)가 오페라, 발레 등 우크라이나 공연예술의 중심지이다.

    중세시대의 미술은 주로 종교를 주제로 한 프레스코, 모자이크, 성상 (Icon) 등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중에서도 성상이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미술 장르이다. 코작 집단의 부흥시기에는 민족주의를 주제로 한 종교 미술이 성행했으며, 이를 위한 전문 미술학교도 등장하였다. 20세기에는 현실주의의 등장과 함께 전통적인 성상과 비잔틴 풍이 조화된 보이축(Mykhailo Boichuk)의 네오비잔틴 양식 등 실험적 작품이 성행하였다.

     

    7. 축제 및 문화행사

    □ 우크라이나의 정교 크리스마스 (1월 7일)

    □ 파스하(부활절) (4월 말)

        정교도 교회의 연중 가장 큰 축제로 자정 예배로 시작해 전국 교회 주변에서 종교 축제행사가 열림.

    □ ‘Kyiv Travnevy(키예프 5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는 5월 한달 간 축제가 개최되어 각종 공연 등 문화행사가 열리며, 5월 마지막 일요일이‘키예프의 날’로 정해져 있음.

    □ 크림반도 축제 (8월, 얄타)

    □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 (8월 24일)

     

    8. 언 론

    1) 신문사
    데이터 테이블
    신문명 창간 발행부수 종류 비고

    Fakty I Komentarii
    (러시아어)

    1997.8 85만 일간 최대 종합일간지
    Segodnia
    (러시아어)
    1997.12 67만 일간 종합일간지
    Holos Ukrainy
    (우크라이나어)
    1991.1 38만 일간 국회 관관지
    Kitevskiy Kurier
    (우크라이나어)
    1990.9 19만 일간 정부기관지
    Kiyevskiye Vedomosti
    (러시아어)
    1992.7 17만 일간 종합일간지
    Ukrinform Moloda
    (우크라이나어)
    1991.7 10만 일간 정치, 경제, 사회
    Ukrinform news form Ukraine
    (영문)
    1985   일간 정치, 경제, 사회
    Nezavisimost
    (현지어)
    1938 7만 주간 정치, 사회이슈
    Vecherniy kiev
    (현지어)
    1919 6만 주간

    사회이슈,
    키예프 소식

    Biznes
    (현지어)
    1992.12 5만 주간 비즈니스, 법령 정보
    Zerkalo Nedell
    (현지어)
    1994 4만 주간 정치, 경제, 국제, 생활정보
    Delovaya Ukrainea
    (현지어)
    1992.1 4만 주간 정치, 사회, 비지니스
    Kiev Post
    (영문)
    1995.11 3만 주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2) 잡지사
    데이터 테이블
    잡지명 창간해 발행부수 종류 비고
    Economika Ukrainy
    (현지어)
    1958 9만 월간 경제
    politychna Dumka
    (현지어)
    1993 10만 계간 정치
    Polityka Chas
    (현지어)
    1991 10만 월간 국제관계
    3) TV방송국
    데이터 테이블
    구분 방송사명 설립연도 성격 비고
    국영 TV UT-1 : 국영1채널 1995 종합 ※국영 Radio 방송 : UR1, UR2, UR3
    UT-2 : 국영2채널 1995 종합
    민영 TV Studio 1+1 1995 종합 최대 민영 방송사
    INTER 1996 종합 일부 러시아어 방송
    ICTV 1992 종합  
    New Channer 1998 종합  
    Tet-a-Tet   오락  
    TONIS 1992 종합  
    UTAR 1991 종합  
    Gravis   종합  

     

     

     

  • eurasiaturk 2016-07-03 조회수:947

    ukraine

     

     

     역사

     

     

    기원전 3,500년경부터 기원 전후에 이르는 기간 중 현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는 킴메리, 스키타이, 사르마티아인들이, 기원후 1,000년 동안에는 고트족, 훈족, 불가리아인, 아바르, 하바르, 마자르, 페체네그 민족 등이 출현, 명멸하기를 거듭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에는 기원전 수세기 동안 타우리,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기원후 중세까지 아르메니아, 슬로박, 제노아, 투르크, 타타르인들이 거주하였으며, 현재도 크림에는 이들의 후손과 문화가 남아 있다. 카르파티아(Carpathia) 산맥 북부지역이 본거지로 추정되는 슬라브 민족이 7세기 초 사방으로 분산, 이동하면서 드니프로(Dnipro)강 서안에 동슬라브 민족이 정착하였다.

     

    1. 키예프공국

    8~9세기 동슬라브민족 최초 봉건국가인 키예프 루시(Kyiv Rus)가 키예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북부 발틱해에서 남부 흑해까지, 동부 볼가(Volga) 강에서 서부 티사(Tisa)강에 이르는 지역을 영토로 삼았다. 키예프는 1500년 전 건설되었으며 10~12세기경 인구는 약 15만 명으로 추정된다.
    9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초반까지 200여 년 간 키예프 루시는 봉건국가로서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특히 볼로디미르 대공(Volodymyr the Great)치세(980~1015)에는 기독교 수용(988년) 및 비잔틴 문화 도입 등 문화적으로도 크게 융성하였다.
    1132년 므스티슬라프(Mstyslav)왕 사후, 왕자들간의 후계 다툼으로 키예프 루시는 여러 공국으로 분할되고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223년부터 3차례에 걸친 몽고족의 침입을 받고 1240년 키예프가 몽고족에 의해 폐허로 변하면서 키예프 루시는 멸망하기에 이른다.
    키예프공국은 당시 유럽에서 강력한 국가였으며, 후일 우크라이나 국가 정체성 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2. 갈라치아, 볼하니아 공국

    우크라이나 땅에는 키예프 공국의 뒤를 이어 갈리치아(Galicia, Halych)와 볼히니아(Volhynia, Volodymyr-Volynskii) 공국이 그 뒤를 이었다. 갈리치아와 볼히니아는 합병, 분열되다가 결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의해 정복되었다.

     

    3. 코자크 헤티만국

    17세기 중반에는 우크라이나 중부에 코자크 헤티만국(Cossack Hetmanate)이 세워져 백 년 이상 모스크바 공국(Muscovy)의 압력을 견뎌냈으나, 결국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러시아에 의해 분할되었다. 그 후 18세기 후반에 폴란드 분할을 통해 우크라이나 중부와 동부는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고 서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되었다.

     

    4. 우크라이나의 분열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오스트리아 지배 하의 서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지배 하의 동부 우크라이나가 각각 독립을 선언, 1920년에는 동서 통일을 선언했으나 외부 군대의 침략으로 신생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오래 가지 못하였다. 결국 1922년에 서쪽은 폴란드, 동쪽은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가 되었다.

     

    5. 소비에트 연방령 우크라이나

     

    6. 제2차 세계대전-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편입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소비에트 연방은 폴란드를 침공, 우크라이나 서부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로 만들었다. 1941년에는 독일군과 추축군이 소비에트 연방의 적군을 쳐부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영웅 도시'라 칭한 키예프 전투에서는 66만 명이 넘는 소비에트 연방군이 포로로 잡혔다. 처음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곧 대량 학살을 시작하여 유대인들과 우크라이나인 민간인들을 죽이거나 강제 추방하였다. 마을 전체를 태워 없애기도 하였다. 결국 우크라이나인들은 독일의 지배가 소비에트 연방의 지배보다도 악랄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전쟁 중과 독일 치하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5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포함, 7백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갈리치아 지방에서는 폴란드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끼리 서로 집단 학살을 저지르기도 한 끔찍한 시기였다. 독일과의 전투로 소련군은 약 1천 1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는데 그 중 4분의 1(270만 명)이 우크라이나계였다. 우크라이나 민족은 추축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 첫 민족이 되었고(카르파티아-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엄청났다. 1945년에는 소련방내 러시아, 벨로루시와 함께 유엔 창설 회원국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소비에트 연방령 우크라이나는 서쪽으로 확장되어 우크라이나인들이 사는 땅을 거의 모두 포함하게 되었다. 1954년에는 우크라이나에 의해 러시아 본토와 단절되어 있던 크림 반도가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령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니키타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우애를 과시하기 위해 페레야슬라우 조약(코자크 헤티만국이 모스크바 짜르의 보호를 요청)의 300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에 크림 반도를 선물한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독립 후 양국 간의 분쟁 소지가 된다.

     

    7. 독 립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이후 소련 중앙정부의 장악력이 약화됨에 따라 1991.8.24 우크라이나 최고회의는 독립선언법을 채택하여 독립을 선언하였고 1991.12.1 국민투표로 최종 확정하였다. 1991.12.5 레오니드 크라프축(Leonid Kravchuk)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1991.12.8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로루시 3개국 정상간에 소련방 탈퇴 문서에 정식 서명하였다

     

    8. 독립 후

    독립 후 94. 3월, 98. 3월, 2002. 3월, 2006.3월 각각 제 2, 3, 4, 5대 총선이 있었다. 1994. 5월, 제2대 대통령으로 레오니드 쿠츠마(Leonid Kuchma)가 당선, 1999. 10월 제3대 대통령으로 재선되었고, 2004. 11월 제4대 대통령 선거부정으로 오렌지 혁명 발발, 2005. 1월 빅토르 유쉔코(Viktor YUSHCHENKO) 야당후보가 제 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1. 양국 관계 개관

    데이터 테이블
    구분 한국
    관계수립 수교일 :1992-02-10
    공관계설 주 우크라이나 주 한
    상주: 1992.12 상주: 1997.11
    겸임국 그루지야, 몰도바  
    주요 협정체결

    - 과학기술협력협정(92.7)

    - 우편 및 전기통신부문 협력협정(95.5)

    - 무역협정(95.11)

    - 투자보장협정, 항공협정(96.12)

    - 이중과세방지협정(99.9)

    - 원자력협력협정(2001.7)

    - 관광협력협정, 복수사증교환각서(2001.10)

    - 군사비밀보호협정(2003.4)

    - 세관협정(2003.5)

    - 무상원조·기술협력협정(2005.10)

    - 기업인복수사증교환각서, 사증수수료면제 및 무사 증입국 교환각서, 외교관여권사증면제협정(2006.6)

    - 원자력협정(2007.6)

    - 우주협력협정(2007.8)

    - 방산, 군수협정(2007.8)

    - 관광협정(2009.7)

    - 문화협정(2009.8)

    - 해운협정(2009.8)

    주요 진출 기업

    -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 에코비스

    - 대우통신(합작)

     

    [한-우크라이나 교역통계]

    데이터 테이블
    년도 수출 수입 수지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금액
    2001 173 19.6 195 -39.1 -21
    2002 220 27.1 230 18.1 -10
    2003 358 62.3 243 5.4 115
    2004 493 37.9 584 140.5 -90
    2005 687 39.2 280 -52 406
    2006 884 28.8 218 -22.1 666
    2007 1,546 74.8 295 34.9 1,252
    2008 1,773 14.7 824 179.8 949
    2009.1-9 306 -80.0 530 19.6 -224

    정보원 : 한국 관세청

     

    2. 정무관계

    우크라이나는 92년 외교관계 수립 이후 광범위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왔다. 양국의 국제적 위상 및 잠재력에 비추어 인사교류 및 실질협력의 발전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양국은 경제. 통상협력을 강화해 왔으나, 양국의 경제력 및 잠재력에 상응하는 실질협력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 양국은 UN 등 각종 국제무대에서 상호협력해 왔다.

     

    - 우크라이나는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 및 남북대화 노력 지지

    - 우리는 2000~1년간 우크라이나의 안보리이사국 진출지지

     
    1) 외교 일지
    • 91.12.30 한국, 우크라이나 국가 승인
    • 92.2.10 외교관계 수립
    • 92.12 주우크라이나 대사관 개설
    2) 주요 인사교류

    데이터 테이블
    우리인사 방우 우크라이나인사 방한
    • 92.6 이상옥 외무부장관 공식 방문
    • 95.7 최종환 한·CIS 경제협회 회장 방문(경제사절단 인솔)
    • 95.8 한-우 의원친선협회 대표단 방문
    • 98.9 한-우 의원친선협회 대표단 방문
    • 98.9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 방문
    • (제1차 한·우크라이나 무역공동위개최)
    • 01.7 김영환 과기부 장관 방문
    • (제1차 과기공동위, 원자력 협정 서명)
    • 01.8 최성홍 외무차관 방문
    • 01.11한-우 의원친선협회 대표단 방문
    • 02.4 김종호 국회부의장 방문
    • 02.8 국회 산업자원 위원회 대표단 방문
    • 04.4 전윤철 감사원장 방문
    • 05.5 윤재식 대법관 방문
    • 05.10이해찬 국무총리 방문
    • 06.7 한.우친선협회 대표단 방문
    • 06.8 정상명 검찰총장 방문
    • 06.10임채정국회의장 방문
    • 07.6 이재훈 산자부 제2차관 방문
    • 08.5 EBRD 연차총회 대표단 방문(배국환 기획재정부 차관)
    • 08.7 지식공유사업 대표단 방문(KDI 최종찬 전장관)
    • 08.8 지식공유사업 대표단 방문(KDI 권오규 전총리)
    • 08.8 문희상 국회부의장 방문
    • 08.10 임채진 검찰 총장 방문
    • 08.10 통외통위원단 방문 (국정 감사단)
    • 09.4 박계동 국회사무총장 방문
    • 94.7 Prozhivalskiy 체신부장관 방한
    • (UPU 총회 참석)
    • 95.3 Moroz 최고회의 의장 공식 방한
    • 95.11Storizhko 과학기술장관 방한
    • 95.11Udovenko 외무장관 방한
    • 96.12Kuchma 대통령 방한
    • 00.5 Shatkovskyi 정무부차관 방한(군사비밀보호협정 협상)
    • 00.6 Kremen 교육과학부장관 방한
    • 00.11Flush 최고회의의장 방한
    • 01.3 Kuchma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 방한
    • 01.4 Kravchuk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 방한01.10Symonenko 감사원장 방한
    • 03.12Shnypko 내각부 차관,
    • Kuleba 외무부 아태차관보 등 방한(제2차 한-우 무역공동위 개최)
    • 04.6 Gryshchenko 외무장관 방한
    • 06.4 Medvedko 검찰총장 방한
    • 06.12Victor Yushchenko 대통령 방한
    • 08.6 막수타 경제차관 타바쉬니크 의원, 까라까이 의원 등 방한
    • 09.5 Lutsenko 내무장관 방한
    • 09.6 Tymoshenko 총리 방한

    3) 양자간 협의체 운영 현황

    데이터 테이블
      한.우 고위 정책 협의회 무역공동위 과학공동위
    제1차 회의 96.09 키예프 98. 09, 키예프 01.07, 키예프
    제2차 회의 02.11 서울 03.12, 서울 05.06, 서울
    제3차 회의 04.12 키예프 06.12 서울 07.06, 키예프
    제4차 회의 06.10 키예프 08.10 키예프
    (무역경제공동위로 격상)
     
    제5차 회의 09.02 서울    

     

    3. 문화관계

    2001년 이후 우리 예술단 주재국 공연 등 각종 문화행사 개최

     

    ㅇ 2001.5 “정동극장” Kyiv Days 참가 (4회 공연)

    ㅇ 2001.12 한.우 수교 10주년 학술회의(키예프 국립대)

    ㅇ 2002.2.7 한.우 수교 10주년 경축 음악회

         - 전영혜 경희대 교수등이 우크라이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

    ㅇ 2002.2.15 한국 영화제(한국영화 5편 상영)

    ㅇ 2002.5.24 금호 4중주단 Kyiv Travnevy 축제 참여

    ㅇ 2003.10 베세토 오페라단 ‘카르멘’ 키예프 및 오데사 공연

    ㅇ 2004.5.29 국립국악원 전통무용단 (Kyiv Travnevy 축제 참여)

    ㅇ 2004.6.28∼7.2 한국 영화제(한국영화 3편 상영)

    ㅇ 2005.5.29 장사익 공연단 공연(Kyiv Travnevy 축제 참여)

    ㅇ 2005.10.5~11.7 한국 영화제(우크라이나 주요 도시 순회 상영)

    ㅇ 2005.10.6 손경순 예전무용단 (제10회 고려인 문화페스티발 참여)

    ㅇ 2005.11 국립중앙박물관 재단소속 전통가무단

    ㅇ 2006.5 두드락공연단(Kyiv Travnevy 축제참여)

    ㅇ 2006.5.28 한국의 밤 행사 개최

    o 2006.6.1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단 방문

    o 2006.7.2 외교안보연구원 및 외교아카데미 협력 지원(조중표 원장 방문 7.2~4)

    o 2006.10.5~8 한국 문화 주간 행사(‘몰개’ 공연, 고려인 교민 등700여명 참석)

    o 2006.10.8 고려인 문화 축제 개최(심페로폴)

    o 2007.3.10~11 동양어학교 한국어 경시대회 지원

    o 2007.5.24~26 퓨전 국악단 “림” 키예프, 심페로폴 공연

    o 2007.6.22~23 주 우크라이나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

    o 2007.7.1~2 한•우 학술회의

    o 2007.7.3 한국 문학의 밤 (시 낭송회)

    o 2007.9.20~21 2008 고려인 문화 축제 체르놉찌

    o 2007.10.11~21 우크라이나 한국영화제 개최, 청년 문화봉사단 “아우름” 사물놀이 공연

    o 2007.11.27~30 국악 공연단 “아우름” 지방 순회공연

    o 2008.4.3~5 제3회 주 우크라이나 한국 대사배 태권도 대회

    o 2008.6.1 한국의 밤 행사 개최

    o 2008.6.27~29 주 우크라이나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

    o 2008.7.2 한•우크라이나 학술교류 대회

    o 2008.10.6 아시아 영화제 개최 지원

    o 2008.10.22~24 고려인 문화 축제 개최(니꼴라예프)

    o 2009.3.26 KIEV TV 한국드라마 “대장금” 방영

    o 2009.4.9~12 동양어학교 한국어 경시 대회 지원

    o 2009.4.9~10 대학교 한국어 경시 대회 지원

    o 2009.5.24 한국의 밤 행사 개최

    o 2009.6.1~13 한국 전통 무용 강좌 개설 및 악기•소품 지원

    o 2009.6.26~28 한·우크라이나 학술교류 대회

     

    4. 한국어 교육과정 개설 현황

    ㅇ 키예프 국립대학교 동양어대학

    ㅇ 키예프 국립 외국어대학교

    ㅇ 키예프 국제대학

    ㅇ 클로브스키 외국어학교

    ㅇ 동양어 특수학교

    ㅇ 하리코프 181 정수리학교(한국어 의무교육)

     

     

     

  • eurasiaturk 2016-07-03 조회수:764

    ukraine

      

     

    정치/경제

     

     

    정 치

     

    1. 정치 개관

    ☞ 대통령 우위의 이원집정부 체제로 정당정치가 아직은 정착되지 못함.
    - 대통령의 당적 보유금지, 백여 개에 달하는 군소 정당의 난립, 의원들의 잦은 당적 변경 등으로 안정적인 정국 운영에 다소 어려움이 있음.
    - 현재 의회에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단일 여당은 없으며, 10수개 군소 정당이 연합, 여당 역할을 수행
    ☞ 구소련 시대의 기득권층과 독립 후 등장한 신흥기업인(Oligarchy)들이 의회에 대거 진출
    - 법령 및 정책 결정과정에서 특정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경우가 상당수 있음.
    ☞ 언론의 독립성 및 권력비판. 견제기능이 아직 확립되지 못하였으나, 2004. 12월 'Orange 혁명’이후 상당한 정도로 개선되고 있음.

     

    2. 정치약사

    1) 독립~제3대 대선(1999. 10월)이전까지

    o 91. 8. 24 우크라이나 최고회의 “독립선언법”승인
    o 91. 12.1 "독립선언법“을 국민투표로 최종 확정(90% 지지)
    - 독립 첫해에 140여 개 국가로부터 국가 승인
    o 91. 12 초대 대통령 선거
    - 12. 5 Kravchuk 초대 대통령 선출
    o 92. 4 크리미아 지역에 대해 자치공화국 지위 부여
    - 분할 독립 움직임 무마
    o 94. 1. 14 우크라이나, 미국, 러시아 3국 정상간 우크라이나 핵무기 폐기 및 이에 따른 보상원칙 합의
    o 94. 3 총선 실시
    - 친러 좌익세력이 크게 득세(공산당, 사회주의자당, 농민당 등 좌익계 정당이 1/3정도 의석 차지)하여 실질적으로 의회 장악
    o 94. 6 제2대 대통령 선거
    - 1차 선거에서는 Kravchuk 전 대통령이 리드하였으나, 2차 투표에서 Kuchma의 승리로 결말
    - 선거운동 과정에서 Kuchma는 러시아와의 정치, 경제 유대강화를 주장 한 반면, Kravchuk은 대서방 관계강화를 주장
    o 96. 6. 28 신헌법 채택
    o 98. 3. 29 총선실시
    - 지역구, 정당명부에 의한 비례대표제로 각각 225명씩 450명 선출
    - 10여 개 군소정당이 연합, 여당 역할 수행

    99. 11월 제3대 대선 이후

    o 99.11.14 Kuchma 대통령과 시모넨코 공산당 후보간 결선 투표
    - 공산주의로의 회귀 반대세력 및 젊은 층 유권자의 지지로 Kucham 대통령이 큰 표차로 재선(56.25%대 37.8%)
    o 99.11.30 Kuchma 대통령 제3대 대통령 취임
    - EU 가입 및 친서방, 러시아와의 전략적 동반자관계 강화 등을 주요
    외교 목표로 제시
    - 대선 압승을 배경으로 강력한 개혁정책 추진
    o 2000.4.16 국민투표 실시
    - Kuchma 대통령은 개혁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되어 온 국회 내 반정부세력 견제 등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 압도적 찬성표 획득
    o 2001.3.9 Kuchma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 발생
    - 2001. 1월 Kuchma 대통령은 Yushchenko 총리와 함께 개혁추진 성향의 대표적 인물인 Tymoshenko 연료.에너지담당 부총리를 전격 해임.
    - 2001년초 언론인 Gongadze 살해사건 관련 Kuchma 대통령의 연루를 시사하는 녹음테이프가 공개됨.
    - Kuchma 대통령은 94년 취임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였으나, 확고한 권력장악으로 위기 극복

    3) 2002. 3. 31 총선

    o 해임된 Yushchenko 총리는 ‘Our Ukraine' 정당연합을 창설,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
    - Our Ukraine은 Rukh당, 개혁질서당, 기민당 등 10개의 정당연합체
    o 친정부 여당 역할을 수행해 온 중도 성향의 5개 정당(노동당, 인민당, 지역당, 농민당, 기업가연맹당)은 ‘For a United Ukraine' 정당연합을 창설
    o 2002.3.31 총선에서 Our Ukraine 정당연합이 승리
    - 친 정부 성향의 For a United Ukraine 정당연합도 100석을 상회하는 의석을 확보하였고, 공산당도 여전히 20%의 지지율 득표

    4) 헌법개정 추진

    o 2002.8월, Kuchma 대통령이 독립기념일 식사에서 정치체제 개혁 필요성 제기
    o 2004.4.8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권한 축소 및 국회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헌법개정안 부결
    o 2004.11.22 이후 전개된 ‘Orange 혁명’ 과정에서 여야간 대타협을 통해 의회중심제를 요지로 한 헌법개정안 채택

    ※ 헌법개정 요지

    1. 국회가 국무총리, 국무위원 및 기타 중앙정부의 기관장에 대한 임면권을 가짐
    (현행 대통령 중심제에서 의회 중심제로 변경).
    - 국무총리는 원내 다수당의 제의로 대통령이 임명 제청
    - 각료 중 외무, 국방 및 국가보안부장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임명 제청
    - 나머지 모든 국무위원 및 중앙정부 기관의 장에 대해서는 국무총리가 임명 제청
    2. 새 대통령 선출 시 국무총리(및 내각)는 총사퇴
    - 다만, 2004년 대선 후 구성되는 내각 및 국무총리는 2006년 총선으로 새 국회 출범 시 사퇴
    3. 국회의원 임기는 5년으로 연장(현 국회의원 임기는 4년)
    - 정당명부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은 당적 이탈 시 의원직 상실
    4. 대통령은 다음의 경우에 국회 해산 가능
    - 국회 개원 1개월 내에 원내 다수당(연립) 구성에 실패 시
    - 내각 사퇴 후 6개월 이내 신 내각 구성 실패 시
    - 정기국회 개원 후 30일내 본회의 소집 불가시
    5. 대통령 유고 시 권한대행은 국회의장이 수행.
    6. 동 개헌안의 발효시기는 국회 1회독을 마친 지방정부 조직에 관한 헌법조항 개정안 (법안 3207-1호)이 2005.9.1까지 채택되는 경우는 동 시기에 맞추어 발효하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2006.1.1부터 발효함.

     

    3. 최근 정세

    1) 제4대 대통령 선거

    o 제1차 투표(2004.10.31) 및 결선투표(2004.11.21)에 이어 재투표(2004.12. 26)에서 유쉔코 야당후보가 대통령에 당선

     

          - 결선투표 결과 Yanukovych 여당후보가 당선된 것으로 2004. 11. 24 발표되었으나, 야당 측이 결선투표를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이에 불복하여 장기간의 대규모 옥외집회를 개최하여 여야 대 타협과 대법원 판결을 거쳐 2004.12.26 재투표를 실시함(Orange혁명).

     

    ※ Orange 혁명

    ☞ 발 단
    대통령 선거 제1차 투표(2004. 10. 31)에서 여.야 후보 모두 총 투표의 과반수 확보 실패에 이어 실시된 결선투표(2004. 11. 21)에서 Yanukovych 여당후보가 Yushchenko 야당후보를 87만여 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발표(11.24)되자, 야권은 동 결과가 출구조사와 상반된다고 하면서 재선거 실시를 주장(11. 27)하면서 지지자들에게 군중집회 참여를 독려.

    ☞ 주 요 경 과
    · 11. 22(월)
    야권은 결선투표 다음날인 11. 22(월) 이른 아침부터 키예프 시내 독립광장 주변에 5만 명 정도의 대규모 옥외 군중집회를 개최하여 결선투표에서 부정투표가 엄청난 규모로 자행되었다고 하면서 중앙선관위의 투표집계 현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국회의장에게 국회 특별회의 소집을 요구. 중앙선관위가 1차 투표 때와는 달리 개표결과를 신속히 발표했는데, 선거 다음 날인 11. 22(월) 오후에 2차 투표의 99.38%에 대한 개표결과를 발표하여 중앙선관위가 Yanukovych 여당후보의 승리를 조기에 공식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야권의 의구심을 증폭.
    · 11. 24(수)
    야권에서 11. 24(수) 결선투표 재실시를 제의한지 몇 시간 안 되어 선관위가 2차 투표 결과를 공식 발표하여 Yanukovych 여당후보의 승리를 선언하자, 야권은 구국위원회를 결성하고 국민들에게 총파업을 촉구.
    · 11. 25(목)
    대법원이 선거결과에 대한 야당의 이의신청을 접수하고, 폴란드 및 리투아니아 대통령, Solana EU 고위대표, OSCE 사무총장 등이 사태 중재협의(Round Table)를 위한 우크라이나 방문 결정으로 동 11. 25 저녁부터 군중시위 열기가 현저히 확산되어 독립광장 주변 시위대 규모가 30만에 이름.
    · 11. 27(토)
    국회가 결선투표 무효를 결정한 데 이어 국방부장관이 군의 정치적 중립을 선언.
    · 11. 28(일)에 Kuchma 대통령이 국가 안보.방위위원회를 소집하여 위기상황 타개방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남동부 지역에서 대규모의 지방정부 대표자 회의가 개최되어 11. 27 국회결정을 규탄하고 중앙정부로부터의 분리.이탈 불사의사를 표명함.
    · 11. 30(화)
    남동부 지역의 분리움직임이 진정된 가운데 정치적 해결을 위한 국회 내 여야가 협상을 이어감. ·
    12. 1(수)
    국회에서 Yanukovych 총리 정부에 대한 불신임이 결의되고 Kuchma 대통령, 여야 대통령 후보 및 외부 중재인이 참가한 제2차 중재회의에서 정치적 타협안이 합의됨.
    (무력불사용, 대법원 판결 이후 선거절차 종결, 헌법/관련법 개정 및 신정부 구성 등)
    · 12. 3(금)
    대법원이 11. 21자 결선투표 결과 무효 및 12. 26 결선투표 재실시를 결정하고 중앙선거관리 위원회 경질을 요청함.
    · 12. 8(수), 여야 대타협으로 국회에서 헌법개정안, 대통령 선거법안 일괄통과 및 중앙 선거관리위원 교체를 결정함.
    · 12. 26(일) 재투표 실시
    - 2005. 1. 10(월), 중앙선관위가 Yushchenko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발표함.

    ☞ 의 의
    Orange 혁명은 독립 후 유지되어 온 과도체제 및 전 정권의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를 의미함. 우크라이나는 독립직후 혼란기와 지난 10년간의 Kuchma 대통령 집권기 동안 구체제 탈피와 새 체제 정착이 이루어지지 못한 가운데 권력과 부의 편중, 인권침해 등 정치.경제.사회적 문제가 만연되었는데, 국민들은 선거혁명을 통해 기득권 세력을 대표하는 Yanukovych 총리를 여권 후보로 내세운 Kuchma 대통령과 여권의 집권연장 기도를 거부함.
    Orange 혁명은 우크라이나에서 민주주의 및 법의 지배가 자리잡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하며, 인근국가의 민주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봄. 변화와 개혁을 향한 국민의 열망이 Orange 혁명에서 장기간 평화적으로 표현되었고, 이에 대해 군 및 치안당국과 법원이 중립적 입장을 지켰으며 국회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 여야 정치권이 헌법개정 및 대통령 선거법 개정 등 정치개혁에 합의함

    2) Yushchenko 대통령 취임 및 Tymoshenko 내각 구성

    o 2005. 1. 23 Yushchenko 대통령이 제4대 대통령으로 취임

    o Yushchenko 대통령은 러시아에서 기피 인물로 지정된 Yulia Tymoshenko를 총리로 임명.

    o 국회는 2. 4 Tymoshenko 총리 임명을 재적의원 450명중 373 찬성표로 인준하고 곧이 어 Tymoshenko 총리가 제청한 22명의 각료와 국가정보원장 및 24명의 지방주지사와 1명의 특별시장 임명에 동의함.

    3) 행정개혁

    o 새정부는 정부 내 45개 위원회를 통폐합함.

         - Yushchenko 대통령은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정부 내 각급 위원회와 각부서의 고위직 감 축 의지를 천명하며 부서별로 많게는 16명에 달하던 차관을 대폭 축소하여 1명의 제1차 관과 3명의 차관을 두고 차관보직은 현재의 1/3~1/2선으로 줄여나가기로 함.

    4) Yushchenko 대통령 계열 신당 창당

    3. 5 Yushchenko 대통령 계열의 People's Union-Our Ukraine Party 창당대회를 개최.

    5) 언론인 살해사건 수사 확대

    o 우크라이나 검찰은 언론인 Gongadze 살해사건(2000. 9월)과 관련하여 Kuchma 전 대통령을 소환 심문하는 등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새정부 들어 Yushchenko 대통령의 철저한 조사의지 표명에 힘입어 살해혐의자의 신원이 3월초에 확보되어 수사에 급진전을 보였으며, 동 살해를 지시한 인물로 혐의를 받아오던 Kravchenko 전 내무장관이 3. 4 자신의 거처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 Kuchma 전 대통령 시절에는 전 정부 고위인사의 관여를 시사하는 녹음테이프 등 정황증거에도 불구하고 수사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음.)

    6) 여권 내 갈등과 협력

    o 2005. 9월 초까지 Yushchenko 대통령은 여론조사에서 50%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Tymoshenko 전 총리 또한 Yushchenko 대통령 못지 않은 지지를 받고 있어 경쟁관계를 유지해 왔다. 또한, 주요 정책사안에 대한 여권 핵심세력간의 의견 차이가 노정되고 있어 경제개혁의 폭과 속도가 다소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그 예로 구 정권 때 의혹이 제기된 민영화 사례 조사 범위와 관련, Yushchenko 대통령은 대표적인 사례 30개만 엄선하여 재조사할 방침이라고 언급하여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고 한 반면 Tymoshenko 총리는 의혹이 제기된 3,000여 개 기업 모두를 법원판결에 회부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2005. 4월 및 5월초에 발생한 휘발유 파동에서 Tymoshenko 총리는 휘발유 가격의 상한선을 제시하고 정유회사에게 협조를 요청한 반면, Yushchenko 대통령은 휘발유 가격을 시장에 맡길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상기 일부 마찰에도 불구하고 여권의 핵심인 Yushchenko 대통령과 Tymoshenko 총리는 2006. 3월 총선에서 여권의 승리를 위해 단결했다.

    7) Tymoshenko 총리 해임 및 Yekhanurov 내각 발족

    Zinchenko 대통령 전 비서실장의 사임(9. 5) 이후 표출된 여권 내 양진영(Tymoshenko 총리계열과 Poroshenko 국가 안보.방위 사무총장)간의 갈등이 Yushchenko 대통령의 봉합노력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함에 따라 Yushchenko 대통령은 9. 8 Tymoshenko 총리와 Poroshenko 국가 안보.방위 사무총장을 전격해임하고 자신이 이끄는 Our Ukraine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며 동부 드니프로페트롭스크 주지사인 Yuriy Yekhanurov를 총리 서리로 임명하였다. Yekhanurov 총리 서리에 대한 국회인준은 9. 20 1차 시도에 이어 9. 22(목) 정족수 226표를 훨씬 상회한 289표로 가결되었다. 그러나 친서방성향의 대통령과 친러성향의 총리간에 정치, 경제 등과 관련 각종정책에 이견이 노출되어 갈등이 지속적으로 고조되어 왔음

    8) 대통령의 국회해산 명령 및 조기 총선 후 신내각 구성

    Yushchenko 대통령은 2007.4.2 국회해산, 조기총선을 명령하여 여․야간 정쟁을 지속하다 여․야간 합의에 의하여 9.30(일) 총선을 실시했다 (국회해산 사유: coalition측의 야당의원 매수, 확대시도 등). 그 결과, 9.30 조기총선 결과 아래 5개정당이 3%이상 득표하여 국회에 진출하였다.

     

    - 지역당 175석 (34.37%득표)

    - Yulia Tymoshenko Bloc 156석(30.71%득표)

    - Our Ukraine-People's Self-Defense Bloc 72석(14.15%득표)

    - 공산당 27 (5.39%득표)

    - Lytvyn Bloc 20석(3.96%득표)

     

    10.27 공식선거결과 발표, 11.23 새국회가 개원된 후 대통령 소속의 Our Ukraine-People's Self-Defense Bloc 과 Yulia Tymoshenko Bloc의 두 정당 소속 국회의원 227명이 국회다수당연합(coalition) 구성에 합의하여 새로운 coalition 이 탄생하였다. 또한 2007.12.18에는 Yulia Tymoshenko에 대한 국무총리 임명안이 국회에서 가결됨. 또한 동 일자에 기타 국무위원에 대한 임명안도 국회에서 가결되어 새로운 친서방 성향의 내각이 수립되었다.

     

    외교

     

    1. 대외정책 기조

    독립 이후 WTO, NATO 및 EU 가입 추진과 동시에 러시아와의 전통적 우호관계 유지하며 서방과의 관계 개선 및 유럽합류를 지향하면서도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Kuchma 전 대통령 정부 또한 동서간 균형외교 노선을 유지하였으나, 집권 후반기 특히 제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3년 하반기부터 다소 러시아에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2003년 하반기 이후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카자흐스탄, 4국간 공동경제권(Common Economic Space: CES) 협정 추진에 이어 2004년 우.러 양국간 육상국경 확정과 흑해지역인 아조프 해, 케르츠 해협의 법적 문제를 해결하였고, 2004. 12월 대선에서 시장경제 및 EU. 서방으로의 합류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Yushchenko 현 대통령 정부는 Kuchma 전 대통령 정부에 비해 보다 친서방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동시에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 주요 상대 별 외교정책

    1) EU와의 협력

    우크라이나는 독립 이후 계속 유럽합류, EU가입을 주요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EU와의 관계 확대를 적극 추진해 오고 있으나, EU는 우크라이나를 유럽국가(a European Country)에 속한다고 하면서도 우크라이나와의 관계 격상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구체적인 가입일정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어 우크라이나측의 불만을 야기시키고 있다. Kuchma 전 대통령은 2002. 6월 European Choice제하 국정연설에서 EU가입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언하였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자 2004.7월에는 군사노선 수정을 통해 EU가입을 당면 목표에서 삭제하는 등 EU의 소극적 태도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98. 3월 체결된 동반자협력 협정(Partnership and Cooperation Agreement)과 04. 5월 EU 확대 이후 새로이 국경을 접하게 된 국가에 대한 EU의 인근국가정책(European Neighborhood Policy)이 현재 EU/ 우크라이나 협력관계의 기본틀을 형성하고 있으며 동 기본틀 아래 양자간 협력을 위한 행동계획(Action Plan)이 마련되어 있다. 2005.1.23 출범한 Yushchenko 대통령 정부는 선거공약대로 EU에의 가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였으며 EU도 우크라이나의 Orange 혁명을 평가하여 행동계획(Action Plan)의 확대, 강화하는데 동의했으나 EU 가입 또는 준회원국 지위부여를 바라는 우크라이나측의 기대는 아직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2)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

    ‘90년 중반까지는 흑해함대, 크림 문제, 구소련의 권리, 의무 승계 문제, 우크라이나 내 핵무기 등 전략무기 폐기문제 등을 위요하여 갈등이 계속되었으나, ‘97. 5월 우-러 우호협력 협정(독립 및 영토 보존 확약), ‘98. 2월 우-러 경제협력 협정(가스, 원유대금 부채 지불 연장 등) 등의 채택으로 우호, 협력 관계를 복원하였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원자력 연료(100%), 원유(70%), 천연가스(50%) 등 총 에너지의 60%를 러시아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000년 들어, Kuchma 대통령은 우, 러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규정하고, 이후 Putin 대통령과 연간 7~8회 회담을 갖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양국은 벨로루시, 카자흐스탄과 함께 4개국 공동경제권(Common Economic Space) 설립협정을 맺고 구체사항을 협의하기도 하였다. 2004년 말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러시아가 Yanukovych 후보(당시 여당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함으로써 2005. 1월 새로 출범한 Yushchenko 대통령 정부와 러시아와의 관계가 다소 냉각기를 맞고 있으나 양국간의 역사적, 인종적, 문화적 특수 관계에 비추어 협력 관계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Yushchenko 대통령도 취임 후 제일 먼저 모스크바를 방문 Putin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러시아를 '영원한 동반자(eternal partner)'로 규정하였다.

    3) CIS와의 협력

    CIS 국가간 정치, 군사, 경제 통합을 희망하는 러시아의 적극적 입장에 반하여,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는 CIS가 주권국가간의 경제협력체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소극적 입장이다. 우크라이나는 CIS 정식 회원국(CIS Charter에 비서명)이 아니면서 CIS 정상회의 유치 의장국 역임 등 사실상 모든 CIS 활동에 참여 중이다. CIS 4개국 공동경제권(Common Economic Space) 설립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관세동맹으로의 발전에는 반대하고, 자유무역지대 창설에 역점을 두자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러시아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다. 유럽합류, EU가입을 최우선 과제로 표방하고 있는 Yushchenko 대통령의 새 정부는 CIS 협력에 Kuchma 전 대통령 정부에 비해 보다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4) 미국과의 친선 및 우호

    Kuchma 전 대통령 정부는 94년 대통령 선거 시에는 친러 정책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선 후에는 경제적 지원 문제 등을 감안하여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였다. 2002. 9월 제기된 우크라이나의 Kolchuga 레이더 이라크 판매 의혹으로 미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지원 보류 등 양국관계가 악화되었으나, 2003. 3월이래 단계적으로 1,600여명의 기갑부대를 이라크에 파병함으로써 양국관계 개선에 성공한다. 미국은 러시아 견제 등 지정학적 고려에서 Clinton 대통령의 2차례(95. 5월 및 00. 6월) 방우 등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발전 및 협력강화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9. 11 테러공격 이후 테러 근절을 위한 미국주도의 국제적 연대에 우크라이나도 인도적 지원 군 수송기의 영공통과 및 비행장 사용 허가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민주주의 및 유럽에의 합류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는 Yushchenko 대통령 정부의 출범으로 우크라이나와 미국 양국관계가 개선되고 있다.

    5) NATO와의 협력

    우크라이나는 '97년이래 NATO와 special partnership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2002년에 NATO 가입을 공식 표명하고 이를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2004. 6. 28~29 개최 이스탄불 정상회의에 Kuchma 대통령 등 고위급 대표단 참석을 통해 NATO와의 협력관계 격상, 가능하면 Membership Action Plan 관계 설정을 모색하였으나, 이에 실패한 뒤 NATO 가입을 장기과제로 추진한다는 입장으로 후퇴하였다. 2004. 12월에는 오렌지 혁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NATO/우크라이나 관계에 진전이 있으며 2006년 중 Membership Action Plan가입, 2009년 가입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으나 여.야 정치인 간 이견이 많고 NATO가입을 반대하는 국민의견도 많아 최종적인 가입은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6) 대몰도바 관계

    Kuchma 전 대통령 정부는 Transdniestria(TD) 지역에 거주하는 다수의 우크라이나인을 의식하여 TD 지역과 우크라이나간 국경통과 문제 등 몰도바/TD 지역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로 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TD 분리주의 세력 및 이를 지원하는 러시아 입장과 비슷한 입장을 취해 왔다. 2004. 12월 대선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의 자치강화 문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는 Yushchenko 신정부는 몰도바/TD 문제를 TD 지역 내 러시아군의 계속 주둔, 러시아의 구소련 지역 내 영향력 유지노력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TD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7 대루마니아 관계

    □ Zmiyiniy섬 영유권 문제
    흑해 내 Serpent Island의 국제법상 지위를 위요한 우크라이나-루마니아간 흑해수역 경계 설정문제관련, 루마니아의 2004. 9. 16자 국제 사법재판소(ICJ) 제소에 우크라이나가 동년 9. 28자로 적극 대응키로 함에 따라 동건이 ICJ에 계류 중이며 이와는 별도로 우.루 양국은 2005. 3. 22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동건에 대한 해결방안을 적극 모색하기로 함.
    95. 12월 루마니아 정부는 1948년 루마니아가 구소련에 양도한 흑해내 Zmiyiny섬의 우크라이나 영유권에 이의 제기한 바, 우크라이나는 국제법상 합법적인 우크라이나 영토임을 주장하면서 루마니아 주장을 일축
    1997년 양국은 ICJ를 통한 해결을 규정한 조약을 체결한 뒤, Iliescu 루마니아 대통령이 2002. 9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여 1997년 조약에 의거 2003. 6월까지는 국경조약에 서명키로 합의. 동 섬은 주변 대륙붕에 원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어, 향후 양국간 주요 현안으로 지속될 전망

     

    □ 다뉴브-흑해간 운하문제
    또한, 우크라이나가 2004. 8월 중순에 개통한 170㎞에 달하는 다뉴브-흑해간 운하 복원공사에 대해 다뉴브강 하류 선박 통행료 수입을 등과 관련하여 경제적 이해를 달리하는 루마니아가 문제를 제기함에 따라 이 문제도 양자간 협의를 통한 해결 방안 모색되고 있음.

    8) 세바스토폴 군항 및 흑해함대 문제

    우크라이나 독립 후 크리미아 반도 세바스토폴항을 모항(흑해함대 시설의 80% 위치)으로 하는 흑해함대의 분할 방침에 합의(Sochi Agreement)하였다. 95. 6월에는 Kuchma 대통령과 Yeltsin 대통령간 흑해함대 분할원칙 합의서에 서명하였다.

     

    - 흑해함대를 토대로 러시아 흑해함대와 우크라이나 해군 창설

    - 러시아 함대는 세바스토폴 항 및 여타 크림 지역의 각종 군사 및 기술 시설 이용

    - 흑해함대 보유자산은 50:50 원칙하에 분할, 구체적 분할 내용은 별도 합의

    - 흑해함대 보유자산은 러시아 81.7%, 우크라이나가 18.3%를 차지(우크라이나 지분 50% 중에서 31.7%는 러시아에 매각, 원유 대금 채무와 상쇄)

    - 흑해함대 소속 장교는 각자 의사에 따라 소속국가 결정

    - 양국 해군간 상호협력 증진 등

     

    97. 5월에는 양국 총리간 “흑해함대 분할협정”에 서명하였다.

     

    - 러시아의 세바스토폴항 이용

         · 러시아는 부두시설 및 함대관련 기본시설을 20년간 임차

         · 동항을 러시아 함대 사령부 기지로 사용

         · 동항의 지위문제는 20년 경과 후 협의>

    - 흑해함대 분할

         · 흑해함대 보유자산은 50:50 원칙하에 분할

         · 우크라이나 지분 50%중 31.7%는 러시아에 매각, 원유대금 채무와 상쇄

    9) 크림 자치공화국 문제

    러시아인이 67%를 차지하고 있는 크림 반도는 91년부터 자치공화국 승격 및 독립운동이 전개되어 왔으며, 러시아 및 러시아계 주민이 크림 반도를 러시아로 반환하라는 주장도 있어왔다. 현재 우크라이나 헌법에 의하여 자치공화국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으나, 크림 의회는 공용어를 러시아어로 변경할 것을 결의하는 등(97. 10) 중앙 정부와의 대립 가능성이 상존한다.

     

    3. 국방 정책 기조

    NATO 가입을 목표로 군 조직 및 체제를 재편성하고 무기를 현대화하는 등 NATO 기준으로 군 개혁을 추진한다는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 ‘Partnership for Peace Program' 테두리 내에서 적극적인 군 개혁 추진

    - 군의 전투력 제고 및 전쟁 발발 등 비상시 기동성 향상을 위해 군 체계 및 구 성을 전면적으로 개편

    - 무기 및 장비의 현대화와 군의 소수 정예화 추진

     

    NATO 및 서방의 집단안보 체제에 적극 동참하여 국제 군사협력을 제고하고 유엔 등 국제사회의 평화유지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4. 군사력 현황

    o 3개군 및 참모본부: 육군, 공군, 해군 및 참모본부

    o 병력: 약 24만5천명

    o 국방장관이 군정권, 참모총장이 군령권을 행사하는 육군 중심의 통합군

         - 육군: 르보프, 오뎃사, 체르니키프 소재 3개 지역사령부의 약 16만 명 (총병력의 50%이상)으로 구성

         - 공군: 2개 비행단, 독립 비행사단, 훈련단과 舊 防空軍 소속 르보프, 오데사, 드니프 로페트롭스크 소재 3개 군단 등 약 11만 명으로 구성

         - 해군: 함정 40척, 잠수함 1척, 60여대의 항공기 및 헬기와 12,000명의 병력으로 구성

     

    5. 군사분야 주요 국제 협력

    1) 핵무기 폐기

    o 91.2 전술, 전략 핵무기의 러시아 이관 합의

    o 92.5 전술핵무기 전량 러시아 이관

    o 94.1 핵무기 폐기에 관한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3국간 협정 체결

    o 96. 6. 30 Kuchma 대통령 핵무기 폐기완료 발표

         ※ 94. 11 NPT협정 가입

    2) 이라크 평화유지군 파견

     

    경 제

     

    1. 주요 경제지표

    [연도별 거시경제 지표]

    데이터 테이블
    구분 2005 2006 2007 2008 2009
    인구(백만 명/연말) 47.1 46.6 46.4 46.2 46.0 (7.1일자)
    GDP (십억Hr) 363.1 561.1 712.9 949 n/a
    (십억$) 70.9 111.1 141.2 180.2 n/a
    1인당 GDP ($) 1,759.0 2,101.0 2,601.0 3,218 n/a
    실질GDP성장률(%) 2.7 7.0 7.3 2.1 -18.0 (2/4분기)
    외환보유고($백만) 19,391 22,358 32,479 31,543 28,871 (8월말)
    재할인율(%) 9.5 8.5 8.0 12.0 10.25 (8.12일)
    대미평균환율(UAH/$) 5.12 5.05 5.05 7.78 7.8066 (8월중)

    출처: 주러 우크라이나 대사관

     

     

    [상품교역동향]

    (단위 : 백만 달러)

    데이터 테이블
    구분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1-5
    총교역 61,668 70,428 83,402 109,918 152,538 85,139 27,459
    수출 32,672 34,287 38,368 49,248 67,003 39,703 18,769
    수입 28,996 36,141 45,034 60,670 85,535 45,436 20,869
    수지 3,676 -1,854 -6,667 -11,422 -18,532 -5,733 –2,100

    출처: KOTRA & globalwindow.org

     

    2. 주요 경제정책

    1) 자본주의 경제 정책과 WTO 가입

    1991년 자본주의 경제로 체제 도입 이후 국영 기업 민영화, 시장경제 도입 등 꾸준히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초반에 WTO 가입을 신청한 이후 2004년 3월 의류 신발 전자제품 등의 수입관세를 대폭 인하하고 2004년 7월에는 CD/DVD 불법복제 처벌강화와 식용유 등 일부 농산물 수입관세 인하를 단행하였다. 2006년 12월에는 은행, 보험 등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2007년 6월에는 무역용 외환사용기간을 확대하는 등 제도개선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2008년 5월 16일 125번 째 회원국으로 공식 가입하였다.

    2) 갑작스러운 버블붕괴로 IMF 구제금융 지원 요청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실물경제로 파급되면서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수출품목인 철강제품의 가격하락 및 수요감소로 외환부족현상이 심화되면서 우크라이나는 2008년 10월 IMF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고 2008년 11월 5일 1차 지원금 45억 달러가 지원되었다.
    2009년 2월 15일 지원예정이던 2차 지원금은 1차 이행실적검토작업이 지연되면서 늦어져 5월 8일에서야 28억 달러가 지원되었고, 7월 28일에는 3차 지원금으로 33억 달러가 지원되었다.
    2009년 10월에 4차 지원금 지원을 위한 3차 이행실적 검토작업이 예정되어 있으나 IMF측에서 협력중단을 경고하였고 우크라이나 재무부에서도 협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밝혀 협상과정이 쉽지 않고 지원일정도 지연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 미화 환율은 2005년 달러당 5.1247 그리브나에서 2006년 및 2007년 각 5.05 그리브나로 안정세를 보였으나 2008년 10월 금융위기를 맞이하고 IMF 구제금융을 지원받으면서 환율이 요동치면서 5.2672 그리브나로 올랐다.(이상 중앙은행 공식환율, 연평균 기준)
    2009년에는 1월부터 4월까지 달러당 7.7 그리브나를 유지하다가 5월 7.653 그리브나, 6월 7.6158 그리브나, 7월 7.6481 그리브나, 8월 7.8066 그리브나로 계속 오름세를 보였다. 2009년 9월 7일 자 중앙은행 고시환율은 달러당 7.995 그리브나를 기록하고 있다.

    3) 산업 육성 정책

    우크라이나는 국가차원에서 전체 산업을 대상으로 육성하는 포괄적인 산업육성정책(예: 한국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 등)은 없고 개별 산업별로 육성책이 수립, 시행되고 있다.
    현지정부는 철강산업에 수출의 40%를 의지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기변동에 따라 수출량 및 수출가격이 급변하고 이것이 경제의 안전적 성장을 해친다는 판단 하에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참고로 소련시절 우크라이나에는 소련정부의 지역별 산업배치정책에 따라서 철강, 조선, 우주, 항공 등과 같은 산업시설이 밀집된 지역 중 하나였으나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는 정부지원이나 정부의 구매가 크게 감소하여 시설투자가 거의 중단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경쟁력 제고를 위한 다양한 산업육성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 설비, 부품 및 원자재에 대한 수입관세 면제법안

      - 경제부(Ministry of Economy)는 수입관세를 수정하는 법안을 제안(2009.3.30일)

              - 주요 내용은 우크라이나 자체 생산이 어려운 조선산업용 장비에 대한 수입관세를 0.5~5%에서 0%로 낮추고, 자동차 제조용 장비에 대한 수입관세도 2~5%에서 0%로 인하하는 것임

    • 조선산업에 대한 육성정책(2009년 5월 수립)

      - 우크라이나는 과거 소련시절 항공모함을 건조했던 막강한 저력이 있으나,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많은 기술자들이 해외로 나가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고, 정부차원의 지원이 중단되면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음.

      - 정부는 조선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정책을 추진

                   · 1단계(2010~15년) : 조선산업 개혁을 위한 일련의 과업 및 조치들을 개발

                   · 2단계(2015~25년) : 새로운 세대 선박 개발을 위한 국가보험프로그램 도입

                   · 3단계(2025~35년) : 제 3세대 선박 개발 및 건조

    • 주요 제조시설 현대화 및 재건

      · 새로운 조선기술의 개발 및 적용

    • · 엔지니어 및 직원들의 기술력 향상 및 조선의 새로운 기준 수립 

      · 조선산업용 기계류단지의 재건 및 기술개발  

    • 항공산업 육성정책(2009년 말까지 수립 예정)

      - 율리아 티모센코 총리는 8월 27일, 2020년까지 향후 10년간 항공산업을 지원하는 포괄적인 프로그램을 2009년 말까지 작성할 계획이라면서 현재 목표는 이 프로그램을 올해 말까지 채택하는 것이라고 밝힘.

              - 총리는 우크라이나 항공제조산업을 개발하기 위해서 항공산업이 국내 티타늄, 알루미늄, 및 전기장치뿐만 아니라 스페어 파트로 완벽하게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함.

     

     

     

    4) 통화 안정, 외환 보유고 확대 정책에서 인플레 억제 정책으로

    1998년 외환 위기를 겪은 이후 물가 안정 보다는 환율 안정과 외환 보유고 확대 정책을 지속 유지하고 있다. 대 미화 환율은 2001년 5.37 그리브나에서 2007년 2월 5.05 그리브나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외환 보유고도 2001년 29억 달러에서 2006년 187억 달러로640 % 증가하였다. 외환 보유고가 충분히 확대되고 통화가 안정됨에 따라서 2004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크게 확대된 사회 복지(봉급 및 연금 인상 등) 경비를 국영 기업의 추가 민영화를 통해 조달하여 재정 적자 확대를 억제하고 있으며, 중앙 은행은 통화 정책의 우선 과제를 과거의 환율 안정에서 물가 안정으로 전환하고 있다.

     

    [최근 외환보유고 추이(금 등 전체 외환보유고)]

    (단위 : 백만 달러)

    최근 외환보유고 추이(금 등 전체 외환보유고)

    출처: KOTRA & globalwindow.org

    5) 친러 에너지 협력 강화

    Orange 혁명 이후 러시아와의 관계가 소원하여 짐에 따라 추진하던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정책은 2006년 7월 야누코 비치 총리 선임 이후 급격히 퇴조하고 러시아와의 에너지 분야 협력을 위한 실무 추진단을 2007년 4월부터 구성키로 하는 등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9.30 총선 이후 연말 새로운 내각 구성에 따라 정책기조가 변경될 전망이다.

     

    [경제성장 추이 및 전망]

    최근 외환보유고 추이(금 등 전체 외환보유고)

     

     

    출처: KOTRA & globalwindow.org


     

  • eurasiaturk 2016-07-03 조회수:4564

    ukraine

     

     

     

     

    종합개관

     

     

    1. 종합개관

    위치

    카자흐스탄의 위치도

    [우크라이나 위치도]

    위도 46도~53도, 경도 22도~40도에 위치해있으며, 면적은 603,700㎢ (한반도의 약 3배/세계 44위/유럽2위) 이다.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와 국경을 인접하고 있으며, 국경선 길이는 5,631㎞, 해안선 길이는 2,782 km에 달한다.

     

    2. 일반개황

    데이터 테이블
    국 호 우크라이나 (Україна / Украина / Ukraine)
    독립일 1991년 8월 24일
    수 도 키에프 ( Київ / Киев / Kiev)
    영토면적 603,700㎢
    인 구 46,299,862명 (2007) / 인구증가율 -0.675% (2007)
    민족구성 우크라이나인 77.8%, 러시아인17.3%, 벨라루시인 0.6% 몰도바인 0.5%, 크리미안 타타르족 0.5%,
    불가리아인 0.4%, 헝가리인 0.3%, 루마니아인 0.3%, 폴란드인 0.3%, 유대인 0.2%, 기타 1.8%
    종 교 우크라이나 정교(키예프 교구) 19%, 일반 정교 16%, 우크라이나 정교(모스크바 교구) 9%,
    우크라이나-그리스가톨릭 6%,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 : 1.7% 개신교, 유대교, 무교 등 34%
    언 어 우크라이나어 (공식어) 67%, 러시아어 24%, 기타 9%
    평균수명 67.88 세 (남 : 62.16, 여: 73.96)
    문맹률 0.6%
    대통령 및 임기 빅토르 유센코(Victor Yushchenko) -2005년 1월 23일 / 임기 5년
    의 회 단원제 (450석) / 임기 4년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제
    주요정당 지역당, 티모센코 연합, Our Ukraine, 사회주의자당, 공산당 Natalya Vitrenko 연합, Lytvyn 연합,
    National Bloc of Kostenko & Pliushch Viche 당, PORA-Refrom, Ne Tak
    화폐단위 흐리브나 (Hryvnia) / 1$ ≒ 5.05 Hryvnia
    국내총생산(GDP) 1,800억$ (2008) ※ 1인당 GDP 3,900$ (2008)
    수출입 수출액 : 46억6만8천 $
    ※ 수출품목 : 금속, 기계, 식•음료, 에너지
    수입액 : 54억3만 $
    ※ 수입품목 : 기계, 에너지, 화학제품
    주요산업 석탄, 전력, 철․비철금속, 기계․수송장비, 화학, 식품가공(특히 설탕)
    주요자원 철광석, 망간, 천연가스, 석유, 황, 흑연, 티타늄, 마그네슘, 고령토, 니켈, 수은, 목재,
    행정구성 24개 주, 1개의 자치 공화국, 2개의 특별시
    주요도시 키예프 (수도 260만명), 하리코프 (150만명), 드네프로페트롭스크 (110만명), 도네츠크 (105만명),
    오데사 (101만명)
    주요경축일 1.1 신정, 1.7 크리스마스(러시아 정교), 3.8 세계 여성의 날, 5.1 노동절, 5.2 부활절, 5.9 전승 기념일, 5.19 삼위일체축제일, 6.28 제헌절, 8.24 독립기념일

     

    3. 국기

    국기

    우크라이나 국기는 우크라이나가 오랫동안 러시아에 대해 분리 독립을 주장해온 탓에 '독립 우크라이나의 깃발' 또는 ‘우크라이나의 기’라고 불린다. 구조는 위가 파랑, 아래가 노랑인 2색기로, 이 두 색깔은 그리스도교 도입 이전부터 오랫동안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전통 색깔이었다. 파랑은 하늘과 산, 물결을 노랑은 금빛 대지를 나타내어 전체적으로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농지(農地)를 상징한다. 우크라이나 국기는 1848년 10월 리보프주(州)의 주도인 리보프에서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당시에는 파랑 바탕에 왕관을 쓴 노란색의 사자가 있었다. 볼셰비키와의 대립 속에서 1918년 1월 22일 독립을 선언한 후 3월 22일에 현재와 비슷한 기를 국기로 제정하였고, 소련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지 5년 만인 1996년 9월 3일 새로운 국기관련법에 따라 공식으로 재 제정하였다.

     

    4. 국가문장

    국가문장

    우크라이나의 상징 트리주브(Тризуб)는 삼지창 모양으로 국기는 물론이고 건물, 공문서, 자동차, 기차, 화폐, 전화토큰 등 우크라이나의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트리주브(Тризуб)의 역사는 1000년 전 키예프 공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적과 유물들에서 삼지창 모양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키예프 블라디미르 대공 시대에 사용된 슬라브 동전의 일부에 새겨져 있다. 그 외에도 귀족들의 무덤과 건물의 입구 조각 등 많은 고고학적 유물들에서 그 모양을 찾을 수 있다. 트리주브(Тризуб)의 기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바다의 신 넵툰(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의 삼지창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론은 고대 키예프 루시의 가장 유명한 통치자 세 명, 즉 블라디미르 대공, 야로슬라브 왕, 올가 여왕을 상징하는 키릴문자 В, Я, О 모양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 번째는 자유를 의미하는 Volya를 디자인 한 것이라고 하는 설이다. 그 밖에도 단순히 988년 기독교로 개종한 키예프 루시의 지배자 블라디미르 대공의 머리글자를 뒤집은 이미지에서 나왔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 트리주브(Тризуб)는 우크라이나의 정체성과 주권을 상징화 했다. 1917년 러시아 제국에서 독립을 선언했을 때, 신생정부는 재빨리 이 표시를 국가 문장으로 채택했고, 소련 와해 후 독립을 쟁취했을 때, 우크라이나 의회는 공식적으로 문장방패와 함께 배치하여 국가 문장으로 다시 승인하였다.

     

    5. 국가

    이 곡이 처음 국가로 제정된 것은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1917-1920) 때였고, 러시아의 지배가 또다시 시작되면서 폐지되었다가 독립 후 1991년 12월 5일 다시 국가로 지정되었다. 본래는 3절까지 가창하였으나, 2003년도부터 1절만 가창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가 악보]

    데이터 테이블
    우크라이나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
    (Ще не вмерла України)
    한국어 번역
    Ще не вмерла України ні слава, ні воля,
    Ще нам, браття молодії, усміхнеться доля.
    Згинуть наші вороженьки, як роса на сонці.
    Запануєм і ми, браття, у своїй сторонці.
    후렴
    Душу й тіло ми положим за нашу свободу,
    І покажем, що ми, браття, козацького роду.
    (2번 반복)
    우크라이나의 영광과 자유는 무너지지 않으리라.
    형제들이여, 운명은 그대들에게 미소 짓고 있도다.
    우리의 적들은 아침 태양의 이슬처럼 사라지리라,
    그리고 우리는 형제의 땅에 자유롭게 살게 되리라.
    후렴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우리의 몸과 영혼을 희생하자,
    그리고 우리는 코사크족의 피를 이어받은 형제임을 보여주리라.
    (2번 반복)

     

    6. 참고문헌

    - 위키백과 www.ko.wikipedia.org / www.ru.wikipedia.org / www.uk,wikipedia.org

    - 네이버백과 http://100.naver.com/100.nhn?docid=119370

    - 우크라이나 정부 홈페이지 http://www.kmu.gov.ua/control/en/

    - 주우크라이나 대사관 http://ukr.mofat.go.kr/index.jsp

    - CIA 홈페이지 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up.html

    - 한국무역협회 http://www.kita.net/

    - 키예프 역사관련 홈페이지 http://www.oldkyiv.org.ua/

     

     

     

    자연환경

     

    1. 지형

    카자흐스탄의 지형도

    [카자흐스탄의 지형도]

    우크라이나는 광활한 평원에 펼쳐져 있다. 국토의 95%가 평지이고 전 국토의 81%가 경작이 가능한 지역이며 이중 60%가 비옥한 흑토 지대이다. 우크라이나의 흑토지대는 전세계 흑토의 25%에 달한다. 평원을 가로지르며 드네프르강이 흐른다. 우크라이나의 산지는 서부 국경지대의 카르파티아 산맥, 동남부 도네츠크 지방의 구릉, 크림 반도 내 크림 산맥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높은 봉우리는 카르파티아 산의 오라 오벨라로서 2,061m이다. 평지와 산지를 제외한 곳에는 초원(스텝)이 펼쳐져 있고 크림반도를 따라 넓은 해안선이 펼쳐진다.

    2. 기후

    우크라이나의 기후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흑해 연안 지대 및 인접 남부 지방은 온화한 대륙성 기후, 북부지방과 서북부지방은 폴란드나 벨라루시와 같은 대륙성 기후, 남부의 크림반도는 아열대성 기후를 나타낸다. 우크라이나의 평균기온은 1월 4℃, 7월 23℃이고 수도 키예프의 1월 평균 기온은-6.1℃, 7월 평균 기온은 20.4℃이다. 우크라이나에서 강수량이 가장 많은 지역인 동 카르파티아 산맥에는 평균 1,600mm, 수도 키예프는 615mm, 강수량이 가장 적은 남동부 흑해 연안은 300mm의 강수량을 보인다. 눈은 보통 11월 말부터 내리기 시작한다.

    3. 행정구역

    우크라이나 행정구역 지도

    [우크라이나 행정구역 지도]

    우크라이나는 24개의 주, 미스토(misto)라 불리는 두 개의 특별시, 하나의 자치공화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데이터 테이블
    체르카시 (Cherkasy), 체르니히우 (Chernihiv), 체르니우치 (Chernivtsi)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Dnipropetrovs'k), 도네치크 (Donets'k)
    이바노프란키우시크 (Ivano-Frankivs'k), 하르키우 (Kharkiv), 헤르손 (Kherson) 흐멜니치키 (Khmel'nyts'kyi)
    키로보흐라드 (Kirovohrad), 키예프 주 (Kyiv) 루한시크 (Luhans'k), 리비우 (L'viv), 미콜라이우 (Mykolaiv)
    오데사 (Odesa), 폴타바 (Poltava), 리우네 (Rivne), 수미(Sumy), 테르노필 (Ternopil'), 빈니차 (Vinnytsia)
    볼린 (Volyn), 자카르파탸 (Zakarpattia), 자포리자 (Zaporizhzhia), 지토미르 (Zhytomyr)
    자치공화국 특별시
    크림 자치 공화국
    (Autonomous Republic of Crimea )
    키예프(Kiev)
    세바스토폴(Sevastopol)

    [우크라이나 행정구역]

    1) 키예프
    키예프 위치 키예프 레닌거리 전경

    [키예프 위치]                        [키예프 레닌거리 전경]

    - 명칭: 키예프(Київ/Ки́ев/kiev,kyiv)
    - 행정구역상 구분 : 특별시(misto), 우크라이나의 최대 도시이자 수도.
    - 위치 : 드네프르강(江) 중류의 양쪽 연변
    - 면적 : 760㎢
    - 인구 : 270만 명(2007)
    - 역사
    키예프는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 중 하나이다. 그 기원은 확실하지 않고 5세기경부터 동슬라브인들의 무역기지였다고 한다. 전기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9세기로 당시 키예프 공국의 수도로 동슬라브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12세기에 이르기까지 비잔틴·페르시아 등 북방 바이킹 국가들과의 교역(交易) 루트로 드네프르강에 면한 최대의 상업도시로서 번창하였다. 1934년에 우크라이나의 주도가 하르코프에서 키예프로 옮겨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많은 역사적 기념물을 포함하여 시가지의 40%가 파괴되었으나 성(聖)소피아 교회(1037년 건립, 뒤에 복구되어 현재는 역사건축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페체르스카야 대수도원(11∼18세기) 등 여러 건축물들이 복구되었다.
    - 특징
    하항(河港) 및 공항이 있고 방사상(放射狀)으로 철도가 뻗어 있다. 우크라이나 기계공업의 중심지로서 자동공작기계, 촬영기, 라디오, 토목기계 등의 생산이 활발하다. 도심지에는 국립종합대학·과학아카데미·셰프첸코 기념박물관 등이 있고, 교외에 영화촬영소, 어린이 철도공원 등이 있으며 토르하노프섬에는 스포츠센터 등이 있다. 키예프의 옛 시가는 드네프르강 우안의 고지에 있으며, 역사적 기념물의 대부분은 그곳에 있다. 드네쁘르강에 면하는 비탈면은 통칭 블라디미르언덕이라고 하여 넓은 공원이 되어 있다. 시내 교통기관은 버스·트롤리버스·지하철·케이블카·선박 등이며 드네프르강에는 길이 1,600m의 패튼교를 비롯하여 지하철의 철교 등 여러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또한 면적 760㎢의 도시권을 가지고 있으며 시역의 60%가 녹지이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 오늘날의 키예프
    1991년 우크라이나의 독립 이후 키예프는 독립국의 수도로서 새 단장을 시작하였다. 시내 중심가, 특히 흐레샤티크 거리와 독립 광장(Maidan Nezalezhnosti) 주변은 잘 정돈되고 개·보수되었으며 옛 건물들이 복원되었다. 독립 광장은 2004년 말 오렌지혁명 때 시위 현장으로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키예프에는 타라스 셰우첸코 국립대학과 키예프 공과대학 등 여러 대학이 소재해 있다. 키예프의 관문은 우크라이나 국제공항과 보리스필 국제공항이다

    2) 하르키우
    하르키우주 지도 하르키우 역

    [하르키우주 지도]                  [하르키우 역]

    - 명칭 : 하르키우(Ха́рків, Ха́рьков, Khar’kov)
    - 행정구역상 구분 : 하르키우 주의 주도, 2번째로 큰 도시
    - 위치 : 우크라이나 북동쪽에 있는 도시. 도네츠 강의 지류에 접함
    - 면적 : 31,415 km²
    - 인구 : 1,461,000명(2006)
    - 역사
    하르키우는 17세기 중반에 건설되었다.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 연방에 합쳐진 1917년부터 1934년까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소련군과 나치군 손을 오가며 하르키우는 여러 차례 격전지로 변했다.
    - 특징
    부근에 탄전이 있어 각종 공업이 발달하였다. 우크라이나의 공업의 중심으로 구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모스크바, 레닌그라드에 뒤를 잇는 제3의 공업도시였다. 1805년에 대학교가 세워진 교육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주민은 우크라이나인 48%, 러시아인 40%, 유대인 9%이다. 하르키우의 고려인의 수는 많지 않지만 키예프와 함께 우크라이나 지역 고려인 활동의 중심지이다. 하르키우의 고려인 협회의 노력으로 1998년 한국어 교육과정을 포함하는 제181 정수리 학교가 세워졌다.

    3)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주 지도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전경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주 지도]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전경]

    - 명칭: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Дніпропетровськ, Днепропетро́вск, Dnipropetrovsk)
    - 행정구역상 구분 :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주의 주도, 우크라이나 제3의 도시
    - 면적 : 31,914 km²
    - 인구 : 1,039,000명
    - 역사
    이 지방에서 확인되고 있는 인간의 흔적은 15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몇 개 민족의 교차로였고, 1세기부터 슬라브인이 살게 되었다. 9세기에 여기에 크리스트교가 전해졌고 수도원이 지어졌지만, 1240년에 타타르인에 파괴되었다. 타타르인의 세력이 이 지방에 퍼질 무렵에는, 드니프로 강의 동쪽에 타타르인, 서해안에 슬라브인이 대치했고 12세기에 코사크가 이 지역을 세력하에 둘 때까지 대치 상태가 계속 되었다. 16세기에는 폴란드, 터키, 러시아 세력의 각축지가 되었다. 최종적으로 러시아령으로 포함되었고, 1775년 도시가 건설되었다. 당시의 이름은 러시아 황제 예카테리나 2세의 이름을 따서 예카테리노슬라브(러시아어: Екатериносла́въ, "예카테리나의 영광"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러시아 혁명 후에는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 특징
    우크라이나의 중공업 중심지,많은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출신의 기업가들이 대부분 우크라이나 정치계에 진출했다. 그 중에는 레오니드 쿠치마, 율리야 티모셴코 등이 있다.

    4) 도네치크
    도네치크주 지도 
    [도네치크주 지도]

    - 명칭 : 도네치크(Донецьк, Доне́цк, Donechk)
    - 행정구역상 구분 : 도네치크 주의 주도, 우크라이나 제4도시
    - 면적 : 26,517 km² -인구: 1,100,700명
    - 특징 :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공업도시이다. 도네치 탄전의 중심지 이고, 가까운 도시로는 동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진 마키이우카와 북쪽으로 60킬로미터 떨어진 코스탼티니우카등을 들 수 있다.

    5) 오데사
    오데사주 지도

    [오데사주 지도]

    - 명칭 : 오데사(Одеса, Оде́сса, Odessa)
    - 행정구역상 구분: 오데사 주의 주도
    - 위치 :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에 접한 항만도시
    - 면적: 33,310 km²
    - 인구: 1,001,000명 [그림 13 오데사주 지도]
    - 역사 : 1792년 건설된 러시아의 요새가 시의 기원이며, 1794년 군항 이 되고 1795년 부근에 있었던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 오데소스 (Odèssós : 3∼4세기에 멸망)를 기념하여 명명하였다. 19세기 후반에는 밀의 대량 수출항으로서 크게 번영하였으며, 남러시아 최대의 항구가 되었다. 이 무렵부터 시내의 도시계획이 진행되었으며, 구(舊)시가가 정비되고 프리몰스키 대로(부두 와 시가를 잇는 유명한 ‘포템킨의 계단’도 그 일부)가 건설되었다. 러시아 혁명운동의 중심지였으며, 1875년에는 ‘남러시아 노동자동맹’이 결성되고, 1905년에는 전함 ‘포템킨’의 수병반란이 있었다. 또 1941년 가을에는 독일군의 포위를 69일간 버팀으로써 ‘영웅도시’의 칭호를 받았다.
    - 특징
    흑해 연안 최대의 무역항이며 키예프, 모스크바를 잇는 항공로와, 바투미(그루지야), 이스탄불(터키) 등지를 잇는 정기항로와 각 방면에 이르는 철도가 있다. 선박, 화학비료, 발동기, 공작기계, 냉동시설, 크레인, 영사기 등을 제작하는 중공업이 성하며, 제차(製茶), 직물, 제분, 식육가공, 수산물가공 등의 경공업도 활발하다. 언어는 우크라이나어가 공식 언어로 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어보다는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문화·교육의 중심지로서 종합대학(1865), 상선학교 및 각막 이식수술로 유명한 필라토프 안과의학연구소 등의 연구기관이 있고 여러 개의 극장과 박물관이 있다. 남쪽 해변은 휴양지로서 사철 내내 많은 관광·휴양객이 찾아 온다.

    6) 세바스토폴
    세뱌스토볼 지도 세뱌스토폴 전경

    [세뱌스토볼 지도]                  [세뱌스토폴 전경]

    - 명칭 : 세바스토폴(Севастополь,크림 타타르어: Aqyar, Sevastopol)

    - 위치 :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에 있는 도시

    - 행정구역상 구분 : 특별시(misto)

    - 인구: 379,200명

    - 특징 : 러시아 함대 주둔.

    7) 크림 공화국
    크림 공화국 지도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전경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전경

    [크림 공화국 지도]                 [크림 공화국 국기]                  [크림 공화국 국장]      

    - 명칭 : 크림 공화국(Автономна Республіка Крим, Автономная Республика Крым, 크림타타르어: Qırım Muhtar Cumhuriyeti 크름 무흐타르 줌후리예티)
    - 행정구역상 구분 : 자치공화국
    - 위치 : 우크라이나 남부의 크림 반도
    - 수도 : 심페로폴
    - 면적 : 26,100 km²
    - 인구 : 1,973,185(2007)
    - 크림 공화국은 크림 반도 전체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북쪽 지역과 세바스토폴 시가 영토에 속한다.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의 헤르손 주와 접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크라스노다르 크라이와 접하고 있다. 해안은 흑해와 아조프 해로 둘러싸여 있다. 해상 국경은 루마니아, 불가리아, 터키, 그루지야와 접하고 있다.
    - 국기/국가문장/국가
    - 국가
    Nivy I gory tvoi volshebny, Rodina, / Solntse i more tvoi tselebny, / Rodina. Etu zemlyu my sohranym I vnukam ostavim tsvetucziy, / kak sad, Krym, Tsvetucziy, kak sad, Krym! /Zori svobody tebya sogreli, Rodina, / Bratya-narody tebya vospeli, Rodina. / Etu zemlyu my sohranym I vmestye, / krymchanye, proslavym v vekah Krym, / Proslavym v vekah Krym! / Slavsya, Krym!
    - 역사
    기원전 7세기 ~ 기원전 8세기 : 그리스 식민지
    기원전 5세기 : 보스포르 왕국
    기원전 5세기말 ~ 기원 : 헤르소네소스
    기원전 3세기 ~ 기원전 2세기 : 프리드네프로비예 (드네프르 연안지역)에서 크림으로 스키 타이 왕국의 중심이 옮겨짐
    기원전 2세기 : 스키타이인들이 그리스인들과 해안 항구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 기원전 107년: 스키타이인의 난이 그리스 황제 미트리다테스 4세에 의해 진압.
    기원전 1세기 ~ 3세기 : 고대 로마
    AD ~193 : 보스포르 왕국과 스키타이인들 사이에 수십 년 간의 전투. Савромат 2세의 승리.
    40년대 : 무역 번창.
    3세기~ : 고트족의 침입. 보스포르 왕국 점령.
    258년 : 해적들이 해안 도시 침략.
    269년 ~ 270년 : 로마 군대가 야만인들을 다뉴브 강으로 몰아냄. 해적선은 그리스 해안에서 침몰.
    330년 : 비잔티움 제국. 무역 번창.
    375년 : 훈족의 침입.
    4세기~5세기 : 바잔티움 제국의 확장. 봉건제 공국 만구프 (Mangup), 에스키 케르멘 등이 세워짐.
    1428년 ~ 1791년 : 크림 한국
    1791년 ~ 1917년 : 러시아에 병합.
    1853년 ~ 1856년 : 크림 전쟁
    1918년 ~ 1922년 :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구성원
    1922년 ~ 1991년 : 소비에트 연방의 구성국 1944년: 크림타타르인 강제이주
    1954년 : 니키타 흐루쇼프의 제안으로 페레야슬라우 조약(Переяславская Рада) 300주년 기념 우호 표시로 크림 주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넘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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