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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 벨트 국가 알아보기

  • eurasiaturk 2016-07-12 조회수:1473

    moldova 

     

     

     

    정치/경제

     

     

     

     

    정치

    1991년 8월 27일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몰도바는 1994년 7월 29일 신 헌법을 채택하였다.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가 혼합된 정부형태를 가진 몰도바는 2000년 7월 전 대통령 측이 대통령 권한 강화를 내용으로 헌법 개정 움직임을 보이자 의회 내 좌ㆍ우 연합하여 대통령을 의회에서 선출하도록 헌법을 개정하였다. 2001년 2월 조기 총선을 실시하여 같은 해 4월 4일 블라디미르 보로닌이 공산당 당수가 대통령에 선출되었으며 2005년 재선에 성공하여 오늘에 이른다. 1994년 새로 채택되고 2000년 개정된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은 의회에서 선출되며 의회는 일원제이다. 2001년 2월 총선에서 몰도바공산당(CPM)이 압승하였으며, 정국은 점차 안정국면에 돌입하고 있다. 공산당의 기본성격상 정치적•경제적으로 구 소련 국가들과 관계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2005년 3월 6일 총선(다음 선거일은 2009년)에서 몰도바공산당 56석, 민주몰도바블록 34석, 기독교민주인민정당 11석 등을 획득하였다. 바실리 탈레프가 초대 총리에 임명되었다. 인접국가의 국제 분쟁에도 불구하고 1992년 8월에 이르러 몰도바를 승인한 국가는 110여 개국에 달하였고, 외교관계를 수립한 국가는 60여 개국에 이르렀다. 1992년 들어서 몰도바 내 드네스트르강 동안(東岸) 지역에서 슬라브족과의 무력충돌이 일어났는데, 몰도바가 역사적•문화적으로 루마니아와 연대가 매우 강한데 대한 저항이다.
    2007년 5월 지방 선거가 실시되었고 공산당 지지율이 하락하여 35개 지역 중 6개 지역에서 과반수 득표율을 얻었다.

     

    1. 주요 정치 현안 - 몰도바 내 분리운동

    몰도바가 독립하면서 루마니아로 합병을 표방하자 몰도바 내 트랜스드녜스트르 지역의 러시아인들이 이에 반발하여 독립이나 러시아 연방의 공화국 편입을 주장하며 몰도바와 트랜스 드녜스트르간에 유혈분쟁이 발생했다.

    트랜스드녜스트르 지역은 원래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였고, 나머지 몰도바 영토는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루마니아 영토였다. 2차 대전 중이던 1944년 몰도바는 소련의 완전한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소련의 이 같은 무리한 민족통합과 국경획정은 후일 민족간 갈등의 근본적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 지역의 민족분규는 몰도바정부가 소수민족을 차별하는 문화정책과 루마니아로 합병정책을 표명하면서부터 이다. 드녜스트르강 서쪽에 거주하고 있는 러시아 계 주민들은 1990년 9월 독자적인 공화국 수립을 선언하였고, 분리운동을 저지하려는 몰도바인과 드녜스트르 지역의 러시아인이 1990년 11월 충돌하면서 양 민족간 분쟁이 본격화되었다. 1991년 8월 쿠데타 이후 몰도바는 소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고 드녜스트르 공화국도 몰도바로부터 독립을 선포하였다. 몰도바 정부는 드녜스트르 공화국의 독립 선포를 위헌이라 비난하고 이를 무효라고 결정하자 재차 양 민족간 유혈 충돌이 발생하였다. 이에 옐친은 러시아인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고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몰도바 사태가 장기화되자 러시아 정부는 양 민족간의 분쟁 종식을 위한 회담을 중재하였다. 양측은 법을 준수하고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하며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몰도바와 드녜스트르간의 유혈 분쟁은 그칠 줄을 몰랐고, 몰도바는 1992년 1월말 UN과 다른 국제기구들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러시아는 그간 몰도바사태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을 회피하여 왔으나 1992년 3월 4일 외무장관 코지레프는 공식성명에서 몰도바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 결과 수주 후 러시아, 루마니아, 몰도바, 우크라이나, 4국의 외상이 헬싱키에서 회담을 갖고 분쟁 당사자들간의 휴전을 촉구하였다.

    군사적으로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었던 드녜스트르 공화국에 비해 열세 있었던 몰도바는 1992년 7월 결국 군사적으로 대항할 것을 포기하고 모스크바당국에 군사 개입 철회와 회담을 요청하였다. 양측은 정전협정에 합의하고 '평화유지군'의 파견을 합의하였다. 또한 몰도바와 트랜스드녜스트르 공화국간의 협상을 중재할 대표를 러시아에서 파견할 것을 합의하였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평화유지 활동은 몰도바의 의도와는 달리 러시아 주둔군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또한 트랜스드녜스트르 공화국의 지위를 강화시키는 현상을 보였다. 이러한 현상을 타파하기 위하여 몰도바는 평화유지군의 국제화와 분쟁 해결의 국제적 참여를 원하였으나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일단 드네스트르지역을 둘러싼 몰도바사태는 러시아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1992년 가을 휴전이 성립되었고 이를 감시, 감독할 평화유지군이 파견되면서 일단 평온을 되찾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드녜스트르 공화국은 군대를 계속 증강시켜 1996년 말 현재 54,000명으로 증가되었다.

     

    외교

     

    1. GUAM (ГУАМ)

    1997년 10월 이전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었던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몰다비아의 국가간 기구이다. 1999~2005년에는 우즈베키스탄도 이 기구에 가입해 있었다. 기구의 이름은 가입 국가의 첫머리 글자를 땄으며 우즈베키스탄이 가입해 있을 당시에는 GUUAM이라고 했다. 정책방향은 가입 국가간의 관계강화에 있다.

     

    2. 몰도바와 러시아

    러시아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으며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트랜스드네스트르 지역 내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주둔하는 러시아의 군사문제로 러시아와 갈등관계에 있다. 2005년 총선을 통해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친 서방 정책으로 180도 방향전환을 시도했다. 집권당인 공산당은 트랜스드네스트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1500명의 러시아 군대의 철수를 요구했으며 보로닌 대통령은 20명의 러시아인들을 스파이 혐의로 추방하는 등 러시아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대 EU접근을 시도했다. 2006년3월 농약 및 중금속이 과다 검출되었다는 이유로 몰도바 산 포도주 수입을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금지하였다. 2006년 1월 러시아 가스회사 가즈프롬이 몰도바에 1,000m³당 160달러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자 블라디미르 보로닌 대통령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가격인상은 수용할 수 없다"라고 반발, 이에 러시아는 가스공급을 중단했다.

     

    3. 몰도바와 루마니아

    2차 세계대전 이전 몰도바는 루마니아의 일부였고 전체 인구의 70%가 루마니아어를 구사하며 루마니아와는 혈연으로도 많이 얽혀있다. 2007년 1월 1일자로 루마니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몰도바 국민의 루마니아 시민권 신청이 쇄도(몰도바인 8명중 1명이 신청)했으며 이는 몰도바와 루마니아와의 갈등을 야기시켰다. 몰도바 국민의 루마니아 시민권 신청 업무가 폭주하자 루마니아 대통령 트라이안 바세스쿠는 영사관 2곳을 추가로 신설을 약속했으며 블라디미르 보로닌 몰도바 대통령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양국 정상회담이 끝난 후 몰도바 정부는 루마니아가 몰도바를 재통합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고 루마니아 영사관 신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또한 당시 보로닌 대통령은 "몰도바는 영원히 그 누구와도 통합하지 않을 것"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경제

    몰도바는 유럽 최빈국이고 비옥한 농토를 기반으로 농립업(GDP의 16.0%)이 발달된 농업국이며 CIS국가, 특히 러시아에 대한 교역의존도가 높아 러시아의 경제여건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GDP는 1991년 구 소연방에서 독립한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심각한 경제 침체기가 지속되었으나 해외근로자 송금 유입 및 임금 상승에 따른 소비 증가에 힘입어 2000년 이후에는 꾸준한 경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2002~2005년 동안 연간 7%대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였으나, 2006년에는 실질 GDP성장률이 러시아의 일부 품목(포도주 등) 수입금지 조치(3월)의 여파로 4.0%에 머물렀다. 2007년 1/4분기 중 고정자산투자와 외국인직접투자가 늘어나면서, 경제 성장률이 7.3%를 기록하였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해외근로자의 송금 유입증가로 2003년 이후 두 자릿수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해왔다.

     

    [몰도바 주요 경제 지표 (단위: % )]

    데이터 테이블
    구분 2003 2004 2005 2006 2007
    경제성장률 6.6 7.4 7.5 4.0 5.0
    재정수지/GDP 1.6 0.5 1.6 -0.3 -0.2
    소비자물가상승률 11.8 12.5 13.2 11.9 11.2

    구 소련 당시 비옥한 농토를 기반으로 농립업이 발달하여 구 소연방의 농산물(담배30%, 포도 및 포도주 20%, 과일 및 채소 10%)의 공급지 역할을 하였으나 농림업 부문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기준 21%에서 2006년에 약 16%로 줄어들었다. 제조업 부문은 식품가공업 분야가 주도하고 있으며 건설, 무역, 운송 등을 중심으로 서비스 부문의 비중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구조적인 개혁이나 사업환경 개선이 여전히 미진하여 외부 충격에 취약한 경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최대 수출국인 러시아의 금수 조치로 인해 2006년 기준 수출 비중은 러시아가 17.3%로 대폭 줄어들었으며(2005년 35%), 루마니아(14.8%), 이탈리아(12.2%), 우크라이나(12.2%) 등이 뒤를 이었다.

    EU 국가와의 교역이 차츰 강화되어 2006년 대 EU 수출은 전체 수출의 35%를 차지하였고 품목별로는 값싼 노동력 및 유럽과의 지리적 인접성을 바탕으로 작물의 대 EU 수출이 크게 증가하였으나, 농산물의 수출은 까다로운 진입장벽 때문에 아직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에너지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으며, 국제 원유가격 상승 및 러시아의 천연가스 가격 인상으로 인해 2006년의 에너지 수입 규모는 전년보다 30%이상 증가하였고 2001년 이후 우크라이나로부터 전력을 수입하는 등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반도의의 1/6에 불과한 국토면적의 75%가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비옥한 농토 및 양호한 대륙성 기후는 농업분야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별다른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수출품목 다양화에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1년 이래의 높은 경제 성장세는 GDP의 25%(비공식적으로는 33%)에 달하는 해외근로자의 국내 송금액 확대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006년 5월 IMF와 빈곤 감소 및 성장촉진(Poverty Reduction and Growth Facility:PRGF)협약을 체결함으로써 향후 3년간 1억 6,700만 달러 상당의 차관을 수혜 하게 되었다. IMF는 몰도바 정부의 개혁성과가 "고무적(encouraging)"이라고 평가하며 2007년 7월 3,300만 달러의 차관을 추가 승인하였다.

    독립 후 초기에는 총체적인 민영화 프로그램을 통한 중소기업의 매각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나 포도주 및 담배 산업 등 정치세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산업 부문의 민영화는 개혁의지 부족으로 다소 미진하였다. 2006년 민영화를 통한 정부의 총수입은 1,300만 달러에 불과하였으며 여전히 350여 개의 국영기업에 대한 100% 지분 보유를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2004~2006년 중 법인세율을 20%에서 15%로, 최고 소득 세율을 22%에서 20%로 인하하는 등 세제 개혁을 통한 재정수지 개선에 주력해왔으며 특히 2006년에는 총 세입의 35%를 차지하였던 부가가치세(VAT)를 연방예산에 통합ㆍ편입하였다.

    몰도바 중앙은행(National Bank of Moldova; NBM)은 해외 노동자 송금과 외화 차입으로 인한 과잉유동성 및 인플레 압박을 해소하기 위한 긴축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으며, 환율 안정 도모를 위해 필요 시마다 시장에 개입하는 등 통화 정책은 다소 안정적이다.

    몰도바의 외환 보유액은 2003년 3억 달러에 불과하였으나 2007년 8월 외환 보유액은 9억 8,800만 달러 수준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외채잔액은 꾸준히 늘어나 2006년 말에는 GDP의 약 74%인 25억 달러를 기록하였고 외채잔액의 GDP 비중은 2000년에 131%를 기록한 이후 개선 추세를 보여왔으나 아직도 70~80%의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주요기관별 신용도 평가순위는 OECD 7등급(2006.1) →7등급(2007.1), Moody's Ca(2002.7)→Caa1(2003.5), Fitch: B-(2003.2)→B-(2005.2) 등이다. 외채상환실적으로는 1998년, 2000년 2회 채무불이행 경험이 있고 2002년에는 1997년에 발행된 외화채권(민간부문) 7,500만 달러 중 4,000만 달러에 대해 2009년까지 연장하였다. 2006년 말 기준 총 외채 잔액은 약 25억 달러이며 수출 신용 등 민간 채무가 증가 추세를 보인 반면, 정부의 외채 도입지양 정책으로 공적 채무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 MOLDOVA

     

     

     

    종합개관

     

     

    1. 위치

    몰도바 위치도

    [몰도바 위치도]

    동유럽에 위치, 루마니아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루마니아와 450km, 우크라이나와 939km의 국경을 맞이하고 있다.

     

    2. 일반개황

    몰도바 일반개황
    국 호 공식명칭 : Republic of Moldova(Republica Moldova)
    약칭: Moldova(Молдавия, Молдова)
    독립일 1991년 8월 27일 (소련으로부터 독립)
    수 도 Chisinau(Кишинэу, Кишнёв), 인구 : 72만 명
    영토면적 33,843km²
    인구 4,320,490명(2007년)
    민족구성 몰도바/루마니아인 78.2%, 우크라이나인 8.4%, 러시아인 5.8%, 가가우즈인 4.4%, 불가리아인 1.9%, 기타 1.3%
    종 교 정교 98%, 유대교 1.5%, 침례교 및 기타 0.5%
    언 어 몰도바어(루마니아어와 동일), 러시아어, 가가우즈어(터키방언)
    평균수명 전체 : 70.2년(남자 : 66.51년, 여자 : 74.11)
    문맹률 0.1%
    대통령 및 임기 블라디미르 보로닌(Vladimir Voronin, 2001년 4월 1일~현재)
    의 회 최고회의(Supreme Soviet, 단원제, 4년, 101석)
    정부형태 공화제(의원 선출 대통령제)
    주요 정당 Christian Democratic People's Party(Iurie Rosca), Communist Party of the Republic of Moldova(Vladimir Voronin),
    Democratic Party(Dumitri Diacov), Liberal Democratic Party(Vladimir Filat), National Liberal Party(Vitalia Pavlicenko),
    Our Moldova Alliance(Serafim Urechean), Party for Social Democracy(Dumitru Braghis), Social Liberal Party(Oleg Serebrian)
    화폐단위 레이(Lei) ※ 1$ = 10.6054 lei (2008. 3. 31)
    국내총생산(GDP) 48억$
    1인당 GDP : 1인당 GDP: 2,200 $
    수출입 수출액: 13억 $
    * 수출품목 : 식료품, 섬유, 채소
    수입액: 36억 $
    * 수입품목 : 광물, 기계ㆍ설비
    주요산업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
    주요자원 이탄, 석회암, 포도, 채소, 곡물
    행정구성 32개의 주(район),
    3개의 자치주(муниципий, Bălţi, Chişinău, Tighina),
    2개의 자치공화국(가가우지야, Gagauzia, Гагаузия, 트랜스드니에스트르 Transdniestr)
    주요도시 키시너우, Tiraspol, Beltsy
    주요경축일 1.1 설날, 1.7~8 정교 성탄, 3.8 세계여성의 날, 5.1 노동절, 5.9 승리의 날(День Победы), 8.27 독립기념일, 8.31 민족어의 날, 10.14 끼쉬뇨프(Кишнёв)의 날

     

    3. 국기

    1) 현재 국기

    국기

    [현재 국기]

    1990년 5월 12일 채택되었으며 파란색, 노란색, 붉은색 순으로 색깔이 배열되고 노란색 중심에 국가 문장이 위치하고 있다. 국기 비율은 1:2이다

    1) 시대별 국기

    국기

    몰다비아 자치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Автономная Моодав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Совет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시절의 국기(1925년 4월 30일 채택)

    국기

    몰도바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Молдавская ССР) 시절 국기(1941년 2월 10일 채택)

    국기

    몰도바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시절 국기(1952년 1월 31일 채택)

     

    4. 국가문장

    1) 현재 국가문장

    국가문장

    독수리 가슴에 표현된 방패 윗부분은 붉은색, 아랫부분은 파란색이며 그 중앙에는 황소의 머리가 그려져 있다. 황소의 뿔 사이에는 8각 별이 그려져 있고 머리 왼쪽에는 5개 꽃잎의 장미, 오른쪽에는 초승달이 그려져 있다. 방패에 그려진 모든 모양은 노란색으로 표현되었다. 독수리는 부리에 노란 십자가를 물고 있으며 오른쪽 발톱에는 올리브 나뭇가지, 왼쪽 발톱에는 홀(笏)을 쥐고 있다.

    2) 시대별 국가 문장

    국가문장국가문장

    17세기 몰도바 국가문장                  18세기 몰도바 국가문장

     

    국가문장

    문장의 기본 요소는 방패이며 들소의 머리가 그려져 있다. 들소의 뿔 사이에는 오각형 별이 그려져 있고 왼쪽에는 초승달, 오른쪽에는 장미가 그려져 있다.
    1917~1918년 몰도바 민주주의 공화국 (Молдавская Демокра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시절의 국가문장

    국가문장

    1927~1938년 몰다비아 자치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Автономная Моодав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Совет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시절의 국가문장

    국가문장

    1938~1940년 몰다비아 자치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Автономная Молдав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Совет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시절의 국가문장

    국가문장

    1941~1990년 몰도바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Молдавская ССР) 시절 국가문장

     

     

     

     

    자연환경

     

     

     

    몰도바는 원래 흑해와 접하고 있었으나, 구 소련 시절 흑해 연 안을 우크라이나가 빼앗아감으로써 내륙국으로 전락하였다. 주요 강으로는 드네스트르, 프루트이며 루마니아와의 국경선을 따라 프루트강(江)이 흘러 흑해로 들어가고, 북서부 지역에서 남동쪽으로는 드네스트르강이 흘러 흑해로 들어간다. 드네스트르 강의 지류는 레우트, 븨크, 보트나, 이켈, 쿤둑, 얄푸트가 있고 눈과 비가 강의 수위를 조절하는 주요인이다. 드네스트르강 하류 지역에는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토양은 비옥하며 전체의 3/4이 기름진 체르노좀(흑토)이다. 프루트강과 드네스트르강에 의한 흑해 유입지역이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선에 의하여 막혀있는 실정이다. 호수는 57개가 있으며 주요 호수로는 벨레우, 븨크, 드라첼레, 로툰다, 크라스노예, 판탄이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고도 200m 이하의 구릉지대이며, 국토의 75%가 비옥한 흑토지대로서 전국토의 경작가능지 54.52%, 농경지 8.81%, 기타 36.67%이다(2005년).

    참나무·너도밤나무·단풍나무가 주종인 삼림지대가 국토의 중앙부를 이루며 8%를 차지하고 있다. 북부에는 벨치스텝, 남부에는 브쟈크스텝이 넓게 분포한다.

    산림은 국토 중 과거 20~25%에서 현재는 6%만을 차지하며 100가지 종류의 나무와 관목림이 있다. 동물로는 까술랴(사슴과), 멧돼지, 늑대, 여우, 어류로는 잉어, 쥐노래미, 농어, 쏨뱅이, 붕어 등이 서식하고 있다. 주요 자원으로는 이탄, 석회암, 포도, 채소, 곡물 등이 있다.

    몰도바의 기후는 대륙성 기후이지만 흑해와 가까워 여름이 길고 따뜻하며 겨울이 비교적 춥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농업에 좋은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다. 평균기온은 1월 -3~5℃, 7월 20~25℃이다. 수도 키시네프의 1월 평균기온은 -4℃이고 7월 평균기온은 21℃이다. 연평균강수량은 남서부에서 380mm 정도이고 북부에서 550mm 정도이며, 6월과 7월에 강수량이 많다.

     

     

     

    역사

     

     

     

    고 대

    오늘날의 몰도바가 위치하는 프루트강(江)과 드네스트르강 사이의 영역은 원래 베사라비아라고 불렸다. 몰도바는 베사라비아지역의 서부, 즉 현재의 루마니아에 속하는 지방의 이름이었다. 14세기에 몰도바 공국이 베사라비아 지방을 통치하면서 이 지역은 몰도바 공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므로 당시의 몰도바 공국은 현재 몰도바의 서부, 루마니아에 귀속되어 있었다. 그 후 베사라비아는 오랫동안 헝가리인의 지배를 받았고, 일시적으로 리투아니아의 영역에 속하기도 하였다. 오스만터키의 융성에 따라 16세기 초부터 300여 년 동안 베사라비아는 터키의 통치 하에 있었고, 1812년에 러시아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크림전쟁의 결과, 1856년 남부 베사라비아(현재 우크라이나 영역)가 루마니아 몰다비아(Romanian Moldavia)로 되었다가 1878년 다시 러시아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1918년 1월 제정러시아의 붕괴로 인하여 베사라비아는 공화국으로 독립하였으나, 2달 후 루마니아에 귀속되었다. 그러나 1922년 12월 창건된 구 소련은 베사라비아에 대한 루마니아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인이 많이 살고 있는 드네스트르강의 동쪽 지역에 1924년 10월 12일 몰다비아 자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을 탄생시켰다. 마침내 1939년 8월의 독소(獨蘇) 불가침조약에 따라 1940년 6월 베사라비아가 구 소련에 양도되었고, 같은 해 8월 베사라비아와 몰다비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합쳐져서 몰다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탄생하였다.

    당시에 베사라비아의 남부지방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의 영역으로 귀속되었다. 몰다비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은 1941년 7월부터 독일•루마니아의 공격을 받고 점령되었는데, 점령 기간 중에 6만 4000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4만 7000명 이상의 시민이 독일 등으로 강제 이송되었다. 1944년 8월 소련군이 이 지역을 되찾아 몰도바는 1944년 다시 구 소련의 공화국이 되었다. 1949년에 공업생산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되었으며, 1950년까지 기본적으로 농업집단화도 달성되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 이후, 몰도바인들은 러시아화 정책에 대하여 반대하기 시작하였다. 1987년 5월에 몰도바 공산당(CPM)은 학교에서 루마니아어(語) 교육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조처하였으나 국민들의 반대 여론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몰도바인들은 이주민 이입을 중단해줄 것, 라틴알파벳을 복구해줄 것, 그리고 몰다비아어를 공용어로 지정해줄 것 등을 요구하였다.

    1989년 5월에 다수의 정치단체들과 문화단체들이 연합하여 몰다비아 인민전선(PFM)을 형성하였다. PFM 주도하에 1989년 6월과 8월에 수만 명의 시위가 있었고, 이들은 몰도바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최고 소비에트의 제안을 지지하였다. 이에 맞서 러시아인이나 우크라이나인 등의 비(非)루마니아계 사람들은 그 제안을 반대하는 시위와 파업을 감행하였다. 마침내 1989 9월 1일부터 라틴문자로 표기하는 루마니아어를 공용어로 하고 러시아어는 다민족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로 존속시키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1989년 11월 7일의 혁명기념일과 그 후 3일 동안 진행된 소요와 폭동으로 인하여 몰다비아 공산당(CPM) 제1서기 그로소가 퇴진하고, 개혁 인물인 루신쉬가 들어섰다.

    1990년 2월 25일 몰다비아 최고 소비에트의원 선거가 시행되었다. 380석으로 구성되는 의원 중에서 80%가 CPM 당원이었으나, 많은 의원들이 PFM에 동조적이었다. 약 40%의 의원이 PFM의 지지를 받았고, 약 30%의 의원은 PFM의 노선에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었다. 나머지 30% 의원은 비루마니아계 주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이었다. 1990년 5월에 파스카르 내각이 물러나고 드루크 내각이 들어서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공산당이 갖고 있던 헌법적 권리가 폐기되었고, 정당은 국가기구, 언론매체, 법률집행기구를 관리하거나 감독할 수 없게 되었다. 공산당이 운영하던 잡지사•신문사•방송국 등도 국가의 소유로 이전되었다. 1990년 7월 최고 소비에트는 독립을 선언하고, 국명을 몰도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으로 바꾸었으며, 최고 소비에트는 1940년의 베사라비아 합병이 불법임을 선언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몰도바 내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은 점차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1990년 8월 15만 명의 터키계 가가우즈인은 콤라트를 중심으로 하는 남부지역에서 가가우지아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9월에는 드네스트르강 동안 지역에서 슬라브족들이 드네스트르 소비에트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몰도바 최고 소비에트는 즉각 이러한 독립선언이 무효임을 선언하였다. 몰도바 내부 소수민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몰도바인들이 지배하는 몰도바의 행정부와 입법부는 구 소련으로부터의 사실상 탈퇴를 지속적으로 추구하였다. 정식 국명이 1991년 5월 몰도바 소비에트사회주의 공화국으로부터 몰도바 공화국으로 바뀌었고, 몰도바 최고 소비에트가 몰도바 국회로 개칭되었다. 마침내 1991년 8월 27일 몰도바 국회는 구 소련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선언하였으며, 독립선언 이후 분리독립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사회의 제 부문에서 진행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한국과는 1992년 1월 31일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허승철 주 우크라이나대사가 겸임을 하고 있다. 주요인사교류로는 1993년 10월 코쉬코단 부총리, 보트나루 외부무 제1차관인 대전 엑스포 참관을 위해 방한했고 1997년 11월 카시안 체신부장관이 방한했다. 2008년 1월 17일에는 Timciuc 주중대사 신임장 제정을 계기로 방한했다. 2006년 현재 몰도바에는 고려인 280여명, 일반체류자 2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1993년에서 2005년까지 외교부 산하 KOICA(Kore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가 몰도바에 인적, 기술적 지원을 하였고 학문, 재정적 원조도 이루어졌다.

    1997년 LG정보통신이 몰도바공화국 통신망 현대화 작업에 참여했다. LG정보통신은 몰도바공화국 체신부와 3천만달러 규모의 대용량 전자교환기 및 통신 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했으며 몰도바 북부지역의 통신망 현대화 사업체 필요한 대용량교환기(모델명 STAREX-TX1) 및 광전송 장비 등을 턴기방식으로 수출하는 한편 대규모 CDMA(부호분할다중접속)방식의 무선가입자망(WLL) 구축에 필요한 시스템도 공급하였다.

    2007년 한국의 대몰도바 수출입 총액은 12,915,000불이었으며 수출은 11,167,000불로 품목은 기계 전자전기제품, 플라스틱, 고무 등이었고 수입은 1,178,000불로 섬유, 생활용품, 전자전기제품, 기계류 등이었다.

     

     

     

     

    사회문화

     

     

    구 소련은 몰도바에서 루마니아적인 문화유산을 제거하고 러시아화(化) 촉진 정책을 추진하였다. 구소련 당국은 몰도바로부터 루마니아로 통하는 국경을 폐쇄하고, 몰도바 주민이 루마니아의 영향으로부터 철저히 격리되도록 하기 위하여 키릴문자가 아닌 라틴알파벳으로 루마니아어를 표기하도록 몰도바 주민에게 강요하였다.

    구 소련은 루마니아와는 달리 몰도바적인 민족•문화•국가를 육성하는 데 주력하는 동시에, 이 지역과 루마니아를 통합하려는 민족주의에 대해 엄하게 비판하는 선전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몰도바 내부의 루마니아인 수천 명을 중앙아시아로 추방하고, 다수의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을 몰도바로 이주시키는 정책 등 러시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몰도바의 민족주의적 노선을 말살시킬 수 없었다. 1983년 겨울과 1984년 여름 몰도바의 당과 정부 지도부가 구소련 중앙당 지도부로부터 엄중한 비판을 받은 것은 몰도바인과 러시아인의 긴장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1980년대 말까지 대부분의 교육기관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였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 루마니아 문학과 역사가 교과과정에 편입되는 시도 등 교육제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1976년에 10년간의 의무교육제도를 제정했으며 의무교육을 마친 후 대부분 상급학교에 진학한다. 많은 고등교육기관과 20여개 정도의 과학연구소와 많은 연구기관이 있다. 의료혜택은 일체 무료이다. 2005년 15세 이상 문맹률은 99.1%이다. 평균수명은 2007년 기준 전체 70.2년, 남자 66.51년, 여자 74.11년이며 출생률은 1000명당 10.88명(2007년), 사망률은 1000명당 10.85명(2007년)이다.

    드네스트르강(江)의 동쪽에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 거주하는 비 루마니아계 사람들은 몰도바인의 민족주의적 노선에 대하여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행정 구역으로는32개의 주(район), 3개의 자치주(муниципий, Bălţi, Chişinău, Tighina), 2개의 자치공화국(가가우지야, Gagauzia, Гагаузия, 트랜스드니에스트르 Transdniestr)가 있다.

    몰도바 행정구역

    [몰도바 행정구역]

    총 인구는 4,320,490명이다(2007년 추산). 몰도바 민족별 주민구성을 보면, 루마니아인(人) 계통의 몰도바인이 78.2%이고 우크라이나인 8.4%, 러시아인 5.8%(2004년)이다. 그외에 불가리아인이나 유대인 등의 소수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몰도바에 거주하는 가가우즈인들은 원래 터키계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종교는 정교이다

    몰도바어(Limba moldovenească, Лимба молдовеняскэ)는 루마니아어의 다른 이름으로 몰도바의 공용어이다. 또 트란스니스트리아와 가가우지아의 공용어중 하나이다. 몰도바 헌법에는 몰도바어를 몰도바의 공용어로 규정하고 있으나, 언어학자들은 표준 몰도바어와 표준 루마니아어를 사실상 상호소통에 지장이 없는 동일한 언어의 방언 정도로 취급한다.

    1918년부터 1940년까지 루마니아령인 베사라비아(현재의 몰도바)에서는, 주민이 쓰는 말도 루마니아어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의해서 베사라비아가 소비에트 연방에 병합되어 이 지역에 몰다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현재의 몰도바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루마니아어를 ‘몰도바어’로부르게 되었고, 문자는 로마 문자에서 키릴 문자로 바뀌었다.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면서 몰도바에서도 민족주의운동이 높아져, 1989년에 몰도바어가 로마 문자 표기로 되돌려지고, 공용어로 정해졌다. 1991년에 몰도바 공화국이 독립되면서, 헌법에서도 공용어로 정해졌다. 1996년에는 언어명을 몰도바어에서 루마니아어로 바꾸자는 안이 의회에 제출되지만 몰도바내의 비 루마니아계 주민들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2004년 인구 조사에서 몰도바의 다수를 차지하는 루마니아계 몰도바인들 중 3분의 2가 자신의 모국어를 루마니아어, 3분의 1이 몰도바어라고 답했다.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미승인 국가인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는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와 함께 몰도바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키릴 문자를 사용한다. 키릴 문자로 쓴 몰도바어는 루마니아어 사용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트란스드니에스트르 지역 밖의 루마니아계 몰도바인과 루마니아인에게는 루마니아의 민족주의 및 러시아에 대한 반감 때문에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동방정교(98%)이며 유대교(1.5%), 침례교 및 기타(0.5%)의 종교가 있다.

    성화로 뒤덮인 몰도바 교회

    [성화로 뒤덮인 몰도바 교회]

    몰도바는 인구 대다수가 루마니아계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몰도바의 문화적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전적인 루마니아 문화의 발전을 알아야 한다. 루마니아 문화의 근원은 로마의 식민지였던 A.D.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가 철수한 A.D. 271년 이후 몰도바의 주민들은 비잔틴왕국, 슬라브와 마자르인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나중에는 오스만투르크의 영향도 받았다. 또한 19세기 초반에는 루마니아 문학과 예술분야에 서유럽, 특히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이러한 혼합문화는 풍부한 문화전통을 이루어냈다. 14세기까지 몰도바인들은 자신을 몰도바인이라고 인식해 왔지만 그들의 문화는 루마니아 계통과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베사라비아(Bessarabia)와 트랜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에 거주하는 몰도비아인들은 우크라이나에 인접해 있는 슬라브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더욱이1812~1917년과 1944~1989년 동안 동(東)몰도바인들은 러시아와 구 소련 당국의 통치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았다. 몰도바의 민속문화는 상당히 풍부하며 고대 민속 발라드곡인 미오리타(MioRita)는 중부지역에서 많이 연주되고 있다. 국가적으로 민속문화 전통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대표적으로는 국립무용단인 JOC와 민속합창단 도이나(Doina)가 있다. 문학에서는 극작가 이온 드루타와 시인 에밀리안 부초프, 안드레이 루판 등이 유명하다.

    몰도바는 이슬람 오스만튀르크의 공격에 끝까지 버텨낸 '그리스도 세계'의 성문이다. 당시 독립국이던 몰도바의 왕 스테판 3세는 오스만튀르크와 싸워 승리할 때마다 교회를 지었다는 설을 증명하듯 수많은 교회를 남겼다. 교회마다 성경의 장면을 그린 성화가 건물을 뒤덮고 있는데 이 상화는 문맹자가 많았던 당시 국민 교육용으로 그렸던 것이다. 튀르크와의 전쟁에 총력을 모으기 위해서는 종교 교육이 필수적이었다. 비잔틴 양식을 간소화하고 좀더 역동적인 화풍을 보이는 성당 벽화들은 예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바탕색으로 사용한 푸른색은 호수처럼 맑고 깊은 색감을 느끼게 하는데 금속ㆍ암석ㆍ조개류ㆍ식물을 조합한 이 푸른색은 지금도 방금 칠한 것처럼 선명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대화학 기술로는 이 색깔을 재현하기가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바이올리니스트 세르게이 트로파노프

    [바이올리니스트 세르게이 트로파노프]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세르게이 트로파노프 (48•사진)는 소련 몰도바 출신으로 집시 마을과 가까운 곳에서 성장했다. 뮤지션 겸 프로페셔널 댄서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아코디언, 바라라이카, 팬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를 섭렵했다. 다섯살 때 아버지를 따라간 마을 축제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집시의 열정에 매료돼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1991년 캐나다 몬트리얼로 이주, 캐나다와 미국 등지에서 연주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2008년 3월 29일 서울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이 있었으며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수천년 동안 내려온 집시의 전통을 집시적이면서도 현대적으로 편곡, 강렬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국내 자동차 CF 음악으로 귀에 익은 ‘몰도바’를 비롯해 ‘오버 더 레인보우’, 영화 ‘닥터 지바고’중 ‘라라의 테마’등을 선보였다.

     

     

     

  • eurasiaturk 2016-07-09 조회수:1379

    AZERBAIJANI 

     

     

     

    정치/경제

     

     

    정 치

     

    1. 정치개요

    헤이다르 알리예프 일함 알리예프
    [헤이다르 알리예프]                     [헤이다르 알리예프]

     

    1991년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알리예프家(Aliyev)가 대통령을 세습하는 등 대통령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2003년 10월 대통령에 당선된 헤이다르 알리예프 의 아들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은 2005년 11월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어 통치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였으며, 2008년 10월로 예정된 대선에서도 무난히 승리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일함 알리예프는 아버지의 통치 기간 동안 NAP 당수, 아제르바이잔 국영 석유회사(SOCAR) 부사장 등을 역임한 후 2003년 10월 부정선거를 통해 대통령직을 세습했다. 국제선거감시단에 따르면, 2003년 대선에서 선거인명부 미등록투표, 복수투표 등 다양한 부정선거가 자행 되었다.

     

    [2003년 아제르바이잔 대선 결과]

    2003년 아제르바이잔 대선 결과
    후보자 소속정당 득표율(%)
    일함 알리예프 NAP 76.8
    이사 감바르 무사바트(Musavat) 14.0
    랄라 하지예바 시민연합(A Group of Citizen)
    에티바르 맘마도프 아제르바이잔 독립당(ANIP)
    일리야스 아스마일로프 아돌라트(Adolat)
    사비르 루스탐한리 국민국가당(NSP)
    그드라트 하산쿨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민중전선(PEA)친 전부파

    출처: 아제르바이잔 중앙선거위원회

     

     

    외 교

     

    1. 러시아와는 불안정한 우호관계 유지

    일함 알리예프와 푸틴

    [일함 알리예프와 푸틴]

    나고르니 카라바흐 분쟁에서 러시아가 아르메니아를 지원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되었으나, 1994년 휴전 이후 관계정상화가 이루어졌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집권 이후 양국간 관계는 테러 공동 대응 등 우호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가 그루지야에서 군사기지를 철수하고 아르메니아에 있는 러시아 군사기지를 확충할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아제르바이잔은 우려와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2. 미국과의 전략적인 관계 강화

    워싱턴 방문

    [워싱턴 방문]

    클린턴 정부 시절 아제르바이잔과 미국과의 관계는 카스피 해 유전과 관련된 미국 석유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경제적인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9.11 사태 이후에는 아제르바이잔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에 군사적이 지원을 하는 등 정치적인 측면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미국으로부터 정치 자유화 및 공정선거 실시 등 개혁 압박을 받고 있는 알리예프 정부는 주변국과의 세력균형을 유지 하고 시민혁명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정치개혁 요구를 일부 수용하고 있는 등 미국과의 전략적인 관계 강화에 외교적인 초점을 맞추고 있다.

     

    3. EU와의 관계

    프랑스 방문

    [프랑스 방문]

    EU와의 관계는 대체적으로 유전개발과 관련된 경제적 측면이 강조 되고 있으며, 2004년 EU의 ENP(European Neighborhood Policy)에 가입하는 등 상호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4. 터키와는 양호한 대외관계지속, 이란과는 긴장관계 완화

    인접국인 터키는 나고르니 카라바흐 분쟁 시 아제르바이잔을 군사적∙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등 현재까지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인이 최대 소수민족인 이란과의 대외관계는 아제르바이잔으로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 침투, 이란 영내 아제르바이잔인의 민족주의 문제, 카스피 해 영해 다툼 등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긴장관계에 있다.

    최근 아제르바이잔과 미국과의 협력 관계가 강화되자, 이란은 핵 문제로 인한 대외고립을 피하기 위해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등 긴장관계가 다소 완화되고 있다.

     

    5. 그루지야와의 관계

    이미지

    인접국이 그루지야와는 러시아로부터의 간섭을 벗어나기 위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등 양호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루지야의 시민혁명 이후 신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협조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경 제

     

    1. 국내경제

    [주요 국내 경제 지표]

    (단위: %)

    주요 국내 경제 지표
    구분 2003 2004 2005 2006 2007
    경제 성장률 11.2 10.2 26.2 34.5 24
    재정수지/GDP -5.1 -2.6 -2.3 -4.8 -5.4
    소비자물가상승률 2.2 6.8 11.6 8.3 16.7

    출처: 한국수출입은행

     

    - 물가 상승 가속화
    2003년까지 중앙은행의 긴축정책에 따라 대체로 물가가 안정되었으나, 아제르바이잔 물가위원회는 지난 2006년1.7(일) 휘발유, 전기, 수도 등 주요 생활 분야에서 대폭적인 물가 인상을 일제히 승인하였다. (휘발유 50%, 전기 300%, 수도 90% 및 교통요금 50% 등이 각각 인상되었으며, 휘발유의 경우 조만간 20% 추가 인상, 빵 값 50%, 신문구독료 50% 인상)

     

    - 재정수지는 대체로 안정세 유지
    에너지부문의 수출 증가로 재정수입이 대폭 증가 하였으나, 최저임금 및 공무원임금 인상, 교육, 보건 등 사회인프라에 대한 재정지출 확대로 재정수지는 GDP대비 5.4%로 적자가 확대되었다.

     
    2. 주요 산업

    [주요 산업의 GDP 비중]

    주요 산업의 GDP 비중
    구분 2003
    농업 12.3
    광업(석유 및 천연가스) 30.5
    제조업 9.2
    전력 1.1
    건설 14.6
    무역 8.6
    교통 및 통신 10.2
    기타 13.4

    출처: 한국수출입은행

     

    (1) 석유 및 가스

    주요 석유 광구

    [주요 석유 광구]

     

    - 현재는 석유, 가스 부문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구조이지만, 중장기 경제발전 전략은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산업을 다각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BP(British Petroleum)은 2006년 말 기준 확인매장량을 원유 70억 배럴(세계20위), 천연가스는 48.4조ft (세계 24위)로 평가했다.

    - 현재 4개의 대형 석유 및 가스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가 완료, 또는 진행 중이며, 이로 인해 향후 석유 및 가스 생산량은 더욱 증가할 전망임. 현재 BTC 송유관 공사와 ACG(Azeri-Chirag-Guneshi) 유전 개발은 완료 되었으며, 샤-데니즈 가스전과 본 가스전에서 생산된 가스를 운반하게 될 남카프카즈 가스관(South Caucasus Gas Pipeline: SCP)도 완료 되었다.

     

    석유의 생산, 수출, 수익현황

    단위: 백만 달러

    석유의 생산, 수출, 수익현황
    구분 2002 2003 2004 2005 2006 2010
    석유생산 310 320 319 440 600 1,250
    석유수출 2,046 2,250 3,097 4,989 7,931 17,857
    석유수익 21.9 21.4 20.3 23.1 - -
    석유기금 자산 693 821 974 1,320 2,165 42,517

    출처: 한국수출입은행

     
     
    BTC 송유관

     

    [BTC 송유관]

    아제르바이잔 바쿠, 그루지야 트빌리시 지중해 연안의 터키 제이한 항을 연결하는 1,767km으로 세계에서 제일 긴 송유관이다. 러시아를 지나지 않는 BTC개통으로 예전 석유수송의 러시아 의존을 탈피 함으로서 에너지 독립성을 확보하고, 세계 석유공급원 확대 및 에너지안보의 증대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 석유기금자산은 전임 대통령에 의해 1999년에 설립된 국가 석유기금으로 교육, 빈곤감소, 농촌생활수준 향상 등에 사용된다.

    - 바쿠-트빌리시-제이한 송유관 (BTC 송유관)

    - 주요 석유기업

         · SOCAR(State Oil Company of The Azerbaijan Republic)-국영석유로서 아제르바이잔의 석유, 천연가스 생산과 수출입을 총괄한다.

         · ALOC(Azerbaijan International Operating Company)-이 나라 최대 유전인 ACG역외유전의 개발을 위해 결성된 국제컨소시엄 (참여기업: BP(34.2% 운영권자)), 류코일(10%), SOCAR(10%) 등)

     

    (2) 농 업

    농업은 아제르바이잔의 전통산업으로, 체제전환 이후 생산이 급격히 하락 했다가 최근 들어 꾸준히 회복하고 있는 추세이다. 정부는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개혁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주요 농산물로는 곡물, 채소, 차 등 식용 작물과 면화, 실크, 담배 등 비 식용작물이 있다.

     

    [농업 생산 동향]

    (단위: 백만 달러,%)

    농업 생산 동향
    구분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생산량 713 903 824 946 1,060 1,179 1,270 1,270 1,400 1,506 1,881
    증가율 -7.0 26.6 -8.8 7.2 7.0 12.1 11.2 7.7 10.2 4.6 7.5

    자료: 한국수출입은행

     

    (3) 통신 및 IT

    통신 및 IT산업은 아제르바이잔의 신규 육성 사업으로, 석유 및 가스 산업 다음으로 외국인 투자가 집중 되고 있다. 정부는 통신 및 IT산업을 산업 다각화를 위한 핵심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목표아래, 적극적으로 외국인 유치와 정부지분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 유선통신부분은 통신 및 IT 산업 중 가장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1995년 100명당 0.9명 수준이던 가입자는 2004년 100명당 13명 수준으로 대폭 증가 하였다.

    - 무선통신부분은 향후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부분이다. 2005년 무선통신가입자는 150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18%, 인터넷 가입자는 40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5% 수준으로 비교적 낮은 편이나, 향후 제반 통신 인프라가 구축되면 급속도로 증가할 전망이다.

     

    (4) 건 설

    건설부문은 정부의 독점 해소 및 민영화와 경제발전에 따른 부동산 활황으로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외국인투자 급증에 따라 수도인 바쿠를 중심으로 고급아파트, 게스트 하우스 등 주택과 부대시설 등의 건설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5) 교통 및 물류

    아제르바이잔은 비교적 잘 정비된 교통 및 물류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으며, EU, 러시아, 중동을 잇는 물류 요충지이기 때문에 향후 교통 및 물류 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EU를 스폰서로 추진되는 TRACECA 프로젝트(EU, 카프카즈, 아시아 국제물류 회랑)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카프카즈와 중앙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TRACECA 프로젝트(Transport Corridor Europe-Caucasus-Asia)- 1993년 브뤼셀에서 중앙아시아 5개국과 카프카즈 3개국은 유럽-카프카즈-아시아를 잇는 물류 회랑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이 프로젝트는 53개 사업에 약 11억 유로를 지원하고 있다. EU와 프로젝트 회원국간 교통, 통신, 물류망 연결과 물류수송 인프라 확충을 통해 상호 무역 및 경제교류를 확대하기 위함이다. 아제르바이잔은 바쿠 항구에 컨테이너 터미널을 건설할 예정이다.

     

     

     


  • eurasiaturk 2016-07-09 조회수:1704
    AZERBAIJANI 

     

     

     

    사회문화

     

     

    아제르바이잔 행정지도

     

    [아제르바이잔 행정지도]

    59개 지역(압셰론· 아그담· 아그다시· 악자바디· 악스타파· 악수· 아스타라· 바베크· 발라칸· 바르다· 베일라간· 빌라수바르· 다슈카산· 다바치· 피줄리· 가다바이· 고란보이· 고이차이· 하지가불· 이미슐리· 이스마일리· 자브라일· 잘릴라바드· 줄파· 칼바자르· 캉가를리· 하치마즈· 한라르· 히지· 호잘리· 호자벤트· 쿠르다미르· 라친· 란카란· 레리크· 마살리· 네프찰라· 오구즈· 오르두바드· 카발라· 카자흐· 고부스탄· 쿠바· 쿠바들리· 쿠사르· 사틀리· 사비라바드· 사바라크· 실랸· 사무흐· 샤흐부즈· 샤키· 샤마히 샴키르· 샤루르· 슈샤· 시아잔· 타르타르· 토부즈· 우자르· 야르딤리· 예블라흐· 장길란· 자카탈라· 자르다브)

    11개도시(알리바이림리· 바쿠· 간자· 한켄디· 란카란· 밍가체비르· 나프탈란· 나히체반· 샤키· 숨카이트· 슈샤· 예블라흐)
    1개의 자치공화국(나히체반 자치공화국)

     

    1. 수도 및 주요 도시

    1) 바쿠 (Baku)
    바쿠 성벽 Maiden's
    [바쿠 성벽]                                [Maiden's]
    바쿠 만 바쿠 전경

    [바쿠 만]                            [바쿠 전경]

     

    바쿠라는 이름은 아마도 '산바람이 심하게 부는'이라는 뜻을 지닌 페르시아어 '바드 쿠베(bad kube)가 축약된 것으로 보인다.

    석유산업과 행정적인 기능 때문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늘날 바쿠 시의 중심부는 이체리셰헤르라는 옛 도시(요새)이다. 성벽 대부분이 러시아의 정복(1806) 후 강화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으며, 12세기에 27m의 높이로 세워진 메이든 탑(소녀의 탑)도 남아 있다.

    바쿠의 경제기반은 석유이다. 석유가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8세기부터이며, 15세기에 들어서자 지표면 유정에서 등불용 기름이 채취되었다. 근대적이고 상업적인 탐사가 시작된 것은 1872년으로 루마니아의 폴로이에슈티에 이어 2번째였다. 20세기 초 이곳의 유전은 세계 최대의 규모였으며 1940년대까진 최대 규모의 위치를 지켰다. 그러나 석유 매장량이 상당히 고갈된 오늘날은 유정 일부가 도시 내에 남아 있지만 지하 5,090m까지 시추작업을 하거나 압셰론 반도를 가로질러 카스피해까지 시추작업을 벌여야만 석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바쿠 만에는 많은 유정탑(油井塔)이 도시를 향해 세워져 있다.

    2) 간자 (Ganja)
    농업학교(왼쪽) 모스크(가운데)Nizami`s Mausoleum(오른쪽)
    [농업학교]                                [모스크]                                     [Nizami`s Mausoleum]

    소(小)카프카즈산맥 북쪽 기슭의 구릉지에 위치하며, 간자차이강 양쪽 연안에 자리한다. 바쿠 다음 가는 제2의 공업도시이다. ‘간자’라는 지명의 유래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그 중 페르시아어의 간지( ganj ‘보물’)가 어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3) 숨가이트 (Sumgait)

    카스피해에 돌출해 있는 압셰론반도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바쿠에서 북서쪽으로 35㎞ 지점에 있다. 1944년 바쿠의 근교도시로 건설되었으며 1949년 시로 승격되었다. 1939년까지는 지방의 소도시에 불과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뒤 바쿠 지역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자원으로 공업화하여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다. 정유 플랜트 시설의 제조공장과 석유화학 콤비나트가 있으며 그밖에 합성고무·수지·과인산석회·파이프·알루미늄 등의 제조 공장이 있어 중공업이 발달했다. 그로 인해 미국 국제환경연구단체인 블랙스미스연구소가 발표한 세계10대 오염도시 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4) 숨가이트 (Sumgait)
    나히체반 자치공화국 국기

    [나히체반 자치공화국 국기]

     

    아제르바이잔의 자치공화국으로 아르메니아 지역 내에 위치하여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엔클라이브(enclave)지역이다. 나히체반 자치공화국은 성경에서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이후 처음 정착한 땅으로 고대 아르메니아의 중심지였다. 과거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의 임지(1849~1981년), 아르메니아공화국의(1981~20년) 영토였으나, 1921년 러시아 볼셰비키 정권과 터키 사이에 체결된 모스크바 조약에 의해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1925년 구 소련 정부로부터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공화국의 자치공화국으로 인정 받았다. 1990년 구 소련 정부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1992년 5월 아르메니아가 나히체반을 점령했으나, 이후 아제르바이잔이 재 점령하였으며, 최근까지 양국간 민족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전통적 농축산업의 중심지로서, 보리·잎담배·면화·포도·채소·과일을 주로 생산하며 양잠과 산지에서 하는 목축이 행해진다. 산업으로 포도주·치즈·육류 가공 등의 식품공업과 가구·피혁·봉제·건자재 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아르메니아까지 이어지는 철도와 도로가 통과한다. 시내에는 10∼14세기에 건설한 요새 등 오래된 건조물이 남아 있으며, 토속적인 문화를 전시해 놓은 향토박물관과 농업대학이 있다.

    5) 스테파나케스트 (Stepnacast)
    Mausoleum of Hussein Javid 카라바흐 국기카라바흐 국장
    [Mausoleum of Hussein Javid]                          [카라바흐 국기]                 [카라바흐 국장]

     

    스테파나케르트는 나고르노 카라바흐 자치주의 주도이다. 1917년 처음 건설되었을 당시에는 한켄디라고 불렸으나 1923년 바쿠의 공산주의자 스테판 샤우미얀의 이름을 따서 개명했다. 나고르노 - 카라바흐 자치주는 아제르바이잔에 위치하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이 다수 거주 하고 있다. 회교도인 소수 아제르바이잔인(5만 명)이 기독교계인 아르메니아인을 지배하는 구조가 분쟁의 화근으로 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아르메니아인들이 1991년 12월 10일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NKR)의 독립을 선언하였지만.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의 주권 상태는 아르메니아만 인정하고 있으며 사실상 아르메니아 군대의 지배하에 있다. 그런 가운데 2007년 9월 7일에 카라바흐 새 대통령이 취임했는데 아제르 외무부는 이건 “광대놀음”이며 "취임식도 아무런 법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고 평가절하했다.

    ※ 국가
    아르차크는 자유와 독립을 원하리.
    우리 모두가 지은 요새가 있네.
    우리의 피와 우리의 조국은,
    역사 속에서 남으리라.

     

    2. 주 민

    1) 아제르바이잔 민족 구성
    원형 그래프

    [출처:CIA FACK BOOK(www.cia.gov)]

    전체 인구 중 아제르바이잔인(人)이 90.6%, 다게스탄인이 2.2%, 러시아인이 1.8%, 아르메니아인이 1.9%이다. 나머지 3.9%는 레즈긴인, 아바르인, 우크라이나인, 타타르인 그루지야인, 타리슈인, 나히체반인, 카라바흐인 등 소수민족이 살고 있어 아제르바이잔인 외에도 약 16개의 소수민족이 거주한다. 대부분의 아르메니아인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거주한다.

    2) 아제르바이잔 언어 구성도
    원형 그래프

    [출처:CIA FACK BOOK(www.cia.gov)]

    독립 후 아제르바이잔어(語)를 유일한 국어로 선언하였고 문자도 터키에서 사용하고 있는 라틴 문자를 채택하였다. 아제르바이잔어는 고도의 문학어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페르시아어로부터의 차용어가 많다. 러시아어도 일부 사용한다.

    3) 아제르바이잔 종교 구성
    원형 그래프

    [출처:CIA FACK BOOK(www.cia.gov)]

    공식 국교는 없으나 대부분의 국민이 이슬람교를 신봉한다. 전체 무슬림 93.4% 중 약 75%가 시아파(派)로 주로 동부·남부·서부 농촌과 도시지역에 분포한다. 나머지 18.4%는 수니파로 중부·북부 지역과 소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두 종파간의 심각한 갈등은 없다. 러시아정교는 2.5%, 아르메니아정교 2.3%, 기타 1.8% 이다. 고대 원주민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였으나, 7세기 이후 이슬람화되었다. 구 소련시절에는 종교의식이 미약했으나, 독립 후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으로 종교의식이 강해지고 있다.

    4) 아제르바이잔 연령 구성도
    원형 그래프

    [출처:CIA FACK BOOK(www.cia.gov)]

    0~4세: 25.4% (남: 1,086,271 여: 975,100)
    15~64세: 67.7% (남: 2,695,428 여: 2,799,047)
    65세 이상: 7% (남: 211,436 여: 352,963)
    인구 1,000명당 출생률은 17,47명으로 세계 224국 중 125위(우리나라 199위, 일본 223위)
    평균수명은 65.96세이다. 남자 61.86 여자 70.66으로 세계 156위(우리나라 54위)

     

    3. 교 육

    바쿠 국립대학

    [바쿠 국립대학]

    아제르바이잔의 교육은 전부 무상으로 이루어지나 여성이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해 비교적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가 강하다. 구 소비에트 공화국 시절의 교육체계는 모스크바의 교육체계를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공화국의 붕괴 후 1988년부터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교육기관의 수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고 아르메니아어(語)나 그루지야어(語)를 사용하여 교육하는 기관이 늘어났다. 수도 바쿠에는 종합대학교 2개와 12개의 고등교육기관(대학교수준)이 있다. 이중에는 석유·화학 산업만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교가 있으며 아제르바이잔 과학 아카데미는 수많은 과학연구 기관들로 구성되어 있다. 1919년에 설립된 아제르바이잔 대학은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큰 도서관을 가지고 있다.

     

    4. 문 화

    정통악기 연주 모습 오페라 하우스
    [정통악기 연주 모습]                   [오페라 하우스]

     

    아제르바이잔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들어와 지난11~13세기의 문화황금기에 버금가는 문화중흥을 경험하였다. 주로 예술·교육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부흥은 석유로 늘어난 부의 지원에 의해 이루어졌다. 아제르바이잔의 새로운 산업과 상업분야의 지식층은 기금을 마련하여 도서관과 학교, 병원 등을 설립하였다. 아제르바이잔 예술의 중흥은 러시아 제국 내의 터키, 이슬람인들 에게 영감을 주어 이슬람 세계 최초로 극장과 오페라극장이 세워졌다.

    부흥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예술가로는 극작가이며 철학자인 아크훈도프 (Akhundov)이다. 그는 모국어인 아제르바이잔 터키어로 작품을 썼고 이들은 아제르바이잔 언어 사용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작곡가이자 시인인 우제이어 하지베일리(Uzeir Hajibeyli)는 전통적인 악기와 테마를 사용하여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이슬람 세계에서 최초로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구 소련의 지배 하에 아제르바이잔 문화의 표현은 제한 받았으며, 러시아 문화에 의해 지위를 누릴 수 없었다.

    스탈린 숙청기간인 1930년대 많은 아제르바이잔 작가나 지식인이 살해당하였으며, 그들의 작품과 기록을 없애는 잔인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또한 문화재, 이슬람교당, 도서관 등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르시쵸프의 느슨한 통치 아래 아제르바이잔의 문화는 조심스레 부활하기 시작하여 스탈린 시대에 숙청된 작가의 작품이 복원·출판되었다. 1980년대 후반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 정책은 아제르바이잔 작가와 역사가에게 활력을 주어 아제르바이잔의 역사적 작품, 문학적 고전작품의 재 출판이 늘어나게 되었다.

    1) 국경일

    (1) 국가 공휴일

    국가 공휴일
    새해 1월1일
    세계 여성의 날 3월8일
    Novrus Bayramy (봄을 깨우는 축제일) 3월20~21일
    승리의 날 5월9일
    공화국의 날 5월28일
    국가 구조의 날 6월15일
    군인의 날 6월26일
    국가 독립의 날 10월18일
    헌법 제정의 날 11월12일
    국가 부활의 날 11월17일
    Solidarity Day of all Azeri People
    (모든 아제르바이잔인의 단결의 날)
    12월31일

    (2) 종교 공휴일

    종교 공휴일
    Ramazan Bayram
    (라마단의 마지막날 기념)
    Every Year the date moves
    Gurban Bayram
    이슬람교에서 가장 중요한 휴일
    ‘희생의 날’
    Moved

    (3)기념일

    기념일
    희생의 날 기념 1월20일
    Memorial Day of XODJALI 2월26일
    아제르바이잔 학살 사건 기념 3월31일

     

  • AZERBAIJANI

     

     

    종합개관

     

     

    1. 위치

    아제르바이잔 위치도

    [아제르바이잔 위치도]

    북위 40.30도, 동경47.30도에 위치해있으며 코카서스 남부(카스피해 좌안), 아르메니아, 이란, 터키, 그루지야와 접경하고 있다.

     

    2. 일반개황

    아제르바이잔 일반개황
    국 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Republic of Azerbaijan)
    독립일 1991년 8월 30일 from Soviet Union
    수 도 바쿠 (Baku)
    영토면적 86,600 ㎢ ※남한 98,480㎢
    인 구 8,120,247명 (2007.7) 세계94위/240국가
    ※남한 49,044,790 세계26/240
    민족구성 아제르바이잔인(90.6%), 다케스탄(2.2%), 러시아인(1.8%)
    종 교 이슬람교 (93.4%-시아파 75%, 수니파 25%), 러시아 정교 (2.5%)
    아르메니아 정교 (2.3%), 기타 (3.9%)
    언 어 아제르바이잔어(89%), 러시아어(3%)
    대통령 및 임기 일함 알리예프 (Ilkham Aliyev)
    ※Oct.'03 취임, 임기 5년 (Oct. `08 대선)
    의 회 단원제 (125석, 임기 5년)
    정부형태 공화정 ※대통령 중심제
    화폐단위 마나트 (Manat) ※환율 1$ = 0.84 마나트 (2007.10)
    국내총생산(GDP) 구매력 평가 기준(PPP) : $ 720억 (2007)
    공정 환율 기준 : $ 310억 (2007)
    1인당 GDP $ 9,000 (2007)
    산업구조 농업: 6%, 산업: 64%, 서비스: 29.9% (2007)
    주요자원 석유, 천연가스, 철광석, 구리, 금
    수출입 수출액 : $190억 (2007)
    ※ 수출품목 : 석유와 가스(90%), 기계류, 면, 식료품
    수입액 : $63억 (2007)
    ※ 수입품목 : 기계류, 석유제품, 식료품, 화학제품
    행정구성 65개 지역, 69개 시, 1개 자치공화국(나히체반 자치공화국)
    주요도시 숨가이트, 간자, 쉐키, 쉐마하 등
    주요 경축일

     

    3. 국기

    국기

    파랑, 빨강, 초록의 세 가지 색 바탕에 초승달과 팔각별로 회교 국가임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파랑은 전통적 색채이며, 빨강은 유럽화, 초록은 이슬람을 의미한다. 가로 세로 비율은 2:1 이다. 비슷한 형태의 국기가 아제르바이잔 민주공화국 시절인 1918~1920년 동안 사용되었으나 공산화 된 이후 사라졌다가 1991년 2월 5일 독립하면서 다시 정식 제정하였다.

     

    4. 국가문장

    국가문장

    아제르바이잔의 국장은 전통적이고 현대적인 상징이 잘 혼용 되어있다. 가운데는 불을 상징 하는 모양이 있는데 이것은 아제르바이잔 대륙을 상징하는 고대 아제르바이잔의 상징이다. 국장의 색깔은 국기의 색깔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 별은 역시 8개의 터키족을 상징하며 밑받침은 이 지우기 아제르바이잔의 대표 농산물인 ‘밀’ 과 ‘오크’ 나무를 상징한다. 문장에 표어는 없다.

     

     

     

     

    자연환경

     

    1. 지형 및 지질

    아제르바이잔 지형도

    [아제르바이잔 지형도]

    아제르바이잔은 알프스 지향사 습곡지괴의 동단에 형성된 거대한 카스피해(海) 침하지역에 위치한다. 지형적으로 영토의 40% 이상이 저지대이며 50% 정도가 해발고도 400∼1,500m이다.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산지이므로 지형은 발쇼이(大)카프카스, 말리(小)카프카스, 탈리슈 등의 산지와 쿠라 저지대로 양분된다.

    북부의 발쇼이카프카즈 산지 바자르듀쥬산(4,466m)을 비롯한 높은 산이 연봉(mountain range)을 이루는 고산지대이나, 동부에는 넓은 침식구릉이 전개된다. 서남부의 말리카프카즈 산지는 용암대지인 카라바흐 고원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철광·명반석·코발트를 비롯한 많은 종류의 유용광물이 매장되어 ‘아제르바이잔의 우랄’이라 부른다. 중동부의 쿠라 저지는 초원이 전개되는 평야지대이며 쿠라강(江)이 북서에서 동남 방향으로 흐른다. 저지의 서쪽에는 황무지와 카르스트지형이 나타난다. 동단의 아프셰론반도, 카스피해 등지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다량 매장되어 있다. 나히체반 지역은 아라스강 중류의 분지로 남부와 동남부는 낮고 평평하나 북부는 산지이며, 암염·몰리브덴·납 등이 다량 매장되어 있다. 산지에는 하계망(河系網) 이 발달하였으나 평야에는 하천의 발달이 미진하다. 대부분의 하천은 쿠라 저지로 유입되나 대하천인 쿠라강은 국토를 종단하여 카스피해로 유입되며, 하구에서 예블라흐까지 항해가 가능하다. 대부분의 하천은 여름철이 풍수기이나, 탈리슈산맥에서 발원하는 하천의 풍수기는 겨울철이다. 카스피해 연안저지와 아프셰론반도 부근에 수질오염, 토양오염 등이 심각하다.

     

    2. 기 후

    아제르바이잔 기후 분포도

     

    [아제르바이잔 기후 분포도]

    아제르바이잔 기후 분포도 설명
    상아색 Half-deserts and dry steppes with soft winter and dry hot climate
    연두색 Half-deserts and dry steppes with cold winter and dry hot climate
    분홍색 Moderately warm climate with dry winter
    진분홍색 Moderately warm climate with dry summer
    풀색 Moderately warm climate almost with uniform distribution of sedimentaries
    빨간색 Cold climate with dry summer
    녹색 Cold climate with dry winter
    주황색 Cold climate with plentiful quantity of sedimentaries in all seasons
    보라색 Climate mountainous tunrdas

    주로 아열대기후이나, 건조 아열대 기후에서 산지 툰드라 기후까지 다양한 기후가 나타난다. 중부와 동부의 평야는 건조한 아열대성 기후로 겨울은 온화하며, 여름은 매우 덥다. 평야는 건조한 온대기후, 남동부의 렌코란 저지는 습윤한 아열대기후, 이란 인접 지역은 온대 대륙성 기후 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총 11개의 기후 중에 9개 기후가 고루 분포되어 있어 다양한 기후대를 가진다.

     

    [평균 기온]

    - + 14.5(도)

    - 1월: +1.7(도)

    - 7월: +27.9(도)

    - 최고 기온 : +44(도) ※나히체반

    - 최저 기온 : -42(도) ※발쇼이카프카즈

     

    3. 토양과 식생

    1) 토 양

    아제르바이잔의 쿠라-아라크스 저지에서 가장 넓게 분포하는 토양은 회색사막-초지토, 염류토, 초지 및 늪지토이다. 주변지역에는 회색사막토와 초지사막토가 분포한다. 평야나 구릉에는 회색사막토, 알카리성 갈색토, 밤색토, 고지밤색토, 체르노좀, 고지체르노좀 등이 나타난다. 삼림지대의 토양은 습윤 석회질 삼림토와 갈색삼림토이며, 삼림지대 상부의 토양은 체르노좀 유형의 초지 삼림토, 초지 삼림 이탄토이다. 탈리슈산맥의 동사면과 렌코란계곡에서는 여러 종류의 황색 토양이 나타난다.

    2) 식 생
    명아주

    [명아주]

    4,100종의 식물이 분포하며, 저지는 반사막식물, 명아주과식물, 하루살이식물 등으로 덮여 있다. 쿠라 저지의 염류 토양에서는 다양한 명아주과 식물이 자라고 있다. 평야와 반 건조 구릉에서의 식물은 쑥, 반건조식물, 건조스텝식물, 고지건생식물 등이다. 삼림 면적은 124만 800ha로 전국토의 11%를 차지하며, 영구 초원은 25%이다.

    주요 삼림지역은 탈리슈산맥의 동사면과 발쇼이카프카스 및 말리카프카스 산지이다. 해발고도 500~800m의 삼림지대에서는 시베리아 오크나무가, 발쇼이카프카스 남사면에서는 유럽 밤나무가 분포한다. 탈리슈 산지는 밤나무·오크나무·감나무 등으로 덮여 있다.

     

     

     

     

    역사

     

    1. 고대 아제르바이잔 ~ 소 연방

    고부스탄의 구석기 시대 암각화

    [고부스탄의 구석기 시대 암각화]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이라 불리는 민족이 형성된 것은 13세기부터이다. 이 지역은 신석기 시대 및 초기 청동기 시대에는 이미 농목민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BC 7세기에 스키타이인들에 의해 정복된 것이 기록에 의해 알려져 있다. BC 5세기에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영역에 들어가 있었으며, BC 4세기에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 후 이곳에 왕조를 세운 장군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아트로파페스가 BC 2세기에 파르티아에게 정복될 때까지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로마 시대에는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인의 조상인 알바니아인이 독립국가를 세워 알바니아라 하였다. 그 후 3세기부터 사산조 페르시아, 7세기 중엽부터는 아랍의 지배를 받고, 11세기에는 셀쥬크튀르크에 정복되었다.

    1256년 몽고의 재배와 함께 이 지역의 말라가라는 곳이 시리아로부터 중앙 아시아에 이르는 중심도시가 되었다. 몽고 후에는 타브리즈의 수도로 터키의 지배 하에 들어갔으나, 후에 이란계 사파비 왕조(1502-1722)를 성립시키는 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이란의 카자르 왕조(1796-1924) 초기, 제정 러시아의 카스피해 연안 지방 진출에 의해서 러시아-터키 전쟁(1806-1812)이 일어났다. 그 결과 제정 러시아가 이 지역을 점령하고 엘리자벳 폴리스크, 바쿠에 양현을 설치하였다. 한편 타브리즈는 한 때 러시아군이 통치하였으나, 1921년에 페르시아의 통치권이 회복되어 아라크스강을 경계로 남부는 이란령으로 남게 되었다.

    1936년 트랜스코카사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폐지하고,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독립하여 소 연방 구성 공화국이 되었다. 스탈린 시대에는 민족주의적 편향을 이유로 공화국 내 민족 지도자들이 대거 숙청당하였다.

     

    2. 소 연방~ 독립국가연합

    91년 12월 11일, 옐친이 제안하고 추진했던 독립국가 연합에 이슬람 공화국들이 가담을 시사했고, 아제르바이잔도 포함되었다. 12월 13일 소 연방이 해체되었다.

    91년 12월 7일, 아제르바이잔의 아에즈 무탈리보프 대통령은 자신이 공화국 내 주둔 전략군을 제외한 모든 군대의 총 사령관직을 맡을 것을 선언함으로 CIS 내에서의 정치 형태의 변화-즉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로의-를 천명했다. CIS 형성 전 이슬람권인 중앙 아시아 5개국과 아제르바이잔의 이슬람 연방 형성의 가능성이 대두되었고, 실제 추진되었다. CIS 출범 시, 러시아 공화국의 주도권 행사는 특별히 중앙 아시아 지역 공화국의 심한 반발을 일으켰고, 그들이 독자적 연방 형성을 시도하게 하였다.

     

    3. 민족 분규사

    1)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
    나고르노 카라바흐 위치

    [나고르노 카라바흐 위치]

    아제르바이잔의 남서쪽 카프카즈 산악지대에 위치한 나고르니 카라바흐 지역(아제르바이잔의 영토의 25% 차지)은 18세기에 아르메니아가 통치하던 지역이었으나, 스탈린 체제하에서 아제르바이잔 지배에 놓이게 되었다. 고르바쵸프의 개혁, 개방정책으로 인해 민족주의가 부활하면서 기독교를 종교로 하는 아르메니아인들과 1988년 카라바흐 지역에서 분쟁이 시작됨.

    19991년 10월에는 아르메니아인 분리주의자들이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독립국가를 선언 하면서 내전 확대로 이어졌다. 이 내전으로 인해 카라바흐 지역과 아르메니아에 살던 80 만 명 이상의 아제르바이잔 난민이 발생하는 극도의 혼란을 겪었으며, 1994년부터 아르메니아인이 카라바흐 대부분을 차지한 상태로 휴전 하였다.

    2004년부터 유럽안전협력기구(OSCE)산하 민스크그룹의 후원으로 양국은 평화적인 분쟁해결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2008년 3월 5일 뉴스 발췌]

    아르메니아에서 경찰과 야당 시위대의 충돌로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된 가운데, 아르메니아 군이 이웃 국가 아제르바이잔 군과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주의 국경에서 무력 충돌했다고 영국 BBC 인터넷판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바르단 오스칸얀 아르메니아 외무장관은 이 교전으로 아제르바이잔인 2명과 아르메니아인 1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아제르바이잔 당국은 이번 교전과 관련, 아르메니아가 국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도발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는 지난 1일 부정선거 의혹을 둘러싼 경찰과 야당 시위대의 충돌로 집회 참가자 8명이 숨지는 등 소요가 발생한 바 있다.
    양국간 교전이 발생한 지역은 아제르바이잔 내 아르메니아 통치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주의 북서부 마르다케르트 지역으로 양국은 지난 1994년 아르메니아가 전면전을 통해 이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획득한 뒤 휴전에 합의했다.

    그러나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무력을 통해 영토를 회복할 준비가 돼 있다"며 군장비와 무기 등을 꾸준히 구입, 군비를 보충해왔다.
    한편, 아르메니아 경찰은 이번 비상사태를 촉발한 시위 주동자로 야당 인사 30여명을 체포했다. 야당 측은 지난달 실시된 대선에서 로버트 코차리안 현 대통령의 측근인 세르브 사르키샨 총리가 당선된 것과 관련, 정부 당국의 개입에 의한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여왔다.

    이와 관련, 국제선거감시기구들은 선거가 "전반적으로 민주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도 투표 집계에 있어서 일부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현재 '유럽위원회'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 같은 범 유럽 기구들은 전 소련연방 국가인 아르메니아의 현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안정을 촉구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2) 카스피 해 영유권 분쟁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한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러시아, 이란 등 카스피 해 연안국 사이에 명확한 카스피 해의 영유권이 확정되지 못한 상태이다. 이는 가장 국력이 약한 아제르바이잔에게는 잠재적 위협 요인으로 남아 있다.

    1991년 구 소련 붕괴 이전 소련과 이란은 1921년과 1940년 양국간 협정을 통해 카스피 해의 경계를 설정하였지만,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이 새로이 독립하면서 카스피 해의 영유권과 개발을 둘러싼 5개 연안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아직까지 어떠한 경계결정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로 인해 남부 카스피 해 지역에서는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이 발생 하였으며, 특히 이란은 아제르바이잔에 대해 간헐적인 군사적 행동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3개국은 해안선에 비례하여 카스피 해를 분할하는 방식(modified median principle)에 잠정 합의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란은 5개국 균등분할(equal division)을 주장하고 있으며, 투르크메니스탄도 영유권 분할방식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여러 차례의 관계국 회의에도 논의진전이 답보상태에 있으며, 몇몇 국가들은 양자간 협정을 통해 영유권 문제해결에 나서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1. 정무 관계

    - 외교관계 수립: 1992.3.23

    - 공관장: 류광철 대사 상주공관 개설

    - 06.03 주 아제르바이잔 한국대사관(1인공관) 개설(류광철 대사대리)

    - 06.12 류광철 주 아제르바이잔 특명전권대사 임명

    - 07.03 주한아제르바이잔대사관 개설(Rovshan Jamshidov 대사)

     

    2. 주요인사 교류

    1) 바쿠 (Baku)
    알리예프와 영부인 방한 노무현 전대통령과 알리예프 대통령
    [알리예프와 영부인 방한]           [노무현 전대통령과 알리예프 대통령]

     

    - 06. 5월 노무현 대통령 아제르바이잔 방문

    - 07.4월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 방한 등 계기로 경제분야별 약 30여 개 협력약정 체결

     

     

    [정상회담 후 청와대 브리핑 발표문]

    제목 : 한·아제르바이잔 외교장관회담 결과

     

    (1) 2006.5.10(수)-12(금)간 아제르바이잔을 방문중인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반기문 외교장관은 현지시간 5.10(수) 17:00-17:40 외교장관과 회담을 갖고, 명일 양국 정상회담에 앞선 양측 입장 사전조율, 양국 관계 및 유엔 개혁 등 상호 관심사항에 대해 의견 교환을 가졌다.

    (2) 양 장관은 금번 노무현 대통령의 아제르바이잔 방문이 92년 3월 수교 이래 이루어진 최초의 정상 방문으로 양국 관계를 새로운 차원의 협력 관계로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3) 특히, 양 장관은 금번 정상회의 계기 양국 정상간 “한·아제르바이잔 관계와 협력의 원칙에 관한 공동선언” 서명과 각종 협정 및 협력약정 체결을 통해 양국간 정치·경제·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의 관계 발전을 위한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게 된 데 대해 높이 평가하고, 이러한 양국 정상의 양국 관계 발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토대로 향후 에너지·건설·교통·IT 분야 등에서의 양국간 실질협력사업들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져 호혜적 협력 관계가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4) 양 장관은 금번 UN 인권이사회 선거에서 상호지지를 통해 양국이 초대 이사국으로 선출된 것을 평가하고, 향후에도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양국이 더욱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3. 주요 교류 행사

    현재 아제르바이잔 거주 한인: 약 150여명
    아제르바이잔 거주 한인은 주로 한국어 교사ㆍ태권도 사범 등이 중심이었으나, 06.5 노무현 대통령 방문 이후 우리 기업의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기업주재원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1) 교육 부문

    우리나라를 국빈방문중인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24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조인원 총장으로부터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고 있다. 알리예프 대통령은 전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정치지도자로 우리나라와 자원ㆍ에너지 협력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스포츠 교류를 통해 인류 공동체의 번영과 세계평화 구현에 기여한 공적을 높이 평가 받아 이번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고 경희대 측은 23일 밝혔다.

    2) 의료부문
    의료봉사단

    [의료봉사단]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김영석씨가 ‘아제르바이잔’(지우기)으로 3개월간 진료한의사로 파견되었다. 이번 파견은 한국-아제르바이잔 문화교류단체인‘SEBA(회장 류헹기즈 헤이다로바)’의 공식 요청으로 이뤄진 것.
    아제르바이잔은 지난해 ‘한국문화주간’행사를 개최, 한류열풍의 또 다른 진원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국가이다. 특히 이곳 정부의 고위인사 및 유력 여성문화인 사이에서 ‘한의학’사랑은 대단하다.

    3) 문화 예술 부문
    예술단 공연마친 헤이로다 SEBA 회장

    [예술단 공연마친
    헤이로다 SEBA 회장]

    "아제르바이잔 문화·예술 한국에 알리고파"

    카스피해 연안국인 아제르바이잔의 전통 예술을 접할 수 있는 행사가 최근 잇따라 열렸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의 민속 무용단과 오케스트라가 전통 춤과 음악을 선보였고, 아제르바이잔의 미술 작품 전시회도 열렸다.

    이번 행사를 위해 80여명의 공연단을 이끌고 내한한 루한기즈 헤이다로바 한국-아제르바이잔 문화교류협회(SEBA) 회장은 “한국 사람들이 아제르바이잔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국과 아제르바이잔의 문화 교류는 태권도에서 비롯됐다. 헤이다로바 회장의 남편이자 비상대책부 장관인 카말라딘 헤이다로바 세계태권도연맹 부총재를 통해 2004년 SEBA가 만들어졌다.

    4) 경제 부문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우리나라 직접투자는 1992년 수교이래 2007년 9월말까지 3건, 76천 달러로 미미한 수준이지만, 2006년 우리나라 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한국은 자원개발 및 인프라 건설사업 참여를 희망하고, 아제르바이잔은 한국의IT등 정보통신, 항만, 조선 등 인프라 건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투자로는 GS건설이 인프라 건설 사업 참여를, 울트라 건설이 예브락-간자 구간 지방도로 공사를 추진 중이다.
    한국석유공사(사장 황두열)는 2006년 5월 11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아제르바이잔 국영석유사인 소카르(SOCAR) 사와 카스피 해상에 위치한 이남(INAM) 광구 지분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석유공사는 이번 MOU 체결을 통해 기참여중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 더하여 아제르바이잔 해상광구에 대한 사업참여 기회를 확보함으로써 '제2의 중동'이라 불리는 카스피해 지역의 석유 탐사, 개발사업에 더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경제부문 교류 뉴스기사 1]

    현대자동차가 아제르바이잔 정부기관으로부터 대규모로 관용차 주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자동차 모스크바지사는 26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지난달 중순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한 직후 아제르바이잔 정부기관들과 은행으로부터 모두 90대의 'NF소나타'를 주문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말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비서실이 NF소나타 30대를 주문한 것을 비롯해 국가안보위원회 20대, 경제개발부 15대, 헌법재판소 10대, 은행에서 15대를 단체 구입했다. 현대 측은 주문 받은 물량을 이달 말 선적해 공급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아제르바이잔에서 1천300여대의 차량을 판매해 도요타, 닛산, GM 등을 제치고 수입차 가운데 판매대수 1위를 차지했다.

    모스크바지사 관계자는 "아제르바이잔 정부의 단체 주문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노 대통령의 방문으로 양국 관계가 좋아진데다 수입차 판매 1위를 기록한 현대차의 기술력을 아제르바이잔 측이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뉴스기사2]

    STX, 아제르바이잔 전 방위 사업 개척
    풍력발전, 조선소 선진화 프로젝트 등 MOU 체결

    STX 그룹이 자원이 풍부한 아제르바이잔과 전략적인 사업협력을 맺고 본격적인 공략에 나선다.

    23일부터 3일간 일정으로 국빈 방한한 일함 알리예프(Ilham Aliyev)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일행은 25일 STX 조선 진해조선소를 방문해 STX 그룹의 조선·기계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자리를 가졌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강덕수 회장을 만나 조선, 에너지, 자원개발, 항만 및 해양신도시 건설 등 전방위 사업분야에서의 상호 관심사 및 협력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에 앞서, STX는 24일 풍력발전 및 조선소 선진화 프로젝트를 포함한 포괄적 분야에서 아제르바이잔 측과 사업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STX 그룹 관계자는 “STX가 보유한 중공업·에너지·발전분야에서의 기술 및 운영 노하우와 아제르바이잔의 풍부한 자원이 결합할 경우,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사업적 시너지가 기대된다”며 “한국 대표 글로벌 기업으로써 해외 개발형 사업(Overseas Developing Biz) 전개에 주력할 계획”이라 밝혔다.

     

    4. 아제르바이잔 기업 진출 시 유의사항

    1) 부정부패 만연

    시장경제에 대한 경험이 없는 아제르바이잔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부정부패로서, 정치인들이 기업을 직접 운영하거나 대기업들이 정치인과 결탁함에 따라 뇌물 등 부정부패가 만연하다.

    2) 부정부패 만연

    금융 및 조세 시스템이 매우 낙후 되어 있고, 부패로 인해 영수증 및 회계 처리에 많은 애로점이 있다.

    3) 사업 상 과다한 세금 부담

     

     

     

     

     

  • eurasiaturk 2016-07-09 조회수: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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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경제

     

     

     

    정치

    1995년 7월 5일 국민투표에 의하여 채택되고 2005년 수정된 헌법에 따르면 아르메니아의 정치체제는 대통령제 공화국이다. 대통령은 국민투표에 의하여 선출되며 임기는 5년(연임 가능)이다. 2003년 3월 국민의 직선에 의하여 로베르트 코차리안이 재선에 성공하였다. 대통령은 다수당 출신 중에서 총리를 임명한다. 최고 행정기관은 각료회의이며, 총리·부총리를 포함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는 27명의 각료로 구성된다. 최고 입법기구는 임기 5년의 의원131명으로 구성되는 최고회의(Azgayin Zhoghov)이다. 의원 정수 중에서 90명은 정당 리스트에 의하여, 41명은 직접 선출된다. 2007년 5월 12일 총선에서 정당 별 의석 분포를 보면 아르메니아공화당(HHK) 69석, 번영아르메니아 24석, 아르메니아혁명연합(ARF,Dashnak) 16석, 법의 통치당 9석, 유산당(Heritage Party) 7석, Dashink 1석, 독립당 5석 등이다. 아르메니아공화당의 코차리안 대통령의 총선 승리로 국정 운영 기반이 강화되었다. 2008년 2월19일 실시된 대선에서 로버트 코차리안 대통령의 후계자로 나선 세르즈 사르키샨 총리가 52%를 득표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야권 후보로 나서 21%의 지지를 얻은 레본 테르-페트로샨 전 대통령은 매표와 이중투표 등의 선거 부정으로 패배했다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돼 3월1일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또 이날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8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했다. 3월 20일 비상사태는 해제되었지만 야권에선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혀 아직 정국이 불안정한 상태이다.

     

     

    아르메니아 2008대선 득표율

    데이터 테이블
    Candidates
    by alphabetical order
    Votes %
    Artur Baghdasarian 272,427 17.7%
    Artashes Geghamian 7,524 0.46%
    Tigran Karapetian 9,792 0.6%
    Aram Harutiunian 2,892 0.17%
    Vahan Hovhannisian 100,966 6.2%
    Vazgen Manukian 21,075 1.3%
    Arman Melikian 4,399 0.27%
    Serzh Sarkisian 862,369 CEC: 52.8%
    Levon Ter-Petrosian 351,222

    21.5%

     

    외교

    1. Genocide

    아르메니아 민족은 301년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고, 주위의 국가들이 모두 이슬람으로 개종할 때도 개종을 거부해 근방에는 아르메니아 민족만이 기독교 민족으로 남았다. 이 때문에 기회만 생기면 아르메니아를 이슬람 국가로 개종하기 위한 이슬람 제국들의 침략이 이어졌다. 15세기부터 오토만 제국이 중동과 발칸 전 지역을 정복하면서 아르메니아도 오토만 제국의 통치를 받기 시작했다.

    1차 대전이 벌어지기 전 오토만 제국에는 약 3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살고 있었다. 1914년 1차 대전이 발발한 틈을 타 아르메니아 인들은 오토만 터키 통치자들의 압제에 반발, 봉기했으며, 러시아가 터키를 침공하자 러시아군 편에 서게 된다.

    이는 곧 엄청난 비극을 불렀다. 격분한 오토만 제국은 1915년 4월부터 자국 내의 아르메니아 인들을 조직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당시 터키 정부는 아르메니아 남자들을 학살하기 위해 18세 이상 50세 이하의 아르메니아 남자들을 모두 군대로 소집했다. 강제 징집된 아르메니아 남자들은 터키군에서 얼마간 훈련을 받다 나중에는 모두 무장해제된 뒤 50명에서 100명 단위의 그룹으로 나뉘어 다리 건설과 도로공사 현장에 동원됐다. 얼마 뒤 이들은 모두 집단적으로 공사장에서 터키군에게 학살됐거나, 굶주림과 극심한 노동으로 죽어갔다. 이런 식으로 수십만 명의 아르메니아 남자들이 터키군에게 끌려가서 죽임을 당했다.

    남아 있던 어린이들과 부녀자들, 노인들은 모두 사막으로 강제 추방돼 처참하게 굶어 죽어갔다. 한 예로 35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을 시리아의 사막으로 추방했는데 시리아에 도착했을 때는 단지 35명만이 살아남았다. 이때의 대학살로 150만~2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했다. 3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 중 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인구가 이런 식으로 죽임을 당했다. 이때의 대학살로 인해 아르메니아 민족들은 고대 시대부터 살아온 땅과 가족과 재산을 잃고 전세계로 흩어지게 됐다. 현재 러시아에 200만 명, 미국에 100만 명을 비롯해 107개국에 모두 9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터키의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독일의 나치가 2차 대전 중 치밀한 계획하에 유대민족 말살을 시도했을 때,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인 <나의 투쟁>에서 “지금 누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기억하는가?”라는 주장을 펴면서 유대인 학살을 적극 옹호 했다.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아르메니아는 터키의 압제에서 벗어나 독립국을 건설하게 되지만 터키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이나 사과를 단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 지금까지 터키 정부는 단 한번도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도리어 대 학살 건을 제기하는 아르메니아에 대해 국교 단절과 국경 봉쇄, 금수 조치를 통해 심각한 경제적 압박을 가했다. 또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외교적 보복을 일삼았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아르메니아는 이웃 국가들로부터 고립되면서 경제적으로 엄청난 곤란을 당하고 있다.

    그 동안 터키 정부는 3천만 달러 이상의 예산을 지출하면서 주로 미국 대학의 역사학자들을 매수해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에 혼신을 기울여왔다. 터키 정부는 일관되게 오토만 제국의 붕괴를 가져온 내전으로 30만 명의 아르메니아 인들과 수 천명의 터키 인들이 죽었다고 오랫동안 주장하고 있다.

    학살 현장 사진 학살 현장 사진

    [학살 현장 사진]

    최근 터키의 유럽연합가입에 대하여 연합 측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선결요건 중 하나로 지정했으나 학살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언론인이 피살되는 등 난항이 거듭되고 있다.

     

    2.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
    1) 배경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 소카프카즈 산맥에 위치한 급경사의 계곡, 숲, 농장과 목초지가 많은 지역으로 아르메니아 계 주민이 다수이다.

    1920년 카프카즈 지역이 소련에 복속된 직후 아르메니아 공화국 영토로 귀속될 예정이었으나 「스탈린」에 의해 1923년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확정되면서 주민 대다수가 아르메니아 계임을 감안, 자치공화국 지위를 부여 받았다.

    2) 분쟁과정

    - 1988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의회가 아르메니아 귀속을 요구하자 소련정부는 직접 통치를 결정하고 5,000명의 군대를 파견

    - 1989년 나고르노-카라바흐가 독립을 선언하자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와의 교역을 중단하고 동 지역을 봉쇄하였고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합병 선언으로 대응한 후 무력 추돌을 지속하다가 1991년 소련군의 철수 직후 양국간 전면전으로 비화되었다.

    - 1991년 나고르노-카라바흐 독자적 독립 선언 후, 1994년 러시아의 중재로 휴전한 이후 간헐적 충돌이 계속되는 가운데 OSCE 민스크 그룹(미ㆍ러ㆍ불)의 중재로 협상이 진행되었다.

     

    3만 명의 일반인이 사망하였고, 난민이 된 50만 명의 아제르바이잔 계 주민들이 아직도 귀환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쟁으로 인한 폐허뿐 아니라 지뢰 문제도 심각하다. 당사국들의 강경한 입장과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러시아의 소극적인 태도로 교착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2007년 7월 대선에서 85%를 얻은 카라바흐 공화국 전(前) 보안 책임자인 바코 사키안(47)은 지난 7일 공화국 수도 스테파나케르트에서 로버트 코차리안 대통령 등 아르메니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을 거행했다.

    최근 양국 정부군간의 교전 발생으로 3명이 사망하는 등 긴장감 다시 고조되고 있다.

     

     

    경제

    독립 이후 처음에는 자본주의화에 필요한 정부지침의 부재, 자산평가 방법의 미비, 민영화 진행에 대한 관심 분산, 관련 정부기관 내 전문인력의 부족 등으로 민영화 추진이 지연되었다. 특히 1988년 12월 7일 발생한 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고, 구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싸고 1988년부터 수년 간 아제르바이잔과 벌인 전쟁으로 1991∼1994년의 경제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부의 계속된 민영화 추진과 개혁, 그리고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합의 후 정황이 안정되면서 1994년 이후 2000년까지 연평균 5% 이상의 고도성장을 달성하였고, 2006년에는 경제성장률이 13.4%에 이르렀다.

    2006년에는 연간 인플레이션이 2.9% 로 낮아졌다. 실업률 7.4%, 절대빈곤층 34.6% 등이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이다. 구 소련연방에 속한 국가들 중에서 민영화가 가장 잘 진행된 국가로 평가된다. 아제르바이잔과의 갈등 해소가 지속적인 경제 발전의 관건이다.

     

     

    [아르메니아 인플레이션 추이]

    데이터 테이블
    연도 2004 2005 2006 2007 2008
    인플레이션% 7.0 0.6 2.9 4.3 6.3

    06년 말 기준 총 외채는 약 14억 4,800만 달러이며 총 외채/GDP 비율은 23%, 이 중 공공부채가 83.2%, 민간외채가 16.7%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공부채는 다자간기구 채무로서 기관별 채무 액 비율은 IDA 58.2%, IMF 11.4%, IFAD, EBRD, IBRD 7.9% 등이며 민간외채의 대부분은 중장기성 외채이다. 외환보유고는 FDI유입 및 해외송금 증가에 따라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외채 및 외환 보유고 현황]

    데이터 테이블
    구분 2005 2006 2007 2008
    총 외채 1.861 1.970 2.098 2.244
    총 외채/GDP 33.47 30.9 25.5 24.6
    D.S.R 7.9 6.2 4.7 4.0
    외환보유고 669 1.072 1.330 1.610
    수입 개월 수 3.3 4.1 4.5 4.6

    산업별 구성 비율은 농업 18.2%, 광공업 38.6%, 서비스업 43.2%(2006년 추산) 이다. 전통적인 농업국가로 국내총생산에서 농업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광·공업 부문이 국가경제를 주도한다. 과거의 산업구조는 1차 산업과 경공업 위주였으나, 2006년 화학, 비철금속, 기계장비류, 정밀기계, 섬유, 의류, 양조, 통조림 제조 등에 주력하여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독립 후에는 국가경제개발정책의 일환으로 1991년 전체 농토의 80%에 대하여 농가당 0.5㏊를 배분하는 농지개혁법, 기업활동법, 법인세법 및 국영기업 사유화법 등 각종 법률을 제정하였다.

     

     

    [부문별 성장]

    데이터 테이블
    농업 8%성장 알코올음료, 제과, 통조림, 부문  
    야금업 알루미늄, 페로몰리브덴 성장 구리 축소  
    건설업: 19.2%성장 지속적 성장 건축자재 생산증가에 기인함
    에너지 천연가스 공급 지속적 증가 가스 인프라의 확장에 기인
    서비스 13%성장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기인

    대외무역을 보면 수출 10.2 억 달러, 수입 19.2 억 달러(2006년)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다이아몬드, 광물, 식료품, 에너지 등이며, 수출대상국은 독일 17.4%, 네덜란드 12.9%, 벨기에 12.8%, 러시아 12.6%, 이스라엘6.8%, 미국 5.8%, 스위스 5.3%, 그루지야 4.9%, 이란 4.7% 등이다. 수입대상국은 러시아 20.1%, 우크라이나 7.2%, 벨기에 7%, 투르크메니스탄, 이탈리아 5.6%, 독일 5.3%, 이란 5.2%, 이스라엘l지우기 4.4%, 루마니아 4.3%, 미국 4.1% (200? 년) 등이다.

     

    1. 농축산업

    아르메니아의 GDP 구성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8.2%이지만 전체 노동력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은 45%이다. 이는 지형과 기후상의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이후 지속적인 농지개발과 관개사업으로 농업이 진흥되었기 때문이다. 경작지는 국토의 17%, 목장·목초지 및 건초지가 39%를 차지한다. 산악지역의 농지는 옥수수 밭·과수원·포도밭·목초지 등이 혼재되어 있다. 사유 경작지는 1991년에 전체 경작지의 1/3에 불과하였으나 1992년에는 90%로 증가하여 자본주의의 토대가 이루어졌다.

    최대경작지는 아라라트 평원, 시라크 고원, 세반분지 등이며, 저수지·양수·관개용수로의 설치로 경작지의 절반 이상이 관개된다. 아라크스강 유역의 관개지에서 밀, 보리, 올리브, 무화과, 석류, 목화, 포도 등이 재배되며, 예레반 주변 지역에서 집약적인 원예농업과 양잠이 성하다. 해발고도 1,000m 이상의 지역에서는 곡물, 사탕무, 감자 등의 재배가 양 사육과 결합되어 행하여지며, 산록에서는 밀, 보리, 옥수수, 라이보리(호밀) 등의 곡류, 산악지대의 남사면 저지에서 잎담배와 감자가 재배된다. 아라라트 평원에서는 과거에 주로 목화와 사탕무가 재배되었으나 최근에는 포도와 같은 환금용 작물을 재배한다. 로리, 시라크 고원, 세반분지 등에서는 대규모 목축이 성하고, 서남부의 산간지방에서는 동계방목을 행하며, 광대한 고산목초지에서는 소·양·염소 등이 사육되고, 세반호에서는 송어 어업이 행해진다.

     

     

    [종류별 농업 생산량]

    (1000ha)

    데이터 테이블
      2002 2003 2004 2005 2006
    Grains 191.9 200.8 206.8 209.6 182.4
    Potatoes 30.5 32.3 35.7 34.4 33.0
    Vegetables 20.1 23.2 22.2 22.5 24.4
    Water-melons 3.9 4.1 4.0 3.9 4.0
    Forage crops 57.8 53.0 55.3 60.9 65.6
    Industrial crops 1.4 1.3 1.2 0.5 0.8
    Total 305.7 314.6 325.2 331.8 310.2

     

    2. 광공업

    아르메니아는 구리, 몰리브덴, 납, 아연, 철광석, 망간, 금, 크롬, 수은광 등 광물 자원이 풍부하지만 1991년 구 소련의 붕괴로 연계가 단절되어 산업화되지 못한 채 많은 광산이 폐쇄되었다. 건축재로 사용되는 응회석, 경석, 현무암, 대리석등이 아직도 많이 채굴된다. 라즈단강·소라켄강·테메트강에 대규모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어 있다. 국내의 비철금속자원과 수력 발전에 의해 생산된 전기는 파이프라인으로 수송되는 석유 및 천연가스와 더불어 기계, 화학, 야금, 섬유, 양조, 피혁공업 등을 발달시켰다.

    최근에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동·아연광 등의 제련, 시멘트 산업이 발달하였다. 에너지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의 영향으로 인하여 석유·가스가 부족해지자 1995년 6월에 안전성 문제로 정지하였던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재개하였다. 수도 예레반은 최대 공업도시로 전국 공업생산의 3/5을 차지하며, 전기기계·금속·인조섬유·식품·비료·양조·화학·양모공업 등이 발달해 있다. 에치미아진에 기계 및 식품공업, 아보비안에 기계공업, 라즈단·오크템베랸 및 케네케르에 알루미늄공업, 알라베르디에 화학공업, 구가르크·잔게주 및 카판 등지에 구리 및 몰리브덴 정련업이 발달하였다. 북동부의 프리제베드 지방에는 화학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인조 보석 및 기계공업이 발달한 키로바칸 공업지대, 식품 및 전기기계공업이 발달한 스테파나 반공업지대 등이 있다. 북서부의 시라크스크 지방에는 기계공업 중심의 중공업이 발달한 귐리 공업지대가 있으나 1988년 12월 발생한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 및 터키와의 정치적 안정 관계가 지속된다면 그 동안의 경험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발전이 기대된다.

     

    3. 에너지

    아르메니아는 카스피해와 흑해를 동서로 잇는 일종의 랜드 브릿지(land bridge) 역할을 해주는 카프카스 지역에 위치해 있으면서, 아제르바이잔과 달리 석유와 천연가스의 생산은 물론 부존 자원조차 없는 자원빈국이다. 또한 석유자원의 통과 루트에서도 그루지야와 달리 벗어나 있어, 이를 통한 경제적 이득도 기대할 수 없는 입장이다. 특히 아제르바이잔과의 분쟁 이후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방면의 국경이 봉쇄된 관계로 에너지 도입선을 남부의 이란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해, 이란과의 연계 망 구축 노력을 할 정도로 내륙국으로서의 애로를 겪고 있다.

    1) 석유

    확인된 매장량이 없고 정유시설도 없어 석유정제 제품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인접국 그루지야와 달리 카스피해산 석유의 대 유럽 수출용 파이프라인도 통과하고 있지 않아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체 수요 석유관련 제품도 철도나 트럭 수송망을 이용해 수입하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석유 공급이 끊기자 아르메니아의 석유 소비는 1992년의 1일 48,400배럴 수준에서, 2000년에는 1일 5,000배럴 수준으로 급감 되었으며 대부분이 조지아의 바투미에서 들여오고 있다.

    카스피해산 석유의 주요 수송로가 될 'MEP(Main Export Pipeline)'건설 프로젝트도 아르메니아를 경유하지 않고 있는데, 아르메니아는 이 파이프라인이 북부아르메니아를 경유할 경우 수송거리 단축으로 비용 면에서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마저도 아제르바이잔과의 나고르노-카라바흐지역 분쟁이 미해결된 상황에서 볼 때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아제르바이잔은 기존의 조지아 루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일축하고 있다.

    2) 천연가스

    확인된 가스 매장량이 없는 상태에서 자체 소비 가스를 전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99년 기준 456억 입방피트의 가스를 소비하고 있다. 지역분쟁 발발 이후 아제르바이잔은 소련시절에 구축된 가스 수송망을 봉쇄했으며, 이로써 모든 가스 수입을 조지아를 경유하는 러시아산으로 대체했다. 민간 가스업체인 이테라(Itera)사가 '96년이래 주 공급업체로 부상했다. 이란-아르메니아간의 파이프라인이 구축되어 도입선의 다변화가 가능해졌다. 천연가스 배급은 Armosgazprom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아르메니아 정부 45%, 러시아의 가즈프롬 45%, 민간기업 Itera 10% 지분 보유). 2001년에 설비 개선에 600만 달러를 투자했다. 2001년 2월 아르메니아와 러시아는 '99년에 체불된 700만 달러의 채무 액 처리에 합의했다.

    한국 석유수출공사 2007.03

    이란과 아르메니아가 3.19일 160㎞ 길이의 가스 파이프라인을 공식 개통했다. 이에 따라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최초의 대체공급원을 가지게 되었다. 파이프라인 개통식에는 양국의 대통령이 참석했다.
    이란은 가동 초기에는 연간 4억 입방, 미터(141억 입방피트), 2008년까지는 연간 25억 입방, 미터(882억 입방피트)의 가스를 아르메니아에 공급할 예정이다. 향후 20년간 총 공급규모는 360억 입방 미터(1.3조 입방피트)이다.
    파이프라인은 이란 Tabriz에서 시작하여 아르메니아 Kadzharan까지 이어지며 약 3년의 공사기간과 2억불의 투자비가 소요되었다. 파이프라인에는 이란 남부의 Assalouyeh, Bid Boland, Kangan 가스전에서 생산된 가스가 공급된다.

    3) 석탄

    생산도 없고 확인된 매장량도 없음. 가정 연료로 사용되는 석탄은 공급부족 상태이다.

     


  • armenia

     

    종합개관

     

     

    1. 위치

    아르메니아의 위치도

    [아르메니아 위치도]

    아르메니아는 북위 40도 동경 45도에 위치하며, 동쪽에 아제르바이잔, 남쪽에 이란, 서쪽에 터키, 그리고 북쪽으로 그루지야와 국경을 면하고 둘러싸여 있다. 국경선은 아제르바이잔 566 km, 아제르바이잔-나히체반 221 km, 그루지야 164 km, 이란 35 km, 터키 268 km이다.

     

    2. 일반개황

    데이터 테이블
    국 호 아르메니아 공화국 (Republic of Armenia)
    독립일 1991년 9월 23일
    수 도 예레반 (인구:1,107,800 면적:227 km²)
    영토면적 29,800㎢ ※ 세계 141위
    인 구 3,229,900 (2007) ※ 세계 135위
    민족구성 아르메니아인(97.9%), 쿠르드족(1.3%), 러시아인(0.5%), 기타(0.3%)
    종 교 아르메니아정교(기독교계),
    언 어 아르메니아어, 러시아어 공용어
    평균수명 71.55년
    문맹률 0%
    대통령 및 임기 세르즈 사르키샨 (Serze Sargsian)/임기 5년 ※2008년 3월 선출
    의 회 단원제 ※최고회의(Azgayin Zhoghov)
    정부형태 대통령 중심제
    주요정당 공화당, 정의블럭, 법치당
    화폐단위 드람 (dram)※ 1$ ≒ 585 dram (2007)
    국내총생산(GDP) 35억4.600만 (2007)
    1인당 GDP 1.100$ (2007)
    수출입 수출액 : 5억 8천만 $ (2007)
    ※ 수출품목 : 다이아몬드,강물,식료품
    수입액 : 13억 1.600만 $ (2007)
    ※ 수입품목 :천연가스, 석유, 식료품 등
    주요산업 다이아몬드가공업, 식품가공
    주요자원 구리, 아연, 몰리브덴 등 희귀금속
    행정구성 11개주
    주요도시 예레반, 바나조르, 기윰리
    주요경축일 1.1 새해, 1.6 아르메니아 정교회 성탄, 4.24 학살추모일, 5.9 전승기념일 7.5 제헌절, 9.21 독립기념일

     

    3. 국기

    국기

    가로 세로 2:1의 비율의 직사각형 모양의 아르메니아 국기는 빨강 파랑 주황의 삼색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빨간색은 아르메니아 고지와 독립을 뜻하며, 파란색은 아르메니아의 미래와 하늘, 주황색은 아르메니아인들의 창조적 재능을 의미한다

     

    4. 국가문장

    국가문장

    1992년 4월 19일에 채택 된 아르메니아의 국가 문장은 아르메니아 예술학회의 회원인 건축가 알렉산더 타마니안과, 화가 하콥 코조얀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중앙에는 4개의 왕가문장과 노아의 방주가 내려앉은 아라라트산이 도안된 방패가 자리하며, 이 방패를 사자와 독수리가 들고 있는 형태를 띄고 있다. 도안 내부의 색상은 국기의 색상이 의미하는 바와 일치한다.

     

    5. 국가

    "Mer Hayrenik"/"Our Fatherland" /”우리의 조국”의 명칭을 가진 아르메니아 국가는 1991년 7월 1일에 제정되었다. 현재의 국가는 최초의 국가를 기초로 개사한 것으로 가사는 시인 미카엘 날반디안의 시이다.

     

    6. 참고문헌

    - CIA 홈페이지 www.cia.gov/cia/publications/factbook

    - 아르메니아 정부 홈페이지 www.gov.am

    - 아르메니아 통계청 www.armstat.am

    - 한국 수출보험공사 www.keic.or.kr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http://www.kotra.or.kr

    - 유라시아 넷 www.eurasianet.org/armenia08

    - 검색포털 구글 www.google.com

    - 위키피디아 www.wikipedia.org

    - www.armenia.com

     

     

     

    자연환경

     

     

    1. 지리

    아르메니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지협에 위치해 남서쪽에 이란과 터키, 북쪽에 그루지야, 동쪽에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지형은 북부는 카프카스 산악지대로 높아지고, 불모의 평지는 남쪽으로 뻗어 이란과 터키로 이어진다. 해발 1000m이하는 국토 전체의 10%이하이며, 가장 높은 곳은 아라라트산으로 해발 4090m에 달한다. 아락강은 터키국경의 일부와 이란국경의 대부분을 따라 흐른다. 사막 비슷한 언덕과 알파인 지형이 불과 몇 킬로 사이에 있으며, 비옥한 아라랏밸리 지역에서 대부분의 농작물이 재배된다. 국토의 삼림지역은 불과 10%이내이며, 18%는 불모지, 30%이상이 목초지이다.

     

    2. 행정구역

    아르메니아 행정구역

    [아르메니아 행정구역]

    아르메니아의 행정 구역은 아르메니아어로 마르제르또는 줄여서 마르즈라고 부르며, 10개의 주와 1개의 특별시(수도)를 가지고 있다. 주요도시로는 수도인 예례반과 기윰리, 바나조르가 있다.

     

     

    [아르메니아 행정구역]

    데이터 테이블
    번호 주 이름 주 도
    1 아라가초튼 아슈타라크
    2 아라라트 아르타샤트
    3 아르마비르 아르마비르
    4 게가르쿠니크 가바르
    5 코타이크 흐라즈단
    6 로리 바나조르
    7 시라크 기윰리
    8 슈니크 카판
    9 타부시 리예반
    10 바요츠조르 예게근다조르
    11 예레반 특별시

     

     

    [아르메니아 주요도시]

    데이터 테이블
    순위 주 이름 인구 % 밀도
    1 예레반 1,091,235 36.3% 5,196.4
    2 시라크 257,242 8.6% 96.0
    3 아르마비르 255,861 8.5% 206.2
    4 로리 253,351 8.4% 66.8
    5 아라라트 252,665 8.4% 126.1
    6 코타이크 241,337 8.0% 114.9
    7 게가르쿠니크 주 215,371 7.2% 58.9
    8 슈니크 134,061 4.5% 29.8
    9 아라가초튼 126,278 4.2% 45.8
    10 타부시 121,963 4.1% 39.1
    11 바요츠조르 53,230 1.8% 22.1

     

     

     

     

     

    역사

     

     

    아르메니아는 한때 로마 제국에 대항할 정도로 강성했으나 이후의 역사는 많은 외국세력의 지배와 이에 대항한 독립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아르메니아 문화의 기초는 우라르투가 멸망한 BC 6세기에 성립되기 시작했다. 우라르투는 강력한 동맹국이던 아시리아가 바빌로니아와 메디아에 정복되자 그 여파로 스키타이인과 킴메리인에게 정복되었던 고대왕국이다. 스스로를 하이크인이라 부르던 아르메니아인들이 이주해왔을 때 우라르투의 발달된 농업기술은 아르메니아인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 이주해온 아르메니아인들은 곧 메디아 제국에 흡수되었고 메디아가 BC 550년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이 지역의 통치는 페르시아 왕에게 공물을 바치는 각 마을 관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BC 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르메니아를 정복한 후 BC 301년 셀레우코스 제국에 편입되었다.

    로마가 BC 190∼189년 셀레우코스 왕조를 정복한 후에는 대(大)아르메니아와 소페네 두 지역으로 분할되었다가 아르메니아의 대왕 티그라네스 2세(BC 95∼55 재위)에 의해 통일되었다. 아르메니아는 그가 다스리는 동안 최고로 번성하여 인접 지역인 이베리아, 알바니아, 아트로파테네, 시리아, 파르티아의 일부 지역까지 세력을 뻗쳤다. 로마 제국 동쪽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급속히 부상했으나 BC 66년 강제로 영토를 할양하고 로마와 동맹을 맺은 후로는 AD 3세기까지 로마와 페르시아 파르티아 왕조의 각축 지역이 되었다.

    성 그레고리우스가 아르사크 왕조의 티리다테스 3세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킴에 따라 페르시아 및 동양 세계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었으며, 300년에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390년 비잔틴 아르메니아와 페르시아 아르메니아로 분할되어 전자는 곧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후자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페르시아의 세력이 쇠퇴하자 비잔틴 세력권으로 들어갔다. 653년 아랍의 지배 아래 들어갔으나 실질적으로는 자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11세기 잠시 부흥했던 비잔틴 제국에 병합되었지만 곧 셀주크인들의 침략을 받아 11세기말에 이르러서는 나라의 대부분이 셀주크 투르크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영토의 대부분이 그루지야에 편입되어 있었던 13세기에는 몽골의 침략을 받기도 했다. 셀주크에 점령된 후 실리시아 지방으로 이주한 아르메니아인들은 소(小)아르메니아를 세워 십자군 전쟁기에 유럽과 굳게 동맹을 맺고 유럽 문화를 많이 수용했다. 13세기 시리아를 통한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몽골 군대를 고용하기도 했으나 1375년 수도가 함락되면서 독립을 상실했다. 16세기 초반 다시 적대관계에 있던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사이의 각축장이 되어 짧은 독립기간(1722∼30)을 제외하고는 18세기까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아르메니아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교역로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말기 (1915년 - 1923년)에 오스만 제국령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이 살해되었다(터키에서는 아르메니아 사람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소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라면서 아예 사건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1916년 러시아에 정복당한 후에는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자카프카지예 동맹을 형성했으나 몇 달 지나지 않아 해체되었다. 1920년 아르메니아 공화국으로 잠시 독립했던 것을 비롯한 여러 차례의 정치적 격동 끝에 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자카프카지예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으로 재통합되었으며, 1922년 소련에 흡수되었다. 1936년 새로 개정된 소련 헌법에 따라 독자적인 소비에트 공화국이 되었다. 1980년대 말 주민 대부분이 아르메니아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제르바이잔의 관할권에 속해 있던 이웃 산악지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정치적 지위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1988년부터 수년간 아제르바이잔과 벌인 분쟁으로 수많은 아르메니아인이 사망했다. 1988년 12월 7일에는 큰 지진이 일어나 레니나칸과 스피타크 시가 파괴되고 2만 5,000여 명이 죽었다. 1989년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공급되던 전력이 끊겨 대부분의 산업시설이 가동을 못하는 등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경제가 매우 어려워졌고 주변국들과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아르메니아는 그 후 1990년 8월 23일 주권을 선언하고 1991년 12월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했다. 1992년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자치를 주장하며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승인을 아르메니아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한국과의 관계

     

     

    1. 정치·안보 분야에서의 협력

    외교관계 수립 : 92.2.21

    주요인사 교류

         - 94.8 Chitechian 부총리, 만국우편연합(UPU) 총회 참석차 방한

         - 95.9 유엔총회 공로명 외무장관 주최 만찬 계기로 한.아르메니아 외무장관회담

         - 97.6 Poghpatyan 아르메니아 체신부 장관 방한

     

    2. 양국간 경제협력 강화

    1) 실질 협력 강화

    88년 아르메니아 지진 피해 발생 당시 우리나라가 90만 불 상당의 구호품 지원

         - 아르메니아 정부, 98.3.25자 코차리안 대통령 명의 김대중 대통령 앞 친서를 통해 지진 피해 복구 사업 재 지원 요청. 우리측, 재 지원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무상협력 사업을 통해 양 국간 협력을 지속 시행하겠다는 요지의 5.1자 우리측 서한 발송 KOICA를 통해 연수생 초청 97년 한국정부에 EDCF 신청 97년 KOICA 기자재 공여 사업을 통해 컴퓨터, 칼라 TV등 5만불 상당의 기자재 제공     

          - 상기 지원은 아르메니아 측이 UNDP 주관 하에 추진중인 “외무부 업무능력 강화사업” 에 우리측참여 요청결과 이루어진 것.

    2) 경제관련 협정

     

    아르메니아 측이 이중과세방지협정, 투자보장협정 및 경제협력협정 초안을 96.7 우리측에 제시 97.4 아르메니아 측, 과학기술협력협정 체결 제의

         - 관련 부처와 아르메니아 측 초안 검토 중

     

     

    [아르메니아 대한관계]

    데이터 테이블
    외교관계수립 1992.2.21 수교(북한과는 1992.2.13)
    주요협정체결 없음
    무역현황
    수출(천 달러) /수입(천 달러)
    2004 2005 2006 주요품목
    2,172 / 80 3,150 / 93 6,939 / 4,062 직물, 섬유제품,
    의료용품, 알루미늄
    투자실적 (2006년 말 현재, 총두자기준) : 없음

    3) 우리업체 진출 동향

    e-daily 2007 03 02

    조달청은 이달 4일부터 15일까지 12일간 전자조달 시스템 도입을 준비 중인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3개국을 대상으로 전자조달사업의 타당성 조사를 위한 민관 합동 조사단을 파견한다고 1일 밝혔다.
    이번 조사단 파견은 김용민 조달청장이 1월25일부터 지난달 3일까지 이들 국가를 방문해 합의했던 상호 협력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이뤄진다.
    조사단은 5일 아르메니아, 8일 그루지야, 12일 아제르바이잔을 차례로 방문, 해당국의 조달관련 정부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조달제도, 법령 관련 자료수집, 정보화 인프라 현황 등을 파악•분석할 계획이다.
    조달청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등 관련 민관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단이 해당국의 IT인프라, 공인인증기반 등을 사전에 파악함으로써 향후 이들 국가의 전자조달사업 추진 시 우리 IT기업의 사업 참여에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 형종 조달청 전자조달본부장은 "이번 아르메니아 등 3개 국가의 전자조달사업 타당성 조사지원을 계기로 나라장터의 정책수출과 이들 국가와의 협력사업이 보다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내일신문 2007-10-16

    GS건설은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인 아르메니아에서 2억1800 달러 규모의 복합화력발전 공사를 수주했다고 16일 밝혔다.
    이 공사는 아르메니아 수도인 예레반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지역에 전력 용량 205 MW급의 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공사다. GS건설은 28개월간 발전소 설계부터 기자재 조달, 토목, 설치까지 일괄 수행하게 된다.
    복합화력은 LNG, 천연가스 또는 경유 등의 연료를 사용, 1차로 가스터빈을 돌려 발전하고 가스터빈에서 나오는 배기가스 열을 다시 보일러에 통과시켜 증기를 생산해 2차로 증기터빈을 돌려 발전하는 것이다.
    한편 GS건설은 국내 발전사업에서 쌓은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 발전플랜트 시장에 적극 진출할 예정이다. 또 공업용수에서 물의 재활용까지 수처리 수직계열화를 추진해 발전과 담수 분야를 세계적인 회사와 겨룰 수 있는 핵심분야로 육성할 계획이다.

    디지탈타임즈 2004

    롯데기공(대표 유정상)은 동유럽의 CIS국가인 아르메니아에 롯데가스보일러 합작사 설립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유로텀(EUROTERM, 대표 에드워드 카자리안)사와 SKD(세미녹다운) 방식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17일 밝혔다.
    롯데기공은 이번 계약으로 SKD 생산을 위한 설비를 유로텀사에 공급하고, 이를 통해 경험이 축적되면 향후 합작투자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투자 규모는 설비와 부대시설을 합해 50만 달러이고, 유로텀사는 공장과 창고를 투자한다. 계약 기간은 3년이고, 최소 3만 여대 규모를 공급할 것으로 기대된다.
    회사측은 "아르메니아 현지 투자 계약은 롯데기공의 해외시장 개척 의지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향후 CIS 국가의 시장개척에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기공은 1985년 가스보일러 생산 이후 우루과이ㆍ칠레ㆍ브라질ㆍ뉴질랜드ㆍ러시아ㆍ중국 등지에 수출하고 있다.
    SKD방식이란 부품을 수출해 현지에서 조립ㆍ판매하는 것으로, 완성품 수출보다 관세가 싸고 현지의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3. 국제기구에서의 협력

    • 94년 제38차 IAEA 총회 북한 핵 결의안 공동제안국으로 참여
    • 95년 우리나라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진출,
    • 96년 경제사회이사회 진출 시 지지 입장 표명

     

    4. 주요인사 방한

    • 94.8 Chitechian 아르메니아 부총리 UPU 총회 참석차 방한
    • 95.9.27 양국 외무장관 유엔 회동
    • 97.6 Poghpatyan 체신부장관 방한
    • 98.7.9-12 Baibourtian 외무차관 방한
    • 99.8.31-9.2 Oskanian 외무장관 방한
    • 05.9.29-10.2 Tumanyan 대통령 비서실장 및 Baibourtian 외무차관 방한

     

     

     

    사회문화

     

    아르메니아의 교회

    [아르메니아의 교회]

    예레반을 둘러보면 서남아시아의 문화가 어떤지 쉽게 알 수 있는데 중동과 비슷하지만 이슬람과 이슬람 사원이 없는 중동의 문화다. 교회 건축은 복잡한 석조 조각으로 꾸며져 있으며 7세기에 종교적 건축이 활발했는데 아르메니아의 교회는 러시아의 교회보다 단순하다.
    이집트 태생으로 아르메니아에 1962년에 정착한 하콥 하콥얀(Hakob Hakobyan)은 중요한 현대화가이며, 작곡가 아람 카차투리안(Aram Khachaturian)과 조각가 코렘 데 하루티안(Korem Der Harootian)은 국내외적으로 유명하다.
    전통음악은 중동의 박자기호에 따른 중동의 사운드이며, 아름다운 민속음악은 생활의 일부로 연주된다.
    아르메니아 문학은 속담, 우화, 민속설화가 발달했고 소설가와 시인들은 20세기 문학의 발전에 공헌을 했는데 카차토우 아포비안(Khachatour Apovian)은 현대 아르메니아 문학의 창시자로 평가 받고 있다.
    양고기를 주로 먹으며 삶은 양고기인 카쉬아마(kashiama)가 특별요리이다. 세반 호수(Lake Sevan)에서 잡은 숭어 또한 훌륭하다. 과일과 채소는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콩, 이집트 콩, 가지, 요구르트, 타보울레(tabouleh)와 중동음식이 다양하고 코냑은 최고 수준이다.
    대부분의 마을은 봄의 시작과 같이해 문화와 음악 축제를 하며, 모든 지방은 여름 동안 전통축제와 현대적인 축제를 개최한다.
    7월에 열리는 물의 날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물을 서로 끼얹는다. 세반 호수는 주말 행사와 여름 동안 콘서트가 열리며 야외공연장은 수공예품과 음식을 준비해 전통 춤과 음악 공연이 열린다. 흐라즈단(Hrazdan)에서 열리는 가을 축제인 보스키 아슌(Voski Ashun)은 10월에 열린다.
    수확이 끝나고 겨울로 접어들면서 예레반에서 문화 시즌이 시작된다. 예례반의 버니사게 문화 공원(Vernisage Art Park)에서는 자발적인 콘서트와 즉흥적인 춤 공연이 일년 내내 주말에 수시로 열린다.

     

     

     

     

  • eurasiaturk 2016-07-09 조회수:1453

    GEORGIA 

     

     

    정치/경제

     

     

    정 치

     

    1. 정치 동향

    1991년 소련 붕괴 후 정권을 잡았던 그루지야의 민족주의자 감사후르디야(Zviada Gamsakhyrdia) 대통령은 1991년 12월 반대세력에 의한 구테타의 발생으로 혼란을 겪은 후 가족 및 정부요인과 함께 아르메니아로 도주하였다. 감사후르디야 정권의 와해 이후 1972년부터 그루지야 공화국 공산당 제 1서기를 역임하였고, 고르바쵸프 대통령 시절 소련의 외무장관을 역임하였던 세바르드나제가 1992년 그루지야 공화국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루지야는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의 승인을 받았고, 1992년 7월 말 UN(국제연합)에 가입하였다. 1993년 10월 독립국가연합(CIS)에 가맹하였다.

    그루지야 최고회의는 1995년 9월 대통령직 신설 및 대통령선거에 관한 법안을 의결하였다. 1995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셰바르드나제가 임기 5년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2000년 재선되었다. 2004년 1월 선거에서는 사카쉬빌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3년 장미혁명[1]지우기 으로 세바르드나제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그루지야는 가난, 부패 및 범죄로 많은 곤란을 겪었다. 정치 및 외교적으로도 내란과 불안이 1995~2003년의 세바르드나제 대통령 임기 동안 계속되었다. 아브하지야, 남오세티야 및 아자리야 등 독립을 추구하는 자치공화국과의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평화유지군을 그루지야에 주둔시킨 러시아는 자치공화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그루지야를 압박하였다. 현 사카쉬빌리 정부는 친서방형으로 서방에서 많은 원조를 받고 있으나 장미혁명 이후 정국안정에 진전을 보이지 못하였다. 결국 2007년 11월 사카쉬빌리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 경제정책 실패 등을 비난하며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였다. 그럼에도 2008년 1월 7일 재선 승리하였다. 최근 NATO와 EU 가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2008년 4월 3일 NATO 회의에서 회원국 가입 합의에 실패하였다.

     

    2. 정치조직

    1) 행정부
    국회의장Nino Burjanadze

    [국회의장Nino Burjanadze]

    대통령의 임기는 5년 이며, 2004년 1월 대선 결과 Mikheil Saakashvili 현 대통령이 96.3%로 당선되었으며, 2008년 1월 Mikheil Saakashvili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현 총리는 Lado Gurgenidze이다.

    2) 입법부

    235석의 단원제이며, 임기는 4년이다. 2004년 3월 총선 결과 여당인 국민운동-민주전선당이 67.6%로 압승하였고, 야당인 신우익 산업당은 7.6%의 득표율로 비례대표 의석 15석을 확보했다.

    3) 사법부

    대법원, 일반법원, 최고심 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4) 대통령 - 미하일 사카슈빌리(Mikhail Saakashvili)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

    미하일 사카슈빌리(Mikhail Saakashvili)는 1967년 12월 21일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의사이고 어머니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지식층 가정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92년에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국립대학교 국제법학부를 졸업하였다. 또한 1994년에 미국의 컬럼비아 법과대학원, 1995년에 미국의 조지 워싱턴대학교 법과대학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변호사로서 뉴욕의 법률사무소에서 일하였고 1995년 12월 총선에 출마하여 그루지야 의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의원으로서의 활약으로 1997년에는 언론과 인권단체에 의하여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2000년 10월 12일에 당시 대통령인 셰바르드나제에 의하여 법무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2001년 9월 5일에 셰바르드나제 정부를 비판하며 법무장관직을 사임하였다.

    2003년 11월에 셰바르드나제 정부에 대한 신임을 묻기 위한 총선이 실시되었으나 부정선거라는 이유로 야당 세력이 반발하여 무혈혁명인 장미혁명이 시작되었다. 3주간의 혁명이 성공하여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사카슈빌리 국민행동당 당수와 부르자나제 민주당 당수는 2003년 11월 23일 트빌리시의 의사당 앞에서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의 사임을 발표하였다. 이후 사카슈빌리는 2004년 1월 4일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국민행동당(National Movement Democrats) 당수로 96%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는 당시 36세로 유럽에서 가장 젊은 나이에 선출 직 국가원수로 선출된 것이었다. 친미성향의 서구적인 사고방식과 강력한 개혁 마인드로 국내외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8년 1월 5일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였다.

     

     

    외 교

    파이프라인

    [파이프라인]

    그루지야는 인접국인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터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다양한 지역 및 국제 조직 - 흑해경제회의(Black Sea Economic Council), GUAM, CIS, WTO, NATO 등에 참여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인구 500만 명의 작은 나라 그루지야가 세계 강대국들의 주목을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 지리적 중요성 때문이다.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남동쪽으로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서쪽으로는 흑해와 터키를 접하고 있어 군사적으로나 정치경제적으로 코카서스 지역의 중심지다.

    그루지야 내에 미국과 유럽연합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이 그루지야에 퍼부은 원조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많았지만 극도에 달한 셰바르드나제 정부의 부정부패로 인해 원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이나 유럽이 그루지야 정부의 극도의 부패를 눈감아주면서 계속 원조를 해온 이유도 다름 아닌 그루지야의 지리적 중요성 때문이다[2]지우기.

    미국과 NATO의 군사 프로그램이나 미국이 지원하는Baku (아제르바이잔) - Tbilisi (그루지야) – Ceyhan (터키) 파이프라인 건설[3]지우기 등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긴장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러시아는 무력 전쟁을 언급하며 그루지야의 행동을 규탄했고 그루지야 주재 외교관 등 러시아인들의 철수를 명령하는 등 양국간의 관계는 매우 불안한 상태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건널목이란 지정학적 요충지로 ‘탈 러시아·친 미국’ 경향으로 기울고 있는 그루지야는 러시아와 지속적으로 부딪치고 있다.

    2008년 4월 3일 루마니아 부하레스트에서 열린 NATO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회원국(Membership Action Plan) 승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반대[4]지우기로 그루지야의 NATO 회원국 승인은 유보되었다.

     

    1. 분쟁문제

    1) 그루지야-아브하지야 분쟁

    아브하지야는 그루지야 북서부에 위치하며, 면적 8,600㎢, 인구 54만 명(아브하지야인 18%, 그루지야인 46%, 러시아인 16%, 아르메니아인 15%)의 자치 공화국이다.

    동 분쟁은 트랜스 코카서스지역의 복잡한 민족구성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소련이 붕괴하면서 그루지야와 그루지야 내 소수민족인 아브하지야인 간에 갈등이 증폭되어 표출된 전형적인 유혈 분쟁이다. 소련 붕괴 이후 아브하지야는 러시아화보다 그루지야 민족주의에 대해 더욱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루지야가 독립을 선포하자 92년 7월 아브하지야는 러시아연방의 일원이나 독립을 하겠다고 선포하였다. 이에 그루지야 정부는 무력으로 아브하지야를 진압하였고 이에 대응하는 아브하지야 반군 사이에서 내전이 발발 하였다. 92년 9월 옐친의 중재로 일단 정전이 되었으나 93년 봄부터 전투가 재개되었고 정전과 재확전이 반복되는 복잡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많은 희생을 치렀다. 이후 그루지야는 분쟁의 해결은 러시아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직시하였고. 러시아의 중재로 양측은 94년 5월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동 분쟁의 근본적인 문제는 미해결상태로 남아있어 여전히 분쟁 재발이 우려되고 있다.

    2) 그루지야-남오세티야 분쟁

    남오세티야는 면적 3900㎢으로 국경 바로 위쪽에 접한 러시아령 북오세티야와 인종과 언어가 같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1944년 효율적 통치를 명분으로 내세워 오세티야를 남북으로 분할했고 이후 남오세티아는 그루지야에 편입됐다. 인구는 약10만 명이고, 주민 대부분은 오세트인이다.

    러시아는 지난 1992년 그루지야-남오세티야간 분쟁을 종결하면서 평화유지 명목으로 남오세티야에 그루지야, 남오세티야 병력과 함께 러시아군 500명을 파견해왔다. 이 후 간헐적인 유혈분쟁은 지속되고 있다. 남오세티야는 2008년 3월 5일 유엔과 러시아에 자국의 독립을 인정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국제사회에서 승인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 제

     

    1. 경제구조

    역사적으로 그루지야는 실크로드와 흑해연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고대부터 많은 지역과 무역거래가 있었고 금, 은, 구리 등 다양한 광물자원과 포도재배는 고대부터 그루지야의 경제활동의 근원이 되었다. 근대에 와서는 자연환경을 이용한 농업과 관광산업이 발전하였다. 소비에트 시기에는 행정명령식 경제체재였으나 독립 후 시장경제체재로 변환하면서 농업과 산업 생산량이 감소하고 경제전반에 어려움이 많아져 1995년 IMF로부터 약 2억불 규모의 자금지원을 받았다. 2004년부터 사카슈빌리 정권의 경제개혁으로 2006년 실질 경제성장률 10%, 2007년 12%를 달성하는 등 꾸준히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 2007년 세계은행은 그루지야가 ‘비즈니스 환경이 좋은 나라 18위’라고 보고했다.

    1) GDP 대비 농업 높은 농업비중

    2000년 이후 공업·건설업을 중심으로 여타 업종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1996년 당시 50%에 달했던 농업부문 비중은 점차 감소하였으나, 여전히 GDP의 1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데이터 테이블
    주요산업부문 GDP(백만 불) GDP대비(%) 전년동기
    대비성장률
    Agriculture, Forestry, Fishing 862,5 11,3 90,7
    Mining and quarrying 79,3 1,0 118,9
    Manufacturing 654,5 8,6 122,4
    Electricity, gas and water supply 207,3 2,7 114,2
    Construction 521,6 6,8 109,9
    Trade services, Repair services 1053,5 13,6 119,7
    Restaurant and Hotel services 170,2 2,2 111,7
    Transport and storage 620,2 8,0 115,1
    Communications 269,4 3,5 111,9
    Financial intermediation 175,3 2,3 140,4
    Real estate, renting and business activities 248,6 3,2 113,1
    Public administration and defense 665,0 8,6 98,9
    Education 276,8 3,6 107,0
    Health care and social Services 336,1 4,3 113,4
    Other community, social and personal service activities 267,0 4,3 112,0

    출처 : http://www.investingeorgia.org/georgia_profile/economic_indicators

    2) 풍부한 망간, 수자원, 관광자원

    그루지야는 망간(2.2억 톤), 구리(34만 톤), 금(3.7만 톤) 등 상당한 천연자원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수자원 또한 풍부한 것으로 알려짐. 국토전역에 2,300여 개의 생수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구 소련 시절부터 유명했던 그루지야산 포도주에 대한 인근 국가의 수요 또한 꾸준하여 수출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해왔다.

    3) 대규모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건설업 활황세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그루지야의 트빌리시, 터키의 세이한을 잇는 전장1,749km의 BTC(Baku-Tbilisi-Ceyhan) 원유 파이프라인이 2006년 5월 공식 개통되었고, 비슷한 경로의 SCP(South Caucasus Pipeline) 천연가스관 또한 성공리에 준공되어 지난 1월부터 가스 운송이 시작되었다. 그루지야는 동국을 경유하는 BTC관 원유에 대해 통과세(Transit fee)를 부과함으로써 연간 6억 달러 정도의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위와 같은 대형 건설 프로젝트 유치 및 기업 민영화를 통한 대규모 FDI유입으로 건설업의 활황세는 2006년에도 지속되었으며, 그에 대한 파급효과로 개인주택 건설 수요가 증가하고 무선통신 및 요식업 또한 활기를 띠었다.

    4) 에너지자원 공급 통로로서의 중요성 부각

    그루지야는 카스피 해의 풍부한 에너지자원을 유럽시장으로 공급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그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 BTC 송유관: 06년 원유공급이 시작된 세계최장 송유관으로 최대100만 b/d의 공급 능력보유

      - SPC 가스관: 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터키로 연결되는 가스관으로 07년 초 본격

      -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우크라이나-EU 라인 건설 구상 등

     

    여러 수송 루트 개발을 통해 카스피 해 지역은 유럽시장을 두고 러시아의 강력한 경쟁지역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미·유럽의 에너지 공급전략에서 그루지야의 중요도는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5) 대기업 민영화

    1995년 정부가 대대적인 산업 구조조정을 시작한 이래 대부분의 소규모기업은 민영화된 반면, 2004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어온 주요 대기업 매각은 다소 난항을 겪고 있다. 초기에 많은 자본을 투입하여야 하는 부담을 비롯해 동국 정부의 안이한 사후관리 태도 및 여전히 남아있는 부패의식 등이 장애요인인 것으로 추정되고 앞으로 공기업 매각에 의한 세입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수출 및 세수 확대 등을 통한 대체 재원이 확보되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2. 최근 경제동향

    1) 실질 GDP 성장률

    그루지야는 2003년 이후 대형 파이프라인 공사, 주요기업의 민영화 추진 등에 힘입어 높은 경제성장세를 유지했다. 2005년 9.3%의 고속성장에 이어 2006년 9.4%, 2007년 12%대의 높은 GDP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주요 거시경제 지표]

    (전년동기대비 %)

    주요 거시경제 지표
    구분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GDP(국내총생산) 104,8 105,5 111,1 105,9 109,6 109,4 112,4
    산업생산 95 107 115 109 116 - -
    농업생산 108 99 110 93 112 112 -
    자본투자 111 118 191 - - - -
    소매거래 106 104 109 107 113 - 117,0 1)
    대CIS 수출 112 116 136 143 125 97 120,1
    수출(CIS지역 제외) 89 102 133 135 144 131 141,4
    대CIS 수입 111 115 127 177 152 141 132,3
    수입(CIS지역 제외) 104 100,7 154 154 125 153 147,7

    출처 : CIS 통계위원회 (www.cisstat.com)
    2007년 1월-9월 전년동기대비

    2) 높은 물가상승률 지속
    그래프 이미지

    출처 : 그루지야 경제개발부

    유가상승, 국외노동자의 송금유입 증가, 일부 수입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플레 압박이 심화되었으나, 중앙은행의 긴축정책 및 Lari화의 강세로 연말에는 다소 진정 기미를 보여 2006년 물가상승률은 연초 예상 치에 근접하는 8.8%를 기록하였다.

    3) 재정적자

    재정수지는 만성적인 적자 기조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최근 세제개혁 및 민영화가 실효를 거두며 GDP 대비 재정적자는 과거에 비하여 상당히 개선되었다.

    4) 교역구조 (2006년 기준)

    2005년 기준 그루지야의 최대수출국은 러시아였으나, 2006년 10월 취해진 러시아의 수입금지 조치의 여파로 2006년에는 수출국 3위(7.6%)에 머물렀다.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터키, 아제르바이잔과의 경제협력이 강화되면서 양국으로의 수출이 총수출의 각각 12.6%, 9.3%를 차지하였다.

     

      - 품목별로는 합금 철, 금, 철강, 와인 등 1차 상품 수출비중이 높아 이들의 국제시세 변동 등에 따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 2006년 기준 총수입 중 석유·가스가 17.8%로 가장 비중이 높고, 그 규모 또한 전년 동기대비 54%가 증가하여, 에너지자원이 현저히 부족한 그루지야의 상품수지를 악화시키고 있다.

    5) 경상수지 적자 여전히 심각

    에너지 대외의존도가 높고 파이프라인 건설을 위한 자본재 수입이 증가하고 있어, 동국은 고질적인 상품수지 및 경상수지 적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06년 10월에 내려진 포도주, 생수 등 동국 주요 수출품목에 대한 러시아의 금수 조치로 인해 동년 경상수지 적자는 전년보다 무려 34.5%나 증가하였고,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또한 13%에 육박하였다.

    6) FDI 유치 상황
    해외직접투자(FDI) 현황

    [해외직접투자(FDI) 현황]

    2006년 2/4분기 FDI는 대규모 건설프로젝트 투자를 중심으로 전년 동기대비 177.4% 늘어난 2억 9,400만 달러를 기록하였으며, 큰 폭으로 확대된 2006년 경상수지 적자의 상당부분을 보전하였다. 또한, 주요 무선통신 기업인 United Telecommunication Company의 매각과 더불어 기타 국영기업 민영화가 가속화되면서 FDI 유입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출처 : 그루지야 경제개발부

    7) 국제신인도

    2007년 1월 OECD 그루지야 국가등급이 한 단계 상향 조정되었다.

     

    - Euromoney : 129/185 ('06. 3) → 138/185 ('06 .9)

    - I.I : 119/173 ('06. 3) → 113/173 ('06. 9)

    - OECD : 7등급 ('06. 1) → 6등급 ('07. 1)

    - S&P : B+ ('05. 12, 최초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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