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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 벨트 국가 알아보기

  • eurasiaturk 2016-07-03 조회수:1324

    RUSSIA

     

     

     

     

    사회문화

     

     

    1. 언 어

    공용어인 러시아어가 전역에서 거의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각 민족공화국에서는 러시아어 외에도 따로 지정한 공용어가 있다. 또한 민족공화국 수준이 아니더라도 소수 민족들은 러시아어와 자신들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기도 한다.

     

    2. 인 구

    러시아 연방 인구밀도

    [러시아 연방 인구밀도]

    러시아 총인구는 약 1억 4천 2백만 명으로 중국,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나이지리아에 이어 세계 9위이다. 하지만 각 지역별로 인구밀도는 불균등하다. 1km2 당 러시아의 평균인구밀도는 8명으로 세계 178위이다. 러시아에서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은 주로 서쪽에 몰려 있으며 북쪽, 남쪽, 동쪽으로 가면서 점점 인구밀도가 낮아진다. 20세기 러시아의 인구는 구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꾸준히 증가했지만 제 1차 세계대전, 혁명, 내전 그리고 1928년부터 시작된 농업집단화로 인한 부농 등의 숙청, 1930년대에 스탈린의 대숙청, 결정적으로 제 2차 세계대전 등으로 인구가 급감되는 격변기가 몇 차례 있었다. 구소련 해체 이후에도 현재까지 약 700만 명의 인구가 줄어들었다. 러시아 역시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주요 도시로 몰리면서 도시인구 비율이 75%를 상회하고 있다.

     

    3. 민 족

    러시아인을 포함한 많은 민족이 대부분 러시아 정교회의 신도이지만, 로마 가톨릭, 개신교나 이슬람교, 유대교, 불교, 기타 종교 등의 신도도 적지 않다. 일부 민족(네네츠족, 아이누족 등)들은 샤머니즘을 믿기도 한다. 러시아의 불교는 칼미크 공화국과 투바 공화국, 부랴트 공화국이 주로 믿으며 이슬람교는 북카프카스지역(체첸 공화국(이츠케리아 체첸 공화국도 포함)과 인구시 공화국, 북오세티야 공화국 등)과 일부 투르크계 공화국(추바시 공화국, 바시키르 공화국, 타타르 공화국 등)이 주로 믿는다.

     

    4. 종 교

    러시아는 약 140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 민족 국가이며, 전 인구 중 러시아인이 압도적 다수(약 80%)를 차지한다. 러시아 정부는 소수 민족들의 고유 언어, 교육 및 문화 전파 활동 등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나, 민족주의나 혈통주의에 대한 과도한 부각은 경계한다. 헌법상으로 소수 민족의 권리를 존중하고 있으며, 고려인들의 문화가 보존되기도 한다.

     

    5. 교 육

    러시아 연방 주민의 교육수준은 높은 편으로 문맹률은 1%이다. 러시아에는 일반교육학교(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에 해당)가 7만개 이상이었으나 체제전환 이후 극심한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취학아동이 줄면서 2010년 현재는 약 5만 3천 개로 줄었다. 전 국민에 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며 전 교육단계의 무상교육화로 고등교육과정도 경쟁에 의한 무상교육을 표방한다(러시아 교육법).
    최근 학생, 학부모, 기업 등의 요구를 교육에 반영하는 수요자중심교육 지향적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현재 러시아에는 유치원은 약 4만 5천 개로 약 5백만 명의 유아가 재학 중(2008년 시점)이며, 일반교육학교는 약 5만 3천 개로서(2010년 시점), 기본적으로 초·중등 교육과정이 한 학교에 병합된 1-11학년제로 운영된다. 영재교육 목적의 특수학교에는 수학, 물리, 음악, 미술, 발레 등 해당 분야 우수 학생이 입학할 수 있다. 일반교육학교도 일반교육과정 이외에 과학, 외국어, 예·체능 등 특별 교육과정을 별도로 운영하는 학교가 증가하고 있다. 고등교육기관은 국립대 662개, 사립대 452개교가 있으며(2010년 시점), 종합대학은 모스크바 등 대도시에 존재한다. 단과대학은 공학, 의학, 경영, 항공, 외국어, 철도 등 전문분야로 특성화되어 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국가 지원이 단절됨에 따라 유상교육으로 전환되어 각 대학별로 30 - 50% 정도 학생은 학비를 부담하고 있다.

     

    6. 음 식

    1) 러시아의 대표 음식
    블린 보르쉬비프스트로가노프
    [블린]                                        [보르쉬]                              [비프스트로가노프]

    러시아요리는 원래는 화려했으나 현대의 레스토랑에서는 간소하게 차려진다. 또한 귀족, 황제, 군인, 부유한 상인층의 요리는 화려하나 서민층으로 갈수록 소박해진다. 북쪽에는 재료가 별로 많지 않고 남쪽에는 과일·채소 등이 풍부하나, 전국적으로 생채소가 적어서 양배추·토마토·감자·양파·당근·사탕무·오이와 같은 저장채소나 염장채소를 많이 쓴다.

     
    2) 전통 음료
    보드카 크바스
    [보드카]                                     [크바스]

    보드카는 14~15세기부터 제조되었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술이다. 제정 러시아 시대에는 제조법을 비밀로 부쳤으나, 1918년부터 제조기술이 남유럽으로 전파되었고, 1933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뒤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크바스는 호밀과 보리를 발효시켜 만든다. 또 각 가정에 있는 흑빵과 효모를 원료로 간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알코올 도수는 1% ~ 5%이다.

     

    7. 기본 국민 복지

    1) 주 택

    아직도 국민들의 대다수는 국가가 제공한 주택에 거주하고 있으나, 주택을 국가나 지방정부가 의무적으로 공급하는 제도는 체제 전환과 함께 폐지되어 가고 있으며, 개인의 주택 구입은 시장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2) 의 료

    기본적으로 무상 의료 체제가 유지되고 있으나, 의료 부문에 대한 투자 및 정부의 재정 지원 부족으로 공공의료 서비스 질의 저하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사설 의료시설이 나타나고 있으나, 대도시에 국한되며 그 수도 매우 제한적이고 의료비가 비싸다.

    3) 연 금

    고용주와 고용인이 공동으로 연금 기금에 납부하고, 60세 은퇴시 연금을 받는 형태로 시행 중이다. 체제전환 이후 연금액의 상승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2000년에도 평균 연금액수는 694루블에 불과했다. 2009년 현재는 5,191루블로 상승하였지만 여전히 월 200불이 채 되지 않는 연금액수로 인해 연금 수령자의 생활수준은 낮은 편이다.

     

    8. 축 제

    오늘날 러시아연방에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7개의 공식 공휴일이 있다.

    1) 새해(스뱌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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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년 연휴’(Новогодние каникулы)는 새해 첫날인 1월 1일부터 1월 7일까지 계속되는데, 보통 1월 10일까지 쉬는 경우가 많다. 1월 7일은 러시아정교회에서 정한 크리스마스이며, 20세기 초 소비에트 정부가 그레고리력을 채택하면서 과거의 역법체계(율리우스력)과 신력(그레고리력)이 13일의 차이에 남에 따라 12월 25일(구력)이 1월 7일이 된 것이다. 1월 7일 크리스마스는 1992년부터 공식적으로 지켜지기 시작하였다.

    2) 조국수호자의 날

    2월 23일은 ‘조국 수호자의 날’(День защитника Отечества)이다. 이날 러시아인들은 전역군인 및 현역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과거 소비에트 시절에는 2월 23일이 ‘붉은군대의 날,’ 혹은 ‘소비에트 군대의 날,’ ‘해군의 날’로 불리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는 3월 8일 ‘여성의 날’과 대비되는 ‘남성의 날’로 부르기도 한다.

    3) 여성의 날

    3월 8일은 국제사회에서 인정하는 ‘여성의 날’(Международный женский день)이다. 이날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 친구들에게 꽃을 선물하려고 돌아다니는 남자들을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보통 이날 러시아에서 꽃 가격이 가장 비싸다. 1917년 3월 8일(구력 2월 23일) 여성의 날에 발생한 페트로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여성노동자들의 시위가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어 이른바 ‘영광의 5일’(2월 26일~3월 2일: 구력)을 거쳐 제정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퇴위하였고, 그 결과 로마노프 왕조는 몰락하였다.

    4) 노동절과 전승 기념일

    5월 1일은 ‘봄의 축제이자 노동절’(Праздник Весны и Труда)이며, 5월 9일은 ‘전승기념일’(День Победы)이다. 1941년 6월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대에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한 날을 기념하고 있는데, 세계사에서 흔히 ‘독-소전쟁’이라 부르는 이 전쟁을 러시아에서는 ‘대조국전쟁’이라 부르고 있다. 원래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독일이 항복한 5월 8일을 전승기념일로 축하하고 있지만, 5월 9일에 조약에 서명한 러시아는 5월 9일을 전승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이날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는 군사 페레이드가 진행되며, 야간에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5) 러시아의 날

    6월 12일은 우리나라의 ‘광복절’에 해당하는 ‘러시아의 날’(День России)이다. 1990년 6월 12일, 당시 러시아 의회였던 ‘인민대의원대회’(Съездом народных депутатов РСФСР)가 ‘러시아공화국 주권선언’(Декларация 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м суверенитете РСФСР)을 채택한 날을 1992년부터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지금까지 기념하고 있다. 처음에 6월 12일은 ‘러시아공화국 주권선언의 날’로 명칭이 정해졌으나, 1998년 6월 12일 옐친 대통령이 ‘러시아의 날’로 개칭할 것을 주장하여 2002년 2월 1일 지금의 ‘러시아의 날’로 변경되었다

    6) 러시아의 날

    11월 4일은 ‘민족화합의 날’(День народного единства)이다. 이 날이 공식 공휴일이 된 때는 2005년 11월 4일이다. 1612년 러시아가 ‘혼란의 시기’(1584~1613)에 빠져있었을 때, 노브고로드의 상인 쿠즈마 미닌과 군사령관이었던 드미트리 포자르스키는 국민군을 결성하여 폴란드 군대를 모스크바로부터 몰아내고 러시아 국민들을 외국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켰다. 그 후 1649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에서는 10월 22일(구력, 신력으로 계산하면 11월 4일)이 공식적인 휴일로 지정되었으나, 1917년 볼세비키 혁명 이후에는 11월 7일(구력 10월 25일)이 ‘10월혁명 기념일’로 국경일이 되면서 11월 4일은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연방이 출범한 이후 11월 7일은 ‘화해와 우호의 날’로 변경되었다가 결국 국경일에서 제외되었고, 과거의 11월 4일이 부활되어 2005년 ‘민족화합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국경일에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도 개봉된 러시아 영화 ‘1612년: 혼란의 시기’는 11월 4일의 역사적 배경을 러시아 국민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이다.

    러시아 공휴일
    날짜 공휴일 명칭
    1월 1일 ~ 1월 7일 신년 연휴와 크리스마스
    2월 23일 조국수호자의 날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
    5월 1일 ~ 5월 2일 노동절
    5월 9일 전승기념일
    6월 12일 러시아의 날
    11월 4일 민족화합의 날

     

    9. 러시아 전통명절

    1) 스뱌트키(Святки): 크리스마스 계절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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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럽의 다른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계절축제는 민간신앙속에 유지되어 왔던 태양축제인 동지축제와 시기적으로 결합하였다. 흔히 스뱌트키, 또는 ‘성스러운 주간’(Святые Дни)으로 불리는 러시아의 크리스마스 축제기간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례일을 기념하는 12일간의 축제로서 구력으로는 12월 25일부터 1월 6일까지, 신력으로는 1월 7일부터 1월 19일이다.

    대표적인 스뱌트키의 놀이문화로는 축제와 관련된 음식먹기, 크리스마스 캐롤과 같은 노래부르기, 여러 동물의 모습을 띤 가장행렬(ряжение), 그리고 신년에 행해지는 ‘점을 치는 행위’(гадание)등이 있다. 그리고 조상들을 모시기 위해 화톳불을 밝히고 그들을 추모하는 의식이 거행되기도 하였다.

    크리스마스 계절축제 기간에 아이들은 여러 명씩 무리를 지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이 노래를 콜랴트카(Колядка)라고 하였다. 이 노래의 주된 내용은 주로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들로 구성되는데 그들이 방문한 집의 주인을 칭찬하고 그의 가족들을 축복하며, 또한 가정의 행복과 번영을 기원하고 가축의 증식과 한해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돌며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콜라도바니예’(Колядование)라고 부른다.

    이 노래부르기 의식이 진행되는 순서를 보면, 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집주인에게 꼴랴다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도 되는지 먼저 허락을 구한 다음,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면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주인이 젊은 사람들에게 피로그(пирог)나 블린(блин)을 대접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와 같은 선물은 때때로 콜랴다라고 불리는데, 선물이 마음에 들면, 젊은이들은 삶의 풍요와 가정의 행복, 그리고 풍성한 수확을 약속하는 새로운 노래를 불렀으나,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집주인이 그들의 방문을 거절하면, 그들은 우스꽝스러운 말로 주인을 험담하기도 하였다. 이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아이들은 베르테프(Вертеп)라는 상자를 가지고 집집마다 돌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이 상자는 그리스도의 탄생장면을 묘사해 놓은 인형들이 들어있는 작은 나무상자였다. 크리스마스 노래를 불러서 주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 상자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찬양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주인으로부터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거나 선물을 받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이 축제 속에 농사와 관련된 비옥한 토지의 모티브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바니츠(Linda J. Ivanits)는 이 축제에서 부르는 노래인 콜랴트카에서 자신들의 풍요로운 미래를 기원하는 것과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그 행위를 통해서 자신들이 바라는 결과를 얻고자 하는 시도로서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프로프는 사람들이 황소나 다양한 동물의 모양을 한 가면을 쓰며 놀고, 또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역할을 바꾸어 옷을 입는 관습들 속에서 어떤 에로틱한 요소가 나타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다시 말해서 이러한 가장행렬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예법에서 탈피하는 것을 묵인하고, 더 나아가 이를 통해서 사람들의 외설적인 행동과 음란한 행위에 대해 사회적으로 묵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바니츠는 이 스뱌트키 기간에 행해지는 노래와 여러 가지 놀이들과 마슬레니차(Масленица) 축제에서 나타나는 외설적인 요소는 다산을 보장해주는 주술적 시도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프로프는 이 기간 동안 먹었던 온갖 곡식으로 만든 죽인 쿠티야는 신비적인 새로운 생활을 담아내는 열매로서의 종자(Семя)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종자가 자라서 식물이 되고, 그 식물이 다시 종자를 만들어내는 구조는 결국 인간이 가진 삶의 영원함을 보여주는 순환구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스뱌트키 기간에 성행하였던 이러한 놀이문화와 음식문화들은 한해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결국 이것은 농작물의 생장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태양과 토지에 대한 농민들의 관심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2) 마슬레니차(Маслениц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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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슬레니차는 서양의 카니발(Carnival), 즉 사육제(謝肉祭)에 해당하는 러시아의 축제이다. 기간은 부활절이 시작되기 8주전인 56일전에 시작하여 보통 일주일 동안 진행되고, 금식기간인 대제(大齋, Великий Пост)기간 전에 끝난다. 원래 이 마슬레니차는 봄철에 겨울이 끝나 농사일이 시작되는 것을 기념했던 슬라브인들의 고대 축제였고, 당시의 이름은 ‘겨울 보내기’(Проводы Зимы)축제였다.

    이 축제의 이름이 마슬레니차로 불리게 된 것은 이 기간동안 육식이 허용되지 않았던 반면에, 버터와 우유를 포함한 유제품은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어로 버터를 의미하는 ‘마슬로’(Масло)에서 이 명칭이 나오게 되었다.

    마슬레니차 축제때 행해지던 대표적인 놀이문화들은 썰매타기, 말 경주, 주먹다짐, 모의전투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기간에 먹었던 대표적인 음식은 블린이다. 고대에서 내려오는 전통에 따라 처음으로 만든 블린은 거지에게 주거나 또는 죽은 조상의 영혼을 회상하고 추모한다는 의미에서 창문에 놓아두었고, 신앙심이 깊은 안주인이 먹기도 하였다. 간혹 그 집안에 시집갈 처녀가 있다면 처음 구운 블린은 그녀가 먹었다.

    충분하게 잘 구워진 블린은 태양처럼 붉고 뜨겁다. 블린에 버터를 바르는 것은 신들에게 이 블린을 제물로 바쳤기 때문이다. 블린은 태양의 상징이고 풍성한 수확, 그리고 결혼과 건강한 아이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블린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태양을 상징하는 것이다. 마슬레니차의 기간이 부활절에 따라 변동이 생기기는 하지만, 원래 춘분무렵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블린의 의미에는 결국 태양에게 힘을 부여하여 풍성한 수확을 기대한다는 농민들의 바램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낮의 길이와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은 겨울이 끝나고 새로이 봄이 시작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고, 이때부터 그 해의 농사를 준비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과 관련된 의식은 모닥불을 피우거나 말 등에 횃불을 놓고 마을을 순회하고, 또는 썰매에 기둥을 세워 그 위에 회전하는 바퀴를 고정시키는 것이 있었다. 이와 더불어 마슬레니차라는 인형을 만들어, 그것을 파괴하여 땅에 뿌리는 의식 역시 토지의 비옥함을 기원하는 것과 함께 식물의 생장을 돕고, 한해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농민들의 기대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에서 스뱌트키와 마찬가지로 이 마슬레니차 축제가 가지고 있는 농업적 특성을 엿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계절축제인 스뱌트키와 마슬레니차는 각각의 놀이문화와 음식문화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두 축제사이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요소도 있다. 즉 이바니츠는 각각의 축제시기가 동지와 춘분 무렵이라는 태양의 순환과 관련이 있다는 것과 축제때 사용하는 화톳불의 중요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식물의 생장과 태양의 순환을 연결시키는 초기 태양숭배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바니츠는 앞에서 보았듯이 전통적으로 불(Fire)은 의식의 순수함을 보여주고, 질병을 가져다주거나 수확에 악영향을 끼치는 정령들을 쫓아버리는데 이용되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계절과 마슬레니차는 모두 과식과 음주로 특징지을 수 있지만, 그것은 토지의 비옥함을 위해서 음식을 풍성하게 먹는다는 주술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며, 이러한 의식때 나타나는 과식성향은 다른 축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이바니츠는 주장하고 있다. 프로프는 어떤 의미에서 이 스뱌트키와 마슬레니차 축제들은 새해를 축하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주장하면서 시기적인 측면에서 이 축제들을 설명하고 있다. 즉 토속적인 농사달력에 의하면 새해가 동지 무렵에서 시작되었지만, 1348년까지 러시아의 기본달력에서 새해의 시작은 3월이었다. 그래서 음식을 풍성하게 먹는다는 의미는 신년 첫날의 주술적 의미를 강화시켜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3) 세믹(Семи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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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믹(Семик) 축제는 부활절 후 7주후에 오는 목요일의 축제를 의미한다. 세믹이라는 용어도 숫자 ‘7’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셈’(Семь)에서 유래된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 지역에서는 ‘녹색의 크리스마스 주간’(Зелённые Святк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러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 세믹 축일이 아직까지도 고대의 이름, 즉 ‘루살카 주간’(Рксальная Неделя)으로 불리나, 보통 교회에서는 삼위일체(Троица) 축일주간이라고 하고, 이 축제주간의 목요일이 바로 세믹이다. 이 축일에서 특히 관심가져야 할 것은 자작나무가 생장력의 상징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간에 행해진 놀이문화의 특징은 주로 자작나무와 관련되는 것이 많았다. 그 이유는 이 자작나무에서 제일 먼저 그리고 다른 나무보다도 제일 빨리 밝고 신록의 잎이 났기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이 자작나무에 특별한 식물의 생장의 힘이 부여되었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축제기간에는, 특히 젊은 처녀들은 깨끗한 옷을 입고 나와 자작나무 숲으로 향하여 나무가지들로 화환을 만들고 그것으로 리본과 꽃을 만들었으며, 자작나무를 돌며 원형댄스(Хоровод)를 추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농민들은 집안과 밖을 자작나무 가지들로 장식하고, 특정한 나무하나를 선택하여 리본과 구슬로 화환을 만들어 그것을 장식하였다. 보통 이렇게 선택된 자작나무는 숲에 놓아두기 마련인데, 몇몇 지역에서는 나무를 잘라 마을로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 자작나무는 소녀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원형댄스를 추고, 친구들끼리 영원한 우정을 맹세할 때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의식이 거행되는 여러 곳에서 나무의 끝 부분이 땅으로 내려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자작나무의 생장력을 나무로부터 땅으로 이전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축제는 나무를 강에 던짐으로써 끝을 맺는데, 때때로 자작나무에 여자 옷을 입혀서 강이나 연못에 던지기도 하였다. 또한 소녀들은 삼위일체 축일의 일요일에 자작나무 가지로 화환을 만들어 점을 칠 목적으로 강물에 던진다. 그래서 만일 그 화환이 물에 떠서 흘러가면, 흘러가는 방향에서 자신의 ‘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만약 화환이 가라앉으면, 이것을 소녀가 다가오는 해에 죽을 것이라는 징조로 받아들였다.

    세믹 축제주간의 중요한 의식 중의 하나는 ‘루살카’라고 부르는 인형을 환영하고 또 환송하며 보내는 것이다. 루살카는 들판이나 숲 속의 물에 살고 있다고 믿어지는 ‘요정’인데, 이 루살카와 관련된 의식은 축제가 시작할 때 루살카 인형을 만들어, 끝날 때 이 인형을 들판에서 찢거나 불에 태워 땅에 뿌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앞서 마슬레니차에서 나타났던 인형의 소각행위와 동일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역시 토지에 대한 농민들의 기대와 바램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젤레닌(Д. К. Зеленин) 역시 이 루살카 의식이 농사에 해를 끼치는 부정한 힘들을 쫓아버리고 풍성한 수확을 바라는 농민들의 믿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4) 이반 쿠팔라(Иван Купал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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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반 쿠팔라의 날 역시 태양숭배와 같이 자연현상을 숭배하던 러시아인들이 가지고 있던 농사와 관련된 계절축제이다. 특히 물과 불이 가지고 있던 상징적인 의미가 이 날의 의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쿠팔라’라는 이름도 ‘멱감다’라는 의미의 러시아어 쿠파치(Купать)나 쿠파니예(Купанье)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축제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반’(Иван)이라는 이름도 이 축제가 세례요한의 날(구력 6월 24일/신력 7월 7일)과 일치하기 때문에 요한의 러시아식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여기에서 기독교와 민간신앙의 결합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이반 쿠팔라의 날은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식물의 생장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이다. 즉 이 날은 태양이 황도 상에서 정점에 다다르는 하지를 축하하던 축제이다. 이 축일에 행해지는 주요한 의식의 특징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물과 불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즉 첫 번째는 모닥불을 밝히고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다. 쿠팔라의 불은 ‘새로운 불’을 의미한다. 즉 기존의 불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시적인 마찰에 의해 얻어지는 불로서 중요한 ‘정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두 번째 의식은 이반 쿠팔라의 날에 태양이 물에 특별한 힘을 부여한다는 믿음에 따라 행해지는 ‘목욕의식’이다. 이 목욕의식 역시 병균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정결하게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농민들이 매년 일정기간에 불을 피워서 그 불을 뛰어넘는 의식은 러시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의식은 고대부터 유럽의 각 지역에서도 이루어졌었다. 이와 더불어 하지무렵에 피는 꽃에 특별한 영험이 있어 그 꽃을 찾는 의식 역시 유럽 전역에서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모닥불을 피우는 의식은 보통 봄과 하지 무렵인데, 간혹 크리스마스나 주현절 전야에도 이러한 의식이 거행되었다. 물론 가장 많이 거행되던 시기는 바로 하지 무렵, 즉 세례 요한의 축일인 6월 24일을 전후해서이다. 프레이저(J. S. Frazer)도 이 축제가 세례 요한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적 색채를 띠고 있지만, 실제로 이 축제는 오래된 민간신앙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요한은 하지에 태어났고, 그리스도는 동지에 태어났기 때문에 일년의 주기가 이 두 기독교 축일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지적하여 기독교가 민간신앙의 축제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마슬레니차와 루살까 주간과 마찬가지로 이반 쿠팔라의 날에도 농민들은 인형과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축제가 끝날 때 이 인형을 태우거나 물에 빠뜨리고, 또는 찢어버린곤 하였다. 프로프는 이러한 의식들이 소멸하고 성장하는 생장의 신성함에 관한 프레이저(Frazer)의 종교이론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들은 바빌로니아의 탐무즈(Таммуз), 이집트의 오시리스(Озирис)와 같은 神에 초점을 둔 의식들보다 좀더 초기 단계의 것임을 지적하면서 러시아의 의식에서 나타나는 나무와 허수아비들은 하나의 정령이나 생장의 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사용되는 의식에서 인형들이 식물의 성장을 위해 죽음을 당하고 다시 소생하는 것은 바로 새로운 곡식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결국 앞에서 설명한 축제의 모습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토지에 대한 농민들의 믿음이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자연현상을 하나의 숭배대상으로 삼았던 러시아인들의 민간신앙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민간신앙을 기독교가 흡수하면서 바로 기독교와 민간신앙의 결합현상이 나타났고, 이렇게 기독교와 민간신앙이 결합하는 보편적 특성이 러시아에서도 역시 동일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 eurasiaturk 2016-07-03 조회수:879

    RUSSIA

     

     

     

     

    역사

     

     

    1. 고대 러시아

    9세기 초반 바이킹 족으로 알려진 스칸디나비아 인이 발트 해를 건너 동유럽에 정착하였다. 바이킹 족의 지도자는 862년에 자민족을 볼호프 강변의 노브고로드 시로 이끌고 간 전설적인 용사 류릭이었다. 류릭이 무력으로 그 도시를 점령했든지 아니면 그 도시의 지배자로 자연스럽게 추앙되었든지 간에 그는 이 도시를 크게 발전시켰다. 류릭을 계승한 올레그는 노브고로드의 세력을 남쪽으로 확장시켰다. 882년에 올레그는 드네프르 강을 따라 5세기경에 발생한 슬라브족의 도시인 키예프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여 키예프 루시를 건설했다. 올레그의 키예프 지배권 획득으로 그 지역에 최초의 통일된 왕조국가가 확립되었다. 키예프는 스칸디나비아와 콘스탄티노플, 키예프 루시를 잇는 무역로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그 후 300년 동안 번영했다.

    한편, 국교를 정하기로 한 블라디미르 공후는 여러 가지 종교를 신중하게 고려한 후 그리스정교로 국교를 결정하고는 콘스탄티노플 및 서유럽 국가와 동맹을 맺었다. 블라디미르가 이슬람교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이유는 음주를 금지하는 종교 아래서는 자국민이 생활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블라디미르에 이어서 야로슬라프 무드르이(현자)가 지배권을 장악했는데, 이때 키예프 루시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야로슬라프는 법전을 편찬하고 다른 국가와 유리한 동맹을 체결하고 예술을 장려하는 등 지혜로운 군주가 하는 각종 과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야로슬라프가 죽은 지 불과 수십 년 만에 키예프 루시는 내분에 휩싸였고 지역별 세력 중심지로 분할되었다.

     

    2. 몽고의 침략과 모스크바의 등장

    키예프 루시는 13세기까지 어렵게 버텨 나갔지만 결국 몽골의 침략에 의해 붕괴되었다. 1237년 칭기스칸의 손자인 바투칸은 볼가 강 하류의 지역(현재의 카잔)에서부터 키예프 루시를 침략했다. 그 다음 3년에 걸쳐 몽골(혹은 타타르)는 키예프 루시의 노브고로드와 프스코프를 제외한 모든 주요 도시를 파괴했다. 지역 영주가 폐위되지는 않았지만 타타르 국가에 정기적인 공물을 바쳐야 했다. 이 기간 동안 러시아는 서유럽으로부터도 침략을 받았는데, 먼저 스웨덴 민족으로부터(1240년) 그 다음엔 리보니아 족의 군사동맹체로부터(1242년) 침략을 받았다. 결국 양 침략세력은 노브고로드의 영주이자 러시아의 위대한 용사인 알렉산드르 넵스키에 의해 격퇴되었는데, 이 이름은 그가 네바 강변에서 스웨덴 민족에 승리를 거둔 데서 유래되었다.

    타타르 민족이 남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북동쪽의 도시는 점차 더 커다란 영향력을 얻었다. 트베르에서 시작하여 14세기를 지나면서 모스크바가 그러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모스크바는 러시아 정교회 대주교의 자리를 부여 받았으며 러시아의 정신적 수도가 되었다.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모스크바는 타타르 족을 직접 대적할 만큼 강력해졌으며, 1380년에는 모스크바 공후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대담하게도 타타르 족을 공격했다. 2년 후 타타르 족의 보복으로 모스크바가 다시 점령되었지만, 돈스코이가 쿨리코보에서 거둔 승리는 즉각 그를 대중적인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로부터 1세기 후인 1480년에 이르러서 모스크바는 타타르족의 지배를 벗어날 만큼 강력해졌다. 그 당시 지배자는 이반 대제로 더 잘 알려진 이반 3세였다. 이반 3세는 모스크바의 주변 도시를 정복했을 뿐만 아니라 타타르 족에 바치던 공물을 중지했고 공국 전체를 효과적으로 지배했다. 이후 그의 손자인 이반 4세(이반 뇌제)의 시대에 와서 러시아는 통일된 국가를 형성했다. 1533년 그의 나이 불과 세 살밖에 되지 않았던 이반 뇌제는 아버지 바실리 3세를 계승하여 모스크바의 대공이 되었다. 1547년 마침내 그는 차르(황제)의 칭호를 채택하고 귀족 세력을 물리쳤으며, 군대를 재편하고 타타르 족을 쳐부술 준비를 갖추었다. 1552년 그는 카잔을 정복해 수중에 넣었고, 1556년에는 아스트라한도 정복함으로써 세력을 잃어가고 있던 황색 유목민족을 격퇴했다. 이반 뇌제의 군사행동은 러시아의 팽창을 위한 새로운 거대영토의 개척으로 이어졌는데, 시베리아 정복과 식민지 건설이 시작된 것도 그의 통치 시기부터였다. 이반 뇌제는 치세 초기에 전혀 폭정을 일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의 성격이 난폭해졌는데, 1560년대에는 귀족세력에게 끔찍한 일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귀족의 토지를 몰수했고 자신을 불쾌하게 하는 귀족들을 처형하거나 추방했다. 1581년에는 화가 난 나머지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를 쇠몽둥이로 때려 죽이기까지 했다.

    1584년 이반 뇌제가 죽은 후 그의 아들 표도르가 왕위를 계승했는데, 표도르는 독재적인 지배에는 전혀 맞지 않는 성품의 소유자였다. 표도르는 공국 대부분의 지배권을 자신의 매부인 보리스 고두노프에게 맡겼는데, 고두노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왕위찬탈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1591년 그는 고대 도시 울리치에서 표도르의 동생 드미트리를 살해했는데, 오늘날 그 장소는 ‘피의 성 데메트리우스 교회’(Church of St. Demetrius on the Blood)가 있다. 1598년 표도르가 죽고 나서 고두노프는 황제로 등극하지만, 그의 통치는 결코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폴란드에서 드미트리로 자칭하는 한 청년이 나타났는데, 1604년에 그는 폴란드 세력과 함께 러시아를 침략했다. 이듬해에 보리스 고두노프가 갑자기 사망했는데, 이때부터 ‘수난시대’가 시작되었다. 이후 8년 동안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가짜 드미트리는 폴란드 군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왕위를 요구했다. 하지만 1613년 폴란드 군대는 모스크바에서 쫓겨났으며 귀족계급은 만장일치로 미하일 로마노프를 황제로 선출했다. 로마노프 왕조는 그때부터 1917년 10월 혁명으로 제정러시아가 무너질 때까지 304년 동안 러시아를 지배했다.

     

    3. 로마노프 시대

    로마노프 왕조는 출범 직후 몇 십 년 동안에는 러시아의 현상유지에 만족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중앙집권화를 추진했지만, 당시 유럽 전역에서 진행되었던 경제-정치 분야의 급속한 변화를 러시아에 도입하는 데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러시아의 서구화 개혁은 표트르 대제에 이르러서야 시작되었다.

    1) 표트르 대제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40년간은 러시아에 또 하나의 큰 전환기였다. 대내적으로는 진보된 행정체제를 갖추게 되었고, 대외적으로는 영토 확장, 문호 개방 등 강력한 지위를 다져가게 되었다. 이 시대의 영웅인 표트르 대제는 1672년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황제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나탈리아 키릴로브나 나리슈키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표트르는 어린 시절부터 군사훈련과 공격기술 등 전쟁 놀이를 좋아했다. 표트르는 형 이반이 죽자 자연스럽게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런데 표트르는 모스크바에서 직접 통치하지 않고 장기간의 유럽여행에 나섰다. 그는 약 2년 동안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왕들과 친교를 쌓았을 뿐만 아니라 신분을 감추고 여행을 하기도 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선박 건조장의 목수로 일하기도 했다.

    표트르는 서유럽의 산업기술과 국가통치에 관해 상당히 많은 지식을 축적하면서 러시아의 근대화와 서구화를 추진하기로 결심했다. 표트르의 권력 장악은 러시아에 태풍과 같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모든 남자에게 전통적인 모스크바 식 복장을 금지했으며, 징병제도를 도입하고 기술학교를 설립하고 교회제도를 자신에게 적합한 종교회의로 대체했다. 또한, 그는 알파벳을 간소화하고 재판절차의 개선을 시도했으며, 칭호도 차르에서 황제(Emperor)로 바꾸고, 수많은 개혁 조치와 제한 사항, 새로운 구상들을 도입했다(이러한 모든 조치는 보수적인 성직자에게 표트르가 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했다). 1703년 표트르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작정하고 핀란드 만의 늪지대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 후 9년에 걸쳐 엄청난 인명과 물질적 비용을 들여 상트 페트르부르크가 건설되었다.

    표트르는 1725년에 사망했다. 그는 러시아의 역사에서 가장 논란을 일으킨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가 러시아를 근대 유럽의 새로운 강자 가운데 하나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개혁이 일반대중의 생활을 크게 개선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아 있다. 그가 러시아의 군대와 행정구조를 근대화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개혁에 필요한 비용은 소농의 희생을 통해 조달되었고, 소농은 어쩔 수 없이 점차 농노로 전락했다. 표트르 사망 이후 짧은 기간 동안 러시아에서는 여러 명의 지배자가 부침했는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깊은 인상을 남길 만한 기회를 갖지 못했다. 표트르 개혁의 많은 부분은 러시아에 뿌리를 내리는 데 실패했으며, 러시아를 유럽의 거대 강국으로 만들고자 한 그의 희망은 사실상 예카테리나 여제에 의해서 실현되었다.

    2) 예카테리나 여제

    예카테리나 2세가 러시아를 통치한 1762년부터 1769년까지의 기간은 러시아 역사에서 커다란 전환기였다. 여제는 표트르 대제의 개혁이 낳은 결실을 반세기에 걸쳐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여 발전시켰다. 여제의 외교술은 걸출한 외교가들이 많았던 당대에서 볼 때도 놀라운 것이었다. 동-중부 유럽을 포함한 유럽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러시아가 미쳤던 영향력은 크게 확대되었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에르미타쉬 박물관을 건립했고 러시아 전역에 걸쳐 많은 건물을 지어 학술기관, 저널출판, 도서관으로 사용하게 했으며, 프랑스의 백과전서파인 볼테르, 디드로, 달랑베르 등과 서신을 교환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예카테리나는 눈에 띄게 보수주의적으로 돌변했는데, 자신의 정책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점점 적대적으로 돌아섰다. 예카테리나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부터 죽을 때까지 통치 초기에 가졌던 여러 가지 자유주의적 개혁을 폐기했다. 결국 예카테리나도 표트르 대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농민의 상태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4.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

    1812년 6월 나폴레옹은 스스로의 파멸을 불러온 러시아 침공을 결행했는데, 이 사건은 파국적 결과를 기록한 전쟁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것이었다. 유럽 대륙 전체는 사실상 나폴레옹의 통제 아래 놓여 있었는데, 러시아 침공은 알렉산드르 1세를 다시 굴복시켜 4년 전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강요한 조약을 이행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모든 속국에서 50만 명에 달하는 병사를 징발한 나폴레옹은 그 어느 때보다 큰 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러시아로 진격했다. 쿠투조프 장군이 이끄는 러시아 군대는 계속 후퇴하면서 프랑스 군의 측면을 쉴새 없이 괴롭히는 전략적 후퇴라는 방어작전을 펼쳤다. 여름이 지나면서부터 나폴레옹의 보급로가 훨씬 더 취약해졌고 군대의 사기도 저하되기 시작했다. 9월이 되자 프랑스군의 규모는 치열한 전투 한 번 치르지 못한 채 피로와 굶주림, 탈영, 러시아 군의 습격 등으로 2/3 정도로 줄었다. 9월 7일 모스크바에서 70마일(110km) 떨어진 곳까지 접근해온 프랑스 군은 보로디노에서 러시아 군과 마주쳤다. 이 전투에서는 10만 8천명이 죽었지만 어느 쪽도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는 못했다. 쿠투조프는 갑자기 모스크바 시민의 대규모 소개를 지시하고 군대를 철수시켰다. 그리하여 9월 14일 나폴레옹의 군대가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 이미 도시는 텅 빈 상태였는데, 보급품이 떨어진 데다 다가오는 엄동설한을 견딜 방한 수단도 태부족이었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일은 그 날 밤 도시에 화재가 발생하여 다음 날 프랑스 군대가 추위를 피할 은신처조차 찾기 힘들게 된 상황이었다. 협상을 위해 알렉산드르 1세에게서 모종의 소식을 기다려봤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자 나폴레옹은 본국으로의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1만 명에 불과했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나폴레옹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러시아는 나폴레옹 이후 유럽에서 열강의 지위를 차지했다. 나폴레옹 시대 이후 러시아는 더욱더 강력한 국가로 부상했지만, 다른 한편 러시아 내부의 긴장도 점점 고조되었다.

     

    5. 러시아 혁명 전·후

    1825년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을 일으킨 일단의 개혁적인 젊은 장교들은 니콜라이 1세의 즉위를 막고 러시아에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병력을 동원했다. 그 시도는 전적으로 실패했으며 니콜라이 1세는 유럽에서 가장 반동적인 군주가 되었다. 니콜라이 1세를 계승한 알렉산드르 2세는 전임자와는 대조적으로 개혁을 받아들이는 듯이 보였다. 1861년에 알렉산드르 2세는 농노제를 폐지했지만, 농노해방은 비참한 농민의 현실에 있어서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러시아의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정치체제는 더 큰 변화를 겪었다. 더욱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한 하층계급의 시도는 무정부 상태에 대한 우려를 낳았으며, 따라서 정치체제는 대단히 보수적인 상태로 유지되었다. 러시아가 더욱 산업화되고 영토가 확대되고 훨씬 더 복잡해짐에 따라 전제적인 차르 지배체제의 모순성은 점점 더 분명해졌다. 20세기에 이르러 중대한 격변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한편, 러시아의 영토와 세력은 19세기에 걸쳐 크게 팽창했다. 러시아의 국경은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에까지 이르렀으며 태평양 해안의 광대한 영토를 획득했다. 러시아는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톡과 아더항을 건설하여 상업에 유리한 통로를 개척했으며,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1891∼1905년에 건설)의 건설로 유럽 러시아 영토와 새로이 획득한 동쪽의 영토가 연결되었다. 1894년 니콜라이 2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유능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었으며 그의 신하들은 거의 한결같이 반동적이었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러시아가 점점 더 극동으로 세력을 확대함에 따라 일본의 적대감을 불러일으킨 일이었다. 1905년 1월 일본의 공격으로 촉발된 러일전쟁의 패배로 말미암아, 이미 평판을 잃은 니콜라이 2세는 거의 모든 지지세력을 상실했다. 니콜라이 2세는 헌법과 의회(두마)를 도입하는 등 개혁세력에 대한 양보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개혁운동의 힘은 러시아의 내의 새롭고 강력한 세력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주요 도시의 산업화와 바투 석유지대의 개발은 러시아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집중시켰으며, 그들은 곧 지역정치평의회 즉 소비에트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니콜라이 2세로 하여금 1905년의 개혁조치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한 것은 대부분 사회민주당의 깃발 아래로 통합한 소비에트 세력이었다.

    일본과의 전쟁이 종결된 후, 니콜라이 2세는 자신의 굴욕적 양보를 철회하고자 했으며 그의 정부는 전보다 더욱 반동적으로 되었다. 대중의 불만은 더욱 심화되었으며, 니콜라이 2세는 강경한 진압을 통해 지배를 유지했지만, 대중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1912년 사회민주당은 급진적인 볼셰비키와 상대적으로 온건한 멘셰비키라는 두 개의 진영으로 분열되었다. 1914년 또 다른 불운한 전쟁이 다시 한번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러-일 전쟁은 커다란 희생을 초래한 인기 없는 전쟁이긴 했지만, 적어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전쟁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은 러시아 서쪽의 인접국가에서 일어났다. 군사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준비를 갖추지 않았던 러시아는 패배를 경험하면서 사기를 잃었으며 심각한 식량부족을 겪고 곧 경제붕괴를 경험했다. 1917년 2월에 이르러 노동자와 병사들의 불만은 혁명으로 이어지기에 충분했다. 당시 페트로그라드라고 불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폭동이 일어났으며 그곳의 주둔군이 반란을 일으켰다. 노동자 소비에트가 결성되었으며 두마는 수도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임시정부의 수립을 승인했다. 니콜라이 2세가 지지를 상실했다는 사실이 곧 분명해졌으며, 3월 2일 그는 자신의 동생 미하일에게 왕위 이양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임을 직시한 미하일은 다음날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두마의 승인을 받아 결성된 임시정부는 온건한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질서회복을 주장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혁을 약속했다. 그러나 두마는 전쟁의 즉각적인 종결이라는 소비에트의 가장 긴급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했다. 그 후 9개월 동안 임시정부는 권력을 확립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볼셰비키는 불만에 가득 찬 소비에트로부터 점점 더 많은 지지를 확보했다. 10월 25일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는 겨울궁전으로 밀고 들어가 케렌스키 정부를 물러나게 했다. 볼셰비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았지만, 전국적인 통제권은 확보하지 못했다. 그들은 러시아를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 성공했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러시아 전역에서 내전이 일어났다. 볼셰비키가 1920년에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기까지 10월 혁명 이후 3년 동안 러시아는 내전으로 황폐화되었다.

     

    6. 소비에트 시대

    소비에트가 지배한 최초의 몇 년 동안은 유례없는 사회적•문화적 변화의 분출로 특징지어지는 시기였다. 내전 시기 동안 볼셰비키가 경제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유지했지만, 내전이 종결된 후 레닌은 시장경제로의 부분적인 복귀가 지난 3년간의 파괴로부터 러시아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레닌의 신경제정책(NEP)은 상대적인 번영의 시기를 가져옴으로써 미숙한 소비에트 정부로 하여금 정치적 지위를 강화하고 인프라를 재건할 수 있도록 했다. 러시아는 여전히 수많은 도전에 직면했지만, 낙관주의적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1924년 레닌의 죽음은 공산당 내에서 권력을 둘러싼 광범하고 극히 분열적인 투쟁으로 이어졌다. 1920년대 후반 스탈린이 승자로 등장했으며, 그는 즉각 러시아를 아주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NEP는 중단되었으며 상부에서 명령하는 계획경제로 대체되었다. 농지는 집단화되어 국가가 운영하는 대규모 농장으로 바뀌었다. 산업발전은 비정상적인 속도로 추진되었으며 생산활동의 중심이 소비재 부문에서 자본설비 부문으로 전환되었다. 예술과 문학은 훨씬 더 엄격한 통제하에 놓여졌으며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진보적 에너지는 장중한 권위를 띤 소비에트 리얼리즘으로 대체되었다. 종교는 극심하게 억압되어 교회는 폐쇄되거나 파괴되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다른 용도로 전환되었다. 스탈린은 러시아 내의 당 정책에 대한 모든 반대파뿐만 아니라 당내의 모든 반대파를 숙청했다. 1930년대 말, 소연방은 예전의 어느 때보다 대중의 삶이 더욱 엄격하게 규제되는 국가가 되었다. 이제 실험은 끝났으며 통제가 일상의 규칙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소연방은 정치적 숙청, 군대 내의 많은 유능한 지도부를 상실, 그리고 민수생산에서 군수생산으로의 산업생산 전환은 느린 속도로 이루어지는 등 전쟁에 대한 준비가 미흡한 상태였다. 독일과의 불가침조약(1939년)은 잠시 동안 히틀러의 침략을 막는 데 기여했지만, 1941년에 소비에트는 갑작스런 공격을 받았다. 그 해 말에 이르러 독일군은 서쪽의 소비에트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 레닌그라드)를 포위했으며, 모스크바에서 불과 수백 마일 떨어진 곳까지 진격했다. 러시아는 치열한 반격으로 독일군이 수도로 진격하는 것을 저지했지만, 1942년부터 독일군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여 결국 11월에 러시아 군대가 독일군을 포위시킴으로써 전쟁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1944년에 그들은 독일군을 폴란드로 몰아냈으며, 1945년 5월 2일 마침내 베를린을 함락하였다. 나폴레옹 전쟁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소연방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후 전쟁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국가로 등장했다. 러시아는 엄청난 참화를 겪고 2천만 명 이상의 인명을 잃었지만 상당한 영토를 획득했으며 미국과 나란히 세계의 양대 초강대국 중 하나로 부상했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전반적인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공업생산은 또다시 중공업에 집중되고 농업의 실패는 광범한 기근을 유발했으며 정치적 자유는 훨씬 더 제약되고 또 다시 대대적인 숙청이 진행되었다. 냉전의 장기화와 군비경쟁의 심화에 따라, 인민의 생활조건은 더욱 악화되어갔다. 스탈린은 1953년 뇌출혈로 죽음에 이를 때까지 권력을 유지했다.

    스탈린의 뒤를 이은 흐루시초프 시기에는 정치적 통제가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는 자신에 대한 반대파가 공산당 내에서 점차 세력을 확보함으로써 1964년에 축출되었다. 러시아의 역사적 전통과는 달리 흐루시초프는 조용히 물러날 수 있었다. 흐루시초프에 이어 브레즈네프는 1970년대 내내 소연방 공산당(CPSU) 서기장으로서 소비에트를 지배했다. 그의 집권기간은 국내적 안정과 공세적 대외정책을 분명하게 강조하는 시기로 특징지어졌다. 브레즈네프 집권기간 동안 러시아는 십여 년에 이르는 정체의 시기를 겪었다. 경직된 러시아 경제는 서서히 쇠퇴해 갔으며 정치적 분위기는 점점 더 비관적으로 변해갔다. 1982년 브레즈네프가 죽은 후 안드로포프가 서기장의 지위를 계승했으며 이후 체르넨코로 이어졌는데, 이들 양자는 중대한 변화를 시도하기에 충분한 기간 동안 생존하지 못했다. 1985년 3월 고프바초프가 공산당 서기장이 되었을 때에야 개혁에 대한 긴급한 필요가 현실화되었다. 고르바초프의 소비에트 개혁은 글라스노스트(공개, 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라는 잘 알려진 두 가지 개념으로 집약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신사고를 표방하면서 사회적-경제적 통제를 완화하는 등 전반적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이끌면서 소비에트 경제를 재생시키려 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관료주의의 과감한 청산과 부패의 철저한 감시를 강조하면서 본격적으로 착수되었다. 그러나 1986년 4월 소연방 정부가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악명 높은 핵 참사(러시아의 광범한 지역을 방사능 물질로 오염시킨 핵발전소 폭발)를 수일 동안 숨겼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글라스노스트는 신뢰성을 상실했다. 체르노빌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고르바초프는 모든 신문기사에 대한 통제를 철폐하는 조치를 내놓았다. 이때부터 소비에트에 신선한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수십 년에 이르는 소비에트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각종 문제가 공개적인 대중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빈곤, 부패, 자원의 비효율적인 관리, 아프간 전쟁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그 외의 각종 문제가 들추어지고 불만이 제기되었다. 모스크바의 새로운 지도자인 옐친을 비롯해 급진적인 개혁파 지도자가 등장했으며 사하로프와 같은 유명한 반체제인사가 처음으로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소연방 정부는 각종 비판의 표적이 되었지만, 더 이상 어떤 조치를 취할 수도 없었으며 사태의 흐름을 그대로 수용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1989년 초 소비에트 군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다. 1989년 봄에는 최초로 인민대의원대회 대의원에 출마한 복수 후보에 대한 선택을 허용하는 공개 선거가 실시되었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민주화 혁명이 이어졌고, 이는 베를린 장벽 붕괴로 그 절정에 달했다.

    1990년 소연방은 스스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각 구성공화국들이 독립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공화국에서는 옐친이 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독립 움직임을 주도했다. 대규모 파업이 발생하여 공산당이 노동계급의 대표기관이라는 전통적인 주장에 타격을 가했다. 정부와 당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경제상황은 악화되고 식량부족은 심각해졌으며 범죄 발생률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고르바초프는 급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대중의 요구와 엄격한 통제의 재실시를 주장하는 당의 요구 사이에서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1991년 여름 급진적 개혁운동은 정부를 공개적으로 무시할 만큼 강력해졌다. 고르바초프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강화된 반면, 옐친이 6월의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8월 18일 당의 보수파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필사적인 모험을 감행했다. 국방장관 야조프와 부통령 야나예프가 이끄는 세력은 고르바초프를 크림반도의 휴양 별장에 억류했다. 다음 날 아침 쿠데타 지도자들은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고르바초프가 사임했다고 발표했다. 신정부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군대가 파견되었지만, 옐친과 각 공화국 대통령이 이끄는 엄청난 대중적 저항에 직면했다. 결국, 3일 후 쿠데타 기도가 좌절되고 고르바초프가 복귀하였지만 이미 그의 위상은 허울뿐이었다. 그 해 말 소연방은 투표를 통해 소멸되었으며 독립국가연합(CIS)으로 대체되었다. 마침내 12월 25일 고르바초프는 소연방 대통령직을 사임했으며, 12월 31일 자정 크렘린 꼭대기의 소비에트 국기는 러시아의 삼색기로 바뀌었다.

     

    7. 20세기 러시아 – 옐친 대통령 시기

    1991년 12월 26일 소련의 공식 해체로, 러시아는 구 소련 구성국의 연합체인 독립국가연합(CIS) 가맹국의 하나가 되었다. 러시아는 구 소련이 가지고 있던 국제적인 권리(상임이사국 등)와 국제법상의 지위를 계승했고, 강대국으로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국명은 1992년 5월, 연방 조약에 의해서 현재의 ‘러시아 연방’ 국명이 최종 확정되었다(러시아 연방의 국명 변경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사임의 당일인 1991년 12월 25일, 당시의 러시아 최고 회의 결의에 따른 것이다). 보리스 옐친은 러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대통령 직접선거에서 60% 이상을 득표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시기 러시아 연방의 목표는 안전보장의 확보와 경제개혁의 추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러기 위해서 러시아는 자국 영토의 온전한 보전을 위해 옛 소련 구성 공화국들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와 함께 서방국가로부터 개혁에 필요한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이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서방과의 관계 개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러시아는 독자적인 관계를 중요시하는 근린외교를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옐친 시대의 대외정책은 일관성을 결여한 채 과도기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서구의 협조와 독자적 행보 사이에서 방황하며 국제적 위상과 국익은 침식되었고, 결국 국력 약화를 초래했다. 1999년 12월 31일 옐친은 건강문제와 후진 양성을 이유로 푸틴 총리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명하고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8. 21세기 러시아

    1) 푸틴 대통령 시기

    12월 31일 옐친이 사임하면서 2000년 3월 26일 실시된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푸틴은 52.9%의 지지율로 러시아 연방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는 '강력한 러시아 재건'을 기본 정책 목표로 하여 법과 질서 회복을 통한 정치안정과 경제성장을 위한 구조적 개혁 달성으로 국민생활 수준의 향상을 추구하였다. 금융위기로 급격히 악화된 경제상황, 올리가르히의 막대한 정치, 경제적 영향력 및 중앙과 지방간의 단절 심화 등의 악조건에서 집권 4년 동안 러시아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2004년 3월 14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은 71.31%의 압도적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대선 직전 푸틴은 행정부 내 구 옐친계의 수장이며 친 재벌 (올리가르히) 성향을 보여온 카시야노프 총리 및 추종 관료들을 전격 경질하고 개혁성향의 프라드코프 내각을 구성함으로써 집권 2기에 독자적 국정 운영 의지를 천명하는 한편, 정부효율성 제고를 위한 행정 개혁 단행했다. 러시아 국민들은 집권 기간 중 정치적 안정과 경제개혁, 내수확장 및 고유가 등에 힘입은 연 6%대의 높은 경제성장률 등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이를 바탕으로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한 푸틴 대통령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권력의 중앙집권화 과정에서의 나타난 권위주의적 정체, 부진한 사법개혁과 사회개혁에 대한 대내외적 우려도 적지 않았다.

    2) 메드베데프 대통령 시기

    2008년 당시 푸틴의 최 측근 중 한 명이었던 부총리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의 후계자로 최종 낙점되었다. 정부정책 기조의 유지 및 계승을 표명한 그는 푸틴의 전폭적 지지로 2008년 3월 2일 실시된 대선에서 70.24% 득표율로 신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8년 4월 15일 제12차 ‘통합러시아’당 전당대회에서 당 의장 수임 요청을 수락한 푸틴은 동년 5월 8일 메드베데프의 총리지명안이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실세총리이자 원내 다수당 의장으로서 국정 장악 기반을 마련하였다. 과거 푸틴 대통령 시절 구축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에 기반하여 외교-국방은 대통령이, 경제는 총리가 담당하는 이른바 양두체제의 막이 오른 것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큰 틀에서 푸틴 총리의 정책노선 계승을 따르면서도, 부패척결, 시민사회의 성장, 선거제도 개혁 등을 추진하였다. 그는 2009년 9월 '전진 러시아! (Go Russia)'라는 제하의 기고문에서 러시아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당면과제 해결을 위한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를 요청한 이래, ‘현대화(modernization)’ 노선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러시아 건설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현재 러시아는 2009‐10년 경제위기의 극복과 에너지-원자재 의존경제를 탈피하기 위한 종합적인 현대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효율성 제고 및 절약, 원자력 기술 제고, 우주기술 향상, 의료기술 제고, IT 기술 발전 등의 5대 중점 과제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 현대화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1. 개 관

    한국과 러시아는 1990년 9월 30일 공식적으로 수교하였다. 1990년 12월 14일의 모스크바선언이 계속 양국 관계의 지침이 될 것임을 확인하면서, 서울에서 1992년 동등하게 정본인 한국어, 러시아어 및 영어로 각 2부씩 작성하면서 본격적인 외교 관계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와 러시아 간의 과학 및 기술, 무역, 투자의 증진, 항공업무, 어업협력, 사증발급, 총영사관 설치, 문화협력, 외무부간, 사하공화국(야쿠티야)에서의 경제협력, 서울 청와대와 모스크바 크레믈린간 비화전화회선, 군사기술분야, 방산 및 군수협력, 원자력, 에너지, 군사비밀정보, 관광, 위험한 군사행동방지, 우주 기술, KOTRA와 러 경제특구청 간 협력 양해, 가스 산업 등 많은 협력 체결을 하였다.

     

    2. 주요 인사교류

    1990년 3월부터 1990.12 노태우 대통령 방소, 1991.4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방한, 1994.6 김영삼 대통령 방러, 1999.5 김대중 대통령 방러, 2001.2 푸틴 대통령 방한, 2001.11 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 방한, 2004.9 노무현 대통령 공식 러시아 방문, 2005.5 노무현 대통령 방러, 2005.11 푸틴 대통령 실무방한 - 부산 APEC 정상회의 참석 등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많은 교류가 이루어 지고 있다.

    1) 2008년

    - 2008.01 대통령 당선인 특사 이재오 방러

    - 2008.02 줍코프 총리 방한

    - 2008.05 야쿠닌 철도공사 사장 방한

    - 2008.05 권종락 외교통상부 제1차관 방러

    - 2008.05 김 숙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방러

    - 2008.05 제9차 한-러 포럼 대표단(고흥길, 안경률, 정진석 의원 등) 방러

    - 2008.08 문희상 국회부의장 방러

    - 2008.09 유명환 외통부장관 방러

    - 2008.09 이명박 대통령 공식 방문

    - 2008.10 장수만 조달청장 방러

    - 2008.10 추바이스 러시아 나노공사사장 방한

    - 2008.10 임채진 검찰총장 방러

    - 2008.10 슈슈카료프 하원 교통위원장 방한

    - 2008.11 김 알렉세이 제병지휘대 부총장 방한

    - 2008.12 김태영 합참의장 방러

    - 2008.12 데니소프 외교부 제1차관 방한

    2) 2009년

    - 2009.02 세친 에너지 담당 부총리 방한

    - 2009.02 이그나텐코 이타르타스 사장 방한

    - 2009.03 레비틴 교통부장관 방한

    - 2009.03 크라이니 수산청장 방한

    - 2009.03 니콜라예프 상원부의장 방한

    - 2009.03 유인촌 문화체육청소년장관 방러

    - 2009.04 하미토프 수자원청장 방한

    - 2009.04 라브로프 외교장관 방한

    - 2009.05 이석연 법제처장 방러

    - 2009.06 키릴로프 천연자원감독청장 방한

    - 2009.06 위성락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방러

    - 2009.07 바사르긴 지역개발부장관 방한

    - 2009.07 이상희 국방부장관 방러

    - 2009.08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 방러

    - 2009.09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방러

    - 2009.10 스테파신 감사원장 방한

    3) 2010년

    - 2010.05 이만의 환경부장관 방러

    - 2010.05 이만의 환경부장관 방러

    - 2010.06 이용훈 대법원장 방러

    - 2010.08 윤영선 관세청장 방러

    - 2010.09 이명박 대통령 방러(제2차 야로슬라블 세계정책 포럼 계기)

    - 2010.09 윤증현 기재부장관 방러

    - 2010.11 메드베데프 대통령 방한(G20 정상회담 계기)

     

     

    3. 경제 협력

    1) 2009년 한․러 교역 실적

    (단위 : 천 달러, %)

    데이터 테이블
    연도 수출 수입 무역수지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2009년1~12월 4,194,066 -57.0 5,788,759 -30.6 -1,594,593
    2008년 9,747,957 20.5 8,340,060 19.5 1,353,473
    2007년 8,087,746 56.2 6,977,477 52.6 1,110,269
    2006년 5,179,248 34.0 4,572,967 16.2 606,281
    2005년 3,864,170 65.2 3,936,623 7.2 -72,453
    2004년 2,339,329 41.0 3,671,455 45.6 -1,332,126

    자료 : KOTIS, 관세청

     

    4. 주요 산업

    한·러 양국은 극동시베리아 개발분야 협력 파트너로서 잠재력이 대단하다. TKR/TSR 연결사업 추진, 해운·항공분야 협력을 통한 물류 기반 강화, 에너지, 과학기술, 수산 분야 등의 협력 강화를 통해 동북아 경제협력 방안 추진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 TKR/TSR 연결사업
    철도 노선

    [철도 노선]

    동북아 물류 허브 건설에 있어 중요한 사업이다.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을 연결하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한국에서 유럽까지 화물운송시간이 단축되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지금까지 해상운송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수출입 물류체제를 해상-육상 복합 운송체제로 변화시키려고 것을 뜻하고 있다.

    2) 에너지개발 참여 및 가스도입

    2004.9월 노무현 대통령 방러시에 양국 정상간 합의에 따른 정부간 가스 산업 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가스산업 협력협정을 통하여 가스산업분야 협력 강화와 PNG 도입사업 본격 추진하고 있다.

    ※ 한국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현황

    석유는 8.5억불(’06): 전체 석유수입액 669억불의 1.3% 수준이다. 가스는 2008년부터 사할린 2로부터 20년간 연 150만톤 수입 예정이었으나,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

    3) 과학기술협력

    2004.9월 노무현 대통령 방러시에 양국 정상간 합의에 따른 정부간 가스 산업 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가스산업 협력협정을 통하여 가스산업분야 협력 강화와 PNG 도입사업 본격 추진하고 있다.

     

    (1) 우주기술협력현황

    2004년 9월 21일 한.러 우주기술협력협정 체결하였다. 이에 따라 한.러 소형 우주발사체(KSLV-1) 협력 사업, 다목적 실용위성 2호 2006.7.28에 발사 되었다. 또 2008년 4월 8일에는 최초의 한국인 우주인 이소연 탄생하였다. 그리고 러시아의 기술 지원으로 2차에 걸쳐 나로호를 발사했으나 실패했고, 현재 계속 발사 준비 중이다.

     

    (2) 원자력기술 협력 현황

    러시아 정부는 자국 경제수역 내 명태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총 허용 어획량(TAC)을 대폭감축 하였다(1997년 260만톤에서 2000년 124만톤으로 감소). 우리 나라는 명태 어획량의 97% 이상을 러시아 수역에서 어획하고 있는데, 러시아 측의 지속적인 TAC 축소를 감안하여 안정적인 정부쿼터 확보를 위한 외교적 노력과 병행하여, 한·러 민간 합작사업 확대 및 수산물 불법교역 방지 등을 추진하고 있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행정부는 한·러관계에서도 푸틴 행정부의 정책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기본목표는 경제적 실리 추구 및 역내 정치적 영향력 유지이다. 우리로서는 러시아와의 다차원 협력을 강화하되 일방적 의존성을 높이는 일은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 eurasiaturk 2016-07-03 조회수:987

    RUSSIA

     

     

     

     

    정치/경제

     

     
     정치

     

    1. 정치 제도

      1) 대통령 중심제: 러시아의 대통령은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현재는 4년 임기로 3회연임이 불가하나 2008년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는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차기(2012년) 대선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대통령은 내각 임명권, 하원 해산권, 국민투표 실시 결정권, 법률안 서명권 및 공표권, 군 통수권, 전시상태 및 비상사태 선포권 등의 권한이 있다.
      현 대통령: 드미트리 아나톨리예비치 메드베데프
      2) 입법기관의회: 양원제로 상원은 166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러시아 연방 구성 주체들간의 경계선 변경 승인, 전시·비상 사태 선포에 대한 승인, 해외 군사력 파견문제 결정, 대통령 탄핵 결정 등의 권한을 가진다. 하원은(두마) 450명으로 총리임명 동의, 내각 불신임 결의, 중앙은행 총재 임명, 사면, 대통령 탄핵발의 등의 권한을 가진다.
      3) 사법기관: 헌법 재판소, 일반 법원, 중재 재판소, 군사 재판소로 구성된다.
      4) 행정부: 강력한 대통령제 하에서 러시아의 행정부는 대통령의 국정명령에 대한 수행을 담당하고 있다. 러시아 행정부는 총리, 부총리, 각 부처 장관으로 구성된 각료회의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며 현재 총리는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이다.

           

          2. 개 요 - 드미트리 아나톨리예비치 메드베데프 대통령

          메드베데프 대통령

          [메드베데프 대통령]

          1965년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엘리트 집안에서 자라 1987년 레닌그라드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정부의 부시장이던 러시아의 제2대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밑에서 법률 전문가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은 뒤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푸틴이 중앙 정계로 진출한 뒤, 메드베데프도 러시아 최대의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프롬의 회장 등 교육·보건·의료·주택 등 민생과 관련된 요직을 두루 거쳤다.
          푸틴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뒤 2005년 러시아 제1부총리가 되었으며, '정치적 후원자'인 푸틴으로부터 후계자로 지목되어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기에 이르렀다. 2008년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70%가 넘는 압도적 지지율로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를 제치고 러시아의 제3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5월 17일부터 임기를 시작하였다. 메드베데프는 푸틴 시대에는 들을 수 없었던, 법에 의해 사유 재산권과 정치적 자유가 확실히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뜻을 밝혔다.

           

          3. 동 향 - 정국 구도

          푸틴과 메드베데프

          [푸틴과 메드베데프]

          2008년 5월 7일 러시아 5대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취임하였다. 아직도 국정의 키를 쥔 실세 지도자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의 푸틴 총리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하지만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무기력한 심부름꾼'의 역할에서 벗어나 점차 자신의 입지를 구축해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2012년 대선에서 푸틴과 경쟁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2008년 러-그루지야 전쟁 당시 보여준 단호한 태도와 2010년 일본과 영토분쟁을 겪는 쿠릴열도를 전격 방문한 사건에서 엿볼 수 있듯 메드베데프는 대외정책에서 기본적으로 푸틴의 강경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정치에서는 푸틴의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에서 벗어나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2009년 4월에는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야당 성향의 일간지 '노바야 가제타'와 인터뷰를 하면서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을 위해 희생돼선 안 된다"는 소신을 피력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부패와 직무태만으로 여론의 비난을 받아오던 18년 장수 모스크바 시장 유리 루쉬코프를 전격 해임하는 단호함을 과시한 바 있다.

           

          4. 정부 구조

          새 정부 구조: 2010년 1월 기준

          [새 정부 구조: 2010년 1월 기준]

          (
          http://rus-moscow.mofat.go.kr/kor/eu/rus-moscow/affair/state/index.jsp 참조)

          러시아 정부는 2008년 5월 13일 새 정부에서 일할 24명의 부총리와 장관을 임명했다. 이번 인사에서 기존 5개였던 부총리 자리가 7개로 늘어났으며, 관광체육부와 CIS담당부가 신설되고 산업에너지부는 산업부와 에너지부로 나뉘었다. 이 중 푸틴의 측근인사가 24개의 부총리, 장관자리 중 19석을 차지 하였다.

           

           외 교

           

          1. 주변국과의 균형외교추진

          러시아는 푸틴 전 대통령 집권당시에 이룩한 지속적 경제성장과 정치적 안정에 기반하여 세계 최대 에너지 자원 보유국으로서의 영향력을 활용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제고를 통한 강대국 위상 회복을 추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 중심의 일극적 국제질서를 견제하면서 다극적 국제질서를 추구하며, 방법적으로 문명간 대화, 지역 메커니즘,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한 문제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 인도 등과의 전략적 협력관계 강화 및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고 지속적인 정치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데 유리한 대외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2. 주요국들과의 외교관계

          러시아는 푸틴 전 대통령 집권당시에 이룩한 지속적 경제성장과 정치적 안정에 기반하여 세계 최대 에너지 자원 보유국으로서의 영향력을 활용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제고를 통한 강대국 위상 회복을 추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 중심의 일극적 국제질서를 견제하면서 다극적 국제질서를 추구하며, 방법적으로 문명간 대화, 지역 메커니즘,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한 문제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 인도 등과의 전략적 협력관계 강화 및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고 지속적인 정치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데 유리한 대외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1) 중 국

          러시아는 중국과 2001년 선린·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고 경제협력관계를 증진하는 등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7년 러시아내 중국의 해 개막행사 개최, 후진타오 주석의 러시아 방문, 2008년 메드메데프 대통령의 중국방문 등 고위급 인사교류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러·중국간 교역, 투자 규모는 2010년 9월까지 416억불로 전년대비 56.4% 증가하였다. 러시아원유의 중국 수출을 위한 2757km 규모의 1단계 송유관이 2011년 1월 개통되었다. 동부시베리아-태평양송유관(ESPO, Eastern Siberia-Pacific Ocean pipeline)으로 이름지어진 이 송유관은 러시아 극동지역의 스코보로디노에서 중국 북동부 다칭시까지 하루 30만 배럴의 원유를 실어 나를 예정이다.

          경제 분야뿐 아니라 안보 및 군사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란 핵 문제, 코소보 문제 등 국제안보 현안에 있어 양국간 긴밀한 공조 및 협조 유지, 상하이 협력기구 등을 통한 국제 테러리즘 등에 공동 대처하고 있고, 러시아의 방산물자 공급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세르게이 프리호드코 대통령 보좌관은 2014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는 소치와 2012년 APEC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블라디보스톡의 수백억 달러 규모의 각종 개발 프로젝트에 중국 기업들이 참여하는 것은 전망이 밝다고 언급했다.

          2) 미 국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정치·안보적 갈등요인과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한 실리적 협력요인이 병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대미관계에 있어 전략적 협력 기조 하에 국제테러리즘, WMD 비확산 등 상호이해가 부합하는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분쟁·군축 등 여타 분야에서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는 바, 미국의 동유럽 MD 추진, NATO 문제, 이란 핵 문제, 코소보 문제 등 최근 주요 국제현안에 대한 양국간 이견이 심화되고 있다. 2008년 11월 미국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다소 조심스럽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같은 해 5월 취임 후 첫 국정연설을 통해 지난 8년간 심각하게 손상된 미·러 관계 개선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 주길 바라는 당부를 전했다.

          그동안 양국은 전 지구적 차원의 금융과 경제위기, 우주개발, 에너지, 반테러리즘 공조, WMD 비확산 등과 같은 국제현안에 서로 협력을 모색해 왔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안보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탈냉전기 강한 러시아의 부활과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는 협력보다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을 ‘합의 가능한 지도자’로 평하면서 갈등 해결에 좀 더 유연하면서도 합리적이길 기대한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국의 동유럽 MD기지 건설 추진에 대해 대화를 촉구하면서 그와 동시에 체코와 폴란드에 근접한 서부 칼리닌그라드 지역에 SS-26 이스칸데르 단거리 미사일 기지 건설과 같은 ‘맞대응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미국의 국익과 전지구적 리더십을 제고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일방주의가 아닌 다자주의, 무력이 아닌 대화에 역점을 둔 부시 행정부와 차이가 있으나 그동안 소원했던 미·러 관계가 단기간에 호전될 것이라는 전망은 시기상조이다.

          3) EU

          EU는 러시아에게 가장 중요한 협력 상대로서 러시아는 그 동안 EU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발전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EU는 러시아 전체 교역량의 52%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 상대이며, 러시아는 EU에 있어 3번째로 큰 교역상대이다. 또 EU는 러시아에 대한 최대의 기술. 경제지원 공여국이자 직접 투자국이다. PCA(Partnership and Cooperation Agreement) 개정문제, EU의 러시아 국내 민주주의, 인권문제 제기, 코소보 문제, 유럽 에너지 시장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 문제, NATO의 추가확대와 MD 및 CFE 조약문제, 러시아와 일부 신규 EU 회원국간 대립 등이 양측간 주요 갈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4) 일 본

          일본과는 2003년 1월 공동행동계획에 따라 정치대화, 평화조약, 국제무대, 경제, 국방, 문화 등 6대 주요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이 2007년 6월 G-8계기 러·일 정상회담에서 ‘극동/시베리아 개발협력 이니셔티브’를 제안하여 양국간 협의 진행 중이다. 러·일 양국간 최대 현안으로는 쿠릴도서 문제가 있으나, 러시아는 동 문제 해결이 요원한 현 단계에서는 우선 일본과의 경제협력에 중점을 두어 양국 협력관계를 증진시킨다는 입장이다.

          5) 중 동

          러시아에게 중동지역은 정치적, 경제적,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서 구소련 붕괴 이후 한때 동 지역과의 관계가 다소 소원하였으나, 푸틴 전 대통령 집권 기간 중 중동지역 문제에 대해 다시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였다. 러시아는 이란 핵 문제, 이라크 문제 등 주요현안에 있어 미국의 일방주의 정책을 견제하는 한편, 관련 당사국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회의 등을 통해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한 효과적 방안을 모색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6) 그 외

          러시아의 아시아 정책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이해에 초점을 두고 있다. 먼저, 2011년 1월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ESPO, Eastern Siberia-Pacific Ocean pipeline)이 개통되었다. 이 송유관의 완결과 더불어 동북아내 유일한 에너지원 수출국으로서 러시아의 역할이 증대될 것이다. 가스프롬은 이와 별도로 중국 그리고 한국과의 관계에서 가스관 건설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둘째, 동시베리아와 러시아 극동지방 개발이다. 2007년 9월 러시아 정부가 발표한 ‘극동 및 자바이칼 발전계획 2008-2013’은 총 210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도로 교통 등 인프라 건설에 42%, 가스전 개발 등 에너지 분야에 26%가 각각 소요될 것이며 투자액의 일부 는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 역내국가로부터 유치할 계획이다.

           

           경 제

           

          1. 경제정책

          러시아 경제정책은 시장경제체제의 정착 및 활성화와 함께 경제에 대한 국가통제의 강화를 목표로 개혁정책에 중점을 두었다. 1998년 외환위기 이 후 러시아 경제의 급속한 성장세는 견고한 내수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이는 상당부문 에너지, 원자재 국제 가격 상승 등 대외여건의 개선에 의한 것으로 분석된다. 푸틴 시절 정부주도의 압축성장이라는 경제정책 기조를 가지고 재벌 개혁, 개혁 입법 등을 추진 해왔으며, 성과를 거두기 위해 적극적 재정, 금융 정책, 관료집단의 지원, 집행력을 갖춘 체제 구축 등이 요구 되었다. 2008년 메드베데프 대통령 취임 이후 시장친화적인 경제정책을 유지하고 있는데, 고유가 등 외부 경제환경이 호조를 보이면서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자원민족주의 정책은 국영기업 중심의 에너지 산업 재편과 국내에 진출한 해외기업에 대한 국가 통제 강화라는 두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1년 러시아 GDP 전망은 3% 증가할 예정이다. 그러나 러시아 경제 발전부는 2010년 상반기 유가 회복과 러시아 내수시장의 빠른 회복에 기반하여 2010년 GDP 3.1% 증가, 2011년 3.4% 증가, 2012년 4.2% 증가 등 좀 더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2. 최근 경제동향

          1998년 글로벌 외환위기는 러시아의 국가디폴트 선언과 러시아에 진출했던 서방 기업들의 대대적인 철수라는 파국적인 상황을 야기한 바 있다. 하지만 2000년부터 러시아 경제는 고유가에 힘입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신흥시장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2009년에 2000년대 들어 최초로 큰 폭의 마이너스 경제성장률(-7.9%)을 기록했으나, 2010년 경제성장률은 4% 수준을 기록하며 플러스 전환에 성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경제는 또 다시 고유가에 힘입어 2009년 하반기 이후 저점을 지나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며, 2011년에도 내수 회복을 바탕으로 한 완만한 경제성장으로 전년과 유사한 4%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러시아가 향후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도한 에너지산업 의존으로부터의 탈피 및 취약한 산업경쟁력 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2009년 이후 러시아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경제현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의 산업경쟁력 강화 및 외국인투자 유치의 성공 여부가 러시아 경제의 향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경제성장률

          [러시아의 경제성장률]
          구분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GDP성장률 7.3 7.2 6.4 8.2 8.5 5.2 -7.9 4.5

          * 2010년 5월까지

           

          3. 산업개황과 주요산업

          1) 농 업
          곡물 생산 지역

          [곡물 생산 지역]

          다양한 기후대와 토양대를 가진 러시아는 거대한 농업 경작지를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의 농업용지는 2억 1,000만 ha로, 중국과 미국 다음으로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국민경제에서 농업경제는 작물 재배와 가축 재배로 구분된다. 러시아의 자연조건은 광활한 땅만큼 많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작물 재배와 가축사육 역시 자연지대에 따라 상이하다.
          툰드라 지대와 삼림 툰드라 지대에서는 순록사육을 주로 한다. 그러나 이 지대에서 경작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타이가지대에서는 강 계곡을 따라 방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지대에서는 축산업이 그 지방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타이가지대의 남쪽 지역과 혼합삼림지대에서는 아마와 곡물, 사료작물과 감자, 채소 등이 재배되고 있다. 또한 이 지대에는 우유 및 육류 축산업이 발달해 있다. 공업 중심지 주변에서는 우유 가공 제품과 감자 등이 재배되고 있다. 또한 양돈사육도 발달하고 있는 추세이다. 서시베리아 타이가 지대의 남쪽지역 경작지에서는 주로 곡물이 재배되고 있다. 러시아 유럽지역의 삼림스텝지대의 북부 흑토지대에서는 곡물류와 공예작물(밀, 호밀, 귀리, 감자, 사탕무, 해바라기, 옥수수, 사료작물과 구근식물 등)이 주로 재배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큰 뿔을 가진 황소, 돼지, 가금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러시아 유럽지역의 스텝지대(볼가지역과 우랄지역)에서는 곡물과 옥수수가 주로 재배되고 있다. 서시베리아 스텝지대에서는 하계 곡물(봄에 뿌려 여름에 거두는 곡물)이 재배되고 있다. 초원지대에는 낙농-축산업이 발달해 있다. 극동의 아무르 지역에서는 곡물과 콩이 재배되고 있으며, 낙농-축산업도 발달해 있다. 반사막 및 사막지대(볼가지역, 칼미키야와 다게스탄 공화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양 목축 및 양피 산업이 발달해 있다. 카프카즈와 알타이 등 기타 산악지대에서는 산악지형 때문에 작물재배는 어려우나 초원지역에 축산업이 발달해 있다. 극동지역 연해 변강주 지역의 일부는 몬순 기후지대로서 쌀 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공업 중심지 주변 지역에서는 자연경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온실 채소재배, 양봉, 양돈, 저수지 낚시는 공업 중심지 주민에게 식료품을 제공하기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2) 에너지 산업

          러시아의 연료·에너지자원 매장량은 매우 풍부하다. 그러나 이 자원의 매장 분포지가 지역적으로 매우 큰 편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국민경제 관점에서 항상 유리한 것은 아니다. 연료자원의 지질학적 매장지 80%가 러시아 동부지역(시베리아와 극동)에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는 러시아의 유럽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1) 석유공업

          석유공업지역

          [석유공업지역]

          러시아에서 석유는 19세기 중반부터 생산되었으며, 카프카즈의 바투 지역과 중부 카프카즈 산지에서 주로 채굴되었다. 1940년도까지 카프카즈 석유는 전체 석유채굴량의 약 90%를 차지했다.
          총 석유채굴량은 1993년 약 3억 5,000만 톤에서 2010년 약 5억 톤으로 증가했다. 러시아연방의 석유공업은 러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발전해 있다. 서시베리아 지역에는 약 300개의 원유 및 가스 산지가 있는데, 가장 큰 산지로는 사모틀로르, 우스티-발리크, 수르구트, 메드베데보, 샤임 유전을 들 수 있다.
          러시아 연방에서 두 번째로 채굴량이 많은 볼가-우랄지역의 석유에는 유황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정제작업이 필요하다.
          거대한 매장량의 석유 산지로는 코미 공화국에 위치한 티만-페초라 유가스전을 들 수 있다. 이 곳의 유전에서는 중유가 채굴되고 있으며, 석유 정제공장이 위치하고 있다. 북카프카즈 지역에서는 다게스탄 공화국과 체첸 공화국 수도인 그로즈니 지역에서 석유-가스가 생산되고 있다. 이 산지에서 생산되는 원유에는 유황 성분이 매우 적고 수지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또한, 극동지역 사할린 섬과 대륙붕에 거대한 산지가 위치하고 있다. 이 섬에서 산출되는 석유는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현재 러시아 석유의 대부분은 송유관을 통해 수송되고 있다. 송유관의 총 연장은 약 70,000 km 이상이며, 이 파이프라인이 석유 산지와 러시아 전 지역을 연결하고 있다.
          정유공장에서는 소비자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석유제품(벤젠, 등유, 디젤, 윤활유)을 생산하고 있다. 석유 수송기술의 발전으로 유전지대에서 정유공장까지 수송이 손쉬워졌다. 따라서 주로 석유제품 수요가 집중되는 지역에서 정유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정유공장은 송유관을 따라 형성되고 있다. 주요 정유공장은 앙가르스크, 볼고그라드, 그로즈니, 크라스노다르, 콤소몰스크-나-아무례, 크스토보, 모스크바, 니주니 노브고로드, 옴스크, 페름, 랴잔, 사라토프, 시즈란, 투압세, 우흐타, 하바로프스크, 야로슬라블 등지에 위치하고 있다

           

          (2) 가스공업

          가스공업지역

          [가스공업지역]

          가스부문은 가장 최근에 본격화된 사업이지만, 연료산업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러시아의 가스 산업 규모와 채굴량은 세계 1위이다.
          러시아연방의 거대한 가스 산지는 주로 서시베리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우렌고이, 얌부르그, 자폴랴리예, 유주노-야말, 바슈간, 하라사베이 등의 가스전이 있다. 또한, 북카프카즈 지역에는 쿠반-프리아조비예 가스전과 스타브로폴 가스전이 있고, 우랄지역에는 오렌부르그 가스전이 있다. 코미 공화국에도 북틸 가스전과 베료조보 가스전이 있으며, 야쿠티야의 빌류이 강 근처와 사할린 주에도 가스전이 분포되어 있다. 러시아연방의 가스관은 대규모 가스 수송을 위해 통일된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는데, 총 연장은 약 14만 km에 이르며, 독립국가연합까지 포함할 경우 18만 km 이상이 된다.

           

          (3) 석탄공업

          석탄공업 지역]

          [석탄공업 지역]

          석탄부문은 공업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석탄은 연료이며, 화학공업의 원료로서 그 중요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거대한 석탄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석탄 산지는 불균등하게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에 편중되어 있다. 퉁구스크, 렌스크, 쿠즈네츠크, 칸스코-아친스크, 페초라, 이르쿠츠크, 남부, 야쿠츠크 등이 주요 산지이다. 매장량 기준으로 갈탄의 주요 산지는 크라스노야르스크 근처에 위치한 칸스코-아친스크 산지이며, 그 다음으로는 모스크바지역 남쪽에 위치한 갈탄 산지와 극동지역에 위치한 아나디르 지역이다.
          러시아연방의 석탄 산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쿠즈네츠크 탄전이다. 이 탄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탄전 중의 하나로 매우 단단한 고품질의 석탄이 생산되고 있다. 퉁구스 탄전과 레닌 탄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석탄 매장량을 가진 산지들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사람이 거의 살고 있지 않으며, 기술적인 문제로 채굴도 어려운 실정이다.

           

          (4) 전력산업

          전력 생산 지역

          [전력 생산 지역]

          국민경제에서 전력부문은 가장 주요 부문이다. 전력산업은 경제발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공업의 지역적 분산과 전체 공업생산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러시아의 전력 생산량은 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화력발전소가 생산하는 전력량이 전체 전력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수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가 각각 전체 전력 생산량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연방 중앙지역에는 200만 kW 이상의 전력을 생산하는 거대한 화력발전소들이 위치하고 있는데, 그 중 코스트로마 발전소와 코나코보 발전소의 발전용량은 약 400만 kW에 이른다. 이 발전소들은 연료유와 가스로 가동되고 있다. 주요 화력발전소로는 러시아 북서 경제지역의 키리시 화력발전소, 볼가지역의 자인스크, 우랄지역의 트로이츠크, 이리클린스크 화력발전소, 시베리아의 수르구트, 니제바르톱스크, 베료조보, 나자로보, 네륜그리 화력발전소 등을 들 수 있다.
          현재 러시아연방의 중앙지역에 스몰렌스크, 트베리, 쿠르스크, 노보보로네주, 코스트로마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 북서경제지역에는 레닌그라드(가장 큰 원전으로서 400만 kW의 전력용량) 원전이 있으며, 북부지역에는 콜스크 원전이 있다. 볼가지역에 드미로프그라드 원전과 발라코프스크 원전이 위치하고 있다. 우랄지역에는 벨로야르스키 원전, 북카프카즈지역에는 로스토프 원전, 그리고 극동지역에는 빌리비노 원전이 있다.
          러시아연방 수력발전소의 특징은 하천의 낙차가 큰 지역에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앙가라-예니세이강 유역에는 가장 큰 수력발전소들이 위치하고 있다. 예를 들어, 크라스노야르스크 수력발전소와 사얀-슈센스코예 수력발전소의 전력용량은 600만 kW이며, 브라츠크와 우스티-일림스크 수력발전소의 전력용량은 400만 kW 이상이다. 이르쿠츠크에도 보구차니 수력발전소가 있으며, 극동지역에서도 제야, 부레이, 콜리마 수력발전소가 있다.

          3) 외환보유액 현황
          2010년 외환보유액 추이

          [2010년 외환보유액 추이]

          2002년 441억 달러에 불과하던 외환보유액은 국제유가 상승에 힘입어 꾸준히 증가하여 2008년 8월에는 5,966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8년 8월 그루지야와의 전쟁 발발 및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대규모 자본유출이 발생했으며 정부가 루블화 환율 방어를 위해 보유외환을 소진함에 따라 외환보유액은 2009년 4월 3,839억 달러까지 감소했다. 그러나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외환보유액은 2010년 6월 이후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여 2010년 12월 1일에 4,831억 달러를 기록하였고 연말에는 이보다 소폭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4. 교역 현황

          러시아의 경상수지 및 무역수지 추이
          구분 2006 2007 2008 2009 2009
          1분기
          2010
          상반기
          2010
          3분기
          경상수지 947 770 1,037 494 179 522 87
          무역수지 1,393 1,309 1,554 1,116 430 860 285

          2010년 1~9월 중 경상수지 흑자는 609억 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의 330억 달러에 비해 약 85% 증가하는 큰 폭의 증가세를 나타냈으며, 무역수지 흑자도 2009년 1~ 9월의 760억 달러에서 2010년 1~9월 1,145억 달러로 확대되었다. 이는 고유가에 힘입어 2010년 상품수출 규모가 38% 증가한 데 비해 상품수입은 31% 증가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2010년에는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335억 달러와 187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으나, 3분기에는 87억 달러로 흑자폭이 축소되었고 경기 회복세로 수입규모가 증가하고 있어 2010년 경상수지 흑자는 GDP의 4.4%인 692억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1. eurasiaturk 2016-07-03 조회수:12108

          RUSSIA

           

           

           

           종합개관

          1. 위치

          러시아 위치도

          [러시아 위치도]

          러시아는 동경 19, 서경 169.5, 북위 44°- 82°에 위치해 있으며, 영토는 북동유럽에서 우랄지역을 거쳐 시베리아와 극동지방에 이른다. 이 같이 러시아는 영토가 넓기 때문에 동서 간 사이에 11개의 시간대를 가지고 있다. 총면적은 17,075,400㎢로 한반도의 77배, 미국의 1.8배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다. 또 러시아는 북쪽으로 스웨덴, 핀란드 서쪽으로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남쪽으로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중국, 몽골, 북한과 국토를 마주하고 있다.

           

          2. 일반개황

          러시아 일반개황
          국 호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
          ※러시아표기: 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
          독립일 1990년 6월 12일 독립선언
          수 도 모스크바 (Москва:인구 약 1056만)
          영토면적 17,075,400㎢ ※ 세계 1위, 한반도의 약 77배.
          인 구 141,920,900명(2010.1월 )
          민족구성 러시아인 80%, 타타르인 4%, 우크라이나인 2% 등
          종 교 러시아 정교회
          언 어 러시아어
          평균수명 남성: 61세, 여성: 72세
          문맹률 1%
          대통령 및 임기 드미트리 아나톨리예비치 메드베데프
          (Дмитрий Анатольевич Медведев)
          임기 4년 ※ 취임 2008.5.7
          의회 양원제 / 상원: 166명 하원: 450명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제
          주요정당 통합 러시아당, 공산당, 자유민주당, 야블로코당
          화폐단위 루블 / 1$=29루블 (2011)
          국내총생산(GDP) 1조 2,315억 $(2009)
          1인당 GDP 8,678$ (2009)
          수출입 수출액: 4760억 $ ※ 수출품목 : 석유, 천연가스, 목재, 금속, 화학제품, 군수품 / 수입액: 3020억 $
          ※ 수입품목 : 기계설비, 의약품, 육류, 설탕
          주요산업 광업, 석탄, 석유, 의료기계, 군수품
          주요자원 석유, 천연가스, 석탄, 광물
          행정구성 21개 자치공화국, 46개 주, 9개 크라이, 1개 자치주,
          4개 자치구, 2개 연방시
          주요도시 모스크바, 상트 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린부르크, 노보시비르스크
          주요경축일 1.1 새해, 1.7 성탄절, 3.8 여성의 날, 5.1 노동절, 5.9 승전기념일,
          6.12 러시아의 날, 10.10 농민의 날, 11.4 화해의 날,

           

          3. 국기

          국기

          위로부터 하양, 파랑, 빨강의 3색 기로써 하양은 고귀함과 진실, 고상함, 독립을 파랑은 정직, 헌신, 순수, 충성을 빨강은 용기, 사랑, 자기희생을 나타낸다.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3색을 위로부터 각각 천상세계, 하늘, 속세를 가리키는 우주적 개념으로 설명하였고, 이후에는 3개 동 슬라브 국가인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러시아의 통합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가로 세로 비율은 3:2이다. 1705년 1월 20일 표트르 1세의 명에 따라 국기로서 최초로 인정되었고, 2000년 12월 25일 국기에 관한 법에 따라 재 제정 되었다.

           

          4. 국가문장

          국가문장

          제정 러시아에서 사용되었던 문장은 크게 두 모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말을 탄 게오르기 승리자가 창을 들고 사악한 용을 찌르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쌍두독수리 모습이다. 전자는 모스크바의 문장이며 후자는 이반 3세 시절 즉 15세기 말에 비잔틴으로부터 계승 받은 문장이다. 이렇게 두 가지 모습을 한 문장이 17세기부터 러시아를 상징하는 공식문장이 되었는데, 이때에 왕관과 홀(笏), 황금구가 추가되었다. 쌍두독수리의 머리 위에 각각 작은 왕관이 있고, 그 두 왕관 위에 하나의 큰 왕관이 설정되었다. 독수리의 오른쪽 발에는 홀이 쥐어져 있고, 왼쪽 발에는 황금구가 쥐어져 있다. 홀은 세속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하고, 황금구는 전 세계를 그리스도교화 하겠다는 상징으로 지구 위에 십자가가 놓여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세 개의 왕관은 통합된 러시아의 국가를 상징하였다. 18세기에는 문장에 색깔이 추가되었는데, 쌍두독수리는 검은색으로, 바탕은 노란색으로 처리되었고, 게오르기는 빨간색 바탕에 청색으로 칠해 졌다.

           

          5. 국가

          국가

          2001년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은 전 옐친 대통령과 일부 지식인, 인권 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역사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조화되는 상징을 선택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옛 소련 시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알렉산드로프의 곡을 새로운 국가로 채택하였다. 미국과 견줄 수 있는 강력한 러시아 건설을 정치적 정당성을 삼고 있는 푸틴은 강력한 국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국가가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극우민족주의 일부 정치인들은 앞으로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의 시작과 끝에 이 국가를 반드시 방영해야 하고, 나아가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에서도 이 국가를 연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6. 참고문헌

          - http://www.unirussia.com/

          - http://www.seri.org

          - http://rus-moscow.mofat.go.kr/

          - http://www.kiep.go.kr/

          - http://russiainfo.co.kr

          - http://www.google.co.kr/webhp?hl=ko

          - http://ko.wikipedia.org/wiki/

          - http://www.kotra.or.kr/

          - http://www.rambler.ru

           

           

           

           

           

          자연환경

           

          1. 지형

          러시아의 지형도

          우랄산맥을 제외하면, 러시아의 지형은 남동쪽으로 험준한 산악지대가 발달하였고 북서쪽으로는 광활한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러시아의 지역은 크게 러시아 평원, 카프카스 지역, 우랄산맥, 서(西)시베리아 저지, 중앙 시베리아 고원, 남부 산악지대, 동부 산악지대로 구분된다.

          콜라∙카렐리야 지역은 핀란드 국경을 접한 유럽러시아의 북서부 지역이다. 카렐리야 지역은 고원지형을 이루나 해발고도는 낮다. 대부분 고도 200m 정도의 구릉이 펼쳐져 있어 흡사 커다란 반구형의 극장과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 또한, 구릉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곳곳에 빙하호와 늪지가 발달하였다. 콜라반도에는 히비니산(1,191m)을 제외하고는 해발고도 300m 미만의 낮은 구릉이 발달하였다. 러시아 평원은 서쪽 국경선으로부터 동으로 우랄산맥까지, 북극해로부터 남으로 카프카스 지방과 카스피해까지 펼쳐진 대평원이다. 광활한 평원의 서쪽과 남쪽으로 발다이구릉, 스몰렌스크∙모스크바고원, 중앙러시아고원, 프리모르스키고원 등 400m 미만의 저산지가 분포해 있다. 이 고원들 사이로 드네프르강, 돈강, 드비나강 등이 흐르면서 그 주위에 범람원을 이루고 있다. 특히 발다이구릉은 해발고도 300m 내외의 빙하성 산지로서 볼호프강, 드비나강, 볼가강 등의 분수계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평원은 대부분 선캄브리아기 충적층이 덮인 지형구조를 보여주는데, 충적층이 두꺼운 곳에는 석탄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카프카스 지역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쿠반저지와 쿠마저지 및 카스피해 연안저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으며 북쪽으로 러시아평원과 연결된다. 특히 카스피해 연안은 해수면 이하(-27m)의 낮은 저지대이다. 쿠반저지와 쿠마저지 사이에는 평균 해발고도 400m의 스타브로폴고원이 있다. 한편 카프카스 지역 남단에는 험준한 카프카스산맥이 동서로 발달해 있어 러시아와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국경선 역할을 한다.

          우랄산맥은 북극해 연안에서 카자흐스탄에 이르는 총 길이 약 2,080km의 습곡산맥으로서 러시아평원과 서시베리아저지를 구분해주고 있다. 북쪽의 나로드나야산(1,894m)을 비롯해 해발고도 1,500m가 넘는 산은 소수이고 그 사이로 낮은 산들이 이어져 있다. 그래서 우랄산맥은 큰 교통장애 요소가 되지 못하며, 일찍부터 주요 교통로가 발달해 왔다.

          시베리아 저지는 우랄산맥에서 동쪽의 예니세이강까지 북극해에서 남쪽 알타이산맥까지 펼쳐져 있는 광활한 지역이다. 이 저지는 오비강과 이르티슈강이 형성한 거대한 범람원으로서 늪지가 많다. 대부분 해발고도 100m를 넘지 않는 저지이다. 취락은 주로 비교적 높은 남반부에 발달하였다. 중앙 시베리아 고원은 예니세이강과 동쪽의 레나강 사이에 발달한 고원지대로서 대부분 해발고도 400~700m의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니세이강과 레나강의 지류가 고원 사이로 흐르면서 골짜기를 이룬다. 중앙시베리아 고원 북쪽으로는 비랑가 산맥과 푸토란 산맥이 있으며, 남쪽에는 바이칼리아 산맥이 있다. 이들 산맥은 비교적 높은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에는 야쿠티아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남부 산악지대는 카자흐스탄의 동쪽 국경선에서 바이칼호에 이르는 지역으로, 알타이산맥, 동서 사얀산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산맥들은 해발고도 2,700~4,200m의 험준한 산지로서, 정상부에서는 평탄한 고원을 이룬다. 또한 정상부의 만년설이 녹으면서 예니세이, 오비, 이르티슈강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한편 바이칼호는 단층작용으로 형성된 거대한 호수로 최대 수심이 1,616m에 이른다. 동부 산악지대는 동쪽의 바이칼호로부터 야블로노비산맥, 스타노보이산맥, 주그주르산맥, 콜리마산맥, 추코트산맥으로 이어져 베링해까지 이어진다. 이 산맥들은 해발고도 2,000~3,000m 사이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대 유럽 지괴와 북아메리카 지괴가 충돌하면서 형성된 습곡산지이다. 한편 동부산악지대의 동쪽 지역은 화산이 집중 분포되어 있다. 특히 캄차카반도와 쿠릴열도는 활발한 화산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환태평양 화산지대의 일부이다.

           

          2. 하천

          하천의 위치

          [하천의 위치]

          러시아의 큰 하천은 주로 중앙아시아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산악지역에서 발원하고 있으며, 그 중 카스피해로 유입되는 볼가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하천들은 북류한다. 대체로 상류지역에 해당하는 급경사 부분은 그 길이가 짧으며, 유로의 대부분이 평원 위로 흐르고 있다. 교통수단에 대한 수요는 주로 동서방향으로 발생하는데 비해 하천은 대부분 남북으로 흐르고 있어 하천이 지니는 교통수단으로서의 기여도는 낮을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오래 전부터 운하를 건설하거나 동서방향의 철도망을 건설하여 주요 하천들을 서로 연결하는 교통체계를 마련하고자 노력해왔다.

          한편, 대규모 하천이 남북으로 길게 흐르기 때문에 해빙기가 되더라도 하구 쪽은 얼어 있는 경우가 많아 하천의 범람이 자주 발생한다. 이는 당연히 농업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주요 하천은 발전용수, 농업용수, 교통로, 공업용수로서 그 경제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규모 토목사업을 통해 그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볼가강 개발과 예니세이강 유역변경공사이다. 볼가강 개발은 수력발전 및 홍수조절 목적 외에, 남쪽의 볼고그라드에서 북쪽의 트베리를 거쳐 유럽지역의 운하들과 연결되는 수로교통망을 구축하려는 목적 또한 가지고 있다. 예니세이강 유역 변경공사는 앙가라강으로 유로를 바꿔 큰 낙차를 이용, 대량의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3. 기후

          러시아 기후대

          [러시아 기후대]

          러시아의 기후는 매우 한랭하고 긴 겨울과, 짧고 서늘한 여름을 가지는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이다. 중앙아시아 산악지대가 습윤한 아열대성 기단을, 동쪽의 험준한 습곡산지가 태평양의 해양성 기단을 차단하며, 서쪽에서 오는 대서양 기단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는다. 따라서 대부분 지역이 겨울에는 급속히 추워지는 반면, 여름에는 급격히 기온이 상승한다.

          기온의 연교차는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데,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의 경우 연교차가 60도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큰 연교차를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모스크바는 연교차가 30도에 못 미치고 있으며, 발트해와 태평양 연안지역은 이보다도 작다.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서리가 내리지 않는 날이 150일 이하로 작물의 생육기간이 짧은 편이다.

          1월에는 매우 한랭한 고기압부가 시베리아에서 형성된다. 바람이 육지에서 해양으로 불기 때문에 대부분 지역이 영하로 떨어지며 살인적인 추위가 시작된다. 서쪽의 유럽러시아 지역은 대서양 기단의 영향을 일부 받지만 동쪽으로 올수록 그 영향이 악화된다. 따라서 1월의 등온선 분포는 북서쪽에서 남동 방향으로 뻗어 있다. 7월에는 유라시아 대륙의 기온이 상승하여 중앙아시아와 남부아시아에 저기압대가 형성된다. 이 때부터 약 2~3개월간 집중적인 강수가 이어진다. 7월 등온선 분포는 거의 위도와 평행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북극해 도서지방은 0도, 북극해안은 5~10도, 시베리아 일대는 15도 전후, 유럽러시아 지역은 20도에 육박하는 기온분포를 보인다.

          대서양에서 발달한 해양성 기단은 러시아 강수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러시아 지역의 강수량 분포를 보자면 북위 60도 부근을 정점으로 하여 남북으로 갈수록 강수량이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대서양에서 발달한 해양성 기단의 진로가 북위 60도선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지역의 강수량이 500mm 이하인 가운데, 유럽러시아와 동시베리아에서는 500mm, 시베리아 중부 400mm, 북극해와 카스피해 부근에서는 250mm 이하의 강수량 분포를 보인다. 우랄산맥 부근에는 지형성강우가 빈발하는 편이며, 지중해성 기후와 유사한 흑해 부근에서는 겨울강우량이 많다. 또한 극동지역의 경우 몬순성 강우가 자주 일어난다.

           

          4. 토양 및 식생

          러시아는 위도에 따른 식생대가 매우 뚜렷하다. 툰드라, 타이가, 혼합림, 낙엽수림 지대, 스텝 등이 넓은 지역에 걸쳐 발달해 있다.

          1) 툰드라 지대

          북극해 연안을 따라 핀란드 국경에서 베링해까지 동서로 펼쳐져 있으며, 전체 러시아 면적의 약 5%에 해당한다. 이 지역에는 월 평균기온이 0도 이상인 달이 3~4개월에 불과하고 그 또한 10도를 넘지 않는다. 기후가 극히 한랭하여 하부의 토양층은 영구 동토를 이루고 여름에는 곳곳에 습지가 형성된다. 혹독한 기후, 작물의 짧은 성장기간, 토양의 영구 동결로 농업은 불가능하고, 선태류, 지의류, 양치류와 그 외 일부 관목이 자라고 있을 뿐이다.

          2) 타이가(삼림대) 지대

          툰드라 지대 남쪽에 분포해 있으며 국토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여름에는 온난한 기후를 보인다. 이곳에는 주로 전나무, 낙엽송, 가문비나무 등 침엽수림이 발달해 있지만, 남쪽에는 자작나무, 떡갈나무 등 활엽수림도 있다. 봄과 가을에 빈번히 발생하는 서리, 습지, 척박한 토양 때문에 농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타이가의 대표적인 토양인 포도졸은 표층의 부식질이 쉽게 용탈되기 때문에 매우 척박하다.

          3) 혼합림, 낙엽수림 지대

          타이가 지대 남쪽에 분포하며 서쪽 국경에서 동쪽의 노보시비르스크까지 전개된다. 이 지대는 서쪽의 경우 남북으로 길게 발달한 반면, 동쪽으로 갈수록 그 폭이 좁아지는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타이가 지대에 비해 하계가 길고 온난하며, 동계 역시 상대적으로 짧고 기온도 높은 편이다. 연 강수량은 400~600mm에 불과하지만 증발량이 적고 하계에 집중되어있어 곡물농업에 적합한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지역이 개간되어 농지로 이용되고, 삼림은 극히 일부 지역에만 남아 있다. 주요수종은 참나무, 가문비나무와 같은 침엽수림과 서양물푸레나무, 단풍나무, 느릅나무 등의 활엽수림이 분포해 있다. 이 지대의 토양은 스텝의 토양보다는 비옥도가 떨어지지만 타이가의 포도졸보다는 생산적이다. 즉 영구 동토가 없고 배수도 양호하며, 상대적으로 토양의 여과성이 적고 토양층도 두껍다. 뿐만 아니라 많은 영양분을 가진 빙하성 퇴적물질이 이곳에 집중적으로 퇴적되어 토양의 비옥도를 높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곳에는 다양한 농작물이 재배되고 목축업이 성행하는 등 스텝 지역과 더불어 러시아의 중요한 농업지역이 되고 있다. 토지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이곳에 인구가 집중 분포해 왔다. 이 지대 남쪽에는 삼림과 스텝이 혼재되어 있는 삼림 스텝 지대가 동서로 길게 서(西)시베리아 지역까지 분포해 있다. 문자 그대로 삼림과 스텝의 점이지대이다.

          4) 스텝 지대

          서쪽 국경에서부터 동쪽의 시베리아 알타이산맥까지 뻗어 있다. 이 지역은 하계가 온난하고 무상기일(서리가 없는 기간)이 길지만, 연 강수량이 200~500mm에 불과하다. 따라서 건조한 기후에 잘 견딜 수 있는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사육을 많이 한다. 토양은 흑색의 체르노젬(흑토대)으로서, 부식질이 매년 쌓이는 반면 거의 용탈되지 않아 토양 속에 영양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특히 토양 내 석회분이 토양을 중성으로 만든다. 이 지대는 러시아의 곡창지대로 밀, 사탕무, 해바라기 등의 농작물 재배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5. 행정구역

          러시아의 행정구역

          [러시아의 행정구역]

          러시아의 연방제도는 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소비에트 러시아, 그리고 러시아 연방제를 갖춘 지금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왔다. 제정 러시아 시기의 지방통치는 영토가 본격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한 15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지속되었다. 특히 이반 4세는 우랄 산맥 너머 시베리아를 본토에 편입시켰으며, 정복한 지역을 대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전제정치를 실시하였다.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 영토를 50개의 지방으로 구분하여 통치한 바 있다. 이처럼 드넓은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지방을 일정한 단위로 구분하고 중앙에서 임명한 지사들을 보내는 등 여러 정책들이 도입되었지만, 사실상 러시아 제국은 연방제가 도입되지 않은 단일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 후, 1918년부터 소비에트 연방제가 시작되었다. 신생 공산정부는 정국의 안정을 위해 중앙집권화 정책과 병행하여, 대중의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 소수민족의 자치를 인정한다. 소비에트 정부는 국토를 공화국, 자치주, 자치구, 주와 변강, 시로 구분, 통치하였다. 이는 공산당 독재를 통한 중앙집권적인 통제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1980년대 말부터 소련 전역에서 지방 분리주의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지방정부와의 협상은 지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중앙권력은 약화되었다.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은 대통령 당선 이후 ‘강한 러시아’를 국정지표로 삼으면서 지역분리주의를 국가권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보았다. 그는 일명 ‘수퍼주지사 제도’라 불리는 전권대표제를 제정하여 전국을 7개의 연방관구로 구분하고 각 관구에 대통령 전권대표를 파견하였다. 이 제도는 지역분리주의를 약화시키고 중앙의 지방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7개의 연방관구는 중앙, 남부, 북서, 우랄, 볼가, 극동, 시베리아 관구이다. 그 후 2010년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남부연방관구에서 북카프카스 관구를 분리하면서 8개 관구로 관구의 수가 증가하였다. 새로 분리된 북카프카스 관구에는 체첸, 잉구세티야를 비롯한 7개 행정구역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러시아는 다수의 행정주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 경제적 능력이 취약한 주체를 타 연방주체가 흡수하는 등 행정주체들의 통폐합 과정을 이루어졌다. 이 과정을 통해 89개였던 행정주체의 수는 2008년 3월부터 83개로 축소되었다. 이로써 러시아 행정주체는 공화국 21개, 변강 9개, 주 46개, 특별시 2개, 자치주 1개, 자치구 4개가 되었다. 행정주체 중 각 공화국들은 통합적인 경제권을 가지고 있다. 9개의 변강지방은 주로 비러시아인이 거주 접경지역에 설치하여 타 연방주체로 편입이 불가하다. 주(오블라스티)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구베르니야를 재편한 행정구역이며, 자체 법령을 보유하고 있고 역시 타 연방주체로의 편입이 불가하다. 2개의 특별시 또한 자체적 법령을 보유하고 있다. 자치주는 공화국보다는 소규모이지만 자치권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에 구성한다. 자치구는 광활한 지역에 거주해 온 토착민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러시아 일반개황
          공화국 (21개) 아디게야 알타이 바시코르토스탄 부랴티야
          다게스탄 잉구세티야 카바르디노-발카리야 칼미키야
          카라차예보-체르케시야 카렐리야 코미 마리-엘
          모르도비야 사하(야쿠티야) 북오세티아-알라니야 타타르스탄
          티바 우드무르티야 체첸(체츠냐) 추바시야
          하카시야
          변강 (9개) 알타이 자바이칼리예 캄차트카 크라스노다르
          크라스노야르스크 페름 프리모리예 스타브로폴
          하바롭스크
          주 (6개) 아무르 아르한겔스크 아스트라한 벨고로드
          브랸스크 첼랴빈스크 이르쿠츠크 이바노보
          칼리닌그라드 칼루가 케메로보 키로프
          코스트로마 쿠르간 쿠르스크 레닌그라드
          리페츠크 마가단 모스크바 무르만스크
          니주니 노브고로드 노브고로드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
          오룔 펜자 프스코프 로스토프
          오렌부르크 랴잔 사할린 사마라
          사라토프 스몰렌스크 스베르들롭스크 탐보프
          트베리 툴라 튜멘 톰스크
          블라디미르 볼고그라드 볼로그다 보로네쥬
          야로슬라블 울랴놉스크
          자치주(1개) 예브레이(유태인)
          자치구(4개) 네네츠 한티-만시 추코트카 야말로-네네츠
          특별시(2개) 모스크바 상트 페테르부르크

           
          1) 러시아의 수도 - 모스크바
          크렘린과 모스크바의 강 모스크바 국립대학

          [크렘린과 모스크바의 강]          [모스크바 국립대학]  

          붉은광장돌고루키 동상

          [붉은광장]                           [돌고루키 동상]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는 러시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다.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답게 러시아 최대의 도시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TOP 10에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순환도로의 길이만 해도 109㎢에 이른다. 거주하는 인구 또한 상당한데, 2010년 1월 기준 모스크바의 인구는 10,562,000 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러시아인의 비율은 약 85%이며, 그 나머지는 우크라이나인, 타타르인, 아르메니아인 등 비러시아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또한 해외 및 CIS 국가, 그리고 러시아의 타 지역에서 많은 수의 노동이주자, 유학생, 사업가 등이 모스크바로 이주해 오고 있어 유동인구의 비율도 높다고 할 수 있다.

          모스크바는 1147년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의 공후였던 유리 돌고루키가 두 강이 면한 삼각형 지형에 목조의 크레믈린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본래 ‘목조 성벽’을 지칭했던 크레믈린은 노브고로드와 같은 러시아 고대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모스크바의 크레믈린이 대표적이며 더 나아가 러시아 권력을 상징하게 되었다. 바로 이 크레믈린을 중심으로 모스크바의 거리와 광장 등이 발달하면서 12~13세기에는 상업과 산업의 요지가 되었다. 13세기에는 신흥 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1326년 키예프에 있던 러시아 정교의 대주교 자리 역시 모스크바로 옮겨져 이 도시는 종교중심지로서도 의미를 갖게 되었다. 모스크바 공국에서부터 러시아제국(1728-1732), 소비에트 러시아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로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모스크바에는 크레믈린, 붉은 광장, 볼쇼이 극장 등 러시아를 상징하는 여러 명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거리에는 유명인물들의 동상들이 즐비하고,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음악가, 화가들이 거주했던 아파트들도 잘 보존되어 있어 발이 닫는 곳마다 러시아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육중한 스탈린식 아파트와 고풍스러운 건물들, 그리고 화려한 현대식 상점들 사이로 메르세데스, 포르셰, BMW들 세계적인 자동차들이 누비고 있어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글로벌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2) 러시아 제 2의 도시 -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쥬 넵스키 대로

          [에르미타쥬]                         [넵스키 대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북위 60도에 위치해 있으며 인구는 약 4백 70만 명이다. 도시의 중심을 흐르는 네바 강은 길이 74km, 평균너비 600m에 이른다. 네바 강은 65개의 지류와 운하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의 발생지였던 토끼 섬을 중심으로 4개의 큰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름 평균기온은 영상 18도, 겨울은 영하 10도이다. 이 도시의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는 백야 현상으로 백야는 5월 25, 26일에 시작하여 6월 21, 22일에 최고조에 이르러 7월 16, 17일쯤에 끝난다.
          ‘유럽을 향한 창’이란 모토 아래 표트르 대제가 많은 희생을 치르고 늪지대에 세운 도시, 베드로의 도시가 바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이다. 현재 정치, 경제의 수도가 모스크바라고 한다면, 문화의 수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라고 할 수 있다. 모스크바와는 달리 유럽의 경관을 가지고 있는 이 도시는 18, 19세기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지금까지 장엄한 위엄과 근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1703년 표트르 대제에 의해 건설된 이래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200년간 로마노프 왕조의 수도가 되었다. 러시아 혁명 당시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시절의 ‘레닌그라드’, 1991년 다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개칭되는 등 명칭에서도 역사의 격동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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