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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콜로키움 『고대 신라-페르시아 실크로드 교류에 대한 새로운 연구성과』

  • 20180619
  • 2020-12-29 21: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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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실크로드의 가장 핵심적 기능은 “물류 route”였다. 즉, 부가가치 이동로이다. 이 길을 통해, 사상과 전통을 연결하는 길이 되었다. 한국문화의 변천에도 실크로드는 영향을 끼쳤다. 우선, 통일신라 시기 8-9세기 때 콘스탄티노플에서 바그다드, 부하라, 장안, 경주로 연결되었다. 상호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길이었다. 문화는 8~10개월면 빠르게 전파되었다.  1200년전 문화와 물자는, 콘스탄티노플의 상류사회에서 쓰이는 공작새 꼬리털, 공예품 등, 바그다드 일대의 아라비아 유학과 물약, 금속 수공예품 등 유리공예품들이 교류되었다. 이때 유리는 금보다 비쌌다. 이 물건들의 가격 대부분은 “안전비용”이었다. 유리공예품들은 가격이 비싼 만큼,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 낙타 100마리를 기본으로 출발하는 등 실크로드의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때 안전하게 운송하기 위해 카라반 사라이 역할 및 보험 등 인건비에 드는 비용도 있었다. 이후, 그만큼 거대한 상단이 움직이기 위해 정크선이 등장하였다. 정크선은 낙타의 1000마리분의 양, 즉 낙타 수송의 10배를 운반하였다. 통일신라 문헌에 보면, 흥덕왕 시기에 외국사치품 소비가 너무 심하여 국가경제가 파탄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그만큼 엄청난 물류가 통일신라에 도착한 것이다. 물론 위와 같은 경로를 통해 온 것도 있지만, 중국 광저우가 종착항구이기 때문에, 광저우에서 현지공장으로 대량생산해서 신라에 팔았다는 추측이 있다. 실크로드는 다양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기 때문에 다언어 무역상이 있었다. 신라와 페르시아의 역사는 “쿠쉬나메”라는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은 페르시와 왕자와 신라공주와의 결혼 등을 담은 책이다. 구전으로 전해진 이야기가 필사되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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